'자전거'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09.05.06 압력솥 13
  2. 2009.04.14 또 낙서질 27
  3. 2009.04.12 초보운전 14
  4. 2009.04.10 드디어~ 16
  5. 2008.10.23 기분전환 17
  6. 2008.07.26 자전거와 커피 20
  7. 2008.07.13 물오른 낙서질 16
  8. 2008.07.01 느루는 달리고 싶다 10
  9. 2008.05.11 느루 밤마실 19
  10. 2008.04.30 한강 후유증 15

압력솥

투덜일기 2009. 5. 6. 16:14

요즘은 간혹 수증기 배출 직전의 압력솥처럼 머리끝까지 뜨거운 것으로 가득차는 느낌이 든다. 그럴땐 자동으로 추가 딸깍거리든지 수동으로라도 밸브를 꺾어 수증기를 뽑아주어야 하는데 이제 나에겐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다. 그냥 계속 화르륵화르륵 끓다가 고무패킹은 물론이고 솥째로 여기저기 망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엔 그렇게 머리끝까지 뜨거워지기 전에 시원하게 식혀주고 달래주는 역할을 오롯이 아버지가 맡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옛날보다 더 빨리 뜨거워지는 낡은 솥이 되었다는 얘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부재의 슬픔을 크게 느낄 뿐이다.

어제 저녁엔 간만에 느루를 끌고 나갔다. 벌써 낮엔 너무 더운 느낌이고 햇볕도 싫어 어둑어둑해진 다음 도둑고양이처럼 언덕을 내려가 개천변 산책로를 달리는데 초저녁에 운동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자연하천을 복원한다고 크게 광고는 했지만 군데군데 큼지막한 바위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개천 양쪽엔 수생식물을 심으면서 그 언저리를 시멘트로 떡칠해댄 꼬락서니를 보면 공무원들 가운데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 과연 없는 것인가 의아하다. 멀쩡하던 동산에 괜히 파이프를 올려 인공폭포랍시고 물을 내려뜨리고 우스꽝스럽게 복원한 물레방아와 조악한 나룻배 옆으로는 유치찬란한 조명과 함께 틀어놓은 음악분수가 용을 쓰는데, 인상 쓰며 얼른 그곳을 지나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저 좋아라 분수 앞에 모여 구경을 한다. 처음엔 거의 매일 돗자리까지 싸들고 나와 음악분수를 구경하는 인파가 상당했다. 아직 복원이 끝나지 않아 더러운 물비린내가 풀풀 나는 개천변 산책로라도 없었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서 무얼 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월드컵공원 인공호수 주변에도 삼삼오오 밤마실 나와 돗자리 깔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났다. 가보진 않았어도 한경둔치 역시 같은 풍경이었을 거다. 휴일날 사람들로 빽빽하게 뒤덮힌 한강 둔치를 보면, 사람들이 원래 물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공원 같은 휴식처를 미치도록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드라마만 봐도 주인공들이 걸핏하면 한강 둔치에 서서 고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무작정 거니는 장면을 빠뜨리는 드라마가 거의 없는 지경이니, 방송 쪽에서도 한강 둔치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멋대가리 없이 뚝 자른 듯 시멘트로 싸발라놓았을망정.
이제 또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고 한강변도 죄다 파헤쳐놨던데 말만 그렇지 은근슬쩍 또 여기저기 시멘트로 발라놓을 게 뻔하다. 그나마도 좋다고 날마다 산책나가고 자전거타고 돗자리 들고 소풍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또 생색내는 놈한테 잘한다고 박수쳐주겠지. 느루와 바람을 쏘이러 나간 마당임에도 심히 뒤틀린 심사로는 곱게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쨌거나 느루를 타고 느낀 밤바람 덕분에 오래 된 압력솥은 어제 또 폭발의 위험을 살짝 넘기고 열이 식었지만 아직도 안전한 배출용 밸브를 마련해볼 방법은 요원하고 그래서 오늘도 쉽사리 푸르르 푸르르 끓는 소리를 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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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낙서질

놀잇감 2009. 4. 14. 00:09

어젯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또 낙서질을 했다. 당연히 낙서질 하면서는 기분이 좋았고 행복해져 자랑용 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은 벌써 그 효과가 확 떨어져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종일 왕비마마와 냉전중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화가 나면 나는 아예 말을 하기가 싫고 누구와도 상종하기 싫어 혼자 있어야 침묵 속에 서서히 화가 풀린다. 화 났을 때 말을 하면 어떤 폭언을 하게 될지 나 자신도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자꾸만 말을 시키면 더욱 화가 치민다는 사실을 왕비마마는 도대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집안에 겨우 둘 뿐인데 말 안하는 게 제일 싫으시다나. 그러면 나는 갑자기 좀머씨가 된 것 같다. "그냥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암튼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을 어떻게든 되살려볼 요량으로, 시방 낙서질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방편은 이렇게 속좁음을 여기에라도 고백하고 민망한 자랑질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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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놀잇감 2009. 4. 12. 17:20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하며 몰던 차는 <무려> 수동이었다. 그땐 면허증을 딸 때 수동, 자동 구분없이 무조건 수동으로만 따야했고, 지금보다 <스틱>이라고 부르는 수동 변속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자동은 기름값이 많이 든다고 해서 소형차들은 웬만해선 다 수동으로 뽑았으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 기름값이 워낙 싸기도 했겠지만, 나의 첫차인 프라이드FS로 나중에 안산까지 출퇴근을 하느라 매일 꼬박 왕복 100km를 달릴 때에도 한달 기름값이 단돈 7만원이었던 걸 기억한다. 지금은 꽉 채워서 기름 한번 넣으려 해도 7만원이 더 드는데. ㅠ.ㅠ
내가 처음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던 때의 직장은 삼성동 코엑스였기 때문에 꽤 먼 거리였고, 시내를 가로지르든,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를 타든 초보운전자인 나에겐 난코스였다. 주말에 사촌동생과 몇번 시험운행을 해봤음에도, 처음 혼자 차를 몰고 출근하는 날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한 나는 하필 강변도로에서 사고를 낸 버스 뒤에서 차마 옆으로 끼어들지 못해 낑낑대며 계속 서 있느라 30분쯤 허비하는 등 온갖 삽질을 거쳐 9시가 다 돼서야 코엑스에 당도했고, 그나마도 양옆에 아무 차도 없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느라 드넓은 옥상 주차장(초보시절 코엑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사무실 못 찾아갈 것 같았다)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전날 일요일에 사촌동생과 출근 예행연습을 할 땐 당연히 허허벌판이던 주차장이 출근시간 임박했을 땐 꽉 차있는 게 당연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머나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헐레벌떡 달려가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총무과장이 얼른 집에 전화부터 하라고 일렀다. 물론 그땐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첫 출근을 무사히 했는지 엄마한테 보고를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7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선 내가 9시 다되도록 연락이 없자 식겁한 울 엄마가 여러번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

얘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는데, 암튼 나는 손수 예쁘게 쓴 <초보운전> 표시를 최소한 6개월은 달고 다닐 작정이었다. 막힌 길에서 조금씩 전진하느라 클러치를 밟은 왼발이 끊어질 듯 아파와도 그럭저럭 잘 나가다 뒤에서 괜히 빵빵거리면 당황해 덜컥 시동을 꺼먹거나 언덕만 나타나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초보시절, 그나마도 초보 딱지를 달고 버벅거리면 베테랑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거나 더러 착하게 양보를 해주는 일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선 <초보운전> 표시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매일 출퇴근하니 감각도 금세 익힐 텐데 뭘 6개월까지 다느냐고 놀렸다. 지금 기억으론 아마 4개월 정도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다, 꽉 막히는 언덕길에서 섰다 가야했을 때 뒤로 밀림의 정도가 내 나름대로 쓸만하다 싶어 흔쾌히 초보 표시를 떼냈던 것 같다. 하지만 표시만 뗐을 뿐이지, 갑자기 옆으로 거대한 트럭이 달려든다든지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튀어나온다든지 급정거를 해야할 때 심장이 벌렁거리며 핸들이 흔들리는 초보증상은 그 뒤로도 몇달은 지속되었다.
어제 거의 반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새삼스레 까마득한 그 시절이 떠올랐다.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던 어리숙한 나의 운전솜씨와 지금의 자전거타기 실력이 비슷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는 이륜차라나 뭐라나 자동차에 해당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하여간 어제 내가 깨달은 자동차와 자전거 초보운전의 공통점은 이렇다.
1)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오거나 진로가 막히거나, 빠르게 옆으로 지나치는 다른 자전거를 만나면 여지없이 당황해 핸들이 흔들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 앞지르기를 할 때 얼만큼의 속도와 여유 거리가 필요한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3) 급회전은 당연히 무리고, 천천히 회전할 때도 얼만큼의 회전각도가 안전한지 자신이 없다.
4) 언덕길과 평지에서 기어변속이 서툴다.
5) 꽤 오래 공백기를 두면 그나마 익혀둔 운전감각이 떨어진다.
6) 베테랑 운전자들의 조롱섞인 위협과 앞지르기를 감내해야 한다.
7) 정신 흐트러질까봐 운전(특히 주차중엔!)하며 음악을 못 듣는다. ㅋㅋ
^^;
그나마 수동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당황해도 시동은 안 꺼먹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어젠 정말 조심조심 느루를 몰았다. 어려서부터 탔으니 자전거를 탄 역사는 무려 30년이고, 자동차 운전의 역사 또한 그 절반이 넘는 18년인데 자전거는 중간에 공백기가 너무 길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자전거에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운전을 하다보면 굳이 초보 딱지를 붙이지 않았더라도 척 보면 초보 운전인 걸 알 수 있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오듯 베테랑 자전거족들에겐 나 같은 초보 자전거족이 한눈에 파악될 것도 같다. 사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옛날 내 눈엔 유독 <초보운전> 표시를 붙인 자동차들이 많이 보여 괜한 동질감을 느꼈듯이 어제도 내가 보기에 초보 자전거족인 사람들은 대강 찝어낼 수 있을 듯했다. 초보 주제에 내가 앞지르기를 해야할 정도로 왕초보인 이들도 더러 있었을 정도!

무슨 일에든 서툴고 긴장되는 처음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참 쉽게 잊는 것 같다. 옛날에 <당신도 한 때는 초보였다>라고 쓴 초보운전 글귀가 유행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초보운전> 표시를 보는 일조차 드물어진 듯하다. 자동 변속기 운전면허가 생겨나고 도로주행까지 시험 과목에 들면서 다들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일지, 괜히 <초보운전> 표시를 붙여 무시당하기 싫은 자존심 강한 초보들이 많아진 때문인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매사에 초심을 무시하는 풍조가 대세인 건 확실한 느낌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나 같은 사람이나 초심을 다잡을 수밖에 없는 초보임을 강조하며 사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반년만에 나는 다시 자전거 초보 인생을 시작했고, 작년의 행태를 봐서는 내년 이맘때도 어리버리한 자전거초보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전거를 타고 느끼는 싱그러운 바람결이야 초보든 베테랑이든 똑같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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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놀잇감 2009. 4. 10. 21:27

느루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산책로 군데군데에 자전거 바람 넣는 도구가 설치되어 있지만, 보통 주입구론 느루에 바람을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어찌나 좌절했던지.
완전히 바람이 빠진 상태라 질질 끌고 가거나 차에 싣고 가야 바퀴에 바람을 넣을 수 있다는 걸 핑계로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두운 골방 구석에 처박아놓기를 몇달. 먼저 펌프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바람을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어떤 주입구가 맞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레 걱정이 들어 최상책은 자전거를 산 가게에 싣고 가서 흙받이도 달고 펌프도 사고 바퀴에 공기도 주입하고 몇번 안타긴 했지만 전체적인 점검도 받으리라 별렀었다. 그러고는 오늘 저녁, 밥을 워낙 일찍 먹은 바람에 아직 훤한 하늘을 본 순간 에라 모르겠다 충동적으로 양평동까지 느루를 싣고 다녀왔다!
바퀴에 바람이 하나도 없는 걸 설마 타고 오진 않았겠죠!라고 외치는 사장님에게 절대 아니라고 변명을 하면서도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렇게 바람빠진 바퀴에 올라타고 자전거를 몰았다간 바퀴 다 찢어진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규~.
아무려나... 모든 종류의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펌프도 사고, 하필 가게에서 떨어져 장렬히 전사한 라이트(자전거 살 때 공짜로 받은 거였다)도 새끈한 걸로 하나 새로 사고, 흙받이도 달고, 귀여운 인형도 하나 사고... 자전거값의 절반에 달하는 돈을 쓰고 돌아왔다. ㅋㅋㅋ 그나마도 원래 흙받이를 다는 공임 만원을 따로 받아야하는 건데, 사장님이 그건 안받으시겠다고 해서 고맙고 죄송했다. 만원 깎아주신 고마움으로 자전거 가게 광고나 해드려야지(겨우 만원 깎아준 것 같고 웃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물건 살 때 절대 못깎고, 또 깎아준다고 해도 내심 불편하다. 얼마나 바가지를 씌웠길래 깎아준다고 하는 걸까 싶어서.. -_-;; 그래서 정찰제를 선호함. 근데 이번엔 정찰 가격에서 깎아주신 거고, 처음에 자전거 살 때도 다들 주는 거라고는 해도 라이트, 미등, 물통꽂이도 거저 받았기 때문에 옛날에 받은 친절까지 합해서 고마웠던 것임). 상호는 RMP 스포츠이고 다혼에서 나오는 각종 미니벨로와 루이가노, 브롬톤은 물론이고 산악자전거도 종류별로 많은 것 같았음. 양화대교 건너서 직진하다가 경인고속도로 고가 밑에서 유턴하면 되는데, 건물 뒤에 주차장도 있어서 굳이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게 난 좋더라. 자전거를 타보니 주변기기며 악세사리들은 또 왜 그리 많은건지, 사실 점검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 뒤에 다는 예쁜 가방도 지를까말까 몹시 고민을 했는데, 애써 참았다.
이젠 바퀴에 바람빠져서 자전거 못탄다는 소리는 절대 못하게 됐으니 슬슬 저질체력 좀 단련해보려나...
이런 얘기는 얼른 만방에 알려야 주변의 압력으로라도 느루에 콧바람을 쐴 것 같아 돌아오자마자 득달같이 적고 있다. 내일은 드디어 꽃길 한판 달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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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

놀잇감 2008. 10. 23. 21:54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분전환에 효과적인 나만의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쉬운 건 무작정 외출해서 아무 카페나 들어가 맛있는 커피 마시기.
작업실이 있을 땐 도망치듯 차를 몰고 그곳으로 숨어들어 싸늘하거나 푹푹찌는 매캐하고 낯선 공기와 정적 속에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공간이 없어졌으니 뭐...
제아무리 브리카 모카포트와 내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허락하는 행복과 여유에는 어딘가 한계가 있다. 집이 아니라는 공간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신선함도 있거니와, 더욱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준 수고가 덧붙여진다고 생각하면 커피가 더욱 그윽할 수밖에.
문제는 작업실로  도망칠 땐 무릎 나온 추리닝에 사흘째 안감은 머리나 눈꼽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스카프로 칭칭 동여매면 그만이지만, 카페를 찾아 나갈 땐 아무래도 씻고 치장(?)하는 번거로움이 필수인데 몹시 귀찮아 자주 할 짓이 못돼서 그렇지 오히려 기분전환의 효과는 더 크다.
책한권 들고 나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리필해달래서 더 마시는 동안 몇 페이지라도 읽고 들어오면 마치 대단한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겉치레 탐서가인 척 하는 것도 큰 묘미.

그런데,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하필 충동적인 외출이 여의치 못한 오밤중이라면?
그럴 땐 여지없이 인터넷쇼핑이 묘약. ^^
즐겨찾기에 들어 있는 몇몇 사이트(주로 문방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마구 담았다가 장바구니까지 담은 뒤 진지한 고민을 거쳐 조용히 로그아웃 하고 나올 때가 더 많지만 ^^
그렇게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기간이 오래된 <완소> 물품들은 배송비무료 금액에 도달할 때까지 마냥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사들이며 희열을 느낀다.
요번엔, 뼈다귀모양 포스트잇(포스트잇은 종류별로 사들여도 왜 끊임없이 욕심이 나는 걸까 -_-;;), 뼈다귀모양 이어폰줄 정리기(정민공주 주려고), 재생신문지로만든 연필, 연필깎이, 포스트잇처럼 쓸 수 있는 마스킹 테이프, 옷감전용 마커세트(!), 실험용 민무늬티셔츠를 장만했다.
오밤중에 쇼핑하고 나서 잠든지 얼마 안된 아침, 이내 택배배송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을 때의 미묘한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알리라.
웬만해선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물건들(그야말로 '질러댄' 가방이나 옷)은 나중에 괜히 죄책감도 들고 없어도 될 물건이라는 생각에 떳떳하게 자랑하지 못하는 데 반해 문방구류는 상자 가득 쟁여놓고 있어도 죄책감은커녕 더욱 욕심만 늘어가니 참, 나의 문방구류 열망은 고질병이다.  

워낙 게으른데다 어쩐지 큰 낭비 같은 느낌이라, 카페 외출만큼 자주 할 수는 없지만 미용실 외출도 기분전환엔 아주 그만이다. 예전엔 워낙 소심하기도 했고(더러운 머리를 남에게 맡길 순 없다;;고 생각했음) 최대한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미용사를 만나야 나한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괜한 노파심이 작용해서 벼르고 별러 머리 손질을 하러 갈 때도 일부러 미리 머리를 감고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요샌 오래 별렀든 충동적으로 결심했든 미용실에 갈 땐 그냥 꾀죄죄한 모습으로 더럽고 엉킨 머리칼이 정 민망하면 모자를 질끈 눌러쓰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러고는 퍼머를 하든 그냥 머리끝만 살짝 다듬든, 샴푸실에서 느긋하게 기대앉아 다른 사람이 감겨주는 손길에 머리칼을 맡기고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거다.
사실 나는 빠져 있는 상태의 머리칼(머리에 붙어 있는 머리칼은 상관없다^^)에 대해 약간 우스운 공포감 같은 게 있어서 봄가을 환절기에 특히 머리를 감을 때 한꺼번에 와장창 빠져나온 본인의 머리칼을 보고도 섬뜩해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온종일 남의 머리를 감겨주며 손가락에 마구 엉겨붙는 머리칼을 견뎌야하는 미용실 보조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특히 수채구멍에 모여있을 빠진 머리카락들을 생각하면 정말 무섭다 ㅠ.ㅠ) 그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머리 감겨주기>에 대한 나의 아련한 로망은 아마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 야영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고풍스러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뒤로 젖혀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 장면이 어찌나 로맨틱한지... @.@
(물론 가끔 엄마 머리를 감겨드리면서도 빠진 머리칼 때문에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내쪽에서 <로맨틱한 머리 감겨주기>는 불가능하다!ㅋㅋ)
그 영화를 보았을 즈음에만 해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게 그리 조심스럽거나 정성스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긴다기 보다는 그저 송구한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고 견뎌내야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의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지면서 머리만 감겨주는 게 아니라 나중엔 시원하게 두피마사지도 해주니,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때 괜히 머리를 다듬으러 가서 남의 손에 샴푸를 맡기는 게 나로선 가끔 누리는 사치이자 기분전환의 기회가 되었다.
어떤 일본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순전히 기분전환으로 머리만 감으러 미용실에 가는 내용이 있어서 몹시 공감하며 우리나라에도 가벼운 두피마사지랑 머리만 감겨주는 서비스가 도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_+

마지막 기분전환 비법은 뭔가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리폼하기.
지난번 바느질로 쿠션을 만들어 본 이후로 수건을 썩썩 잘라 숭덩숭덩 꿰매서 솜을 넣고 뭔가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바람에 그간 마우스 손목받침대를 두개나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하나는 반달 모양으로 대충 꿰매 내가 쓰고 있고(책상 사진 어딘가에 선을 보였을 법도 한데;;), 하나는 곰돌이 모양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정민공주에게 주었는데 점점 뭔가 더 복잡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나 고민하고 있다.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퀼트 같은 거에 심취하면 번역은 완전 뒷전으로 나몰라라 하고 만날 바느질만 하고 앉아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애써 피하는 중이지만, 뭔가를 조물조물 오리고 꿰매 만드는 행위가 퍽 즐거움을 느낀다.
<수면의 과학>을 특히 좋아하며 봤던 이유도 끊임없이 예쁜 소품을 만드는 스테파니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스테판에게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전체에 나오는 아날로그풍의 기발한 소품들도 당연히 사랑스러웠고. 
역시 지난번에 심심하기도 하고 자전거 티셔츠도 입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손수 시도해보았으나 무식하게 네임펜과 유성매직으로 그리는 바람에 죄다 번지거나 지워지기는 했지만, 티셔츠 낙서질에 맛을 들인 나는 <패브릭전용 마커>를 오래 눈독들여왔고 얼마전 문방구쇼핑 때 전격 장만하여 앞으로 끝없는 티셔츠 낙서질에 탐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미 두번째 장난질은 성공(?)을 거두었고, 아직 빨아보진 않았지만 다림질 후엔 절대 안지워진다는 제품을 믿어보기로 했다. 
원래 티셔츠 한 장은 실험용으로 시도해보고 괜찮으면 한 장 더 그려서 선물하려고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으며, 나름대로 도안도 고민하고 실패를 교훈삼아 얇은 티셔츠가 펜과 함께 늘어나지 않도록 천 안쪽에 테이프를 붙여 그리는 묘안도 생각해내는 등 흥미진진한 과정이었으니, 낙서질을 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희희낙락 즐거워했을지는 실토하지 않아도 뻔한 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낙서질 티셔츠는 두장 다 내가 입기로 했다. ^^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 티셔츠는 많이 미흡하지만 정말로 선물하려고 했는데 포장하려고 보니, 티셔츠 봉제 자체가 불량이라 소매 연결부위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젠장. 그림 그리기 전에 봤어야 교환을 해달라고 하지, 실컷 낙서하고 났으니 교환도 못하고 그냥 내가 꿰매서 입는 수밖에.

흠...
물론 그밖에도 당연히 친구들 만나 수다떨기, 조카들이랑 신나게 놀기, 전시회 가기, 여행, 고궁 거닐기... 등의 기분전환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굳이 위의 방법들을 거론한 건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시시콜콜 적다보니 역시 가장 쉽고 친근한 기분전환은 블로그질임을 깨달았다.
비록 그 효력이 이젠 찰나에 사그라드는 것 같긴 하지만, 찰나가 모여 영겁이 되듯 계속되는 블로그질로 내 기분은 두둥실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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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커피

놀잇감 2008. 7. 26. 16:14
사람마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되는 분야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연습하면 조금이라도 실력이 나아진다는 건 분명 삶의 동력이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채근과 욕심을 유발하는 짜증스러운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자전거 타기 같은 것.
조금씩 자전거 타는 거리를 늘이다 드디어 집앞에서 한강까지 진출하게 된 것을 기뻐한지 몇달 됐는데
한강 자전거도로까지 가는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하지만 새로이 대두된 문제는 지구력이다.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산책객들을 피하느라 잠깐씩 멈춰설 때도 있음에도 30분을 넘기면 어느새 다리가 팍팍해 더 달리기가 겁이 난다. 갈 때보다 당연히 더 힘든 올 때를 위해 체력을 남겨두어야한다는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고작 한 시간의 자전거 타기로 녹초가 되는 몸을 지니고 산다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물론 첫날 느루를 끌고 나갔다가 동네망신을 당했던 때와 비교한다면 일취월장했다고 뿌듯해할 수 있지만, 하나같이 슝슝 나를 추월해가는 자전거들의 뒤꽁무니를 보며 버럭 치미는 부아와 욕심은  아직 멀었다고 나를 채근한다.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다.
다른 구석의 느긋한 마음은 나를 다독인다. 자전거 타기에 목숨걸 일 있니. 그냥 즐겁고 신나게 타면 되는 거야. 자전거 탈 때도 경쟁심을 발휘해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다른 인간들이 우스운 거란다, 라고.
그럼 또 다시 욕심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야, 그래도 운동이랍시고 타는 자전거를 겨우 1시간만에 빌빌대는 저질 체력은 좀 곤란한거 아니니?
곤란한 거 안다. 그런데 힘든 걸 어쩌라고!
^^

맛있는 커피 만들기도 비슷하다.
급기야 숭례문수입상가에 가서 수동 그라인더와 전동거품기를 장만해 본격적으로 집구석바리스타 시늉에 돌입한지 일주일째. 확실히 커피집에서 원두 살 때 아예 갈아온 커피보다는 비록 몹시 오래되어 변압기를 연결해야 하는 110V짜리 전기그라인더로 그때그때 갈아 만들어 먹는 커피가 맛있고, 그보다는 수동 그라인더로 브리카 포트에 맞는 입자로 갈아서 추출한 커피가 크레마와 향도 풍부하여 훨씬 맛있다.
당연히 유난떨며 만들어 마시는 커피의 종류 늘어났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이스카페라떼. *_*
기구들이 손에 익어 이젠 꽤 그럴싸한 맛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마다 꺅꺅 감동하며 자화자찬을 하게 되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못말린다 정말).
별다방 콩다방 커피 못지 않다고 추켜세우는 분위기에 편승한 나는 급기야 날이 좀 더 더워지면 얼음과 함께 갈아서 프라프치노를 만들어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으며, 아직은 계피가루가 없다는 핑계로 시도를 안 한 카푸치노는 조만간 성공을 거둘 것이라 확신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지구력과 집착.
통틀어 30분이면 족한 준비과정이긴 하지만 매번 원두를 갈고 그라인더와 주전자, 거품기, 우유그릇 (프라프치노를 만들게 되면 믹서까지!) 를 씻어 치우는 일은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겐 꽤나 번거로운 과정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그라인더를 매번 물로 닦기도 그렇고 안닦기도 그러니 대안은 또 다른 도구를 사들이는 것이라 여기며 커피 그라인더 청소 전용 '솔'을 사야한다는 충동을 요즘 계속 느끼고 있으며, 카푸치노에 넣을 우유거품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는 전용 비이커도 사야할 것만 같은 느낌.
계속 이 추세로 나가다간 커피 아트 독학하겠다고 온갖 도구를 사들일지도 모르겠다. -_-;;
그리고 그렇게 죄다 사들인 다음엔 또 금세 집착과 번거로움이 넌덜머리나 확 집어치울지도.

확실히 연습과 발전은 삶의 재미인데, 내 경우는 쓸데없이 집착하는 욕심과 앞서 염려하는 조바심이 흥을 망친다. 무슨 일이든 그냥 신나고 행복하면 그만인데 그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늘 참 어렵기만 하다.
암튼 이렇게라도 적어두면 욕심과 집착에 브레이크가 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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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낙서질

놀잇감 2008. 7. 13. 14:54
얼마전 습관처럼 구경다니던 문방구 사이트에서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예쁜 티셔츠를 발견했었다.
냉큼 사고 싶었지만, 요새 인터넷에서 파는 옷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옷 치수가 너무 작았다.
요즘 몸짱을 추구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몸에 딱 붙는 옷을 입는 걸 즐긴다지만, 어떻게 여름 티셔츠를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편하게 입을 만한 치수로 내놓고 <프리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지 참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나는 자전거 티셔츠를 입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인데, 헬멧 쓰고 쫄윗도리 쫄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는 이들과 달리 그저 편하고 넉넉한 티셔츠와 반바지가 더 좋은 걸 어쩌랴.

일단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밀자 온갖 쇼핑몰을 다 뒤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자전거 티셔츠를 찾기에 이르렀지만, 그리 쉽진 않았다.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가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면 티셔츠 모양이 너무 드레시하거나 엄청 파여 내가 바라는 기본 티셔츠가 아니었고, 어렵사리 하나 찾아서 기뻐하며 주문을 하려면 품절이었다. +_+

결국 나의 결론은?
반쯤 미친짓이라 여기면서 갖고 있는 티셔츠에 자전거를 그리기로 했다!
처음 반했던 자전거 티셔츠가 밤색이었기 때문에 일단 갖고 있는 밤색 티셔츠에 무작정 유성 네임펜과 매직으로 자전거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델은 물론 거실에 서 있던 나의 느루. ^^*
내 솜씨론 당연히 느루의 앙증맞은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처음이라 그림을 앉힌 위치도 어설퍼서 좀 웃기기는 했지만, 일단 <자전거 티셔츠>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은 나머지 어설픔과 민망함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과연 네임펜이 세탁을 견딜 것인가 일단 입어보기도 전에 세탁기에 돌려 확인을 해보았더니 하하하...
얇게 그린 나무와 길바닥은 절반쯤 지워졌지만, 자전거 그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첫 자전거 티셔츠를 만든 것이 한 일주일 쯤 전.
원고 마무리 하느라고 눈이 빨개졌던 주제에 잠시 잠 쫓으려는 욕심으로 그렸던 자전거 티셔츠를 입어보니 더 욕심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어젯밤. 갖고 있는 네임펜 색깔도 그리 다양하지 않은데 다른 색 티셔츠에도 낙서질이 하고 싶어졌고, 이번엔 자전거 그림을 제대로 옷 중앙에 잘 앉혀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는 확실히 처음 그린 자전거보다 수평도 맞는 듯하여 뿌듯함이 밀려들었고
이왕 시작한 거 티셔츠 한 장 더 망치는 셈 치고 다른 그림도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싯적에 친구들한테 쪽지나 편지 보내면서 많이 그렸던 동그란 얼굴 그림이 떠올랐던 것.
그러나 자전거보다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얼굴 그림은 그려놓고 보니 더 어설프고 별로 안 예뻤고, 손모양도 엉뚱한 곳에 그리는 바람에 기형이 되고 말았지만 집에서 입으며 즐거워하기엔 손색이 없다고 믿기로 했다. ^^; 누가 뭐래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티셔츠의 주인이 되는 기분은 참 그럴듯하다.

어젯밤 이후 옷에 하는 낙서질에 한참 맛을 들인 터라 또 어떤 티셔츠를 망쳐볼까 자꾸 충동이 일고는 있지만,
이젠 그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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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거실 한 구석에 놓여있기만 한지 한달이 넘은 느루.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땐 당연히 탈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간병무수리 모드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느루를 사랑해주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동안 외면당했던 느루가 외롭긴 외로웠나보다.
조금 전 냉장고를 열러 가는데 핸들로 내 옆구리를 세게 쳤다.
아야~!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소할 때마다 먼지는 닦아주었는데, 느루가 원하는 건 그 정도 관심이 아니다.
달리고 싶은 것이겠지.
며칠 전 처음 싫다는 엄마를 억지로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 홍제천으로 산책을 나가며 느루를 데려갈까 생각했었지만 걷는 것도 겁내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려면 느루까지 건사할 여력이 없을 터라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의 어머니는 밤샘 작업에 힘쓸수록, 원고마감에 쫓길수록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7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체중과 온갖 지병을 갖고 계신 울 왕비마마와 달리 그분은 젊기도 하시려니와 나보다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신 터라, 몹시 찔렸는데 그런 고언을 들을 때마다 운동해야지 마음먹은 결심은 늘 그 순간 뿐, 휘리릭 뇌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오늘도 느루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자기의 존재 이유가 거실 인테리어가 아니라 달리는 것임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또 원고마감을 핑계로 한동안 나몰라라 했을 것이다.
흠... 마의 6월도 지나갔겠다, 7월도 열렸겠다 한번 달려볼까나 하는 마음이 들긴 하는데 과연 이따가 저녁땐 또 어떤 변덕이 마음을 차지할지 모르겠다.
느루는 달리고 싶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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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밤마실

놀잇감 2008. 5. 11. 23:02
열불나는 속을 잠재우러 <느루>를 끌고 밤마실에 나섰다. 마치 느루가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일단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머리도 복잡한 김에 떠오르는 대로 세웠던 오늘의 목표는 세가지.
첫째, 인간이나 애완견 장애물이 출몰하더라도 유연하게 우회하여 자전거 급히 세우고 내리지 않기.
둘째, 벨 울리지 않고 속도 조절만으로 장애물 피해가기.
셋째, 홍제천에서 월드컵 공원 가는 길 숙지하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목표달성에 성공한 건 하나밖에 없다. ^^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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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후유증

놀잇감 2008. 4. 30. 20:37
어제 영화 포스팅을 마무리 하느라 미처 쓰지 못했지만...
사실 어제는 나와 <느루>가 홍제천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달려간 역사적인 날이었다! ^^
한강까지 꼭 가겠다는 계획은 없었고 그냥 살살 달리다가 힘들어질 때까지 가보자 생각했는데
달린지 30분도 되기 전에 한강이 눈앞에 나타나는 바람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고 미리 계획을 세웠던 게 아니라 한강 북단의 자전거 도로와 맞닥뜨린 순간 나도 모르게 끼기긱 브레이크를 잡았다.
왼쪽으론 바로 성산대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월드컵공원으로 이어진다는 표지판을 보며 갈팡질팡 하던 나는 일단 성산대교 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가다가 성산대교 아래 쪽 계단에 앉아 느루와 팍팍해진 다리를 쉬었다.

사실 홍제천변 산책로는 초록 아스팔트가 깔려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기엔 좋지만, 경치 좋은 안산을 끼고 있는 일부 구간을 빼면 죄다 내부순환도로 고가 밑을 어둠침침하게 달리다 계속 다리 밑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그리 쾌적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야간에도 한강변의 뻥 뚤린 공간을 슝슝 자전거로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막 힘이 나는 것도 같았는데 운동부족이 여실한 내 몸은 30분 가까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은 것만으로도 아우성을 쳐댔다. 해서 물 몇 모금 마시고는 다시 갔던 길을 돌아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갈때는 25분만에 주파했던 길을 돌아올 때는 약간의 오르막이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30분이나 걸린 걸 보면 남들에겐 우습더라도 나에겐 운동량이 꽤 됐다는 의미인 듯했다. 원래 초행길은 어리버리 둘러보느라 더욱 멀게 느껴지는 법이거늘, 나는 오히려 홍제천변을 거슬러 올라오며 왜 이렇게 머냐... 하는 생각을 두번이나 했더랬다. -_-;;

나같은 초보에겐 약간 위험할 수도 있는 경사와 굴곡이 중간에 몇번 있기도 했고, 홍제천을 가로지를 때는 잘난 척 속도를 덜 줄였다가 흙이 깔린 모퉁이에서 미끄러질 뻔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으나 다행히 넘어지거나 하는 사고는 없었던 반면, 어찌 보면 재미있고 어찌 들으면 민망한 일도 두가지나 겪었다. ^^


두번째 야간 자전거 타기를 마치고 느루를 끌고서 집앞 언덕길을 올라오며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오늘 온종일 허벅지와 장단지가 찌릿찌릿 묵직하니 결리는 건 참을 만한데, 으으... 민망하게도 안장에 시달린 가랑이도 꽤나 아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_+

일주일에 세번씩 타겠다는 오만한 작심을 지키기는 커녕 거의 열흘만에 다시 타러 간 주제에 후유증이라니. 다른 토룡마을 주민들은 몇시간씩 가열차게 자전거를 타고도 끄덕없는 듯한데 나는 언제나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지 갈 길이 참으로 멀고 험난해 보인다. 쩝...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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