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커피

놀잇감 2008. 7. 26. 16:14
사람마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되는 분야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연습하면 조금이라도 실력이 나아진다는 건 분명 삶의 동력이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채근과 욕심을 유발하는 짜증스러운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자전거 타기 같은 것.
조금씩 자전거 타는 거리를 늘이다 드디어 집앞에서 한강까지 진출하게 된 것을 기뻐한지 몇달 됐는데
한강 자전거도로까지 가는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하지만 새로이 대두된 문제는 지구력이다. 전속력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산책객들을 피하느라 잠깐씩 멈춰설 때도 있음에도 30분을 넘기면 어느새 다리가 팍팍해 더 달리기가 겁이 난다. 갈 때보다 당연히 더 힘든 올 때를 위해 체력을 남겨두어야한다는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고작 한 시간의 자전거 타기로 녹초가 되는 몸을 지니고 산다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물론 첫날 느루를 끌고 나갔다가 동네망신을 당했던 때와 비교한다면 일취월장했다고 뿌듯해할 수 있지만, 하나같이 슝슝 나를 추월해가는 자전거들의 뒤꽁무니를 보며 버럭 치미는 부아와 욕심은  아직 멀었다고 나를 채근한다.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뿐이다.
다른 구석의 느긋한 마음은 나를 다독인다. 자전거 타기에 목숨걸 일 있니. 그냥 즐겁고 신나게 타면 되는 거야. 자전거 탈 때도 경쟁심을 발휘해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다른 인간들이 우스운 거란다, 라고.
그럼 또 다시 욕심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야, 그래도 운동이랍시고 타는 자전거를 겨우 1시간만에 빌빌대는 저질 체력은 좀 곤란한거 아니니?
곤란한 거 안다. 그런데 힘든 걸 어쩌라고!
^^

맛있는 커피 만들기도 비슷하다.
급기야 숭례문수입상가에 가서 수동 그라인더와 전동거품기를 장만해 본격적으로 집구석바리스타 시늉에 돌입한지 일주일째. 확실히 커피집에서 원두 살 때 아예 갈아온 커피보다는 비록 몹시 오래되어 변압기를 연결해야 하는 110V짜리 전기그라인더로 그때그때 갈아 만들어 먹는 커피가 맛있고, 그보다는 수동 그라인더로 브리카 포트에 맞는 입자로 갈아서 추출한 커피가 크레마와 향도 풍부하여 훨씬 맛있다.
당연히 유난떨며 만들어 마시는 커피의 종류 늘어났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이스카페라떼. *_*
기구들이 손에 익어 이젠 꽤 그럴싸한 맛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마다 꺅꺅 감동하며 자화자찬을 하게 되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못말린다 정말).
별다방 콩다방 커피 못지 않다고 추켜세우는 분위기에 편승한 나는 급기야 날이 좀 더 더워지면 얼음과 함께 갈아서 프라프치노를 만들어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으며, 아직은 계피가루가 없다는 핑계로 시도를 안 한 카푸치노는 조만간 성공을 거둘 것이라 확신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지구력과 집착.
통틀어 30분이면 족한 준비과정이긴 하지만 매번 원두를 갈고 그라인더와 주전자, 거품기, 우유그릇 (프라프치노를 만들게 되면 믹서까지!) 를 씻어 치우는 일은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겐 꽤나 번거로운 과정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그라인더를 매번 물로 닦기도 그렇고 안닦기도 그러니 대안은 또 다른 도구를 사들이는 것이라 여기며 커피 그라인더 청소 전용 '솔'을 사야한다는 충동을 요즘 계속 느끼고 있으며, 카푸치노에 넣을 우유거품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는 전용 비이커도 사야할 것만 같은 느낌.
계속 이 추세로 나가다간 커피 아트 독학하겠다고 온갖 도구를 사들일지도 모르겠다. -_-;;
그리고 그렇게 죄다 사들인 다음엔 또 금세 집착과 번거로움이 넌덜머리나 확 집어치울지도.

확실히 연습과 발전은 삶의 재미인데, 내 경우는 쓸데없이 집착하는 욕심과 앞서 염려하는 조바심이 흥을 망친다. 무슨 일이든 그냥 신나고 행복하면 그만인데 그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늘 참 어렵기만 하다.
암튼 이렇게라도 적어두면 욕심과 집착에 브레이크가 걸리겠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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