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7.06.15 불편한 미용실 언어? 6
  2. 2016.12.28 까탈스럽다, 주책이다 2
  3. 2016.05.19 몰랐다 7
  4. 2014.12.17 이번엔 삐지다, 딴지.. 3
  5. 2011.08.31 드디어 짜장면! 11
  6. 2011.08.12 사이시옷이 기가막혀 10
  7. 2011.02.24 입때 16
  8. 2011.02.17 구세대 20
  9. 2011.01.02 '-대'와 '-데' 10
  10. 2010.09.13 파란 사과 5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석달만에 미용실엘 다녀왔다. 3월중순인가 말에 갔었으니 꼬박 석달만이다. 머리가 단발을 훌쩍 넘어, 요즘 같은 더운 날엔 질끈 묶지 않고는 목덜미에 치렁치렁 간질간질 아주 괴로웠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못 견디고 달려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그런 순간을 조금만 견디면, 아니 그럴 때 앞머리만 내손으로 살짝 잘라주기만 해도 또 한두달은 너끈히 참고 버틴다. 미용실에서 멍하니 몇시간씩 기다려야하는 게 너무도 힘겹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인데... 그런 힘겨운 시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친하지도 않은데 어색하게 이어가야 하는 대화와 더불어 요즘 미용실에서만 쓰이는 듯한 특별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다.

맨날 뭘 그렇게 도와드리겠다는 거냐!

주로 보조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쓰는 말인데... 자기가 행동 주체인데도 계속 도와주겠다고 말을 한다. ㅠ.ㅠ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운 착용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실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대 (착용이라고 그랬던가? 샴푸하는 동안 눈에 작은 수건 같은 걸 얹어주겠단 얘기다) 어쩌구...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사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 마무리 도와드리겠습니다. 

타월 드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시)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20분 뒤에 컬러 체크 도와드리겠습니다.... 으악! 그만 좀 하라고! 도와주긴 뭘 도와줘!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되잖아!...라며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 담당인 원장님은 카리스마 덕분인지 저런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엔 머리에 시술하는 모든 내용과 절차를 소비자에게 통보하는 게 상도의인지 그냥 처음에 설명했으면 그대로 묵묵히 순서대로 하면 좋겠구만, 두피 상태를 확인하겠다(소형 특수 카메라로 찍어서 막 보여준다. ㅠ.ㅠ) 스켈링을 하겠다, 세럼을 바르겠다....계속 과정을 설명한다. 때때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네. 네 그럴 때가 많다. 대답 안하면 또 한번 더 말해주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고.. ㅠ.ㅠ  

언젠가 포스팅에도 커트 잘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괜한 말 안 시키는 미용실이 내겐 꿈의 미용실이라고 했었는데... 그런 곳을 찾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런데 찾아다니겠다고 마루타 실험하듯 싸지도 않은 커트 비용 들여가며 메뚜기처럼 미용실 순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 째뜬 이 미용실 다니고부터 머리숱 많아졌다, 머리결 좋아졌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보니 딴데로 바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갈수록 가늘어져 히마리가 하나도 없는데 숱 많아보이면 장땡이지.

암튼 너무 오래간만에 간 탓에 그간 엉망이 되어버린 머릿결 복구와 멋내기 염색(꿈의 카키색으로! ㅋㅋ)을 한꺼번에 하느라 장시간 주리를 틀듯 괴로웠는데, 거기다 직업병 있는 사람 고문하듯 자꾸만 말도 안되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거의 5분, 10분 간격으로 들으려니 미치는 줄. 

미용실에서 2시간 넘게 버티는 거 진짜로 싫어하는데... 다음엔 지레 저놈의 이상한 도와드림 화법 스트레스로 더 미용실 가기가 꺼려질 것 같다. 그나마 5만원이십니다.. 따위의 이상한 말투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던데 제발, 도와드림 화법도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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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삐지다'의 승리에 이어 ^^ 언어의 변화에 승복한 표준어가 내년에 또 늘어난단다. 너도 나도 흔히 쓰는 '까탈스럽다'와 '주책이다'가 아직도 표준어가 아니었단 얘기는 앞으로도 우리말이 갈길이 얼마나 먼지 알려주는 것 같다. 이제껏 맞는 표기는 '까다롭다'와 '주책없다'만 인정됐었다.

요번에 새로 표준어로 인정된 어휘 4개는 '까탈스럽다', '걸판지다', '겉울음', '실뭉치'.
'까탈스럽다'와 '걸판지다'는 표준어가 아니든 말든 나도 번역할 때 가끔 고집스레 써먹었는데, 실뭉치가 표준어 아닌 건 요번에 첨 알았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빨간줄 그어지는 게 워낙 많고, 우리말배움터 같은 맞춤법 확인 사이트에 돌려봐도 영 미심쩍으면 복합어 인정 안되서 그러니 떼어쓰면 되겠군  했었다. 

원래는 각각 '까다롭다', '거방지다', '건울음', '실몽당이'라는 표준어가 있었단다. 거방지다??? 누가 알아먹는다고!! 쳇.. 실뭉치의 표준어가 '실몽당이'였단 것도 당근 몰랐다. 실몽당이는 뭉치가 훨씬 작은 느낌인데... 실뭉치는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 말고도 그냥 대충 뭉쳐놓은 더미까지 포함된 느낌이라 확실히 의미 범위가 넓은 것 같다. 주책없다/주책이다 둘 다 인정된 걸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 뜻으로 알고 있는 '칠칠맞지 못하다/칠칠맞다'도  머잖아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2017년 1월부터 국립국어원 대사전에도 올라간다니 또 여기다 퍼다놓는다. 출판 종사자도 맨날 사전 찾아봐야하는 표준어 업데이트... 뭔 의미가 있나 싶다. TV고 신문이고 인터넷이고 죄다 비속어에 영어 남발, 엉터리 맞춤법과 용례들이 차고 넘친다. 기자와 방송작가는 점점 맞춤법에 게으르고 무식해지는 것 같던데!!! 


<아래 출처: 국립국어원>

붙임

2016년 추가 표준어·표준형 목록

ㅇ 추가 표준어(4항목)

추가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걸판지다

거방지다

걸판지다 [형용사] ① 매우 푸지다. ¶ 술상이 걸판지다 / 마침 눈먼 돈이 생긴 것도 있으니 오늘 저녁은 내가 걸판지게 사지.

② 동작이나 모양이 크고 어수선하다. ¶ 싸움판은 자못 걸판져서 구경거리였다. / 소리판은 옛날이 걸판지고 소리할 맛이 났었지.

거방지다 [형용사] ① 몸집이 크다.

② 하는 짓이 점잖고 무게가 있다.

③ =걸판지다①.

겉울음

건울음

겉울음 [명사] ① 드러내 놓고 우는 울음. ¶ 꼭꼭 참고만 있다 보면 간혹 속울음이 겉울음으로 터질 때가 있다.

②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우는 울음. ¶ 눈물도 안 나면서 슬픈 척 겉울음 울지 마.

건울음 [명사] =강울음.

강울음 [명사] 눈물 없이 우는 울음, 또는 억지로 우는 울음.

까탈스럽다

까다롭다

까탈스럽다 [형용사] ① 조건, 규정 따위가 복잡하고 엄격하여 적응하거나 적용하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①’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공정을 거치다 / 규정을 까탈스럽게 정하다 / 가스레인지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지루하고 까탈스러운 숯 굽기 작업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비칠 수도 있겠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러워 맞춰 주기에 어려운 데가 있다. ‘가탈스럽다②’보다 센 느낌을 준다. ¶ 까탈스러운 입맛 / 성격이 까탈스럽다 / 딸아이는 사 준 옷이 맘에 안 든다고 까탈스럽게 굴었다.

※ 같은 계열의 ‘가탈스럽다’도 표준어로 인정함.

까다롭다 [형용사] ① 조건 따위가 복잡하거나 엄격하여 다루기에 순탄하지 않다.

② 성미나 취향 따위가 원만하지 않고 별스럽게 까탈이 많다.

실뭉치

실몽당이

실뭉치 [명사] 실을 한데 뭉치거나 감은 덩이. ¶ 뒤엉킨 실뭉치 / 실뭉치를 풀다 / 그의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뭉치같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실몽당이 [명사] 실을 풀기 좋게 공 모양으로 감은 뭉치.

ㅇ 추가 표준형(2항목)

추가

표준형

현재

표준형

비고

엘랑

에는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서 ‘에는’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엘랑’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외에도 ‘ㄹ랑’에 조사 또는 어미가 결합한 ‘에설랑, 설랑, -고설랑, -어설랑, -질랑’도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엘랑, -고설랑’ 등은 단순한 조사/어미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교실에설랑 떠들지 마라.

나를 앞에 앉혀놓고설랑 자기 아들 자랑만 하더라.

주책이다

주책없다

ㅇ 표준어 규정 제25항에 따라 ‘주책없다’의 비표준형으로 규정해 온 ‘주책이다’를 표준형으로 인정함.

ㅇ ‘주책이다’는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을 뜻하는 ‘주책’에 서술격조사 ‘이다’가 붙은 말로 봄.

ㅇ ‘주책이다’는 단순한 명사+조사 결합형이므로 사전 표제어로는 다루지 않음.

(예문) 이제 와서 오래 전에 헤어진 그녀를 떠올리는 나 자신을 보며 ‘나도 참 주책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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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투덜일기 2016. 5. 19. 00:27

어렸을 때부터, 아니 나중에 한참 커서도 내가 잘 몰랐거나 오해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나만 그랬는지, 다른 분들도 그랬는지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포스팅해야지 맘 먹었었는데 계속 까먹었다가 새삼 일하기 싫은 순간에 하나하나 떠오르는군.


1. 쌀 한톨 기르는데 1년 걸린다. 

할아버지나 엄마가 주로 밥상에서 잔소리 차원에서 하던 말이었다. 빈 밥그릇에 밥풀 붙여놓거나 상에 흘리면 저런 핀잔을 들었는데 어린 나는 정말 의아했다. 쌀 한 톨 기르는데 1년 걸리면 대체 이 밥 한 그릇에 담긴 쌀을 다 기르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지?  거짓말 아냐? +_+

ㅎㅎㅎㅎ 쌀과 벼의 차이도 모르던 때의 의문이었던 듯. 쌀을 한톨씩 따로 키우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벼농사를 짓는다는 건 정말로 한참 뒤에야 깨달은 것 같다. 이거 나만 몰랐음?


2. 시님

요새도 탁발승인지 땡중인지 집집마다 돌아다니거나 전철역 같은데서 목탁을 두들기는 승복착용자들을 볼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땐 정말로 사극에서 보듯 가끔씩 탁발승이 대문으로 들어와 마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독려했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울 엄마가 내게 쌀 한 그릇이나 지폐 몇장 쥐어주며 말했다. "얼른 저 시님한테 시주하고 와라."

그래서 난 당연히 머리 빡빡 깎은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 '시님'인 줄 알았음. '시주'하고 운율도 맞잖아!

외할머니, 엄마 따라 간 절에서도 다 '주지시님', '부전시님', '원주시님'이라고 부르더만... 그래서 초파일날 관련 일기에도 '시님'이 등장했었다.  근데 어느날 사촌 언니 일기장을 훔쳐보는데, 똑같이 초파일에 절에 간 이야기 편에 '시님'이 아니고 '스님'이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ㅠ.ㅠ 내가 너무 오래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냥 말이나 생각으로 흘려보낸 게 아니라 '일기'에 문자로, 증거로 나의 오해와 실수가 기록되어 있었으니 그랬겠지... ㅋ


3. 산 오징어

주로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산'자를 넣어 글씨를 새긴 물탱크 같은 걸 싣고 다니는 트럭을 볼 때마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아니, 오징어가 어떻게 '산'에서 살지? 오징어는 바다에 사는 거 아닌가? 바닷물을 길어다 산에 양식장을 만드나? ㅠ.ㅠ  

'산'이 山이 아니고 生이라는 사실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자를 배운 다음에도 잘 깨닫지 못했다.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은 절대 입밖에 내지 않는 신중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ㅎㅎㅎ


4. 참여 연대

9시 뉴스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참여 연대' 관련 소식에 어린 나는, 아니 어른이 된 뒤에도 대체 '연대 애들' 맨날 뭘 그렇게 데모를 하나그래... 서울대, 고대애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하네... 그랬었다. ㅠ.ㅠ '연대 보증'이라는 말은 제대로 이해했던 것 같은데 왜 '참여 연대'만 연세대의 준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원... 



음... 일단 요 정도다.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생각나면 추가해야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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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속시원히 짜장면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글을 여기 올린 게 벌써 아득한 2011년 일이었단다. 세월이 참 어떻게 가는지...

암튼 요번에 또 국립국어원에서 새로이 표준어로 인정하기로 한 단어들을 발표했다. 역시나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이곳에 퍼다놓아야 찾아보기 쉬울 것 같다. 







ㅇ 현재 표준어와 같은 뜻을 가진 표준어로 인정한 것(5개)

추가된 표준어

현재 표준어

구안와사

구안괘사

굽신*

굽실

눈두덩이

눈두덩

삐지다

삐치다

초장초

작장초


* ‘굽신’이 표준어로 인정됨에 따라, ‘굽신거리다, 굽신대다, 굽신하다, 굽신굽신, 굽신굽신하다’ 등도 표준어로 함께 인정됨.



ㅇ 현재 표준어와 뜻이나 어감이 차이가 나는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한 것(8개)


추가 표준어

현재 표준어

뜻 차이

개기다

개개다

개기다: (속되게)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거나 반항하다.

(※개개다: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다.)


꼬시다

꾀다

꼬시다: ‘꾀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꾀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


놀잇감

장난감

놀잇감: 놀이 또는 아동 교육 현장 따위에서 활용되는 물건이나 재료.

(※장난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물건.)


딴지

딴죽

딴지: ((주로 ‘걸다, 놓다’와 함께 쓰여))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


(※딴죽: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하여 딴전을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그라들다

사그라지다

사그라들다: 삭아서 없어져 가다.

(※사그라지다: 삭아서 없어지다.)


섬찟*

섬뜩

섬찟: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느낌이 드는 모양.


(※섬뜩: 갑자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한 느낌이 드는 모양.)


속앓이

속병

속앓이: 「1」속이 아픈 병. 또는 속에 병이 생겨 아파하는 일. 「2」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걱정하거나 괴로워하는 일.

(※속병: 「1」몸속의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2」‘위장병01’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3」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여 생긴 마음의 심한 아픔.


허접하다

허접스럽다

허접하다: 허름하고 잡스럽다.

(※허접스럽다: 허름하고 잡스러운 느낌이 있다.)



* ‘섬찟’이 표준어로 인정됨에 따라, ‘섬찟하다, 섬찟섬찟, 섬찟섬찟하다’ 등도 표준어로 함께 인정됨. 



위에 접어놓은 더보기 내용에 있기는 하지만 꺼내놓아야 또 한눈에 보이니... 그밖에 레이다/레이더도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다고. 


이상 모두 출처는 국립국어원. 귀찮아서 그냥 긁어왔더니 폰트며 형식이 다 마음에 안들지만 그냥 두련다. -_-; 



딴 건 다 알겠는데 '초장초'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라 찾아보니, 괭이밥이라고도 부르는 풀 이름이다.

표준어로 그간 작장초(酢漿草)가 쓰였던 이유는, 저 한자가 '잔돌릴 작', '신맛 초' 두 가지 음으로 불리는데 도무지 글씨 생김새가 '초'자로는 읽기 어려웠기 때문인듯. -_-; 나더러 찍으라고 해도 '작'으로 읽었겠구나 싶다. 혼자 술 따라 마시는 '자작'이라고 할 때 바로 저 글자를 쓰겠거니.. 

하지만 토끼풀을 닮은 괭이밥의 특성상 '신맛 초'로 불리는 게 더 옳다고 식물백과사전에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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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을 맛없어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덕분인지 국립국어원에서 요번에  드디어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반가운 소식. 출판사 트위터를 몇군데 팔로우 했더니 오늘 종일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타임라인에 떴다. 그 기념으로 점심때 짜장면 먹으러 갔다는 증거사진까지 첨부해서.

짜장면을 포함해 새로이 표준어로 인정된 단어가 39개나 된다'길래'(그간 '~기에'만 표준어였는데 이제 바뀌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가서 일부러 퍼왔다. 컴퓨터에 파일 저장해두어도 좀 지나면 어디 있는지 헤매겠지만 여기다 옮겨놓으면 제일 접근성이 좋을듯하여...
번역 초창기 시절 <간지럽히다>가 표준어가 아니라 책에 <간질이다>로 바뀌어 있는 걸 보고 정말 뜨악했었다. (사이시옷 푸념할 때 썼듯이 기묘한 맞춤법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표준어의 정의가 서울 경기 지방 중산층이 쓰는 말로 알고 있었기에 꽤나 잘난 척 내가 쓰는 말은 죄다 표준어일 거라 믿었던 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사전을 찾아보며 기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쨌든 요번에 현실성을 반영하여 인정된 낱말들을 보니 다 반갑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건, 짜장면, 맨날, ~길래, 허접쓰레기, 걸리적거리다, 복숭아뼈, 떨구다, 손주!! ^^
누가 뭐래도 <짜장면>과 <장마비>, <막내동생>은 고수하며 살겠다고 포스팅한지 불과 몇주만에 이런 소식이 날아드니 조만간 우스꽝스러운 '막냇동생'도 제대로 바꿔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막 솟는 것 같다.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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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원고의 맞춤법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는 하나, <손댈 데 없는 매끈한 원고>를 일단 목표로 삼으려면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기에 민망했던 수많은 낱말들(째째하다/쩨쩨하다, 금새/금세, 궁시렁/구시렁, -데와 -대의 구별 등 무진장 많다!)이야 얼른 수긍하고 앞으로 잘 쓰면 그만인데, 원칙과 옳은 것을 알고도 도무지 마음에 안드는 게 현 외래어 표기와 사이시옷이다.

경음은 사회가 각박해진다나 뭐라나 해서 잘 못쓰게 하는 바람에 짜장면을 굳이 <자장면>으로 강요해왔으면서 또 왜 그리 예외는 많은지(일관성 없게 <짬뽕>은 뭔가?!). 태국과 베트남어는 경음 표기가 허용되고 왜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는 경음으로 표기하면 안되는가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불만(<흔히들 bulldog을 <불독>이라고 쓰지만 맞는 표기는 <불도그>라는 걸 아시는지? ㅠ.ㅠ 하기야 <핫독>이 아니라 <핫도그>니까...)은 나중에 기회되면 입에 거품 물며 따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사이시옷 성토나 좀 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 사전을 퍼왔다.  

사이-시옷[---옫]사이시옷만[---온-]〕
명사」『언어
한글 맞춤법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났을 때 쓰는 ‘ㅅ’의 이름. 순우리말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거나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따위에 받치어 적는다. ‘아랫방’, ‘아랫니’, ‘나뭇잎’ 따위가 있다. ≒중간시옷.

위에서 예로 든 나뭇잎, 아랫니, 아랫방을 비롯하여 <웃옷, 뒷방>같은 것들은 하도 오래전부터 사이시옷을 넣어 써왔으니 옳다고 보는 데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칫국>도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북엇국, 감잣국>은 어떤가? 북어국, 감자국은 늘 끓여먹고 살아왔지만 <북엇국, 감잣국>이라면 먹기 싫어질 듯한 느낌마저 든다. -_-; 원칙에 따르면 순대국, 칼국수집, 떡볶이집도 <순댓국, 칼국숫집, 떡볶잇집>이라 써야 옳다.

뭐니해도 여름 내내 일기예보 보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표현은 <장맛비>. 그냥 편안하고 부드럽게 경음 발음없이 <장마비>라고 하면 좀 좋은가! 그런데 왜 꼭 저놈의 사이시옷 때문에 [장맏삐]로 발음해야 하느냐고!!! 장독대에 열어둔 장항아리에 들어갔다 튕겨나와 맛이 엄청 짜게 변한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비라면 모를까, 여름 장마 때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분명 <장맛비>가 아니라 <장마비>라 우기고만 싶다. 

최근 경악하며 발견한 사이시옷의 싫은 예 중 최고는 바로 <막냇동생>. 내 평생 <막내동생>이 옳은 말이라 알고 써왔는데 아니란다. <막내동생>이 [망내동생]으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는 발음이라면 <막냇동생>은 낱말의 생김새부터, [망내똥생, (심지어는) 망낻똥생]이라는 발음까지 어쩐지 정 떨어지고 짜증나는 느낌이다. 

어차피 언어는 생명을 지니고 계속 변화하는 유기체이므로 특정 기관에서 시기별로 다수의 용례에 따라 원칙을 정하는 게 맞다고 동의한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맞춤법이 이리 바뀌었다 저리 바뀌었다 하는 것이라고 이해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표기법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게 시대를 역행해 퇴보하는 듯한 맞춤법이 꼭 있다. 많이 헷갈려서 그렇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원칙이라 여겨 특히 사이시옷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요번 <막냇동생>에서 정말 뒷목(봐라, 여기도 쓸데없이 사이시옷 등장. 허나 '뒷목'은 심지어 표준어도 아니다. '목덜미'의 방언이라고... 쳇.)이 쭈뼛했다. -_-; 아무리 원칙이라 해도 나는 앞으로 <장마비>와 더불어 <막내동생>을 절대 사수할거다. 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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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때

놀잇감 2011. 2. 24. 17:49

'입때'는 입에 묻은 때가 아니라 '여태'의 뜻을 가진 부사다. 이북사투리로 알았으나 엄연히 표준말로 국립국어원에 등재되어 있는 우리말. 부사로 이름을 정한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가 자전거에 붙인 이름은 '느루'이므로 전적이 없진 않다. 어쩐지 얼굴 간지러운 닉네임 '라니'를 못마땅해한지 어언 몇년. 마음에 꼭 드는 새로운 닉네임을 정하고 싶었지만 온갖 검색의 힘을 빌어 찾아본 다양한 언어와 낱말 가운데서도 '후보작'만 손꼽힐 뿐,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런데 요새 한국단편을 하나씩 읽다가 발견한 '입때'라는 낱말이 '날래'와 함께 마음에 새겨졌다. 둘 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많이도 듣고 살았던 말이기 때문일까. 주로 "입때 먹언? 날래날래 먹어치우라우."(여태 먹고 있었니? 어서 먹어치우라는 뜻이다 ^^;)라는 형태로 쓰였다. '날래'도 발음과 형태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뭐든 느리고 게으른 나의 성품과는 안 어울리는 말 같아서 일단 다음으로(?) 미루고 요번엔 한동안 '입때'로 온라인 공간에서 지낼 작정이다. 온라인 이웃들에겐 적잖은 혼선과 짜증을 빚게 되겠지만, PC통신시절부터 써왔으니 15년도 넘은 닉네임인데도 '라니'를 버리는 게 하나도 섭섭하지 않을 걸 보면 정말로 싫증이 났었나 보다. 또 한 10년 이 이름으로 사는 것도 좋겠지만, 변덕 심하고 싫증 잘 내는 성격대로 일년에 한번씩 닉네임을 바꿔 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ㅋㅋ

암튼 여러분, 이제 저는 입때입니다. ;-p 이뭥미 싶으시더라도 양해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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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대

투덜일기 2011. 2. 17. 03:24

거의 일년만에 경기 남부에 사는 친구와 중간지점이라고 여겨지는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둘 다 과거 강남, 역삼, 삼성, 선릉 일대로 출퇴근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과거일뿐, 친구도 나도 강남쪽에선 똑같이 '촌년'이 된지 오래라 만날 장소 때문에 고민을 좀 했다. 내가 아는 강남역의 주요 지점은 전철역과 교보타워, 그리고 늘 그 친구와 만나던 빵집이다. 그 일대엔 콩다방, 별다방이 하도 많아서 자칫하면 서로 엉뚱한 곳에서 기다릴 수 있으므로, 문자를 한참 주고받은 끝에 어쩔 수 없다며 결론을 내렸다. "태극당인가 고려당인가 하는 그 빵집 있잖니. 그냥 거기서 열두시에 보자."

약속시간 10분전, 나는 아직도 버스 안에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그새 그 빵집 없어졌나봐. 전철역에서 교보타워까지 거의 다 올라왔는데 안보여. 파고다 학원 건물에 있지 않았어?" 파고다 학원 건물이 어딘지도 난 모른다. 그치만 이상했다. 지난 여름인가 가을에도 거기에서 누군가를 만났었는데, 그새 없어졌다고? 하기야 요즘엔 어디나 상권이 확확 바뀌니까. 결국 친구는 중앙버스차선 정류장 부근의 어느 도넛 가게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우린 별 문제없이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무엇보다 중요한 수다를 장시간 떨었다.

그러고 나서 친구를 바래다주려고 전철역쪽으로 걸어가며 우린 진짜로 그 빵집--태극당인지 고려당인지 확실하지 않은--이 없어졌나 확인을 했다. 물론 빵집은 없어지지 않았고, 생각보다 전철역 출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그대로 있었다. 문제는 거기가 태극당도 아니고 고려당도 아닌 '뉴욕제과'였다는 사실.

두 여자는 길바닥에서 미친듯이 깔깔대고 웃다가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빵집'이름으로 우리는 태극당이나 고려당이 더 익숙한 구세대라는 걸. '뉴욕제과'는 그러니까 요즘 간판에 알파벳으로 써있는 뚜레주르나 파리바게뜨와 '당'이 붙는 빵집 상호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데도, 우린 그걸 기억 못했던 거다. 사십대 아줌마들의 건망증 때문이랄 수도 있지만, 벌써 몇년째 교보문고 아니면 그 빵집에서 만났으면서 어렵지도 않은 '뉴욕제과'를 뇌리에 새기지 못한 이유가 또 뭐란 말인가. ㅎㅎㅎ

웃음이 그치지를 않아서 눈가를 훔치다 헤어지며 친구는 다음번에도 아마 자기는 또 '뉴욕제과'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 나더러 기억해두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자신이 없어 얼른 아이폰 메모장에 저장을 해뒀다. '강남역 6번출구 앞 뉴욕제과'라고. -_-; 

집에 돌아오면서 난 또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그럼 태극당은 어디에 있는 거지? 옛날에 그 앞에서도 친구들과 참 많이 만났던 것 같은데... 버스가 강남을 벗어나 남산을 통과할 무렵 드디어 생각이 떠올랐다. 태극당은 돈암동 성신여대앞에 있는 빵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에 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던. 거기도 가본지가 오래라 아직 남아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혹 흔적 없이 사라졌거나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뀌었을까. 아직 그대로 있다면 거긴 여전히 '태극당' 상호를 쓰고 있을까.

버스를 갈아타려고 집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국내산' 땅콩을 찾아 길거리 좌판과 마트를 뒤지다 돌아보니, 도로 양옆엔 파리바게뜨, 뚜레주르, 던킨도너츠가 몇걸음 간격으로 자리를 잡았고, 빵이 맛있어서 내가 가끔 이용하는 빵집도 'OOO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옛날 어르신들은 읽지도 못하게 모든 상호는 근사하고 멋지게 외래어와 외국어로 적어야 직성이 풀리는 풍조 속에서 이렇게 나도 구세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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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와 '-데'

놀잇감 2011. 1. 2. 16:40

2011년 첫 포스팅은 과연 언제, 무슨 수다로 하게 될까 내심 궁금했는데 두둥, 우리말 얘기라니 고무적이다. ㅋㅋㅋ 새해연휴고 뭐고 역자교정에 힘쓰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긴 하나, 블로그질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요번 교정을 보면서 그간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우리말을 또 하나 발견했다. 출판사에 친절하게 오타 지적하는 메일을 보내거나 게시판 글 올리는 독자들 가운데는 본인이 잘못 알고 있으면서 나무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데, 지금껏 나도 역자교정하면서 틀리게 고쳐 되돌려 보낸 경우가 있을 정도로 찾아보지도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말이다. '-대'와 '-데' 가운데서 나는 말을 전달하는 경우 종결어미가 대부분 '-대'여야만 하고, '-데'는 '~하던데'나 의문형인 '왜 그러는데?'의 형태로만 옳은 용법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아니란다. 켁. 그동안 블로그 돌아다니면서 '~~했데'라고 쓴 걸 보면 눈쌀을 찌푸리며 폄하했는데, 내가 틀렸다는 얘기! 

-대: '-다고 해'의 준말.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때 쓰인다.
예) 저 사람 아주 똑똑하대.
     철수도 오겠대?

-데: 과거 어느 때 화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현재의 말하는 장면으로 그대로 옮겨와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이는 말로 '-더라'의 의미다.
예) 걔가 오늘 약속 못 지키겠데!
     그 사람 집이 시골이데. 

사실 예문을 보아도 하도 오래 잘못 알고 있었던 터라 아래 문장들은 눈에 몹시 설다. -_-; 요는 전달하려는 사실이 직접 경험인가 간접 경험인가의 차이다. 이렇게 여기 적어두기까지 했으니 앞으론 헷갈리지 말아야지. 수십년간 책 읽으며 종결어미 '-데'를 오타라고 생각했던 과거 모든 착각의 순간을 또 한번 반성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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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과

투덜일기 2010. 9. 13. 17:44

사과 중에 내가 제일로 치는 품종은 역시나 새빨간 '홍옥'이지만, 풋풋한 맛의 파란 사과도 그에 버금가게 좋아한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과 1, 2위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다.(홍옥을 제외한 다른 품종의 사과엔 '빨갛다'는 말도 붙이기 어렵지 않은가! 그저 붉은 정도지...-_-;) 아쉬운 건 내가 좋아하는 품종들이 지극히 짧은 기간에만 유통된다는 점이다. '아오리 사과'로 불리는 파란 사과도 요즘에나 먹을 수 있지 좀 지나면 -- 아마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 구경하기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 요맘때 얼른 실컷 먹어주는 수밖에 없다. 과육이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홍옥과는 또 다르게 아삭거림이 강하면서 껍질이 얇고 약간 떫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역시나 새콤달콤한 과즙이 풍부한 파란 사과는 나름 매력이 철철 넘친다.

'파랗다'라는 우리말은 정말로 '파란색'부터 '초록색'에 이르기까지 푸른 계통의 색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신호등에도 파란 불이 들어오고 사과도 파랗다고 말하는 게 어른들에겐 어색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듣기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서도 신호등 파란 불은 '초록 불'이라고 고쳐 배우는 모양이니 말이다. 제일 어린 조카가 네살이었던 작년 이맘때, 집에 놀러온 녀석에게 "파란 사과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대뜸 세상에 파란 사과가 어디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뜨끔한 내가 "초록 사과, 아니 연두색 사과 말이야"라고 고쳐 말했더니, 녀석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아오리 사과?"라고 대꾸했다. '아오리 사과'를 아는 네 살 짜리 어린이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나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었는데, 올해 다시 파란 사과를 통째로 들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생각하니 '파란 사과'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조카들에게도 가르쳐줘야할 것만 같다.

어른들이 초록색이든 연두색이든 푸르딩딩한 남색이든 하늘색이든 죄다 '파랗다'고 말하는 건 색깔 구분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색깔조차도 크고 넓고 풍요롭게 지칭하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고. 연두색이 예쁜 파란 사과는 역시나 '아오리 사과'라고 부를 때보다 '파란 사과'라고 부를 때 느낌이 제격이다. 백설공주가 먹고 쓰러진 반만 빨간 사과도 덜익은 반대편 절반은 '파랗게' 덜익었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아무려나 바야흐로 파란 사과의 계절, 내가 원없이 먹었다고 느낄 때까지는 너무 빨리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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