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원고의 맞춤법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는 하나, <손댈 데 없는 매끈한 원고>를 일단 목표로 삼으려면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기에 민망했던 수많은 낱말들(째째하다/쩨쩨하다, 금새/금세, 궁시렁/구시렁, -데와 -대의 구별 등 무진장 많다!)이야 얼른 수긍하고 앞으로 잘 쓰면 그만인데, 원칙과 옳은 것을 알고도 도무지 마음에 안드는 게 현 외래어 표기와 사이시옷이다.

경음은 사회가 각박해진다나 뭐라나 해서 잘 못쓰게 하는 바람에 짜장면을 굳이 <자장면>으로 강요해왔으면서 또 왜 그리 예외는 많은지(일관성 없게 <짬뽕>은 뭔가?!). 태국과 베트남어는 경음 표기가 허용되고 왜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는 경음으로 표기하면 안되는가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불만(<흔히들 bulldog을 <불독>이라고 쓰지만 맞는 표기는 <불도그>라는 걸 아시는지? ㅠ.ㅠ 하기야 <핫독>이 아니라 <핫도그>니까...)은 나중에 기회되면 입에 거품 물며 따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사이시옷 성토나 좀 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 사전을 퍼왔다.  

사이-시옷[---옫]사이시옷만[---온-]〕
명사」『언어
한글 맞춤법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났을 때 쓰는 ‘ㅅ’의 이름. 순우리말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거나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따위에 받치어 적는다. ‘아랫방’, ‘아랫니’, ‘나뭇잎’ 따위가 있다. ≒중간시옷.

위에서 예로 든 나뭇잎, 아랫니, 아랫방을 비롯하여 <웃옷, 뒷방>같은 것들은 하도 오래전부터 사이시옷을 넣어 써왔으니 옳다고 보는 데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칫국>도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북엇국, 감잣국>은 어떤가? 북어국, 감자국은 늘 끓여먹고 살아왔지만 <북엇국, 감잣국>이라면 먹기 싫어질 듯한 느낌마저 든다. -_-; 원칙에 따르면 순대국, 칼국수집, 떡볶이집도 <순댓국, 칼국숫집, 떡볶잇집>이라 써야 옳다.

뭐니해도 여름 내내 일기예보 보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표현은 <장맛비>. 그냥 편안하고 부드럽게 경음 발음없이 <장마비>라고 하면 좀 좋은가! 그런데 왜 꼭 저놈의 사이시옷 때문에 [장맏삐]로 발음해야 하느냐고!!! 장독대에 열어둔 장항아리에 들어갔다 튕겨나와 맛이 엄청 짜게 변한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비라면 모를까, 여름 장마 때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분명 <장맛비>가 아니라 <장마비>라 우기고만 싶다. 

최근 경악하며 발견한 사이시옷의 싫은 예 중 최고는 바로 <막냇동생>. 내 평생 <막내동생>이 옳은 말이라 알고 써왔는데 아니란다. <막내동생>이 [망내동생]으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는 발음이라면 <막냇동생>은 낱말의 생김새부터, [망내똥생, (심지어는) 망낻똥생]이라는 발음까지 어쩐지 정 떨어지고 짜증나는 느낌이다. 

어차피 언어는 생명을 지니고 계속 변화하는 유기체이므로 특정 기관에서 시기별로 다수의 용례에 따라 원칙을 정하는 게 맞다고 동의한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맞춤법이 이리 바뀌었다 저리 바뀌었다 하는 것이라고 이해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표기법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게 시대를 역행해 퇴보하는 듯한 맞춤법이 꼭 있다. 많이 헷갈려서 그렇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원칙이라 여겨 특히 사이시옷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요번 <막냇동생>에서 정말 뒷목(봐라, 여기도 쓸데없이 사이시옷 등장. 허나 '뒷목'은 심지어 표준어도 아니다. '목덜미'의 방언이라고... 쳇.)이 쭈뼛했다. -_-; 아무리 원칙이라 해도 나는 앞으로 <장마비>와 더불어 <막내동생>을 절대 사수할거다. 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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