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1.12.17 이문세 콘서트 14
  2. 2011.12.16 닐리리맘보 2
  3. 2011.12.14 합창 그후 2
  4. 2011.09.20 뮤지컬 <친정엄마> 14
  5. 2011.09.16 뒤늦은 공연 후기 두 편 3
  6. 2011.06.26 임재범 콘서트 4
  7. 2011.06.20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6
  8. 2011.06.12 브로콜리 너마저 다섯곡 9
  9. 2011.01.13 Sting, Sorry & Thanks 10
  10. 2009.06.02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 8

이문세 콘서트

놀잇감 2011. 12. 17. 02:27

그제 오후에 사촌동생이 난데없이 전화해서 물었다. 누나, 이따 저녁때 시간 되면 공연보러 갈래요? 제 아내와 가려고 몇달 전에 예매해 놓은 공연인데, 홀로 천방지축 아들 보기에 지쳐 친정에 내려간 터라 같이 갈 수 없게 됐단다. 이게 웬떡이냐 얼른 쫓아간 게 이문세 콘서트였다. 이문세 콘서트는 6-7년 전엔가 친구가 가자고 해서 한 번 봤을 때 꽤나 즐거웠지만, 열혈 팬은 아닌지라 이후에도 꼭 가고싶어 일부러 챙기는 공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내눈엔 너무 '오버'하는 듯한 춤사위 같은 것이 좀 오글거렸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입담이야 워낙 검증된 사람이니 말 많이 하는 콘서트를 내가 싫어하는 편이어도, 노래로 얻은 점수 괜한 말로 깎아먹는 사태 같은 건 그때도 없었다. 아무튼 연말에 예고없이 이문세 콘서트라니, 선물처럼 여겨져 올림픽공원까지 달려가며 슬며시 설렜다. 

올림픽홀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인데 음향완전꽝인데다 관객을 만오천명씩 수용하는 체조 경기장보다는 규모도 훨씬 작고 (3천 몇석이라는 것 같다) 새로 배치한 듯한 좌석이며 구조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대형스크린이 아주 애매한 위치라 플로어와 별 차이없는 왼쪽편 B1 구역에선 그저 무대만 쳐다보는 게 가장 편했으나, 기타 반주 하나로 첫곡인

파란 조명과 트리, 아이들이 예뻐서 찍어왔다

<옛사랑>을 부를 때부터 목소리도 반주도 서로 묻히거나 심히 울리지 않고 들려 안심이 됐다. 이문세/이영훈표 발라드가 가요계를 풍미할 때 다들 어디서 뭘 했느냐고 묻는데, 내 나이가 실감됐다. 대학시절, 명반이라며 그때 그 앨범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참 많이도 들었다. 같이 간 사촌동생은 겨우 열살 때라는데...

나흘간의 공연일정 가운데 첫날이라 혹시 뭔가 실수 같은 것이 있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올해 계속 <붉은노을>을 주제로 공연을 해온 덕분인지 진행의 노련함 같은 게 느껴졌고, 이문세의 목소리도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역시... 가수는 악기인 자기 몸을 저렇게 잘 간수하고 가꿔야 하는 거다 싶었다(스팅 공연 볼 때 자기관리에 존경스러웠던 것처럼, 이문세 역시 예순살 넘어서까지 낭랑하고 힘찬 음색을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나). 중간중간의 CG며 마술기법을 동원한 공연 구성이며, 관객과의 일체감까지, <나는 가수다> 열풍에 급조한 티가 역력했던, 여름에 본 임재범 콘서트와는 얼마나 비교가 되던지! 이문세가 중간에 2층 관객석에서 등장해 노래하며 한바퀴 돌다 무대로 내려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고, 이런저런 관객 골라서 선물 안겨주더니 막판엔 전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어 더욱 감탄했다. 매년 이문세 콘서트를 다니는 사촌동생 말로는 작년 크리스마스 공연때도 선물 같은 건 없었대고, 나 역시 관객 전원에게 선물 나눠주는 공연은 난생 처음 본 것 같다. 티켓 추첨으로 행운상을 받은 관객 한 사람은 갤럭시탭에다 꼬꼬면 한 박스(꼬꼬면은 같은 줄 관객이 다 받았다)까지 받았을 뿐만 아니라, 들고 가기 힘들 테니 집에 갈 때 하얀 밴으로 모셔가는 서비스까지! 나중에 공연장에서 나와보니 밖에 밴 앞에 레드카펫까지 깔려 그 행운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센스있는 선물자루 안엔 잡곡(일명 '문세쌀')이 들었다

공연 외적인 마음씀씀이에 감동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공연 자체도 흡족했다. 계속 낄낄대며 노래에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건 예전과 똑같았는데, 확실히 내가 늙은(?) 건지 과거 공연 볼 때 '오버'라고 느꼈던 부분들도 이젠 그저 유쾌한 에너지 발산이라는 생각이 들고 귀엽기까지했다. 중간중간의 입담도 딱 적당한 수준으로 느껴졌고, 지금도 명곡인 그의 노래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게스트는 아예 한명도 없는 건가, 포기할 무렵 마술처럼 몸을 바꿔 나타난 윤도현의 짦고 강렬한 출연도 좋았다. 2시간 예정이지만 공연시간은 관객 하기 나름이라더니 8시5분에 시작해 11시가 다 돼 끝날 때까지, 나 역시 지치도록 행복하게 즐기고 놀았던 것 같다. 올해의 베스트 공연 3 선정할 때 마땅히 꼽을 게 없어서 어쩌나 고민했더니만 티켓오픈일에 광클의 노력도 없이 뜻밖에 횡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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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리리맘보

놀잇감 2011. 12. 16. 21:19

조카들 재롱잔치에 가보면 부모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비디오카메라를 뻗쳐들고 동영상 녹화를 한다. 엄마들은 열심히 사진 찍고 아빠들은 동영상 찍고 그러는 집도 많다. 요샌 그나마 스마트폰으로 약식 동영상을 촬영하지만, 첫 조카때만 해도 요란하고 큼지막한 촬영도구를 들고 나타나는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처음엔 우리도 그랬는데, 무대 위에서 고집스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조카를 본 뒤론 유난떨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_-;)

어르신들의 합창발표회가 평일인 탓도 있겠으나 그날 공연을 비디오 카메라로 담는 가족은 한 집밖에 보지 못했다. 반면에 찬조출연을 했던 숙명유치원 아이들이 등장하자 아이들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댔다. 장담컨대 그렇게 찍은 아이들 동영상 비디오나 CD를 다시 틀어보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디카로 찍은 사진은 컴퓨터에 저장만 해놓을 뿐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같다. 어쨌거나 그래도 부모들은 대견스럽고 장해서 아이들의 공연을 동영상으로 사진으로 열심히 남겨둔다.

비디오카메라를 떨쳐들진 않았지만 나도 디카와 아이폰으로 나름 열심히 공연을 녹화한다고 했는데... 집에서 연습까지 하고 갔음에도 동영상을 하나밖에 건지지 못했다. 화음이 가장 아름다워 앵콜까지 했던 <그대 있는 곳까지>를 열심히 디카로 찍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녹화된 건 내 무릎이더군. ㅠ.ㅠ 그나마도 <닐리리맘보>는 뒷부분만 아이폰으로 찍어 짧기 그지없고 화질도 별로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부른다기에 왜 하필 안어울리게(?) <닐리리맘보>일까 의아했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아이들이 어르신들의 노래를 소개하는 듯한 도입부도 색다르고 구성이 아주 재미있었다. 짧긴 해도 엄마는 현장음이 든 동영상을 보여드리니 뿌듯해하시는 눈치다.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귀여워 나도 뿌듯하다. 구경 못간 동생들 보라고 유튜브에 올려 링크했다. 합창단에서도 촬영하던데 나중에 CD라도 구워서 주려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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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그후

투덜일기 2011. 12. 14. 23:54

엄마의 합창발표회가 무사히 끝났다. 연분홍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로 단복까지 맞춰입은 실버합창단 공연을 보는데, 첫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막 찍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혈 선생님이 손수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구워준 CD를 들으며 집에서 개별연습까지 열심히 했던 엄마는(역시나 <그대 있는 곳까지>가 너무 어려워 제일 끝까지 속을 썩였다;;) 공연 내내 표정도 좋고 방긋방긋 입도 크게 벌리시고, 나중에 <닐리리 맘보>를 부를 땐 살짝 보일듯 말듯 리듬도 타며 훌륭히 맡은 바 역할을 해내신 듯 했다. 청일점 할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가운데선 울엄마가 유일한 은발이고 은발 두분만 70대라고 들었다. 청일점 할아버지 노래 잘하고 목소리 좋으시다고 엄마가 칭찬하는 말 여러번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눈> 부를 때 솔로도 하시고 나중에 노래자랑 땐 가곡을 불러 상도 타셨다. 두시간 전부터 가서 최종 리허설하랴, 공연하랴, 노래자랑 구경하랴, 몹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엄마는 간신히 미니시리즈를 마저 보고서 조금 전 얼른 자겠다며 방으로 퇴청하셨다. 



조카들 재롱잔치 때마다 꽃다발이든 캔디다발이든 들고 가서 축하해주었는데 이젠 할머니 되신 울 엄마 발표회를 다 구경하는구나 싶은 것이 마음이 좀 복잡했다. 하필 공연이 평일 오후라,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좋은 구경(?)을 할 이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었는데, 큰올케가 시간을 내 꽃다발 사들고 와주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창피하니깐 절대로 꽃다발은 사오지 말라고 내게도 신신당부를 했지만 우리 말고도 꽃다발을 사온 가족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울 엄마가 받으신 꽃다발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찬조출연을 해 <닐리리 맘보>를 같이 부른 유치원 어린이들이 나중에 포토타임 때 무슨 영문인지 엄마를 둘러싸고 모여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나중에 들으니 장미꽃이 진짜냐고 물으며 꽃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가시도 있느냐고 물었단다. 가끔 느끼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은 좀 더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어르신께 드릴 꽃이니 화사한 걸로 만들어달랬다는 꽃다발을 안겨드리며, 엄마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하더라고 칭찬해드렸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느꼈다. 영자씨 최고! d^^b 

맨 앞자리는 귀빈석이라 다들 엉거주춤 뒷줄에서 찍고 있으려니, 발표회 전에도 온 좌석을 돌며 인사를 청했던 구청장이 선뜻 우리를 앞으로 내몰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걱정말고 다들 앞에 나와 마음놓고 찍으라며 자기는 일어나 뒤로 갔다. 선거 직전 후보 때도 엄마랑 구청에 갔다가 맞닥뜨리는 바람에 얼결 악수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역사상 얼굴 알고 찍은 유일한 구청장이 아닐는지. ㅋ 암튼 덕분에 간만에 배터리 충전한 디카로 사진은 실컷 찍어왔다. 이번엔 밍기적거리지 말고 1년전 사진까지 죄다 인화해 앨범에 꽂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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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친정엄마>

놀잇감 2011. 9. 20. 17:42

소설이든 연극이든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절대로 보러 가지 않았을 뮤지컬 <친정엄마>를 엄마는 꼭 보고싶다고 하셨다. 별 수 있나. 효녀 코스프레를 하는 수밖에. 유니버설아트센터는 무대가 높아 맨 앞줄은 오히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보느라 목이 아프다는 친절한 객석설명에 힘입어 제일 좋은 자리라는 다섯째줄 정중앙 좌석을 꽤나 오래 전에 예약을 해두었다.

친정엄마 역할에 나문희/김수미의 더블캐스팅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나문희 버전을 보고싶다고 지정해준 것. 김수미 여사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일용엄니 이외의 역할을 그리 좋게 본 적이 없다. 다들 국민엄마라는데 나는 영... 째뜬 친정엄마의 고향이 정읍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전라도 사투리 연기는 김수미 버전이 더 감칠맛나고 구성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뮤지컬인데 김수미/이유리 둘 다 탤런트라 두 주연배우의 가창력이 다 떨어지면 곤란하지 않았을까, 염려도 든다. 나문희/양꽃님 모녀의 경우엔 딸 역할의 양꽃님씨가 워낙 노래를 잘해서 뮤지컬다운 느낌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한두곡 밖에 안되는 나문희 여사의  독창 부분은 약간 안습... 박자도 막 틀려주시고. ㅋ 그래도 회한 어린 엄마 역할의 연기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음.

극의 내용은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만하고 살았던 엄마, 스스로 엄마가 되어 딸을 키우며 병마에 엄마를 잃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는 이기적인 딸의 이야기다. 엄청 빤한 이야기인데도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는 대다수 중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상대로 울지 않았다. 약간 울컥하는 부분이야 없지 않았지만 정말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빤하게 예상대로 진행되다보니 오히려 지루한 느낌까지... -_-; 하지만 극이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주변에선 정말이지 곳곳에서 흑흑 흐느낌이 솟았고 울 엄마도 눈물을 훔쳤다. 나중에 물으니 울 외할머니, 그야말로 친정엄마께 학창시절 쌀쌀맞고 못되게 굴었던 것이 생각나셨단다. 할머니가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고생하신 것도 떠오르고.

맞다. 울 외할머니 역시 극중의 김봉란 여사처럼 중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던 말년에도 손수 김치를 담가 자식들 집집마다 보내주셨던 분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떠올리면 나 역시 수시로 울컥 눈물이 솟지만, 뮤지컬을 보는 동안엔 역시 딸의 입장이었기에 크게 공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재수없게 들려도 할 수 없지만 나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꽤나 착하고 훌륭한(?) 딸 축에 들기 때문이다. ㅋㅋ 오히려 가족과 엄마한테 너무 얽매여 살아서 주변에서 짜증낼 정도로. -_-; 그러다보니 시댁식구를 위한 집안 행사에 친정엄마 불러다가 가사도우미처럼 써먹고 김치 떨어졌다고 시골에 독촉전화하고, 엄마 병든 것도 모르고 자기 투정만 하는 딸에게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직도 그런 딸과 엄마가 많다고? +_+  

어쨌거나 내용은 신파스럽고 진부하더라도 잔잔한 재미와 웃음은 있었다고 인정한다. 창작곡이 아니라 죄다 유명한 대중가요를 개사했으므로, 아는 노래도 많고 완성도 떨어지는 창작곡 때문에 짜임새가 떨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R석 7만7천원이면 가격대비 만족도도 괜찮다고 할 수 있겠고. 까칠한 나로선 다시 보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극장을 나서며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칭찬과 감탄(김수미/이유리 버전도 또 보러 오고 싶다고 하는 모녀들 꽤 봤음)을 보더라도, 그리고 작년부터 계속 이어지는 앵콜공연을 보더라도(11월부터 연말까지 또 연장공연이 잡혀있는듯;;) 옛날에 꽤나 고생하신 엄마를 둔 자식으로선 볼만한 뮤지컬인 모양이다. 

집에 와 찾아보니 나문희 여사 울 엄마랑 동갑이시던데 아무리 연예인이라 관리를 잘하기로서니 어쩜 그리도 피부가 곱고 팽팽하신지... 맨 앞줄이 비록 고개는 아프겠지만 중간 휴식 시간 이후 2부 첫 순서를 배우들이 관객석으로 내려와 노래부르며 시작하는데다, 나문희 여사가 일일이 맨 앞줄 관객의 손을 잡아주는 혜택이 있다! 김수미 여사 공연때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그런 거 좋아하는 분이라면 맨앞줄이나 앞쪽 통로석도 고려해볼 만 하다. 재작년, 작년 어버이날 선물로 김영임 아줌마의 <효> 공연 보러갔을 때도 보니깐 노친네들도 아이돌에 광분하는 십대팬들과 다름없이 유명인과 악수하고 가까이 얼굴보는 거 엄청 좋아하시두만! 김영임 아줌마가 객석으로 내려와 일종의 굿놀음인 <대감놀이>를 하며 관객에게 깃발을 뽑게 시키면 여기저기서 막 수표와 지폐가 몰려들기도 했었다. 요번에도 맨 앞줄에 머리 새하얀 할머니를 모시고 온 3대 관객들을 비롯해 나문희 아줌마랑 손잡는 거 어찌나들 좋아하시던지. 울 엄마도 속으로 부러워했을까?

암튼 공연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 덕분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엄마의 옛날 추억담이 끝없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피난살이 할 때 고생한 이야기, 공부 시키겠다며 데려간 고모한테 구박 당한 이야기, 교복 입고 까탈떨던 이야기... 나는 몰라도 울 엄마에겐 분명 재미있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던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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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싶으시대서 예약한 뮤지컬 <친정엄마>를 오늘 보러가려니 얼른 밀린 공연후기를 써놓아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순전히 연말정산(?)용 기록으로라도. (라며 지난 금요일 포스팅을 시작했으나 결국 다 못쓰고 주말을 넘겼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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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콘서트

놀잇감 2011. 6. 26. 17:47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지만 그 방송 때문에 임재범이 음악인으로서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건 기쁘게 생각한다. 덕분에 임재범의 전국투어 콘서트도 기획된 거나 마찬가지니, 말도 많고 탓도 많은 그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볼 마음은 없지만 고마워해야할 것 같다. 콘서트를 앞두고 하필 임재범이 오른손 골절에 맹장수술까지 겹쳤다는 소식에 예매를 하면서도 건강문제로 공연이 취소되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태풍이 몰고온 폭우속에서도 콘서트는 무사히 열렸다.

나도 가볍게 배를 열고 닫은 수술을 해봐서 알지만, 수술한지 한달만의 체력이란 게 뻔한데 콘서트라니 공연보러 가긴 가면서도 내심 미친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임재범 본인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다니까, 한편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 안쓰러웠다.
공연이 취소되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므로 체력과 목소리가 기껏해야 예전의 7, 8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듯 해도 이해해줄 수밖에 없었다. 첫곡이었던 빈잔을 부르고 나서 곧장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며, 과연 저래서 끝까지 공연을 해낼 수 있을까,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는데, 후반부에 디아블로와 함께 한 하드락 공연을 보면 또 언제 힘들어했나 싶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였다. 가수에겐 노래가 곧 힘이고 약이기 때문일까.

일요일 공연 준비로 체력을 비축해야 하므로 어젯밤 앵콜은 아예 사전에 양해를 구해 가능성부터 막아버렸고, 체력안배를 위함이라고 십분 이해는 되지만 중간중간 보여준 동영상과 내레이션은 쓸데없이 많았으며,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들려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썰렁하고 난감한 개그 개인기를 많이 보여준 건 아무래도 민망했다. 간간이 못마땅해 투덜거리는 일반팬인 내 옆에서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 회원이기도 한 열펼 팬인 친구는 자꾸 나를 나무랐다. 저렇게라도 시간을 떼우며 좀 쉬고 힘을 비축해야 다음 노래를 하지 않겠느냐고. ㅎㅎㅎ 누가 그걸 모르나. 임재범은 마지막 무렵 <비상>을 부르며 실제로 비상하듯 입체 무대로 공중에 올라가더니 울컥해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는데, 치열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온 인간이자 가수로서의 지난날 때문이려니 하면서도 전체적인 공연 콘셉트가 너무 '감상돋는' 쪽으로 간 게 아닌가 싶었다. 노래 한곡 끝날 때마다 헐떡거리거나 "아이고 죽겠다"를 연발할 정도로 힘겨워하면서도 악착같이 3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이어나가는 임재범의 모습을 봐야하는 것도 감격과 동시에 약간은 고문이었고.

째뜬 공연의 형식이 내 취향과 좀 달랐다는 것뿐이지, 체력과 목소리가 절정의 컨디션이 아님에도 노래마다 감동이었으니 보러가길 잘했다는 생각이고 대체로 행복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의 탈의로 새하얀 속살과 사방에 새겨진 문신까지 보여주는데는 좀 놀랐다. ㅋㅋ 수술 한달만인 쉰살 아저씨 몸이 탄탄하기도 하여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의상도 다섯벌이나 갈아입으며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는데, 난 아무래도 두번의 수트 차림이 제일 좋았다.  지난 1월 스팅 공연때 폭설 때문에 하도 주차에 고생을 했던 터라 요번엔 아예 지하철 타고 다녀오느라 나도 체력이 딸려 오늘까지 빌빌하다. 무거운 장화를 신고 뛰었더니 장단지도 땡기고... 구경만 한 하고 온 나도 이런 꼴인데 임재범은 오늘 저녁 또 어떻게 공연을 할까, 그게 더 놀랍다. 다시는 세상을 등지지 말라고 팬들이 <지수애비 입산금지>(임재범의 열살짜리 딸 이름이 '지수'라고;)라는 팻말도 들고 있던데, 정말로 계속해서 임재범이 늙을 때까지 감동적인 노래와 공연을 해줄 수 있기를 빈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에 대한 대중의 현재 관심이 과연 금세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적인 환경으로 자리잡을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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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공연 보러가실 분들은 나름 주최측이 신경을 쓴 듯한 공연 형식에 관하여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


다녀온 지 며칠 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려 하므로 다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두어야겠다. 순전히 연말 집계용으로라도. ㅋㅋ
난생 처음 가본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괜찮다'라고 하겠다. 라이브로 듣는 덕원의 노래가 워낙 안습이라는 언질을 하도 들어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겠으나, 어쨌든 6월 8일부터 시작된 정기공연의 무대가 매번 그들에겐 연습이자 라이브였을 터이므로 공연 초반 몇번의 불안한 음이탈을 제외하곤 대체로 노래가 안정된 느낌이었다. (지산을 비롯해 다른 무대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일행들의 증언도 "덕원 노래솜씨 많이 늘었다"는데 모아졌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다른 세션도 없이 겨우 네명--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이 그런 꽉찬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해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멤버들의 생김새도 소박한 노래와 이름이랑 딱 맞는 맑은 느낌이었다. 좀 더 화려하거나 느끼한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나로선 뭔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예습하느라 CD들으며 마음에 든다고 손꼽은 노래들이 역시 공연에서도 좋았지만, CD로 들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새로이 '발견'한 노래들도 두어 개 있었다. <울지마>, <마음의 문제> 같은 곡들. 2집 들을 때 첫곡인 <열두시반>부터 주르륵 네번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까지 다 좋아라 듣다가, <울지마>, <마음의 문제>, <이젠 안녕> 세 곡은 괜히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통째로 건너뛰고 들을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거다. 마이크와 음향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CD로 들을 때보다 덕원의 목소리가 더 굵고 힘 있게 들렸고, 일부러 미성을 내려고 애쓰는 듯한 기미도 사라져 좋았다. 2집 노래를 중심으로 CD순서와는 반대로 <다섯시 반>으로 시작해 2부에선 좀 신나는 노래로 쾅쾅 달리다 <열두시 반>으로 끝낸 것도 나름 이야기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얘기로 괜히 썰렁하게 시간 때우는 것보다 노래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중간에 넷이 줄지어 자리잡고 앉았을 땐 내심 불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멘트는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더 길었으면 화났을 듯;;

초반에 이번 공연엔 앵콜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나서 정말로 <열두시 반> 노래 끝내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악기 두고 나가버렸을 땐 좀 황당했다. 것도 본인의 고집이려니 하면서 나는 앵콜을 외치지도 않았고, 사람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느릿느릿 거의 맨 끝에 공연장을 나왔는데 깜찍하게도 앵콜 공연을 상상마당 입구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하필 우리 바로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자꾸만 알람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치솟기는 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꾸꾸꾸>랑 <보편적인 노래>를 그 난리통에 들을 수 있어서 '원 풀었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만 들었지 실제론 처음 들어가본 상상마당 지하 공연장의 음향과 냉방수준도 괜찮은 편이라, 가격대비(평일 공연 25000원) 공연 만족도를 따진다면 꽤나 흡족했다. 무대가 워낙 높아서 맨 뒤쪽에 있던 단신의 나도 이리저리 사람들 머리 사이로 움직여 다니며 구경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스탠딩 공연이라해도 나 같은 노구를 위하여 맨 뒤쪽에 의자 몇개라도 놔주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는 했다. 간만에 한시간 반 이상 서서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서 원!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중간 이후부터는 다리와 허리가 아파 슬그머니 혼자 벽에 가 기대 있었는데 바닥뿐만 아니라 나무 벽으로도 쿵쿵 전해지는 음향과 리듬이 느껴져 이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공연 후기를 두 마디로 줄인다면, '괜찮다~'와 역시 스탠딩공연은 '힘들어'인가? ㅎㅎ 가만 뒀으면 공연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옆구리 찔러 가자고 해주신 지다니께 몹시 감사. 그나저나 브로콜리 너마저도 참여한다는 서울대 <본부스탁> 공연은 성황리에 잘 끝났을까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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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이웃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베스트 다섯곡 뽑기,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싶지만 새삼 해봤다. 공연보러 가려면 어차피 노래 예습도 해야하니 겸사겸사다. CD를 사서 처음 들을 때 좋은 곡이 있고 나중에 더 좋아지는 곡이 있고, 또 계절이나 시기에 따라서 유독 귀에 박히는 곡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뽑고 보니 나도 좀 의외였다. 약간 의기소침한 요즘 상태를 반영하듯 전부 다 조용조용한 곡인 것 같다. 원래 브로콜리 노래가 거의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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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Sorry & Thanks

놀잇감 2011. 1. 13. 06:49

2011년 1월 11일. 공교롭게도 1이 다섯개나 겹친 기념비적인 날이 스팅공연이었다. 열두시 반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와 뜨끈한 감동이 식기 전에 적어두려고 공연 후기 끼적이다 양심상 찔려서 마무리를 못하고 이제야 끝낸다. 스팅공연을 예매한 순간은 작년이라 줄곧 5년만의 상봉이라 생각했었는데 6년만이란다. 맞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몹시 추운 1월이었다. 그때 느꼈던 울컥한 감동을 그새 잊어버린 게 잘못이었다. 앨범투어에서 한국에도 빠지지 않고 들러준 고마움은 지난번과 똑같았으나, 요번 공연 때는 스팅에게 미안한 게  많았다.

5년전 스팅 내한공연 소식을 들었을 땐 티켓 오픈일을 달력에 크게 표시해놓고 그날 예매가능 시간이 되기 10분전부터 경건하게 컴퓨터앞을 지켰었다. 물론 꼬진 컴퓨터로 많은 이들과 경쟁하느라 결제단계에서 세 차례나 튕겨나가는 삽질을 해야했지만 결국 15분만에 중앙에서 왼쪽으로 좀 쏠리긴 했어도 앞에서 셋째줄 좌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을 거둔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공연날 맨눈으로도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보며 황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적어둔 티켓 오픈일마저 까먹고 며칠 지나 허겁지겁 예매를 했다. 당연히 VIP석은 다 나가고, 플로어 R석도 맨 뒤나 가장자리만 남은 상태였다. ㅠ.ㅠ 하기야 플로어에 'R'석이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도 감지덕지였지만. 

결국엔 스팅 공연을 보러갈 것임을 알면서도 좀 뜨악한 태도를 보였던 건, 이번 Symphonicities 앨범에 크게 열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보기도 전에 신곡은 없고 전부 예전 곡들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편곡했다는 정보만으로도 좀 걱정스러웠다. 난 뭐든 '퓨전'은 싫던데, 라면서. 그런 편견에 힘입어 막상 들어보니, Roxanne을 비롯해 두어곡 빼놓고는 다들 옛날 편곡이 아무래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실한 노트북으로 추출해 질 떨어지는 음원으로 주로 들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스팅인데, 공연을 안 갈 순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구랑 가느냐의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어디까지 연락해서 의향을 물어야 하나, 아우... 그렇게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에 발목이 잡혀 다 귀찮아, 라고 잠깐 딴청을 부린 사이 티켓 오픈일이 지나버린 거다. 허걱. 게다가 현대캐피탈에서 공연을 주최하며 현대카드 20% 할인을 빌미로 티켓값을 왕창 올린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6년간 이 나라의 치명적인 물가 상승률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예습을 거쳐 드디어 공연날, 넉넉하게 잡는다고 공연 3시간 전인 5시부터 일행을 만나 이른 저녁을 먹을 때만해도 설마 코앞에서 길이 그렇게 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린다지만 올림픽 공원앞 네거리에서 주차장까지 1km도 안되는 거리를 통과하는데 1시간도 넘게 걸릴줄이야. ㅠ.ㅠ 그나마도 공연을 놓칠까봐 유턴차선과 중앙분리선을 마구 넘어가 횡단보도에서 공원 입구로 끼어드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주최사에 전화를 걸어 주차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떡하냐고 항의도 하고 공연이 지연될 거라는 귀띔을 받아 좀 안심을 했지만, 결국... 우린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ㅠ.ㅠ 8시 30분쯤 공연을 시작한 모양이던데, 우리가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체조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7분, 눈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공연장을 향하는 수많은 무리 속에서 우리만 늦은 건 아니라는 위안도 잠시, 그나마도 늦은 사람들을 모두 문밖에서 한참 대기시키다 짬을 봐서 들여보냈으므로 무려 앞의 네 곡이나 놓친 거다. 흑흑흑. Englishman in New York의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문밖에서 들으며 우린 아쉬움의 한숨을 쉬어대야 했다. (아예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야 낫지! 라고 금세 마음을 고쳐 먹긴 했다. 무려 9시 넘어서도 계속 지각 관객들이 스물스물 들어왔으므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고 위로도 하고;;) 암튼 내가 요번 공연에서 제일 고대했던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랑 Roxanne도 세트 리스트에서 두번째, 세번째라 다 놓쳤다. 어흑. 스팅 공연에 내가 늦다니! 스팅이 노래와 연주를 하는데 짜증스럽게 중간에 슬금슬금 좌석으로 기어들어가다니!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리고 거리가 멀어도, 지하철 공사로 주변 교통사정이 쥐약이었대도 팬이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짓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스팅. 우리 같은 지각생들 때문에 감상을 방해받았을 다른 관객들에게도 미안하고...

정신없이 좌석에 앉아 감상을 시작하고 나서도, 오케스트라를 몽땅 외국에서 데려오는 줄 알았다가 대형화면에 비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걸 안 순간에도 미리 실망을 했었다. 스팅 일행이 공연 전날 한국에 도착했으니 리허설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어, 싶었던 거다. 근데 또 미안하게도 그건 순전히 내 편견이었다. 별도의 무용에 가까운 역동적인 지휘자의 역량 덕분인지,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엄청난 사전 연습 덕분인지 협연은 훌륭했다. 물론 체조경기장의 그 알량한 구조로는 섬세한 클래식 악기 소리를 일일이 전달하기 역부족이었다. 막귀로 듣기에도 일부 악기 소리는 완전히 묻히고 클라리넷 독주 소리는 막 찢어지고. +_+ 하기야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려면 예술의 전당 같은 델 가야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뭘 더 바란단 말이냐. 하지만 스팅이 앙증맞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간간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가운데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공연장을 채우니, CD로 들을 때와는 확실히 깊이와 느낌이 달랐다. 팝과 클래식의 '퓨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뜩찮게 여겼던 나를 비웃듯 라이브로 들으니 한곡 한곡 새로우면서도 정겨운 편곡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CD엔 없었던 Russians 같은 곡은 얼마나 웅장하고 감동적이던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툴툴거렸던 거 미안해요, 스팅.

사진출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더 멋진 사진을 못찾겠다 +_+

게다가 역시 스팅은 스팅이었다. 5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예순인 아저씨가 어쩜 그리도 관리를 잘했는지 주름살은 확실히 많이 늘었어도 딱 좋을 만큼만 비음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했고, 온화한 표정이며 간혹 드러나는 귀여운 섹시함도 그대로였다. '거장'이란 이정도는 돼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랄까. 무슨 곡이었더라,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울컥 눈물이 날뻔했다. 재작년에 나온 겨울 앨범 사진이랑 동영상에서 꽤 많이 불어난 몸집과 시커멓게 산적처럼 염색한 머리와 수염 때문에 좀 실망했었는데, 그새 다시 몸매도 날렵해져 빨간색 실크블라우스가 여전히 어울렸고 머리칼도 희끗한 연갈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오히려 더 젊은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가 6년새 확 늙어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기타 연주 솜씨와 어벙한 표정은 그도 여전했지만서도. 주름살과 힘줄이 빽빽하게 드러난 손으로 섬세하게 기타줄을 튕기는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연주 장면이 대형 화면으로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죽기 전에 Shape of My Heart 도입부의 그 감미로운 기타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_+

지난번 공연때는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두시간 쯤 그냥 내달리는 바람에 앵콜곡을 듣고도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엔 중간에 15분 휴식시간을 두었다가 1, 2부로 진행해 공연이 더 풍성하고 긴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점잖기만 했던 스팅이 중간중간 살랑살랑 팔과 몸을 흔들어 춤을 선보이는 여유까지 부리질 않나, Moon Over Burbon Street을 부를 때는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느냐며 소매 안감이 빨갛게 드러나는 드라큘라 코트 같은 긴 재킷을 갈아입는 정성을 보여주질 않나, 예전 공연보다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거리를 고민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세트 리스트를 보면 다 계획된 거라 할 수 있겠지만 암튼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계속 다시 나오며 앵콜곡을 무려 '네 곡'이나 불러준 것도 황홀했다. 이미 2부 끝날 때부터 모두들 기립한 상태에서 다 같이 춤을 추며 감상했던 Desert Rose에 이어 세곡째인 Fragile이 흘러나올 때도 탄식하듯 기뻐했지만, 악착같이 계속 박수를 치며 기다린 끝에 정말 가려고 했었던 듯 중세 수도사의 망토 같은 기다란 진회색 외투를 걸치고 나온 스팅이 무반주로 마지막 곡(뭔지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I Was Brought to My Senses였단다)을 불러줄 땐 정말 깊은 고마움과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앞으로 또 스팅을 보려면 또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것 같다. 1998년, 2005년, 2011년, 그나마 1년씩 줄어들고 있는 내한공연 주기를 감안한 예상 기다림이 5년이다. 그럼 그때 스팅은 몇살이고 또 우리는 몇살이냐며, 한껏 들뜬 기분으로 눈밭을 걸어 나오던 평균나이 47세인 우리 일행은 마냥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스팅은 100살까지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결론이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에 부르르 떨었던 감동의 세시간이 지나고 눈덮인 올림픽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만큼이나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 또 삼십분이나 갇혀있었어도, 스팅을 만나러 가느라 할애한 총 7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다음 공연 때는 기필코 망설임 없이 제일 좋은 좌석을 확보하고 대낮부터 올림픽공원에서 놀다가 절대로 지각하지 않을 테다!  

놓친 게 못내 아쉬워서... 유튜브를 뒤졌다. 음향 좋은 동영상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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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연극 초대권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정보는 전혀 없이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는 고흐에 대한 연극이라는 것만 듣고도 당연히 갈 작정을 했다. 헌데 퀵으로 보내준 초대권과 함께 온 소개 전단지엔 테오와 빈센트, 단 두 사람이 등장하는 연극이며,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각색한 내용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만에 연극을 보는 것인지 까마득할 정도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웬만하면 즐겁게 감상할 다짐이 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일찌감치 만나 저녁을 먹고 좌석을 배정받고는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신뒤 8시를 기다려 드디어 극장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소극장 바닥 무대엔 두 배우가 쪼그려 앉아 있는 바람에 조금 놀라웠다. 예상과 달리 평일 저녁임에도 소극장은 거의 빈자리 없이 관객이 들어차, 연극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이어 그것은 나의 착각임이 드러났다.

임영웅 연출, 이호성/이명호 출연


빈센트 역할의 이호성과 테오 역의 이명호,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 편이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연기할 때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서도. 단순한 무대에서 각기 모노드라마를 하듯 수많은 사건들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두 형제의 격렬한 고통과 교감은 시종일관 팽팽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용은 너무나 뻔했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익히 본 내용 이외의 참신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변화 없이 단조로운 무대에서 들려주는 뻔한 이야기는 두 배우가 아무리 감정을 담아 호소한다고 해도 지루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식곤증 탓도 있었지만, 연극 자체는 정말 하품나게 재미 없었다. 나는 고흐에 대한 예의와 의리(?)로라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같이 간 지인 둘은 계속 졸았노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한 친구는 나갈 통로만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거라나.
그런데도 어떻게 그날 그렇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죄다 초대권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흐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절대 주변에 추천해줄 수 없는 연극이다. 특히 <반고흐, 영혼의 편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혹시 책을 안 보았고, 고흐의 생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있을 수 있으려나? 글쎄, 나는 둘의 대화와 관련된 그림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심취하려 노력했음에도 즐기기 어려웠으니 그 마저 장담할 순 없다.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관련 그림들을 뒷배경에 슬라이드로라도 비춰주었으면 덜 지루했을 텐데 싶었다. 초대권 들고 갔는데도 엉덩이 아프고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니 거금 3만원을 들여 보러 갔더라면 억울해서 펄펄 뛰었을 거다. 언제부턴가 연극 보는 일이 드물어진 건, 뜸해진 나의 문화생활 탓이기도 하지만 가끔 본 연극에 노상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고전을 졸려하는 나의 짧은 식견도 크게 작용하지만, 재미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재미없는 이 연극보다는 근처 밥집 찾아다니다 먹은 돈까스 집 <담(談)>의 낮은 천장과 바삭하고 양많은 돈까스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가격도 단돈 6천원. 근처에 가게 되면 담에 또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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