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연극 초대권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정보는 전혀 없이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는 고흐에 대한 연극이라는 것만 듣고도 당연히 갈 작정을 했다. 헌데 퀵으로 보내준 초대권과 함께 온 소개 전단지엔 테오와 빈센트, 단 두 사람이 등장하는 연극이며,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각색한 내용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만에 연극을 보는 것인지 까마득할 정도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웬만하면 즐겁게 감상할 다짐이 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일찌감치 만나 저녁을 먹고 좌석을 배정받고는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신뒤 8시를 기다려 드디어 극장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소극장 바닥 무대엔 두 배우가 쪼그려 앉아 있는 바람에 조금 놀라웠다. 예상과 달리 평일 저녁임에도 소극장은 거의 빈자리 없이 관객이 들어차, 연극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이어 그것은 나의 착각임이 드러났다.

임영웅 연출, 이호성/이명호 출연


빈센트 역할의 이호성과 테오 역의 이명호,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 편이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연기할 때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서도. 단순한 무대에서 각기 모노드라마를 하듯 수많은 사건들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두 형제의 격렬한 고통과 교감은 시종일관 팽팽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용은 너무나 뻔했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익히 본 내용 이외의 참신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변화 없이 단조로운 무대에서 들려주는 뻔한 이야기는 두 배우가 아무리 감정을 담아 호소한다고 해도 지루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식곤증 탓도 있었지만, 연극 자체는 정말 하품나게 재미 없었다. 나는 고흐에 대한 예의와 의리(?)로라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같이 간 지인 둘은 계속 졸았노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한 친구는 나갈 통로만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거라나.
그런데도 어떻게 그날 그렇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죄다 초대권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흐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절대 주변에 추천해줄 수 없는 연극이다. 특히 <반고흐, 영혼의 편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혹시 책을 안 보았고, 고흐의 생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있을 수 있으려나? 글쎄, 나는 둘의 대화와 관련된 그림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심취하려 노력했음에도 즐기기 어려웠으니 그 마저 장담할 순 없다.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관련 그림들을 뒷배경에 슬라이드로라도 비춰주었으면 덜 지루했을 텐데 싶었다. 초대권 들고 갔는데도 엉덩이 아프고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니 거금 3만원을 들여 보러 갔더라면 억울해서 펄펄 뛰었을 거다. 언제부턴가 연극 보는 일이 드물어진 건, 뜸해진 나의 문화생활 탓이기도 하지만 가끔 본 연극에 노상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고전을 졸려하는 나의 짧은 식견도 크게 작용하지만, 재미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재미없는 이 연극보다는 근처 밥집 찾아다니다 먹은 돈까스 집 <담(談)>의 낮은 천장과 바삭하고 양많은 돈까스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가격도 단돈 6천원. 근처에 가게 되면 담에 또 가봐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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