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2.12.06 스팅: Back to Bass Tour in Seoul 10
  2. 2012.02.03 영하 17.1도 6
  3. 2011.12.07 12월 6
  4. 2011.02.26 봄아 봄아 4
  5. 2011.01.09 모피 유감 8
  6. 2010.12.21 감기약 테라플루 10
  7. 2010.12.12 월동준비 21
  8. 2010.03.22 생각대로 되지 않아 12
  9. 2010.03.09 머피의 법칙 3
  10. 2010.02.11 거인의 정원 20

작년1월에 스팅의 심포니시티 투어 공연이 끝나고 나서, 후유증 비슷한 걸 앓으며 스팅 공연을 또 보려면 5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쉬운 마음에 한참이나 공연후기 올린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근데 누군가 자신있게 단언한 사람이 있었다. 스팅, 1년 안에 또 투어 다닐 거니까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라고. 뭔가 좀 아는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인 것 같아서, 한국엔 언제오나 스팅 공식 사이트를 종종 확인했다. 그러더니 진짜로 전세계 투어 스케줄이 차츰 잡혔고, 유럽과 미주를 죄다 돌고돌고 돌아 이스탄불, 베이루트 등지에 이어 아시아 도시 차례가 도래했다. 또 다시 한겨울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냐!

드디어 서울 공연 날짜가 잡히고 티켓오픈일이 공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온갖 준비를 마쳤으나 ㅠ.ㅠ 막상

티켓오픈 정시에 아무리 재빨리 손을 놀려도 자꾸 순서를 놓친 뒤  성공한 자리는 무려 19번째줄. 컴퓨터도 새걸로 바꿨는데 우쒸! 갈까말까 망설이다 플로어석 거의 제일 뒷줄에서 봤던 작년에 비하면야 엄청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암튼 속상했다. 공식 스팅 팬클럽 유료 멤버십 회원은 더 일찍 예매가능하다고 해서 무려 20달러나 내고 가입했는데, 다른 나라 예매링크는 죄다 들어가지는데 우리나라 예매링크만 먹통인 건 또 뭐냐! 공연 주최측이 어디였는지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각성하라 각성하라! 티켓값은 무려 198,000원이나 받아처먹고도, 멋진 포스터 한장 안 만들어붙였으며 제대로 된 플래카드 한 장 없다니! 공연장 입구를 알리는 싸구려 플래카드도 공연 끝나고 나와보니 이미 치우고 없었다. 현대카드가 슈퍼콘서트 빌미로 티켓값 엄청 올려놨다고 불평했는데, 그래도 걔네들은 시스템이라도 빵빵했구나 싶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판 25주년 기념 앨범 역시 아무래도 짝퉁이 의심된다! +_+

게다가 이번에도 공연날 웬 폭설?! 그나마 작년 공연땐 차타고 가는 중에 폭설에 길이 막혀 지각사태를 빚었던 반면, 눈이 미리 내려 처음부터 차를 버려두고 간 덕분에 일찌감치 올림픽공원에 당도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19째줄이라고는 해도 정가운데라 스팅의 표정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감지덕지. 폭설 때문에 30분 늦게 시작된 공연은 정말이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2012년 12월 5일 올림픽 체조경기장

우왓... 허스키하면도 동시에 낭낭한 목소리 그대로인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으나 스팅의 외모가 더 젊어진 느낌! 스리살짝 비치면서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로 강조된 저 근육질의 몸매를 보라. ;-p

심포니시티 투어 때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게 아닌데도 5인조 밴드의 완벽하게 꽉찬 연주와 편곡은 음향시설 열악한 체조경기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게다가 예전엔 짧은 인삿말도 고집스레 영어만 고집하더니, 요번엔 우리말로 '안녕 서울!' '고마워'를 외쳐준 스팅. 귀엽다잉...  ㅋ

중간중간 대놓고 관객의 호응과 떼창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행 하나는 요번엔 왜 이렇게 관객한테 요구사항이 많으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으나, 나로선 관객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스팅의 노력에 사람들이 잘 안따라주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우리 앞줄에 어린 딸 데리고 와 앉았있던 남자들 어쩜.. 박수도 안치고 계속 팔짱관람을 할 수가 있는지! 열살쯤 되보이는 딸아이는 심심해서 계속 핸드폰 게임만 열중하고;;; ㅠ.ㅠ)

예상 세트리스트를 찾아 미리 예습을 하긴 했으나 유럽쪽과 아시아 투어는 역시나 노래들이 좀 달라서 3분의 2만 적중했던 것 같다.  물론 예상했든 안했든 죄다 주옥같은 노래들이었지만서도... 어느덧 2시간 가까운 공연이 막바지로 치달아 앙코르로 Every Breath You Take을 죄다 일어나 떼창으로 부르다, 또 한번의 앙코르 땐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스팅이 직접 도미닉 밀러 대신 기타를 연주하며 Fragile을 불러줄 땐 아쉬움과 동으로 눈물이 다 핑 돌 것 같았다.

한국공연 공식사이트도 없어서 사진 퍼오기 힘들었다..

한국 관객이 워낙 열광적이라 특별히 앙코르 곡을 하나 더 해줬을지도 모른다는 흐뭇한 생각에 공연장을 빠져나왔는데, 중간에 만난 공연 스탭이 절대 양도할 수 없다는 세트리스트를 사진으로나마 찍어오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밀고 보니 ㅋㅋㅋ 다섯 곡의 앙코르 곡까지 죄다 짜여진 각본이었다. 결국 조삼모사였는데도 뿌듯한 걸 어쩌란 말이냐.

어째 후기를 투덜투덜 불평으로 시작한 탓에 그날의 감동이 반감된 듯하지만, 각본이었든 아니든 22곡의 노래와 연주는 모두 훌륭했고 아름다웠다. 두말할 것 없이 올 최고의 공연! d^^b

체조경기장을 2층까지 거의 꽉 채운 관객의 면면을 돌아보니 뜻밖에도 젊고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공연때는 역시나 중장년 관객들의 비중이 엄청났던 것 같은데, 스팅의 매력을 이젠 젊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을까? 나이대가 좀 더 젊어진 듯한 관객층덕분에라도 머지않아 스팅의 내한공연이 또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었다.

아참.. 그나저나 스팅 팬클럽 공식 티셔츠는 신청한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왜 안오는걸까나... 한국에선 공연 사전 예매도 안됐으니 20달러 내고 그저 그저 반팔 티셔츠 한벌 받는 게 혜택의 전부라는 얘긴데... 끙. 다음 공연땐 입고갈 수 있기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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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7.1도

투덜일기 2012. 2. 3. 03:59

어제 서울 기온이 무려 영하 17.1도였다. 체감온도는 당연히 영하 20도가 넘는다고 했다. 2월 한파로는 55년만이라나 뭐라나. 내 기억으론 평생 겨울 날씨를 다 합쳐도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이런 날은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어야 좋을 텐데 하필 엄니 병원 예약일이었다. 시내 곳곳에 시동 안 걸리거나 시동 꺼져버린 차들이 널려 있다는 뉴스도 들었겠다, 이틀 전 쌓인 눈도 먼저 치워야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미리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6-7센티미터쯤 쌓인 눈을 걷어내는데 어휴... 털장갑 낀 손이 금세 시렵고 뻣뻣해졌다. 어이춰!! 그나마 단번에 시동이 걸려주어 어찌나 기쁜지 원.
 
낮이라 기온이 꽤 올랐는데도 온도 확인을 해보니 영하 10도. 거리엔 다니는 차도 드물어 원래 집에서 10-15분쯤 걸리는 병원까지 딱 6분 걸렸다. 히터에서도 간신히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문제는 주차권 뽑는 기계 앞에서 창문이 열리다 말고 잘 안내려가더라는 것. 눈맞고 나서 녹았던 물이 얼어붙어 아예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는 전에도 겪어봤으나, 이번엔 반뼘쯤 내려가다 말고 윙윙거리기만 했다. 켁. 강추위에 옥외역에서 지하철 문이 안닫혀 난리가 났다더니만 그 비슷한 현상인가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차문을 열고 주차권을 받았다. 그 추위에 한데 서서 주차권 뽑아주는 사람들 불쌍도 하여라...

오늘도 서울은 영하14도까지 내려간단다. 그렇게 춥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추위 속으로 나설 것이다. 문득 남극의 혹한을 묵묵히 견디느라 서로 어깨를 맞대고 모여 번갈아가며 온기를 나누는 펭귄들 생각이 났다. 따뜻한 방안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그래도 동면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나는 비유하자면 부모의 발등을 딛고 따뜻한 뱃속(영하 40도를 넘는 남극의 추위 속에서도 펭귄의 뱃속은 35도를 유지한단다;;)에 들어있는 철부지 새끼펭귄 쯤 되려나. 한겨울의 쨍한 추위가 한여름 더위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기록적인 한파 때문인지 나도 쨍하고 얼얼한 추위에 한 자락 제정신이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몇달치 먹이를 한꺼번에 먹어 몸을 불린 채 겨울잠을 자도, 봄에 깨어나면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 굶어죽기 직전이라는 곰탱이보다야 그래도 매일매일 타고난 식탐을 만족시키며 노동하는 쪽이 낫겠다. 아무렴. 그렇긴 해도 영하 17도는 좀 심했다. 주말부턴 풀린다고 했으니 부디 더는 무시무시한 추위야 오지 마라. 입춘이 바로 내일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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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투덜일기 2011. 12. 7. 20:34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눈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트리.
종교와 상관없이 불 밝힌 트리 장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 이젠 그런 감흥도 없이 12월을 실감하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병원 로비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
그러고 보니 아직 첫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날도 추워진다는데 예고없이 돌연 눈이나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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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봄아

투덜일기 2011. 2. 26. 04:19

4월을 넘겨 5월쯤은 돼야 지난 겨울의 잔해를 청산하는 게으름뱅이가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었다. 어느날인가 외출한 대낮의 햇볕에서 확실히 봄이 느껴졌고 두툼한 외투가 살짝 버겁기도 했다. 밤엔 다시 싸늘해지는 날씨를 모르는 건 아니므로, 외투를 다 치울 생각은 못하고 우선 두어개 먼저 세탁해 넣어두었다. 간만에 방청소 하는 김에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소형 난로도 스팀용 물통에 남았던 물을 빼버리고 바싹 말려 걸레로 닦아 두었다. 완전히 치우지 못한 건 순전히 난로를 통째로 넣어둘 큰 비닐봉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선식품은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 담아오고 그도 귀찮으면 아예 인터넷으로 장을 봤더니 집에 그리도 남아돌던 대형비닐이 완전 바닥났다. 이젠 재활용품 넣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간간이 50원 주고 비닐봉투를 사야할 판국이다. 몇년전 3월에도 폭설이 내렸던 게 떠올라 털부츠와 패딩부츠까지 상자에 담아 치우며 잠시 멈칫하긴 했다. 그러면서 다시 꺼내는 사태는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느낌상 올봄엔 그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 말로 산통이 깨져서 머피의 법칙이 발휘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어쨌거나 얇디 얇은 옷으로 요즘 날씨를 견디는 열혈 젊은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내 차림은 여전히 겨울옷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다니며 쉬 오지 않는 봄타령에 심술을 내고 있다. 급기야 오늘밤엔 기운이 뚝 떨어졌는지 집안 기운이 싸늘하다. 그동안 약간 내려놓고 지내도 멀쩡했던 보일러 온도계를 다시 올렸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시질 않아 급기야 지금은 곁난로를 다시 켰다. 작업실용 털신도 안 치우고 평소처럼 게으름을 부린 게 장하다. 결론은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원래 봄은 해마다 어렵게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려서 찾아온 봄은 또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자칭 봄형 인간인 내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나보다. 그러니 봄아 봄아, 이젠 그만 어서 와라.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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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유감

투덜일기 2011. 1. 9. 16:15

왕비마마와 내가 옷에 대한 취향이 사뭇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의견통일이 이루어진 부분은 모피 코트에 대한 거부감이다. 젊어서는 모피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특히 노년에 접어들면 모피, 특히나 밍크 코트 한벌쯤은 갖고 있어야 면이 선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므로, 엄마가 예순살 즈음부터는 겨울마다 나도 아버지도 계속 왕비마마의 의향을 물었다. 한벌 사줄 테니 골라보시라고 말이다. 한벌에 몇천만원까지 한다는 초고가의 모피는 못 사줘도 '까짓것' 몇백만원짜리는 사주겠다며 몇번이나 백화점엘 모시고 나가 입혀본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내심 갖고 싶은데 괜히 사양하는 '척'하는 거라면, 백화점까지 가서 입어본 다음에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실 것이라는 게 우리의 짐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억지로 걸쳐는 보았으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원래 우리 모녀는 웬만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을 잘 입어보지 않는다. 입어보고 나면 소심한 성격에 점원에게 미안해 마음에 안들어도 얼떨결에 사버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모피 코트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왕비마마의 거절 이유는 우리가 듣기에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첫째로는 불자로서 수백마리 짐승을 죽여 만든 옷을 걸치고 절에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둘째로는 당신 몸이 뚱뚱해서 그렇게 짐승털가죽 옷을 입은 본인의 모습이 한 마리 곰처럼 흉측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말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모피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은 울 엄마밖에 없더라면서 그게 속이 상했는지 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계속 백화점 모피 매장으로 왕비마마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왕비마마는 밍크 코트 대신에 밍크털이 깃과 소매에 장식된 무스탕이나, 오리털, 모직 코트를 대신 사거나 차라리 아버지랑 세트로 등산 점퍼를 장만해 들어오셨다. 그러고 나서는 지난 몇년간 나는 왕비마마의 모피 취향이 변했는지 아닌지 떠보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올 겨울, 왕비마마의 나들이라고 해봤자 한달에 한번 동창모임 아니면 절에 가는 것 이외엔 죄다 병원 정기검진이긴 하지만 노친네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밍크 코트'를 보니 새삼 또 찔려 왕비마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이젠 밍크코트 한 벌 입으시지, 라고. 그랬더니 단박에 싫으시단다. 더 뚱뚱해보일 거라나. 그럼 살 빠지면 입으실 거냐고 했더니 그도 아니란다. 오히려 입고 싶으면 너나 입으라고, 통 크게도 한벌 사주시겠다고, 요즘엔 젊은 애들도 많이들 입나보더라고, 한 술 더 뜨는 거다. -_-; 징그러워서 개털도 잘 못쓰다듬을 뿐더러, 특히 실감나게 생긴 밍크털은 더 소름끼쳐서 소매나 깃장식도 못 견딜 판국인데 무슨!

이렇게 모피 혐오증 환자처럼 굴고는 있지만 나도 짐승털이 얼마나 따뜻한지는 알고 있다. 할머니 유품 중에서 스웨터 말고도 내가 또 챙긴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밤색 토끼털 목도리다. 다행스럽게도 토끼 눈과 꼬리까지 실물처럼 재현해놓은 그런 모양이 아니라(그런 거라면 무서워서 절대 갖겠다는 소리 안했을 거다. 할머니 밍크 코트를 외면했던 것처럼;;) 둥글게 코트 깃처럼 생긴 집게형 목도리라 모직코트를 즐겨 입던 시절엔 정말 거의 매일 두르고 다녔다. 비록 이제는 몇년째 장농에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죽코트 사면서 안에 입는 토끼털 조끼가 덤으로 생겨 입어본 적도 있다. 그나마 변명이라면 내가 일부러 모피를 추구해서 장만한 건 아니라는 정도지만, 토끼털은 괜찮고 밍크 코트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과연 나도 더 '늙으면' 취향이 바뀔지 그건 모르겠으나, 어려서는 모피가 징그럽다고 나와 동감하던 친구들도 중년에 접어들더니 슬슬 모피에 눈길이 가고 호피무늬가 좋아진다고들 고백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요즘 모피 코트 디자인이 제 아무리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해도, 깜찍 발랄하게 새하얀 모피를 입은 젊은 아가씨들을 보아도 전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 말이다. 호피무늬 싫은 거야 예전에도 포스팅했던 적이 있을 정도고! (좋아하는 배우가 배역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호피무늬 걸치고 나오면 호감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선호 배우 명단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얼마 전 혹독하게 추운날 잠깐 만나 밥을 먹었던 친구는 나 싫어할까봐 제일 뜨뜻한 모피 코트를 못입고 나왔다고 툴툴거렸다. 그 친구는 그 옛날부터 걸어다니면 반드시 팔짱을 껴야 하는데, 모피 걸치고 나온 날은 내가 내내 사모님이라고 놀려줄 뿐만 아니라 팔짱도 금지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 취향을 고려해 하루쯤 모피를 포기한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긴 것, 짧은 것, 색깔 연한것, 조끼형까지 일일이 갖고 있는 모피 코트를 들먹이며 효용성을 피력하는 사모님에게 결국 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존중해 줄 터이니 그만 입닥치라고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까마득한 옛날에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 혼수로 모피코트를 해드리고 저도 모피를 받았던 것 같다. 어차피 물려받을 거라 생각하고 좋은 걸로 바치기로 했다던가.

암튼 그렇게 뜨뜻하다는 모피 코트에 대한 왕비마마의 거부감이 진심인지 아닌지, 진심이었더라도 혹시 변하는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떠볼 작정이다. 왕비마마가 계속 싫다고 하시면 몹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하겠지만, 못 이기는 척 입겠다고 하셔도 매몰차게 친구에게 하듯 팔짱을 못끼게 하지는 말아야지 마음먹고 있다. 곰 한마리나 바야바 같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다니는 일은 정말 싫겠지만, 뭐 그렇게 또 따뜻하다니까... 원시 시대엔 겨울에 누구나 모피를 몸에 두르고 다녔을 텐데 뭐... 암... 혹시 내가 하도 질색팔색을 하니까 왕비마마가 모피 입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계신 건 아닌가 슬며시 걱정스럽기도 하다. 빤딱이 여우털 프린세스 라인 패딩을 사다 입으라고 강요 받았을 때 내가 난감했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취향을 노친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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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테라플루

투덜일기 2010. 12. 21. 01:44

감기에 걸려도 웬만해선 병원도 안 가고 약도 안먹고 버티며 '잘 먹어서 낫는' 식탐 요법을 주로 찾는 나지만 '레몬차처럼'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감기약이 있다니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제부터 콧물이 심해 줄줄 흘러내리지 않으면 코가 꽉 막혀 제대로 호흡이 곤란한 지경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먹어보겠단 생각도 안했겠지만 말이다.

요즘 그 감기약이 유행(?)이라지만 과연 우리 동네 약국에서도 팔려나 약간 의아했는데, 확실히 인기품목인지 "테라플루라는 감기약 혹시 있나요?"라고 예상 질문까지 연습하고 간 것이 무색하게도 약사 바로 앞 카운터에 가격표까지 붙은 채 따로 진열되어 있어 말 한 마디 없이 살 수 있었다. 밤과 낮 용으로 나뉘어 한 상자에 각각 6천원.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종합감기약 종류는 10알 한 상자에 2-3천원쯤이면 살 수 있는 데 반해 차 형태라서 아무래도 좀 비싸군 싶었다. 

어쨌거나 얼른 물을 끓여 찻잔에 담아 한 봉지 타 마셔본 첫 소감은 '맛없다!'였다. 레몬차 맛이 나기는 하는데 뒷맛이 몹시 쓰고 떫은 느낌. 인공적인 단맛에 뒤이어 섬뜩한 쓴맛이 파고드는 애들 감기약 시럽과 비슷한 맛이랄까. 으윽. 큼지막한 알약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도 못할 노릇이지만, 나로선 그 달달씁쓸텁텁한 감기약을 차로 한 잔 다 마시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차라리 한번에 꿀꺽 삼키는 알약이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음) 하지만 벨로도 처음엔 맛 없어서 외면했다가 두번째 다시 시음한 뒤 맛있다고 여겼다니 나도 첫인상에 너무 얽매이진 않기로 마음 먹었다. 첫술에 배부르랴. 내가 걸린 감기의 주요 증상은 어제부터 두통과 콧물, 코막힘이었는데 약을 먹고 나선 일단 코막힘 때문에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던 상황은 좀 나아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콧물은 금세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4-6시간 간격으로 먹으라는 복용 설명에 맞춰 인상을 팍팍 써가며 두잔째 마시고난 지 세 시간쯤 지난 지금, 한 시간 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콧물의 공격으로 계속 팽팽 코를 풀어대고 있다. 나에겐 별로 맞지 않는 감기약인가? -_-;; 실은 제약회사를 탐탁지 않아 하는 나의 심리가 약효를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약을 타서 마시기 전에 복용 안내를 확인하다 보니 제약회사가 하필 '노바티스'였다. 일찌기 장 지글러 선생께서 탐욕스러운 다국적 제약회사의 선봉으로 고발한 바로 그 회사란 걸 알고 나니 어찌나 기분이 찝찝하던지. 하기야 유명 제약회사 치고 탐욕스럽지 않은 데가 없지만, 노바티스는 특히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으로 전세계적으로 치사한 짓을 벌이고 있는 곳인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백혈병 환자들이 청원한 가격 인하 청구 때문에 소송중일 거다.) 약에 대한 믿음이 발휘하는 플라시보 효과가 최소한 30퍼센트나 된다는 걸 감안하면, 노바티스에 대한 불신과 마뜩찮음이 약효에 어느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ㅋ (언제부터 그렇게 정치적인 걸 그리 꼼꼼히 따졌다고!)

하긴 아래 포스팅한 네스프레소 기계도 말 나온김에 정말 확 질러? 싶은 충동에 좀 더 알아보니 네슬레에서 만든 거라고 했다. 네슬레 또한 가난한 나라에서 분유로 장난 치고 노동자 핍박하는 악덕 다국적 기업이라는데, 정치적으로 상당히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클루니가 그런 회사 광고를 찍었다니 급 실망스럽기도 하고, 과연 모르고 찍었을까 알고도 그냥 찍은 걸까 마구 궁금해졌다. (하기야 나도 <탐욕의 시대>를 읽기 전엔 인스턴트 커피 땡길 때 맥심 커피 대신 꼭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를 샀었으니 남 말 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어쨌거나 나는 몰랐으면 모를까 알았으니 훗날 캡슐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게 되더라도 네스프레소는 사지 못할 거다. 조지 클루니와 광고만 소비해 주는 수밖에. -_-; 

트랙백할 욕심에 감기약 얘기 쓰다가 갑자기 장 지글러 선생 타령하고 있는 걸 보면 코를 하도 풀어대 정신이 없는 건 분명하다. ㅎ 암튼 겨우 두 봉다리 마셔본 결과로는 별로 쓸만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며, 특히 가격 대비 효용을 따진다면 괘씸할 정도다. (병원 거부증을 참아내고 차라리 동네 의원엘 갔더라면 진료비와 약값을 다 포함해도 4-5천원 안쪽이었을 텐데! 아깝다, 만이천원 -_-;; 그리고 더더욱 아깝다, 매달 내는 나의 건강보험료 십몇만원 ㅠ.ㅠ)  그래도 이왕 산 거, 끝까지 마셔볼 작정이긴 하다. 밤 약은 잠 올까봐 아직 못 마시고 있는데 그건 좀 약효가 다르려나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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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준비

투덜일기 2010. 12. 12. 23:57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몰랐는데, 오늘은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6도였대고 내일모레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가 한파주의보가 발효될 예정이란다. 말만 들어도 부르르 몸이 떨리는 영하 10도라는 숫자에 벌써부터 어깨가 움츠러든다. 겨울만 되면 남반구로 도망치거나 동면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여름형 인간인 나는 통일이 된다고 해도 중강진 같은 데선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암튼 본격 겨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집안을 둘러보니 제대로 월동준비를 해놓지 않았다. 내가 작업할 때 발치에 놓아두고 쓰는 작은 전기난로야 없어서는 안될 한겨울 필수품이고, 선풍기처럼 생긴 온열기는 내놓아도 거의 쓰는 일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꺼내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데 말이다. 올초에도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 봄이 다 지나가도록 난로를 방치하다 간신히 넣어두었는데, 계절을 바꿔 이어지는 게으름은 노상 내 뒤통수를 친다. 겨울용품은 이상스레 봄기운이 완연한 뒤에도 잘 안치우게 되서, 자동차 털방석도 봄에 남들이 눈치 줄 때까지 깔고 다녔다. 오래 된 차라서 요즘 신형 자동차처럼 자동차 시트에 열선이 안깔려 있기 때문에 나처럼 추위로 엄살 떠는 인간은 털방석이 필수인데, 그동안은 엉덩이 시려운 줄도 몰랐구나야. 

아파트 같은 데와 달리 낡은 주택은 구석구석 찬바람 새어들어오는 데가 많아서 원래는 엄마 방 문풍지도 갈아 붙였어야 했다. 창틀과 창문까지 새로 단 내 방과 달리 왕비마마 방 창문은 단열이 영 시원찮기 때문이다. 나야 아무리 추워도 매일 잠깐은 창문을 열어두어야 숨쉬기에 지장이 없지만, 방문으로 환기시키면 된다고 주장하시는 왕비마마의 방은 아버지 계실 땐 아예 겨우내 밀봉하기도 했었는데, 그것까지 내가 도맡기엔 일이 너무 크다. 그래도 작년엔 스티커 떼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문풍지 사다가 창문틈을 죄다 막아 드렸건만 올해는 정말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난로를 틀어대서 전기요금을 더 내든, 보일러를 틀어대서 가스비를 더 내든 전체 난방비로 따지면 그게 그거니까 겨울엔 그냥 절약하지 말고 마음 편히 따뜻하게 살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겨울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고 뭐고 일단 사람이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추우면 난 정말 살기가 싫다. ㅠ.ㅠ) 영하 10도를 넘어가면 온종일 휭휭 돌아가는 낡은 보일러도 쯤 불쌍할 정도다.

사람의 체온이 참 훌륭한 난로여서 넓지도 않은 집이건만 오도카니 두 모녀가 서성거릴 때는 똑같이 보일러 온도를 맞춰놓아도 어쩐지 썰렁한 느낌인데, 동생네가 놀러오면 금세 후끈후끈 열기가 감돈다. 애들이야 워낙 에너지로 똘똘 뭉친 불덩이라 쳐도, 그러고 보니 제일 뜨거운 인간난로였던 아버지가 계실 땐 세 식구라도 그렇게 춥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양털 실내화를 못 벗는 날씨에도 아버지는 반팔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시는 양반이셨으니 오죽할까. 하기야 3년 전만 해도 이런 월동준비 따위엔 신경조차 안써도 되는 편한 팔자였구나. "아빠, 춥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만이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게 이런저런 귀찮음을 피하려는 이기심 때문일까봐 문득 죄스럽다. 스산한 마음엔 그저 보일러 온도나 올릴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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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나의 단점 가운데서 혹자는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 한다. 나도 잘 알고 싫어하는 단점이다. 소심함, 우유부단함과 함께 세트 메뉴로 몰려다니며 종종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니까. 심지어는 앞으로 해야할 일,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여러 경우의 수대로 홀로 상상해보고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미리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러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저러저러한 말로 대꾸할 테고 또 내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면 저러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다가 버럭, 있지도 않은 사건에 꽁해져 마음에 응어리를 맺거나 홀로 이유없이 화를 내고 앉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밀린 일이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 건 너무도 뻔한 게으름 때문이라고 쳐도, 하루 일정 계획해 놓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이며, 한 이틀 푹 자고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입천장도 아직 너덜거리고, 요가 넉달만에 열세살 조카는 키가 5센티미터나 크고 체중도 줄어 허리선이 생겨났는데 중년의 고모는 체중감량은커녕 늘어난 유연성 따위도 전혀 모르겠고, 일주일만에 아기발처럼 변한다고 선전하며 각질이 허물 벗는 뱀 껍질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법의 묘약 같은 각질제거제는 나한테만 효과가 나타나질 않으며, 4월이 코앞인데 아직 날씨는 겨울이고, 진심은 언제고 반드시 통할 거라 믿었던 오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제일 못마땅하고 속상한 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일년에 한번씩은 제법 긴 여행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유와 여건이 허락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중년의 삶이다. 

소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게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만날 생각만 길게 앞세우지도 말 것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맘 상해 괴로움에 연연하는 대신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으론 그게 잘 안된다. 성인이나 고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범하게 연연해 하지 않고 매사에 기꺼이 욕심을 놓아가며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탐욕 따위를 품지도 않았으니 생각을 조금만 덜하고 탐심도 조금 버리면 되련만...

3월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22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처럼, 앞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 황당하고 기막힐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나는 또 그런 예상마저 미리 생각해두겠노라며 미련을 떨 것이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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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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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투덜일기 2010. 2. 11. 23:30

제일 처음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 특히 신빙성에 도전을 받고 있는 나의 부실한 기억으론 <분명>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였던 것 같은데 자신은 없으니 (근데 왜 <분명>이라고 쓰고 싶은지) 찾아볼 마음도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구성해 놓은 내 기억속의 <거인의 정원>은 국어책에 들어 있었고, 학기초에 새책을 받아오면 달력 뒷장으로 책표지를 싸면서 먼저 교과서 들춰보는 걸 좋아했던 어린 나는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조금 흘렸거나 울뻔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내쫓는 바람에 봄이 찾아오지 않아 춥고 모진 겨울만 존재하는 거인의 정원과 나중에 욕심을 버렸는데도 결국 그 정원에서 쓸쓸히 맞이하는 거인의 죽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그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반갑게 다시 읽어보니, 어린 시절에 읽은 내용은 꽤나 각색된 것이었고 원작은 기독교적인 결론이라 솔직히 크게 실망스러웠다. 어린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비극적인 결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주변과 달리 드물게 눈이 쌓여 이상스레 녹지 않는 공간을 볼 때면 지금도 습관적으로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거인의 정원을 뜻밖에도 우리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설 때쯤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쌓였던 눈이 푹한 날씨에 순식간에 녹아 오후에 귀가할 땐 눈이 언제 왔던가 싶게 말갛게 씻긴 모습이라 내심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집앞 계단을 올라와보니 손바닥만한 마당엔 하얗게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더란 얘기다. 오후엔 분명 진눈깨비가 내리다 기온이 영상이라 비로 바뀌었던데 잔디밭도 아니고 콘크리트 시멘트로 뒤덮인 그 공간에 쌓인 눈은 왜 온전한 것인지. 갑자기 높은 담벼락을 둘러싸놓고 홀로 사는 욕심쟁이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등허리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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