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투덜일기 2010. 12. 12. 23:57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몰랐는데, 오늘은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6도였대고 내일모레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가 한파주의보가 발효될 예정이란다. 말만 들어도 부르르 몸이 떨리는 영하 10도라는 숫자에 벌써부터 어깨가 움츠러든다. 겨울만 되면 남반구로 도망치거나 동면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여름형 인간인 나는 통일이 된다고 해도 중강진 같은 데선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암튼 본격 겨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집안을 둘러보니 제대로 월동준비를 해놓지 않았다. 내가 작업할 때 발치에 놓아두고 쓰는 작은 전기난로야 없어서는 안될 한겨울 필수품이고, 선풍기처럼 생긴 온열기는 내놓아도 거의 쓰는 일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꺼내 놓아야 마음이 놓이는데 말이다. 올초에도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 봄이 다 지나가도록 난로를 방치하다 간신히 넣어두었는데, 계절을 바꿔 이어지는 게으름은 노상 내 뒤통수를 친다. 겨울용품은 이상스레 봄기운이 완연한 뒤에도 잘 안치우게 되서, 자동차 털방석도 봄에 남들이 눈치 줄 때까지 깔고 다녔다. 오래 된 차라서 요즘 신형 자동차처럼 자동차 시트에 열선이 안깔려 있기 때문에 나처럼 추위로 엄살 떠는 인간은 털방석이 필수인데, 그동안은 엉덩이 시려운 줄도 몰랐구나야. 

아파트 같은 데와 달리 낡은 주택은 구석구석 찬바람 새어들어오는 데가 많아서 원래는 엄마 방 문풍지도 갈아 붙였어야 했다. 창틀과 창문까지 새로 단 내 방과 달리 왕비마마 방 창문은 단열이 영 시원찮기 때문이다. 나야 아무리 추워도 매일 잠깐은 창문을 열어두어야 숨쉬기에 지장이 없지만, 방문으로 환기시키면 된다고 주장하시는 왕비마마의 방은 아버지 계실 땐 아예 겨우내 밀봉하기도 했었는데, 그것까지 내가 도맡기엔 일이 너무 크다. 그래도 작년엔 스티커 떼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 문풍지 사다가 창문틈을 죄다 막아 드렸건만 올해는 정말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난로를 틀어대서 전기요금을 더 내든, 보일러를 틀어대서 가스비를 더 내든 전체 난방비로 따지면 그게 그거니까 겨울엔 그냥 절약하지 말고 마음 편히 따뜻하게 살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겨울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고 뭐고 일단 사람이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추우면 난 정말 살기가 싫다. ㅠ.ㅠ) 영하 10도를 넘어가면 온종일 휭휭 돌아가는 낡은 보일러도 쯤 불쌍할 정도다.

사람의 체온이 참 훌륭한 난로여서 넓지도 않은 집이건만 오도카니 두 모녀가 서성거릴 때는 똑같이 보일러 온도를 맞춰놓아도 어쩐지 썰렁한 느낌인데, 동생네가 놀러오면 금세 후끈후끈 열기가 감돈다. 애들이야 워낙 에너지로 똘똘 뭉친 불덩이라 쳐도, 그러고 보니 제일 뜨거운 인간난로였던 아버지가 계실 땐 세 식구라도 그렇게 춥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양털 실내화를 못 벗는 날씨에도 아버지는 반팔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시는 양반이셨으니 오죽할까. 하기야 3년 전만 해도 이런 월동준비 따위엔 신경조차 안써도 되는 편한 팔자였구나. "아빠, 춥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만이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게 이런저런 귀찮음을 피하려는 이기심 때문일까봐 문득 죄스럽다. 스산한 마음엔 그저 보일러 온도나 올릴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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