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20.01.17 다시 설날 고민
  2. 2020.01.16 닷새만에
  3. 2020.01.14 죽을까봐 불안해 2
  4. 2020.01.14 서러움 일지 1월 14일
  5. 2020.01.13 새로운 증상
  6. 2020.01.09 서울역 무료전시 <전기우주>
  7. 2020.01.07 눈을 감으면 글씨가...
  8. 2020.01.06 양극성장애 2
  9. 2020.01.03 2019 늦은 정리

다시 설날 고민

투덜일기 2020. 1. 17. 16:56

최대명절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또 마음이 무겁다. 아니, 올해는 심히 더 무겁다. 재작년 가족회의를 거쳐서 차례는 연1회, 설날에만 우리집에 모여 올리고 추석땐 성묘를 가서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런데 작년초에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면서 설날 차례는 결국 못지냈다. 아파서 누웠다가 절뚝절뚝 거리면서 장도 보러 다니고 차례 음식 장만을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설날과 추석 연휴 모두 이불속에 누워 있거나, 편히 쉬면서 잘 보냈다.

1년 사이 나름 많은 일이 있었다. 남의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부갈등이랄까 '시'자 붙은 사람들과 성 다른 며느리의 시각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들이 몇 차례 이어졌고, 내가 아무리 '페미니스트' 시누이로서 중간 역할을 잘한다고 해도 역시나 나도 '시'자가 붙은 당사자이기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다.

암튼 여차저차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기고 남은 결론은 서로 '영원히' 안 보고 사는 것.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는 없는 셈 치고 살기로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많이 괴로웠지만 사실 나 역시 그 편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명절만 해도 노동의 상당부분을 내가 더 많이 하고 신경도 내가 더 쓰며 배려한다고 살았는데, 이젠 육체적인 노고는 더 많아졌어도 정신적으로는 더 편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한 명의 며느리도 공감했다. 이제 그 사람 눈치 안봐도 되서 마음 놓인다고.

그러나 셋이 나눠 하던 음식 준비중 삼분의 2를 내가 도맡는다고 해도 (녹두전은 이미 공산품으로 나온 걸 여럿 먹어보고 골라서 이미 냉동실에 사다 두었음!), 남자들에게 설거지며 청소 관련 일을 더 시킨다고 해도, 남은 한 명의 며느리 입장에선 그 외 잡다한 명절 노동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과연 공평한가.

명절 이외에도 우리집엔 두번의 제사가 있다. 조부모님과 우리 아빠. 제사란 것이 음력으로 날짜를 따지다 보니 거의 매번 평일이기 때문에, 멀리 지방 본사로 내려가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아들 하나는 제사 때문에 상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편도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님의 제사를 위해 손주며느리가 음식장만을 해와야 하는 의무는 옳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95년과 96년에 차례로 돌아가신 조부모님 제사를 이제 정리하는 것이다. 25,6년이나 정성스레 모셨으니, 울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이제 그만 되었다, 수고 했으니 그만해라... 라고 하시지 않을까. 여차하면 2007년에 돌아가신 아빠 제사도 그만둘 참이다. 10년 넘겨 지냈으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그것도 비혼의 딸이 노상 병들어 비실비실하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차례와 제사는 과연, 집안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지속되어야 하는가?

특히나 요번 겨울은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불안정한 환자 케어와 명절 준비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고난도의 미션 같다. 해서 요번 설날에 다들 모이면 또 한번 가족회의를 열어야겠다. 조부모님 제사는 이제 그만 지내기로 결정하는 것이 1안, 작은아버지가 모셔가서 조촐하게 지내시라고 하는 것이 2안. 몇달 전 심신 멀쩡하실 때 울 엄마가 제안했던 대로 절에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제사를 맡기는 것이 3안이다.

추석 차례를 없앨 때, 전통적으로 추석땐 다들 성묘만 한다더라, 집안 여자들의 노동이 너무 고달프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가부장제의 화신이 깃들었는지 큰동생과 작은아버지는, 옛날엔 하루 종일 3끼 다 먹고 헤어졌던 때도 있는데, 식구도 많이 줄었는데 (그땐 아버지의 오촌당숙님네 식구들도 10명씩 몰려와서 세배하고 그랬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고, 일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이젠 전날 와서 자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셋이 나눠서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 내가 열이 뻗쳐 뒷목을 잡았었다.  결국 "1년에 한번이든, 3년에 한번이든 힘든 건 힘든 거지! 내가 이제 늙어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아 그럼 그러든지... 억지 동의를 했던 거다.

그러니 요번에도 제사문제를 거론하면 또 어떤 의견과 난항에 부딪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고한 건 내가 악역을 맡아서 매듭을 지으리라는 결심이다. 엊그제부터 엄마가 징징거리며 반복하는 말이,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어디서 악독한 년이 와 있다"는 푸념이다. 맞다, 이제 나도 착한 딸 착한 누나 착한 조카 노릇은 그만하련다. 악독한 년, 싸난 년이 되어서 내 앞가림부터 해야지. 그렇지만 회의하자고 해놓고 강압적으로 통보하고 윽박지르는 느낌은 안 들도록, 부디 현명하고 지혜롭게 우아하게 내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이 허락한 진짜 의무는 생각 않고 이름만 남은 권위만 내세우려는 늙고 젊은 가부장들도 제발 유연한 사고를 품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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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만에

아픈 손가락 2020. 1. 16. 21:32

일이 바빠 두문불출하고 집에 처박혀 일만 하던 날이 오늘로 꼬박 닷새. 결국 초저녁에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다가 돌아왔다. 온종일 수시로 등뒤로 다가와 핸드폰이 어디가 이상하고, 딸년이 이상하고, 통장이, 자동이체가 이상하다고 자꾸 말을 거는 통에 원고에 집중도 안 되고, 말대꾸와 설명을 해주는 것도 한계에 도달해 폭발한 거다.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예전엔 내가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고 눈물로 호소하면 엄마는 정신줄을 놓은 와중에도 날 안쓰러워하면서 따라 울다가 조금 안정을 되찾고는 했었는데, 이젠 엉엉 따라 울긴 하지만 딸년인 내가 이상해졌다고,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저렇게 악독한 애가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내가 무섭다고 그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서로 한계가 온걸까.

배설이 필요하지만 결국 내 얼굴에 침뱉기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적어놓는다는 게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노트북과 책을 들고 뛰쳐나가 일부러 몸에 나쁜 정크푸드를 꾸역꾸역 먹은 뒤 스타벅스에 들어가 일감을 펼쳤지만, 결국 몇시간 못하고 들어왔다. 처음에 나갈 땐 엄마가 밥을 먹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밥도 약도 먹게 해야겠기에 꾸역꾸역 들어와 식탁을 차리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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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큰아들 전화를 받은 엄마. 십여분 전까지 작업실에 쫓아와 등 뒤에서 "어헝헝헝, 어떡해, 엄마 때문에 OOO(성까지 붙인 내이름)이 이상해졌어...엄마가 미쳐가지고 딸까지 미치게 만들었어.."라고 징징댄 게 무색하게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응, 엄마는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별 일 없어. 애들은 잘 있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 엄마 잘못이야, 니네는 잘못 없어...

 

우와, 저러니 얼핏 듣고 멀쩡하다고 할밖에. 나한텐 별별 헛소리 다 하시고 속을 뒤집으면서 왜 아들들한테는 멀쩡한 척 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웃으며 대꾸했다. 걔네들은 엄마의 본 모습을 모르니깐 괜찮다고 그래야지 그럼 어떡해? 걱정하잖아. 근데 넌 바로 옆에서 엄마 볼꼴 못볼꼴 다 봤잖아. 속일 수가 없지. 하하하.

기가 막혀서 나도 따라 웃었다.

 

잠자는 약 드시기 직전.

불안해, 불안해, 노래를 하는 엄마에게 대체 왜 그렇게 불안하냐고 물었더니 또 단박에 대답이 나왔다.

죽을까봐 불안해. 맨날 죽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 다 그짓말이야. 죽을까봐 불안해서 미치겠어. 그러니까 엄마 좀 감옥에 갖다 넣어. 경찰서에 연락해서 잡아가라고 그래.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다만 팔순에도 죽음이 두렵다는 게 솔직한 엄마의 마음이란 건 알겠다. 노상 살만큼 살았다고 중얼거리던 건 다 뻥이었단 말이지. 이상하다. 오십대인 난 지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당장 삶이 끝난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나름 줄곧 아주 열심히 주어진 여건 안에서 퍽 즐겁게 살았고, 남은 중노년의 인생이 그닥 기대되지 않는다. 무슨 영화를 더 보겠다고...

 

하여간, 한해에도 여러번 발병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울 엄마의 증상을 수십년간 기록해 면밀히 연구했더라면 뭔가 근사한 업적을 이뤘을 것도 같다. 아닌가? 발표할 논문엔 환자의 표본 수가 더 많아야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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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 상하는 일의 연속. 엄마이자 환자의 프라이버시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심정이 자꾸 올라온다. 나이들면서 나도 점점 옹졸해는 거겠지. 그러든가 말든가. 차곡차곡 적어놨다가 엄마가 멀쩡해지면 그동안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굴었다고 다 일러바칠테다. 물론 그러면 엄만 또 민망하고 창피해서 다시 병이 도지려나? 암튼...

 

열 뻗치게 만들었던 오늘자 엄마의 발언들

- 추워 죽겠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다. 니가 전기장판 다 갖다 치워서 그렇다. 엄마 얼어죽으라고? (초겨울에 치운 건 여름과 가을 내내 침대에 두고 쓰시던 찜질팩이고, 그거 대신 시트 아래 아예 전기요를 깔아드렸었다. 그렇다고 설명하고 방금 켜드리고 나옴.)

- 너 옷이 그게 뭐니? 꼴 보기 싫다. 그런 옷을 맨날 왜 입고 있느냐. (재작년 아울렛에서 만원짜리 회색 플리스 티셔츠를 팔길래 덜컥 사왔으나 XL 사이즈라 집에 와서 혹시 엄마 입으실랴우? 물었더니 싫다고 질색팔색을 하시길래, 너무 긴 소매를 자르고 끝에다 스누피와 우드스탁을 수놓은 옷이다. 당연히 나는 너무 마음에들고 따뜻한데, 엄만 원래도 내가 큰 옷 입는 걸 싫어한다. 결국 딴 옷으로 갈아입었다.)

- 머리도 꼴보기 싫다. 저번에 분명 미용실 간다고 그러더니만 계속 저러고 다닌다. 머리 안 자르고 어디 딴델 갔겠지. (하도 머리 길다고 타박이라 스프링끈으로 질끈 묶었더니) 저것 봐라, 또 이상한 걸로 머리를 묶었네. +_+

- 엉엉엉. 엄마... 엄마... OOO이 점점 이상해져, 나 어떡해 엄마...  (외할머니는 여든셋에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오이소박이를 담가 자식들에게 돌리셨다. 울 엄만 아프단 핑계로 살림 손에서 놓은지 15년도 넘었고, 딸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으면서!)

- (점심 먹으면서 하도 당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책하시길래 그럼 잘 됐네, 나 엄청 바쁜데 엄마가 점심 설거지 좀 해주세요, 그랬더니만 단박에) 싫어! 못해! 손시려워서 못해...

 

그래도 유일하게 희망적이었던 순간은...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엄마도 차 한잔 타다 드렸더니 "땡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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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증상

아픈 손가락 2020. 1. 13. 20:18

조울증이 심해지면 엄마는 매번 반복되는 말과 행동이 따로 있다.

일단 자책이 심해진다. 자격지심의 끝판왕이 되어 끝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타박한다. 경조증과 우울증이 겹쳐져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도저히 못참겠다고 내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 계속한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거의 24시간 내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으로 중얼거린다. 주로 자책을 하지만 주변 사물과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며 괴로워한다. TV도 이상하고, 방바닥에 먼지도 이상하고, 화분도 꼴보기 싫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도 이상하고... 식사 때마다  밥먹을 자격이 없으니 밥도 먹으면 안된다고 드러눕거나, 이웃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하기 때문에 절대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둥, (이유가 뭐든) 창피해서 이젠 절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2017년과 18도엔 말끝마다 '난 사실대로 얘기하는 거다'라고 우겨댔었다. 뜬금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저렇게 오래된 사진을 뭐가 자랑이라고 떡하니 집에 두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책장에 든 조카들 아기때 사진을 보면서도 다 큰 애들 사진을 저기 왜 두는 거냐고, 애들이 와서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대학병원에서 당뇨약과 혈압약을 6개월치씩 타다 두고 먹는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결국 장식장에 든 모든 사진 액자는 몇달간 엎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거'라면서 나는 물론이고 아들들, 며느리들에게까지 거침없이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덕분에 (니가 사업으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른다만, 맨날 그렇게 사치하다 거덜난다. 남편이 힘들게 벌어다 준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면 안된다, 안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환자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말이든 아니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솔직한 지적이었기에 ㅠ.ㅠ 엄마는 엄청난 인심을 잃었고 미운 털이 많이 박혔다. 나 또한 상처 받은 적이 수없이 많았었고.

 

그런데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엄마의 증세는 좀 다르다. 물론 당신 본인에 대한 자책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 의심증이 추가되었는데 그 의심의 주요 대상이 바로 나다. 어휴. 부산행 KTX와 숙소 예약을 인터넷으로 마쳤다는데도 도무지 그걸 못믿질 않나, 서울역에 가서도 고모들을 못 만날 거라고, 혹은 길을 잃고 기차를 놓칠 거라고 하질 않나, 친척분들이 내게 송금한 축의금을 내가 다 떼어먹을 거라고 하질 않나 (엄마 보는 앞에서 고모들을 증인으로 두고 축의금 봉투에 일일이 현금을 넣는 걸 보여주었음에도!), 부산에 자기를 버리고 올 거 같아서 계속 날 놓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고 하질 않나... ㅠ.ㅠ

 

부쩍 날 도둑년 취급을 해서 마음을 상하게 하더니만 급기야 엄마는 며칠 전 외출했다 돌아온 내 가방을 뒤졌다. 자꾸 거짓말을 하고 어딜 나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확인을 해야겠다나. 어휴.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딸에게 의존적이기만 하던 엄마는 어쩌다가 나에 대한 신뢰를 그토록 잃게 되었을까. 그간 엄마의 조울증이 심해질 때마다 짜증도 나지만 근본적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서 달래드리려는 태도였다면, 요번엔 너무 낯설고 무섭게 구는 엄마의 모습이 겁도 나고, 무진장 억울하고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난다. 입바른 소리는 잘하지만 근본적으로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정말 이상하고 괴팍하고 인색한 할머니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그래서 너무 슬프다. 

 

나 역시 일종의 가면우울증이랄까, 밖에 나가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즐겁게 지내려 노력하면서도 내 속은 점점 문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울 엄마의 정신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단 건 지인들도 대강 알지만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울 아버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아들도 결혼전엔 아픈 엄마를 목격했지만 20년쯤 나가 살았으니 그간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도 아니고 24시간 실체를 겪어본 것도 아니니까. 놀랍게도 엄마는 내 앞에서 길길이 날뛰다가도 아들이 다니러 온다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금세 다른 표정이 된다. '응, 아들? 엄마 괜찮아. 걱정하지 마...' 물론 의사 앞에서도, 남들이나 친척들 앞에서도 비교적 얌전해진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선 멀쩡해 보이려는 환자의 의지가 발현되는 건지, 놀라운 연기력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로선 순식간에 달라지는 엄마의 태도에 그저 배신감을 느낄 뿐이다. 아마도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을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나오는 건 그들도 이런 인간의 이면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 대한 심한 의심 이외에도, 엄마는 이제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과거엔 주로 '내가 미친년이라 큰 일이다, 미친 엄마 때문에 우리 딸이 힘들어서 어쩌나' 이런 푸념을 하셨는데 올 들어서는 계속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OOO(내 이름)이 이상하다, 쟤가 미쳤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내 눈이 이상하다고까지 하신다. 내 눈이 어떻게 이상하냐고 물으면, 달라졌다고, 그냥 이상해졌다고...  과연 새로운 이런 증상들의 의미는 뭘까. 일주일 전에 바꿔온 약(세로켈이 25mg에서 100mg으로 늘어남)으로 밤엔 전보다 약간 더 잠을 주무시고 있고, 눈감으면 나타난다는 글씨는 사라졌다고 하며 온종일 계속되던 중얼거림도 줄어들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엄청난 차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마지막으로 요번들어 엄마는 이상하게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신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고. 신발도 신고 나갈 게 하나도 없단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죄다 꺼내 보여드리기도 하고, 결혼식 갈 때 걸칠 조끼도 새로 사드렸는데도 여전히 오늘도 엄만 입을 옷이 없어서 못나간다고 푸념이다. 그나마 신발타령이 멎은 건, 1월 들어 내가 겨울 신발을 두 켤레나 사놓았기 때문이다. 대체 한겨울에 추운데 어딜 나갈 데가 있다고 (매달 셋째주 화요일에 동창모임이 있긴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는 조울증이 도져서 못나간 적이 많다) 매일같이 옷타령 신발타령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럼 같이 쇼핑하러 나가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하니,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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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한 기분전환용으로 핸드폰에 있는 사진 정리 겸 지난 기록.

 

2019년 12월 13일. 한양도성을 동대문부터 숭례문까지, 광희문 거처 목멱구간을 오르내리고도 뭔가 더 미진한 기분이 든다는 일행과 함께 서울로7017을 걸었고, 옛 서울역사에서 <전기우주> 전시를 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전기회로와 기계와 발전소 관련된 전시는 뭐 딱히 흥미롭지 않았으나, 최대한 옛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는 옛 서울역사는 건축물 자체로도 꽤나 볼만했고 둘러보며 뿌듯했다. 

 

재미난 광고포스터가 많았던 전시실
샹들리에는 안찍혔다만 귀여웠던 은방울꽃 모양 등과 가운데 기둥이 인상적
천장 스테인드글라스가 옛 문양일까 아닐까 한참 토론하다 최근 것이라 결론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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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전에 먹어야하는 약을 드시게 하느라 엄마와 한참이나 씨름을 하고 돌아왔다. 컨디션이 좋을 땐 매일 정해진 시간인 밤 10시에 '자기전'이라고 약봉지에 쓰인 약을 스스로 먹고 침대에 눕는 것이 엄마의 일과다. 하지만 요즘처럼 상태가 나쁠 땐 뭐든 일단 '싫다'고 거부하고 본다.

엄마, 저녁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을 자격 없어. 

엄마, 늦었어요, 약 드세요. - 싫어, 안 먹어. 먹어도 소용없는 약을 왜 맨날 먹으래. 이거 먹으면 내일 나 못일어나.

이젠 조근조근 달래는 것도 지쳐서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아 왜 또! 드시라고 하면 좀 순순히 드시라고요!

 

오늘 의사와 상담 때 엄마는 사뭇 우아하고 차분하게 그간 잘 못지냈고, 마음이 불안하고, 밤에도 잠을 못자는데 그 이유가 눈만 감으면 눈앞에 글씨들이 마구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내용의 글씨들이 총천연색으로 자꾸 보인다고. 거의 작년 이맘때도 엄마가 했던 말이다. 돌이켜보면 딱히 스트레스나 '이슈'가 없을 때 엄마 병이 심해지는 건 일년 중 늘 비슷한 시기였다. 과거엔 봄과 가을, 환절기를 잘 못넘기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한겨울에 증상이 가장 심한 것 같다. 일단 2017년과 2018년은 동일하게 11월부터 나빠져서 다음해 설날 즈음까지 계속 힘들었다. 2019년은 11월을 잘 넘기나 싶었는데 12월에 그놈의 부산 결혼식 때문에 그만...  하긴 결혼식이 아니었더라도 11월 중순에 엄마와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 때문에 사흘간 잠도 못자고 괴로워했었는데, 엄마는 깜빡깜빡 건망증 때문에 그 사건을 잊었던 듯 1, 2주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이 이야기는 으음... 그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인신공격이 될 수도 있으므로 좀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포스팅을 하든지 말든지 결정해야지.

 

암튼 올해로 팔순을 맞은 엄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질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고, 핸드폰 메모장이나 탁상달력에 메모를 해두기는 하지만 반복적인 증상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도 이제부터 좀 더 체계적으로 고민하려면 단편적인 메모가 아니라 좀 더 자세한 기록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부산에 갔을 때 밤새 잠 못자고 괴롭힘을 당하는 날 지켜본 고모들도 진지하게 엄마와 나를 위해서 뭔가 더 나은 방법을 찾아봐야한다고 조언했었다. 일단은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파악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원래도 노인들은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두뇌의 필터링이 떨어지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노파심'이란 말도 나왔을 테고. 늙을수록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없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게 마련이다. 그게 옳든 그르든 판단은 나중이고, 일단 말을 해놓고 보는 거다. 울 엄만 대단히 타인지향적인 성향이라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한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크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동네에서 못마땅한 이웃의 행동을 보면 간혹 지적은 하지만, 그러는 빈도수가 높진 않다. 그런데 가족들에겐 좀 다르고, 우울증에 대한 나름의 방어기제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소엔 듣는 사람 생각 않고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다. 예를 들면...

 

내가 뭔가 요란뻑쩍지근한 요리를 해바쳤을 때: 냄새는 엄청 요란하더니 맛은 그저그렇구나. (난 당연히 버럭.. ㅠ.ㅠ)

그런 효녀 세상에 없다고 내 칭찬을 하는 당신 친구들에게: 효녀 맞아, 근데 성격이 까칠해서 나랑 맨날 싸워.

번역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 줄 아느냐고 내 칭찬을 하는 친척들에게: 그렇죠, 맨날 밤새고 일하는 거 보기 안타까워요. 근데 벌이가 시원치않아서 혼자 먹고살기도 힘드나봐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있을 때 시집이나 가서 편히 살지 원 참... 

 

그밖에 아들들에게도, 며느리들에게도, 손녀딸에게도 엄마는 그간 말실수를 참 많이도 했었다. 엄마의 정신건강이 안좋을 때라서 좀 양해를 해달라고 하기엔 평소에도 입바른 소리를 너무 많이 쏟아내시기 때문에 말로 인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엄마 입장에선 저런 이야기들이 다 '사실'일 거다.


주변에서 내가 엄마를 '잘못 키워서' 혹은 '너무 오냐오냐 해드려서' 저렇게 의존적이고 의지박약한 노인이 되었다는 말을 왕왕 들을만큼 엄마는 그간 우울과 불안이 심해질 때마다 내게 크게 의지하고 눈에 안보이면 괴로워하는 편이었다면, 작년말부터 시작된 엄마의 불안증과 의심증은 조금 또 방향이 달라졌고 말로는 여전히 "딸 없으면 못산다, 난 딸 없으면 시체다"라고 주절거리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으로.

 

일견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은행계좌 관리나 세금 납부를 내가 인터넷뱅킹으로 해드리는데 그게 영 불안한 거다. 내가 엄마의 연금통장 비밀번호와 계좌를 다 알고 있으니 홀라당 훔쳐가버릴까봐서. ㅠ.ㅠ 슬픈 건 엄마가 컨디션이 좋으실 땐 태도와 말씀이 정 반대라는 거다. 엄마 돈이 다 니돈이야, 엄마 죽으면 다 너 주고 갈 거야. 엄마 죽기 전에 너 잘 살게 만들어놓고 가야할텐데... 뭐 이런 눈물겨운 딸걱정을 하실 땐 언제고 지금은 내게 눈을 흘기며 못 보던 신발이 있느니, 못 보던 옷이 생겼느니, 통장에 찍힌 자동이체 금액이 어떻느니, 당신 카드값이 이상하느니... 매일같이 괴롭히는 중이다. 

 

아무튼 요즘 기시감이 들어 나도 불안하다. 18년 연말과 19년 초에 갑자기 생겨난 다리 통증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기 직전에도, 엄마는 심히 정신이 병들어서 이렇게 나를 들들 볶았고, 게다가 나는 원고마감 중이었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었다. ㅠ.ㅠ 19년 연말과 20년 연초에도 여전히 엄마는 많이 아프고, 난 일로 심히 바쁘다. 다행인 건 지난 번의 경험으로 스트레스가 최고 수치에 달하면 두말없이 냉정하게 병든 엄마를 버려두고 밖에 나가 압력 추를 꺽어 폭발을 미연에 막는다는 점이다. 엄마가 더 징징대거나 말거나, 나부터 살고봐야지, 요샌 그런 생각을 1번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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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장애

아픈 손가락 2020. 1. 6. 16:46

양극성장애( bipolar disease)는 조울증의 다른 이름이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꿔부르면서 조현병과 조울증이 너무 비슷해보였나? 아니면 기분이 심하게 오르락거리는 사람에게 조증이냐고 놀려대는 질병 혐오발언 탓에 공식 병명을 달리 부르기로 학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걸까? 암튼 그 이유는 몰라도 새로 나온 몇몇 정신건강 관련 책을 보니 조울증을 죄다 '양극성장애'로 표현하고 있었다. 비전문가로서 그냥 단어만 봤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짚어본다면, 조울증은 '증상'의 느낌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 같은 반면에, 양극성장애는 '장애'를 붙여놓으니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항구적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다. 뭔가 치료는 불가능하고 장애 상태에 그냥 적응해서 살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공황장애(panic disorder),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disorder와 disease는 똑같이 '장애'로 옮기기엔 뉘앙스가 사뭇 다른 듯하다. disorder(dis-order, 질서가 무너짐, 엉망진창)는 신체적인 이상, 약간의 기능 장애 같은 느낌인 반면에 disease는 비록 그 어원이 편하지 않음/불편함(dis-ease)에서 왔다고는 하나 엄연히 '질병'이란 말이지. ㅠ.ㅠ

 

하여간 점점 분리불안 상태의 어린애처럼 구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를 혼자 감당하는 게 힘들어서 작년에 보험공단에다 요양보호 등급신청을 해보려고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에게 진단서를 부탁했더니만, '경도인지장애'와 함께 '양극성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물론 보험공단에선 울 엄마 정도의 인지능력과 조울증으로는 심사도 불가능하다고 전화로 통보해왔다. 아주 치매환자로 인정을 받아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심한 인지장애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있어야 한다고. 젠장.

 

조울증이나 우울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잘 아는 사람들(심지어 아들들도!)이라도 짧은 시간 우리 엄마를 지켜보면 대체로 엄마 멀쩡한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나도 미칠 노릇이다. 일년내내 약을 드시고는 있지만 어떤 빌미로 증상이 심해져 겉잡을 수 없게 되면, 엄마는 하루종일 중얼중얼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입밖에 내거나 온 집안을 서성서성 돌아다니거나, 집안 구석구석에서 오래된 서류나 우편물을 끄집어내 새삼 읽어보며 의심을 하거나, 딸이 눈에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홀로 중얼거리는 내용은 대체로 자책과 후회, 어후, 미쳤어, 미쳤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살면 뭐하나...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작년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나 밖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감시하고 뭔가를 훔쳐가려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심한 의심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었다. ㅠ.ㅠ 치매 환자들이 흔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해서 도둑으로 몬다는데, 울 엄만 치매도 아닌데 왜 나를 도둑년으로 모는 건지 원!

 

습관처럼 말로는 "XXX(내 이름) 없으면 엄마는 시체야. 너 없으면 엄만 못 살아..."라고 하루에 열두번도 더 되풀이하면서(까칠한 요즘 나의 상태로는 이 말도 딸에 대한 엄마의 가스라이팅 같아서 짜증스럽기만 하다. 도둑년 취급이나 하지 말든지! 나더러 뭘 더 어쩌라고!), 12월 들어서는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기에 이른 것! 학교에 수업 간다고 외출해도 거짓말 하는 거라고, 자꾸 거짓말 하고 대체 어딜 나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고, 친척 결혼식 축의금을 내가 송금받아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돈을 내가 다 떼어먹었다고 의심하시고! KTX 티켓을 모바일로 구매했다는 말조차 믿지를 못해서 사흘 내내 고모들을 동원해 설명을 해드려야 할 지경이었다. 부산 숙소와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두고 여행겸 떠나려던 부산 결혼식을 결국 이런 상황에서 다녀왔다는 게 정말 기적이다. 

 

기막히는 건 내 앞에선 눈을 흘기거나 부라리며 험악한 얼굴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의심하거나 발을 구르며 펄펄 날뛰다가도, 아들 전화를 받을 땐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아들? 엄마 괜찮으니까 걱정마...'라고 한다는 거다. 물론 친척분들이랑 통화를 할 때도 말투와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보다도 남들의 시선과 평판을 의식하는 분이라 그런걸까? 요번엔 나도 정말 지치고 지긋지긋하고, 열이 뻗쳐서 엄마의 본모습을 증거로 남겨두겠다며 동영상 촬영을 해두었다. (한두달 뒤에 엄마가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병증이 심했을 때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엄만 당신의 '미친 모습'을 찍어두었다며 당연히 길길이 화를 내시고 딸을 더욱 미워하고 있지만, 내가 오죽하면!  고모들 두분과 같이 떠난 부산에서 1박2일간 엄마는 집에서 보이던 모습과 달리 대체로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는데, 엄마의 고질병을 잘 아는 고모들도 드디어 밤사이 드러난 불안증과 의심병의 진실을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나를 불쌍히 여겼다. 나의 인내심이 놀라운 수준이라고. ㅠ.ㅠ 

 

양극성장애 환자의 사연들을 들어보면 정말 기막힌 경우가 많다. 조증인 상태에선 환자가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에서 자칫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을 확 팔아버리거나 고가의 물건을 막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년 전쯤엔가 울 엄마도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 바람으로 지갑 하나만 들고 뛰쳐나가선 막내동생 예식장을 계약하겠다며 동네에서 멀지 않은 특급호텔에 찾아간 적이 있는가 하면, 며칠 뒤엔 백화점에 가서 투피스를 서너벌이나 사서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그때 너무 속이 상해서 주치의에게 털어놓았더니, 집을 팔아버리거나 비싼 보석을 사들이거나 남에게 주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하더라.

 

조증 상태의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신체기능이 평소보다 좋아진다는 점이다. 시력도 청력도 더 예민해지는지, 보청기가 없어도 소리를 잘 듣고 안경을 쓰지 않아도 TV 자막이 다 보인단다. 다리가 아파 집안에서도 느릿느릿 걸어다니던 엄마는 종종 내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의심스러워서 와다다다 쿵쿵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오신다. 물론 저러다가 심신이 안정되면 드디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며칠 끙끙 앓아누울 게 뻔하고 하루종일 지껄여댄 혀도 다 갈라지고 입안이 헐어 한참 고생을 해야 할 거다.

 

다른 때 같으면 어서 약을 바꾸러 병원에 무작정 가보자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만도 한데, 요번엔 극심한 딸 의심증상 때문에 (정신병원에 자기를 처넣으려고 하는 술수란다) 원래 예약날자까지 꼬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이 한달여일만에 잡힌 정기 예약일이다. 정신과 약은 한꺼번에 투약량을 확 늘일 수도 없고 약을 바꾼다고 해서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도 아니므로, 사실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나보다 신뢰하는 의사의 위로와 이야기를 엄마가 잘 듣고 플라시보효과도 좀 생기길 바랄뿐.  연초부터 참으로 지치는 나날인데, 이러다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자꾸 밖으로 도망칠 일을 꾸미고 있다. 나도 숨은 쉬어야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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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늦은 정리

놀잇감 2020. 1. 3. 01:05

작년엔 블로그도 멀리했지만 대체로 뭔가를 정리하는 것 자체를 게을리했다. 삶이 엉망진창 뒤죽박죽 제멋대로 흘러간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탁상달력과 메모를 토대로 대충이나마 한해 기록을 남긴다.

 

= 등산 (그나마 열심히 했으니 1번으로 기록)

3월 도봉산

4월 섬진강트레킹, 강화도 답사

5월 청계산, 가평 호명산

6월 삼척 쉰움산

7월 문경 대야산

9월 북한산 14성문 종주 중 7개 

10월 홍천 금학산,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11월 순천 조계산

12월 아차산&용마산 

그밖에 두어개 이빠진듯 남겨두었던 서울둘레길 스탬프를 모두 찍어 완주했고 (아직 완주증은 못 받으러감 ㅎㅎ)

한양도성 한바퀴 순성도 2번이나 완료.

걸핏하면 도지는 무릎건초염(근막염)과 사라져버린 알량한 근력과 폐활량을 되찾아 다시 산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새해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1월 1일에도 동네 산에 산책 다녀옴. 

 

= 전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강산을 그리다: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

성북동 가구박물관 

세브란스 이승오 작가 종이공예화 

코엑스 서울 도서전

서울역 전기우주

2019년도 예정 전시를 20개쯤 적어두고 기대했는데 거의 못다녔다. ㅠ.ㅠ 호크니 전시를 결국 놓친 것이 가장 뼈아프다. 

 

= 공연

Slow Life Slow Live 첫날 스팅, 루카스그레이엄, 코다라인

이윤애 제자 음악회(벨로)

연극: 대학살의 신, 안나마수나마라, 그남자 그여자, 2019톡톡

뮤지컬: 팬텀

 

= 영화

나랏말싸미

토이스토리4

겨울왕국2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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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나의 아저씨 (뒷북으로 몰아서 봄) 

 

= 독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지음

패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할로우 시티/영혼의 도서관 - 랜섬 릭스 지음/이진 옮김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노지양 지음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이현정 옮김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고정아 옮김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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