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5.29 봄소풍 5
  2. 2019.05.24 산후 우울증 4
  3. 2019.05.23 자수 소품 2
  4. 2019.05.22 아마도 인생의 전환기 5
  5. 2019.05.17 유전이면 어쩌나 6
  6. 2019.05.09 엄마의 우울증 4

봄소풍

아픈 손가락 2019. 5. 29. 11:04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엄마는 고교동창들과 만나는 점심 모임엘 나가신다. 초창기엔 열댓 명쯤 되었다던 모임 인원은 이제 6-7명으로 줄어들었다는데 그래도 80세를 앞두었거나 지난 할머니들이 매달 꼬박꼬박 모인다는 건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건강하시단 뜻이니까.

모교의 첫 글자와 벗友자를 넣어 '신우회'라는 이름도 있는 이 모임은 해마다 봄엔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게 전통이다. 이른바 봄놀이 꽃구경. 벚꽃이나 튤립, 장미가 피는 철에 예쁜 꽃도 보고 미술관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드시는 형태였다. 올해는 지난 4월에도 벚꽃보러 가봤으나 음식점에 마땅히 먹을 게 없더라. 그러니 '각자 먹을 것을 간단히 싸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요즘 살짝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모임에 내심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엄마는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는 짜증을 냈다. 4월에도 갔는데 대공원엘 왜 또 가? 그리고 사 먹으면 간단할 걸 무겁게 왜 도시락을 싸오라고 그러냐고. 건강할 땐 절에 가야하는 볼일을 제끼고서라도 꼭 모임에 나갈 정도로 엄마에겐 우선순위가 높고 중요한 행사지만, 심신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엄마는 또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신다. 

귀찮아서... 자격이 없어서(무슨 자격?)... 친구들에게 민폐라서... 창피해서... 멀어서... '그것들' 잘난 척 하는 꼴 보기 싫어서.. ㅠ.ㅠ  그런데 요번엔 도시락 핑계를 댈 참이었다. 모임에 빠지고 나면 또 얼마나 아쉬워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는지 알기에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상태가 아주 심해 불안하면, 내가 먼저 엄마 친구분들께 연락해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요번엔 기분전환 삼아서라도 나들이를 성공리에 다녀와야 올 봄을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방에서도 다 들리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파악한 나는 슬쩍 떡밥을 던졌다. 엄마 도시락 뭘로 싸드릴까? 깁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와, 완전 봄소풍이네. 진짜 부럽다.

정말로 모임에 나가기 싫었다면 엄마는 다 싫다며 거부의 몸짓으로 침대에 드러누우셨겠지만 ㅎㅎ 왕비마마의 선택은 샌드위치였다.  근데 너 귀찮을까봐 미안해서 그러지... 말꼬리를 흐리는 엄마에게 염려 말라고 나는 큰소리를 쳤다. 샌드위치가 제일 쉬워! 에그샌드위치 괜찮지? 재료도 집에 다 있고, 식빵만 사면 돼!

소풍 전날 달걀과 감자를 삶아 다지거나 으깨고, 양파와 오이를 채썰어 소금에 절여 꼭 짠뒤 마요네즈를 넣어 일단 밤에 샌드위치 속을 만들어놓았다. 그러고는 식빵과 초콜릿을 사러나간 내게 어디 갔느냐고 엄마 카톡이 왔다. 노상 툭탁대는 엄마와 나는 말로 잘 못하는 미안해, 고마워 따위의 말을 그나마 카톡으로 주고받는다. 평소 막 반말로 떠들어대는 나도 카톡에선 약간이나마 더 유순해지는 듯.. ㅠ.ㅠ

다음날 아침 마요네즈와 홀머스타드를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꺼내먹기 좋게 유산지에 싸서 도시락을 완성했다(아침에 바삐 서두르느라 인증샷 찍는 걸 까먹음. 아까비;;). 과일도 참외 오렌지 포도 골고루 통에 담고, 평소 금기 음식인 초콜릿도 간식으로 챙겨 물과 함께 베낭에 잘 넣어드렸다. 어린 시절 소풍가는 날 김밥과 과자를 싸주던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뭔가 뭉클하고 뿌듯한 기분. ㅎㅎ 어쩐지 기분이 묘해서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드세요.. 했더니 엄마 왈. 싸우긴 왜 싸워? 각자 자기 꺼 먹으면 되지. ㅋㅋ

친구들에게 민폐라고 염려하는 건 길치인 울 엄마가 곧잘 모임 장소로 가다가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거나 만남 장소를 헷갈려 지각하는 일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길 헤매는 울 엄마를 친구들이 데리러 나오시기도... 그런 날이면 엄마는 당신이 길치가 된 건 맨날 내가 차로 모시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너무 편해서 호강에 겨워 요강에 X싸는 셈이라고, 내 탓과 함께 습관처럼 자책을 하신다. 과천 서울대공원 가는 길은 환승 가까운 문 번호까지 하도 메모를 자주해 외울 지경이구만!

째뜬 느릿느릿 행동이 굼뜬 엄마가 한번쯤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는 상황까지 대비해서 요번엔 10시를 넘기자마자 노친네를 집에서 내몰았고, 무사히 대공원역에 도착한 엄마는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너 때문에 너무 일찍왔어! 12시까지 30분이나 남았잖아! 얘네들 언제 오냐...  

만남의 광장에서 잘 기다려보시라고, 분명히 엄마 친구들 15분 안에 죄다 나타나실 거라고 장담하곤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가 모임에 지각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12시 땡 하면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늬 엄마 집에서 몇시에 나가셨니? 엄마 친구들은 다 일찌감치 나온다는 의미!)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지나 카톡이 왔다. 친구들 만났어. 다들 와서 앉아있었네... 그럼 그렇지! 작전 성공. 

미술관 앞에서 도시락부터 까먹은 뒤 수다를 떨다가 장미원을 돌아보고 오셨다는 엄마의 봄소풍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근래 드물게 만보도 넘게 걸었다며 허리 아프다고 엄살은 심했지만, 본인도 대장정을 완수한 것이 나름 뿌듯하신 듯 그날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곤하게 주무셨다.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자도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점점 더 상태가 나빠지는데, 일단 하루라도 푹 자고 나면 바로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된다.  나들이 가서 햇빛을 많이 쪼인 것도 숙면에 도움이 됐을 테고...

엄마가 봄소풍을 다녀오신 건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이후 2, 3일은 '너무' 피곤하다며 침대와 물아일체로 보내는 날이 많았고 그러려니 봐드렸는데, 주말까지도 계속 집밖에 나가기 싫다는 핑계로 절에도 안 가시고 각종 수업도 빠지는 터라 순풍이 불던 모녀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꾸 누워만 있으면 근육 풀려서 더 못움직이신다고요!! 버럭버럭 나는 또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당신의 끼니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외출한 딸에게 시위를 벌이고... 에효... 어렵사리 이렇게 또 5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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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아픈 손가락 2019. 5. 24. 00:33

울 엄만 어쩌다 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딸로서 나의 최대 의문이다. 엄마 본인의 말로도, 외가 친척들의 이야기로도 가족력은 없다는데 엄만 대체 왜?

이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나 역시 조울증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잠재적 환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공포도 얼마간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에게 슬며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수년이 된 외할머니는 엄마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유를 '너무 착해서'라고 믿으셨다. 울 엄마가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 할 말 못하고 참다가 병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외할머니에겐 못되 처먹은 시누이였고 울 엄마에게도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사노동을 시켰던 고모할머니는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탓을 했다. 친정 살땐 그래도 웬만히 살았는데 시집가서 보니 시아버지는 엄하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맏며느리로서 남편과 함께 12식구를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탓이라나. 그래서 울 엄마가 아프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늬 아버지가 착해 빠져가지고 능력이 없어!) 친가 식구들을 욕했다.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나로선 또 의문이 생겼다. 나의 부모님은 고3때 동네 친구로 처음 만나 햇수로 8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1960년대 당시로선 꽤 드문 연애결혼파다. 애인이 대학 입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동안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땐 예비 남편감의 가난과 8남매의 장남이라는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어려서 내가 아빠의 어떤 점에 반해서 가난한 집 8남매 장남에게 시집을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엄만 장녀라서 그런지 맏며느리란 존재가 좋아보였다고 했다. 물론 막연한 상상과 실체는 엄청 달랐겠지.

하여간 예상 밖에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너무도 힘겨웠다면 결혼 직후 발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검찰청 공무원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에 첫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다시 복직했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낳은 뒤에도 곧바로 복직해 별일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문제는 나와 4살 터울인 막내동생을 낳고나서부터였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대신 엄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쫓아다니며 학부형 노릇을 해주었다는 넷째 고모와 막내 고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  울 엄마가 처음 조울증 증상을 보인 건 막내동생을 출산한 다음이었다고 한다. 검찰청 소속 첫번째 타이피스트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엄마는 당시 여직원의 정년이 31살쯤(헉! 겨우 만 30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최근 정신과 주치의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직업병으로 끝이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보이며 하신 이야기다.)  그래서 셋째를 낳은 뒤엔 복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출산 이후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듣고 보니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전후 관계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엄마는 과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복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야하는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심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요란한 굿 장면이 바로 막내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느 즈음의 일인 것 같다. 

요번에 고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하나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 정확하게 내가 몇살 때인지 좀 더 역사를 추적해보아야 하겠지만, 부모님은 첫딸인 나만 친가에 맡겨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분가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본 결과 '동쪽으로 이사를 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 근처인 광진구로 이사를 했다는 것! 물론 매주말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댁에 와서 자고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분가로 할머니댁에서 한참 살다가 3학년때 비로소 부모님댁으로 합류했다. 

무속인의 점괘가 맞았을리 만무하므로, 물론 엄마는 광진구로 분가를 한 이후에도 계속 심하게 아팠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린 삼십대 부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넷째 고모가 걱정스러워 분가한 집에 가보면 엄마는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늘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병든 아내 수발이 괴로워 연일 소주를 마셔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엄마의 조울증 발병에 관한 실마리 하나를 푼 셈이다. 가끔 뉴스에도 보도되지만 산후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정말 무서운 병이다. 느즈막히 결혼을 해 마흔살인가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의 친구 역시 출산 후 무서운 우울증을 앓았다. 저절로 모성애가 뿜어 나오기는커녕, 너무도 무기력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고 괴로워 나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기의 안전을 위해 친구는 시댁에 아기를 보내 백일까지 떼어놓고 치료를 받았다.  울 엄마가 평생 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친구 역시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몇년에 한번씩은 다시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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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소품

놀잇감 2019. 5. 23. 12:38

가느다란 바늘을 쥐고 자수를 놓는 건 손목 건초염에 대단히 좋지 않은 행동이다. DIY 바느질이 뜸해진 이유도 밤을 꼴딱 새가며 뭐 하나를 만들고 나면 며칠 고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째뜬 그래서 자수도 요샌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사진 정리하면서 아예 날려버리기엔 아쉬운 자수 작품(?)의 기록을 여기에라도 옮겨놓아야겠다. ^^; 인스타그램엔 종종 자랑했는데, 그마저도 시기를 놓치면 기록이 사라져 아쉽다. 내 물건은 괜찮은데 선물한 건 특히.

1. 톡톡한 면의 질감도 모양도 마음에 드는 편한 티셔츠에 찰리 브라운 얼굴을 수놓아보았고, 결국 지난 가을겨울 최애 티셔츠로 등극했다. ^^; 

 

2. 수국과 라일락꽃을 담은 손수건. 처음엔 나도 한번 가져보겠다고 시작했으나... 고마운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너무 예쁘지만 아까워서 쓸 수도 없는 물건을 왜 고생스레 만들었냐고 핀잔을 주었다. ㅎㅎ

 

3. 컵받침. 예정대로였다면 1월 초에 베트남 친구에게 놀러갈 작정이었고, 그때 친구부부에게 선물로 가져가려고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이 취소되면서 ㅠ.ㅠ 나중에 함께 가져가려던 마른 나물이며 멸치 따위와 함께 우편으로 부쳤다.  물고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의미 깊은 상징이라고 해서 일부러 고른 도안이다.

 

5. 너구리 브로치. 이건 인스타에도 올렸지만 그래도 귀여우니깐 한번 더 자랑. ㅋ 막내고모의 주문에 따라 나름 작품 속 너구리를 표현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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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이긴 개뿔, 지금 돌아보면 전과 변함없이 유치하고 철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인간 나이 마흔쯤 되면 이루어놓았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민망하고 위축되었을 뿐. 그렇게 또 어영부영 사십대를 보내고 나니 왜 옛날 사람들이 인생을 10년 주기로 달리 표현하고 전환점을 삼았는지 알 것도 같다.

인간에게 오십이란 나이는 확실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다. 물론 삼십대 때도, 사십대 때도 밤샘 작업을 했다거나 몸을 많이 쓸 일이 있었을 때, 피로도가 전과 달라서, 아이고 몸이 하루가 달라...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신체의 쇠락이 막연한 서글픔과 약간의 피로감이었다면, 오십을 넘어서 느끼는 신체 변화는 어찌나 극적인지 '노화는 결국 질병이었구나' 깨닫는다. 

갱년기는 남녀 모두 겪는다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차츰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다 폐경(혹은 완경)에 이르면 너무도 낯선 심신의 변화를 겪는 것 같다. 가끔 자긴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갔노라고, 안면홍조증이나 열감도 전혀 없었다고 자신하는 이들이 있어 안심했었는데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그런 증상 또한 평생에 한번은 꼭 겪어야하는 건지, 60대에 이르러 새삼 갱년기 증상으로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사십대 후반과 오십대 초반에 다른 더 무서운 질병의 형태로 발목을 잡히는 걸 목격한다.

작년, 재작년부터 지인들 가운데 암환자가 부쩍 늘었다. 한 친구는 사십대에 조기폐경을 하고도 아무런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귀찮은 생리에서 자유로워지니 정말 세상 편하다고 한두 살 어린 우리들에게 어서 편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작년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다. 두살 어린 친구도 얼마 전 자궁과 난소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다섯살 어린 후배 역시 조기폐경인가 싶어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이었고 복막에도 전이가 되어 아직 수술도 하지 못하고 항암중이다. 두 살 많은 선배 한 사람도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 어휴. 

건강한 줄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암환자로 전락한 지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들 안면홍조라든가 겨울에도 갑자기 더워져서 얼음물을 들이키고 선풍기를 틀어야한다는 열감 같은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그냥 오십이란 나이를 수월하게 맞이하거나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와 9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도 흔히 호소하는 갱년기 증상은 없었으되 면역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원인불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오십대 중후반 몇년간 혹독하게 아팠다. 나 역시 2, 3년 전부터 수족냉증을 차츰 떨쳐버릴 만큼 체온이 좀 올라간 듯하고 더운 걸 못참게 되기는 했지만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후끈후끈 열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작년에 드디어 완경을 선언하며 이 정도면 나 역시 불편한 월경에서 자유로워진 걸 완전 기뻐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초에 갑자기 허벅지 통증으로 2달쯤 심하게 고생을 했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값비싼 검사로 병원비만 날렸을 뿐이다. 단일신경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그건 검사로도 알아낼 수 없다나. 투덜대는 내게 아는 의사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중병은 이제 거의 다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소소한 질병의 대부분은 원인조차 모르는 게 태반이라 진단만 제대로 내리면 치료의 절반은 된 셈이라고. 대학병원 의사가 내게 통증에 효력이 있는 소염진통제를 찾은 게 어디냐고, 감사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여간 다행이도 이젠 다리도, 소염진통제 때문에 뒤집어졌던 위도 거의 멀쩡해졌다. 통점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어서 살짝 무리를 하면 저기 아래쯤에서 스멀스멀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나지만, 성난 짐승 달래는 요령이 생기듯 나 역시 얼른 자세를 바꾸고 휴식을 취하고 염증에 좋다는 온갖 건강보조제를 삼키며 심신을 다스리고 있다. ㅠ.ㅠ 비전문가로서 내가 짐작하는 건 확실히 오십대에 접어들며 호르몬 변화 때문이든, 인체의 장기가 원시시대부터 입력된 DNA대로 수명을 다한 것이든, 모든 면역력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암세포는 체온이 내려갔을 때, 그러니깐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성이 높아지므로, 갱년기에 유독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밤마다 땀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각한 질병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흔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이 시기를 지나간다는 건 차라리 건강하다는 반증?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했는데 신체증상이 없으면 반길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을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발열반응을 보여야하는 건강한 세포들이 어딘가 다른 데 몰려가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나쁜 세포들과 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나처럼 이유없는 염증이 생기고, 누군가는 암세포가 몸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건강을 자신했던 주변 지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중병 환자가 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임을 안다해도 어떻게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산단 말인가! 

2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해보면, 체중과 근육량 때문에 성분검사에서 신체나이만 젊게 나올뿐 ㅠ.ㅠ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표재성 위염도, 약간의 빈혈도, 그밖에 몇 가지 증상들도 흔하게 다들 갖고 사는 거라지만, 막상 몇년 전 실비보험을  들으려 하니 퇴짜를 맞았다. 와, 나 겉포장만 멀쩡해보일 뿐 이제 보험도 못드는 몸이 되었네! 라는 생각에 어찌나 씁쓸하던지. 

건강염려증 환자로 살고 싶진 않으면서도 일단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자신감이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에 좋다는 어성초도 먹고, 새싹보리도 먹고, 비타민도 챙겨먹고, 가능한 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으로 바꿔보려 노력중이다. 일단 금세 피곤해져서 무리를 할 수도 없고!  ㅋ 인간은 결국 모든 나이를 처음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현재 나이에 적응이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목표같다. 달라진 심신에 적응할라치면 또 훌쩍 늙어버리는 걸 어쩌라고. 죽는 건 겁나지 않아, 죽도록 아플까봐 그게 겁나지. 내가 감히 깝죽대며 늘 입에 올리던 말인데 이젠 더 나이드는 것부터 겁이 난다. 인생의 전환점을 꼴까닥 넘긴 지금...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을 것은 확실한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심신을 괴롭히는 복병들이 나타날까.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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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아니 조울증 환자 엄마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처음엔 아픈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고 사춘기땐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었고, 그다음엔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엄마처럼 정신과 환자가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있을 때도 아니었으니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얻기 어려웠다. 시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국 엄마의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를 10년도 넘게 담당하던 민OO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유전되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단박에 나를 안심시켰더랬다. 전문가의 확인으로 내심 안도했던 시기가 몇년은 되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우울증 및 조울증과 신경증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고, 저자마다 조금씩 주장은 달랐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병이 촉발되는 건 모든 질병이 다 똑같단 얘기.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딸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공황장애와 불안증, 우울 인자를 물려받았다지 아마. 토할까바 두려워 유치원 등원하는 게 공포스러웠던 걸 시작으로 저자의 불안증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던데, 울 엄마의 조울증 투병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엄마와 외가 친척들이 아는 한 울 엄마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옛날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병은 유전이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 삼남매도 비록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다. 하긴 중년까지 잘 버텼으면 앞으로도 괜찮을까?

째뜬 난 엄마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싶진 않아서 어려서부터 방어기재를 작동시켰던 것 같다. 엄마처럼 하고픈 말을 무조건 참지는 말아야지. 남들 시선과 의견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지.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때면 에라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는 연습도 해야지. 화병이 나도록 착한 사람 노릇만 하지는 말아야지. 때로는 사납고 표독스러운 쌈닭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까발려야지...

어쩌면 남들에게 부담스러운 정보였을지 몰라도 난 누구를 만나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 보이는 이들에겐 내가 처한 상황, 특히 엄마의 조울증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워낙 자주 앓으셔서 ^^; 아픈 엄마를 온 가족이 번갈아 돌보려면 주변에 티를 안 낼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을 땐 약속을 펑크내야 한다든지,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덜했던 시절부터 환자의 가족인 난 아무래도 주변에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발견하는 '촉'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불면과 무기력감, 자학하는 태도까지 보이는 친구나 지인을 보면 열심히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우울증 약으로 도움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우울증은 뇌에서 나쁜 물질이 나와서, 혹은 좋은 물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래! 초기에 빨리 시작하면 약으로 완치 된대! 일단 병원에 가보자...

돌이켜보면 그들 가운데서 부모님이나 조부님 세대에 증상을 앓은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주로 마음 약하고 소심하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약을 계속 먹고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되지 못해 혈압약이나 당뇨약 먹듯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는 지인도 있고, 말끔히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사는 지인도 있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말았다가 치료에 갈팡질팡하는 지인도 있다. 

기비혼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우울증 환자 지인들도 혹시나 자식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확실히 우울감은 전염되기 쉽다는 거다. 점점 와병 기간이 길어지는 엄마 옆에서 시달리다 보면 나 역시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힘들고 슬프고 암울하고...

작년 늦가을부터 겨우내 엄마 상태가 나빠져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내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때 설상가상 다리 통증이 생겼고, 홀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찾아가 덜컥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땐 나의 정신 건강 상태도 정말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정신이 온전치 않아 사사건건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종일 진통제 기운에 누워있다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징징 아파 울면서 끼니를 챙기노라면 어휴... 짐스러운 엄마랑 나랑 둘이 이 세상에서 확 없어져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어머 이거 우울증 환자의 반응인데! 반성했지만... 

당연히 조울증의 유전 여부에 대해선 의학전문가도 아닌 내가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다만 내가 현실에서 겪고 느껴왔던 경험상 100% 유전되진 않겠지만 유전인자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정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든 털어놓고 주변에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면 되겠거니 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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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몇몇 인물 중 한 사람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을 읽었다. 어느덧 80세가 된 투사 활동가의 이야기 속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나와 연결된 듯한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사주관상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딱 '역마살'이라고 표현할 만큼 평생 돌아다니며 산 작가의 인생도 신기했고 (나 역시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뿐 수시로 품는 여행 로망을 역마살 탓이라 여긴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작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별 내용도 아닌데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구절은 바로 이것.

"어머니는 슬픈 영화나 상처 입은 동물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우울증이 도질 수 있었다." - <길 위의 인생> 204쪽.

와, 우리 엄마만 그러시는 게 아니구나! 이런 동병상련? 위로받는 느낌? '우울증'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 기복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병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서구에서도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빴던 6, 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당연히 별것 아닌 나약함의 표상이거나 괜한 투정이거나 '귀신의 소행' 쯤으로 생각됐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이 굿하는 장면이고, 무섭게 생긴 무당이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우리 엄마에게 살아 있는 닭을 던져 푸드득 날아올라 엄청 무서웠던 게 생각난다는 고백을 서른 살 무렵 처음 털어놓았을 때 이모가 엄청 놀라셨던 적이 있다. 그거 너 서너 살 때 일인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며. 시집살이가 고됐던 게 원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마음에 병이 든 엄마 상태를 외할머니는 굿을 해서 해결하려 했던 모양이다. ^^ 물론 무당굿은 우울증에 아무런 효험이 없었고, 엄마는 결국 당시 드물게 신경정신과 진료를 했던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OOO박사의 초창기 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우울증과 싸워온 역사가 최소 50년 가까이 된다는 뜻이고, 어린 시절부터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엄마의 우울증(조울증)과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수많은 의문에 휩싸였다. 첫번째 의문은 우울증 발병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 외가 쪽에선 '멀쩡했던' 엄마가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다 우울증에 걸렸으니 호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이유일 거라고 친가 탓을 했었다.  그럴 법한 추론이지만, 정말로 최초의 우울증 발병이 결혼 이후일까 하는 점에 대해선 친척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엄마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선 확신이 없으신 것 같고...

하여간 어려서부터 줄곧 지켜보며 나름대로 내가 파악한 우울증 촉발 인자는 대체로 갱년기, 계절 변화, 스트레스였다. 처음 폐쇄병동에 입원까지 해야했을 정도로 엄마의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심해졌던 건 내가 스무살 때였는데, 사십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엄마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았나 짐작된다. 째뜬 과거의 엄마는 몇년에 한번씩 우울증이 재발했을 때만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언제부턴가 1년 내내 우울증 치료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는데도 노년이 된 엄마는 이제 일년에도 몇번씩 증상이 오락가락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 자꾸 약을 바꿔야하는 지경이다.

작년에도 11월부터 상황이 나빠져 정말 힘들었고, 넉 달이 지난 올해 설날 무렵에야 비로소 우울증이 좀 진정세를 보였다. 투약 종류와 양을 조금씩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다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의 정상 상태'가 되었다고 주치의가 안심했던 게 지난 4월 초였는데... 말짱한 기간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엄마는 지난주부터 다시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니 대체 왜 또? ㅠ.ㅠ

스타이넘의 어머니처럼, 울 엄마의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 이유도 이젠 딱히 꼽을만한 게 없다. 일조량이 달라지는 환절기라든지, 명절의 부담감이나 친척의 중병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환절기도 잘 지나갔고 딱히 '이슈'도 없는 요즘 대체 왜 그러시는가 말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예쁜 손주들과 자식들 만나 맛있는 거 먹고 용돈도 받고 그러시는 행복한 시기에 하필 참나.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그러면 약을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이 이어지고, 불안이 깊어지면 도리어 흥분 상태가 되거나 무기력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부디 이번엔 너무 길지 않게 살짝만 앓다 지나가면 좋겠다.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도 덩달아 아프고 맥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당분간은 블로그에 풀어볼 작정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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