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흔들

삶꾸러미 2007. 1. 21. 02:34
토요일 저녁 작업실에 있다가 난데없이 지진을 느꼈다.
처음엔 내가 어지럼증을 느끼는 줄 알았다.
작은 활자를 너무 오래 보아서인가 놀라 고개를 드니 내가 어지러운 게 아니라
확실히 세상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 롤블라인드의 줄이 살짝살짝 흔들리는 게 보이고
의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 처음엔 지진인줄 몰랐고
부실공사라 건물이 흔들리거나 (건물에 주차타워가 붙어 있는데 기계가 작동할 때마다 약간의 소음이 느껴지곤 했으므로)
주변에 커다란 가스폭발 같은 게 일어난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흔들림이 느껴지던 게 한 15초쯤 됐으려나..
찰나는 아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설마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혹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건가?
여긴 6층인데 엘리베이터는 안전할까?
왜 사방이 이리도 조용할까...
따위의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흔들림이 멈추고 나자 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 일 없었는데 나만 공황발작 같은 걸 일으킨 건 아닌가?
요새 쓸데없이 민감하고 예민하고 까칠해지더니 환각 같은 걸 느끼는 건가?
...따위의 의심이었다.
집에 전화를 걸어 혹시 식구들도 지진을 느꼈는지 물었지만
둔감하신 울 부모님은 왕왕대는 TV 소리를 배경으로 뭔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고 되물으셨다.

그래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 사실이란다.
강원도에서 4.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전국에서도 느낄 만큼의 강도였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어린시절 잠자다 말고 정말로 온 집이 좌우로 덜컹덜컹 흔들리는 것처럼 느꼈던 생애 첫 지진의 경험 이후 두번째인 것 같다.

세상이 온통 흔들흔들, 아니 부들부들 떠는 걸 잠시나마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
몹시 불쾌하고 공포스러웠다.

오래 전 지리시간에 배운 '환태평양 지진대'(?) 같은 용어도 떠오르며
잊을만 하면 가끔씩 뉴스에 나와 대한민국도 지진의 공포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일갈이 생각나기도 했다.
'세상 까짓거 뭐 있어?' '내일 당장 사고로 죽을지 누가 알아?' 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척 하면서 속으로 나는 완전 겁쟁이다.
 
길게 병들어 아파하며 죽기보다는
갑자기 아쌀하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죽음 앞에선 내 남은 삶은 대강이나마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고
이왕이면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려 죽는 따위의 허망한 방법은 아니면 좋겠다.
하긴.. 허망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

암튼...
잠깐동안의 지진에 죽음을 떠올린
엄살 최대치 비약의 토요일이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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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뜻밖에 전시장을 찾았다가 대박을 만난 느낌이기도 했고
'엄청나게' 다양한 작품 세계 가운데 천진난만하고 색감이 화려하고 예쁜 그림이 너무도
많아 그림 좋아하는 우리 조카 정민공주도 좋아할 전시라는 생각에
공주를 대동하고 두 번째로 전시장을 찾았다.

나 역시 사람 없이 조용한 미술관 관람을 그 누구보다 즐기기에
지난번 강추위 속에 평일 야간 관람을 할 때가 더 좋긴 했지만
어린이를 위한 그림 설명을 따라가는 재미도 나름 흘륭했고
그나마 방학 초기라 샤갈전 때처럼 와글와글 장터바닥 같진 않아 다행이었다.

마침 덕수궁앞에선 오후 수문장 교대식이 벌어지려는 찰나여서
공주는 몹시도 즐거워하였고...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선 '반드시' 궁궐도 꼼꼼히 돌아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결국 미술관 1, 2층 전체를 2번이나--한번은 우리끼리, 두번째는 어린이 작품설명하는 도슨트와 함께, 그리고 우를루프 전시관은 3, 4번은 봤을 거다--돌고 난 뒤에, 어스름녘 추운 날씨에 궁궐을 돌며 중화전, 함녕전 따위를 다 보고 다니느라 고모 무수리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ㅠ.ㅠ)

이 블로그엔 스킨의 특성상 웬만해선 사진을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샤갈전과 더불어 2번이나 전시를 관람한 흔치 않은 경우라 자랑하고파서
무리를 무릅썼다.

자.. 보시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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