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carpe diem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게 처음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주었던 깊은 감동과 충격적인 메시지는 결국
나에게 아전인수격으로
carpe diem = seize the day =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_=;; 라는 교훈으로 남았더랬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과
미래를 전혀 염려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알량한 견해로는 완전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를 열심히 즐기며 살아서 행복하다면, 현재의 연속일 미래도 당연히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암튼 그러면서 사회생활 19년 통산, 적금통장 하나 없이 살아온 나는
누군가 저축을 도외시하는 내게 미래 설계를 운운하며 나무라면,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뭘!"이라고 큰소리를 치곤했다.
일년 내내 뼈빠지게 벌어서 휴가를 최대한 즐기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긴다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에 갈채를 보내며, 나 또한 "골빠지게" 원서를 들여다보며 번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났으며,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와선 또 열심히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돈은 써야 또 생기는 거야!'라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래서 나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꽤 된다. ^^;)

그런데 얼마전부턴 슬슬 나의 먼 미래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딱히 벌어놓은 돈도 없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으며, 돈벌어다 줄 남편도 없고^^; 혹시 나중에 기댈 여지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자식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이렇게 호랑방탕하게 살아가는가 싶었던 것이다.
일단 나이 들어 경제활동도 못해 가난한데 병들기까지 하면 곤란하겠다 싶어, 아무렇게나 주변에서 귀찮게 찔러대는 대로 이것저것 들어두었던 보험을 정리해 확실하게 큰 돈 드는 질병관리가 보장되는 상품으로 바꾼 게 재작년이었던가. 물론 그간 부었던 보험 해약금을 타들고는 부모님 용돈으로 조금 인심 쓴 뒤, 홀라당 여행을 다녀왔더랬다.
그러고 나서 과연 내가 몇살까지 일을 하고 노후자금을 얼마나 마련해야 노년에 유유자적 여행이나 다니며 살 수 있을 것인가 계산해보니 ㅜ.ㅜ;; 까마득했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83세라는데!
내가 좀 까칠하게 굴고 성질 드러워서 그보다 훨씬 일찍 죽게 된다 해도...
번역이 제 아무리 정년 없는 직업이라지만 60세부터는 소일거리 삼는 일 정도나 하면 모를까 지금처럼 번역기계 돌려대듯 몸과 뇌를 혹사시킬 수야 없는 법.
편한 노년을 보내고 싶어 진 것이다.

해서...
비슷하게 홀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과 몇달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나눈 끝에
결론은 내가 연금보험을 들었다는 얘기다. ㅡ.ㅡ;;

물론 경제관념 전혀 없는 나의 현재 씀씀이와 벌이로 볼 때
아무 걱정 없이 편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은 절대 못되는 작은 시작이지만
어쨌든 만날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외치던 내가
노후대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한편 기특하고, 한편 서글프고,
심정이 아주 복잡다난미묘하다.

나도 오늘의 행복을 저당잡히면서라도 미래의 안일을 꿈꾸는 유형의 인간이 되고 만 것인가.
자꾸 두려움과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성숙의 증거인지, 차츰 자신감을 잃어간다는 증거인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두툼한 보험약관과 증서따위를 받아들고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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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는 좀처럼 하지 않는 내가 가끔은 친구의 부추김에 훌러덩 넘어가 좋아라하며
뭔가를 사들이기도 한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 경우에 한해서.. ^^;;

잠실 교보문고에서 친구를 만난 김에...
워낙 값싼 제작비로 만들어 서플먼트도 거의 없고, 화질과 음향도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dvd를 몇개 샀다.
화양연화
아비정전
러브레터
흐르는 강물처럼 이상 각 4900원 ㅋㅋ
로마의 휴일 7900원.

저 중엔 중고 비디오 테이프로 갖고 있거나, 만우절날 장국영의 사망소식이 들린 후 망연자실하는 내게 후배가 CD로 구워준 것도 있는데, 그래도 또 사고팠다. @.@

문제는 책과 마찬가지로 dvd를 장만해도 정작 보는 건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갖고 있는 dvd 가운데 그나마 2번 이상 본 건, BBC판 <오만과 편견>(아~~ 완전소중 콜린 퍼스!)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뿐이고,
심지어 ER 시리즈 마지막 2세트는 아예 포장도 뜯지 않고 모셔만 두고 있다.
언젠가 많이 한가할 때 몰아서 보리라 마음먹으며 ㅋㅋㅋ

그래도...
좋아하는 영화를 중고 비디오 테이프로 모아둘 때처럼 (비록 이제는 처치곤란으로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있긴 하지만)
dvd를 나란히 세워놓으며 몹시 뿌듯하다.

아 맞다!
털실이 포근포근하고 품이 넉넉한 회색 터틀넥 스웨터도 샀다. grey heather라고 하는.. 희끗희끗한 회색이 나는 왜 이리도 좋은지.. 혹자들은 내 옷장에 승복 색깔 옷이 너무 많다고 타박이지만 ^^;;
넉넉하고 푹신한 느낌이 좋아서 만지작 거리다, 별 고민 안하고 '이거 주세요!' 했다.
회색 스웨터는 이미 몇 개나 있지만, 또 사고나서도 절대 후회하지 않게되는 아이템.
폭신한 스웨터와 내복이 없다면 아마 난 이 나라의 겨울을 버티지 못할 거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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