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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4.02 화분 욕심 (수정^^) 11
  3. 2007.02.01 내력 2
  4. 2006.12.20 마리안느 관찰 일기 6

또 새삼

투덜일기 2010. 4. 27. 15:27
또 새삼 깨달은 거 두 가지.

식물의 이파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너무도 무성해져서 이젠 껴안아 들고 옮기기에도 힘에 부친 화분들의 위치를 다시 옮겼다.
왕비마마 운동하시라고 사들인 실내 싸이클을 TV 정면에 두느라(TV를 볼 땐 반드시 자전거에 앉아 운동 하시라고) 소파를 베란다 창쪽으로 밀었으나, 내가 바랐던 TV보며 운동하기의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비딱하게 옆으로 기대는, 왕비 허리에 안좋은 몹쓸자세만 강화될 뿐이라 소파 및 화분의 위치를 원래대로 돌리고, 싸이클을 베란다쪽으로 놓기로 한 거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일(청소, 집안정리, 서랍정리 따위)를 할 땐 누가 말 거는 것도 짜증스러워 엄마를 안방에 가두고는 혼자 낑낑대며 후다닥 청소기를 돌리고 소파, 싸이클, 화분을 배치하고 걸레질까지 쓱싹쓱싹 마쳤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방청소를 하려고 보니 손목이 마구 쓰라리다. 젠장. 양쪽 손목을 얄팍하게 또 베었다. 지난번에 화분 옮길 때도 그랬었는데, 고새 까먹은 탓이다. 초록 이파리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싶지만, 선인장도 아닌 것들이 꽤나 날카롭다. 심증이 가는 건 금전수 이파리인데, 만져보면 여리여리한 동전 같은 이파리가 어느 구석으로 내 살을 에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식물 이파리에 팔목을 벤 여자다. 큭.

뭐든 과하면 안된다.
오늘은 어쩐지 커피를 아주 진하게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원두를 좀 많이 갈아서 꾸역꾸역 비알레띠 브리카에 쑤셔넣고는 힘주어 주전자를 잠갔(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압력추 올라가며 에스프레소 추출되는 소리가 안들리는 거다. 주전자를 좀 덜 잠갔을 때처럼 옆으로 새어나오는 커피물도 없을 정도...
결국 두배쯤 갈아 넣었던 원두를 쏟아버리고 죄다 닦아낸 뒤에 다시 적정량을 갈아 다시 추출해야 했다. 혼자만의 생각과 논리로는 분명 될 것 같은데, 현실에선 안통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욕심을 부리고 꼭 실패 후에야 새삼 깨닫는 척을 한다.

어쨌든 오늘은 따끔거리는 손목으로 다른 때와 비슷한 농도의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깨달음이 채 하루도 가기 전에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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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말려 죽이거나 썩혀 죽이면서도
기어코 또 화분을 들였다.

매년 한식을 맞아 식목일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돌아오는 길에 화분을 사는 것이
당연한 전통처럼 되고 보니, 어제 심한 황사를 무릅쓰고 성묘를 다녀오면서도 어김없이
화원에 들렀던 것.
해마다 하나, 둘씩 늘어난 화분으로 거실 한귀퉁이를 이미 거의 화원처럼 초록으로 가꿔놓신 아버지가 또 화분 욕심을 내시는 걸 보며, 나 역시 지난번에 죽인 마리안느 화분이 빈 채로 놓여 있는 게 아쉬워 전날 미리 빈 화분을 트렁크에 실어 놓았더랬다.

일단 나는 예쁘기도 하면서 잘 안 죽는 식물로 추천해달라며 이것저것 고르다
넙적하고 길쭉한 입사귀가 열대식물을 닮은 녀석으로 골랐는데, 허걱 이제 생각하니 이름도 모르고 집어왔구나야. -_-;;

노란 칼라 꽃이 두 송이 피어있고, 이파리엔 좀이 슨듯 알금알금 미세한 구멍이 무늬처럼 들어간 화분도 샀는데, 과연 또 얼마만에 비보를 전하게 될지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초록을 가까이 한다는 게 뿌듯하다.

아버지의 금전수
나의 이름모를 화분과 노란 칼라
큰동생네가 산 넙적한 산세베리아
정민공주의 아기별꽃

분명 아버지만 실하고 튼튼하게 새 식구를 키워내시겠지만
나머지 마의 손들도 제법 오래 초록을 가꿔나가기를 빌어본다.

가끔은 생명력 질긴 녀석이 내 변덕스러운 보살핌에도 꿋꿋하게 살아주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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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

추억주머니 2007. 2. 1. 23:36
찍어놓은 붕어빵처럼 똑같이 닮은 모녀나 모자, 부녀, 부자를 보면
유전자의 힘은 참 무섭고도 놀라운 것이로구나 느끼게 되는데
단순히 생김새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가족간에 하는 행동까지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될 때는,
시대와 삶의 질이 달라진 듯해도 결국 인생은 핏줄을 매개로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는 생각까지 든다.
다른 집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는 얘기다.
생김새는 별로 집안 내력 따질 만큼 닮은꼴이 아닌데(내가 키 작은 거랑 눈 나쁜 거 말고 다른 생김새도 아부질 닮았다는 말을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습관이나 행동은 어느 순간 놀랍도록 세대간의 동일함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사례 1)
우리 친할머니는 나른한 오후쯤 가만히 앉아서 꾸벅꾸벅 조시는 일이 많았는데
베개 꺼내드리고 좀 누워 주무시라고 하면 한사코
"나 안 졸리다"고 손사래를 치셨고, 억지로 이불이라도 덮어드리면 곧장 박차고 일어나 집안일을 하셨다.

나이 드니 정말로 잠이 준다고 투덜대시는 울 아부지,
나른한 오후가 되면 꼭 TV 앞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꾸벅꾸벅 조시는데
요즘처럼 추운 날엔 감기 걸리니 잠깐이라도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내가 잔소리를 하면
이상하게도 방에 들어가면 잠이 달아난단다.
꾸벅꾸벅 졸다가 정작 누우면 잠이 달아나는 것이 노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여길 수도 없는 것이, 울 엄마는 똑같은 상황에서 방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 아예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낮잠을 주무시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아버지만의 모전자전이란 말인가?

사례 2)
우리 친할아버지는 그야말로 '한량의 삶'을 사신 분이라 할머니가 고생을 무던히도 하셨고, 장남인 울 아부지는 대단한 효자였음에도 당신 아버지의 삶의 방식은 몹시 못마땅해 하셨다.
할아버지는 '돈벌이'와는 상관없는 재주가 참 많으신 분이어서
서예, 그림, 한시(쓰기 뿐만 아니라 "처엉~~~~~산~~~~~~~~~~~~~~~~~~~이 어쩌고.."하는 한시 읊는 솜씨도 참 구성지셨다), 애완 조류 키우기, 화분 가꾸기 같은 일에 탁월하셨다.
특히 이웃에서 죽어가는 화분을 버리려고 내놓거나 할아버지께 맡기면 기필코 살려내는 '신의 손'에 가까웠다. *.* (그 재능이 나에겐 이어지지 않음이 안타깝다 ㅠ.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은 화분에 키우는 무화과 나무에서 해마다 토실토실한 무화과를 '수확'해 우리도 맛을 볼 수 있게 하실 정도였으니까..

반면에 우리집은 늘 화분이 죽어나가는 집이었다.
아부지가 직장생활 하시는 동안에 받아온 값비싼 난 화분이나 분재는 몇달을 넘기지 못하고 빈 화분만 남겨지기 일쑤였고, 정년퇴직 직후 선물받은 각종 화분도 다 죽였을 거다.
그래서 역시 울 아부지는 오종종한 생김새부터 할아버지(옛날 분치고는 키도 크고 멋지게 생기셨다!)랑 닮은 부분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아부지가 본격적으로 화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 둘 씩 집에 초록 식물을 늘려가더니, 해마다 한식 때 성묘 다녀오는 길에 사온 화분들이 나날이 번창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죽어나간 화분은 전적으로 엄마와 내 "악의 포스" 때문이었음 증명하듯,
아부지는 내 작업실에서 죽어가던 산세베리아도 살려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고는 거실 한 귀퉁이에 화분들을 "모셔놓고" 손주들이 뛰어다니다 잎이라도 다칠라치면 버럭~ 화를 내셨던 울 할아버지처럼, 아부지도 거실 한 귀퉁이에 줄지어 세워놓고 달력에 날짜 표시해가며 물주고 키우는 화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조카들이 놀러오면 녀석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혹시 애지중지하던 화분이라도 쓰러뜨릴까봐 전전긍긍하신다. -_-;;
올 한식엔 또 새 화분을 몇개나 사자고 하실까...

사례 3)
홍시 얘기를 할 때도 외할머니와 울 엄마의 유사함을 적은 적이 있는데,
참외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는 참외를 참으로 좋아하셨고, 외출했다 돌아오셨거나 야외로 소풍 같은 걸 갔을 때 참외를 드시고 싶은데 과도가 빨리 준비되지 않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손으로 참외를 퍽~ 쳐서 깨뜨려 껍질째 드시기도 했더랬다.
일제 강점기에 쬐끄만 일본 순사들이 '6척 장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는 우리 외할머니가 그렇게 크고 긴 손으로 참외를 쩍 잘라 나에게도 한 쪽 주시면, 난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

과일을 깎아 대령하는 걸 차마 못 기다릴 만큼 참외에 대한 탐닉이 강한 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
참외는 내가 별로 좋아하는 과일도 아니지만 (먹게 되면 속 다 파내고 먹는데, 울 엄만 그럼 무슨 맛이냐!고 막 퉁박이다), 내가 껍질 벗긴 참외를 작게 자르느라 뜸을 들이면, 대뜸 "난 자르지 말고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셨더랬다. ㅋㅋ
그나마 당뇨 발병 후엔 하나를 다 통째로 내놓으란 소린 못하고, 절반만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시며 "역시 참외는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중얼거린다.

참외 탐닉의 내력은 이상하게도 딸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큰 동생에게 흘러갔고, 그 녀석도 외할머니, 엄마 닮아서 참외를 몹시 좋아하는데
내가 예쁘게 과일 깍는답시고 참외를 조각조각 반달썰기하면 막 화를 낸다.
먹을 게 없다나 뭐라나... -_-;;
그러면서 자기도 통째로 반쪽 내놓으라고 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여름 참외철이 되서 큰동생네가 놀러오면 장유유서고 뭐고 없다.
얼른 참외를 깎아 울 엄마 반쪽, 큰 동생놈 반쪽 먼저 손에 쥐어주고
그 다음에 먹기 좋게 한 접시 잘라 아부지께 드리는 순이다. ㅋㅋ
 
사례 4)
무슨 일이든 코앞에 닥쳐야 하는 버릇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들 방학숙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암튼 우리 집 삼남매는 어린 시절 방학숙제마저도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와야만,
그것도 급기야 부모님께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고 혼이 난 다음에야 전전긍긍 밤샘작업으로 개학 전날까지 가까스로 마치는 부류였다. ㅜ.ㅡ;;
그런데 문제는 방학 내내 배짱좋게 놀다가 해가는 숙제이니 '대충대충' 시늉만 하면 좋으련만 빌어먹을 소심함과 완벽주의 탓인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
한달이나 두달치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주제에, 날씨 좀 틀리면 어떻다고 지난 신문을 죄다 뒤져 일일이 확인하는 식이니 시간이 오죽 더 많이 걸릴까.
내 경우는 그림이나 글짓기, 만들기 숙제도 심혈을 기울여야 직성이 풀렸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홀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숙제를 다 해갔던 것 같다. ㅎㅎㅎ

2월 1일 개학을 하루 앞둔 어젯밤, 조카 정민공주네가 집으로 쳐들어(!) 왔다는 전화가 왔다.
ㅋㅋㅋ 역시나 방학숙제 때문이었다.
방패연과 꼬리연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고,
동시를 지어 꾸미는 숙제엔 컬러 프린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일기는 그나마 미리미리 다 써두었으니, 어쩌면 제 아빠나 삼촌, 고모보다 훨씬 훌륭한 조카였지만, 동시 꾸미기 숙제를 하면서 드러난 성격은 놀랍게도 판에 박은듯이 고모와 똑같았다.
이미 다 지어온 동시를 세 편이나 한글 프로그램에 앉히고
각종 그림으로 시화를 꾸미는 것이 숙제인 모양인데, 정민공주는 한글97 그리기 마당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 없으면 절대로 대충 아무거나 선택하지 않았고....
인터넷 이미지를 다 뒤져서라도 결국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아냈다.
울 올케의 짐작으론 '타이핑만 하면' 되니 금세 끝날 숙제였지만, 실제론 동시 한 편에 시간이 30분도 더 걸렸고, 결국 조카는 시간도 없는데 꾸물거린다는 제 엄마의 꾸지람과 호통에 결국 눈물을 보였으며, 공주의 방학숙제는 밤 11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

오밤중에 숙제를 끝내놓고도 고모랑 더 놀다 가지 못해 안달하는 조카들을 내쫓다시피
집으로 보낸 뒤, 엄마가 한 말씀 하셨다.
"쯧쯧쯧.. 어떻게 방학숙제를 개학 전날까지 밤새다시피 해가는 것까지 집안 내력이라니..."

내가 <내력>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게 된 이유였다. ㅎㅎ
(사례 하나 추가했다. 이것들 말고도 더 많지만.. 너무 길어지면 지루할 테니까..^_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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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물 한 번만 주면 된다는 장담과 함께 선물받은 선인장도 죽이는 여자가 아무렴..
당연한 결과겠지만, 100일 넘게 나름대로 최대한 정성을 들여 키우던 마리안느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

메디컬 드라마나 병원 나오는 영화를 보면, 환자가 숨을 거두어도
의사가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하지 않으면 죽은 게 아니다.
화분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 역시 억지부리듯 죽어가고 있음이 분명한...
어쩌면 벌써 죽은 것인지도 모를 화분의 사망선고를 애써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녀석을 얼마나 정성스레 돌봤는지 여기저기 끄적인 글을 죄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시절 자연 시간에 강낭콩 키우며 쓴 관찰일기가 생각나
여기 모아놓기로 했다.

정말로 마리안느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날 너무 속상해지면,
이 글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아보려는 알량한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싱싱하고 건강하던 녀석들의 처음 모습





잘하면 살아날 것도 같던 녀석들은 나날이 잎이 누렇게 변해갔고
누런 잎을 잘라주면서 모양새도 차츰 앙상해졌다.
이제 초록 부분은 거의 안남은 상태...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간 수없는 원망을 들었겠지만
이 녀석은 특히 떠나보내기가 안타깝다.
죽기 전까지 공기청정기 대신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심산이긴 했어도
정말 이 정도면 최대한 정성을 들였던 거라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며칠 전에 생긴 포인세티아 화분 두 개랑 수경재배용 개운죽도
이파리 세 장 남은 아마존과 함께
과연 내 악의 포스 속에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지.. 흑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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