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력

추억주머니 2007. 2. 1. 23:36
찍어놓은 붕어빵처럼 똑같이 닮은 모녀나 모자, 부녀, 부자를 보면
유전자의 힘은 참 무섭고도 놀라운 것이로구나 느끼게 되는데
단순히 생김새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가족간에 하는 행동까지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될 때는,
시대와 삶의 질이 달라진 듯해도 결국 인생은 핏줄을 매개로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는 생각까지 든다.
다른 집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 집은 그렇다는 얘기다.
생김새는 별로 집안 내력 따질 만큼 닮은꼴이 아닌데(내가 키 작은 거랑 눈 나쁜 거 말고 다른 생김새도 아부질 닮았다는 말을 나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습관이나 행동은 어느 순간 놀랍도록 세대간의 동일함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사례 1)
우리 친할머니는 나른한 오후쯤 가만히 앉아서 꾸벅꾸벅 조시는 일이 많았는데
베개 꺼내드리고 좀 누워 주무시라고 하면 한사코
"나 안 졸리다"고 손사래를 치셨고, 억지로 이불이라도 덮어드리면 곧장 박차고 일어나 집안일을 하셨다.

나이 드니 정말로 잠이 준다고 투덜대시는 울 아부지,
나른한 오후가 되면 꼭 TV 앞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꾸벅꾸벅 조시는데
요즘처럼 추운 날엔 감기 걸리니 잠깐이라도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내가 잔소리를 하면
이상하게도 방에 들어가면 잠이 달아난단다.
꾸벅꾸벅 졸다가 정작 누우면 잠이 달아나는 것이 노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여길 수도 없는 것이, 울 엄마는 똑같은 상황에서 방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 아예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낮잠을 주무시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아버지만의 모전자전이란 말인가?

사례 2)
우리 친할아버지는 그야말로 '한량의 삶'을 사신 분이라 할머니가 고생을 무던히도 하셨고, 장남인 울 아부지는 대단한 효자였음에도 당신 아버지의 삶의 방식은 몹시 못마땅해 하셨다.
할아버지는 '돈벌이'와는 상관없는 재주가 참 많으신 분이어서
서예, 그림, 한시(쓰기 뿐만 아니라 "처엉~~~~~산~~~~~~~~~~~~~~~~~~~이 어쩌고.."하는 한시 읊는 솜씨도 참 구성지셨다), 애완 조류 키우기, 화분 가꾸기 같은 일에 탁월하셨다.
특히 이웃에서 죽어가는 화분을 버리려고 내놓거나 할아버지께 맡기면 기필코 살려내는 '신의 손'에 가까웠다. *.* (그 재능이 나에겐 이어지지 않음이 안타깝다 ㅠ.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은 화분에 키우는 무화과 나무에서 해마다 토실토실한 무화과를 '수확'해 우리도 맛을 볼 수 있게 하실 정도였으니까..

반면에 우리집은 늘 화분이 죽어나가는 집이었다.
아부지가 직장생활 하시는 동안에 받아온 값비싼 난 화분이나 분재는 몇달을 넘기지 못하고 빈 화분만 남겨지기 일쑤였고, 정년퇴직 직후 선물받은 각종 화분도 다 죽였을 거다.
그래서 역시 울 아부지는 오종종한 생김새부터 할아버지(옛날 분치고는 키도 크고 멋지게 생기셨다!)랑 닮은 부분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아부지가 본격적으로 화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 둘 씩 집에 초록 식물을 늘려가더니, 해마다 한식 때 성묘 다녀오는 길에 사온 화분들이 나날이 번창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죽어나간 화분은 전적으로 엄마와 내 "악의 포스" 때문이었음 증명하듯,
아부지는 내 작업실에서 죽어가던 산세베리아도 살려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고는 거실 한 귀퉁이에 화분들을 "모셔놓고" 손주들이 뛰어다니다 잎이라도 다칠라치면 버럭~ 화를 내셨던 울 할아버지처럼, 아부지도 거실 한 귀퉁이에 줄지어 세워놓고 달력에 날짜 표시해가며 물주고 키우는 화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조카들이 놀러오면 녀석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혹시 애지중지하던 화분이라도 쓰러뜨릴까봐 전전긍긍하신다. -_-;;
올 한식엔 또 새 화분을 몇개나 사자고 하실까...

사례 3)
홍시 얘기를 할 때도 외할머니와 울 엄마의 유사함을 적은 적이 있는데,
참외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는 참외를 참으로 좋아하셨고, 외출했다 돌아오셨거나 야외로 소풍 같은 걸 갔을 때 참외를 드시고 싶은데 과도가 빨리 준비되지 않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손으로 참외를 퍽~ 쳐서 깨뜨려 껍질째 드시기도 했더랬다.
일제 강점기에 쬐끄만 일본 순사들이 '6척 장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는 우리 외할머니가 그렇게 크고 긴 손으로 참외를 쩍 잘라 나에게도 한 쪽 주시면, 난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

과일을 깎아 대령하는 걸 차마 못 기다릴 만큼 참외에 대한 탐닉이 강한 건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다. ^^;;
참외는 내가 별로 좋아하는 과일도 아니지만 (먹게 되면 속 다 파내고 먹는데, 울 엄만 그럼 무슨 맛이냐!고 막 퉁박이다), 내가 껍질 벗긴 참외를 작게 자르느라 뜸을 들이면, 대뜸 "난 자르지 말고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셨더랬다. ㅋㅋ
그나마 당뇨 발병 후엔 하나를 다 통째로 내놓으란 소린 못하고, 절반만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시며 "역시 참외는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라고 중얼거린다.

참외 탐닉의 내력은 이상하게도 딸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큰 동생에게 흘러갔고, 그 녀석도 외할머니, 엄마 닮아서 참외를 몹시 좋아하는데
내가 예쁘게 과일 깍는답시고 참외를 조각조각 반달썰기하면 막 화를 낸다.
먹을 게 없다나 뭐라나... -_-;;
그러면서 자기도 통째로 반쪽 내놓으라고 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여름 참외철이 되서 큰동생네가 놀러오면 장유유서고 뭐고 없다.
얼른 참외를 깎아 울 엄마 반쪽, 큰 동생놈 반쪽 먼저 손에 쥐어주고
그 다음에 먹기 좋게 한 접시 잘라 아부지께 드리는 순이다. ㅋㅋ
 
사례 4)
무슨 일이든 코앞에 닥쳐야 하는 버릇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들 방학숙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암튼 우리 집 삼남매는 어린 시절 방학숙제마저도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와야만,
그것도 급기야 부모님께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고 혼이 난 다음에야 전전긍긍 밤샘작업으로 개학 전날까지 가까스로 마치는 부류였다. ㅜ.ㅡ;;
그런데 문제는 방학 내내 배짱좋게 놀다가 해가는 숙제이니 '대충대충' 시늉만 하면 좋으련만 빌어먹을 소심함과 완벽주의 탓인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
한달이나 두달치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주제에, 날씨 좀 틀리면 어떻다고 지난 신문을 죄다 뒤져 일일이 확인하는 식이니 시간이 오죽 더 많이 걸릴까.
내 경우는 그림이나 글짓기, 만들기 숙제도 심혈을 기울여야 직성이 풀렸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홀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숙제를 다 해갔던 것 같다. ㅎㅎㅎ

2월 1일 개학을 하루 앞둔 어젯밤, 조카 정민공주네가 집으로 쳐들어(!) 왔다는 전화가 왔다.
ㅋㅋㅋ 역시나 방학숙제 때문이었다.
방패연과 꼬리연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고,
동시를 지어 꾸미는 숙제엔 컬러 프린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일기는 그나마 미리미리 다 써두었으니, 어쩌면 제 아빠나 삼촌, 고모보다 훨씬 훌륭한 조카였지만, 동시 꾸미기 숙제를 하면서 드러난 성격은 놀랍게도 판에 박은듯이 고모와 똑같았다.
이미 다 지어온 동시를 세 편이나 한글 프로그램에 앉히고
각종 그림으로 시화를 꾸미는 것이 숙제인 모양인데, 정민공주는 한글97 그리기 마당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 없으면 절대로 대충 아무거나 선택하지 않았고....
인터넷 이미지를 다 뒤져서라도 결국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아냈다.
울 올케의 짐작으론 '타이핑만 하면' 되니 금세 끝날 숙제였지만, 실제론 동시 한 편에 시간이 30분도 더 걸렸고, 결국 조카는 시간도 없는데 꾸물거린다는 제 엄마의 꾸지람과 호통에 결국 눈물을 보였으며, 공주의 방학숙제는 밤 11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

오밤중에 숙제를 끝내놓고도 고모랑 더 놀다 가지 못해 안달하는 조카들을 내쫓다시피
집으로 보낸 뒤, 엄마가 한 말씀 하셨다.
"쯧쯧쯧.. 어떻게 방학숙제를 개학 전날까지 밤새다시피 해가는 것까지 집안 내력이라니..."

내가 <내력>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게 된 이유였다. ㅎㅎ
(사례 하나 추가했다. 이것들 말고도 더 많지만.. 너무 길어지면 지루할 테니까..^_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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