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식탐이 많아 엥겔계수가 높은 편이지만 요샌 장보러 마트가기가 정말 겁날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과일과 채소는 넉넉히 사와야 마음이 뿌듯한데 설날 이후로 계속 어찌나 비싼지! 원래도 이맘때면 끝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 과일 중에 제일 만만한 귤은 별 부담없이 먹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나, 요즘 귤값은 거의 금값이다. 100g에 무려 870원. 멋모르고 담다보니 귤 한개당 거의 천원꼴이더라. ㅠ.ㅠ 예전엔 5천원어치만 사도 한보따리라 막 물러져 버리곤 했는데...차라리 한통에 만원 하는 딸기가 더 싼 느낌. 매번 사오는 친환경 양배추도 너무 비싸서 반통씩 사오고, 푸성귀 나물도 무서워서 잘 못담아오겠다. 달달한 맛이 일품인 섬초 시금치나 국산 표고버섯 좀 봉지에 담으면 막 만원이 넘는다. 어휴...

부자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뚱뚱한 건 영양가 따져 먹을 형편이 아니라 늘 값싼 정크푸드만 먹기 때문이라는데, 이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마트에서 제일 싼건 10개씩 담아 꾸러미로 파는 스팸, 참치 같은 통조림류 아니면 라면류인 듯. 할머니랑 오래 살아서 할머니 입맛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 나는 종종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이런 게 막 먹고 싶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며칠 전 장보러 가서는 100g 당 가격을 보고 기가 막혀 포기했다. 불려놓은 국산 고사리가 100g에 2800원! 켁... 차라리 고기라면 몇만원 주고라도 사오는 게 익숙한데, 아무리 농사가 어렵고 일손이 많이 간다고 해도 나물 반찬이 한번 해먹을 분량에 만원을 넘기는 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도 물가보다 나의 노동력이 더 비싸다고 우기며 김치도 종*집 포기김치를 한 봉지씩 사다먹는 형편이니 이렇게 투덜댈 자격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며칠전부터 뜬금없이 깍두기가 먹고 싶어 또 종*집 깍두기를 한 봉지 사다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헌데 막상 손바닥만한 깍두기봉지 하나의 가격을 보고는 차마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죄다 국산 농산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한 보시기밖엔 안나오겠던데 8천원쯤 하던가... (이러면서 또 나가선 한끼 만원 넘는 음식도 막 사먹는 소비의 모순;;) 머뭇거리다 그냥 뒤돌아서려니 <제주무 990원>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지난번의 절반가격! 좀 시들시들해서 반값에 처분하는 모양이었다. 까짓것 깍두기 내가 한 접시 담아주마 하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한통 집어들었어도, 집에 와서는 좀 망설였다. 아 왜 가사일 싫어하면서 일거리를 사서 만드냐고! 그러나 깍두기는 먹고 싶으고... 에이 빌어먹을 이놈의 식탐.

해서 무국 끓일 1/3토막은 남겨놓고 겨우 700원어치 정도의 무로 어제 깍두기를 담갔다는 것이 별것도 아닌 이 포스팅의 결론이다. 알량하게 두세 그릇 분량이긴 해도 무조건 맛있어야 하니까, 새우젓도 넣고 찹쌀풀도 끓여넣고 매실청도 넣었다. 일부러 자작하게 국물도 만들어 부었는데 오늘 보니 생각보다 국물이 많이 나와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익었나 안익었나 종일 몇번이나 집어먹어본 느낌으로는 꽤 맛있을 것 같다. ^^v 

내 생애 처음인가 아닌가 잘 생각도 나지 않는 깍두기를 담그며 자랑스레 사진을 찍고 보니, 점점 구차하고 비루한 아줌마스러운 블로그로 변해가는 것을 자인하는 포스팅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런 거로라도 포스팅 갯수 올리는 게 잘하는 짓인지 한심한 노릇인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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