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7.03.06 그래도 커피 4
  2. 2015.03.19 새벽 커피 3
  3. 2013.03.14 혜화동 나들이 6
  4. 2012.05.04 연아커피와 참붕어빵 9
  5. 2011.10.27 커피집 불만 9
  6. 2011.09.30 티백 16
  7. 2010.12.26 주전자 12
  8. 2010.12.17 커피를 부르는 광고 11
  9. 2010.09.01 허리와 커피 5
  10. 2010.04.27 또 새삼 4

그래도 커피

투덜일기 2017. 3. 6. 02:41

밤참과 함께, 혹은 그냥 따로 한밤중에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 동안 사소한 고민을 한다. 밤이니깐 원두 커피는 안되고 캐모마일? 둥글레차? 메밀차? 디카페인 커피? 그냥 뜨거운 물?

디카페인 커피가 두 종류나 있지만, 말이 디카페인이지 카페인 성분이 0퍼센트는 아닌듯, 좋아라 신나게 여러잔을 마시면 커피 많이 마신날처럼 똑같이 잠이 안온다. 그냥 잠의 질이 형편없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암튼 사랑해마지않는 깨잠을 커피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다. 잠과 커피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역시 잠. ㅋㅋ

해서 조금 전에도 잠시 고민을 했으나, 에라이 모르겠다, 디카페인 커피를 집어들었다. 오늘은 겨우 두잔째이니깐 괜찮겠거니...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역시 나는 커피파다. 평생 녹차를 물처럼 마시고 살았다는 차애호가 후배 하나는 도무지 커피 맛을 모르겠다면서 그저 쓴맛밖에 안나는 커피를 다들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나로선 아무리 노력해봐도 풀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적응 못하겠는 차를 좋아라 마시는 니가 이해 안된다!  

볶은지 얼마 안되는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 부어 마시는, 하루 딱 한두번의 호사를 누릴 때만큼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의 향과 맛에 이제 좀 일할 맛이 나는군 싶어진다. 커피와 잠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고 큰소리치며,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본질을 거세당했으니 커피도 아니라고 마구 무시할 때가 있었는데, 한치 앞도 모르고 막말했던 그 시절의 악담이 부끄럽다. 커피는 그래도 커피인것을. 이나마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

새벽 커피

투덜일기 2015. 3. 19. 05:46

어릴 때 모기에 물리면 집에선 주로 물파스를 발라주었는데, 물리자마자 바로 바르면 모를까 자면서 이미 한참이나 긁어버려 새빨갛게 부풀어오른 다음 날 즈음엔 물파스를 발라도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괜히 자주색으로 변했다가 시커멓게 변하기나 할 뿐. 그래서 대신에 나는 전해들은 '민간요법'(?)을 더 선호했다. 모기 물린데를 손톱으로 꾹 눌러 열십자로 자국을 남기는 거다. 아픔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손톱으로 꽉 누르다 보면 통증 때문에 가려운 느낌이 가려지는 효과랄까. 특히 모기나 벌레가 침을 꽂은 바로 그곳을 정확하게 열십자의 한가운데로 눌러줘야 효과가 직방이라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피를 내기도 했지만...


넘어지거나 찢겨서 어딘가 피가 나고 아플 때도 지혈을 핑계로 상처 부분을 모질게 꽉 누른 적도 있는 걸 보면 꽤나 자학성향이 있는 건가 싶다. 이 새벽에 위가 부은 듯 더부룩하고 쓰라린데도 굳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커피를 넘기며, 이 또한 벌레 물린 데를 손톱으로 지져대거나 상처를 더 짓누르는 과거의 행동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대체 커피를 언제 마시란 말인가! 빈 속에도 마시지 마라. 밥먹자마자 바로 마시는 것도 미친 짓이다. 수면의 질을 위해선 늦은 오후에도, 잠자리 직전에도 마시지 마라.... 쳇... 


따지자면 지금 마시는 새벽 커피는 내겐 잠들기 전 너무 늦게 마시는 커피에 해당할 테고, 어제 날이 꿀꿀했던 관계로 적정 카페인 양(원두커피로 두 잔)은 이미 넘어버렸으니 어쩌면 아예 잠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성난 위는 더 아플 테고, 요즘들어 종종 말썽을 부리는 무릎도 더 아플테고 날카로운 신경에 더 까칠해질 테고.... ㅋㅋ 매사에 미리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 제풀에 지치고 마는 버릇대로 이미 다 결과를 예상했으면서도 결국 커피를 선택했으니, 결론은 아마도 내가 참 청개구리라는 것? 빈속에 찌르르 느껴지는 카페인의 자극(물론 나의 상상이겠지만;;)과 쾌감이 나빠봤자 설마 애연가들의 새벽 담배만큼 하랴,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려나 이 커피 맛있네... 흠... 



Posted by 입때
,

대학로 쪽으로 나가 놀일이 그간 통 없었다가 간만에 어제 혜화동을 누볐다. 맛있는 커피집을 소개받기로 했던 게 지난 여름부터였는데 벼르고 벼르다 두 계절이나 지난 뒤에 드디어 성공. 향기롭고 맛있는 반나절을 보낸 행복감에 쓰다 만 밀린 포스팅들 죄다 제쳐두고 그 자랑부터 해볼란다. 요즘은 다들 입맛이 까다로워서 카페마다 커피는 웬만하면 다 맛있는 편이지만 간만에 원두까지 장만하고픈 집을 만난 게 어찌나 반가운지.  

 

위치는 번화한 대학로 쪽이 아니고 혜화동 로터리에서 주유소 옆 도로로 좀 올라가다 왼편 골목 안에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찾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흥미가 있다면야 방법은 있겠지. 원래 나는 그렇게 친절한 맛집 안내 블로거가 아니라 항상 먹고 논 거 슬쩍 자랑 수다에 치중하는 사람. ㅋㅋ

 

 

오래된 좁은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집이란 것도 나에겐 무조건 가산점! 혜화동에도 가만 보면 아직 한옥들이 점점이 박혀있긴 하지만 대부분 폐허에 가깝던데 반갑기도 하여라...

 

<Lim's Coffee>라는 곳인데 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고소하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풍겨와 황홀했다. 직접 볶은 원두도 팔지만 로스팅 교육도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요즘은 일하기 싫은병에 이어 '뭐든 배우고픈 병'에 걸렸는지 순간적으로 로스팅 교육 받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_-;) 자체 개발해서 이름 붙인 커피와 직접 블렌딩한 커피도 여러종류인 듯했다.

 

어제는 '케냐투샤'라는 커피를 추천해주어서 드립으로 마셨다. 드립 커피 가격은 6천원 정도였던 듯. 드립커피야 어디나 좀 비싸지만, 여긴 원하면 다른 종류로 커피를 얼마든지 무료 리필해 마실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 시간만 늦지 않았으면 나도 세잔까지 마실 욕심을 부렸겠지만... '만델링'을 두번째로 마시고 참았다. 진하게 볶은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라 요새 집에서도 케냐AA를 마시고 있는데, 이집 커피는 특히나 진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향을 높이는 로스팅 비법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만델링 원두를 사와서 오늘 내가 어설픈 솜씨로 드리퍼에 내려 마셨는데, 오오 어제 전문가 솜씨보단 못해도 맛있게 내려졌다. ^_______^  좀 전엔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추출해서도 다시 마셔보고 간만에 카페놀이에 흠뻑 빠졌음.

 

게다가 드립커피 담아주는 커피잔도 예뻐! ^^; 손님마다 커피잔을 달리 주는데 처음 마신 커피잔은 연분홍색이라 사진이 잘 안나왔다. 음식 앞에두고 여러컷 사진질하는 건 민망해서 달랑 한장 찍고 얼른 먹고 마시는데 집중하는 편이라 처음 마신 커피잔 사진은 못 올리는 것이 아쉽다. 아래 두 사진은 두번째로 리필해달라고 해서 등장한 '스프링 왈츠'와 만델링. 자체 블렌딩해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아주는 커피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강하게 볶은 '하드락'이란 것도 있다고. 담에 가선 그걸 마셔봐야겠다고 결심.   

머그잔 모양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색달랐던 건 오른손잡이의 경우 안쪽 로고가 본인말고 상대방 쪽에서 볼 수 있게 인쇄되었다는 점. 크레마로 뒤덮인 머그잔 아래로 드러난 저 로고를 본 순간 나도 마시고 싶어졌다. ㅋ 내가 마신 저 파란색 꽃무늬 커피잔은 노리다케 제품. 커피잔마다 다 브랜드 다른 걸 골라모은 듯했다. 큼지막한 머그잔에 잔뜩 담아주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잔받침 있는 커피잔에 우아하게 마시는 커피도 매력있다.

 

원두는 100g에 7천원 정도. 다른데와 비교해보면 저렴하다곤 할 수 없으나 신선하고 맛있는 로스팅으로 승부하려나보다 했다. 1kg을 4만원에 신청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월요일마다 4번에 나눠서 받아먹는 제도도 있다는 것 같다. 솔깃했지만 한달에 원두 1kg을 내가 다 못먹는다는 것이 문제. ㅋ

 

암튼 테이블도 몇개 안되고 아직은 비닐로 막아놓은 테라스 자리가 좀 추울 듯하지만 원목 의자와 테이블이며 천장에 드러난 서까래와 작은 화분들까지 마음에 들었다. 담에 가볼 땐 어느 케이크 전문점에서 공수해온다는 조칵 케이크도 맛있나 먹어봐야지.

 

저녁시간이 다 되어 출출해진 우리는 무얼 먹을까 또 한참을 고민했다. 눈알이 빠지게 맛집 검색을 해보다 포기한 뒤엔, 일행이 가본 적 있다는 칼국수집으로 가기로 했다. 사골칼국수집에서 아 글쎄 통통한 생선튀김을 판다네!?  

 

이름하여 <혜화 칼국수>. 위치도 혜화동로터리에서 금세였다. 이번엔 로터리에 있는 주유소 오른쪽 골목으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수십년 역사와 포스가 한눈에 느껴지는 알루미늄 샤시문과 낡은 간판이 나타난다. 생선튀김을 먹어야 하므로 칼국수는 하나만 시키려고 우물쭈물했더니만 서빙하시는 아주머니 재빨리 생선튀김 반 짜리가 있다며 둘 다 칼국수 시켜야 양이 맞는다고 부추겼다. (이 아주머니 별도 메뉴 시키는 다른 테이블에도 악착같이 칼국수를 인원수대로 주문 받아내는 신공이 있었다. 그건 쫌 불만!) 지킴이 면접만 없었으면 반주도 하면서 안주로 먹기에 딱이겠다 싶어 내심 아쉬웠던 통통한 생선튀김의 위용은 바로 이렇다!

흰살생선의 정체는 대구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아마 맞을 듯. 바삭하고 신선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원래 허름하고 유서깊은 칼국수 집에서 다른 메뉴 성공시키기가 어려운 법인데 신기했음. 생선튀김 원래 가격이 2만5천원이고, 절반은 만3천원이니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먹어보고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칼국수는 7천원.

 

튀김기름 처리문제가 무섭기도 하고 왕비마마에겐 기피해야할 음식 1순위가 튀김이라 집에선 절대로 튀김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짜 웬만한 재료는 바삭바삭 튀겨놓으면 다 맛있다는 걸 내가 왜 모를꼬. 나 역시 기름에 튀긴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저질 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끔 튀김 먹고싶어지면 찾아가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ㅎㅎㅎ

 

통통한 생선살의 느낌을 찍어보려 카메라를 들이대긴 했으나 초점도 잘 못맞췄다. 생선튀김을 거의 다 먹고 났을 무렵 나온 사골칼국수는 평균적인 맛이었다. 다데기 양념을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다 덜어내고 풀어놓은 모습이 아래 사진 오른쪽. 집 근처에도 <연희칼국수>라고 오래 된 사골칼국수 집이 유명한데, 그 집에 비하면 크게 맛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특히 연희칼국수는 백김치가 인기의 비결인데, 혜화칼국수는 김치와 무채나물이 내 입맛에 좀 짰다.  

그래도 생선튀김 때문에 다 용서되는 기분! ㅋㅋㅋ 다음에도 혜화동 가면 칼국수와 생선튀김을 먼저 먹고 림스커피에 가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순서로 동선을 짜볼 작정이다.

 

간만의 혜화동 나들이가 즐거워, 버스 안에서 흥얼흥얼 혜화동 노래를 부르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얼른 동물원 노래를 찾아들었다. 내 어린시절의 골목길 추억은 헤화동과 상관없지만 기분은 딱 옛친구를 옛동네에서 만나고 온 듯했다.

Posted by 입때
,

'우유만 마시던 연아가 커피를 마신다'고 했던가? 고현정의 내레이션이 깔린 연아커피 선전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한번 먹어봐야지 했었는데 막상 마트엘 가면 늘 까먹었다. 아예 인스턴트 커피 코너 쪽으론 잘 안가게 되기 때문이다. 성묘갈 때 타가려고 사놓았던 경쟁사의 믹스커피(강동원 커피!)가 꽤 오래 굴러다닌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어쨌거나 이미 연아커피를 시음해본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호기심은 남았다. 아마도 순전히 모델에 대한 호감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사에 시큰둥, 과대광고를 비웃는 나마저도 이러니 엄청난 모델료를 주고서라도 광고계가 특정 인물을 선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비록 제품값에 그 엄청난 모델료며 홍보비용이 다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째뜬 광고 보고 호기심이 인 먹거리가 연아커피 하나였으면 또 그냥 흐지부지 잊고 말았을 텐데, 얼마전 내 눈에 딱 들어온 TV광고가 있었으니... 송창식이 노래를 부른 <참붕어빵>이다. 유명 모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그냥 붕어빵이 주인공인 광고에 송창식이 CM송을 불렀는데, 단박에 먹어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바삭한 붕어빵을 한번도 못 먹어보고 그냥 지냈다. 어쩐지 억울해 억울해. 봄이 되면서 거리마다 붕어빵 노점상은 다 사라졌으니, 제과회사에서 만든 붕어빵 과자라도 사먹어보리라 불끈 결심이 섰다.

그러고도 까마귀 정신이라 까맣게 잊고 장볼 때마다 몇번을 그냥 건너 뛰고는 어쩌다 만나게 되는 광고에 아차! 하기를 여러번. 요번엔 마트 갈때 적는 메모지에 연아커피와 참붕어빵도 일부러 적어넣었다. 적어가서도 빼놓고 사오는 물건이 있는 마당에, 안 적어가서 생각해내기를 기대하는 건 이미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해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라고 하면 당연히 좀 과장이다;; ㅋ) 시식에 돌입했다. 둘 다 단 거라 한꺼번에 시도했을 리는 없고, 일단 참붕어빵부터 밤참으로 뜯었다. 엇.. 근데 과자 포장이 뭐이리도 예쁘다냐!

itistory-photo-1

(이미 두개 먹고 나서 생각나 사진을 찍었다 ㅋ)

요즘 모든 과자가 요란뻑적지근한 과대포장을 하는 통에 박스는 꽤 큰 반면 막상 열어보면 은박비닐 포장된 내용물이 몇 개 안 들어 화를 돋우는데, <참붕어빵>도 그 대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속포장을 색색깔로 네 종류나 달리 해놓다니 무슨 팬시용품 같기도 하고 왠지 맘에들어! 포장비에 투자할 돈으로 내용물이나 좀 더 크게 만들지, 라며 노상 투덜거린 게 민망스럽게도 나는 과대포장 상술에 또 홀딱 넘어가 후한 점수를 주고 앉았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속포장을 까서 시식. 으으 역시 달구나. 찹쌀을 넣어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더니 역시나 내가 기대한 붕어빵의 맛과는 거리가 좀... 쫄깃거리는 게 아니라 내 입엔 좀 찐덕찐덕 마시멜로 같기도 하고 스펀지 같기도 하고, 씹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마들렌처럼 부드럽게만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째뜬 엄연히 밤참끼니로 먹는 것이므로 우유랑 삼켜서 그럭저럭 2개를 먹었지만 너무 달아서 한번에 그 이상은 못먹을 것 같았다. 열량표시를 보니 역시나 2개가 '1회 제공량'이라고 되어 있고 280칼로리쯤 된다고. 당연하겠지만 밥한공기를 너끈히 넘기는 열량이다. 니글니글 텁텁하게 남은 단맛 때문에 결국 나는 얼른 대저토마토를 우적우적 씹어먹어야 했다. 마트에서 할인해 3천5백원쯤 주고 샀으니 할인 전엔 마리당 500원 정도라는 의미다. 요새 2천원에 세마리 주는 진짜 붕어빵보다는 저렴하지만 물론 크기도 훨씬 작고 팥소도 부실하다. 앞으로 송창식 아저씨가 노래로 낭랑하게 꼬셔도 다신 안 사먹어야지, 쳇.

다음날 연아커피는 오전 두번째로 마시는 커피타임에 시도해보았다. 설탕 부분을 조절하더라도 단맛을 감안해 냉커피로 마셔볼테닷. 헌데 그게 나의 착오였던 듯. 가뜩이나 연한 연아커피를 얼음 잔뜩 부어 냉커피로 만들어놓으니 이도저도 아닌 싱거운 맛만 강조되는 게 아닌가. 다시 다음날엔 적당히 물을 조금 부어 뜨겁게 타 마셔보았는데, 그간 원두 갈아마시기에 심취하여 믹스커피의 참맛을 까먹은 듯, 달달하고 진한 자판기 커피 특유의 매력을 통 느낄 수가 없었다. 부드러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커피 본연의 매력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걸까나. 에잇, 연아커피도 다신 안 사먹을 테닷! (근데 남은 봉지믹스는 어쩐담;;)

언젠가 누군가 새로 나오는 과자와 라면 따위를 죄다 먹어보며 올린 시식기를 킬킬대며 읽었던 적이 있다. 어찌나 자세하고도 구구절절 느낌이 자상하던지. 그게 누구였더라? 나는 귀도 막귀라서 음악을 섬세하게 구분해 듣지 못하듯, 입도 막입이라 아무거나 잘먹는 반면 미묘한 맛의 차이를 세세하게 구분해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어불성설 이런 포스팅을 한다는 게 좀 민망하지만, 워낙 별렀다가 먹어보고 실망한 참이라 식탐녀의 흔적으로 기록해둘 만하다 여겼다. ^^;

Posted by 입때
,

커피집 불만

투덜일기 2011. 10. 27. 17:25

지난번 추석때였나. 두 올케와 둘러앉아 명절노동에 힘쓰는 도중에 둘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언니, 옛날에도 좀 까칠했지만 요샌 심히 까칠해졌어요, 라고. 스스로 까칠한 인간인 건 알고 있었어도 '심히' 티나게 그 소양이 발전했다니 좀 찔렸다. 원래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데 동생들한테도 그랬었나? -_-a 며칠 전엔 동생이 뭘 부탁한 일로 통화를 하다가 막 언성을 높이며 쪼잔하게 굴었더니(분노의 대상이 동생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 저쪽에서 큰동생이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이 누나를 어쩌면 좋으냐고 속으로 중얼대는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사소한 불평불만을 속으로 삭이고만 있을 배포는 안되니 또 단순하게 투덜투덜 구시렁구시렁.

오늘은 후배랑 시내에서 점심 먹을 일이 있어, 이왕이면 매상 올려준다고 안국동 트윈트리타워에 가서 수제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먹고는 건물 1층에 있는 Think Coffee로 수다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미 커피를 한잔 마셨으므로 아메리카노 작은 걸(S, 3800원)로 두잔 주문하며 머그잔에 담아 달랬더니 머그잔 커피는 중간 크기(M, 4300원)부터 판매한다고 했다. 엥? 뭐시라고? 머그잔이 크면 거기 양껏 담아주면 되지 머그잔으로 마시려면 큰 걸로 주문하라는 시스템은 또 뭐냐? 은근 빈정이 상했다. 그제야 카운터 옆에 세워놓은 컵 사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별다방 콩다방을 비롯한 커피집엘 내가 요즘 잘 안다녀 거기도 최근 바뀌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크기 컵이 아 글쎄 겨우 자판기 종이컵 만한 게 아닌가! 공정무역이니 저온 로스팅이니 어쩌니 해도 Think Coffee가 별로 맛은 없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는데, 게다가 양까지 적다니 돌연 화가 났다. 어쨌든 나는 머그잔에 나름 양껏 커피를 마시고 싶었으므로 돈을 천원 더 내고 크기를 바꿨다.

투덜투덜 자리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으려니 좀 있다가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이 나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떡하니 종이컵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철저한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일부러 종이컵에 안먹고 머그잔에 마시려고 사이즈까지 바꿨는데 종이컵에 담아주는 무신경함은 뭐냐고! 우리가 시킨 거 아닐지도 몰라 재차 확인했다니 맞단다. 와락 열이 오른 내가 머그잔 주문했는데 어찌된 거냐고 따졌다. (까칠해지면 소심이에서 돌연 쌈닭모드로 변신!) 그제야 머그컵에 다시 담아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얼빵한 직원... 만약에 머그잔이 보온중이었다면 나는 그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원이 집어드는 머그잔은 그냥 선반 꼭대기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종이컵에 따랐던 커피를 다시 차가운 머그잔에 부어 주겠다는 거냐!? 또 한번 열받음 -_-;;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됐다고 말하며 그냥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점심시간 이후라 거의 빈자리 없아 바글거리는 사람들 모두 플라스틱컵 아니면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보나마나 빤했다. 직원들이 머그잔 설거지하기가 싫었겠지! 콩다방에서 알바를 했던 후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장 인원이라는 게 빤한데 설거지까지 하려면 시간없고 힘들어서 굳이 원하는 손님이 아니면 모르는 척 종이컵에 준다고. 그리고 제일 진상손님은 조각 케이크 시켜서 먹으며 접시와 포크 뿐만 아니라 머그잔과 쟁반에 크림 묻혀서 설거지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이라고. 보통 쟁반은 행주로 슥~ 닦고 만다는데, 쟁반 설거지까지 하려면 싫기야 싫겠지. 하지만 그게 그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커피전문점들의 시급이 최저임금수준이고 그들이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현실 때문에, 노고를 감해주는 의미로 소비자가 종이컵을 무조건 수용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고용주와 노동자간에 사회가 개입하여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머그잔과 종이컵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몫인데, 머그잔에 달라는 손님까지 종이컵에 담아주는 건 대체 무슨 무대포 정신일까나. 커피는 따뜻한 머그잔에 마셔야 제맛이란 말이다, 이놈들아! 이런 지경이니 어떤 진기한 커피를 시켰더라도 맛있을 리 없었지만 냉정히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정녕 맛있는 커피는 아니었다. 흐리지도 않은데 밍밍한 건 뭔지. 차라리 햄버거집 커피가 더 훌륭했음.

수다를 이어가면서도 내 머리 한 구석엔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Think Coffee 안되겠네. 담에 다신 오나 봐라. 담부터는 옆동에 있는 별다방에 갈 거다. (실은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 갔을 땐 밤이라 카모마일차를 시켰고 머그잔에 달라고 했었음. 나중에 합류한 일행은 별 말 안했는지 종이컵에 커피를 받아왔고.) 커피집 게시판에 소비자불만 올릴까? 확 가열찬 불매운동을 펼칠까? +_+ 니들 까칠한 인간 잘못 건드렸어! 소비자 입장 대신 이젠 업주 입장에서 요식업계(?) 비즈니스를 바라보게된 동생들은 아마도 띨빵한 직원이 깜빡하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뭐 그리 쪼잔하게 속을 끓이냐고 한 마디 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마음 상한 건 절대 안 잊는 뒤끝 엄청 긴 쪼잔한 소인배인걸... 그리고 애당초 머그잔에 마시려면 작은사이즈 커피는 주문도 안된다고 하는 것부터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게시판 불만 접수나 불매운동 같은 건 게으름 덕분에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저 이런데다 하소연하고 마는 거지. 혹시라도 소비자 반응을 살피는 프랜차이즈 관계자 검색에 걸려 직원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인 거고 아님 마는 거고. 나야 뭐 다시 안가면 그만이니까... 와이파이 잡으려면 비밀번호 입력해야하는 것도 불편했다고! 흥! 융통성없고 요령 없는 그 직원은 끝까지 정점을 찍었다. 매장을 나서며 마침 출입구가 음료 내주는 데 바로 옆이라 빈 컵과 쟁반을 내밀었더니 (다른 커피집은 그러면 주방까지 가져다준데 오히려 감사하며 선뜻 받지 않나?) 굳이 구석쪽 반납대를 가리키며 거기다 가져다 놓으라고 명령하시더군. 우엑~! 혹시나 커피집 관계자가 와보고선, 예전 허위학력 건축가처럼 무작정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이라 티스토리에 삭제를 청구하는 사태가 발생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작정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정식 법적 소송이 아닌 한 티스토리측에서도 한달간 글 비공개로 해뒀다가 다시 공개하는 걸로 마무리됐으니 나도 겁날 거 없다. 정당한 소비자 불만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보면 더더욱 그 커피집 영업방침을 알게되겠지. 분명 말해두지만 나는 얼토당토않게 괜히 트집잡는 블랙슈머가 아니고 단지 종이컵 두개 소비 안 되도록, 또한 잘 안식는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가 '무시당한' 일개 힘없는 소비자일 뿐이다.
Posted by 입때
,

티백

투덜일기 2011. 9. 30. 04:40

커피는 투박하고 큼직한 머그잔에, 그밖의 차는 예쁜 찻잔에 마시는 게 제격이라는 편견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몰라도 나 또한 그 편견에 꽤나 충실한 편이다. 커피는 잔이 투박하고 큼직해야 오래도록 식지 않을 테니 맞는 말 아닐까. 그리고 주워들은 풍월에 따르면 홍차는 약간 되바라진 잔에 마셔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던데.

커피를 제외한 차의 맛을 잘 모르는 무감한 혀를 가졌으되 그냥 홍차는 모르겠고 한동안 '밀크티'에 탐닉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네다섯 번은 홍차를 마셔대는 영국인들과 거래할 일이 있던 직딩 시절 출장 직후였던가, 아니면 번역으로 전업 후 영국에 있는 친구한테 다녀온 직후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여간 겨우 며칠 영국엘 다녀온 주제에 겉멋이 들었던 것인지, 우유를 넣은 그곳의 홍차가 진짜로 기막히게 맛이 있었는지, 영문은 알 수 없어도 평소 같으면 커피 생각이 날 무렵 밀크티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무조건 커피를 시키던 내가 대신 밀크티를 주문하기도 하고...

밖에서 마시는 홍차나 밀크티는 대부분 또 얼마나 예쁜 잔과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지, 차 한잔에 스스로가 괜히 우아해지는 것도 같았다. 원래부터도 예쁜 커피잔만 보면 기어코 뒤집어서 제조사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도자기 주전자와 다양한 모양의 인퓨저(거름망이라고 해야하나? 잔에 걸쳐 놓는 채 같은 형태도 있는데;;), 앙증맞은 티백 접시까지 세트로 구비되어 나오는 집엘 가면 아주 흐뭇했다. 그런 걸 보며 흐뭇하기만 하면 좋겠으나 견물생심이라고... 예쁜 티팟도 갖고 싶고, 독특한 디자인의 인퓨저도 자꾸 눈에 들어오고, 브랜드명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가격의 찻잔도 덜컥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 돼~~! 지름신 노예의 최종 귀결지가 주방기구라지 않던가! +_+

결국 나는 찻잔 욕심과 함께 밀크티를 끊는 쪽으로 마음을 접었고 이후 아무 잔에다 마셔도 적당한 농도에 양만 많으면 그저 기쁜 커피파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과연 내가 티팟과 인퓨저를 하나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부담없는 수준으로 당연히 장만해 놓은지 오래라 가끔은 우아떨며 차마시기 놀이를 한다. 커피 생각 간절한데 한밤중에 커피를 마실 순 없고, 이렇게 갑작스레 서늘해진 날 따끈한 차 한 잔이 마시고 싶으면 만만한 카모마일이나 국화차, 허브차를 준비한다. 문제는 제대로 우아 좀 떨겠다고 간편한 티백 형태가 아닌 꽃이나 잎을 인퓨저에 넣고 우려내고 했다간, 나중에 치우는 일이 대단히 성가시다는 것. -_-; 새삼 방에 매달린 줄을 당겨 하인을 불러 차를 부탁하는 귀족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못할 짓이다. (매번 커피잔 씻는 것도 귀찮아서 갯수대로 있는 컵을 다 꺼내 쓰고 한꺼번에 설거지하는 인간이라고 이미 밝힌 적 있음;;) 

시방도 1인용 티팟에 인퓨저로 카모마일을 우려낼까 하다가 문득 다 귀찮아져 티백을 꺼냈는데, 젠장, 대강 물을 부어 방에 와보니 종이 손잡이까지 찻잔에 몽땅 다 빠져버렸다. -_-; 혹자들은 티백에 든 차는 차로 쳐주지도 않는다던데, 그까짓 간단한 절차도 귀찮아한 사람에 대한 차의 반격일까 싶은 생각에 (쓰면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ㅎㅎ) 웃음을 흘리며 뜨거운 찻잔에 손가락을 담가 티백을 건져냈다. 오 위대할손 나의 게으름이여.
Posted by 입때
,

주전자

투덜일기 2010. 12. 26. 21:17

과학이나 상식으로 접근하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나 혼자 굳게 믿고 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물 끓이기.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으니까 (여기서 고도나 물의 순도는 논외로 하자;; 복잡한 거 모른다) 30초를 끓이든 1분을 끓이든 5분을 끓이든 물의 온도는 똑같을 테고 성분이 달라지거나 하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나는 주전자 꼭지에서 수증기가 팍팍 올라올 만큼 꼭 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만 커피 포함 모든 차를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오랜 편견은 아마도 생수나 정수기가 생활화되기 이전에 수돗물로 모든 찻물을 끓이던 시절 수돗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원두커피와 친해지기 이전에 생겨난 것이고, 특히 인스턴트 커피를 탈 때는 반드시 해당되는 '진리'였다. 

내가 녹차를 몹시도 싫어하면서 떫고 비린내 나고 비위에 거슬리는 맛이 난다고 주장하면, 녹차 애호가인 친구는 내가 찻물 온도를 못 맞춰서 그런 거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그 친구가 청정지역에서 수행자들을 위해 재배한 특수 녹차를 다관까지 갖춰놓고 만들어줘 봐도 도무지 녹차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도 집에서 왕비마마 녹차 만들어 드릴 때 물 뜨거우면 더 떫어지니까 충분히 식혀서 티백을 넣는단 말이닷! 드물게 드립 커피를 만들어 마실 때도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드립 전용 주전자는 없더라도 일단 물을 팔팔 끓인 다음에 사기로 된 작은 주전자에 일단 옮겨 대강이나마 물의 온도를 90도쯤으로 맞춘(다고 생각한다 ^^;)다. 물을 붓는 게 아니라 아예 푹푹 오래 끓여야 하는 대추차나 둥글레차, 생강차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향긋하거나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감돌 때까지 약한 불에 뭉근히 끓여야 제격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집마다 없는 집이 거의 없다는 무선주전자를 사고 싶지도 않고 전혀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이미 탁 하고 꺼져버리는 경박함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일단 그렇게 끓다 만 물로는 커피믹스에 금방 부어도 맛이 없다니깐! +_+ 내가 근거 없는 이 이론을 제시하면 더러 동의를 하면서 무선주전자 작동 버튼을 한번 더 눌러 두번 끓인다는 이도 있다. 코코아든 커피믹스, 녹차든 홍차든, 캐모마일 차든 국화차든, 일반 주전자로도 물을 좀 덜 끓였거나 무선주전자로 물을 끓여 타면 뭔가 미묘하게 덜 된 맛이 느껴지는데, 이게 순전히 나의 무선주전자 불신 탓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원두커피의 경우는 에스프레소를 희석할 때도 끓인 물을 적정온도로 식혀 부어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고,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필요한 드립커피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커피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순전히 억지이고 오류일지 모른다. 강릉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커피전문점 사장님도 전기 무선주전자로 끓인 물을 드립 주전자에 담아 (그 과정에서 적정온도인 90도가 될 거라고 했다) 커피를 만들더라. ㅋ 그저 내가 좀 구식이고 아날로그형 인간이고 사소한 데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고 인정할 뿐이다.

문제는 자동 온도조절 장치가 있는 무선주전자와 달리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팔팔 끓이다가는 자칫하면 주전자를 태워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미 내가 '해먹은' 주전자가 서너 개는 되는 듯하다. 나처럼 정신 나간 장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위해 익히 발명된 '삐삐 주전자'가 있기는 하지만, 난 또 시끄러운 그 물건도 혐오하는 사람이다.-_-; 예쁘장한 법랑 주전자로 찻물을 끓어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걸 어쩌랴. 그래서 찻물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거나 딴짓을 하다 허거걱 놀라 달려가는 경우가 간간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물이 다 졸아들지 않아 새로 끓이기만 하면 될 때도 있지만 심한 경우엔 법랑에 금이 갈 정도로 쇠가 달구어져 십년감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도 딸기 무늬가 들어간 법랑 주전자를 그렇게 망가뜨려 보냈건만, 얼마 전 아끼던 '에**' 주전자를 또 그렇게 해먹고 말았다. ㅠ.ㅠ 한두 잔 타기 위한 찻물을 올려 놓으면 반드시 그 옆에서 지키다가 임무를 완수해야 함을 원칙으로 정했으면서, 거의 1년 주기로 그 원칙을 까먹는 탓이다. 이쯤 되면 집집마다 아줌마들이 왜 무선주전자로 정착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차 한 잔 탈 물을 끓이는 데는 1분도 안걸린대고, 가스불을 켜면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도 없으니 탄소배출량도 적을 거라고 누군가 주장하던데, 그 진위는 몰라도 1년에 한번씩 주전자를 태워먹어 새로 사는 것보다는 그쪽이 환경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봤자 나는 또 일반 주전자를 사들이겠지만서도... 

쓰던 법랑 주전자를 태워먹은지 몇달 됐는데도 아직 새로 안(못)사고 엄마네 삐삐 주전자를 빌려다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으로 살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다. 또 다시 편하고 익숙한 '에**' 주전자로 살것인가(그렇다면 또 어떤 무늬로??), 그냥 법랑주전자이긴 하되 별로 안 예뻐도 저렴한 것으로 부담없이 장만할 것인가, 아니면 이왕 사는 거 더욱 깜찍한 무늬가 들어간 고가의 유럽산 법랑 주전자를 살 것인가(이 또한 브랜드와 무늬가 여러가지다 -_-;) 우유부단한 마음으로는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으휴. 앞으로 또 태워먹지 말란 법이 없으니 너무 비싼 건 안 사는 게 나을 것도 같지만, 또 고가의 주전자라면 아끼느라 더더욱 조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니 계속 갈팡질팡이지! 까짓 주전자 하나로도 꾸질꾸질 청승맞게 (문득 하이킥 해리 생각나는 조어로다;) 이러고 고민하는 내가 참 싫다. 주전자 태워먹는 나는 더욱 싫고! 물 끓이는 것조차 집착하는 내가 제일 싫은 건가? 아무려나 차 마시는 기분이 안 나서라도 얼른 주전자를 사긴 해야할 터인데;;
Posted by 입때
,

요즘도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려면 커피콩을 꺼내서 수동 분쇄기로 갈고 브리카에 물을 올려 에스프레소를 추출함과 동시에 옆에서 희석용 물을 끓이는 다소 골치아픈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그 귀찮은 과정이 한편으론 정겹고 그윽한 향기가 온집안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기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캡슐형 에스프레소 기계에 대한 선망이 모락모락 일기도 한다. 조카네 갈 때마다 대접받는 캡슐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이 제법 쓸만하기 때문이다. 헌데 설상가상 요샌 조지 클루니가 한국 TV에도 등장해 나를 유혹한다. +_+ (한때 나는 -- 그러니까 메디컬 드라마 ER의 광팬이었을 때 -- 조지 클루니의 열혈 추종자였다. 이제는 뭐 여전히 그냥 멋지다, 숀 코넬리 급으로 나이들수록 멋있어지는 배우 정도로 생각하지만;;)
마침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클루니의 그 광고 생각이 나서 유튜브를 뒤졌다. ^^; 흥흥흥. 좋구나야.



요새 TV에서 볼 수 있는 광고는 위의 것이지만, What else? 시리즈의 전편을 보아야만 저 내용이 더 실감난다.
여러 시리즈 중에서 내가 보기에 수트 차림의 바람둥이 조지 클루니를 가장 멋지게 (그래서 좀 느끼하게) 잘 표현해낸 광고 시리즈는 이거다. ㅋㅋㅋ ^^* 


Posted by 입때
,

허리와 커피

투덜일기 2010. 9. 1. 18:13

이틀 전 아무 이유 없이 허리를 비끗했다. 무거운 걸 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몸을 깊이 수그린 것도 아니다. 그냥 외출하려고 손을 뻗어 소파에 있던 가방을 집어들려던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몸이 좀 이상했다. 과거에 허리를 삐끗하거나 어깨 같은데 담이 들릴 때는 외부로 들릴 만큼은 아니라도 몸 어딘가에 무리가 갔음을 직감할 수 있는 '우드득' 또는 '휘청' 하는 소리가 나에게만은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손을 뻗었을 때와 손을 거두었을 때의 몸 느낌이 달랐을 뿐이다. 심한 이상은 아니라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할 땐 거의 멀쩡하지만 자세를 바꿀 때가 문제다. 특히 엉거주춤 구부리는 동작은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가장 괴로운 건 볼일 볼 때. -_-'' 주변에선 빨리 병원엘 가든지 한의원엘 가라고, 하다못해 파스라도 붙이라고 성화지만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라면서 그냥 버티는 중이다. 확실히 상태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화장실 다닐 때와 잠자리에 누울 때 많이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앉아서 일할 때는 거의 불편함을 모르겠고... 어쨌거나 또 요가수업 빼먹을 핑계가 생겨서 기뻤다. 이젠 요가를 빼먹어도 돈도 아깝지 않은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카한테 민망할 뿐.

원두커피가 떨어져서 이번에도 같은 원두를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공정무역 커피를 주문했다. 그간 양심에 찔리면서도 가격이 두배가 넘는 데다 입맛에 맞는 걸 찾으려면 또 몇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망설였다. 원두는 금방 볶은 걸 조금씩 사다가 일주일 내로 먹어야 제격이지만, 방구석 붙박이로 사는 나로서는 그냥 대용량을 사서 며칠 간 신선한 원두커피를 즐기다 남은 원두는 얼른 냉동보관했다가 조금씩 꺼내 갈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주문해 먹던 원두는 1kg에 3만6천원. 이것저것 사먹어 보니 내 입맛엔 풀시티로스트로 좀 진하게 로스팅한 남미산 커피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가격대비 만족도도 몹시 높았다. 주문한 뒤에 로스팅해 보내주는 원두를 이틀 쯤 뒤에 받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정말로 향기가 온 집안 가득 그윽하게 퍼진다.

어쨌든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주문 하면 그제야 볶아서 배송해준다니 원두만 잘 고르면 될 듯했는데, 똑같이 콜럼비아산 아라비카 커피를 두 종류로 시켰는데도 오늘 도착한 원두를 설레는 맘으로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 보니 맛이 없다. -_-;; 개인적으로 나는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향도 그윽함이 덜하고 맛은 전체적으로 시큼털털하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여러군데이니 계속 양심적인 커피를 마시려면 로스팅을 좀 더 잘하는 곳을 찾아봐야한다는 뜻이다. 구매자 후기 읽어보니 다들 '맛'보다 '공정무역'에 방점을 두고 산 듯했는데 그걸 간과한 내 잘못이다. 227g에 만오천원씩, 두 봉지 다 맛이 없다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하나는 성공할 줄 알았건만... 솔직한 마음으론 공정무역이고 양심이고 다 관두고 그냥 예전에 주문하던 데다 다시 원두를 주문하고 싶다. -_-; 변변한 낙도 없는 삶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결국엔 커피 업체를 잘못 고른 나의 잘못인데도, 공정무역 커피는 별로 맛이 없다는 쪽으로 자꾸 편견이 자리를 잡으려 하기에 이렇게 또 끼적이고 있다. 자꾸 마셔보면 신맛에도 길들여지려나... 흠

Posted by 입때
,

또 새삼

투덜일기 2010. 4. 27. 15:27
또 새삼 깨달은 거 두 가지.

식물의 이파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너무도 무성해져서 이젠 껴안아 들고 옮기기에도 힘에 부친 화분들의 위치를 다시 옮겼다.
왕비마마 운동하시라고 사들인 실내 싸이클을 TV 정면에 두느라(TV를 볼 땐 반드시 자전거에 앉아 운동 하시라고) 소파를 베란다 창쪽으로 밀었으나, 내가 바랐던 TV보며 운동하기의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비딱하게 옆으로 기대는, 왕비 허리에 안좋은 몹쓸자세만 강화될 뿐이라 소파 및 화분의 위치를 원래대로 돌리고, 싸이클을 베란다쪽으로 놓기로 한 거다.
특히 내가 싫어하는 일(청소, 집안정리, 서랍정리 따위)를 할 땐 누가 말 거는 것도 짜증스러워 엄마를 안방에 가두고는 혼자 낑낑대며 후다닥 청소기를 돌리고 소파, 싸이클, 화분을 배치하고 걸레질까지 쓱싹쓱싹 마쳤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방청소를 하려고 보니 손목이 마구 쓰라리다. 젠장. 양쪽 손목을 얄팍하게 또 베었다. 지난번에 화분 옮길 때도 그랬었는데, 고새 까먹은 탓이다. 초록 이파리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싶지만, 선인장도 아닌 것들이 꽤나 날카롭다. 심증이 가는 건 금전수 이파리인데, 만져보면 여리여리한 동전 같은 이파리가 어느 구석으로 내 살을 에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식물 이파리에 팔목을 벤 여자다. 큭.

뭐든 과하면 안된다.
오늘은 어쩐지 커피를 아주 진하게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원두를 좀 많이 갈아서 꾸역꾸역 비알레띠 브리카에 쑤셔넣고는 힘주어 주전자를 잠갔(다고 생각했)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압력추 올라가며 에스프레소 추출되는 소리가 안들리는 거다. 주전자를 좀 덜 잠갔을 때처럼 옆으로 새어나오는 커피물도 없을 정도...
결국 두배쯤 갈아 넣었던 원두를 쏟아버리고 죄다 닦아낸 뒤에 다시 적정량을 갈아 다시 추출해야 했다. 혼자만의 생각과 논리로는 분명 될 것 같은데, 현실에선 안통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욕심을 부리고 꼭 실패 후에야 새삼 깨닫는 척을 한다.

어쨌든 오늘은 따끔거리는 손목으로 다른 때와 비슷한 농도의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깨달음이 채 하루도 가기 전에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둔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