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커피

투덜일기 2015. 3. 19. 05:46

어릴 때 모기에 물리면 집에선 주로 물파스를 발라주었는데, 물리자마자 바로 바르면 모를까 자면서 이미 한참이나 긁어버려 새빨갛게 부풀어오른 다음 날 즈음엔 물파스를 발라도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괜히 자주색으로 변했다가 시커멓게 변하기나 할 뿐. 그래서 대신에 나는 전해들은 '민간요법'(?)을 더 선호했다. 모기 물린데를 손톱으로 꾹 눌러 열십자로 자국을 남기는 거다. 아픔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손톱으로 꽉 누르다 보면 통증 때문에 가려운 느낌이 가려지는 효과랄까. 특히 모기나 벌레가 침을 꽂은 바로 그곳을 정확하게 열십자의 한가운데로 눌러줘야 효과가 직방이라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 피를 내기도 했지만...


넘어지거나 찢겨서 어딘가 피가 나고 아플 때도 지혈을 핑계로 상처 부분을 모질게 꽉 누른 적도 있는 걸 보면 꽤나 자학성향이 있는 건가 싶다. 이 새벽에 위가 부은 듯 더부룩하고 쓰라린데도 굳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커피를 넘기며, 이 또한 벌레 물린 데를 손톱으로 지져대거나 상처를 더 짓누르는 과거의 행동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대체 커피를 언제 마시란 말인가! 빈 속에도 마시지 마라. 밥먹자마자 바로 마시는 것도 미친 짓이다. 수면의 질을 위해선 늦은 오후에도, 잠자리 직전에도 마시지 마라.... 쳇... 


따지자면 지금 마시는 새벽 커피는 내겐 잠들기 전 너무 늦게 마시는 커피에 해당할 테고, 어제 날이 꿀꿀했던 관계로 적정 카페인 양(원두커피로 두 잔)은 이미 넘어버렸으니 어쩌면 아예 잠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성난 위는 더 아플 테고, 요즘들어 종종 말썽을 부리는 무릎도 더 아플테고 날카로운 신경에 더 까칠해질 테고.... ㅋㅋ 매사에 미리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 제풀에 지치고 마는 버릇대로 이미 다 결과를 예상했으면서도 결국 커피를 선택했으니, 결론은 아마도 내가 참 청개구리라는 것? 빈속에 찌르르 느껴지는 카페인의 자극(물론 나의 상상이겠지만;;)과 쾌감이 나빠봤자 설마 애연가들의 새벽 담배만큼 하랴,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려나 이 커피 맛있네... 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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