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18일 화요일 아침. 6시 알람에 눈이 번쩍! 언니들(큰언니의 친구분도 한 명, 총 4명이 여행 일행이었음)은 8시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얼른 씻고 소풍 준비하듯 친구는 달걀을 삶고(남편이 주말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유기농 달걀이라면서) 전날 밤 미리 구워 잘라놓은 쥐포와 문어 다리(!)를 챙기고...그러는 사이 나는 치즈케이크 한조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친구가 차려준 첫 끼니이므로 기념촬영해야한다고 하니 민망하다고 깔깔 웃는 친구... 원래 아침 잘 안 먹지만, 여행 다닐 땐 삼시세끼 꼭 챙겨먹어야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하루 24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하려면 체력보충부터 해야하기 때문일까?
이렇게 매일 고칼로리로 아침을 시작해 열흘 내내 삼시세끼+간식으로 충만한 삶을 산 결과는 역시나 빤한 것이어서, 나는 얼굴에 주름이 모두 펴질 정도로 빵빵하게 보름달처럼 부푼 얼굴로 귀국했었다. 체중도 3kg쯤 늘었었고...
어행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더 지난 지금 체중은 예전으로 돌아왔는데 빵빵한 얼굴은 왜 때문인지 아직 여전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 좋아졌다'고들 한마디씩 한다. 여행가서 아주 좋았나보구나? 얼굴이 훤하다.. 등등..
그들의 선입견 탓인지, 진짜로 낯빛이 환해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고 암튼 동그란 얼굴이 심히 빵빵한 네모가 되어있는 건 사실이다. ^^;
그리하여 아침 8시 드디어 우린 첫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마침 SF MOMA에서 마티스 전시회를 하고 있더라면서 미술관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해 3시 티켓을 이미 사놓으셨다는 언니. 아싸~
중간에 들러 나름 염원이던 '인앤아웃 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햄버거 4개를 모두 세트로 시켜서 감자튀김은 다른 시뻘건 쟁반에 한가득 따로 나왔는데 으어.. 영 맛없어 보이게 사진에 나와서 삭제했다. +_+ 서부에 왔으니 인앤아웃버거는 먹어줘야한다는;; 가격대비 만족도는 역시나 최고가 아닌가 싶다. 배불러서 바삭바삭한 감자튀김 다 못먹고 나오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갈 길이 멀고 미술관 시간도 맞춰야해서 마음이 바빠, 진짜로 거의 10분만에 빨리 버거를 해치우고는 내쳐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렸다.
몇년째 계속 가물고 산불나고 난리였던 캘리포니아는 주택마다 잔디밭도 없애고 돌이나 나무칩을 까는 걸 주정부에서 보조해줄 정도였단다. 매일 잔디밭에 주는 물값도 어마어마하려니와, 도저히 그렇게 낭비할 물이 없었다나.
근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고속도로 양쪽에 늘 황량하고 누렇기만 하던 언덕에 풀이 돋고 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왔다면서, 그 또한 우리의 여행을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우리끼리 키득거렸다. 캘리포니아 북쪽은 몰라도 남가주엔 절대 없던 일이라나 뭐라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Courtyard Marriott Hotel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가방만 방에 덜렁 집어던져놓고선...(나 메리엇 호텔에 묵었어! 감동할 새도 없이ㅋㅋ)부리나게 근처에 있는 SF MOMA로 걸어갔다.
마티스 단독 전시가 아니라, 마티스의 작품에 엄청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디벤콘'이라는 미국 화가와 합동 전시.
한국에서 대형 기획 전시 관람료가 막 만오천원씩으로 올라 불만이 많았으므로, 미쿡에선 대체 이런 특별전 티켓을 얼마 받나 슬쩍 인터넷 예약증을 살펴보니 무려 31불.. +_+
상설전시만 보는 것도 25불이었다. 흠.. 우리나라가 엄청 비싼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전세계 미술관도 요즘 추세는 상설전시는 예전처럼 자유로이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은 사진을 못찍게 하는 듯. 마티스와 디벤콘 전시관에서는 하나도 사진을 못찍었다.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 많이 없고, 디벤콘이라는 화가는 내게 완전 '듣보잡'이어서 약간 실망했지만 ^^;; SF MOMA의 건물 자체도 마음에 들고 상설전시된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 빡빡한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로 사진 구색 맞추느라 막 본인사진도 방출. ㅋㅋ 내가 의식하지 않고 찍힌 뒷모습 사진 좋아한다고 했더니만 큰언니 친구가 어찌나 뒷모습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지... (물론 앞모습도;;) 평소 내 자세가 얼마나 껄렁한지 많이 알게 되었다. ^^;;
암튼 칼더의 모빌 작품 넘 좋으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앤디 워홀 작품도 많고 상설전시 작품이 알찬데 5시 폐장에 맞춰 숨가쁘게 돌아보려니 어찌나 아쉽던지... 그래도 5시를 넘긴 후에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기념품 가게에 들러 우산도 장만했다. 짐 줄인다고 우산도 안 챙겨갔는데 캐나다에 가면 계속 비를 맞을 거라나 뭐라나... 마침 몇년 전 선물받은 우산도 잃어버렸겠다, 가느다란 핀스트라이프 들어간 분홍색 3단 자동우산을 골랐고, 며칠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미술관을 나와선 아직 저녁 먹기도 이르겠다... 유니온 스퀘어까지 걸어갔다. 주변에 막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걸 보면 나름 관광명소인듯. 그치만 여기저기 어찌나 공사중인 곳이 많던지 소음에 귀가 멀 지경.
아니 5시 넘었는데 미쿡 사람들 왜 퇴근 안하고 아직까지 일하지? 신기했다. ^^; 엄청 오래전이긴 하지만... 뉴욕과 시카고 갔을 때 보면 건설노동자들도 5시에 칼퇴근하던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전차를 또 안 찍을 순 없지... 여행자들인듯 마침 전차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 발견해서 가까이서도 땡겨 찍고... (요번엔 전차 안탔음. 돌이켜 보니 샌프란시스코도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보다, 두번째가, 두번째보다 요번 세번째가 더 좋았던 것 같다.) .
여정 첫날의 저녁은 한식파인 나의 친구를 위해 (이미 점심때 먹은 햄버거 때문에 느글느글하다고 밥 먹고 싶다고 하심;;) 일식으로 정했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제대로 된 캘리포니아롤도 먹고 스시도 먹자면서...
가운데 둥근 그릇에 든 2개의 메뉴는...
왼쪽은 그냥 참치회(연어회였던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오른쪽은 일종의 회덮밥이다.
큰언니(앞으로 E언니라고 하겠다;;)가 미국 맛집/쇼핑 평가 앱인 YELP의 신봉자여서, 우리가 갈 모든 음식점을 이 앱으로 검색해 별점과 후기를 꼼꼼히 따져 골랐다.
TACO BAR라는 이 집도 근방에서 엄청 유명한 집인지,바에서 맥주 마시며 30분쯤 기다렸다가 간신히 테이블에 안내되었는데 우리 빼곤 죄다 서양인들이었고... 우리가 2인분으로 시킨 롤을 옆에 앉은 이십대 여자앤 혼자 다 먹더라. ㅎㅎㅎ 암튼 회 싱싱하고 푸짐하고 맛있어서 좋았다!
해가 지면서 LA와는 딴판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에 놀란 우리는 밤이라 어차피 커피도 못 마시는데, 다들 술도 안 즐기는 터라 부른 배를 꺼뜨리겠다고 일부러 한두 블록 돌아가긴 했어도 일찌감치 호텔로 들어갔다.
카디건을 걸치고도 으어 추워... 호들갑을 떨며 호텔에 들어갔는데 로비 한쪽 옆으로 안뜰이라고 할지, 중정이라고 해야할지 건물 중간에 저렇게 모닥불 느낌으로 불을 지펴놓았더라. 가서 불쬐자며 쪼르륵 달려나갔는데... 가스로 만든 불이라 가스냄새 나서 사진만 찍고 얼른 퇴장했다.
우리만 예민한 건지, 물론 저 주변엔 소파나 안락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책 읽는 사람들 꽤 많았다. 암튼 이렇게 여정의 첫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