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09.05.12 토룡마을 하층민의 첫 자전거모임 18
  2. 2009.04.17 음식 단상 13
  3. 2009.03.19 저녁준비 21
  4. 2009.01.13 I ♡ U 약식 21
  5. 2008.05.16 마지막 장조림과 우족탕 17
  6. 2008.05.11 느루 밤마실 19
  7. 2007.12.03 식객 7
  8. 2007.05.09 고맙습니다 5
  9. 2007.01.06 밤참은 나의 힘 7
마을 이름이 하필 '토룡'이어서 모임 날짜만 잡으면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징크스는 아마도 이제 깨진 것일까? 한달쯤 전부터 거창하게 날을 잡았던 예전 모임과 달리 번개치듯 긴급하게 잡은 날짜라 하늘이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어쨌든 토룡마을 주민들의 5월 자전거 모임은 화창하다못해 푹푹찌는 여름날씨 같은 주말을 마음껏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
느루를 장만한지 1년이 넘고도 석달이 지나 드디어 토룡 마을 주민들의 자전거모임엘 참석하며 나는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 자전거 장만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토룡마을 주민들의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꿈의 자전거인 토룡왕자님의 브롬톤을 알현하고 잘하면 시승해보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으니! (자알~ 생긴  데다 씽씽 잘 나가기도 하는 브롬톤을 시승해본 것은 물론이고, 무려 18초만에 브롬톤을 접고 30여초만에 다시 펴는 키드님의 신공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유일한 난관은 도시락 준비였는데, 약식을 만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지난번 모임 때 날이 궂어 회동이 취소되면서 준비해둔 재료를 마냥 썩히기도 뭣해 그 다음주에 당장 약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장을 봐다가 새로 만들면 되겠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 프로젝트(?) 이후 심신이 피폐해진 데다, 냉동실에 절반 잘라 넣어둔 약식을 재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요행심에 그냥 버티긴 했는데, 워낙 여름날씨 같은 오후 기온에 신선하지 않은 약식이 상하지 않고 무사할지 내심 겁이 났다. 결과적으로 모두 모여 나무그늘에 앉아 소풍나온 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때까진 맛이 무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저녁시간까지 남아 있던 녀석들도 과연 쉬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어쨌거나 첫번째 자전거모임에 전격 참석해본 결과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토룡마을에서 내가 최하층민이라는 사실이었다. 왜냐고?
일단 두 왕족부터 따져보자면, 그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뭣 하나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소문과 사진으로만 알던 토룡왕자의 하늘색 브롬톤의 유려한 자태 때문이 아니다. 벨로 공주의 경우엔 검소하게도 하층민인 나와 같은 우베공을 타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 둘은 각각 루이가노와 브랑셰, 이름 모를 오래 된 자전거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토룡마을의 계급은 단순히 부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선 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확신한다.
첫째. 자전거 타기 기술
둘째. 운동신경
셋째. 체력
넷째. 요리솜씨

어려서부터 내가 품고 있는 자전거 타기 기술의 로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손으로 핸들 잡고 타기. 두 손 다 놓고 탈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ㅠ.ㅠ
또 하나는 한 발만 페달을 밟고 자전거 옆에 섰다가 자전거를 밀며 출발해 남은 다리를 유연하게 들어올려 안장에 앉아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이다. 
현재 내 수준은 아주 잠깐, 한 1초쯤 한쪽 손을 놓고 얼른 머리를 넘긴다든지 안경을 올리고는 금세 핸들을 잡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핸들은 불안하게 흔들려 넘어지기 직전까지 바퀴가 버벅대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 토룡왕자와 벨로공주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듯, 한손에 샌드위치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몰고 오질 않나, 묵직한 과일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고오질 않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전화를 받질 않나... ㅠ.ㅠ
자전거 초보인 통통님과 나의 경우, 중간에 잠시 굳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자전거 타고 물을 사러 매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매점에서 파는 냉커피와 아이스티를 본 순간 옳타구나 하나씩 사가서 나눠먹자며 사들고 나서는 이내 난감해졌다. 우리 실력으론 밀봉되지도 않은 음료수는커녕 밀봉된 물병도 비닐봉지 없이 들고 자전거를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마신 뒤 버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통통님이 쓰레기통으로 향했을 때, 나는 어렵사리 물병을 바지 주머니에 끼우고는 절반쯤 남아 좀 덜 흘릴 듯한 냉커피를 왼손에 쥐고 핸들을 살짝 같이 잡는 만용을 부려봤지만 브레이크만 안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거리를 오는 사이 당연히 바지에 커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헌데 토룡왕자는 자전거 타면서 휴대폰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자전거 옆쪽에서 한발로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은 토룡왕자도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전거 기술을 익혀왔을 왕족들한테 내가 어찌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는 서글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운동신경과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자전거 모임에선 여흥으로 <고무줄놀이>와 <배드민턴 치기>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노나또님과 지다님은 어찌 그리 나비처럼 사뿐사뿐 폴짝폴짝 고무줄을 하시던지! 애당초 고무줄 잡는 역할이나 하겠다고 했던 나도 미친 척 시도해보았지만 한두번 뛰고도 무거운 몸이 출렁거려 다시는 시도해볼 마음도 안생기는 나와 달리 고무줄 놀이의 대가 지다님과 노나또님은 그야말로 펄펄 나는 듯했다. 고무줄 놀이가 상대적으로 천한 계층의 유희였던지 두 왕족은 고무줄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어 시작된 배드민턴 경기에선 악천후 바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순발력과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고무줄 놀이 때는 나와 더불어 고무줄 잡는 역할에 충실하여 잠시나마 나와 비슷한 계층이 아닐까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통통님 마저도 배트민턴에선 대단한 파워와 승부근성을 보이며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했는데, 머리 나쁜 나는 그제야 통통님 역시 결코 나와는 같은 계급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남산부터 한강까지, 그리고 다시 성산대교를 지나 근 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를 물 한 모금 없이 주파한 강철체력의 통통님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1차로 자전거 모임에 참석한 뒤 바삐 성남으로 축구경기 응원을 떠난 노나또님의 체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ㅠ.ㅠ
저질 체력인 나는 겨우 40분 거리도 혹시 더위 때문에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페달을 밟아야했기에, 점심을 먹고 나선 고무줄도 배드민턴도, 농구에도 흥미가 없어 그저 푸르른 잔디밭에 누워 쉬고 싶었거늘... 나를 뺀 모든 이들은 그저 쉴새없이 공원을 뛰고 또 뛰어놀며 온갖 재주와 실력을 선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요리솜씨라면 나도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선 노나또님이 익히 블로그에서 자랑하시던 주먹밥과 유부초밥은 되직하게 지은 밥에 갖은 양념을 해 맛도 일품인 데다 모양새까지 앙증맞고 먹음직스러웠다. 처음 차려놓았을 땐 양이 많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한톨 안 남기고 모두들 먹어치웠을 정도이니 말해 뭣하랴. 게다가 키드님의 그 유명한 <치킨> 샌드위치 역시 맛과 모양 면에서 다들 "사온 것 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드물게 내가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면 언제나 싱겁던데.... +_+
그에 비하면 내가 무성의하게 데워간 약식은 자른 크기도 들쭉날쭉, 견과류 내용물도 들쭉날쭉, 말들은 안했어도 분명 군데군데 너무 딱딱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나마 지다님과 통통님이 바쁜 관계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사>는 바람에 은근히 안도했다고나 할까. 수박을 두 그릇이나 정갈하게 잘라와 모두의 갈증을 해소해 준 벨로공주는 요리솜씨로 쳐줄 수 없긴 해도 일단 왕족이고 자전거 솜씨가 가장 탁월하니 계급 결정에 영향을 제일 약소하게 미치는 마지막 기준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게다.

하층민으로서의 서글픈 깨달음을 이렇게 주절주절 적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나도 토룡마을 자전거 모임에 드디어 참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나 같은 저질 체력 운동부족 하층민에게도 동등하게 즐길 기회를 준 걸 감사하며, 계급이야 어떠하든 앞으로도 열심히 자전거 타기에 힘쓰겠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자 나의 결론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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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단상

식탐보고서 2009. 4. 17. 21:43
얼마전 공주님 납시는 날 저녁메뉴를 무얼로 할까 고민하다 연어 스테이크를 구웠다. 거창하게 말해 연어 스테이크지, 소박하게 말하면 그냥 생선구이였다. 다만 멋을 좀 부리느라 연어 살덩이에 소금과 후추, 바질가루를 슬쩍 뿌려 1시간쯤 재놨다가 열량은 그냥 무시하고 버터와 다진마늘을 좀 넣어 구웠고, 어서 본 건 있어가지고 타르타르소스랍시고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뒤 피클 대신 병제품으로 나온 레몬갈릭소스를 조금 섞어 구운 연어에 얹어 먹었다. 당연히 구울 때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훈제 연어 샐러드인줄 알고 인상을 찌푸리던 공주님은 반색을 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제대로 된(?) 연어를 처음 먹어본다면서.
왕족들은 역시 아무리 잘해줘도 끝이 없다. 이번주에 역시나 공주님 납시는 날 장도 보러가기 전에 일찌감치 전화가 왔길래, 오늘은 빨간고기를 해줄까 닭볶음탕을 해줄까 물었더니 공주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둘 다 싫고 내가 안 먹어본 걸로 맛있는 거 만들어주라. 지난번 연어 스테이크처럼." 
버럭 화가 나서 고모가 해주는 거 아무거나 먹으라고 대꾸하곤 또 착한 무수리답게 골똘히 고민해봤는데, 연어 스테이크는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12살난 조카가 먹어보지 않았으면서 내가 요리해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야흐로 없는 것이 없는, 풍요의 세상에 태어나 거의 모든 걸 누리며 살아온 공주가 아닌가 말이다.

일제 강점기 끄트머리에 태어나 전쟁을 거치고 어마어마한 변화의 역사를 거쳐온 우리 엄마 세대엔 댈 것도 아니겠지만, 먹거리에 관한 한은 나 역시 퍽이나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외식이라고 하면 엄마 곗날 중국집에 쫓아가 짜장면을 먹거나 졸업식 같은 중요한 날 큰맘 먹고 한일관 같은 불고기집엘 가는 게 전부였던 나의 유년과 비교하면 요즘 호화찬란하고 국적까지 다양한 외식문화와 먹거리의 발달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아직도 지방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사람들마다 먹어본 음식의 종류가 한정될 터이고, 음식도 유행이라 시대의 흐름을 타 새로 생겨나거나 새삼 유행을 하거나 인기를 잃어 사라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밖엘 나가보면 한집 건너 한집씩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방대해진 외식산업은 확실히 옛날과 다른 방식과 빈도로 사람들을 지배한다. 나는 감자탕을 대학시절에나 비로소 구경해보았고 삭힌 홍어 전문점은 사회생활을 한참 하고 난 뒤에나 접할 수 있었으며 누룽지탕 같은 메뉴는 불과 몇년 전에 생겨난 것 같은데, 우리 조카들만 해도 이미 열살 이전에 저런 음식들을 다 거쳤기 때문이다. 다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맛있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른들 탓이고, 또 정 먹고 싶으면 삭힌 홍어 사다가 집에서도 삼합을 만들어 먹거나 오븐에 수제 피자를 구워내는 놀라운 솜씨를 지닌 우리 올케들 덕분이다. 
뷔페에라도 가면 울 엄마는 지금도 무얼 먹어야할지, 뭐가 뭔지 메뉴를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시는 터라 우리 아랫것들이 적당히 알아서 음식을 담아다드릴 때가 많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인 어린 조카들은 아무 문제 없이 척척 지들이 먹고 싶은 것들을 담아다가 먹는다. 어쩔 땐 어른들이 되레 그들에게 뭐가 맛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집의 진짜 미식가들은 어린 조카들이어서, 옛날부터 그들이 잘 먹고 맛있다고 하는 걸 먹으면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_+ 파스타가 맛이 없네, 깐소새우가 맛이 있네... 어른스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은 실소가 나온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임을 내가 알게 된건 분명 어른이 되고 난 뒤였다. 아니, 어른이 된 후로도 한참동안 스파게티는 <경양식집>에서 가끔 파는 맛없는 이태리 국수라고 여겼고(그게 첫 만남이었으니까;;) 맛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첫 출장을 갔을 때 본사 직원들이 환영파티랍시고 뉴욕에서 꽤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엘 데려가선 파스타를 먹으라고 권하는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까지 가서 맛없는 스파게티를 환영파티 음식으로 먹을 순 없다고 여기며 낯선 메뉴에 끙끙거리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시켜 먹은 <토르텔리니>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태리식 작은 만두인 토르텔리니를 맛있게 하는 곳을 아직도 서울에서 찾아 헤매고 있을 정도. +_+
어쨌거나 나는 <파스타>라는 말을 안 게 얼마 안되는데, 겨우 열살 전후의 조카들이 제 엄마에게 파스타며, 바비큐립, 퀘사디아 같은 어려운 음식이름을 척척 대며 만들어달라고 청하는 걸 보면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그리고 확실히 음식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내 주변엔 덩치만 커다란 어른이었지 감자탕이며 선지해장국, 간장게장을 못먹거나 맛을 모르는 지인들이 꽤 되는데 나의 조카들은 서너살 때 이미 입주변이 새빨갛게 변할 만큼 매워서 낑낑대면서도 감자탕의 맛을 알았고(할아버지의 술안주 기호식품이었으니까;;), 선지 해장국을 시키면 공주는 온 식구들의 선지를 죄다 빼앗아 먹곤 했다. 간장 게장 게딱지를 먼저 차지하고 앉아 거기에 야물딱지게 밥을 비벼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집에선 전혀 놀라운 게 아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답게 조카들도 고기를 심히 편애하고 채소를 마지못해 먹기는 하지만 지금 하는 식상활 대로라면 웬만한 나의 지인들보다 빨리 음식 사회화 과정을 마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런 마당에 나더러 안 먹어본 맛있는 요리를 해놓으라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요구였던 셈인데, 난 또 뭐가 없을까 며칠째 틈틈이 고민하며 무수리의 책무에 충실히 살고 있다.

음식은 언제부턴가 식탐 많은 나에게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자 짜증스러운 노동의 집약체가 되고 말았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그 무엇보다 좋아하기에 식도락 흉내내며 이런저런 음식점을 순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확실히 예전보다 외식 요리에 대한 애정이 줄었고 좋지 못한 재료가 남기는 외식 후유증에 더욱 민감해졌다. 복잡한 건 귀찮으니까 당연히 재료의 원맛을 살리는 소박한 요리법을 실천하게 되기도 했고, 온갖 성인병의 징후를 다 갖고 있는 엄마 때문에라도 싱겁고 건강한 집밥을 <손수> 해먹고 살다보니 생겨난 결과다. 아직도 맛있는 걸 먹으면 몹시 행복한데 그걸 만드는 주체가 주로 나여야 한다는 상황은 여전히 뼈저리게 체화되질 않는다. 비길 데 없이 맛있었던 엄마표 탕수육과 엄마표 돈까스, 엄마표 김밥 따위를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고만 싶은 중년의 딸에게, 부엌은 확실히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지옥>이다(오래 전 씨네 21 칼럼에서 본 표현인데 바쁘게 부엌에서 콩닥거리다가 땀찬 고무장갑을 서둘러 벗을 때 잘 벗겨지지 않는 짜증스러움 등 공감가는 얘기들이 참 많았으되, 누구의 칼럼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차라리 먹는 걸 뜨악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더라면 정말 대충 해먹으며 덜 불행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문제는 나의 식탐으로 귀결됨을 느끼며 더욱 한숨이 나온다. 요리하는 건 싫은데 반찬 없는 밥상은 더 싫으니 어쩌란 말이냐!

이왕 할 거면 투덜거리지를 말든지, 투덜거리려면 하지를 말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할 텐데, 식탐녀 무수리는 끼니때마다 노상 입이 튀어나온다. 어쨌든 오늘 저녁 다시멸치와 마른 새우를 넣고 감자 한개, 애호박 반개, 양파 한개, 새송이버섯 한개, 맛타리 버섯 한줌, 두부, 다시마가루 조금,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찌개는 <매우> 맛있었고, 소금을 거의 뿌리지 않고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먹은 삼치구이도, 파프리카, 오이, 샐러리, 삶은 달걀에 발사믹 식초와 흑임자소스를 섞어 뿌린 샐러드도 훌륭한 맛이었다. (솜씨 자랑하는 거 맞다;;)
짜증과 투덜거림 속에서 그나마 내가 붙들고 살아갈 기둥은 이것뿐이려니...
<식탐은 나의 힘. 밥심으로 살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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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준비

투덜일기 2009. 3. 19. 18:41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식료품 쇼핑을 하는 건 환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좋지 않은 일이니 재래시장에서 그때그때 먹을 것만 구입해야 한다는 원칙은 나도 안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원산지를 속이는 판국에 원산지 표시가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좀체 잘 안가게 된다. 특히 시장 입구에 좌판을 벌이고 마치 집앞 텃밭에서 뜯어온 것처럼 소규모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의 채소가 박스째 떼어온 중국산일 수도 있음을 알고 난 뒤로는 말이다. 게다가 나로선 일주일에 한번 장보는 것도 얼마나 별러야하는 일인데!
어쨌거나 장바구니에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미리 담아오더라도 늘 박스 한두개는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할 정도로 거한 일주일치 장보기를 마치고 난 다음 며칠은 당연히 밥상이 풍성하다.
원래 어젠 공주님 납시는 날이어서 가장 풍성한 밥상이 꾸며졌어야 할 터이나, 저녁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난데없는 공주의 변덕을 맞닥뜨린 무수리는 우리 동네 마트에선 생 <바질>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억지스런 변명으로 간단히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본격 요리는 오늘로 미뤄졌다.
오늘은 오징어를 볶을까 시금치된장국을 끓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질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이 많이 지나 제일 간단한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통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푹 닭을 삶다가 불린 찹쌀만 넣어 끓이면 되는 간단한 메뉴. 어려선 닭 백숙과 닭죽이 그리도 느끼하고 싫더니 요샌 별러서 먹는 영양식이다. 물론 엄마가 해주실 때보다 나는 닭껍질을 많이 벗겨버리고 누런 기름도 죄다 건져내니까 당연히 담백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 저녁에 끓인 굴국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엄마가 점심때 안드시고 남겨두는 바람에 나는 신경질을 펄펄 내며 다 쏟아버린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소비되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엄마는 순전히 나 먹으라고 아껴둔 것이지만, 저녁엔 또 저녁에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버럭 히스테리와 홧병이 도진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거다. 초보 번역가 시절, 어느 출판사의 부탁으로 외서기획과 저작권 계약 업무를 도우며 비상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검토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하는 것. 기회가 되면 맘에 드는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만난 어느 저작권 담당자 때문에 웃을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액세서리, 특히 반지를 좀 과도하게 끼고 다닌 탓도 있기는 했겠지만, 몇달쯤 안면을 익히고 나서 점심도 한번 같이 먹어 일 관련 이야기와 함께 간간이 사담도 끼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와 동년배였던 그 담당자가 나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아직 아이는 없으세요?"
허걱.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푸하하하 웃으면서 결혼여부도 아니고 어떻게 대뜸 아이가 없는지 물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유부녀 아줌마스러워 보였느냐고. 
그 담당자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두세개쯤 끼고 다니던 나의 알반지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졌다고 실토했다. 자기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아는데, 통상적인 혼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지난 미혼여성들, 특히 자존감이랄까 자기색깔이 뚜렷하기 쉬운 출판계의 <노처녀>들이 풍기는 미묘한 까칠함과 조바심 같은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분의 변명이었다. 심지어 나에게선 기혼자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까지 풍겼다나. -_-a 자기가 설명을 계속 이어봤자 나에겐 더욱 민망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정말로 칭찬의 의미였다고 극구 미안함을 토로했고 나도 순순히 칭찬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 다하는 것의 때를 놓친(또는 놓쳤다고 생각하며 낭패감에 젖는) 사람들은 확실히 조바심과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부터 꽤 오래 결혼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마음처럼 삶이 풀려나가지 않았던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그야말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선 그런 짜증스러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오지 않는다는 평가에 그땐 솔직히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담당자를 요즘 만난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왜 이리도 짜증이 많아졌는지. 물론 지금도 혼자라는 내 상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자유로움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날 무얼 해먹어야 할지, 냉장고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밥순이로서의 삶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다. 가사 도우미를 들이고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가사일에 힘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 할까말까 하니, 후닥닥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과연 그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하겠나. 오히려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왕비마마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감안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인데, 우유부단함과 본인의 식탐까지 더해져 그 과정은 쓸데없이 참 소모적이다. 그러고는 또 혼자서 생병을 앓으며 짜증을 부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사니, 삶이 반영되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얼굴은 더더욱 못생겨지고 있는 듯하다. ㅜ.ㅜ

예전엔 그래도 아, 또 한끼 해결했으니 기쁘다, 고 여겼는데
이젠 아이고, 한끼는 해결했다만 내일은 또 뭘 해먹냐, 고 미리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왜 이리 자꾸 비비 꼬일까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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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U 약식

식탐보고서 2009. 1. 13. 14:34

시원찮은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가사실습 시간에 만든 음식이 약식이었다.
그 전까지는 문방구에서 반제품으로 파는 앞치마 재료를 사서 바이어스를 손으로 꿰매고 주머니와 앞부분에 자수를 놓는 실습을 했고, 조리실 실습에 들어가는 날까지 앞치마를 완성해 각자 입고 패션쇼를 하듯 줄지어 서서는 선생님의 채점을 받았다.
국민학교 실과 시간에도 이미 단추달기, 홈질, 똑딱단추 달기의 실습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 탁월한 점수를 받았던 터라, 앞치마 꿰매기 정도는 중학생이 된 나에게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였다. 요새 학생들은 엄마들이 대신 꿰매주거나 수선집 또는 세탁소에 맡겨 드르륵 박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땐 그런 걸 상상도 못할 만큼 아이들이 순진할 때라 손재주 여부에 따라 아이들이 입은 앞치마의 몰골은 매우 다양했다.
바이어스가 우글쭈글 찌그러졌거나 자수 실밥이 너덜거리는 앞치마를 입은 아이들 틈에서 매끈하고 촘촘한 바느질과 깔끔한 자수가 돋보이는 앞치마를 입은 나는 조리실에서도 조장으로서 꽤나 쓸모가 있었다.
지금이야 나도 오랜 밥순이 경력을 믿고 이것저것 재량을 부려 대충요리를 감행하지만
요리초보가 지켜야할 첫번째 원칙은 건방지게 융통성을 부리지 말고 레시피 대로 하라는 것이므로
모범생 답게 나는 칠판에 적힌 대로 재료의 계량과 조리시간, 불조절을 칼같이 지켰고  결과물은 당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의 조리실습은 불려놓은 찹쌀과 온갖 재료를 잘라 들통에 넣고 찌기만 하면 되었던 비교적 간단한 요리였으나 놀랍게도 몇몇 조는 약식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찹쌀죽을 만들어놓기도 했는데, 내가 보기엔 어떻게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었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당시에 조별로 예쁘게 만들어진 약식은 교무실 선생님한테까지 일일이 나눠드려 맛보게 했었는데, 그때 양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내게 할당된 약식을 남겨 집에 가져가 엄마한테 자랑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며칠 뒤 집에서도 학교에서 배운대로 들통에 쪄서 약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수십년간 집에서 다시 약식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외할머니의 단골 떡집에서 워낙 맛있는 떡과 약식을 수시로 공수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3년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정말로 맛있는 약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사먹게 되는 약식엔 밤과 잣 따위의 내용물이 터무니없게 부실했고 찰진 맛도 덜했다. 그렇다고 약식을 미친듯이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왜 집에서 손수 약식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정확한 동기는 지금도 모르겠다. 조카들이 약식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던가?
어쨌거나 설날을 앞두고 일벌이기 병이 도졌는지, 대충요리의 달인답게 나는 지난주에 드디어 전기 압력밥솥으로 약식만들기에 도전을 했고 역시나 단번에 성공을 거두었다. 중학교 때 했던 가사실습을 떠올리긴 했지만, 레시피까지 생각날 리야 없는 일이고 손쉬운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대강 분량을 예측했는데 살짝 질기는 했어도 맛은 정말로 훌륭했다. 이번에 성공을 하면 설날 차례상에 올릴 약식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나의 야심만만한 목표였는데, 그도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대충 대충 재료를 집어넣은 바람에 과연 설날에도 같은 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지만 까짓 것 덜 달 거나 더 달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실패한다고 해도 두려울 건 없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사실습 점수를 잘 받긴 했어도 그땐 내가 이렇게 요리솜씨가 훌륭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가사노동이 싫어서 (매일 밥하고 청소하기 싫어서 결혼 따위 안 할 거야! 라고 늘 부르짖었음)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내가 싱글로서도 만날 밥순이로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청소는 여전히 내가 넘지 못할 숙제지만 요리마저 잘한다는 점은 내가 무수리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운명 같아서 속이 좀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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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니겠느냐던 멍청한 어느 인간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쇠고기를 웬만해선 안먹게 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기농이라고 표시 되어 있는 채소들을 장바구니에 넣으며서도 과연 유통업체와 상인들을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지 속으로 떨떠름한 마당에 수입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벌써부터 한우든 호주산이든 쇠고기 매장이 썰렁하다는데, 이런 꼴로 가다간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소비는 날로 위축되고 축산업 농가는 FTA 비준되기도 전에 다 망해 쓰러질 판국이다. 그게 걱정은 되는데, 나로선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원래 우리 식구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거하게 고기를 먹어줘야 기운이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산다. 채소와 푸성귀로만 차려진 밥상은 <저 푸른 초원>이라고 야유하며, 고기를 든든히 먹어줘야 계단 오를 때도 힘이 안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 달걀이라도 상에 올라야 하고 어쩔땐 일주일에 사흘 이상 고기(생선은 고기가 아니다)를 먹기도 한다. 미역국, 무국엔 반드시 쇠고기를 넣어 끓여야지 그 밖의 조개나 버섯만 넣고 끓였다간 나 혼자 꾸역꾸역 6박7일동안 먹어야 한다. 느끼한 곰탕은 일주일 내내 맛있다고 드시면서도, 멸치로 맛 낸 된장국은 2끼 이상 내놓으면 외면당하는 것이 우리 집안 내력.

연일 광우병 쇠고기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주말, 엄마는 마지막이될지도 모른다며 장조림을 해먹자고 한우 사태와 메추리알을 사오셨다. 나이로는 4.19 세대지만 그 때도 무서워서 밖에 안나가봤고, 68년 평생 데모란 건 처음이라며 벌벌 떨면서도 딸 성화에 덩달아 직접 청계천 촛불집회를 다녀오시고 보니, 광우병 쇠고기와 정부 해명은 죽어도 못 믿겠는데 결과적으로는 놈들이 밀어붙이기로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고 말 것이라는 게 울 엄마의 결론인 듯했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 엄마는 언덕에서 발목을 접질려 복숭아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고 5주간 기브스를 해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_-;; 그래서 우리집의 마지막 장조림은 눈물의 장조림이기도 하다.
정말로 칼슘이 많이 우러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 복숭아뼈가 얼른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마지막 우족 하나를 꺼내 곰탕을 끓였다. 반나절 이상 곰솥에 우족을 끓이며,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마지막 우족탕>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해버렸다.

며칠째 장조림 반찬에 우족탕을 기본으로 내놓는 데도 엄마는 아무 불평이 없다. 푸성귀 반찬을 매일 똑같이 내놓으면 손도 안대는 양반인데, 장조림이랑 곰탕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더 맛있게 느껴지나보다. 사실 장조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한번도 해먹지 못한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짭조름한 쇠고기 장조림을 워낙 좋아하셔서 밑반찬으로 거의 떨어뜨리는 일이 없었는데, 메추리알 삶아서 일일이 까는 것이 귀찮다고 엄마랑 내가 하도 투덜거리니까 최근 몇년동안은 삶은 메추리알을 까는 것이 아버지의 임무가 되었더랬다. 냉장고에 장조림이 떨어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이제는 없어진 동네 농협마트 정육점에서 맛있는 사태로 쇠고기를 고르고 메추리알을 두어 판 집어 사들고는 아버지가 휘파람을 부르며 돌아오시면 두 모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귀찮은 티를 팍팍 냈지만, 아버지는 씩 웃으며 어서 메추리알 까게 삶아놓기나 하라고 하셨다.

일요일 저녁, 발은 퉁퉁 부어오르는데 엄마는 식탁에 앉아 삶은 메추리알을 까며 아버지는 메추리알을 살점 하나 안 떨어뜨리고 껍질을 잘 까셨건만 왜 자기는 알이 다 너덜너덜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막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의 발목을 잡아먹은 장조림이라서 밉게 느껴졌는지, 오랜만에 만드느라 거의 태울뻔하기도 했던 장조림은 내 입엔 뻣뻣하고 별로 맛이 없다.

그러면서 버럭 화가 났다. 가슴이 아파서 차마 못 해먹는 것도 속상한데, 좋아하는 음식도 공포에 질려 못 먹게 만드는 정부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쓸개빠진 무뇌아들한테 진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고기 좋아하는 울 엄마한테 귀찮은 티 안내고 다음엔 더 맛있는 쇠고기 장조림을 해드리고 싶단 말이다,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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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밤마실

놀잇감 2008. 5. 11. 23:02
열불나는 속을 잠재우러 <느루>를 끌고 밤마실에 나섰다. 마치 느루가 화풀이 대상이 된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일단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머리도 복잡한 김에 떠오르는 대로 세웠던 오늘의 목표는 세가지.
첫째, 인간이나 애완견 장애물이 출몰하더라도 유연하게 우회하여 자전거 급히 세우고 내리지 않기.
둘째, 벨 울리지 않고 속도 조절만으로 장애물 피해가기.
셋째, 홍제천에서 월드컵 공원 가는 길 숙지하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목표달성에 성공한 건 하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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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놀잇감 2007. 12. 3. 01:57
사실 나는 식객보다 똑같은 글잣수에 발음도 비슷한 <색, 계>를 보고싶었지만
주지스님 추천작이라며 <식객>이라는 영화가 있느냐고 보름 남짓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있었던
왕비마마 덕분에 왕비와 무수리 모녀는 날씨 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한참 된 터라 영화관이 한가할 줄 알았더니 날궂은 일요일 한낮에 자리가 절반 이상 차는 걸 보면
아직도 인기는 꽤 괜찮은 모양.
타짜 때도 그랬듯 허영만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던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순진한 희망에 가깝게 그려진 한일관계와 신파스러운 애국심이라는 고명이 역시나 약간 거북하긴 했어도,
입맛에 안맞는 고명은 걷어내고 먹으면 되듯
나에겐 꽤나 맛깔스러운 영화였다.

식탐녀답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점수는 대체로 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남들의 감상 포인트와 상관없이 나는 뜻하지 않은 복병 같은 몇 장면에서 흑흑 흐느끼고 말았는데
그래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어쩐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데 없이 나를 울게 만든 것들은
접시 무늬가 보일 만큼 얇게 깔린 복어회 접시, 몇 개의 영정 사진, 하얀 보자기에 쌓인 유골함.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그리고 육개장.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영화 시작 후 거의 5분 뒤부터 줄곧 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섰던
<집으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객> 또한 나에겐 눈물로 기억될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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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삶꾸러미 2007. 5. 9. 02:18
어버이날
결국 난 부모님한테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린이날 미리 모여 먹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로 건배하며
올케 따라 감사하다고 거들었으니 다행인가.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카네이션도 죄다 중국산이고 값도 엄청 올랐다기에 몇년째 실속 위주로 한답시고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쑥스러운 절차는 생략한지 오래다.
그나마 막내올케가 주말 모임 때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어 와서 부모님껜 다행이었는데
카네이션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는 좀 민망했다. ㅋㅋ

올해도 선물은 고민하다 두분 다 그냥 '현금' 봉투로 드렸다.
까다로운 두 노친네들 뭐라도 사드리려면 다리품을 꽤나 팔아야 하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고..
사실 사드릴 품목도 정말 마땅칠 않다.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며칠 전 충동적으로(사실 주차비 아까워서 쇼핑한 거지만;; ) 사다드린 연분홍색 모자는 엄마가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나이든 아줌마들은 왜 그리도 '꽃가라'를 좋아하시는지... 안쪽에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가고 꽃모양의 장식도 붙어 있어서 내가 보기엔 약간 난한데
백화점서 여러 아줌마들에게 씌워보고 의향을 물으니 모두들 좋아라 하기에 울 엄마도 좋아할 줄 짐작은 했더랬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를 내놓는 착한 딸이 아니라
생신이나 명절, 어버이날 아니면, 가끔 원고료가 무더기로(!) 들어와 통장잔고가 매우 두둑해졌을 때만 봉투를 내밀다보니, 드리는 나도, 받으시는 부모님도 참 뻘쭘하다. -_-;;

째뜬...
그래도 나무토막같이 무뚝뚝한 딸이 콩닥콩닥 바쁘게 장봐다가 차려드린 저녁상으로
얼추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ㅎㅎ
현금봉투에다 장 본 값에다 주말에 먹은 저녁 값까지, 올해도 얹혀 사는 큰딸의 출혈이 제일 컸다는 걸 부모님은 분명 아시겠지만 ^^;; 그래도 제대로 된 인사는 여기에나마 적어두련다.
"엄니, 아부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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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지나쳐 혐오스러울 지경인 벨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구 광분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식탐은 누구 못지 않은 인간이다.
간식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충실히 먹어주어야 하고
때를 놓쳐 배가 심히 고프거나 먹다가 음식이 모자라면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산다고 늘 걱정을 입에 달지만
사실 올빼미족인 나는 엄연히 세 끼를 다 먹고 산다는 게 맞다.
남들에겐 점심일 시간에 먹는 하루의 첫번째 끼니는 정확히 말해 나의 아침이고
저녁은 점심, 밤참은 저녁끼니인 셈이다.
원고마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한
나는 또 끼니때마다 제대로 다 갖추어 놓고 먹어야지
반찬 한 두개만 달랑 꺼내놓고 대강 때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모두 꺼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가끔 반찬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계란말이나 계란찜, 돼지고기 김치찌개 따위를 후다닥 만들어서 먹어주곤 한다 ^^;;
요리의 '대가'는 아니어도, 먹어본 음식은 대강 얼추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솜씨를 갖게 된 데는 수시로 편찮으셨던 울 엄마와 내 질긴 식탐이 반반씩 기여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암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양또한 만만칠 않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공기밥 정도는 당연히 한 그릇 다 먹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를 잘 모르던 시절, 양 적은 측근들이 셋이서 음식을 두 종류만 시키는 행태를 보이면 나는 버럭 화를 내를 냈었다. 나는 분식점의 경우 셋이서도 늘 네다섯 개는 시켜놓고 먹어야 뿌듯한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

나보다 체중이 두배나 더 나가는 동창녀석은 늘 자기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내 위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치만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덜 먹으면서 그 체중을 유지하는 그 녀석이 더 신기하다. =_=;;

아무려나 밤참도 나에겐 엄연한 한 끼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먹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오밤중의 식탐이 극에 달했는지...
백설기 한쪽과 우유 한 잔을 데우고 단감 하나와 귤 세 개를 챙겨 방으로 오려니
냉장고에 든 밤에 눈길이 꽂혔다.
문득 군밤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ㅋㅋㅋ 그래서
칼집을 넣어 몇달 전 홈쇼핑에서 오밤중에 고구마와 함께 충동구매했던 직화 냄비에
구워 시방 냠냠 먹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듯하다.
나란 인간은 먹는 것 앞에선 어쩜 이리도 단순한지 원...

그치만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올빼미 식탐녀에게
오밤중 밤참은 분명 엄청난 힘의 근원이고 행복이다. ^____^


p.s. '야식'은 일본말에서 유래된 잘못된 표현이란다.
순우리말로는 '밤참'이 맞다고... 나도 앞으로는
'밤참'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그간 썼던 '야식'이란 말을 죄다 바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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