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루를 장만한지 1년이 넘고도 석달이 지나 드디어 토룡 마을 주민들의 자전거모임엘 참석하며 나는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 자전거 장만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토룡마을 주민들의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꿈의 자전거인 토룡왕자님의 브롬톤을 알현하고 잘하면 시승해보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으니! (자알~ 생긴 데다 씽씽 잘 나가기도 하는 브롬톤을 시승해본 것은 물론이고, 무려 18초만에 브롬톤을 접고 30여초만에 다시 펴는 키드님의 신공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유일한 난관은 도시락 준비였는데, 약식을 만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지난번 모임 때 날이 궂어 회동이 취소되면서 준비해둔 재료를 마냥 썩히기도 뭣해 그 다음주에 당장 약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장을 봐다가 새로 만들면 되겠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 프로젝트(?) 이후 심신이 피폐해진 데다, 냉동실에 절반 잘라 넣어둔 약식을 재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요행심에 그냥 버티긴 했는데, 워낙 여름날씨 같은 오후 기온에 신선하지 않은 약식이 상하지 않고 무사할지 내심 겁이 났다. 결과적으로 모두 모여 나무그늘에 앉아 소풍나온 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때까진 맛이 무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저녁시간까지 남아 있던 녀석들도 과연 쉬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어쨌거나 첫번째 자전거모임에 전격 참석해본 결과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토룡마을에서 내가 최하층민이라는 사실이었다. 왜냐고?
일단 두 왕족부터 따져보자면, 그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뭣 하나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소문과 사진으로만 알던 토룡왕자의 하늘색 브롬톤의 유려한 자태 때문이 아니다. 벨로 공주의 경우엔 검소하게도 하층민인 나와 같은 우베공을 타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 둘은 각각 루이가노와 브랑셰, 이름 모를 오래 된 자전거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토룡마을의 계급은 단순히 부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선 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확신한다.
첫째. 자전거 타기 기술
둘째. 운동신경
셋째. 체력
넷째. 요리솜씨
어려서부터 내가 품고 있는 자전거 타기 기술의 로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손으로 핸들 잡고 타기. 두 손 다 놓고 탈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ㅠ.ㅠ
또 하나는 한 발만 페달을 밟고 자전거 옆에 섰다가 자전거를 밀며 출발해 남은 다리를 유연하게 들어올려 안장에 앉아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이다.
현재 내 수준은 아주 잠깐, 한 1초쯤 한쪽 손을 놓고 얼른 머리를 넘긴다든지 안경을 올리고는 금세 핸들을 잡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핸들은 불안하게 흔들려 넘어지기 직전까지 바퀴가 버벅대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 토룡왕자와 벨로공주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듯, 한손에 샌드위치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몰고 오질 않나, 묵직한 과일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고오질 않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전화를 받질 않나... ㅠ.ㅠ
자전거 초보인 통통님과 나의 경우, 중간에 잠시 굳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자전거 타고 물을 사러 매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매점에서 파는 냉커피와 아이스티를 본 순간 옳타구나 하나씩 사가서 나눠먹자며 사들고 나서는 이내 난감해졌다. 우리 실력으론 밀봉되지도 않은 음료수는커녕 밀봉된 물병도 비닐봉지 없이 들고 자전거를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마신 뒤 버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통통님이 쓰레기통으로 향했을 때, 나는 어렵사리 물병을 바지 주머니에 끼우고는 절반쯤 남아 좀 덜 흘릴 듯한 냉커피를 왼손에 쥐고 핸들을 살짝 같이 잡는 만용을 부려봤지만 브레이크만 안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거리를 오는 사이 당연히 바지에 커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헌데 토룡왕자는 자전거 타면서 휴대폰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자전거 옆쪽에서 한발로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은 토룡왕자도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전거 기술을 익혀왔을 왕족들한테 내가 어찌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는 서글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운동신경과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자전거 모임에선 여흥으로 <고무줄놀이>와 <배드민턴 치기>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노나또님과 지다님은 어찌 그리 나비처럼 사뿐사뿐 폴짝폴짝 고무줄을 하시던지! 애당초 고무줄 잡는 역할이나 하겠다고 했던 나도 미친 척 시도해보았지만 한두번 뛰고도 무거운 몸이 출렁거려 다시는 시도해볼 마음도 안생기는 나와 달리 고무줄 놀이의 대가 지다님과 노나또님은 그야말로 펄펄 나는 듯했다. 고무줄 놀이가 상대적으로 천한 계층의 유희였던지 두 왕족은 고무줄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어 시작된 배드민턴 경기에선 악천후 바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순발력과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고무줄 놀이 때는 나와 더불어 고무줄 잡는 역할에 충실하여 잠시나마 나와 비슷한 계층이 아닐까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통통님 마저도 배트민턴에선 대단한 파워와 승부근성을 보이며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했는데, 머리 나쁜 나는 그제야 통통님 역시 결코 나와는 같은 계급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남산부터 한강까지, 그리고 다시 성산대교를 지나 근 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를 물 한 모금 없이 주파한 강철체력의 통통님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1차로 자전거 모임에 참석한 뒤 바삐 성남으로 축구경기 응원을 떠난 노나또님의 체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ㅠ.ㅠ
저질 체력인 나는 겨우 40분 거리도 혹시 더위 때문에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페달을 밟아야했기에, 점심을 먹고 나선 고무줄도 배드민턴도, 농구에도 흥미가 없어 그저 푸르른 잔디밭에 누워 쉬고 싶었거늘... 나를 뺀 모든 이들은 그저 쉴새없이 공원을 뛰고 또 뛰어놀며 온갖 재주와 실력을 선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요리솜씨라면 나도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선 노나또님이 익히 블로그에서 자랑하시던 주먹밥과 유부초밥은 되직하게 지은 밥에 갖은 양념을 해 맛도 일품인 데다 모양새까지 앙증맞고 먹음직스러웠다. 처음 차려놓았을 땐 양이 많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한톨 안 남기고 모두들 먹어치웠을 정도이니 말해 뭣하랴. 게다가 키드님의 그 유명한 <치킨> 샌드위치 역시 맛과 모양 면에서 다들 "사온 것 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드물게 내가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면 언제나 싱겁던데.... +_+
그에 비하면 내가 무성의하게 데워간 약식은 자른 크기도 들쭉날쭉, 견과류 내용물도 들쭉날쭉, 말들은 안했어도 분명 군데군데 너무 딱딱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나마 지다님과 통통님이 바쁜 관계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사>는 바람에 은근히 안도했다고나 할까. 수박을 두 그릇이나 정갈하게 잘라와 모두의 갈증을 해소해 준 벨로공주는 요리솜씨로 쳐줄 수 없긴 해도 일단 왕족이고 자전거 솜씨가 가장 탁월하니 계급 결정에 영향을 제일 약소하게 미치는 마지막 기준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게다.
하층민으로서의 서글픈 깨달음을 이렇게 주절주절 적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나도 토룡마을 자전거 모임에 드디어 참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나 같은 저질 체력 운동부족 하층민에게도 동등하게 즐길 기회를 준 걸 감사하며, 계급이야 어떠하든 앞으로도 열심히 자전거 타기에 힘쓰겠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자 나의 결론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