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으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니겠느냐던 멍청한 어느 인간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쇠고기를 웬만해선 안먹게 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기농이라고 표시 되어 있는 채소들을 장바구니에 넣으며서도 과연 유통업체와 상인들을 철썩같이 믿을 수 있을지 속으로 떨떠름한 마당에 수입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벌써부터 한우든 호주산이든 쇠고기 매장이 썰렁하다는데, 이런 꼴로 가다간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소비는 날로 위축되고 축산업 농가는 FTA 비준되기도 전에 다 망해 쓰러질 판국이다. 그게 걱정은 되는데, 나로선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원래 우리 식구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거하게 고기를 먹어줘야 기운이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산다. 채소와 푸성귀로만 차려진 밥상은 <저 푸른 초원>이라고 야유하며, 고기를 든든히 먹어줘야 계단 오를 때도 힘이 안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 달걀이라도 상에 올라야 하고 어쩔땐 일주일에 사흘 이상 고기(생선은 고기가 아니다)를 먹기도 한다. 미역국, 무국엔 반드시 쇠고기를 넣어 끓여야지 그 밖의 조개나 버섯만 넣고 끓였다간 나 혼자 꾸역꾸역 6박7일동안 먹어야 한다. 느끼한 곰탕은 일주일 내내 맛있다고 드시면서도, 멸치로 맛 낸 된장국은 2끼 이상 내놓으면 외면당하는 것이 우리 집안 내력.

연일 광우병 쇠고기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주말, 엄마는 마지막이될지도 모른다며 장조림을 해먹자고 한우 사태와 메추리알을 사오셨다. 나이로는 4.19 세대지만 그 때도 무서워서 밖에 안나가봤고, 68년 평생 데모란 건 처음이라며 벌벌 떨면서도 딸 성화에 덩달아 직접 청계천 촛불집회를 다녀오시고 보니, 광우병 쇠고기와 정부 해명은 죽어도 못 믿겠는데 결과적으로는 놈들이 밀어붙이기로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고 말 것이라는 게 울 엄마의 결론인 듯했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 엄마는 언덕에서 발목을 접질려 복숭아뼈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고 5주간 기브스를 해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_-;; 그래서 우리집의 마지막 장조림은 눈물의 장조림이기도 하다.
정말로 칼슘이 많이 우러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 복숭아뼈가 얼른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마지막 우족 하나를 꺼내 곰탕을 끓였다. 반나절 이상 곰솥에 우족을 끓이며,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마지막 우족탕>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해버렸다.

며칠째 장조림 반찬에 우족탕을 기본으로 내놓는 데도 엄마는 아무 불평이 없다. 푸성귀 반찬을 매일 똑같이 내놓으면 손도 안대는 양반인데, 장조림이랑 곰탕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더 맛있게 느껴지나보다. 사실 장조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한번도 해먹지 못한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짭조름한 쇠고기 장조림을 워낙 좋아하셔서 밑반찬으로 거의 떨어뜨리는 일이 없었는데, 메추리알 삶아서 일일이 까는 것이 귀찮다고 엄마랑 내가 하도 투덜거리니까 최근 몇년동안은 삶은 메추리알을 까는 것이 아버지의 임무가 되었더랬다. 냉장고에 장조림이 떨어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이제는 없어진 동네 농협마트 정육점에서 맛있는 사태로 쇠고기를 고르고 메추리알을 두어 판 집어 사들고는 아버지가 휘파람을 부르며 돌아오시면 두 모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귀찮은 티를 팍팍 냈지만, 아버지는 씩 웃으며 어서 메추리알 까게 삶아놓기나 하라고 하셨다.

일요일 저녁, 발은 퉁퉁 부어오르는데 엄마는 식탁에 앉아 삶은 메추리알을 까며 아버지는 메추리알을 살점 하나 안 떨어뜨리고 껍질을 잘 까셨건만 왜 자기는 알이 다 너덜너덜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막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의 발목을 잡아먹은 장조림이라서 밉게 느껴졌는지, 오랜만에 만드느라 거의 태울뻔하기도 했던 장조림은 내 입엔 뻣뻣하고 별로 맛이 없다.

그러면서 버럭 화가 났다. 가슴이 아파서 차마 못 해먹는 것도 속상한데, 좋아하는 음식도 공포에 질려 못 먹게 만드는 정부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쓸개빠진 무뇌아들한테 진실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고기 좋아하는 울 엄마한테 귀찮은 티 안내고 다음엔 더 맛있는 쇠고기 장조림을 해드리고 싶단 말이다, 이놈들아!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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