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

놀잇감 2008. 9. 25. 21:32


영화본지 일주일이 지나 그 감동이 이미 가물가물해지려고 하고 있으니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어서 끼적여야겠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본 적이 없다. 아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 뮤지컬이 몹시 보고싶으면서 동시에 어쩐지 꺼려지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섣불리 뮤지컬을 보러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집에 전축은 없고, 카세트플레이어와 라디오로만 음악을 듣던 내가 중학교 때 처음 아버지가 장만하신 워크맨으로 이른바 <스테레오> 음악을 처음 영접한 충격적인 경험을 한 순간 내 귀에 울려퍼졌던 노래가 바로 아바의 주옥같은 명곡들이었다.
왼쪽 귀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귀로 뇌를 통해 연결되는 듯한 오묘하고 강렬한 스테레오 사운드를 헤드폰으로 들으며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 삼남매는 앞다투어 서로 음악을 듣겠다고 줄을 서다시피했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폴모리아 악단의 다른 영화음악들은 비교적 따분하게 생각되던 반면, 아바의 음악들은 열세살 짜리 계집애가 들어도 마냥 좋고 신이 났다.

그런데 그 소중한 아바의 명곡들로 만든 뮤지컬이라니... 뮤지컬 배우들이 과연 그 아름다운 <오리지널> 음악들을 제대로 소화나 할 것인가, 겁이 날 정도였고 성량 떨어지는 배우들이 노래들을 망치면 막 화가 날 것 같았다. 더욱이 스무살 된 딸을 결혼시키는 중년의 주인공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들었고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 왔을 때도 나는 줄곧 외면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지들이 어떻게 아바의 노래를 제대로 표현하겠어, 라며. ^^;
물론 내심으론 뮤지컬 맘마미아에 대한 혼자만의 상상과 기대를 마음껏 펼치고 있었다. 배우들은 입만 벙긋거려 립싱크를 하고, 아바의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식으로.

그러다 영화 맘마미아의 소식이 들려왔다. 주인공이 메릴 스트립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나는 드디어 맘마미아를 볼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캐스팅엔 심히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영원한 나의 미스터 다아시 콜린 퍼스까지 나온다는데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대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노래솜씨는 아슬아슬했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자연스레 어우러진 소중한 아바의 노래들은 전혀 훼손된 느낌이 없었다. 어쩌면 그간 뮤지컬 맘마미아를 멀리 했던 내 편견이 전혀 근거없는 아집이었을 것이다.
스무살 소피는 매우 사랑스럽고 예쁜데다 가창력도 뛰어났으며, 메릴 스트립은 연기로든 노래로든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아.. 나도 메릴 스트립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늙어야 할 텐데!)
아참, 콜린 퍼스의 노래 솜씨는 세 미중년 가운데 단연 돋보일 정도였고, 뱃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리드하는 장면은 남들에겐 몰라도 나에겐 그저 흐뭇한 백미였다. 
게다가 그리스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또 어떻고!! +_+
영화관을 나서던 나는 입으로는 Thank you for the music을 흥얼거리며, 머릿속으로는 어서 지중해를 가봐야해, 그리스를 가봐야해... 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아바의 추억 때문에 더욱 점수를 많이 땄을 수도 있지만, 내겐 정말 좋았던 영화.
DVD가 나오면 당장 살 작정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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