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15.05.25 모란과 작약 8
  2. 2015.05.21 이해
  3. 2015.05.13 5월 신록 2
  4. 2015.04.11 몰라요 5
  5. 2015.04.07 4월 7일 6
  6. 2015.04.06 냉이 7
  7. 2015.04.04 꽃대궐 7
  8. 2015.04.02 단비 4
  9. 2014.05.27 5월엔 3
  10. 2014.05.06 어김없이 8

모란과 작약

놀잇감 2015. 5. 25. 02:29

나는 어린 시절 '모란'이라는 꽃을 선덕여왕 위인전에서 처음 알게 됐던 것 같다. 꽃은 화려하고 예쁜데 향기가 없다는 걸 선덕여왕이 그림만 보고도 척 맞혔다나 뭐라나... 벌과 나비 없이 꽃만 그려서 향기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건데, 요새도 선덕여왕 위인전에 그런 얘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란에 향기가 없어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건 뻥이다. 그냥 모란 그림에는 벌과 나비를 안 그리는 게 전통 그림 양식이었겠지. 그런 그림들을 익히 본 후대 사람들이 선덕여왕 일화도 지어낸 게 아닐까나? -_-;


무튼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다. 어린 시절 선덕여왕의 모란과 울 할머니가 가끔 치시는 민화투의 '목단'이 같은 꽃이란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ㅋㅋㅋ

 ㅎㅎㅎ 이제보니 화투 모란꽃도 예쁜 것 같네... 


어쨌거나 모란은 일찌기 당송시대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고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계속 이어졌던지 조선시대 궁궐과 종묘에서도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쓰인다. 주로 병풍으로...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 '일월오봉도'라고 하지만, 모란도 역시 궁궐의 모든 주요 의전행사에 쓰이는 그림이었단다. 혼례식, 장례식, 관례식 할 것 없이 전부! 종묘에 가보면 각각의 신주를 모신 제단에 일월오봉도 말고도 모란병이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단다. 저렇게 기암괴석 위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모습을 화려하게 그린 것이 일반적.


저런 그림을 보면 아 모란이로군, 하고 아는 척은 하겠는데 실물로는 모란과 작약을 오래도록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모란은 목본식물이고, 작약은 초본식물이다(뿌리만 살아있고 줄기는 겨울되면 다 시들지만 역시나 다년생 ㅠ.ㅠ)'라고 알면 뭐하냐고! 꽃을 봐도 구분이 안되는데.... +_+


작년에 내가 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용산가족공원 정원에서 찍어온 사진들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올리면서 내가 아마 모란이라고 했다가 작약으로 바꿨던가.. 암튼 작년만해도 아리까리 구분하는데 통 자신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래 사진 석장은 죄다 작약이다. 

2014년 5월 23일에 찍어온 작약


특히나 아래 연분홍 작약이 수술 모양이 오묘해서 이런 게 다 작약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량종은 별별 모양이 다 있으니 원.... 

보시라.... 지식백과에서 퍼온 작약사진이다..

작약도 노란 꽃술...



그렇다면 모란은???

내가 파악한 바로 구분법은 오로지 이파리!!

올해 경복궁에서 내가 찍어온 모란꽃을 다시 보자..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똑같은 구도와 색깔 꽃을 찍어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작약 사진 비슷한 걸로 위에 퍼왔으니 일단 넘어가자. (아오... 지난주에 입궐해보니 교태전 후원에 작약도 잔뜩 피었던데 아까비;;;)

2015년 4월 28일에 찍은 모란



잎사귀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지 않는가?!

모란은 잎이 넓적하고 손바닥처럼 펼쳐져 있다면, 작약은 잎이 뾰족뾰족 작고 좁고 좀더 딱딱하게 생겼다. 개량종인지 어쩐지 몰라도 꽃도 모란이 훨씬 크고 탐스러운 느낌. (궁궐에 심은 거라 유독 그럴지도.... ^^a)


모란은 흔히 '꽃중의 왕'이라고 하여 왕실에서 특히 사랑했던 것 같은데, 시기적으로도 모란이 먼저 핀단다. 2주쯤? 게다가 모란은 기껏해야 닷새에서 일주일밖에 꽃을 못 볼 정도로 금세 지는데 작약은 이래저래 '짝퉁'스럽게도 모란보다 늦게 피어서 꽃도 좀 더 오래 버틴다고. ㅋㅋ 


근데 또 헷갈리게도 영어로는 모란도 작약도 모두 peony! 구분하는 거 좋아하는 우리나 모란/작약 차이점에 연연할 뿐, 서양애들 눈엔 그냥 다 '피오니'인 거다! 쳇... 

찾아보니 둘다 '미나리아재비 목'에 속한대고

모란의 학명은 Paeonia suffruticosa

작약의 학명은 Paeonia lactiflora

서로 사촌이 틀림없다. 아니.. 자매인가? ^^; 


암튼... 4월에 핀 걸 봤다 싶으면 모란일 확률이 높고

5월에 본 건 작약이겠거니 , 특히 5월 중순 이후에 봤다면 무조건 작약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막연한가?

째뜬 나는 이제 이파리로 구분할 수 있다규~~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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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투덜일기 2015. 5. 21. 23:37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라는 단언을 하지 않겠다고 노력은 하는데 자꾸만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냥 입장이 다르고, 태도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생각도 다를 뿐 그게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내 잣대에 맞지 않으면 자꾸만 '이해 불가'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이젠 나도 말랑말랑한 사고가 불가능해진 꼰대 기성세대로 굳어가고 있는가 해서 두렵다.


늙은 딸의 짜증에 여유롭게 "너도 늙어봐라" 신공으로 대적하는 노친네도 어렵고, 그 어떤 잔소리에도 "뭐래?"라며 무시하는 십대도 어렵고, 참자 참자 사랑으로 덮어주자, 주문을 외우면서도 수시로 버럭버럭 화가나는 내 마음도 어렵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궁극적으로 네 편'이라는 신뢰를 주기란 참 얼마나 어려운가 새삼 느끼는 중이다. 


무튼.. 5월이 조바심 속에서 이렇게 가고 있다. 이런 날들도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웃으며 옛말하는 추억이 될 거라 믿어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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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신록

놀잇감 2015. 5. 13. 00:24

4월 못지 않게 5월도 이 나라엔 잔인한 달, 가슴아픈 달이지만... 그래도 이 무렵 연두색 나무들은 참 예쁘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색깔이 다 있나 싶어지는 잎사귀들. 머리도 팔다리도 무거운 날이었지만 그래서 더 일부러 산엘 따라갔었고, 가길 잘했다. 여전히 빌빌댔으나 그래도 체력이 꽤 쓸만해졌음을 실감했다. 올라갈 땐 꼬래비에서 둘째로(총 35명중;) 간신히 정상을 올라, 남들 다 도시락 펴고 절반쯤 먹고 있을 때 합류했는데 내려올 땐 중간 정도의 성적. 다들 놀라워했다. 일단 A팀이었다는 거! B급인생도 좋지만... 예쁜 능선을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욕심부렸다가 후회없이 뿌듯했다.

 


대구 비슬산. 1083m. 휴식 포함 총 산행시간 5시간 30분. 헥헥거리느라 사진들은 죄다 남들이 찍은 것들;; 산중턱에 펼쳐진 진달래밭이 장관이라는데, 꽃이 다 졌어도 오즈의 마법사 노란 벽돌길이 떠오르는 저 나무길은 진짜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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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투덜일기 2015. 4. 11. 11:25

50년 가까이 같이 산 엄마한테서 가끔 아직도 신기한 점이 발견된다. 오 놀라워라. 사람 참... 몰라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젠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이었던 거다.


왕비마마에게서 어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활자중독증'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다독가나 인문학 전공자나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이 특징은 그 어떤 활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전단지나, 심지어 화장실 낙서도 죄다 읽어야한다고.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중독'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혹은 눈이 피곤하면 자잘한 글자 피해 질끈 눈감기도 하고 관심없는 분야는 단호히 외면할 수 있다. 헌데 울 엄마는 하이고...


공식적인 '안산 벚꽃축제'가 오늘부터라기에 우리는 일부러 어제 꽃놀이를 나섰다. 집앞에도 벚꽃이 한창 만개했지만 꽃길을 걸으려면 역시 나가는 수밖에. 실은 꽃놀이 핑계대고 자락길을 한 바퀴 끌고 돌 심산이었다. 총 7km이고 보통 걸음으로 2시간 반 걸린다는데, 동네 주민이면서도 우린 아직 한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 후배들 데리고 거의 한바퀴 돌긴 했지만 자락길 중간에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온 터라 완주라곤 할 수 없으니...


좀 무리인 것 같았지만 암튼 결과적으로 자락길 완주엔 성공했다. 4시간만에. ^^; 안산 자락길은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이라 별 걱정을 안했는데, 우리집에서 자락길 입구까지 가는 오르막길과 계단이 복병이었다. 자락길 진입 시작도 전에 2, 3번이나 쉬었을 정도. ㅋㅋ 자락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중간중간 벤치가 보일 때마다 무작정 주저앉아 쉬어야하는 저질체력 노친네를 모시고 너무 무리하는 건가 더럭 걱정도 되었지만, 1/3쯤 갔을 때 중단하려면 너무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한다고 했더니, 본인이 완주 의지를 불태웠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고 왕비마마를 놀려대긴 했지만, 중간에 벤치에서 만난 어느 아줌마가 매일 한 바퀴씩 도는데 안 쉬고 걸으면 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4시간이면 절반씩 걷고 쉬었다는 의미다. 70대 노친네가 뭐 그만하면 선방이라고 인정. 느릿한 걸음이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조를 맞추기로 했지만, 가뜩이나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한 상황(내가 원래 성질이 급해서 걸음이 좀 빠르다)에 불을 붙인 건 바로 엄마의 '활자중독증'.


자락길 곳곳에 위치를 알리는 번호 팻말이 붙어 있고, 갈래길마다 표지판도 붙어 있는데 아오, 왕비마마는 그걸 죄다 소리내어 읽어야 지나치신다. 현재 위치 12-1, 너와집 442미터, 봉수대 1.2킬로미터... 설상가상, 서대문형무소 주변이기 때문인지 자락길 곳곳에 항일인사의 활약상이나 남긴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또한 서서 다 읽어야 지나가시는 거다! 으으으... 

김지섭은 나도 금시초문... -_-;


근대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널리 알린다는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산에 가면 흔히 나무에 묶어놓은 '입산금지' 표시처럼 펄럭펄럭 천조각에 여기저기 난간과 나무에 노끈으로 매달아놓은 모양이 내 눈엔 심히 거슬렸건만, 오마니는 모르는 사람 많다며 또 열심히 그 앞에 서서 읽고 계시더라는..


"힘드니까 일부러 서서 쉴라고 다 읽는거지!"라고 내가 퉁박을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나무 이름 팻말이며 지난 식목일에 심은 듯 새로 묘목에 달아놓은 성명 꼬리표, 스틱 및 아이젠 사용 금지하고 달리기도 하지 말라는 자락길 주의사항, 바위에 적어놓은 오래된 낙서까지 빠짐없이 중얼중얼중얼... +_+


장장 4시간(집에서 나간시간부터 따지면 무려 4시간 40분)에 걸친 자락길 완주를 치하하는 의미로 탕수육과 잡채밥을 사드리고는 (실은 나도 고단해서 집에 와 저녁 차리기 싫었다;;ㅎㅎ) 기어코 내가 한 마디 했다.


엄마는 활자중독증이야! 


다달이 날아오는 사학연금 회보랑 서대문구 소식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서 챙겨뒀다가 두고두고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나. 난 또 그냥 못버리는 병인 줄 알았지 거기 찍힌 활자에 탐닉하시는 건 줄은 몰랐지 뭔가. 사람 참.. 몰라요... 


저 앞에 또 뭐라고 적혔나 보자... 힘차게 걸어가는 오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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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놀잇감 2015. 4. 7. 15:12

​우리집앞 벚꽃은 오늘자로 만개했다는 기록용 포스팅... ^^; 

작년엔 꽃도 탐스럽고 버찌도 엄청 열렸는데 올해는 꽃도 작고 열매도 부실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도 사방에서 각종 벌들이 날아와 붕붕대며 꿀을 채취하는지 수분을 시키는지 아주 바쁘다. 손가락 굵기만한 대형 뚱보 벌들도 있어서 접근하기 무셔워라...

​탐스러운 꽃송이를 담아보려고 베란다에 나가 알량한 줌으로 당겼으나 흐리다... 날씨도 흐리고 도움이 안되네. 

잠깐 햇빛 비친 사이에 다시 나가서 몇장 더... 아.. 사진 진짜 못찍는다. ㅠ.ㅠ  

아래층 아저씨가 벚나무가지가 너무 무성하다고 옆집에 '민원'을 넣는바람에 제일 큰 벚나무의 제일 튼실한 가지 하나가 작년 겨울에 잘려나갔다. 겨우내 베란다 앞이 환해진 건 좋았는데 막상 벚꽃이 피어나니 베란다 난간까지 넘실넘실 드리워졌던 꽃가지가 사라진 게 좀 아쉽다. 

째뜬 꽃사진 잘 안나온 건 ​순전히 찍사 솜씨가 모자란 건데도 며칠 전 계단에서 떨어뜨려 나뒹군 구형 아이폰 탓이라고 속으로 괜한 트집을 잡고 있다. 요는 얼른 새폰을 갖고 싶다는 것! 아 근데 어디서 살지(대리점? 온라인샵?) 뭘로 살지(기종은 정했는데 무슨 색?), 밖에 나가기가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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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투덜일기 2015. 4. 6. 11:15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요즘 냉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거라 향이 옛날 같지 않다, 는 것이 엄마의 총평. 까다로운 노친네가 트집을 잡거나 말거나, 나는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 한 입 떠먹은 순간 입안으로 확 퍼지는 냉이 향기에 나도 모르게 아, 봄맛이네....그랬다. 음식의 '맛'이란게 대부분 기억의 총합이고 추억이라더니만, 봄마다 먹어온 냉이 된장찌개가 내 두뇌에 그렇게 새겨놓은 탓일 거다. 냉이를 먹으면 봄이다, 이런식으로.  


잔털에 붙은 흙이며 지저분한 잎사귀 떼어내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냉이는 봄이 되어도 내가 즐겨 사는 재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봄에 냉이로 국이든 찌개든 나물이든 한번쯤은 해먹어 줘야 봄을 봄답게 맞는 것 같은 마음 역시 오랜 세월 세뇌된 머리가 짜내는 계절성 습관이겠지? 마트에 나온 냉이를 조금 째려보다가 (아 손질하기 귀찮아;;) 기어코 카트에 한 팩 넣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땐 봄에 꼭 엄마가 끓여주는 쑥국, 냉잇국이 싫었다. 쑥국은 너무 쓰고, 냉잇국에선 흙냄새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카 ㅈㅎ이가 '걸레냄새가 난다'며 모든 버섯을 치떨리게 싫어하고 못먹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조카들은 싫은 음식은 죽어도 안먹고 버텨도 되지만, 그 옛날 어린 나는 싫은 음식도 꾸역꾸역 참고 먹어야했다. 편식은 안 돼! 음식 귀한 줄 알아야지. 음식 남겨서 버리면 죄받는다. 지옥에 가서 평생 버린 음식 다 먹어야 된대. 몸에 좋은 거야. 무조건 먹어... 밥상에서 이런 말로 잔소리를 했던 건 주로 할아버지와 엄마였다. 때로는 꼴깍꼴깍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느라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검정색 수건처럼 생긴 천엽이라든지, 금방이라도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은 생간, 살코기보다 허연 비계와 껍데기가 더 많은 돼지고기 수육!) 난 또 '솔선수범' 착한 누나 역할에 힘쓰느라 씹지도 않고 대충 꿀꺽 삼키고는 칭찬을 듣는 쪽을 택했다. (완강하게 싫다고 왜 말을 못했니... 응?) +_+ 


어쨌든 쑥국 싫어! 냉잇국 맛없어! 엄마한테 투정을 부려도 아예 안 먹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닌가? 그냥 내가 괜히 잘난척 하느라고 먹으라는 대로 다 따라 먹었을 수도 있겠다. 편식 심한 막내동생은 막 울면서 끝까지 버텼을텐데! 닭백숙은 좋아라 먹었어도, 누런 기름이 둥둥 뜬 백숙 국물은 아버지 빼곤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엄마는 어떻게든 그걸 우리한테 다 먹이려들었었다. 하지만 막내는 차라리 맨밥을 빡빡 빨아먹으면 먹었지 절대로 안 먹고 도리도리... 어떻게든 '영양가 많은' 닭국물을 먹이겠다는 일념하에 엄만 라면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백숙국물로 라면을 끓여바쳤지만 한 입 딱 먹어본 막내는 그 좋아하는 라면도 외면했다는 일화를 아직도 가끔 들려주신다. 막내동생의 막내아들 ㅈㅇ가 편식 심한 건 다 지 애비 닮아서 그런 거라며...


씁쓸한 맛이 나는 음식 맛을 즐기게 되면 그게 다 컸다는 증거라던가. 하지만 씁쓸한 쑥국과 흙냄새 풀풀나는 냉이를 언제부터 거부감 없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참, 냉이 향을 흙냄새로 느끼는 건 나뿐일까? 하긴 뭐, 익힌 당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나는 어려서부터 석유 냄새로 인식했고, 익힌 당근을 억지로 먹으면 버스멀미 하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래서 지금도 별로 즐기진 않음.  암튼 쑥이나 냉이를 딱히 즐긴다기보다는 그냥 계절맞이 절차로 참아넘기다 보니 먹을만하게 되었다가, 오랜 습관이 쌓이면서 조건반사처럼 계절에 따라 내가 먼저 찾게 된 거다. 제철 음식, 제철 과일은 어떤 영양제보다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 심히 혹했을 수도 있다. 워낙 먹는 거에 탐닉하는 인간이라서... ㅎㅎ 


모전녀전이라고 어제 성묘가며 들른 떡집 앞에서 엄마는 차창을 내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쑥개떡'도 있으면 사오라고... ㅎㅎ 그렇지, 봄은 또 쑥개떡의 계절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쉽게도 쑥개떡은 보이지 않았다. 쌀가루보다 쑥이 더 많이 들어가 떡인지 쑥뭉침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옛날 엄마표 쑥개떡 역시 난 별로 안좋아했다. 이름도 마음에 안들어.. 개떡이 뭐냐 개떡이... 오죽하면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을라고. 떡이라면 모름지기 맛있는 소가 들어간 바람떡이나 송편,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 인절미, 달콤한 백설기 정도는 돼야지 말이야. 어려서는 바람떡이나 송편, 절편을 먹을 때도 꼭 '하얀색'만 골라먹었고, 쑥색은 절대 피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쑥떡 쪽에 먼저 손이 간다.게다가 단 음식들이 싫어지면서는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떡이 쑥절편... ^^; 


그렇다고 제철음식 먹으러 주꾸미 축제니, 새우축제니 하는 데 굳이 찾아갈 만큼의 부지런함은 없다. 일단 '축제'라고 이름붙은 공간의 번잡함과 시끄러움이 싫어! 특별히 더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동네 횟집에도 '봄 도다리', '주꾸미 입하'라고 적혀 있지만 그건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억지로든 즐겨서든 많이 먹어본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심 그래서 다행이다. 밥순이의 삶이 꽤 오래 되어도 아직 어류를 맨손으로 손질하는 거 영 마뜩찮다. 봄마다 도다리 쑥국 이런 거 끓여먹고 싶어진다면 얼마나 귀찮겠나! 어우 비린내 생각만해도.. ㅠ.ㅠ 그나마 냉이가 낫지. 올봄 추억의 제철음식은 어제 먹은 쑥절편이랑 냉이 된장찌개로 만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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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궐

놀잇감 2015. 4. 4. 21:21

계속 흐린 날씨가 아쉬웠던 어제 경복궁.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꽃들이 뙇~~!

매화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는 그래도 매화가 맞다고 하고, 누구는 복숭아꽃이라 하고, 누구는 살구꽃이라고 하고... ㅋㅋㅋ 암튼 예쁜 봄꽃인 것만 확실하다. ^^ 맑고 파란 하늘 배경이었더라면 금상첨화겠으나, 안개가 낀 듯 구름이 내려앉은 흐린 잿빛 하늘 배경으로도 나름 운치 있다.​

자경전 꽃담 앞 살구꽃

사진 비율이 달라진 것으로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이 사진은 내가 찍은 게 아니다. 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눌러댔는데 막 다 흔들리고 흐리고 구도 엉망이고.. ㅠ.ㅠ 해서 다른 선생님이 찍으신 사진으로 대신 퍼왔음.  ​

안 그래도 예쁜 꽃담 앞에 예쁜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꽃대궐이구나 싶은 광경. 그러나 아쉽게도 경회루 수양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해서 올해는 구경 못하고 넘어갈듯. 2주에 한번으론 모든 꽃잔치를 다 만끽하기기가 어렵다. 

​역시나 딴분 사진. 할미꽃이 이렇게 집단으로 피어있다뉘.. 작년에도 봤지만 새삼 신기하고 놀랍다. 마치 튤립같지 않은가?? ^^;

이건 확실히 매화거든요..

이건 다시 내가 2주전에 찍은 태원전 앞 매화 사진.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던 터라 만개한 꽃이 몇개 없었는데도 향기가 정말 그윽했고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붕붕 거렸었다. 덕분에 벌까지 포착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어제 2주만에 다시 찾아갔더니 전날 밤 내린 비에 꽃은 거의 다 떨어지고 시들고... ㅠ.ㅠ 

헐겁든 쫀쫀하든 확실히 조직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일부 사람도 싫어졌고 한옥과 역사 공부도 시들하지만... 아직은 예쁜 꽃보며 궁궐 마당에서 걷는 운동(?)하는 걸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중. 이러다 지치면 뭐 나가떨어지겠지. ㅋㅋ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건 순전 뻥이다. 어디 감히...  추한 인간보다는 꽃이 확실히 더 향기롭고 아릅답다.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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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투덜일기 2015. 4. 2. 17:03

가뭄이 심해 소양강댐이 막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지경이라더니 엊그제부터 틈틈이 비가 내린다. '단비'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학창 시절 지리 과목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우리나라 기후와 강수량 관련된 부분은 그래도 꽤 잘 알아먹었던 것 같다. 일단 비와 눈에 내가 관심이 많으니깐! 게다가 지리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1년 강우량 중에서 대부분이 장마철에 한꺼번에 다 내린다는 것, 그래서 장마철 물난리나 '태풍'을 엄청난 '재해'라고만 여기지만 사실 태풍도 간간이 올라와서 전국에 비를 뿌려줘야 농사에 '엄청' 도움이 된다는 것, 바닷물도 태풍으로 한번 확 뒤집어져야 영양분이 골고루 섞여서 양식장도 잘된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고향 이야기를 덧붙여가며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걸 내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을라고. ㅋ


며칠 반짝 낮동안 기온이 많이 올라가더니만 그제 내린 비에 힘을 얻었는지 계속 꽃눈 상태로 버티던 집 앞 벚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가 어제부터 순식간에 팝콘 터지듯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은 꽃을 셀 정도. 가뭄 탓이려나, 꽃잎이 오종종 작고 볼품 없는 느낌이다. 해마다 벚꽃 일기를 쓰듯 만개한 시기를 블로그에 비교연재(?)하고 있는데 작년엔 올해보다 더 빨리, 3월 말부터 피었다고 적혀 있다. 올해는 며칠 늦었다는 얘긴데, 과연 만개 시점은 며칠일까? ^^


오늘 오후부터 또 다시 큰 비가 내린다더니만 조금 전부터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 정도 봄비에는 꽃송이가 거뜬히 버텨준다는 것도 예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으니 걱정은 뚝. 주말부터는 또 집앞에서 꽃잔치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걸핏하면 미세먼지다 황사다 뿌연 봄 하늘이 엄청 못마땅했는데, 그제 내린 비로도 어느정도 씻겨내렸겠지만 이번 단비로 완전 싹~ 깨끗해지면 좋겠다. 그래야 봄꽃 빛깔도 더 예쁠 듯. 요즘에도 식목일 되면 학교마다, 회사마다 거국적으로 나무 심으러 가고 그럴까? 내가 회사 생활 할 때는 되게 싫은 행사였는데 지금 하라고 하면 또 신나게 나설 것도 같다. 물론 까다롭게 토양과 그 산에 어울리는 묘목의 종류까지 따져가며 심어야한다고 까탈을 부리긴 하겠지만... 째뜬 이번 식목일은 단비 내리고 나서 온 산의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을 때라 나무 심기도 좋겠지. 


식목일에 나무는 안 심고 우리는 늘 그 즈음 일요일에 성묘를 간다. 주변에 헤이리와 파주 아울렛, 프로방스가 있어서 이젠 대가족 스무명이 성묘 끝내고 밥 한번 먹으려면 식당 찾는 게 여간 힘들지가 않다. 두부마을이나 한정식집에서 줄줄이 대기표 번호 들고 기다렸다 먹기도 하지만, 요번엔 김밥이랑 먹을 것 '사'가지고 가서 소풍 겸 놀기로 했다. 작년 한식땐 큰올케랑 나랑 둘이 나눠서 김밥을 '싸' 갔는데 김밥 달인과 외양부터 비교되서 민망했었다. 요샌 둘 다 바쁘니 패스~ 아버지 좋아하시는 영양센타 통닭이나 넉넉히 사갈 작정. 


그러니 아무리 단비라도 일요일엔 그쳐야하느니라! 미리미리 얼른얼른 다 쏟아지도록... 내려라,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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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놀잇감 2014. 5. 27. 00:55

온 나라가 참담함에 젖었던 5월엔 유독 이상하게 참 많이도 빨빨거리고 다녔다.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은 통 손에 안잡힌다는 핑계로 작업은 뒷전이고... ㅠ.ㅠ 책도 한권 안 읽고.. ㅠ.ㅠ


일단은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에서 하는 <궁중채화전>과 <종묘 특별전>을 봤고

(왼쪽이 비단으로 일일이 꽃과 나비 새 등등을 만들어 장식하는 채화전이고

오른쪽 사진이 종묘 특별전. 그릇이며 술잔이며 되게 신기했음) 



전북 완주 운암산엘 갔었고 (밧줄 잡고 암벽을 오르는 짓거리를 몇번이나 한 끝에 정상에도 올랐다 ㅠ.ㅠ 나 이러다 등산인으로 거듭나는 거 아닐까 몰라... ㅋㅋㅋ)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고

매번 내가 정상으로 착각했던 어느 능선에서 대아댐과 대아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 헉헉대며 손이 덜덜 떨려서 정사각형 모드로 찍고 있는 줄도 몰랐다.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엘 다녀왔고 (드디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을 알현! 감격했다)

부석사 안양루소수서원 직방재부석사 무량수전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도 올랐었고 (마침 월요일이라 윤동주 문학관은 문 닫았더라)

소나무 아래 보이는 것이 윤동주의 서시가 적혀있던 시비, 그리고 엄청 크게 자라 앵두가 다닥다닥 매달려 익어가고 있던 그 주변의 앵두나무.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하는 오르세전도 보러 갔었고







또 옛날식 함박스테이크를 판다는 삼청동 그릴데미그라스에도 갔었고

이날 뒷북으로 영화 <역린>도 보았음. 귀찮아서 포스터 퍼오기 생략. 영화보다 난생처음 좌우에서 쌍코골이(왼쪽은 내 일행이고 오른쪽은 남의 일행이었는데 양쪽에서 동시에 졸며 코까지 골다뉘 ㅠ.ㅠ)를 경험한 것으로 감상을 대체해도 될 듯. ㅋㅋ 


그러고는 마감중에 또다시 완주에 내려가 종남산 송광사, 위봉사, 화암사 답사를... 

  

송광사 십자종루 화암사 우화루위봉사 보광명전



이러고 놀았으니 일을 제대로 끝냈을 턱이 있나. 연일 전화벨소리에 덜덜 떨고 있다. ㅠ.ㅠ

그래서 양심상 세세한 본격 후기는 다 안쓰게 될 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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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투덜일기 2014. 5. 6. 20:33

어김없이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 어제만해도 드나들며 전혀 못느꼈고, 심지어는 아까 낮에 외출할 때도 못맡았던 향기를 방금 전 음식물 쓰레기 내다놓으러 나가면서 깨달았다. 온 동네를 휘감고 있는 듯 훅 끼쳐오는 진한 향기를 아깐 왜 못 맡았을까. 5월 6일이면 예년보다 많이 빠른 건가 어쩐건가.


벚꽃을 비롯한 봄꽃은 보름이나 일찍 피었지만 그 뒤로 날씨가 하도 수상하게 오락가락, 얼마 전 비온 뒤로는 아침 저녁 다시 발시리고 춥다고 느껴졌다. 바람은 또 어찌나 불어대는지. 참담하고 암울한 세상 때문에 더 춥다고 느껴지는 건지 진짜로 기온이 많이 떨어진 건지 분간이 잘 안되고 있었는데... 


음식물 쓰레기와 아카시아꽃 향기. 새삼 참 아이러니하구나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5월은 왔고 어린이날도 지났고 석가탄신일도 지나가고 있다.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면 해마다 외가쪽으로 온 가족 총출동하다시피 모였던 석가탄신일엔 어려서부터 꽤 많은 사촌들끼리, 다 자라선 어린 조카들 조르륵 앉혀놓고 찍은 사진이 많은데, 그런 사진들 속에선 대부분 반팔을 입고 있었다. 지금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초파일 사진 속 조카들은 죄다 반팔옷이다. 올해 음력이 좀 빠른 탓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온종일 으스스 추워서 보일러를 돌렸다. 


가족모임은 어린이날인 어제 큰동생네 모여 고기 구워먹는 것으로 끝냈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열흘만엔가 현관문 열린 사이 가출해 애를 태웠던 파랑이도 어제 가보니 무사히 귀가해 있었다. 연일 비와서 벽보도 못 붙이는 상황이라 그새 안락사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내심 쫄아가지고 차마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신고하고 잘 데리고 있었단다. 엄청 다행. 오늘까지 오른쪽 어깨가 뻐근할 만큼 조카들과 배드민턴도 쳤고, 몇년째 벼르기만 했던 가족사진을 막내 카메라로 그냥 찍었다. 아버지 생전에 스튜디오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엔 첫조카밖에 없어 8명뿐이다. 막내조카 태어나고 모두 11명이 된 대가족 사진을 찍자고 찍자고 부모님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이상하게 못했다. 나부터 사진찍는 게 너무 싫으니 원.


엄마는 막내가 삐까번쩍한 dslr 카메라를 들기만 하면 영정사진을 찍어 내놓으라고 포즈를 취하시는데, 난 또 그게 싫어서 매번 핀잔을 주었다. 옷이 어떻네, 머리가 어떻네, 표정이 어떻네...  물론 어제도 엄만 가족사진 다 찍자마자, 영정사진 하게 독사진 한장 예쁘게 찍으라고 또 나섰다. 하이고, 이여사님 제발... 노친네의 논리는 영정사진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 늬 할머니, 할아버지 봐라....그리고 한살이라도 더 젊고 예쁠 때(?) 찍어놓아야 한다나. 


그치만 여든다섯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영정을 칠순 사진(그냥 칠순기념 독사진이었을 뿐, 엄밀히 영정사진으로 찍은 건 절대 아니었다)으로 썼을 때, 모두들 15년 전의 할머니 모습을 낯설어했다. 최근 모습이 더 곱고 다정하고 예쁘다면서. 어떤 고모부는 영판 딴집 할머니 같아서 장모님 같지 않다고도 했다. 아버지 땐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이 없어 사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집안 어르신들은 정년퇴직 직전의 근엄한 양복사진을 쓰라고 권했지만, 우린 일주일에 세번씩 산에 다닌 아버지의 등산복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아 근데 그렇게 수많은 등산 사진 중에 왜 쓸만한 독사진이 없는지. 드물게 있는 독사진은 다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고... 


암튼 이번 가족사진 촬영은 밥먹기 전날 내가 먼저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막연한 위기감 같은 게 작용했던 것 같다. 조카들 다 사춘기 접어들면 아예 나타나지도 않으려고 할 텐데! 녀석들 예쁜 모습으로 주르륵 옆에 앞에 앉혀놓고 찍은 사진을 갖고 싶었다. 넷 중에 둘은 벌써 나보다 키가 한참 크다. 영 보기 싫은 내 모습도 10년쯤 뒤에 보면 아 젊었구나 할텐데 뭐, 위로하면서. 제발 좀 웃어달라고 아양을 떨어대도 오랜 촬영에 떼거지로 짜증을 내며 툴툴거리던 조카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지, 한 장이라도 제대로 건질 게 있을지 궁금하다. 있을 때 잘해줘야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카르페 디엠, 요즘 특히 나의 모토다.  


2014년 아카시아꽃 공식 기록은 아무려나 5월 6일이라고 써두려던 게 딴소리로 흘렀다. 마음 같아선 창문 활짝 열고 아카시아 향기를 방안으로 들이고 싶은데 너무 춥다. 그래도 괜한 위기감에 창문을 여는 쪽으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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