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7.06.13 샌프란시스코 둘쨋날 4/19(수) 8
  2. 2015.11.19 제주 풍경 8
  3. 2009.08.17 해운대 봤다 11
  4. 2009.03.03 한풀이 16
  5. 2008.08.05 오 제주도 3 21
  6. 2008.08.04 오 제주도 2 15
  7. 2008.08.04 오 제주도! 9
  8. 2008.04.24 제주도 14
  9. 2008.01.28 경주를 가다 11
  10. 2007.12.10 태안반도 6

메리엇 호텔 회원이라는 E언니 덕분에 여행일정 중 온천리조트에 묵은 날을 빼곤 계속 메리엇 호텔에 묵는 호사를 누렸었다. 회원가라고는 해도 대도시의 경우엔 확실히 호텔비가 비싸서 방을 한개만 빌려 4명이 같이 쓰고, 소도시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방을 2개씩 빌렸다고 했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방을 두개 얻었을 때도, 한 방에 4명이 묵을 때도 웬만하면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줬단 호텔측의 생색을 많이 들었고, 당연히 숙소는 매번 흡족했다. 

물가 비싼 샌프란시스코에선 당근 넷이 한 방을 썼는데, 유일하게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었다. 샌프란시스코 인심 야박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뭐 그래서 느긋하게 일어나 따로 브런치 먹으러 다닌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 

전날 600km 넘는 거리를 (서울-부산 거리가 450km라는 듯) 거의 홀로 운전하다시피한 E언니를 쉬게 하는 의미에서 담날은 늦게 일어나 10-11시쯤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문제는 늘 5시면 일어나 6시에 출근하는 습관을 들인 부지런한 나의 친구 S와 시차적응에 실패한 내가 새벽 6시도 못 넘기고 일어나버렸다는 것. ㅋㅋ 호텔 로비에 스타벅스가 있길래, 그럼 내려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있자고 했더니만 방에 커피드리퍼가 있는데, 그리고 어차피 아침 먹으러 가서 커피 마실 건데 왜 굳이 또 사마시냐고 친구가 타박... +_+ 정말로 호텔방엔 옛날식 커피메이커가 아니라 1회용 전기 드리퍼와 함께 테이크아웃용 종이컵과 뚜껑까지 완비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도 로비에 따로 커피 머신과 주스 테이블이 있어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완전 좋아라...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돌아와서 1인용 전기 드리퍼 사진은 죄다 삭제해버렸음을 깨달았음. 에고...

암튼 잠시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출근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로비 소파에서 친구와 둘이 각자 휴대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언니들이 방에서 내려와 브런치를 먹으러 두 블럭쯤 걸어갔다.

역시나 YELP의 추천으로 골라 간 브런치 음식점은 SOMA EATS라는 곳.

원래 시키려던 메뉴가 있었는데 갓 구워나온 빵도 맛있어 보인다면서 이것저것 언니들이 알아서 주문을 하고, 친구와 나는 얼른 넷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의외로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딱 떨어지는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각기 홀로 들어와 테이블을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맛있었지만, 근데 여기가 왜 그렇게 유명하다는 거지? 잉글리시머핀과 부리토, 요거트, 크루아상이 맛있어봤자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ㅋ 넓은 유리창으로 찬란한 햇빛이 들어오는 분위기는 그래도 엄청 마음에 들었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이름을 딴 상호도 멋지고...

관광객 역할에 충실하느라고, 나중에 아침 먹고 나와서 저 하늘색 의자에 앉아 똥폼잡으며 독사진도 찍었다. K언니가 다짜고짜 빨랑 가서 앉으라고 하심;; ㅋㅋ




난 아무래도 음식사진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성이 부족하다. ㅋㅋ 사람들 못 먹게하고 사진부터 찍는 거 너무 민망해서리... 암튼 그래도 호텔조식 아닌 브런치라 사진으로 남겼음.

좀 조촐하게 보이는 건, 곧 점심을 해산물로 거하게 먹을 거라 배를 많이 채우지 않는 작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다보니 결국 배불러서 오른쪽 페스트리는 싸가지고 감;;

부른 배를 두들기며 호텔로 다시 걸어가 짐을 마저 챙겨 체크아웃을 한 뒤 차로 움직인 곳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이리시커피가 유명한 부에나비스타 카페.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때부턴 오후 내내 해변을 걸어다녔다. 

바 자리에 앉으면 눈앞에서 저 아저씨가 아이리시커피를 제조해 곧바로 내밀어주는데, 우왕.. 위스키가 꽤 많이 들어간다. 술에 약한 친구는 아침부터 길바닥에 쓰러질 수 없다면서 술 없이 그냥 각설탕만 넣고 생크림을 부은 걸로 만들어 달랬다.  

완성된 아이리시커피는 요로케 생겼다. 수년전 대한항공 광고에도 나왔다나 뭐라나... 암튼 뱃사람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과 후에 몸을 후끈하게 만들려고 마셨다는 것 같다. 뜨거운 커피를 유리잔에 담아 마시게 된 연유가 뭘지 궁금하지만 아직 검색 안해봄. ㅎㅎ

각설탕이 이 한잔에 세개가 들어가던가... 근데 위스키도 많이 들어가고 커피도 진해서 엄청나게 단 느낌은 없고 독특한 향이 좋았다. 작년이 딱 카페 설립 100주년이라서 뭔가 큰 행사가 있었다는 것 같았음. 

오전부터 사람들이 드글드글, 우리처럼 바에서 아이리시 커피만 먹는 사람들 말고도 본격 테이블에 앉아 다른 브런치 메뉴 점심 메뉴 시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Posted by 입때
,

제주 풍경

놀잇감 2015. 11. 19. 22:00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봐도 꿈만같다. 특히 요즘처럼 날궂고 흐리고 비오고 기분 꿀꿀한 날에는 더욱 더.

6시면 일어나는 친구덕분에 매일 쇠소깍으로 아침산책을 나갔다. 투명카약 안타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았던 쇠소깍

우도에서 서빈백사해수욕장이 왜 가도가도 안나올까 도무지 의아해하다가 만난 하고수동해수욕장. 서빈백사와 달리 모래가 엄청 곱고, 경사도 완만하고 해녀상도 서있다

이번에도 해변까지 계단을 내려가는 건 시도못했던 검멀레해안. 물보라를 일으키며 홱 도는 모터보트는 보기만해도 ㅎㄷㄷ

드디어 섬을 거의 한바퀴 다 돌고 만난 서빈백사해수욕장의 맑은 바닷물.

성산일출봉 내려오다 만난 예쁜 꽃밭과 절벽. 제주 해변 곳곳에 피어난 저 연보라색꽃 정말 예뻤다

올레길5코스에 해당된다는 남원큰엉의 해안절벽. 리조트 앞마당과 함께 꾸며진 산책로가 퍽이나 예쁘다..

사려니숲길... 단풍을 보려면 1시간 이상 한참 더 무슨 삼거리까지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 짙푸른 삼나무만 실컷 보고 왔다. 첫날 숲터널길에서 본 단풍은 정말 예뻤는데 또 만날 줄 알고 차를 안 세운 것이 뼈아프다.

새별오름의 억새밭. 멀리선 민둥산으로 보여 에게게.. 실망하다 막상 코앞에 가보니 죄다 억새로 뒤덮여 있었다. 오름을 하나라도 구경한 걸로 만족. 새별오름 주차장 한쪽 귀퉁이 트럭에서 꼬치어묵을 사먹었는데... 제주도, 일본 북해도, 부산 여행을 통틀어 사먹은 어묵 가운데 친구는 이날 먹은 어묵이 최고로 맛있었단다. ㅋㅋㅋ

​                                                                                                           2015. 11.1 ~ 11. 3

​​



Posted by 입때
,

해운대 봤다

놀잇감 2009. 8. 17. 20:28

괜한 베스트셀러 기피증과 마찬가지로 요란하게 멀티플렉스를 휩쓸며 천만관객 운운하는 영화 보는 거 별로 안좋아하고 재난영화도 즐기지 않는데, 동행이 꼭 보고싶은 영화라고 해서 그냥 봤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그러나 궁금하기도 했고.
소문처럼 스토리도 괜찮고 만듦새도 그만하면 짱짱하더라. 너무 티나서 눈물겨운 CG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검게 넘실거려 무서운 바다 장면들은 조지 클루니가 나왔던 <퍼펙트스톰> 연상될 정도로 훌륭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거나 가보고 싶어하는 장소이자 TV 뉴스에서도 여름 피서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운대를 배경으로 삼은 건 참 영리한 선택이었다. 나 역시 몇년 전 놀러가 묵었던 동백섬 근처의 콘도 주변과 광안대교, 달맞이 언덕, 유람선 선착장앞 횟집, 방파제를 보며 반색하게 되더라.  

간간이 손발 오그라드는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 마지막 부분은 어째 좀 너무 성의없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감탄스러운 장면들이 꽤 됐고,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좋았다.
난 정말 하지원 이쁜 줄을 모르겠다가 드라마 <황진이> 보면서 탤런트가 아니라 배우로구나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새삼 예쁘게 보이더라. 부산 사투리 때문인가? +_+ 부산 언니들의 <오빠야~> 한 마디에 남자들이 녹아버린다더니만, 하지원은 잘하면 나도 녹이겠다.
개인적인 악연들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들 무작정 별로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설경구라는 배우도 싫어하는데, 여기서는 설경구도 그리 밉상이 아니었고 이민기는 완전 새로운 발견이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랑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이미 귀여움은 발견했어도 연기력이 좀 딸린다 생각했건만 짜식 마이~ 늘었구나 싶어 괜스레 흐뭇했다.  

유머와 감동을 다 잡아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무겁지 않게 간간이 웃겨줘서 좋았고, 진부한 영웅놀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 걸 보니 현실이 그렇다고 나도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재난 앞에선 늘 둘째가라면 서운하다는 듯 열악하고 무식한 대처법으로 일관하며 아깝게 수많은 목숨을 잃고 나서 <예견된 人災>였다고 욕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암튼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이 영화에 나도 관객 숫자를 올렸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하다.
Posted by 입때
,

한풀이

투덜일기 2009. 3. 3. 14:11

설날 이후론 계속 마음이 바빴다. 막다른 벼랑끝에 몰리듯 원고독촉을 받는 상황인데도 내 정신상태는 초절정마감모드로의 전환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잘 지키는 번역가의 평판은 이미 3년전부터 흐지부지 무너져버렸으니 배째라는 고약한 심보가 더 발동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어서 지인들이 만남을 청하면 <어차피 밥은 먹어야하니까...>라는 핑계로 아무 때나 짬을 내 외출을 시도하는 일을 마구 저지를 순 없었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로 이미 미루고 또 미뤄줬던 나의 친교생활은 결국 원고마감과 함께 한풀이를 하듯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개강, 개학이 맞물려 있으니 그 전에 만남과 놀이를 <해치워야>한다는 의무감도 불타올랐다. 신학기의 시작인 3월엔 아무래도 다들 학업이든 작업이든 초심을 잡아야한다는 새해결심 비슷한 다짐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말이다(물론 나는 빼고;;) 

결국 지난주는 월요일부터 꼬박 일주일을 넘겨 다시 월요일까지 단 하루도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무려 점심과 저녁으로 나누어 약속을 두탕(!)씩 뛰어야 했다. 연일 집에 틀어박혀 붙박이처럼 지냈던 저질 체력으론 당연히 무리가 왔다. 여드레 동안, 10명의 친구를 거의 각각 만났고(한 친구는 두번이나!) 조카 입학전에 가기로 약속했던 그림책 전시를 봤고, <워낭소리>와 끝났다고 포기했던 영화 <쌍화점>을 봤고, 그 가운데 생일 모임은 네번이나 되었다. 서대문, 서초동, 강남역, 압구정동, 신촌, 홍대앞, 이태원, 일산, 파주, 광화문, 오이도, 다시 홍대앞까지 마치 홍길동이라도 된 양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녔던 터라 매일 외출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다리허리가 아팠고 연일 기름진 음식을 과식하여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그렇게 매일 거의 대중교통수단으로 돌아다녔으니 억지로라도 운동이 되었을 법도 한데, 어제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오이도에 갔던 게 주효했는지 10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붙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아참... 오이도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조개구이는 역시 을왕리가 훨씬 낫더라. 가격은 비슷해도(새우+조개구이+칼국수 세트 중간크키 = 7만원) 조개와 새우의 양도 작고 일단 양념맛도, 곁다리 반찬도 형편없었다. 고현정과 천정명이 드라마를 찍었다는 원조뚝방집이 그 모양이니 다른 집은 오죽할까 -_-;; 늘 가던 을왕리 조개구이집에선 조개도 막 더 갖다주고, 공짜로 주는 떡볶이랑 파전도, 조개 찍어먹는 양념도 엄청 맛있었는데 속상했다. 바다냄새라도 맡겠다는 원래 목적에도 을왕리쪽이 훨씬 더 낫다. 오이도는 갯벌위로 솟은 둑방길에서 철조망 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밖엔 없지만, 을왕리는 그래뵈도 해수욕장이니 찰랑거리는 바닷물도 직접 신발에 묻힐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노는 게 좋아서 광분했더라도 마감폭풍후의 한풀이는 이쯤에서 한 이틀 맥을 끊어야겠다. 
에구구 삭신이야.
봄맞이 체력강화에 힘쓰려면 어서 자전거에 바람부터 넣어야하는데 에구구 고되다.
간간이 놀아주며 슬슬 다시 초반 작업모드를 가동해야 할 때이지만 지금 생각 같아선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다. 에구구구...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3

여행담 2008. 8. 5. 14:03
셋쨋날(2008. 7. 31)은 드디어 내가 우도에 발을 디디는 날이었기에 더욱 설렜다.
스물한 살 이후 제주도엘 꽤 여러번 가봤지만 우도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수학여행이나 패키지 여행상품엔 우도행이 포함되지 않았었고 나중에 렌터카를 빌려 제주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됐을 땐 늘 날씨가 나빠 배를 탈 수 없거나 시간이 촉박해 매번 우도를 포기해야 했는데
우도에 하필 국내 유일의 산호해변이 있다는 말에 더욱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찬란하다 못해 검은 머리가 지글지글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태양과 새파란 하늘 아래 우도행 배는 더욱 푸른 바닷물을 헤치고 출발했고,
방파제 위에 마주보며 서 있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성산항을 빠져나갔다.



















돌아보니, 일년 중에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절반도 안된다는 한라산이 저 멀리서 우릴 배웅하듯 구름을 이고 서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산항에서 빤히 건네다보이는 우도는 어느새 우리 눈앞에 나타났고 역시나 제일 먼저 빨간 등대가 눈에들어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뒤이어 우릴 반기는 건 검은 바위 해안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갈매기들.
서해안 갈매기는 새우깡에 목을 매고 기를 쓰며 달려드는 데 반해 제주도 갈매기들은 인간들이 귀찮다는 듯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

나름 서둘러 나선다고 생각했지만 우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2시.
가장 뜨겁고 더운 시간에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돌아야 한다니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넉넉하게 마지막 뱃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빌린 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초보자가 어련하겠나. 출발 직후 처음 만난 번잡한 삼거리에서 다가오는 트럭을 피하려던 나는 그만 어이없게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져 시멘트 차단벽에 무릎을 갈았다. 나중에 보니 바지에도 살짝 구멍이 났더군. -_-;;
그나마도 이후엔 피를 보는 사고는 없어 다행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세운 곳은 기대했던 대로, 하얀 산호가 깔린 해변이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다던  서빈백사 해수욕장. 봄에 동생이 사진에 담아왔을 때만 해도 날이 흐리긴 했어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봄 우도에 간 지우











































미세하게 부서진 돌멩이처럼 새하얗고 동글동글한 산호 백사장은 똑같았으나
사람들이 들어가 휘저어 놓은 바다는 해초들이 떠올라 에메랄드빛은 커녕 뿌연 미역국 같았다. +_+

실망을 애써 감추고 다시 해안도로로 페달을 밟으니 드디어 백사장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옥빛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담 앞에서 풀을 뜯고 있는 예쁜 어미말과 새끼말도 만났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다님과 벨로가 실제로 말을 타고 작은 마당을 한바퀴 돌며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벌써부터 기진맥진해진 나는 그늘에서 기력을 회복한 뒤, 근처 정자에서 전날 내기했던 대로 우도반점에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는 잠시 행복해했으나 4시 넘어 늦은 점심을 먹고난 뒤의 체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다행히 우도의 절반은 돌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햇빛은 숨막히게 뜨겁고 어느덧 맞바람까지 치고 있는데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계속해서 일행들보다 최소 50미터는 뒤쳐져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막판 고비인 언덕이 시작되었으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전망대가 있을 법한 우도 꼭대기의 등대 주변에서 잠시 쉴 때는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득하고 혼미했던 나의 정신이 반영된 듯 그 때 찍은 사진은 이렇게 뿌옇다. ㅋㅋ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이미 상당히 얼이 빠져 헉헉대던 나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선 난간 기둥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깜박 잊었다가 나중에 자전거 세워둔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기억해내고 후다닥 다시 가져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만하다.

우도를 자전거로 1시간이면 돌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다.
우리는 서빈백사 해수욕장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나중의 언덕 고비를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반대방향으로 돌았더라면 초반부라 힘이 더 있기는 했겠지만 더 오랜 시간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야했을 터.
중간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한참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중간중간 쉰 시간까지 합해서 꼬박 3시간 반이 걸렸는데, 아마 마지막 배를 놓쳐선 안되며 5시반까지 자전거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나 혼자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아니, 앞으로 다시는 우도를 자전거로 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ㅠ.ㅠ
지난 봄 자동차로 우도를 돌아보았던 막내동생은 내가 이번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일주했다고 하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도 자전거일주는 남들에겐 별것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겐 철인3종경기 못지 않은 레이스였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땐 첫날 느루를 타고 나갔다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지러움증도 느껴졌으므로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사례를 할 터이니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어달라고 부탁을 할까,
트럭을 불러서 자전거를 보낸 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까,
일행들은 먼저 마지막 배로 돌려보낸 뒤 나는 우도에 남아 어디서든 일박을 하고 다음날 합류할까,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결국엔 무거운 몸과 자전거를 이끌고 마지막 언덕을 올랐고
생존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후 우도 항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배에 올라 성산항으로 돌아오던 과정은 과음 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단편적이다. 선실에서 다짜고짜 드러누워 늘어져 있던 모습을 벨로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내 몰골이 얼마나 흉측했는지 몰랐을 듯.


성산항에서 가까운 섭지코지는 일몰이 가까운 시간에 가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유명한 건축물을 보겠다며 일행들은 검은 오솔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우도 이후 체력이 고갈된 나는 뒤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타리 난간에 앉았다가 옆을 돌아보니 섭지코지의 또 다른 등대와 전망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는 시나브로 기울어가는데 일행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광이라 실제보다 어둡게 나와서 그렇지 아직 꽤나 밝았고, 사실은 일행들도 금세 돌아왔음 ^^;;)

섭지코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9시까지 운영한다는 콘도 식당에서
<활어해물탕과 가마솥밥>을 먹을 일념에 열심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어 방에서 사발면, 사발우동 따위로 저녁을 떼워야했지만 별로 배고픈 줄도 모르는 피로 뒤끝이라선지 그것 또한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일행들은 또 다시 마지막 밤까지 포켓볼 열정을 불태우러 나갔지만 나는 홀로 남아 소파에서 뒹굴며 맥주를 홀짝였는데, 당연히 쏟아질 줄 알았던 잠은 놀랍게도 피로에 지친 마지막 밤까지 나를 배신하였으니... 오후 늦게 우도에서 원샷했던 커피 탓을 해보아도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뒤였다. 쓸데없이 예민한 잠버릇은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는지 원...
암튼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밤은 광란의 음주나 유희 없이 소근소근 가벼운 맥주 한잔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2

여행담 2008. 8. 4. 17:10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나에겐 끝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 읽고 리뷰 쓰기를 죽도록 싫어하긴 하지만, 지난 원고를 워낙 늦게 넘겼던 터라 벌 서는 셈치고 출판사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넉넉하게 2, 3주 동안 소설을 한 권 읽고 검토서를 보내달라는 약속날짜가 바로 제주도 출발 직전의 월요일.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원고 마감일에 관한 한 이미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녀가 된 지 오래.
제주도 가기 전에만 보내면 되겠거니 차일피일 미루며 영화보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러 다니며 실컷 놀다간 또 다른 책 역자후기 때문에 일주일 또 낑낑댔으니, 출발일 전날 새벽 3시 반까지 검토서를 정리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책을 싸들고 가자 결심하고 말았다.

겨우 4시간 자고 일어나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밤중에 일행들과 맥주도 한 잔 걸친 셈치고는 새벽까지 꽤나 양호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역시 습성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일행들과의 여행 때문에 소심한 인간답게 퍽 긴장을 했던 모양인데다, 더 늦기 전에 검토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부담없이 놀아야겠다는 욕망이 작용한 듯했다.
해서 모두들 잠든 새벽 (실은 닌텐도 동물의 숲에 심취한 벨로가 게임하는 소리가 딩동딩동 꽤나 오래까지 아어지긴 했지만;;) 게으름녀의 여행 첫날밤은 일과 함께 3시 반이 넘도록 이어졌다. ㅠ.ㅠ
원래 계획은 일을 끝내는 대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서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컴퓨터로 문서를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에 숲속으로 난 꽤 먼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해서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떴다 4시간쯤 토끼잠을 잔 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일행들이 일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심보로 몰래 카드 키를 들고 컴퓨터로 향했으나...

애당초 검토서가 늦어졌던 이유, 출간을 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론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으니
타이핑을 다 끝낸 뒤에도, 결정적인 검토 소견을 마무리하지 못해 전전긍긍 급기야 일행들이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 때까지 2시간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기상청의 날씨예보 어긋나기는 제주도에서도 어김이 없었고
오전오후 비올 확률이 각각 60%나 된다는 예보와 달리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 우린 셋쨋날로 미뤘던 해수욕을 전격적으로 당겨 즐기기로 결정.
미리 수영복을 챙겨입고 놀기 가장 좋다고 벨로가 추천한 협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했고,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제주도 하늘의 구름은 늘 손을 뻗으면 잡힐듯 낮게 깔려 바람따라 떠돌았다.



허나.. 이틀 내리 수면부족에 시달린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리 없으니, 놀랍게도 협재 해수욕장에선 사진을 단 한장도 찍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ㅠ.ㅠ
완만하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옥빛 바다, 그 주변에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의 해안,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초록과 연둣빛 비양도의 모습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가방도 지키고 뙤약볕 아래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볼 요량으로 홀로 남았으나 쓸데 없이 예민한 인간이 그런 해변에서 잠들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지.
더위에 헐떡이다 잠시 바다에 몸을 식혔다가 또 금세 돌아와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벨로는
<애들 노는 거 지키는 엄마 같다>며 정곡을 찔렀다. ^^;
실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암튼 덥고 피곤하고 가방과 돗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냥 심신이 늘어졌던 것 같다.
암튼 경사가 완만해서 서해안처럼 가도가도 물이 얕고 깨끗하고 파도도 적당히 치는 협재 해수욕장은 가족단위로 파도타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었다. 과거에 함덕해수욕장과 하얏트 호텔쪽 중문 해수욕장에서 놀아본 적이 있었는데 중문은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굵어 발바닥이 좀 아팠던 반면, 함덕 해수욕장은 모래가 거의 밀가루 수준으로 곱고 백사장이 넓어 흡족했었는데 제주도에서 해수욕하려면 협재, 함덕처럼 북쪽 해변이 놀기 좋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오후들어 백사장에서 시켜먹은 '주황색' 치킨 한 마리와 미리 싸 간 천도복숭아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주섬주섬 해수욕을 마무리하고 차디찬 물로 바닷물과 모래만 대강 닦은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다들 최대한 여유롭고 헐렁한 일정을 목표로 삼았던 데다 대체로 무얼 하든 다 좋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매번 가장 어려운 점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었던 듯. ^^

바닷가에 가서는 반드시 해산물과 회를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엔 회를 못 먹는 일행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거나한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히 횡포였기에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한 동복리 해녀 잠수촌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 횟집엘 가자고 내가 주장했는데
그리도   푸짐하던 해녀 할머니들의 인심도 성수기 관광철엔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걸 실감하여 마음이 상했다.
4년 전 봄에 갔을 땐 냉장고 대신 바닷가에 담가 놓았던 그물에서 건져올린 해삼과 멍게를 푸짐하게 잘라주고도 무조건 한 접시에 만원이었으며, 삶은 문어와 구운 석화도 대단히 넉넉했었는데 이번엔 아예 석화도 없고 접시는 하나같이 바닥에 깔린 정도.
내 마음도 상했지만, 굳이 해산물 싸게 먹자고 거기까지 데려간 일행들에게 미안해서 더 화가 났다. -_-;;

이어 보성 녹차밭보다 훨씬 더 넓고 볼만하다는 지인의 귀띔을 들었던 터라 오설록 녹차박물관에 가자는 내 의견에 다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예상과 달리 입장료가 없는 건 좋았고 뜻밖에 10년만에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바라본 제주 녹차밭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골이 좁은 밭고랑으로 일일이 사람들이 들어가 차잎을 따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차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비경은 역시 바다와 오름이라는 사실만 백만번 실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퍽이나 부실했던 둘쨋날의 먹거리에 그나마 식탐의 기쁨을 준 건 저녁에 찾아간 유리네 식당의 갈치조림.
늘 관광버스 줄지어 서 있고 왁자지껄 요란하여 순번을 기다리기 일쑤인 그곳에서 우린 운 좋게 가자마자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고 3만5천원에서 전격적으로 값을 내려 3만원(공기밥 값은 따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다들 공기밥을 후딱 비웠다. 딸려나온 게장과 다른 반찬들도 괜찮았는데, 시끄럽고 번잡하긴 해도 제주도 갈치조림은 역시 유리네만큼 맛있는 데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불붙은 포켓볼 열정...
운동신경 젬병인데다 기억력도 나쁜 나는 소싯적에 시도해 본 당구와 포켓볼을 평생 멀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콘도에 마련된 당구 테이블을 발견한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난생 처음 쳐본다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키드님과 지다님, 그리고 다른 데 가서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지만 우리들에겐 완전고수로 보였던 벨로의 내기 본능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시작된 2:2 게임에서 막상막하의 막당구 내공을 보이던 라니와 지다의 하수팀은 결국 우도반점 자장면 내기에서 분패하고야 말았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느라 낑낑거린 나는 이미 두번째 게임 즈음에서 지루해져 하기 싫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낮에 해수욕장에서 비교되었던 파도타기의 열정과 더불어 나의 나이듦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ㅜ.ㅡ
 
어쨌거나 둘쨋날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사실에 마구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2008. 7. 30)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여행담 2008. 8. 4. 15:51
나는 웬만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보다 제주도가 백번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격이면 차라리 외국을 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가격이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라고 추천한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맑은 옥빛 바다와 절경이야 비슷하다 쳐도, 더 가깝지, 훨씬 더 깨끗하지, 더 안전하지, 말 잘 통하지, 직접 운전해 돌아다니든 택시를 부르든 싼값에 맛난 음식 골라먹을 수 있지, <기브 미 원 달라>라고 외치며 쫓아다니는 눈동자 풀린 아이들이나 기념품을 팔려는 가난한 현지인들을 감당할 필요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기 쉽지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대학 수학여행 때 목포에서 배 타고 한 번 가봤는데 ㅠ.ㅠ 8시간이던가 끔찍이도 오래 걸렸던 뱃길로는 두번 다시 제주도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어쩐지 제주도는 내게 늘 동경과 그리움의 장소이건만 이번엔 무려 4년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한성항공은 저가 항공사답게 작고 허름한 비행기로 (내가 싫어하는)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었으나, 기내에서 물 한잔도 안 주더라는 '카더라' 통신과는 달리 주스와 생수는 한잔씩 마시게 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큰 비행기는 게이트에서 곧장 탈 수 있지만 작은 비행기에 배정되었을 땐 공항내 버스를 타고 활주로까지 친히 나가야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게이트에서 다시 버스로 비행기까지 가야하는 건 그러려니 했으나 문제는 비행시간. 예정 시간은 1시간 5분이었지만, 갈 때 올 때 실제 걸린 시간은 각각 1시간 반이었다. -_-;;

째뜬 벨로의 신분증 사건과 예약없이 극성수기에 렌터카 확보하기 과정에서 식겁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으나
모두 극적으로 해결되어 꿈결같은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입때
,

제주도

투덜일기 2008. 4. 24. 17:24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겨우 이틀 반의 자유쯤은 내게 허락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며칠 부쩍 불안해하며 딸이 자길 버리고 도망갈까봐 겁난다며 컴퓨터 방 문도 못닫게 하는 엄마를 동생네 맡기고 떠나겠다는 심보는 원래부터 욕심이었나보다. 묘한 애정의 더듬이 같은 걸 감추고 있는지, 엄마는 내가 매몰차게 홀로서기 준비를 시키면 즉각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구 흔들린다. 지난 달만 해도 며칠 여행 다녀올 테니 동생네 가 계셔도 되겠냐고 하면 얼마든지 혼자 밥 챙겨 먹으며 있을 수 있다고 장담하더니, 요샌 밖에 나갔다가 집앞에 내 차만 없어도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단다. 내가 엄마를 짐스러워한다는 걸 너무 심히 티냈다는 얘기다. 작년까지는 분명 내가 캥거루족이었는데, 이젠 내가 아주 큼지막한 뱃주머니를 매단 엄마 캥거루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엄마 캥거루가 되어야 하는 역전이 싫어서 냉정하게 주기적으로 홀로서는 준비를 시키려는 못된 딸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매일 슬프고 기운 빠지는 이유는 못마땅한 세상 탓도 있지만, 분명 내 삶의 무게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4월에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Posted by 입때
,

경주를 가다

여행담 2008. 1. 28. 17:31
방방곡곡 아직 안 가본 곳이 더 많기는 하지만
경주는 내가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다.
제주나 경주나, 그저 눈길 닿는 곳이면 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라
갈 때마다 그 감흥이 조금씩 달라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달까.

고등학생 때 기차를 타고 처음 찾아가 불국사 근처의 형편없는 여관촌에서 먹고자며
둘러본 경주 수학여행은 '경주'보다 '수학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따위의 기억은 죄다 그 앞에서 60명이 빨간 모자를 똑같이 쓰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남았을 뿐이었고,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서의 경주 느낌 보다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를 구워삶아 객차 불을 끄고는 선생들에게 밀가루와 생닭발을 던진 일,
여관방에서 단체로 몰래 술마시다 뛰쳐나가 주정 부린 친구때문에 모든 것이 발각돼 단체기합을 받던 일,
토함산 일출을 본다며 깜깜한 새벽에  몽둥이 든 양치기에게 몰린 양떼처럼 바삐 산길을 오르다
숨이 딸려 몰래 뒤쳐진 것 뿐인데, 뒤 따라 오는 남학교 학생들과 모종의 접선(?)을 시도하려는 몹쓸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했던 일, 모든 반찬이 비리고 짜기만 해서 너무도 맛 없었던 여관 음식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며 초코파이로 버텼던 일... 등등 주로 사고 치고 즐거워 했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쯤 지나 가을 단풍이 예쁠 때 찾아간 경주는 정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똑같은 자리에서도 나는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운 좋게도 분황사 터에서 만난 어떤 대학원생 덕분이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라던 그는 안내문을 대충 읽고 종알종알 떠들면서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국사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모전석탑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굴러다니는 바위 하나도 예전엔 어느 돌부처의 몸뚱이나 어깨였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말로 어느 마당 한 구석에 절반쯤 파묻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상과 돌부처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이번엔 1월이라 무료 문화재 설명 도우미도 없었고 운 좋게 신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냥 아는 만큼, 모르는 만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어설피 구경한 경주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50년만에 다시 경주를 찾은 엄마와
20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막내, 15년 만인 올케,
10년이 조금 넘은 나, 그리고 난생 처음 경주에 가본 어린 조카의 느낌을 비교하는 묘미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에서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어쩌면 달라진 내 나이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이라면 수학여행 이후 늘 그랬듯 이번 경주여행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Posted by 입때
,

태안반도

하나마나 푸념 2007. 12. 10. 16:36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정민공주가 함께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아마도 큰동생이 결혼한지 얼마 안 돼 정민공주가 올케 뱃속에 있거나 아예 생기기도 전이었을 때의 일인 듯하다.
주말에 우리 집에 다니러 와서 TV로 뉴스를 보던 올케가 돌연 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흑흑 흐느꼈다.
그때 나오고 있던 뉴스는 원유 유출 사고 현장 취재였고
기자가 시커멓게 기름에 쩔은 바다새의 배를 누르자 새 입에서 검은 원유가 울컥울컥 새어나왔다.
올케는 그 모습을 보고 새가 너무 가여워서 "어떡해... 어떡해..."라고만 하며 울었던 터였다.

올케가 워낙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나는 퍽 놀라워하며
죽어간 바다새를 새삼스럽게 안타까이 바라보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새를 무서워하는데다 죽은 새는 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 거기다 끔찍하게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은 모습을 보는 것이 꺼려져 슬쩍 TV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상 최대의 원유유출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매일 접하며
나는 차마 화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 오래 전 눈물 많은 새댁이었던 올케의 모습을 대신 떠올렸다.
방재작업에 나선 사람들과 망연자실한 어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눈물겹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사고로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는 이 상황이 짜증스럽고
속상하다.

태안반도는 내가 태어나 처음 바다를 만난 곳이다.
여덟살 쯤이었던가, 난생처음 바다의 짠물과 결 고운 모래사장과 썰물 때 드넓게 드러나는 신기한 바닥과 굴을 따먹는 재미를 나에게 일깨워준 곳이었던 만리포는 이번 사고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다.
몇년 전까지 여름마다 찾아갔던 한적한 학암포 해수욕장도 역시 태안반도에 있다.
만리포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모래사장으로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면,
학암포는 서해안도 물이 맑아 바닷속이 들여다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해변인데 앞으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덜컥 겁이 난다.
생각해 보니 학암포 해변에 드러누워 바다를 지켜보고 있으면 가끔 놀랍도록 커다란 배가 근해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던 것 같다. 그땐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소품이라 여기며 언짢아 했었는데 그때 그 배도 유조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뉴스에서 매일 떠들어대고는 있지만 나로서는 서해안 생태계에 과연 얼마나 피해가 갈 것인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막연한 공해 걱정과 추억의 장소에 대한 안타까움은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을 피해 어민들의 억울함에
비하면 사치스러운 푸념일 게다.
시커먼 기름이 밀려온 해변을 얼핏 볼 때마다 나도 이렇게 가슴이 막막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
직접 닥친 사람들은 오죽할까.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이런 사건은 제발 안 겪고 살순 없는 걸까.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