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7.06.04 바다 8

바다

삶꾸러미 2007. 6. 4. 02:44
바다를 왜 그리워하는지 도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싶어질 때가 있다.
막상 가보면 또 그렇게 물밀듯 감동이 밀려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머릿속에서 아련히 그리움을 피워올리는 바다에 대한 동경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옆구리를 쿡쿡 쑤신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 살아서 원래 다들 그런 건지 어쩐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인들 가운데선 정말로 불쑥 바다 보러 가자고 들쑤시는 이들이 꽤 되는데
그 주기가 다행히도 내 바다 지병(?)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5월 마지막날엔 바다를 보러 갔었다.
가끔은 철썩거리는 짙푸른 동해 바다를 '콕' 찝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찝질하고 비릿한 바닷내음과 모래사장과 드넓은 수평선과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가까운 서해 바다를 찾을 때도 많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다색도, 모래사장도, 파도의 크기도 거칠고 크고 깊은 동해바다는 늘 도도하게 거기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딱히 반겨주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바라보러만 간 게 아니라 바다에 뛰어들러 간 한 여름에도 동해 바다의 소름끼치는 차가움은 나에게 더 가까이 오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쌀쌀맞은 친구 같다.
새로 뚤린 영동 고속도로 덕분에 시간이 빨라지긴 했어도, 역시나 거리면으로도 동해는 내게 쉬운 범접을 거부하고 있질 않겠나.

어린시절부터 서해바다로 여름 피서를 다녔기 때문에 친근하고 아련한 추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암튼 나는 서해 바다가 훨씬 더 정겹고 편해서 어느 계절에 찾아가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친척 할머니 같다. ^^;;
썰물때 운동장처럼 넓게 드러난 서해 바다의 모래사장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신비의 체험장소이고, 또 아무리 바다로 걸어나가도 허벅지 깊이를 넘기기가 어려운 서해 바다에선 물도 워낙 따뜻해서 서툴게나마 수영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를 넘어 나에겐 일석 오조쯤 되는 듯하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지리적으로 서쪽인 우리집에선 몹시 가깝기도 하니까!

하여간 바다 지병이 도진 지인들과 아침부터 서둘러선
커피와 쿠키, 과일 정도만 조촐하게 싸가지고 영종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의도와 을왕리엘 다녀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배도 타야하는 무의도엔 '하나개' 해수욕장이라는 예쁜 해변이 있다.
대체 왜 이름이 '하나개'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엔 동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곳에 꽤 '위험한' 개울이 하나 바다로 흘러들었단다. 그래서 '하나개' 해수욕장이 됐다는데
우린 좀 더 그럴듯한 전설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 실망이었다. ^^
세련되게 가꾸어진 곳도 아니고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꽤 알려지긴 했다더라) 편의시설이 많지도 않지만, 돗자리 하나 그늘막 하나 싣고 떠나서 바닷가에 누워 한가로이 수다떨다 보면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든다.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건너갈 때 자동차는 뱃삯이 무려 2만원이나 하고 운전수 뺀 나머지 인원도 두당 2천원씩 더 내야 하는데도, 일년 내내 해변 입장료를 두당 2천원씩이나 받아서 좀 얄밉긴 하다;;)

때 이른 피서라기 보다는 그저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멀리까지 빠져나간 썰물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다를 만나러 나가보니 물이 너무 따뜻해서 첨벙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로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은빛 비늘 일렁이는 바다를 실컷 보고 돌아오며 '지병'을 다독거린 우리 넷은 행복하게 또 몇달 살아갈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꼭 바다를 보고와야만  충전되는 에너지 저장소가 내 몸안 어딘가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