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다'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8.03 방심 10
  2. 2010.07.30 재산세 1
  3. 2010.06.04 왜 키울까 18
  4. 2010.05.18 투덜이 시궁창에 빠진 날 7
  5. 2010.05.16 세탁소 쌈닭 13
  6. 2009.11.05 축의금 12
  7. 2009.03.18 뻔한 후회 19
  8. 2008.12.15 편애 22

방심

투덜일기 2010. 8. 3. 00:47

벌레를 못 견뎌하는 편이라 날아다니는 모기가 한 마리라도 눈에 띄면 반드시 퇴치를 해야 안심하고 하던 일을 할 수가 있는 성격인데, 놀랍게도 올 여름엔 계속 모기가 별로 눈에 띄질 않았었다. 두어 주 전에 조카들 놀러왔을 때 비가 내리면 모기가 없을 줄 알고(어딘가 숨어 있다가 오히려 문이 열린 틈을 타 재빨리 실내로 숨어든단다!) 현관문을 좀 오래 열어두는 바람에 엉뚱한 객들이 모기에 뜯기는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나는 지긋지긋한 모기 물림에서 퍽 자유로웠고 당연히 방심을 하고 말았다.
초여름에 모기 매트를 꺼내놓긴 했으되 켜고 잔 날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그만 7월 마지막 날을 보내며 보란듯이 여덟군데를 한꺼번에 물리고야 말았다. 긁적긁적 잠에서 깨어나 집중적으로 두 다리에 발긋발긋 흔적을 남긴 모기의 흡혈 자국을 보며 느꼈던 자괴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밤새 일하면서 모기 날아다니는 꼴을 전혀 못봤는데 대체 아침까지 어디 숨어 있다가 단체로 날아와 흡혈 잔치를 벌였단 말인가! 모기가 야행성이란 건 어디까지나 옛날 얘기고, 우리 집에 숨어든 모기들은 주인이 밤새 안 자고 있다는 걸 이미 간파해 오전중에 활동을 개시하는 모양이다.
모기에 물리더라도 사람마다 수월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하게 부풀어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쪽이다. 전혀 긁지 않고 모기약만 발랐는데도 하필 장단지와 발목을 공략당하는 바람에 걸을 때마다 긁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겨났는지 자국은 점점 크게 분홍색으로 부풀더니 현재는 아예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빨간색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악! 이렇게 되는 경우 십중팔구 모기 물린 자국은 가을을 넘기고도 거무스름한 흔적을 남기기 십상이다. 얼마나 독한 모기한테 물렸기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수시로 모기약을 뿌려대고 문득문득 혹시 날아다니는 모기는 없는지 살피고는 있지만 남은 여름 내내 다시 지긋지긋한 모기와 사투를 벌일 생각을 하니 한숨이 다 나온다. 여행갈 때 써먹으려고 사놓은 (작년에 사서 결국엔 개봉도 하지 않았다. ㅠ.ㅠ)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여름 내내 뿌리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원, 미칠 듯한 가려움증이 되살아 날 때마다 모기에 대한 혐오감으로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 아 정말 모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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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세

투덜일기 2010. 7. 30. 14:20

나는 다달이 우편으로 날아오는 각종 공과금 청구서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자원절약의 차원에서 각 회사별로 인터넷 청구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마치 빚독촉처럼 날아오는 청구서를 우편함에서 꺼내는 열어보는 것도 귀찮고 열어보고 난 청구서와 봉투를 처리하기도 짜증스러워 웬만한 청구서는 죄다 이메일 청구로 돌려놓은지 오래다. 신용카드, 의료보험, 국민연금, 각종 전화요금, 전기요금, 케이블 요금... 매달 이메일로 날아오는 청구서도 열어보기 짜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훨씬 덜 번거롭고 웬만한 건 죄다 자동이체 신청을 해두었으니 더는 깊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다달이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메일 청구를 신청해놓았는데도 굳이 우편 청구서가 이중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동차세와 재산세다. 월초에 이메일로 재산세 청구서를 받고는 왠지 얄미워서 최대한 미루다 마지막날 즈음에 내야지 결심하고 있었더니 엄마 명의로 된 재산세 청구 우편물과 함께 내 청구서도 동시에 도착했다. 아 또 뭐야! 에너지 낭비를 막자더니만 왜 이중으로 보내고 지랄! 그러더니 지난주엔 '재발송'이라면서 이메일로 재산세 청구서가 또 와 있었다. 전기요금 청구 메일이 와도 안열어보고 있으면 수신확인을 감지하는지 종종 재발송 메일이 날아오던데, 이번엔 메일을 읽었는데도 또 보낸 걸 보면 중간 세금 납부 집계를 해서 아직 안낸 사람들에게 재발송을 했다는 뜻일까? 아니 왜???? 연체시킨 것도 아니고 납부일이 남았잖아! 잘 하던 짓도 누가 시키면 삐딱해지는 내 성깔을 건드린 것 같아서 가뜩이나 기분이 나빠지려는 참인데, 그제는 급기야 빚독촉하듯이 재산세 마감일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서울시 재산세 납부마감일 8월 2일까지!! etax.seoul.go.kr에서 조회납부 가능합니다.

아으!!! 결론은 하나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들이 채권자라고 생각하고 국민과 시민을 채무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왜 네 번이나 빚독촉을 하겠나! 성질 같아선 8월 2일까지 최대한 개기다가 인터넷 납부 마감시간에 내주고 싶었지만, 마지막날은 접속도 원할하질 않고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또 독촉메일이나 문자가 날아오면 더욱 짜증이 날 것 같아서 조금 전 그냥 '내주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결국 칼자루를 쥔 저들의 음모대로 고스란히 억지춤을 춰준 꼴이 아니고 뭔가. 아무리 세금납부가 국민의 기본 의무라지만, 정부는 국민을 돌봐야 하는 기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빚독촉만 해대는 꼬라지에 정말 울화가 치민다. 내가 낸 세금으로 또 쓸데없이 애먼 삽질이나 해댈 거잖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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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키울까

투덜일기 2010. 6. 4. 14:54

제가 이웃들간 불화의 주인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놈이 모르고 있다는 데 7만원도 걸 수 있다!) 아래층 똥개(잡종견이라고 썼다가 어쩐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은 어감이 들어 배알이 틀리는 바람에 바꿨다. 역시 한글이 좋은것이로다)의 목청은 요즘도 나날이 커져 밤중에 마음의 준비 없이 개짖는 소리와 맞닥뜨렸다가는 기절초풍할 수준에 도달했다.

<개가 짖으라고 있는 것이지 안 짖으면 그게 개냐>는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의 궤변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을 수가 있었기에 (물론 나한테 직접 한 얘기는 아니다.) 이웃간의 긴장감이 완전 살얼음판이라, 개주인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아예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한다. 어제도 종일 개짖는 소리가 없길래 집안에 들여놓는 날인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오다 커렁커렁 짖어대는 소리에 발목를 삐끗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락 화가 치밀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동시에 아래층 오른쪽 집과 옆집 2층에서 동시에 내가 하려던 개에 관한 욕설이 터져나왔고 나는 혹시나 쌈박질에 휘말릴까 두려워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다행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몇 초 안에 개짖는 소리가 잦아들었으므로 또 한번의 동네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짖는 소리도 스트레스지만 이제는 그 소리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다. 처음엔 내 대신 이웃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금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든지, 목청수술을 시키든지, 다른데서 키우라고 주어버리든지,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경우 수였고 이왕이면 맨 마지막 옵션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똥개마저도 어여쁘다 여기고 있는 정민공주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래층 개주인들은 다른 방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란다(아래층 아저씨는 자주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공주가 여기 상주하는 줄 아는지, 심부름 가는 아이를 붙들고 사연을 전했단다). 이름하여 전기충격 목줄? 개가 짖으면 진동으로 목줄이 조여져 짖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라던데 정말로 그런 게 있나? +_+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또 한번 기가 막혔다. 그런 목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 개주인은 정말로 그 똥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키우는 걸까? 물론 개의 성대를 잘라내 짖는 소리를 줄이는 것도 비인간(비동물?)적인 방법이겠지만, 짖을 때마다 전기고문을 받듯이 충격을 받아야 하는 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목줄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도 있다는 뜻이니, 개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겪을만한 수준이라 여길 순 있겠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크게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 아니라면야, 아무리 훈련목적이라도 예뻐서 데리고 사는 개에게 어떻게 전기충격기를 목에 매달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 주변의 개들이 죄다 수난기인지, 조카네서 키우는 파랑이도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그 녀석은 정말로 식구들의 애정을 꽤나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변 교육이 제대로 안된 탓에 식구들 침대마다 죄다 돌아가며 한두번 이상 똥오줌을 싸놓았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걔가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애정 결핍인가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똑똑해보이는 녀석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볼 것을 당부했었지만 조카네도 거의 포기단계다. 정말로 온종일 홀로 애정을 쏟으며 다시 배변훈련을 시켜줄 주인에게나 가면 모를까, 장난꾸러니 사내아이까지 있고 다들 바빠 집을 많이 비워야 하는 조카네선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개가 예뻐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가며 온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빨아대야 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온전히 파랑이를 예뻐하는 사람은 올케와 정민이뿐이고(정민이도 최근엔 무관심하다고;;), 두 남자는 애완견을 장난감이나 스트레스 해소대상으로 여기는 징후가 포착돼 내가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나야 애완동물을 영원히 키울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동물 혐오증이 사라질 기미도 없지만, 최소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나 지환이가 파랑이를 예뻐하는 방식은 파랑이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성가신 행동들로 보였고, 그런 부분들이 파랑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배변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애정결핍이나 귀찮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 주인한테서 떨려난 이유도 배변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일 거라고 동생네는 주장하고 있다. 처음 와서부터 사방에 실수를 해댔다니까 뭐;;;)

동생네의 경우 어린 지환이는 애완견을 장난감 수준으로 생각했던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네 식구가 온 마음으로 개를 키우고 싶어했고 그 열망을 현실로 이룬 집이었다. 정민이는 특히나 아기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했고, 미혼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는 올케도 반려동물을 두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와 집안 분위기에 좋을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나를 설득하려 했으며, 내가 반대를 하든 말든 개를 들이는 일을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일년도 안 돼 애완견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랑이가 좀 더 똘똘해 배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개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 주부가 애완견까지 도맡아 키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테고 결론적으로는 섣불리 애완견을 들인 동생네가 경솔했다는 의미다. 경솔한 인간의 결정으로 제일 불쌍해진 건 물론 또 새주인을 만나 다시 적응과정을 거쳐야하는 파랑이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개의 마음까지 간파할 리는 없으니 억측은 이쯤에서 관두더라도, 암튼 내 주변의 개 두 마리는 현재의 주인을 떠나야 행복할 것 같다. 걸핏하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가 전기충격 목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주택에서 그것도 마당에 개를 키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짖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도 다 인간에게 있는데 (똥개 머리가 너무 나쁜 이유도 있겠지만;;) 개를 괴롭히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선택된다는 건 잔혹해 보인다. 또한 파랑이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살지 않으려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앞날이 편할 것이다. 말썽쟁이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개과천선한다니 파랑이도 미모를 무기로 어서 좋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손해보는 건 늘 죄없는 짐승들인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화난다. 이럴 걸 도대체 왜들 키우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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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시궁창에 빠진 건 아니지만 빠진 거나 다름 없다.
조금 전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카 배웅하러 버스정류장에 나가 버스를 기다리며 둘이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미친듯이 달려오던 작은 트럭 하나가 도로에 고여 있던 구정물을 나에게 끼얹고는 그대로 달아났다. ㅠ.ㅠ
비오는 날 인도로 물 튀기는 자동차야 가끔 있는 법이라 대강은 예상하고 우산으로 가로막은 적 있지만
우산을 내려 가릴 사이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궁창물을 끼얹고 가는 차는 살다살다 처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온몸으로 구정물을 막는 바람에 정민공주는 무사했다는 것 하나.

너무 놀라고 기막혀서 꺅 비명만 내질렀을 뿐, 빌어먹을 트럭의 번호판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놈이 속도를 늦췄더라도 안경까지 구정물로 뿌얘졌으니 제대로 분간이나 할 수 있었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비오는 날 행인에게 물 튀기는 건 엄연히 범법행위인데 현행범으로 잡지 못한 게 죽도록 안타깝다! 바로 횡단보도 앞이라 운이 좋았더라면 신호등에 걸린 놈의 앞길을 막아서서 사과와 함께 세탁비를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실제로 십수년 전 장마철에 회사 동료들과 점심먹으러 가다 지나가는 차가 튀긴 흙탕물 뒤집어 쓰고 세탁비 받은 적 있다)

머리칼에서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고, 웃도리 아랫도리 할 것 없이 흠씬 젖어 신발 속에도 물이 찔꺽거리는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기가 막혀서 길바닥에 선 것도 잊은 채 막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래도 의연한 척 조카를 버스에 태워 보낸 다음 징징거리며 집에 올라오자마자 빡빡 씻었는데도 어쩐지 온 세상의 더러움과 먼지와 병균이 고여있었을 것 같은 도로의 시궁창물 때문에 조만간 피부라도 부풀어오를 것 같은 불쾌감이 사라지질 않는다.

시궁창에 빠졌다가 기어나온 것 같은 행색의 옷은 세탁기에 돌리는 중이고, 운동화도 빨아 엎어놓았는데 생각은 자꾸만 그 소형트럭으로 향한다. 알고 튀겼든 모르고 튀겼든, 비오는 날 버스정류장 앞을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만행을 저지른 그 놈에게 저주 있으라! 앞으로 오만년간 하는 일마다 재수 없을지어다! 다음번 장대비 오는 날 똑같이 시궁창물에 빠질 지어다! ㅠ.ㅠ 그래도 마음이 안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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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쌈닭

투덜일기 2010. 5. 16. 14:55

이 동네로 이사온 뒤 20년 넘게 단골로 다니던 세탁소를 등지게 된 건 작년이었다. 원래 세탁소 주인 아저씨가 말이 워낙 많고 수다스러워서 나로선 상대하기 좀 짜증났지만 세탁이나 수선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좁아터진 옷장 대신 철지난 옷을 대신 맡아주는 장기 보관소 역할도 오래 해왔고(봄에 겨울 옷 맡겨놓고 잊고 있다가 날씨 추워지면 찾아오는 식) 세탁물 다 되면 알아서 배달도 해주었으므로 작년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단골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사건은 왕비마마의 바지 허리를 줄이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재작년에 심하게 몸이 불어 바지를 새로 사야했던 왕비마마는 1년뒤 허리가 원래 사이즈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바지를 줄여 입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나는 우선 왕비마마 바지 한벌을 세탁소에 맡기고는 허리를 1인치만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찾아온 바지를 입어본 엄마는 바지를 덜 줄였나 아직도 허리가 크다고 불평을 했다. 잘 맞는 바지 허리폭과 맞춰보고 1인치 줄이기를 결정한 터라 그 바지에 대보니 정말로 그대로였다. 그럼 대체 어디를 줄이고 수선비를 받은 건가 살펴본 나는 기막히게도 바지 단을 1인치 잘라놓은 걸 발견했다.

나는 즉각 세탁소로 가서 바지 허리를 줄여달랬더니 왜 단을 잘랐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가뜩이나 말 많은 세탁소 아저씨는 펄쩍 뛰며 속사포처럼 내가 바지단 줄여달랬지 언제 허리 줄여달라고 했느냐며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웠다. 기.가.막.혀.서.원. 애당초 내가 엄마 바지를 내밀며 허리를 줄여달라고 했을 때, 그 수다쟁이 아저씨가 묵묵히 그러마고 일감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바지 허리를 1인치나 줄이는 걸 보니 어머니가 살이 빠지셨나 보네. 운동이라도 하셨나 왜 살이 빠지셨을까, 하기야 저 아래 개천에 산책로 참 잘 만들어 놨죠? 나도 시간 나는대로 개천가서 운동하는데 왜 살이 안빠지나 몰라... 아가씨도 거기 가서 운동 좀 해요? 운동기구 잘 많들어 놨던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계속 말을 시키는 바람에 난 한참이나 귀를 닫고 있다가 마지막에 얼마인지 수선비만 묻고 돌아왔던 터였다.
그래놓고 내가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했다니! 내가 저런 이야기까지 하지 않았으냐며 정황을 설명해도 세탁소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내 잘못임을 주장했다.

다음날 득달같이 다시 수선한 엄마 바지를 배달온 아저씨는 자기는 절대로 잘못 듣지 않았으며 분명히 따님이 바지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을 했기 때문에 두번이나 수선을 했지만, 단골이고 하니까 수선비는 한번만 받겠다고 잔뜩 생색을 내며 거의 20분이나 떠들다가 돌아갔다고 했다. 마침 외출을 해 집에 없었던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따발총처럼 쏟아대는 아저씨의 수다와 주장에 엄마마저도 "혹시 니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잖아..."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리 내 정신머리가 없을망정 허리 줄이러 가서 단을 줄여달라고 한단 말인가! 그럼 엄마 살빠졌나 보다는 얘기는 뭐고, 개천변에서 운동하는 얘기는 왜 나왔느냐고!

세탁물 맡기러 갈 때마다, 그리고 세탁물을 배달 올 때마다 뭐든 순순히 넘어가는 일 없이 시시콜콜 오만가지 이야기를 죄다 끌어붙여 수다를 떨어대며 내 시간을 축내온 S세탁소 아저씨에 대한 인내심은 그날로 끝장이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으니 어쨌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비쳤다면 나도 그냥 넘어갔겠지만, 그 아저씨는 자기 세탁인생 30년을 운운하며 그간 그런 터무니 없는 실수는 절대 한 적 없다고, 전적으로 내가 단을 줄여달라고 잘못 말했기 때문에 단을 줄인 것 뿐이라고 우기며, 나를 정신나간년으로 만드는데야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마침 작년에 원래 있던 S세탁소 건너편에 새로이 세탁소가 생겼던 터라 나로선 아쉬울 것도 전혀 없었다. 20년 단골 하나 잃어서 아쉬운 건 세탁소 아저씨 쪽일 거라 여기며(하기야 그쪽도 별로 아쉬울 게 없을 지도...) 보란 듯이 새 세탁소를 이용하고 있었다. 헌데 동네 세탁소는 세탁이 전문이고 원래 수선 쪽은 약하기 마련임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ㅎ세탁소는 수선솜씨가 너무 형편 없는 것이 문제였다. 단신의 비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바지를 살 때마다 수선해서 입어야 하는 것인데, 백화점 같은 데서야 옷을 산 데서 바로 수선을 해주니 문제 없지만 충동구매로 사들인 바지 같은 경우 이 세탁소에 맡기면 내 성에 안차게 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봉선이 비뚤어진 것도 불만이지만 가장 큰 불만은 실 색깔! 수선도 하는 세탁소라면 최대한 다양한 재봉실을 갖춰놓아야 정석일 텐데 면바지든 청바지든 어쩜 그렇게 엉뚱한 색깔로 박아놓는지.. ㅠ.ㅠ

해서 요번에 산 청바지는 기필코 밑단의 예쁜 물빠짐 모양과 실색깔을 살려두겠다 다짐하며, 백화점 수선집에서 해주는 대로 밑단을 잘라 그대로 올려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해달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며, 가능한지부터 물었다. 별 말이 없는 과묵한 스타일이라 그나마 시끄럽지 않아 좋았던 세탁소 아저씨는 "밑단을 살려달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흔쾌히 대답하여, 나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어제 청바지를 찾으러 가보니, 세상에나! 차라리 밑단을 그냥 잘라 접어 박은 거면 실 색깔이 달라도 투박하지나 않을 텐데, 이 아저씨는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건지 청바지 단에 억지로 바이어스를 두르듯 싸박아 놓은 게 아닌가. ㅠ.ㅠ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나 하지!!!!

바지 완전히 버려놨다고 울상을 하며 경악하던 나는 집에 올라와서도 도저히 울화를 그냥 참을 수가 없어서 (아까운 내 청바지! 그게 얼마짜린데!) 다시 세탁소로 내려가 다른 수선집에 맡겨 살려보게 잘라버린 밑단이라도 내놓으라며, 화를 냈다. 청바지 잘라 밑단 올려붙이는 거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안다고 그랬느냐고. 그랬더니 이 아저씨 완전 적반하장, 자긴 아무 잘못이 없단다. 밑단 살려달래서 살려놨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잘라낸 청바지 밑단도 버리고 없단다. 어제는 토요일. 우리 동네 쓰레기 배출일은 화/목/일. 내가 그걸 놓칠 리 없으니 버렸을 리 없다고 따지자, 밑단 박음을 풀러서 그걸 잘라다가 씌워 박은 거라고 실토했다. 악! ㅠ.ㅠ

애당초 샘플 청바지를 가지고 내려가서 실제로 보여주며 설명을 했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선하는 세탁소에서 어떻게 청바지 밑단 줄이는 방법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예전 세탁소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이 아저씨 역시 미안하단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전적으로 내 잘못(그렇게 잘났으면 옷 산데 가서 수선받지 왜 세탁소에 맡기느냐! 청바지 자르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다르다고 따지냐! 등등)이라며 계속 자기 잘못 없음을 주장하더니 막판엔 억울하면 손해배상청구라도 하란다. +_+ 기.가.막.혀.서.원.

결국 동네 세탁소 두 군데서 정신나간 쌈닭으로 활약하고 열만 받았다는 얘기다. 아주 못입게 된 건 아니지만 심혈을 기울여 오래 고른 청바지를 (포인트랑 쿠폰 쓰느라고 백화점에 가서 입어보고 스타일번호 적어다가 온라인으로 샀단 말이닷! ㅠㅠ) 망쳤다는 상심에 어젠 너무 열이 받아 아무 생각도 안들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궁금한 게 생겼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들만 우연의 일치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세탁업 특성상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 배상액이 커질 수 있어 전체적으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관행일까? 흠... 아마도 내가 이래서 자꾸 수선집에 보낼 일을 손수 바느질하고 앉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옷 수선은 내가 할 수 없는 건 반드시 전문 수선집에 맡길 작정이고, 세탁물은 길 건너편 옆동네 세탁소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 동네 (거의) 토박이로서 동네 세탁소 두 아저씨들 실력없고 이상하다고 소문내고 다녀서 복수할 거닷!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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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투덜일기 2009. 11. 5. 14:55

이번주말에 이틀에 걸쳐 축의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토요일은 돌잔치, 일요일은 결혼식.
원래 나는 주변인들의 대소사에 무조건 참석하는 편이었다. 좋은일이든 궂은일이든, 무얼 받을 걸 계산하고 미리 밑밥을 뿌린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다 보면 생일 같은 날을 챙기는 각별한 사이도 있고 <그냥 아는> 사이로 수년을 이어가다 스르르 잊혀지는 사이도 있기 마련인데, 내가 얼만큼 주었으니 또 얼만큼 받아야겠다는 계산이 깔린 관계만큼 서글픈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냥 문득 생각나고 뜻깊은 날엔 뭘 좀 챙겨주고 싶고 기쁜 일 있다면 달려가 축하해주고 슬픈 일엔 위로해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관계와 그런 감정적, 경제적 소모행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관계로 칼같이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받을 정도로 상대에게 비중있는 존재로 여겨졌다면 무조건 참석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던 과거의 나와 달리 요샌 뜬금없이 날아드는 <축의금 독촉장>이 괘씸해 버럭 화를 내는 일이 더러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번 토요일 대낮에 열리는 돌잔치를 갈까말까 고민하는 이유는, 장소가 워낙 멀고(분당선 종점이다) 혼자 가야한다는 것 때문인데 만약 장소가 강남쯤만 됐더라도 이렇게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요번이 셋째인데 내가 학수고대했던 대로 공주님(!)이고, 위로 둔 두 아들 녀석도 나를 <고모>라고 부르며 함께 노는 걸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얼마 전엔 용인까지 가서 온 가족과 놀다 올 정도이니, 말로는 고민한다고 해도 갈 확률이 80%는 되는 듯하다. 요번에 돌을 맞은 아기공주가 태어났을 때 또 아들이면 아들 셋을 키워야하는지라 모두들 조마조마했었는데 딸이 태어나 나까지도 얼마나 기쁘던지, 그간 못해본 한풀이를 하듯 예쁜 여자아기옷을 사들여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나의 지인은 엄마 쪽이 아니라 아빠쪽임에도. 이번 토요일에 혹시라도 돌잔치에 못가게 된다면 난 아마 미안함까지 겹쳐 대신 백화점에 쪼르르 달려가 돌잔치 주인공 선물은 물론이고 그 오빠들의 선물까지 사야한다며 객기를 부릴지 모른다. 차라리 멀고 외로워도 돌잔치에 참석하는 것이 빈약한 내 주머니를 위해선 이로울 듯;; -_-

하지만 이번 일요일에 결혼식을 맞는 지인을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결혼식장이 부산이라 당연히 갈 생각은 없었지만, 아마 서울에서 식을 올렸더라도 나는 누구에겐가 마뜩찮은 축의금을 들려보냈을 거라 여길 정도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한 희망은 전무하다. 별로 기대할 것 없는 인물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요번 결혼식을 앞둔 그녀의 행태를 보니 참 이기적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결혼식장이 부산이면 초대하는 쪽에서 교통편을 마련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 부산 결혼식에 두세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매번 나는 새마을호(그땐 KTX가 없었다) 왕복표는 물론이고 두번은 호텔까지 잡아주어 전날 내려가거나 결혼식 당일날 신랑신부와 뒤풀이를 거나하게 한 뒤 아침에 다시 만나 해장국을 먹고 작별해 올라온 적도 있었다. 경상도 어드메쯤에서 있던 결혼식에 갔을 땐 아침 일찍 주최측이 마련한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우리들에게 신랑신부는 관광버스에 올라와 막무가내로 하얀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너무 멀리 오시게 해 죄송하다면서 올라가다 휴게소에서 군것질이라도 하시라는 의미라고 했다. 감격한 우리는 그 돈을 모아 간직했다가 나중에 집들이 선물 사이에 용돈으로 끼워주었고, 축의금도 주말 하루를 온통 소모한 시간도 아까운 줄을 몰랐었다.

헌데 이번 일요일 결혼식은 정말 축의금이 아깝다. 돌려받을 가능성이야 원래부터 염두에 없었으니 다 괘씸죄 때문이다. 그렇게도 최측근이며 절친임을 자랑하던 친구들에게도 그녀는 교통편을 마련해주지 않았단다. 오히려 친한 사이니까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되지 않느냐는 식인 모양이다. 물론 지기의 경우라면 나 또한 내돈들여서라도 축하해주러 달려갈 용의가 있을 것도 같다. 간 김에 부산구경이나 하자, 그러면서 들뜬 여행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초대할 때부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이 돈독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축의금을 들려 보내려고 내가 아는 그녀의 측근들을 접촉해보니, 그들 역시 마음이 몹시 상해 자기네도 갈지 말지 모르니, 축의금을 보내려거든 본인 계좌로 보내라고 권했다. 최측근에게도 <일단 부산에 내려오면 좀 보태주든지 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니 대체 결혼식을 앞둔 신부로서 진정한 축복을 받고 싶기는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혹시나 정말로 꿩먹고 알먹고, 호텔 밥값은 줄이고 축의금만 낼름 받아 챙기려는 이기심의 발로는 아닌가 하는 쪽으로 심증이 굳어지는 중이다.
어쨌거나 이번 결혼식 이후로 다시는 연락올  가능성이 없음을 간파한 나는  <옛다, 먹고 떨어져라>하는 심정으로 축의금을 보내기 위하여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축의금 전달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 하니 민망하지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이런 답장이 왔다.
<언니.. 민망해하지 마세요! 계좌로 마니들보내셨어요..ㅋ저도첨엔참민망했는데..^^>
다음 메시지엔 당당히 계좌번호가 날아왔다.
생각해보니 축의금을 신랑신부 본인의 계좌로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_+
작년엔가 울산에서 결혼한 후배의 경우엔, 본인이 싫다는 걸 억지로 주소를 물어 우편환을 보내긴 했었다. 직접 가보지 못하는 대신 미안함과 축하의 말을 담은 카드를 써서 우체국에 가 전신환으로 바꾼 종이를 넣고는 등기로 부쳐야 했는데, 그런 잠깐의 수고도 거치지 않은 <인터넷 축의금 송금>이라니 정나미가 뚝뚝 떨어진다. 일생일대의 대사를 앞둔 신부로서 그렇게라도 축의금을 챙기고 싶었을까?

그렇게 찝찝하고 불쾌한 관계라면 축의금도 보내지 말고 무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이것으로 완전히 청산될 관계라면 내쪽에서 조금도 찜찜하지 않게 개운한 마음으로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전 인터넷 송금하며 괘씸하고 불쾌했던 마음도 진정이 되는 것 같다. OO야, 소원대로 X사 부인 되었으니 잘 먹고 잘 살렴. 앞으로 다시는 우리 서로 연락하지 말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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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후회

투덜일기 2009. 3. 18. 12:42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 저지르고 난 뒤 하는 후회는 특히 스스로에게 민망하다.
가령, 과음을 하면 다음날 숙취 때문에 괴롭다든지
커피를 제 시간에 안 마시면 두통에 시달린다든지
여유로울 땐 일감을 계속 미루다 발등에 떨어진 뒤에 헐떡거린다든지
레드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빠개진다든지
라면을 밤참으로 먹고 자면 팅팅 붓는다든지...

어젯밤엔 후회할 게 뻔한 일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저질렀나보다.
일은 하기 싫었고 괜히 무료했고 배는 고팠고 그래서 TV를 틀어놓고는 자정 넘어 라면을 먹었는데 하필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올 게 뭐람. 여세를 몰아 라면으로 텁텁해진 입을 와인 한잔으로 헹구며 기분낼 때까지는 좋았는데, 한잔 정도로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 웬걸.
머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누워서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라면국물도 안 마셨는데 잠까지 못잤으니 얼굴은 팅팅 붓고 머리는 빠개져 카페인으로 살살 두통을 달래고는 있으나 아직 진정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의 기쁨과 이어지는 후회의 관계는
비록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긴 해도
결국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몽매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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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

삶꾸러미 2008. 12. 15. 20:47

편견, 편단(공정하지 못하고 편벽되게 결정함), 편벽(남에게 알랑거리며 그 비위를 잘 맞추는 일, 또는 그런 사람), 편법, 편식, 편심, 편애, 편파, 편취, 편협.

<편>자 들어간 글자 치고 잘한 일은 하나도 없다.
특히 편애는 나쁘다.
원래 공평무사한 인간이 극히 드물다는 점을 구실로 삼더라도 편파적이면서 잘했노라고 말할 순 없는 일이다.

어제 카니발 콘서트에서도 그랬다.
나는 표나게 김동률을 더 좋아했다. 이적 노래는 몇 곡 아는 것도 없었다.
같이 간 지인은 너무 편애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지러지는 비명은 당연히 김동률만을 향한 것이었다.
물론 이적에게도 환호하고 박수도 쳐주었지만 내가 느끼는 감동은 달랐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사람은 이적이 노래를 부를 때 훨씬 더 열광했고 내가 모르는 노래들도 척척 따라불렀다. 반면에 김동률이 노래할 때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정확히 나눌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을 공히 좋아하는 이들과, 따로따로 편애하는 이들이 뒤섞여 있었으니 아무도 마음 다치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다치는 이들이 생겨나는 편애는 정말이지 곤란하다.
오래 전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확실히 나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냥 예쁜 아이들은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잘하거나 모범생이어서 예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 눈엔 심하게 잘나고 스스로의 잘남을 깨닫고 있는 우등생이나 상위권 학생들은 주는 것 없이 얄미울 때가 많았다. 성격이나 성적이 어떤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눈빛과 태도로 전달되는 맑은 심성 때문에 정이 가거나, 어딘가 측은함이 느껴지는 아이에게로 애정이 쏠렸다. 그러나 교사는, 특히 담임은 누구를 편애하는지 드러내서는 안된다. 누구나 고유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대중가수와 달리, 아이들에겐 담임선생이 단 한명 뿐이니까.
편애를 받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왕따가 되기 십상이고, 편애의 좁은 관계망에서 벗어난 대다수의 아이들은 어린 마음을 다칠지도 모른다.

매사에 잘난 척도 더럽게 많이 하면서 제 앞가림을 못하는 건 나의 가장 큰 단점임을 새삼, 그것도 옆구리를 세게 찔리고 나서야 깨닫고 속이 상해 밤새 가슴을 쳤다. 
사탕발림처럼 얄팍한 사랑을  덧칠하며 꽂는 비수는 더욱 아픈 법이거늘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한 죄는 너무도 크다.
온종일 자학, 반성모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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