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2.01.14 올 첫 그림 구경 5
  2. 2011.12.26 고흐가 알면 13
  3. 2011.06.22 오르세미술관 전 11
  4. 2011.02.26 장욱진 20주기 회고전 4
  5. 2009.06.02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 8
  6. 2009.05.14 뒷북관람 - 클림트 전 10
  7. 2008.08.16 고흐의 각도 11
  8. 2008.01.21 다시 찾은 고흐전 17
  9. 2007.11.28 아 고흐... 9
  10. 2007.11.13 고흐 전시회 12

올 첫 그림 구경

놀잇감 2012. 1. 14. 03:37

예술의 전당에서 저녁약속이 있어 갔었는데, 딱 10분 남는 시간에 지하에 있는 갤러리를 어슬렁거리다 뜻밖에 고흐를 만났다. ^^; 사실은 갤러리 입구 유리 전시실 안에 걸린 작품이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료관람> 팻말이 눈에 띄었고 옳다구나 들어가는 순간 정면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를 반겨주어 완전 횡재한 기분이었다.

여러 작가들의 최신작이 전시되어 있어 죄다 흥미로웠지만 고흐 추종자로서 역시 내 눈엔 다양한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패러디한 이승오 작가의 <교차된 결> 연작만 기억에 남았다. 모두 네 명인가, 다섯 명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람 얼굴과 눈빛을 조명으로 표현한 작품도, 미세한 철망의 음영으로 놀라운 인물 형상을 만들어낸 작품도 다 좋았으나,  아쉽게도 다른 이들은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째뜬 언제까지 전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조만간 예술의 전당에 갈 일이 있으면 지하1층 갤러리7의 '무료' 관람을 놓치지 마시라! ㅋ

게다가 혹시나 해서 물으니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도 된다니 금상첨화! 처음엔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셋만 찍었다가 한바퀴 더 돌고 나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패러디도 찍고, 대표작인 듯한 (비슷한 작품이 입구에 걸려 있었다. 그림을 비스듬히 한쪽에서 보면 여인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모습인;;) 주름 작품(?)도 찍어왔다. 모두가 색색깔의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 쌓아 만든 작품이었다. 작품 제목은 모두가 <교차된 결> 영어로는 <Layers>였고 재료는 paper stack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떻게 염색한 종이를 접어 쌓고 끼워서 고흐의 꿈틀거리는 붓터치 느낌까지 이렇게도 정교하게 살려낼 수가 있는 지 원... 화가들의 창의성이란 암튼! 신기신기...

같은 작품을 오른쪽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여인들도 앤디 워홀의 작품 패러디가 아닐까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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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알면

놀잇감 2011. 12. 26. 21:19

고흐가 알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며 놀자고 졸라서 애엄마가 괴롭다고 토로하는 나의 조카 지우.
방금 고흐 자화상을 컴퓨터로 골라놓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걸 따라그렸다면서 올케가 동영상과 그림을 보내왔다. +_+
완성본만 본다면 겨우 6살, 아니, 만으로는 다섯살 밖에 안된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다들 믿을까 싶을 만큼 모사화 솜씨가 훌륭하다. 머리모양과 눈매, 양복의 선이며 이미지까지 완벽 포착!
비단 팔불출 고모라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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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 전

놀잇감 2011. 6. 22. 16:47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전시작품에 포함됐다는 소식에 가야겠구나 벼르고는 있었다. 오르세미술관 전시회는 잊을 만 하면 몇년에 한번씩 기획되는데다가 몇해 전엔 <고흐의 방>과 밀레의 <만종>이 왔다고는 해도 작품수가 하도 알량해 보이코트했던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수리 때문에 작품을 '대거' 빌려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렸기 때문이다. 134점이면 소품이 포함됐다 해도 예술의 전당까지 흔쾌히 가줄 수 있는 작품량이었다. 6월 4일에 시작해 9월 25일까지 하는 전시라 '언제' 갈 것인가 그것만이 의문이었는데, 마침 어제 저녁약속이 예술의 전당 안에 있는 벨리니에서 잡혔다. 여름밤 산책도 하자면서. 이런 걸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거야, 라며 설렘을 안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별이 빛나는 밤> 말고는 또 무슨 그림이 왔는지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갔는데 그러길 잘했던 것 같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꽤 유명한 그림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듯했다. 오르세에서 빌려주는 작품만 가져오다보니 일관되는 주제나 사조로 전시실을 꾸미기에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고...
고흐, 세잔, 르누아르, 밀레, 드가, 모네, 고갱, 피사로, 보나르, 로트렉, 쇠라, 루소 등등 그림책에서 봤다 싶은 화가들의 작품이 한두 개씩은 전부 포함되긴 했으나 이른바 오르세가 자랑하는 대표작은 많이 빌려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난 뿌듯했고 만이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실물 알현을 못했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실컷 보고 왔기 때문이다. ^^; 데생과 스케치류의 소품도 꽤 많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초의 사진 작품들도 더러 포함되어 있으므로, 134점 모두 대작일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 나는 최근 한국과 일본 근대문학을 좀 읽었더니 20세기초 사진과 작품들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거리의 신문팔이 소년들이나 공장장에서 일하는 소녀들의 노동현장 포착 모습이 짠했다.  


게다가 뜻밖의 그림들도 몇점 만나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작품만 집중적으로 몇번씩 감상하며 눈호강을 할 수 있었다. 방마다 주제를 정해놓기는 했던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모르겠고, 암튼 인물화를 모아놓은 전시실에서 맞닥뜨린 르누아르의 <소년과 고양이>, 모네의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로트렉의 <여자 어릿광대 샤 위 카오> 세 작품은 거의 나란히 걸려 시선을 끌었다.

르누아르, [소년과 고양이]

포스터에 담긴 오른쪽 그림이 바로 르누아르의 초기작이라는 <소년과 고양이> 일부인데 정말 예쁘지않은가! @.@ 
르누아르는 항상 예쁘고 아름다운 대상을 화폭에 담아 눈을 푸근하게 해주는 그림을 그렸지만, 척 보면 르누아르 그림이라고 알 수 있을 듯한 특징이 작품마다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초기작이라도 이게 르누아르 그림이라니 의외였다. 평소 보던 르누아르 작품과는 색감도 뭔가 다르고 분위기도 한층 어두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말을 들으니 누드화 가운데서도 남자 누드는 이 작품이 유일하단다. 고양이 표정까지 어쩜 저리도 사실적일고. 꽃소년에 열광하는 본성을 못속이고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헤벌쭉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가 돌아섰다. ㅎㅎㅎ

상당히 작품 크기가 큰 모네의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도 워낙 아름다워 한참을 감상했는데, 좀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 바로 옆에 걸린 로트렉의 작은 인물화였다. 어딘가 퇴폐미와 서글픔이 철철 넘치는 것 같은 로트렉의 그림도 꽤나 좋아하는데 공단 드레스를 떨쳐 입은 단아한 귀족 여인의 전신상 옆에서 더욱 초라하게 대조되는 어릿광대의 뒷모습이라니...
로트렉의 그 그림 사진 찾아올리려고 나름 검색해보았으나 못 구했다. 하기야 구한다고 해도 전시실에서 그 순간 느꼈던 기분을 전달할 순 없을 테니 그냥 통과.

그 방에 같이 걸려 있던, 처음 들어보는 아르망 스갱이라는 화가의 인물화 <가브리엘 비앵>도 눈빛이 오래 잊히질 않을 만큼 좋았고, <빨래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폴 기구의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생각되는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작군, 했다.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도 한 점 왔다. 나로선 처음 보는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이긴 하지만. 가장자리 인물을 가차없이 잘라 표현한 드가의 기법이 당시로선 대단히 선구적인 시도였으며, 그게 일본 판화의 영향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에 조금 놀랐다. 화투의 새 그림까지 예로 들어 설명하던데 그 부분에선 시끄럽고 듣기 싫어서 딴그림에 정신을 팔았다. 그림을 볼 때 설명을 들으면 더 많이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서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나 혼자만의 느낌에 사로잡히고 싶을 때도 있어 변덕이 부글부글 끓는다. 일부러 도슨트 시간에 맞춘 것도 아닌데 그림 설명을 만나 약간 반가운 느낌과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는 기분 사이에서 어제도 오락가락했다. 

풍경화 가운데선 뭐니뭐니해도 고흐 그림이 인기 폭발이었지만, 밀레의 <봄> 앞에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저 유명한 <만종>이나 <이삭줍기>보다(이번에 이런 작품이 왔다는 얘기가 아님;;) 나도 밀레의 <봄>이 훨씬 좋았다. 먹구름 잔뜩 낀 왼쪽 하늘에 드리워진 무지개도 예쁘고 농촌의 오솔길과 꽃을 피운 과일나무, 멀찌감치 나무 아래 서 있는 아주 작은 농부의 모습까지 정겹지 않은 구석이 없을만큼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 아닐는지. 하트만이라는 고객을 위해 그린 4계절 연작이라는데 겨울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데고, <봄>이 연작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란다. 계절 중엔 뭐니뭐니해도 봄이 최고지...

그밖

펠릭스 발로통, [공]

에 오호라 쾌재를 부르며 기쁘게 만난 그림은 펠릭스 발로통의 <공>. 작품 크기가 큰 것도 아니고 색감이 화려하지도 않은데 마음을 훅 후비고 들어오는 느낌이라 한참을 감상했다.
그림자까지도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가 또 좀 외로움이 풍기기도 하고... 저 멀리 서 있는 두 여인 가운데 이 아이의 엄마가 있을까 아닐까 혼자 한참 시나리오를 쓰다가 말았다.




해외 미술관에서 두서없이 주워담듯 빌려온 전시회는 통일감이 없어서 문제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군데군데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눈에 띄어 불평이 쏙 들어갔다. 메인요리로 고흐의 별밤만 기대하고 갔는데 서비스로 주는 각종 디저트에 감동하고 온 기분이랄까. ㅋㅋ


벽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전시실에서 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보려고 일부러 그런 사진을 구했다. 별빛을 심히 도드라지게 강조한 복제 그림들과 달린 원래 그림 느낌이 거의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 출처: http://moonsoyoung.com/90114994256


고흐가 이 밤풍경을 그리려고 밀짚모자에 촛불을 얹어놓고 작업을 하느라 뜨거운 촛농이 뚝뚝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도슨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암튼 하늘의 북두칠성도, 해안도로를 따라 켜진 진노랑색 가스등도,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미소띤 표정도 다 정겹고 아름답다. 코앞까지 가까이 가서 확인했는데 두 사람 다 웃고 있었다. ^^;


어제 만난 친구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인생은 참 공교롭다. 97년이었던가, 도서전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 간 김에 파리와 런던 여행을 계획했다. 파리에서 2박 3일이었나 3박 4일쯤 보내는 동안 마침 파리에 와 있던 친구와 점심무렵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세 시간이면 그림 구경 실컷 하겠지 싶어 시간을 안배했으나, 오르세미술관의 작품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고 나는 인상파 전시관을 절반도 다 못돈 채 눈물을 머금고 약속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때 못봐서 제일 아쉬웠던 그림이 바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그날 친구는 오후에도 미팅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차를 마셨던가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헤어져야 했으므로, 같이 지하철을 타다가 나는 뻬르라세즈로 친구는 미팅 장소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파리일정을 하루 더 늘려 오르세 미술관을 마저 보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런던행 비행기표 변경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파리를 떠나며 몇년 안에 다시 오리라,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여행을 제대로 하리라 결심했다. 다시 가기는 개뿔. 그 결심은 지금껏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 만난 친구가 바로 그 때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만났다가 파리 지하철에서 헤어진 장본인이다. 이 정도면 인생이 공교로운 거 아닌가? 물론 내가 예술의 전당 가는 김에 혼자 전시회를 볼 계획을 세웠지만, 먼저 벨리니로 장소를 정한 건 그 친구였다. 오래 전 그 친구를 만나려고 오르세에서 미처 못본 고흐의 그림을 십수년이 지난 어제 결국 보고 나서 또 그 친구를 만나니 뭔가 하나 빠졌던 퍼즐 조각을 마침내 끼웠거나 어그러졌던 아귀를 딱 맞춘 느낌이 들었다. 그날 파리 지하철에서 헤어지며 내가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었다는데(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요번엔 친구가 내게 쿠키를 싸주었다. 부른 배를 꺼뜨리겠다고 예술의 전당 주변을 거닐다 올려다본 밤하늘 색깔은 유난히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하늘 색깔이 '프러시안 블루'라고 친구가 말했고 나는 오후에 보고 나온 고흐 그림의 밤하늘 색깔을 떠올렸다. 확실히 인생은 오묘하다. 혹은 인간이 같다붙이기 선수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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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에 주렁주렁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었던, 가고픈 전시회가 여섯개나 됐는데 보지도 못하고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고 있다. 샤갈전이나마 얼른 보고 오기를 잘했지, 3월까지 한다고 뭉기적거렸다간 어찌됐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던 딱 한편의 고흐 그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도 새 주인에게 넘어가기전에 전시되었었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날짜를 놓쳤다. 그림 딱 한편에 관람료 만원이 비싸서라기보다는 내게 심리적으로 코엑스가 너무 멀었다. 거기만 다녀오면 지하철 멀미를 하는 바람에...  서로 사는 동네가 멀어서 데려다주기 불편하다는 구실로 헤어지는 연인을 비웃었는데 내가 똑 그짝이구나 싶었다. 고흐에 대한 애정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지. 대규모 회고전의 경우 양적인 충족감은 있을지 몰라도, 작품 하나하나의 세밀한 감상이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전시회를 마뜩찮아하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해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를 그림이니 더욱 꼭 가야겠구나 생각했으나 결국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과천 현대미술관에도 꽤 소장돼 있고 장욱진 재단도 있으니 머지 않은 시기에 또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앙증맞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순 없었다. 게다가 전시장도 만만하게 경복궁 옆 갤러리 현대였다. 전시 막바지라 다들 조바심을 냈는지 홍보가 워낙 잘 된 때문인지 평일 오후에 갔어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특히 많았는데, 동심이 묻어나는 그림이라 아이들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여기저기서 그림 설명하는 엄마들 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엄숙하고 조용한 관람 분위기보다는 어쩐지 그런 소란함이 다정한 그림들과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 그림은 78년작, 가로수


동그랗거나 길쭉한 단순한 형태의 나무와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집들,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들 그림처럼, 대부분 작은 화폭에 그려진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나는 마냥 좋다. 어떤 화가의 그림이든 대체로 새 그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예외가 있다면 어린 시절 나도 그렸을법하게 선으로만 묘사된 까치로 대표되는 장욱진의 새 그림이다. 장욱진 그림 속의 새들은 어린시절 내게  본격적인 새 공포증을 각인시킨 학교앞 병아리 좌판이나 히치콕 감독의 <새>와도 다르고, 뚱뚱하고 더러운 도시의 닭둘기와도 다르고, 언젠가 내 팔뚝에 똥을 찍 갈기고 날아간 이름모를 새와도 다르다. 



'57 나무와 새, 34x24cm



거의 모든 그림에서 해와 반달이 공존하고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무에 올라가 있거나 가족이나 동무와 함께 걸어가거나 어디선가 놀고 있다. 동화 삽화로도 꼭 어울릴 것만 같지 않은가!

다 좋아하지만 특히 남색과 초록색이 예뻐서 마음에 드는 <나무와 새>, 갈색 배경이 정겨운 <수하>는 봐도봐도 느낌이 좋다. 국내 가방업체에서 장욱진의 그림으로 가방과 지갑류를 선보였기에 신나서 얼른 지갑 하나 골라사고는 요번 전시에 그 그림도 포함되면 좋겠다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그 그림은 화집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디서 한번쯤 실물을 만날 수 있겠지. 지갑을 한번 사면 3, 4년은 너끈히 쓰는 편이므로 일단 그 그림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이번 전시는 연대별로 화실 이름에 따라 초기, 덕소 시대, 명륜동 시대, 수안보 시대 등으로 그림이 나뉘어 있었는데 시기에 따라서 엄청나게 화풍이 달라지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초기와 덕소시대 그림을 제일 갖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난번 덕수궁 석조전에서도 보았던 덕소 화실의 물건들이 여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화폭이 작으니 덩달아 작고 탄탄해 보이는 앉은뱅이 이젤이 참 탐났다. 그리고 만약에 작품 하나 누가 골라 가지라고 한다면 <수하>가 아닐까 싶다. ㅎㅎ

'54, 수하, 33x24.7cm


이 그림은 재작년 한국근대미술걸작전에 갔다와서도 올렸던 것 같은데, 또 올린다고 문제될 건 없겠지. 아우 예쁘다.

초기에 그린 노란 바탕의 <자화상>도 그렇지만 장욱진의 그림은 간혹 손바닥보다도 작은 캔버스에 오밀조밀 유화를 그려놓았다. 요번에 처음 본 1972년작 <가족도>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오도카니 홀로 걸려 있었는데, 7.5x14.8cm의 작은 크기임에도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힘이 뿜어져나왔다. 주최측에서도 그걸 느꼈는지 일부러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사진촬영용으로 확대해 벽화로 만들어놓았던데, 색감이 어찌나 다른지 도저히 같은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감어린 흙색을 왜 시뻘겋게 표현해놓았는지 원! 아이들 데려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던데, 나는 불평용으로 찍어왔다. 제아무리 원작의 색감을 살려내기가 어렵기로서니, 자손들과 재단에서 기획한 전시에서 유일하게 벽에 새겨넣은 그림이 그모양이면 어쩐단 말인가. 수없이 기념촬영을 해갔을 사람들의 사진속에서만 장욱진 그림을 접한 이들은, 그 그림이 그토록 시뻘겋고 강렬한 줄로 착각할 게 아닌가. 안타까운 노릇이다.


원작은 이렇게 시뻘겋지 않다규!


문제의 가족도 벽화는 이렇게 생겼다. 원작 그림은 위에 있는 <수하>와 비슷한 색감이라고 보면 됨. 나무의 초록색도 영 아니올시다다.

그밖엔 대체로 흡족한 전시였다. 돌아가시기 불과 두어달 전에 그렸다는 <밤과 노인>도 처음 공개되었고 별로 본 적 없는 먹그림들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에서 육성도 들을 수 있게 해놓았는데, 주름 가득한 얼굴, 깡마른 체구에 거의 늘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들을 많이 접한 때문인지 이젠 오래전부터 알던 먼 친척같은 느낌이 들 만큼 친근했다. 놓치고 못갔으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듯. 역시나 내일이면 끝나는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도, 3월 1일에 끝나는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시회도 포스트잇 메모를 조금 전 그냥 떼어버리며 아쉬웠지만, 하나는 건졌으니 장하다고 생각할란다. ㅎㅎ

마지막으로 고흐의 <아몬드꽃> 파란 지갑--낡아서 그림이 다 바래 하얗게 됐었다--에 이어 마련한 장욱진의 <나무> 지갑을 화집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색감이며 섬세한 부분까지 살려내진 못했지만 (나무 위 노란 집안에는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 백화점에서 본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선물로 받으려고 목록에 적어뒀었는데 연말에 세일하길래 냉큼 사버렸다. 음화화핫. 브랜드 로고 옆의 금속 장식 두개만 없으면 금상첨화겠으나 (번쩍이는 거 싫엇!) 동그란 나무에 시선을 돌리면 이내 흐뭇하다. 고흐 지갑 살때는 살아생전 딱 한 편밖에 그림을 못 팔았고 평생 가난했던 고흐에게나 그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갈 것 같지 않아 좀 찝찝했으나, 이런 그림 저작권료는 장욱진 미술재단으로 들어갈 게 틀림없으니 아깝지도 않다. ^^; 

'86, 나무, 33.4x24.2cm

표에든 그림은 73년작 부엌, 21.6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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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연극 초대권을 주겠다고 했다. 다른 정보는 전혀 없이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는 고흐에 대한 연극이라는 것만 듣고도 당연히 갈 작정을 했다. 헌데 퀵으로 보내준 초대권과 함께 온 소개 전단지엔 테오와 빈센트, 단 두 사람이 등장하는 연극이며,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각색한 내용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만에 연극을 보는 것인지 까마득할 정도여서, 설레는 마음으로 웬만하면 즐겁게 감상할 다짐이 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일찌감치 만나 저녁을 먹고 좌석을 배정받고는 산울림 소극장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신뒤 8시를 기다려 드디어 극장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소극장 바닥 무대엔 두 배우가 쪼그려 앉아 있는 바람에 조금 놀라웠다. 예상과 달리 평일 저녁임에도 소극장은 거의 빈자리 없이 관객이 들어차, 연극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이어 그것은 나의 착각임이 드러났다.

임영웅 연출, 이호성/이명호 출연


빈센트 역할의 이호성과 테오 역의 이명호,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 편이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연기할 때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했지만서도. 단순한 무대에서 각기 모노드라마를 하듯 수많은 사건들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텐데, 두 형제의 격렬한 고통과 교감은 시종일관 팽팽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용은 너무나 뻔했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익히 본 내용 이외의 참신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변화 없이 단조로운 무대에서 들려주는 뻔한 이야기는 두 배우가 아무리 감정을 담아 호소한다고 해도 지루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식곤증 탓도 있었지만, 연극 자체는 정말 하품나게 재미 없었다. 나는 고흐에 대한 예의와 의리(?)로라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같이 간 지인 둘은 계속 졸았노라고 나중에 실토했다. 한 친구는 나갈 통로만 있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거라나.
그런데도 어떻게 그날 그렇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죄다 초대권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흐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절대 주변에 추천해줄 수 없는 연극이다. 특히 <반고흐, 영혼의 편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혹시 책을 안 보았고, 고흐의 생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있을 수 있으려나? 글쎄, 나는 둘의 대화와 관련된 그림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심취하려 노력했음에도 즐기기 어려웠으니 그 마저 장담할 순 없다. 아무리 소극장이라지만, 관련 그림들을 뒷배경에 슬라이드로라도 비춰주었으면 덜 지루했을 텐데 싶었다. 초대권 들고 갔는데도 엉덩이 아프고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니 거금 3만원을 들여 보러 갔더라면 억울해서 펄펄 뛰었을 거다. 언제부턴가 연극 보는 일이 드물어진 건, 뜸해진 나의 문화생활 탓이기도 하지만 가끔 본 연극에 노상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고전을 졸려하는 나의 짧은 식견도 크게 작용하지만, 재미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재미없는 이 연극보다는 근처 밥집 찾아다니다 먹은 돈까스 집 <담(談)>의 낮은 천장과 바삭하고 양많은 돈까스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가격도 단돈 6천원. 근처에 가게 되면 담에 또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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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전시회 시작됐을 때 연일 관람객이 바글거린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인파가 뜸해지길 바라며 꽃과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에 소풍삼아 예술의전당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3월엔 클림트 전을 보고 나온 지인 모녀를 만나러, 4월엔 카쉬 전을 보러 예전에 가기는 했지만 정작 클림트전은 못보고 조바심만 내고 있었는데, 어느덧 달력을 보니 이번주 금요일이면 전시회가 끝난다고 적혀 있었다. 정신머리 없는 내가 못미더워 밀린 숙제처럼 탁상달력에 적어놓고도 마지막 주까지 버티다니. 참 한심스러웠지만 아예 놓쳐버린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며 지난 화요일 잠을 줄여 헐레벌떡 구경을 다녀왔다.
관람료도 비싼 대규모 기획전시를 찾아다니는 건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문화산업에 편승하는 짓이니 지양해야한다고 익히 들었어도, 그림구경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늘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있긴 하지만 이번엔 특히 마음이 찜찜했다. 평일 오전엔 원래 한가로운 아줌마 관객들이 미술관에 많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입구부터 줄을 서듯 두겹 세겹으로 그림앞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안내직원들이 소리를 쳐댔다.
"다른 전시실 먼저 둘러보십시오! 안쪽으로 가시면 빈 공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전시실도 한가롭게 그림 하나를 오래 감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은 없었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치고 시야를 방해받고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밟혀야 했다. 그동안 관람객이 어찌나 많았는지 전시 팸플릿도 다 떨어졌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미리 준비된 게 다 떨어졌으면 다시 인쇄를 해야 마땅할 텐데, 아무리 마지막 주에 뒷북관람을 하는 관객이로서니 대놓고 푸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은 영 가시질 않았다. 전시 주최사인 동아일보사는 반성하라!
게다가 저 포스터에도 들어있는 <유디트I>을 제외하면 유명 작품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실망감은 줄지 않았다. 그나마 <베토벤 프리즈> 벽화와 정사각형 캔버스가 인상적이었던 풍경화를 직접 본 것으로 관람료 본전은 뺀 거라고 애써 위로하고 돌아왔는데, 기막히게도 그 <베토벤 프리즈> 원본은 오스트리아 박물관에 있고(현재도 전시중이라고 ㅠ.ㅠ) 훼손을 염려하여 한국에 보낸 건 복제본이란다. 완전 사기당한 기분!! 나만 몰랐던 것인가??

물론 전시 끝나기 직전이라 더욱 복잡했을 시기에 그림을 보러간 건 순전히 내 잘못인 걸 잘 안다. 대작들은 많이 없는 대신 드로잉과 뜬금없는 디지털영상사진이 더 많아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괜히 보러갔다고 후회를 한 건 아니었고, 보길 잘했다는 생각은 확실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는 속담이 어김없이 들어맞는 요란스런 거대자본형 전시에 머릿수를 보태준 것이 찜찜하다는 얘기다. 암튼 이러저러한 투덜거림은 전시회 자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화가들에 비해 큰 애정을 갖고 있진 않았던 클림트에 대해선 이참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기긴 했다. 클림트와 황금빛 색채는 뗄레야 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키스>나 <포옹>, <유디트> 같은 그의 그림들이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눈쌀을 찌푸리곤 했다. 뭘 그렇게 유난스럽고 번쩍거리게 드러내나 싶은 무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거의 사진처럼 묘사한 그의 초기작부터, 이미 대가로 칭송받던 시기에도 수없이 연습을 거듭한 드로잉과 스케치 작품, 중년 이후에 시도한 인상파 풍의 풍경화를 실제로 보니, 책과 화집에서 <읽어낸> 느낌과는 여실히 달라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졌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여 늘 가난하고 힘겨웠으며 유명 화가들의 그림들을 따라 모사하고 연습하던 고흐의 그림들이 상대적으로 아마추어 같은 노력의 과정을 진하게 풍긴다고 한다면, 클림트는 천재적인 자기 재능을 거리낌없이 온갖 방식으로 시도해본 노련함과 여유가 강렬하게 뿜어나왔다. 클림트의 황금빛 찬란한 작품에서 평범한 이들을 약간 움츠러들게 만드는 천재 특유의 오만함을 (경외심과는 별도로) 느끼는 건 순전히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겠는데, 하여튼 나는 그런 색다른 인상이 신기했다.

그림전시회를 보고 나와서 소박한 의식을 거행하듯 천원짜리 엽서 몇장을 사며 우리나라 업자들의 그림 인쇄술이 조악하다고 늘 불평했던 것 같은데, 이번 클림트전은 아예 그림 엽서와 카드, 복사본 그림 따위를 독일에서 수입했더라. 지금까지 그런지는 몰라도 컬러 인쇄술은 독일이 가장 앞섰기 때문에 고가의 화집 같은 건 독일에서 만든 걸 사라고 익히 들어왔는데, 색감이 확실히 선명하긴 해도 <Made in Germany>라서 작은 엽서 한장에 3천원, 5천원씩 하는 걸 보며 또 한번 내 입에선 불평이 터져나왔다. 젠장!
오스트리아엘 간다 해도 만나볼 수 없는 <처녀>와 <친구들> 엽서를 어렵사리 한장씩 고르고, 실물 알현의 영광을 누린 <아담과 이브> 타일 자석을 받아들고 흐뭇하긴 했어도 이번 전시의 노골적인 상업성은 성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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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각도

놀잇감 2008. 8. 16. 16:20
이요님 블로그에서 보고선 홍대앞에서 약속이 있었던 김에 옳다구나 찾아간 류승호의 작은 전시회.
<고흐의 각도>
고흐의 익숙한 그림들을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해 놓았다.
홍대앞 상상마당 1층 한구석 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전시한단다.

파는 엽서인줄 알고 얼마일까, 2천원 미만이면 사야지 마음먹었던 입체카드 같은 인쇄물은
그냥 집어가도 된다는 전시 팸플릿이었다. ^^
6개나 집어와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방에 하나 세워놓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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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는 없었지만 고흐와 관련된 작품들을 마구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는데 또 어떻게 그냥 오랴 싶어서 서툴게 폰카를 들이대고 몇장 담아왔다. 아기자기하게 소품들로 재현해 놓은 고흐의 작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붓의 터치까지 막 살아난 듯해서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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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니 그냥 꼭 한번 들어가서 걸터앉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고흐의 방>은 3차원으로 보니 더욱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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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의 뒷배경엔 유리를 한 장 덧대어 그 위에 칠한 붓터치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천장쪽에 조명을 비췄다. 입체감이 더욱 살아나니 마치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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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의 대문 사진이자, 현재 들고다니는 지갑의 문양이기도 한 <아몬드 꽃>은 앞쪽에 모빌처럼 매달린 액자엔 아몬드나무와 꽃만 들어있고 뒷벽에 청록색 바탕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상상마당 1층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제일 크게 걸려 있는 바람에, 사진을 찍으니 입구밖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들까지 반사되어 찍히고야 말았다. ㅎㅎ


그밖에도 귀가 잘린 고흐의 초상화,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꽃 등 꽤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다렸다가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째뜬 이렇게라도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몹시 행복했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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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고흐전

놀잇감 2008. 1. 21. 21:42
벌써 한참 된 일인데 새삼 포스팅을 결심한 건 어제 오늘 너무 우울하고 짜증이 나
생각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일을 떠올릴 필요가 있어서다.
그리고 방학중 전시장을 찾을 계획을 하고 있을 블로거들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

내가 두번째로 고흐 전시회장을 찾아간 건 1월 10일 목요일 오전.
매주 수요일 오전엔 유치원생들의 무료 단체관람이 있다는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평일 오전엔 설마 무료 단체관람객이야 없겠지 나름 짐작했고,
방학중 가장 아이들로 붐비는 시간은 오전 학원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엄마들이 이끌고 모여드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아.뿔.싸.
조카들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던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티켓박스 앞엔 비닐 천막 안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마당 한 가득 여기저기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온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구름처럼
우글거렸다. ㅠ.ㅠ

나 역시 어린 조카들과 함게 하려는 관람이긴 했지만
한둘씩 아이들을 동반하고 다니는 관람객과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내는 소음(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울어대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다)은 천양지차임을
과거 샤갈 전시회때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도 난감했다.
게다가 노구를 이끌고 실로 수십년만에 광화문 정동길에 납시신 우리 왕비마마를 대동한 터라
그림을 보기도 전에 아이들에 치여 지쳐선 안된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우리는 일단 와글와글 시끄러운 어린이 단체관람객을 일단 앞세워 들여보낸 뒤
투터운 옷가지와 가방들은 사물함에 넣어두고 가뿐한 차림으로(사물함 비용 100원은 나중에 도로 나오므로 결과적으로 무료다^^) 전시실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시끄러운 아이들은 '단순히' 숙제를 위해 온 것인듯 그림 자체는 감상을 하는둥 마는둥
저마다 수첩을 꺼내들고 뭔가를 신나게 베껴적고는 메뚜기떼 사라지듯 물러났고
우리가 2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일단 카페로 철수해 카페인과 당분으로 피로를 풀고 돌아와
3층 전시실을 돌 무렵인 오후 12시 반쯤엔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초기 스케치 작품과 함께 고흐의 생애를 조망한 짧은 필름 상영을 하는 곳 역시
붐빌 때는 볼 엄두도 못내는데, 한 타임 기다렸다가는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을 정도.
또한 가장 큰 전시실인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 그림이 걸린 곳에선
중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멀리서 사람들 어깨와 머리 너머로 보이는 고흐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다.

이번 고흐 전시를 최대한 실망하지 않고 보려면 3층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고흐 생애 영상물을
먼저 보라는 조언도 있다는데 계단 오르내리기와 걷기를 몹시도 싫어하는 내 관점에서 보자면 ^^
그냥 2층 전시실을 순서대로 돌고
3층에 올라와 생레미 시기를 보기 전에 구석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영상물을 본 뒤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로 대미를 장식하고 아트샵에서 진짜 작품 대신 복제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든지
성에 안차는 대로 기념 소품을 장만하면 나름대로 뿌듯한 관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관람에서 유독 짜증스러웠던 것은
평일 오전에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어린이 단체관람객과 맞닥뜨렸다는 것 이외에도
입장료 할인혜택이 있는 GS 칼텍스 보너스카드의 사용이 원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째뜬... 할인 얘기 하면서 또 짜증이 떠오르긴 했지만
두번째로 고흐 그림들로 가득찬 전시실을 작품 순서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상하고, 그림에 낯선 엄마와 조카들에게 아는 만큼만 알량하게 설명을 하고
또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림을 쳐다보며 오디오 가이드에 귀를 기울이는 정민공주를 지켜보는
마음은 참으로 흐뭇했다.

수많은 그림 가운데서 어느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냐는 나의 질문에
정민공주는 뜻밖에도 <비탄에 젖은 노인>을, 지환왕자는 '파란꽃', 즉 <아이리스>를 골랐는데
공주는 슬퍼하는 노인 그림이 제일 잘 그린 것 같기 때문이고, 왕자는 파란 꽃이 제일 예뻐서라고
대답했다. ^^
아 참, 울 엄마는 제일 인상적인 그림으로 <자화상>을 꼽으셨고, 올케는 샤갈 전시회 때만큼 가슴 설레는 감동이 없긴 해도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애틋했다는 총평을 했다.
가족을 대동하고 전시회를 찾는 일, 조용한 관람을 원했던 과거의 나 같은 까탈 관객에겐 괴로운 일이겠지만
색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다.

암튼...
제 아무리 방학이라 해도 한가한 오전 미술관을 상상하며 11시 도슨트 설명을 기대했건만
이번에도 도슨트 설명은 듣지 못했다. 오디오 가이드와 내용이 똑같은지 어떤지 한번 꼭 들어보고 싶은데...
다음엔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기필코 한가한 때를 노려보리라.
그 전에 "고흐 전시회를 꼭 구경가야겠다"는 준우왕자를 대동하고 전시장을 또 한 번 시끄럽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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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흐...

놀잇감 2007. 11. 28. 00:47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조금씩 설레기는 하지만
이번 고흐 전시회는 거의 봄부터 기다렸던 까닭에 마치 헤어진지 오래 된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 만큼
가슴이 콩닥콩닥 설렜다.

쌀쌀하긴 해도 발밑에 뒹구는 낙엽만은 여전히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정동길을 걸어 시립미술관 언덕을 오르니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미즈키님이 귀띔해준 덕분에 천원 할인도 받고 예매 선착순 만명에게 준다는 샤갈 소도록을 두 권이나
받았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으나 ^^;
현장에 가보니 GS칼텍스 보너스 카드가 있으면 4명까지는 천원 할인이 되고 포인트가 있으면 2천원까지도
할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리 확인했던 대로 전시관은
네덜란드 시기와 파리 시기, 아를 시기, 생레미 시기, 오베르 시기로 나뉘어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27세에서 불운한 생을 마감한 37세까지의 인생을 조망해 놓았는데
맨 마지막 전시관엔 초기작인 드로잉 작품으로 마무리 되어
어쩐지 끝이 밋밋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만일 다음 관람 계획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인상주의 화풍이 극대화된 아를 시기와 생레미 시기의 작품들을
몇 번 더 둘러보아 눈과 마음의 호사를 좀 더 마음껏 누렸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감동은 역시나 고흐의 작품과 삶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일 텐데
고흐의 새파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었던 자화상을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약간 뜨거워져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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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887년 파리.종이에 유채. 네덜란드 반 고흐 박물관 소장

무척 나이들어 보이는 이 자화상은 고흐가 '겨우' 서른네 살 일 때 그린 것이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화구와 캔버스로 그림을 그린 탓에 고흐의 작품들은 대작이 거의 없다.
옆 작품들에 비해 몹시 크게 느껴지는 <아이리스> 그림의 높이가 1미터도 안될 정도이고
이 자화상이나 <밀 이삭> 같은 그림은 정말 아담하다.
그럼에도 작고 소박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화폭이 점점 커져 나를 압도하며 빨아들이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고흐에 대한 나의 편애 이유에는 아름다운 색채와 꿈틀거리는 유화의 질감 외에도
분명 그의 지난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한 것이 틀림 없다.
작품 설명에도 나와 있었지만 화가를 괴롭혔던 극심한 조울증과 광기는 그림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물며 생레미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린 그림들도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그의 삶에 구원이었듯이, 여전히 그의 그림들이 여러 사람들의 고달픈 삶에 구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오늘도 고흐의 노란색과 연두색과 다채로운 파란색의 향연 속에서 막연한 슬픔과 함께
훨씬 더 큰 감동과 행복을 맛보았다.
고흐의 작품들은 단순히 미술관에 대한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는 것 이외에도 분명 내 영혼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지녔다. 물론 나 혼자만의 편애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려나
제 아무리 뛰어난 인쇄술로 찍어낸 화집이나 도록이라 해도
역시 원작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은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음을 미술관에 갈 때마다 깨닫는다.
<아이리스>의 노란 바탕은 그야말로 내가 고흐와 함께 제일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노랑색이었고
<프로방스 시골 야경>의 아련한 별빛과 달빛은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으며
<생레미 정신병원의 정원>에 피어난 5월의 꽃과 신록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화사해졌다.

문제는 고흐 그림의 경우 보면 볼수록 더 욕심이 생긴다는 점이다.
고흐의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을 유럽 미술관 순례는 물론이고(게다가 몇몇 주요 작품들은 미국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오호 통재라) 그가 생애 마지막의 70일을 보냈다는 오베르의 소박한 골목길과 밀밭,
그리고 밤의 카페 테라스가 있는 아를에 가고싶어서 몸살이 날 것만 같은 마음으로
휘적휘적 돌아왔다.

너무 원대한 욕심은 일단 접어두고
조만간 다시 전시회 보러갈 날짜를 고민하며 어렵사리 고른 엽서 3장이나 또 쓰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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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전시회

놀잇감 2007. 11. 13. 15:01

드디어 고흐 전시회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지난 주말 인사동엘 나갔더니 가로등마다 고흐 전시회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설렜다.
과연 이번에 온 67점의 작품들의 면면이 어떤 것인지 살피러 슬쩍 서울 시립미술관 공식 사이트(사이버 미술관도 있다 http://vangoghseoul.com/cyber01.htm)엘 가보고선 약간 실망.

실물 알현의 염원을 품고 있던 <아몬드꽃>은 오지 않았다. -_-;;
해바라기 시리즈는 하나도 안 온 모양이고, 미국 미술관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밤>도 당연히 없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밀러 미술관 두 군데서만 작품을 공수한 모양이다.
아이리스 연작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 꽃밭 그림 작품 대신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가 선을 보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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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아이리스를 보고싶었는데 ㅠ.ㅠ 대체 어디 있는 작품인가 새삼 찾아보니 역시 미국 게티 박물관에 있단다 1889년작.


확실히 내 안목이 전문가들과는 다른 듯, 나는 이 아이리스 그림이 더 좋은데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 그림이 원래 더 유명한 거란다 ^^;; 제일 비싼 작품에 속한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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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1890)



그래도 달빛과 별빛이 교교하게 동심원으로 표현된 프로방스의 시골야경은 볼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여럿 서 있는 고흐 그림들을 좋아한다. ㅎㅎ
좀 아쉽지만 이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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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시골 야경 (1890)


고흐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시기별로 전시실을 나눈 듯한데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역시 현란한 색감과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아를 시기와 생레미 시기다. ㅋㅋ 여기 올린 그림 세장이 모두 생레미 시기로군.
아마도 아를 시기에 속한다는 것 같은(벌써 까먹었다 젠장) <우체부 조셉 룰랭>그림도 두근두근 기대중.

물론 사이버 미술관에 일부 소개된 작품만으로 아직 크게 실망하기는 이르지 않겠냐고
애써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작품 가격만 1조 4천억원이라는데;; 감지덕지해야지.

2007년 11월 24일부터 2008년 3월 16일까지 전시라 기간도 꽤나 넉넉하다.
입장료는 만2천원.
코엑스멤버십 카드, GS칼텍스 보너스카드를 제시하면 천원 할인된단다.
개관 첫날 달려가는 성의를 부리고 싶기도 하지만
주말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까봐 두려워서 안 갈 작정이다.
이번 전시와의 첫 만남은 한가로운 평일 오전으로 계획해 봐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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