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푸념'에 해당되는 글 109건

  1. 2012.04.26 못 미더운 사회 2
  2. 2012.03.10 관광옵션 5
  3. 2012.03.02 Why not? 4
  4. 2012.02.17 재롱잔치 유감 12
  5. 2011.09.03 직업 추천 17
  6. 2011.09.02 달콤함이 필요하다 13
  7. 2011.08.31 드디어 짜장면! 11
  8. 2011.08.12 사이시옷이 기가막혀 10
  9. 2011.05.25 그녀들은 없다 13
  10. 2011.05.16 해봐야 아나 1

버스정류장엘 나가보니 인근 파출소에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코팅까지 된 채 매달려 있었다.  

택배기사를 가장하여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접근해,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그런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그대로 달아나는 사건이 빈번하므로 택배기사 복장을 한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하더라도 절대 빌려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도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낯선 사람, 특히 청소년은 경계하라고도 적혀 있었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중국에 다량 팔아넘긴 사람들이 잡혔느니, 택시에 두고 내린 휴대폰은 이제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는 들어본 것 같은데 요샌 휴대폰 날치기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어휴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요즘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서 휴대폰을 놓고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워낙에도 숫기 없어서 남들에게 휴대폰 빌려달라고 하는 대신 나야 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중전화를 찾아헤맬 확률이 100퍼센트지만 (그나마도 귀찮아서 그냥 전화를 안하고 만다;;) 얼마 전까지 나는 아주 가끔씩 휴대폰을 남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다. 주로 청소년과 아이들, 착해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었고, 남자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역시나 정신 없는 친구가 남의 휴대폰을 빌려 약속장소를 다시 묻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휴대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도 듣자하니 수법이 정말 다양하다. 후배 하나는 엄마에게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쳤다며 병원 검사비 30만원을 급히 계좌로 송금하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문제는 송금 계좌가 낯선 사람의 것이라는 점. 길에서 자기를 부축해 데려온 고마운 사람의 계좌라나. 후배는 놀란 마음에 얼른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 받질 않았다. 곧이어 언니가 놀란 목소리로 엄마 문자 받았느냐고 전화를 했더란다. 엄마에게 똑같은 문자를 받았던 것. 놀란 마음을 달래고 보니 아무래도 수상쩍다 여긴 두 사람은 의논 끝에 의문의 계좌 대신 엄마 은행계좌로 각자 30만원씩 송금을 하고는 문자로 그 내용을 알렸단다. 이후 상황을 몰라 전전긍긍 엄마 휴대폰으로 마냥 전화만 걸던 자매는 오후 늦게야 집 전화로 엄마랑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엄마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하셨고 휴대폰을 어디에서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고 있었단다. 그 사연을 듣고 내가 말했다. 울 엄마는 문자 못 보내는 할머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_-;

 

얼마 전엔 엄마가 절에 갔다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목격했다고도 했다. 마침 예불이 끝나 점심을 먹으려고 다들 식당방으로 이동하려는데, 띠리리리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고 그 보살님이 통화를 하더니 허둥지둥 울먹이며 우리 아들 교통사고 났다는데 어쩌느냐고 부들부들 떨더라나. "엄마! 접촉사고 나서 지금 경찰서 왔는데 당장 합의금 필요하니깐 @@만원 보내주세요.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보낼게."라는 식으로 다급하게 말을 했다는데, 목소리가 딱 자기 아들이었다고. 하지만 누군가 보이스피싱 같으니 아들한테 먼저 확인해보라고 했고, 하필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운 아들과 연결이 안 돼 한참 피를 말리던 그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단다. 만약 집에 혼자 있다가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대뜸 은행으로 달려갔겠으나, 주변에서 사람들이 안심 시키고 혹시 정말 사고가 난 거라면 좀 있다 은행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스님의 다짐에 힘입어 아주머니는 차분히 계속 아들과 통화를 시도했고, 결국 사기극 전화였음이 판명됐다고. 울 엄마도 우체국 사칭, 경찰청 사칭, 법원 사칭, 카드회사 사칭 보이스 피싱의 존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교통사고  핑계대는 자식 노릇까지 하는 사기꾼들의 대담성에 퍽 놀란 눈치였다.

 

지난 번 인사동에 나갔을 때는 돌아오는 길에 종로2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두 여자가 내게 접근해 물었다. 종로3가 전철역이 어느쪽이냐고. 나는 이쪽으로 쭉 직진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머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잘난척 그리 멀지 않다고 (왜냐하면 나도 나갈 땐 전철타고 종로3가 역에서 내렸기에 잘 아니까;;) 5, 600미터만 가면 된다고 콕 찝어 말해주었다. 두 여자는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도 금방 안 가고 미적미적 뭔가 더 말을 붙이려는 눈치였다. 거기서 전철을 타면... 어쩌구 그들이 또 뭔가를 묻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의심이 치솟았다. 이 사람들 '도를 아십니까' 아냐?! 십수년전 종로통에 매일 다닐 때도 그 구역은 '도를 아십니까' 집단의 잦은 출몰지였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뒷말을 듣지도 않고 홱 돌아서서 내 갈길을 갔다. 애당초 그들의 질문엔 분명 친절히 대답해 줬으니 내 소임은 다 한 거라규!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내내 궁금했다. 그들은 실제로 길을 더 물으려는 것이었을까, 정말로 '도를 아십니까'였을까.

 

세상이 하도 험악해지다보니 요즘엔 택배 왔다고 소리쳐 문을 열게 해놓고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에, 택배상자 받기를 취미삼아 하는 나로선 '택배입니다'라고 하는 외침에 마냥 반가워만 해선 안되는 게 아닌가 자책이 든다. 다행히 택배업체에서도 그런 점을 잘 아는지 "택배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대신 수신인 이름을 먼저 외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또한 주소와 전화번호 때문에 택배상자를 함부로 버리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보도에 이젠 택배상자 주소 택에도 전화번호는 가상 번호로 적혀  오거나 뒷번호가 ****으로 가려져 있다. 진화화는 범죄에 대응책도 자꾸 변화하고는 있지만 과연 비상한 범죄 두뇌를 우리가 따라갈 순 있는 걸까. 방송도 언론도 못 믿겠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도 못 믿겠고, 법도 못 믿겠고, 국내산이니 한우니 유기농이니 적어놓은 표기도 못 믿겠고, 도대체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옛날부터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쓰시던 농담 중에 <뙤놈 빤스를 빌려 입었나?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조롱하는 말투로 쓰였으므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반면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신중한 태도가 크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절대로 믿지 않는 불신의 병에 걸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못 미더운 사회를 살아가려면 무턱대고 믿다 큰 코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포장하고 거짓말을 서로 맞추고,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진실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좀 많이 보았는가. 요즘 고등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권력과 경제력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90%라는 보도를 보고, 그들의 현실감각에 씁쓸했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변호사를 대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고등학생 쯤 되면 다들 아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와는 별도로 중고등학생들이 골목 같은데 서넛 이상 모여 있으면 지나며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겁부터 난다. 어느 틈엔가 제일 무서운 범죄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한 그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원인을 생각해보면 또 다 어른들의 잘못, 사회 탓이다. 사회의 투명성이며 공정성 평가에서 늘 OECD 국가중 꼴찌에 가깝네 마네 하는 말이 괜히 나올 리 없다. 앞으로 점점 나아져야 할 텐데 별로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뙤놈 빤스' 운운하며 자조하는 나의 의심도 계속될 것이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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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옵션

하나마나 푸념 2012. 3. 10. 06:29

사대문에서 그리 멀진 않되 꽤 후미진 동네이기 때문인지, 동네 근처에 '이상한 곳'이 꽤 많다. 도로도 넓지 않은데(겨우 왕복 4차선), 오전오후 따질 것도 없이 관광버스가 떼로 몰려와 한 차선을 점령하고 주정차할 만큼 붐벼, 가끔 경찰차가 슉슉 마이크 소음을 내며 도로정리를 할 정도다.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건물 앞에 팻말이 붙어 있고 시뻘건 간판은 오로지 한자로만 써붙인 <고려인삼 면세점> 이야기다. 내가 발견하기론 1, 2킬로 미터 이내에 네 다섯 군데나 몰려 있는데도, 죄다 성업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광버스 앞에 써붙인 글씨로 보면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고, 가끔 일본 관광객 버스도 보인다. 길을 막고 줄지어 서 있거나 좁은 주차장으로 기다란 버스를 대려고 중앙선까지 넘어갔다 후진하는 관광버스들 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겨 그 앞을 지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짜증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끌려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안쓰럽다. 보나마나 저렴한 한국관광 상품으로 놀러와, 실제 관광은 하는둥마는둥 툭하면 이런저런 면세점으로 끌려 다녀야 하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인상으로 남을까.

현지 언어에 자신이 없고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갈 때는 나도 더러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하지만,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여행상품만큼 딱 떨어지는 것도 없음을 이젠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더라도, <노옵션, 노팁, 노쇼핑>이라고 처음부터 딱 못박아 놓은 상품을 찾는다. 그런 상품도 가이드에 따라선 슬쩍, 이건 정말 너무 좋은 상품이라 소개 안하면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한 군데쯤은 데려가는 형편이니, 정말 패키지 여행은 편하고 싼맛에 가긴 하면서도 일신의 편안함과 맞바꾸어야 하는 나름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내가 최초로 패키지 여행상품을 경험했던 것은 아마도 제주도 수학여행이었겠으나, 워낙 돈없는 대학생들의 수학여행이라 물건을 사라고 강요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직장생활 하면서 두번째로 친구들과 간 제주도 패키지는 상황이 달랐다. 관광코스 사이사이에 오전 오후 각 한 군데씩은 특산품 판매장에 끌려다녔던 것 같다. 절대 '옥돔'은 사오지 말고 '귤'이랑 '미역'이나 사오라는 엄마의 당부를 받고 간 상황이었는데, 가이드가 특산품 매장마다 하도 다그쳐대는 바람에 꿀과 로열젤리, 영지버섯 같은 걸 사들고와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제주도는 그때도 아름다웠고 여행은 대부분 즐거웠지만, 이후 다시는 제주도에 패키지 여행으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옵션도 어찌나 많은지, 입장료 저렴한 데는 지들이 내준다고 생색내면서 배타고 좀 비싼 데는 죄다 따로 돈을 걷두만. 쳇...

그러나 십수년 뒤인 2002년, 나는 그 다짐을 깨고 또 한번 제주도 패키지 여행에 따라나선다. LA로 이민간 친구가 언니랑 다니러 오면서 끊은 항공권이 하필 제주도 패키지 포함이었고(이왕이면 제주도 여행도 하고 좋잖아! 라고 친구가 말했을땐 나도 그저 헤벌레 좋아라 찬성했다), 나는 별도 1인용 여행비를 내고 공항에서 만나 그 팀에 합류했다. 허나 제주 공항에 내려 관광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버스엔 '고국방문단 환영'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옆구리에 붙어 있고, 비디오 촬영기사가 계속 일행을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촬영했다. ㅠ.ㅠ 대부분 십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민자들이라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으로 남길만한 상황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 나와 친구 일행은 거의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로 그 비디오 테이프를 사지 않을 테니 찍지 말라고 가이드와 촬영기사에게 극구 당부해보아도, 같은 여행 팀이니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에 협조해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우웩~~!!

어쨌거나 때는 가을이 한창이라, 나는 버스에서 제주 오름 근처의 억새밭이 정말 장관이겠다고 미리부터 운을 띄웠다. 가을 제주 바다는 또 얼마나 예쁜 옥색인지 몰라. 바닷물도 아직 따뜻할 걸... 그러나,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고국방문단을 위한 제주 관광 코스는 정말 너무 심했다. 관광지 하나 건성으로 휙 보고 특산품 판매점에 가면 1시간 반씩 머무는 걸 3일 내내 번갈아할 줄이야! 특산품도 내가 예전에 소개받던 것과는 가격대가 아예 달랐다. 대부분 하나에 수십만원을 넘어 백만원에 가까운 말뼈(관절염과 골다공증에 특효라나)! 동충하초(설명만 들으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두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아가리쿠스 버섯(항암과 당뇨치료제라고 들은듯)! 워낙 고가인지라 그런 상품을 사면 자연산 꿀이랑 로열젤리(십수년 전엔 내가 돈 깨나 주고 사왔었는데!)를 덤으로 막 준다고 했다. 일행중 우리만 삼십대였고, 동영상 촬영거부에다 쇼핑은 전혀 할 마음이 없어 상품설명할 때 일부러 휘휘 농장 구경이나 다니고 있으니 가이드에겐 미운털 깨나 박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싫은 데 어쩌라고!

관광지라도 제대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어쩜... 바다라곤 용두암과 외돌괴 두 가지만 딱 보여주더니 잠수함, 유람선 타는 것도 옵션, 몽고인들의 조랑말 쇼도 옵션(제주도 가서 왜 몽고 조랑말 쇼를 보라는 건지!), 조랑말 시승도 옵션, 무슨무슨 박물관도 옵션... 죄다 돈내고 하는 것만 강요했다. 물론 억새밭 구경과 제주 해수욕장 구경 따위는 아예 코스에 없었다. -_-; 오죽하면 사흘간 제주 관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친구가 꼽은 것이, 호텔 마당 앞 풍차 카페에서 밤에 맥주랑 칵테일 마신 거였다. 우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려고 간 거라규~! 결국 우린 관심없는 옵션 코스 때 관광버스에 그냥 남아있겠노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으나, '안전 관리상 불가'하다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다 이민자인데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내가 가이드에게도 골칫거리였을 테지만, 아니 말이 안통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제주도엘 벌써 몇번째인데! 어휴!

째뜬 덕분에 나는 제주도에 그토록 수많은 특산품 면세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수정은 익산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 글쎄, 제주도에서도 팔더군! ㅋㅋ 정말로 또 LA 부자 교포아주머니들은 이따시 만한 자수정 금반지와 목걸이를 막 척척 사주시고... 가이드는 싱글벙글...  촬영기사 아저씨는 그들을 열심히 비디오카메라로 찍어대고... 정말 우리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는 제주여행이었다.

동네 근방에 있는 <고려인삼 면세점> 앞에 선 관광버스 행렬과 외국인들을 보며, 자꾸만 그 때의 '고국방문단' 패키지 여행이 떠올라 유심히 사람들 얼굴을 살피는데 내 선입견 탓인지 표정들이 다 좋질 않다. 명동은 물론이고 이대앞과 홍대앞에도 와글와글 지도 들고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들어보면 개인으로 찾는 일부 한류관광객들이 아닌 한, 그들도 하루쯤 시내 자유관광을 하는 것일 뿐 역시나 저렴한 패키지 상품으로 여기저기 특산품 면세점에 끌려다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한국과 서울을 '관광'하고 나면 또 다시 오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들까? 어차피 패키지 상품이라는 것의 특징과 단점을 그들도 알고 오긴 했겠지만, 한류를 업고 여행사마다 싸구려 상품으로 외국인들 데려다가 망신만 시키는 건 아닌지 퍽 궁금하다. 내가 아무리 제주도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나중에 변명해 보아도, 친구와 언니에게 제주도는 음식도 별로 맛없고, 구경할 데도 별로 없으면서 바람만 엄청 불고, 야자수는 말라죽는 곳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수년 뒤 다시 온 친구에게  내가 제대로 제주여행 가자니깐, 차라리 일본엘 가자고 했을라고. +_+ 친구는 올 가을쯤 다시 한국으로 놀러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제주 올레길 한번 걸어볼래? 라는 나의 질문에 역시나 방사능 괜찮은 곳으로 골라서 일본 온천이나 가자니깐! 하고 대답했다. 첫인상은 이렇게 중요한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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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하나마나 푸념 2012. 3. 2. 17:55

내가 중학생 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아도 도통 기억이 선명하질 않다. 그때만 해도 성적은 그리 중대사가 아니었으니 아마도 친구 문제였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중학생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니뭐니해도 첫째가 '외모'다. -_-; 친구도 '외모'가 따라줘야 만들수 있는 거라나 뭐라나. 내 경우 그 시절 외모는 최대 관심사가 아니었다. 확실하다. 미용실보다 커트 비용이 훨씬 싸다는 이유로 엄마는 가끔 나를 우리집 바로 옆에 있던 '이발소'에 보낸 적도 있었는데, 들어가고 나올 때 누가 볼까봐 창피해서 그렇지, 맞다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키가 너무 작아서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 판자를 가로 얹고 그 위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 취급을 받는 게 민망하긴 했어도 어차피 귀밑 1, 2센티미터로 자르는 단발머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요즘 여중생은 확연히 다르다.

중학생이 되면서 여드름을 가리느라 비비크림을 상용해 '심히' 뽀얀 얼굴을 만들고 다니던 조카는 여름 방학에도, 이번 겨울 방학에도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방학 전부터 제 부모에게 염색을 졸랐으나 개학때 또 다시 검정색으로 바꾸는 미용실 비용까지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반대했더니 친구랑 손수 염색약을 사서 해치웠다고 했다. 예뻐보이려고 어른들도 흔히 하는 염색을 아이라고 못하게 하는 건(파마약과 염색약이 유전자 변형을 가져온다는 말 정도는 안통한다. 거리에만 나가봐도 머리 물들인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가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엔 며칠 버티다 다시 검정 물을 들였었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번엔 '학생인권조례'를 빌미로 버티기를 할 모양이다. 원래도 고리타분하고 규율이 엄한 그놈의 학교의 반응은 어떨지 30년 동문 선배이자 고모인 나는 벌써부터 걱정인데, 녀석은 천하태평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똘똘한 일부 학생들과 깨어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학생인권조례'는 교과부의 반발로 허공에 붕 떠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기껏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교권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무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됐을 때, 몇몇 보수 단체에서 '임신, 에이즈, 동성애 창궐' 따위의 피켓을 들고 반대시위를 하는 걸 보고 나는 기가 막혔다. 서울교육청에 가서 학생인권조례 전문을 다운받아 읽어보았지만, 도대체 어떤 문구에서 그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임신이나 질병, 종교, 동성애 따위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아이들의 권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부추기고 조장할 거라는 논리로 발전하는지 원. 그럼 그런 아이들은 무조건 퇴학시키고 또래들과 차단하여 '격리'시켜야 옳단 말인가?

학원폭력과 왕따 문제로 가해자 아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그 어느때보다 높고 경찰까지 개입해 해결하려는 추세지만, 나는 결과를 놓고 처벌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예방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어쩌다가 중고생 아이들이 조폭 수준의 폭력과 증오를 실천하게 되었는지, 근본원인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주의 사회에서는 더는 그들을 '선도'할 희망이 없으며, 단죄밖에 길이 없다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가정도, 학교도 우리 아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면 대체 어쩌라고!

학창시절 불행히도 나는 존경할만한 스승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괜찮은 선생님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존경'스럽진 않았기에, 기억나는 선생님 이름이 거의 없을 정도다. 대신 죽도록 싫었던 교사들의 얼굴은 잘 잊히질 않는다. 걸핏하면 "너희는 노예근성에 물들었다"면서 단체기합을 주거나 몽둥이로 다섯대씩 우리 엉덩이를 때렸던 사람, 소풍 때 '빨간색 진바지'를 입고 왔다는 이유로 다음날 교단에서 가위를 번득이며 아이의 귀 옆머리를 싹둑 달랐던 여선생(웃기는 건 그 사람의 별명이 하도 빨간바지를 애용해 '빨간바지'였다는 것;; 빨간바지를 입는 것이 교사만의 특권이라 생각했을까? 당시엔 무려 '교복자율화 시대'라 사복입고 다닐 때였다.), 별 이유도 없이 플라스틱 분필통이 부서져라 학생의 머리통을 두들긴 사람.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그들의 폭력을 지켜보며 우리는 더욱 분노하고 좌절했을 뿐, 학습태도가 좋아지거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졸업해 지긋지긋한 그들을 안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고나 할까.

교사일을 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정말로 아무리 인간적으로 대해도 소용없는 '근본이 사악하고' '구제불능인' 아이들이 있으며, 못되게도 온갖 조롱으로 선생 길들이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실행은 안 그래도 바닥에 떨어진 교권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조치라고.  현장에서 현실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니 뭐라고 말을 보태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과거 학창시절을 돌아볼 때 학생들의 인권은 중요하며 폭력과 체벌은 어떤 이름으로든 미화될 수 없다. 사랑의 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단체로 두들겨 맞으며, 사랑의 매라고 느껴본 적 나는 단 한번도 없다. 별것도 아닌 말썽을 부려 교사에게 매를 맞는 친구를 지켜보면서도, 같은 학생으로서 자존심이 상했으면 상했지 그것이 사랑의 매라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없다. 그저 교사로서 자기 자존심이 구겨졌기 때문에, 분노를 삭이지 못해 하는 분풀이로 여겨졌을 뿐이다.

스스로 삐딱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고 아무리 되뇌여도 사춘기 조카를 지켜보거나 대화를 나눠보면 내가 꽤나 고리타분한 어른이라는 실감이 수시로 든다. '다리 길~어보이려고' 교복 치마 허리춤을 접어 짤뚱한 미니스커트로 입고 다니고, 영하 십몇도까지 내려가도 얇은 스타킹만 고집하는 건 자꾸 눈쌀이 찌푸려진다. 책가방으로 맨 베낭의 어깨끈이 너무 길어 축 늘어진 가방이 엉덩이에 대롱거리는 것도 안 예쁘고, 또 복장 상관없이 흉측한 삼선슬리퍼를 똑같이 신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중고생들은 정말 밉다. 그런데 그들에겐 또 그게 개성이고 멋이다. 나도 안다. 어떻게든 내 생각을 설득해보려하지만 결국 말문이 막히는 쪽은 늘 나다. 고모가 Why not?이라며! 헉. 맞다. 교복 좀 짧게 입고 다닌다고, 여중생이 머리를 물들이고 파마를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옛날처럼 귀밑 1, 2센티미터 단발머리나 까까머리로 통일시키는 게 아니고서야, 학교에서 원하는 통일성 따위는 이미 불가능하다. 학생은 머리색이 반드시 검정이어야 한다는 것도 크게 보면 순혈주의, 인종차별의 냄새를 풍길 수 있다.  머리모양 하나, 똑같은 교복의 모양새 하나에서부터 일탈을 시도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획일화 사고를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창의력까지 높아진다는 사례는 혹시 없으려나? -_-; 

새까만 머리는 촌스러움을 대변한다는 미용업계의 세뇌에 힘입어, 나도 한동안 열심히 머리색을 이리저리 바꿔본 사람이다. 그래봤자 흐리고 짙은 톤의 다양한 갈색머리를 시도하거나 부분염색으로 얼룩덜룩 파격을 시도했던 것인데, 그도 관둔지 오래다. 그땐 그게 '스타일리시'하고 멋져 보이더니만 이젠 귀찮음이 더 크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러니깐 애들도 그냥 놔두면 지지고볶고 이리저리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개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꾸만 더 하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교육자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TV만 틀면 하나같이 샛노랗게, 새하얗게, 새파랗게 머리를 물들인 연예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데 말이다. 

애어른인 듯 굴었던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사춘기 아이들이 훨씬 더 어리고 의존적이며 철도 없으면서 이기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애들이 그렇게 자라난 데는 어른들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성적만이 유일한 미덕이라고 부추기면서 그 외의 인간성 교육은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사교육에 밀려나고, 체벌 대신 벌점제도를 도입하면서 상당수 교사들은 더욱더 '선생님'이기보다 '평가요원'과 '행정직원'의 성향이 짙어졌다.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 문제 있는 아이는 걸러내버리면 그만이라는 듯한 요즘 학교 분위기가 나는 참 무섭다. 계속 거르고 걸러서 뽑아낸 '엘리트' 아이들과  버려진 아이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얼까. 공부 잘하는 능력과 체제순응형 DNA?

블로그 이웃이신 두분 선생님(한분은 한국에서 사회를, 한분은 영국에서 수학을 가르치신다)의 학교 이야기를 기웃거리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 고군분투하시는 걸 보면 계속 감탄스럽고 그곳 학생들이 참 부럽다. 학교에 정말 그런 선생님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학생노릇 할 맛이 날 것 같다. 이왕이면 조카들도 그런 선생님을 한분이라도 만나게 되길 바라고 있으나, 그런 행운이 쉽진 않을 것이다.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겨도 좋겠다 싶은 선생님'이 이상적인 교사상이라는 말이 있지만, 세상에 그런 선생님이 어디 흔한가. 그러니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개떡같은 학교라고 해도 몇년만 버티면 돼. 원래 세상이란 데가 불공평한 곳이야. 스무살 때부턴 정말 니 맘대로 하고 살 수 있어" 정도다. 참 내...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에게 이게 과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냐고! 

어쨌거나 조카는 오늘 치렁치렁 길러 밝은 갈색으로 물을 들인 머리로 개학을 맞았을 것이고 새 담임에게 첫눈에 '찍혔'을 지도 모르겠다. 벌점이 무섭든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귀찮든 해서 녀석이 머리칼을 다시 검게 물들일지 어쩔지는 두고봐야알겠지만, 'why not?'의 태도가 퍽이나 긍정적이라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나는 조카의 삐딱함을 계속 응원하고 지지해줄 수밖에 없다. 좀 지나면 녀석도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게 미덕임을 깨닫게 될 날이 올거라 믿으면서. (그치만 또 평범한 게 진짜 제일 어려운 건데...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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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제일 어린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다녀왔다. 작년에 이미 녀석의 끼가 얼마나 출중한지 깜짝 놀라며 감탄했기에 올해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녀석은 요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울 엄마의 촌평을 그대로 빌리자면, "비싼 돈 주고 가서 본 뮤지컬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났다". 정말로 무대가 어찌나 화려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한지 주최측에서 심혈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났다. 집중력이 5분, 10분도 안되는 꼬마애들을 데리고 얼마나 진을 빼며 연습을 시켰을지 선생님들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개인당 대여섯 개는 되는 출연분량에 따라 율동과 노래, 때로는 대사를 연습하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했을 아이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어휴... 감탄과 더불어 탄식도 절로 나왔다.

10여년 전, 첫조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재롱잔치는 그야말로 유치원 강당에서 선보이는 원생들의 소규모 발표회였다. 의상이래봤자 흰티에 청바지, 한복 정도였고 동식물 역할 같은 특수의상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약소하게 꾸며 만든 소품이었던 것 같다. 아, 그때도 운동복이나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시범을 보이는 순서는 있었다. 헌데 몇년 지나지 않아 둘째조카 때부터 재롱잔치가 점점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지더니, 요샌 의상이며 조명이 가히 아이돌 그룹의 단체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위해 전문 시스템을 동원하고 체육관 같은 공연장을 빌려 '빵빵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 역시 관람을 매우 즐겼기 때문이다. 유치원 재롱잔치의 목적이 아이들의 성취감과 발표력, 혐동심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니, 이왕이면 번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원장님들의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어차피 의상비며 소요비용을 학부형들이 부담해야하는 형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똑같이 무대의상비를 부담했는데, 자기 아이가 입고 나온 무대의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공연장 대관 형편 때문에 평일 저녁 6시로 잡힌 재롱잔치를 나로선 기쁜 마음으로 보러갔지만, 직장 사정상 참석 못하는 부모는 없을까 괜한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콘서트장에 오듯 형광글씨 요란한 피켓까지 만들어들고 집안 식구들 대거 동원해 온 가족들도 있는 반면, 그럴 형편이 안되는 집안도 당연히 있지 않겠나. 작년엔 우리도 피켓이랍시고 스케치북에 색종이를 오려 급조한 응원판을 들었으나, 올해는 쿨하게 스마트폰 전광판을 이용하기로 했고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조카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앙증맞은 아이들의 몸놀림이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웃음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올해는 완전히 모든 출연 프로그램의 '메인'을 꿰차고 무대 중앙에서 제일 열심히 신나게 정확한 동작으로 춤과 연주를 보여주는 조카 덕분에 어깨까지 으쓱했다.

그.러.나. 까칠한 인간의 취향은 어디 가도 드러나는 법. 대체로 훌륭했다고 평할 수 있는 공연이건만 중간중간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몇번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싶은 시대착오적인 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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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번역가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할 때 
잘 생각했어! 어디가도 진짜 이만한 직업이 없지! 강추야! 완전 좋아! 날 보면 알잖아!
....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어... 진짜? 왜 하필 이런 지난한 길을? 꼭 해야겠어? 꽤 오래 힘겹게 버틸 자신 있어? 덤벼들 실력은 있고? 겉보기보다 이 일이 실체는 퍽 초라한데... (원고료 5백원 올리자고 협상하고 있으려면 정말이지 우어~!!)
라며 자꾸 초를 치게 된다.

본의아니게 최근 번역가를 꿈꾸는 두 사람에게 번역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조언을 해주게 됐다.
한 사람은 너무 어려서 (친구 딸의 후배 ㅠ.ㅠ) 앞으로 진로변경의 가능성이 훨씬 더 많으니까 현실적인 부분보다는 꽤나 아련하고 황홀한 꿈으로 포장해주고 나서 자책감에 휩싸였다. 나중에 정말로 번역가의 길에 들어선 그 소녀가 막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_+ (걱정도 팔자라고 곧 머리를 흔들었다.)
또 한사람, 지금 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일을 '때려치우고' 번역공부를 위해 전공을 바꿔 진학까지 결심했다는 낯선 이에게는 정 하고 싶으면 도전해보라고 빤한 권유와 함께 나름의 노하우와 현실적인 고충을 대강 알려주긴 했으나, 역시나 마음이 꺼림칙하다. 희망에 차올라 거듭 감사 인사를 하는 그의 답 메일을 열어보고 나니 더더욱. 하도 망해 넘어가는 출판사가 많아 나도 이 일로 노년까지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아닐지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드는 판국에 잘하는 짓일까나. (그치만 출판계에 있으니 그 정도 사정은 본인도 알지 않겠어? 라며 책임 회피 중)

한 1, 2 백년쯤 지난 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이 생겨나고 했을 무렵, 번역가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해 있을지 돌연 궁금하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직업 추천하고 앉았는게 설마 죄는 아니겠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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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요즘 세상이 너무 쓰디써 달콤함이 몹시 필요하다.

언제고 내가 꼭 내려가 살고 싶은 제주도에 난데없는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강정마을엔 결국 오늘 공사강행이 시작된 모양이고,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축출됐던 강용석의 국회의원 제명은 똑같은 놈들의 비호로 부결되었으며, 6년이나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 친구를 집단 성추행했던 고대 의대생들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수위는 쉬쉬 하는 분위기 속에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몇해 전 운동권 학생들은 2주만에 전격 출교(재입학이 불가한 최고 수준의 징계란다)시킨 고대가 돈많고 빽 든든한 의대생들은 퇴학(한학기만 지나면 재입학할 수 있다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니, 하는 꼬라지가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랑 수준이 딱 맞다. 에이 더러운 것들. 성폭력 피해자에게 꼭 니들이 짧은 치마 야한 옷 입고서 먼저 범죄를 유발했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기막힌 논리가 언제까지 통하려는지 원!

아, 이렇게 더럽고 쓴 세상 때문에 달달한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딴길로 빠진다. 모두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유머와 자랑질로만 블로그를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은 온통 분노할 일 뿐이다. 잠깐 릴랙스, 릴랙스...

요리에 대해서 별 두려움은 없지만 내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한 것이 바로 베이킹의 세계다. 집에서 척척 스콘 굽고 초코칩 쿠키 만들고 심지어 새우깡까지 홈메이드로 만들어 간간이 맛을 보여주는 친구를 보노라면 완전 요술쟁이 같아 자꾸만 관심이 쏠린다. 집에 오븐이 없기에망정이지 있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러나 내가 '원래' 그리 단것과 간식을 즐기지 않는데다 베이킹은 곧 탄수화물 및 고밀도 과당 섭취의 지름길이므로 (왕비마마의!) 건강상 애써 멀리해왔다.

그런데 아뿔싸. 요즘엔 물부어 대충 반죽한뒤 전자렌지에 띵~ 돌리면 베이킹이 끝나는 온갖 '믹스'들이 마트에 깔려 저마다 손짓을 보낸다. 게다가 TV에선 잘생긴 고수가 너도 한번 해보라고, 엄청 쉽다고 유혹까지... ㅠ.ㅠ

결국 유혹에 넘어가 <흰눈표 브라우니 믹스>를 사다가 시도해봤다. 오, 놀랍게도 정말 단번에 '거의' 성공. 덜 식혀서 잘라 먹는 바람에 모양이 좀 흩어지긴 했으되 촉촉하고 달달한 데다 초코칩 덩어리까지 막 씹히는 것이 꽤 훌륭했다. 비록 달랑 320g에 1440칼로리라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눠먹으면 되지 뭐 이럼서 벌써 세번째 시도. 두번째 작품(?)을 먹어본 조카들도 진짜 산 것처럼 맛있다며 열화와 같은 칭찬을 안겨주었다.

자랑스러워 찍어놓은 세번째 브라우니의 자태는 이러하다.


설명서엔 평평한 네모 그릇에 담아 전자렌지 용량에 따라 3분 30초에서 4분 돌리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4분 10초 돌렸다. 직사각형 그릇이라 그런지 처음 가운데가 푹 꺼져 거기만 잘 안익어 시간을 연장해야했기 때문. 오른쪽 사진은 6등분해서 자른 것. 한 조각당 무려 240 칼로리지만, 커피와 함께 치명적인 달콤함에 빠지는 순간에는 더러운 세상따위 잠깐 잊을 수 있다. 그런데... 입맛이 유독 써서 어느 날보다 달콤함이 필요한 오늘은 남은 게 없다. 어제 밤참으로 마지막 조각을 홀랑 다 먹어버려서. 뚫어져라 쳐다보며 사진으로라도 달콤함을 불러일으켜야겠다.  

단 거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자꾸 단것을 찾게 만드는 팍팍한 세상. 어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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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을 맛없어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던 덕분인지 국립국어원에서 요번에  드디어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반가운 소식. 출판사 트위터를 몇군데 팔로우 했더니 오늘 종일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타임라인에 떴다. 그 기념으로 점심때 짜장면 먹으러 갔다는 증거사진까지 첨부해서.

짜장면을 포함해 새로이 표준어로 인정된 단어가 39개나 된다'길래'(그간 '~기에'만 표준어였는데 이제 바뀌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가서 일부러 퍼왔다. 컴퓨터에 파일 저장해두어도 좀 지나면 어디 있는지 헤매겠지만 여기다 옮겨놓으면 제일 접근성이 좋을듯하여...
번역 초창기 시절 <간지럽히다>가 표준어가 아니라 책에 <간질이다>로 바뀌어 있는 걸 보고 정말 뜨악했었다. (사이시옷 푸념할 때 썼듯이 기묘한 맞춤법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표준어의 정의가 서울 경기 지방 중산층이 쓰는 말로 알고 있었기에 꽤나 잘난 척 내가 쓰는 말은 죄다 표준어일 거라 믿었던 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사전을 찾아보며 기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쨌든 요번에 현실성을 반영하여 인정된 낱말들을 보니 다 반갑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건, 짜장면, 맨날, ~길래, 허접쓰레기, 걸리적거리다, 복숭아뼈, 떨구다, 손주!! ^^
누가 뭐래도 <짜장면>과 <장마비>, <막내동생>은 고수하며 살겠다고 포스팅한지 불과 몇주만에 이런 소식이 날아드니 조만간 우스꽝스러운 '막냇동생'도 제대로 바꿔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막 솟는 것 같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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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원고의 맞춤법은 어디까지나 편집자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고는 하나, <손댈 데 없는 매끈한 원고>를 일단 목표로 삼으려면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기에 민망했던 수많은 낱말들(째째하다/쩨쩨하다, 금새/금세, 궁시렁/구시렁, -데와 -대의 구별 등 무진장 많다!)이야 얼른 수긍하고 앞으로 잘 쓰면 그만인데, 원칙과 옳은 것을 알고도 도무지 마음에 안드는 게 현 외래어 표기와 사이시옷이다.

경음은 사회가 각박해진다나 뭐라나 해서 잘 못쓰게 하는 바람에 짜장면을 굳이 <자장면>으로 강요해왔으면서 또 왜 그리 예외는 많은지(일관성 없게 <짬뽕>은 뭔가?!). 태국과 베트남어는 경음 표기가 허용되고 왜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는 경음으로 표기하면 안되는가 말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불만(<흔히들 bulldog을 <불독>이라고 쓰지만 맞는 표기는 <불도그>라는 걸 아시는지? ㅠ.ㅠ 하기야 <핫독>이 아니라 <핫도그>니까...)은 나중에 기회되면 입에 거품 물며 따로 쓰기로 하고, 일단은 사이시옷 성토나 좀 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 사전을 퍼왔다.  

사이-시옷[---옫]사이시옷만[---온-]〕
명사」『언어
한글 맞춤법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났을 때 쓰는 ‘ㅅ’의 이름. 순우리말 또는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 가운데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거나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따위에 받치어 적는다. ‘아랫방’, ‘아랫니’, ‘나뭇잎’ 따위가 있다. ≒중간시옷.

위에서 예로 든 나뭇잎, 아랫니, 아랫방을 비롯하여 <웃옷, 뒷방>같은 것들은 하도 오래전부터 사이시옷을 넣어 써왔으니 옳다고 보는 데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김칫국>도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북엇국, 감잣국>은 어떤가? 북어국, 감자국은 늘 끓여먹고 살아왔지만 <북엇국, 감잣국>이라면 먹기 싫어질 듯한 느낌마저 든다. -_-; 원칙에 따르면 순대국, 칼국수집, 떡볶이집도 <순댓국, 칼국숫집, 떡볶잇집>이라 써야 옳다.

뭐니해도 여름 내내 일기예보 보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표현은 <장맛비>. 그냥 편안하고 부드럽게 경음 발음없이 <장마비>라고 하면 좀 좋은가! 그런데 왜 꼭 저놈의 사이시옷 때문에 [장맏삐]로 발음해야 하느냐고!!! 장독대에 열어둔 장항아리에 들어갔다 튕겨나와 맛이 엄청 짜게 변한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비라면 모를까, 여름 장마 때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분명 <장맛비>가 아니라 <장마비>라 우기고만 싶다. 

최근 경악하며 발견한 사이시옷의 싫은 예 중 최고는 바로 <막냇동생>. 내 평생 <막내동생>이 옳은 말이라 알고 써왔는데 아니란다. <막내동생>이 [망내동생]으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는 발음이라면 <막냇동생>은 낱말의 생김새부터, [망내똥생, (심지어는) 망낻똥생]이라는 발음까지 어쩐지 정 떨어지고 짜증나는 느낌이다. 

어차피 언어는 생명을 지니고 계속 변화하는 유기체이므로 특정 기관에서 시기별로 다수의 용례에 따라 원칙을 정하는 게 맞다고 동의한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맞춤법이 이리 바뀌었다 저리 바뀌었다 하는 것이라고 이해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표기법이 바뀔 때마다 이상하게 시대를 역행해 퇴보하는 듯한 맞춤법이 꼭 있다. 많이 헷갈려서 그렇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원칙이라 여겨 특히 사이시옷을 미워하고 있었는데, 요번 <막냇동생>에서 정말 뒷목(봐라, 여기도 쓸데없이 사이시옷 등장. 허나 '뒷목'은 심지어 표준어도 아니다. '목덜미'의 방언이라고... 쳇.)이 쭈뼛했다. -_-; 아무리 원칙이라 해도 나는 앞으로 <장마비>와 더불어 <막내동생>을 절대 사수할거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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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국민들이 영어에 미친 요즘과 달리 꽤 구세대인 나는 당연히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 영어를 접했다. 그때 처음 느낀 영어에 대한 인상이 무엇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참 복잡하고 남녀차별적인 언어구나 하는 생각은 줄곧 이어졌다(고등학교 진학 후 불어를 만나 형용사마저 성별을 달리하는 걸 보고 더욱 경악했지만;;). 인칭별로 달라지는 be동사도 이상하고, 시제별 동사변화(특히 불규칙 동사!)도 이상하고 특히나 인칭대명사는 참 이상했다. 그냥 '그 사람, 그분, 걔'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성별따져서 he/she 나누는 것도 웃기고 '그녀'라는 말도 웃겼다.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지만 시사영어사판 중1 교과서 첫과 즈음에서 She가 등장했을 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영어선생이 "그녀는 OOO입니다"라고 한 설명을 '그년은'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이 수업시간에 욕을 하다니! 나처럼 오해한 아이들이 꽤 있었던듯 누군가 킥킥 웃기도 했던 것도 같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영어와 '그녀'라는 말이 우리말에 도입된 역사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명실공히 여성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로 번역서뿐만 아니라 국내 문학이나 언론, 방송, 일상생활에 뿌리 깊이 자리를 잡았다. 다만 원래도 대명사를 잘 쓰지 않는 우리말 습관 때문에 입말에서만큼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을 뿐이다. 구어체에서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 '그들'도 잘 쓰이지 않는다. 괜히 욕을 바가지로 먹고 싶다면 일상적인 입말로 저런 인칭대명사를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녀가 오늘은 좀 늦네. 그녀에게 전화 좀 해봐." "그들은 언제 오니?"라는 식으로. -_-;

번역과 관련된 노하우나 경험담을 담은 책을 보면 'he/she'를 번역할 때 '그/그녀'를 적절히 사용하라는 조언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특히 엄마, 할머니, 심지어 여동생을 가리키는 대화에서도 계속 꿋꿋하게'그녀'라고 해놓은 번역서를 만나면 아주 난감하다. 특별히 가족을 남으로 대하는 인물이거나 성격상 후레자식이 아니고서야... 쩝...
또 한 가지, 쓸데없이 복수명사에 얽매여 '들'을 붙이지만 않아도 초짜 티를 벗어날 수 있다는 팁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선 사물에 복수형을 붙여 <거리마다 쏟아져 나온 자동차의 홍수 속에서...>라는 식으로 쓰면 틀린 건 아니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마다'라는 조사와 '홍수'라는 표현에서 이미 거리와 자동차 여럿의 이미지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 학생들, 어른들, 애들, 노인들처럼 사람의 경우엔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그녀들'이다.

똑같이 '걔'나 '그사람', '그분'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그/그녀로 나누어 성차별을 했던 he/she도 여럿이 뭉치면 사이좋게 다시 그들/they 하나로 통합된다는 기본적인 영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영어로는 똑같이 they인 말을 한글에선 왜 굳이 '그녀들'로 바꾸게 된 걸까? man이 남자이면서 인간을 대표하는 것처럼 '그'의 복수형인 '그들'이 3인칭복수형의 대표가 되는 것에 열이 뻗친 이 땅의 여성주의자들이 우리말 번역에라도 별도의 복수형을 만들어야겠다고 주장한 것은 설마 아닐테고...

그 정도로 언어를 연구했다면 3인칭 여성 단수로 '그녀'가 당연한 듯 쓰이기 전에는 '그'나 '저'가 성차별없이 공용으로 쓰였음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는데 말이다. 이제껏 작업한 번역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소설이었던 터라 '그녀'의 효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더러 이름으로 바꾸기도 하고 생략도 해보지만, '그녀'를 아주 안쓰고는 못배긴다. 그만큼 '그녀'는 이제 우리말과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인정한다. 그건 그렇다쳐도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그녀들'은 확실히 아니다 싶다. 소설가나 시인 앞에 굳이 '여류'를 붙여 폄하하는 태도처럼 나에겐 참으로 못마땅하고, 특히나 잡지와 광고에서 수시로 쏟아지는 '그녀들' 때문에 너무 싫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녀들의 발칙한 반란이 시작된다.'
'독하게 성공한 그녀들의 비법을 소개한다.'
'잘 나가는 그녀들이 여기 다 모였다'
우웩~~~~!!!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대로 된 우리말에 그녀들은 없다(영어에도 없다니깐!!). 그들이 있을 뿐이다. 걔들, 또는 그분들이거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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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야 안다", "시도해보지 않는 한은 알지 못한다"며 고집을 부리는 경우 나는 종종 어떤 건 안 해봐도 안다, 고 코웃음쳤다. 예를 들면, 4대강 파헤치기 같은 현 정부의 수많은 정책들. 그놈의 4대강 정비사업 때문에 구미엔 며칠간 수돗물이 끊기고, 생각없이 물길을 바꾸는 바람에 파헤쳐도 파헤쳐도 소용없이 토사가 쌓이거나 반대로 무섭게 흙이 깎여 나가는 강둑의 사진을 보며, 그것봐라 했다.

꽤 오래 전 일몰이 아름답다는 서산 꽃지 해수욕장에 갔을 때 경악했다. 거긴 해수욕장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모래사장이 하나도 없이 흉하게 자갈과 돌멩이가 바닥에 깔려 있고 해안에 둘러쳐진 시멘트 방둑까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어딘가 방파제인지 방조제를 쌓는 바람에 조류가 바뀌어 아무리 여름마다 모래를 가져다 쌓아도 죄다 쓸려나간다고 했다. 아무리 꽃지해수욕장 일몰이 아름답고 할미, 할아비 바위가 멋져도 해수욕장이 원래 해수욕장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나.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실망스러움 때문에 다시는 가보고 싶지도 않다. 어린 시절 바다로서 처음 만난 서해안의 결 고운 모래사장이 발에 닿는 감촉이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웠는데, 인간의 탐욕과 오류로 그걸 다 잃고 말다니. 

물론 실제로 시도해보았대도 모를 수 있다.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시도했던 방법이 실패를 거두었다면 또 맹목적으로 다른 오류를 범하기 전에 제대로 된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아예 그냥 내버려두면 좋을텐데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이놈의 삽질 공화국의 무작정 저지르기는 도대체 끝도 없다. 어지럽고 짜증난다. 그나마 삼색 화살표 신호등은 철회한다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안해봐도 아는 게 있고, 해봐도 모르는 게 있으니 함부로 크게 저지르면 안된다는 교훈 저들도 좀 깨달았으면.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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