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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01.07 그놈의 공부 20

밥먹는 동안 틀어놓은 뉴스에서 언뜻 듣기는 했어도 뭥미 하고 말았는데, 실제로 목도하니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투덜거려야겠다. 삼색 신호등 이야기다. 적황녹색에 초록색 화살표까지 신호가 네 개 달린 현재의 신호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인 삼색 신호등으로 바꾸고 화살표는 따로 그 옆에 신호등을 달아 자동차의 좌회전 방향을 정확하게 유도하겠다는 것이 경찰청 발표의 요지다. 신호등 왼쪽에 별도로 매달린 빨간색 화살표 등이 들어오면 좌회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표시란다. 문제의 화살표 신호등은 이렇게 생겼다. 진짜로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많은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교차로마다 신호등이 가로로 매달려 있는지 세로로 매달려 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저런 삼색 화살표 신호등은 본 기억이 없건만,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신호등이 세계 표준이 되었는지? 설사 세계 표준이라는 게 있어서 최근 절반 이상의 국가들이 신호체계를 '통일'했다 치자. 우리는 왜 꼭 굳이 그걸 따라가야 하는 걸까? 그것도 국민이 내는 피같은 생돈을 처들여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신호체계를 재정비해야,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별 혼동 없이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리던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운전 못하는 이유가 순전히 신호체계 때문이라고 그들은 정말로 착각하는 걸까? +_+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경찰청에선 홍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험운행에 들어간 바람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뿐이며, 원래 모든 변화는 얼마간의 불편과 적응기간을 필요로하므로 계속 강행하겠다는 듯하다. 어제 저놈의 삼색 신호등 때문에 사고날 뻔한 순간을 겪은 순간, 운전석에만 앉으면 욕쟁이 아줌마가 되는 내 입에서는 "미친 놈들 돈지랄 삽질하고 앉았네!"라고 거침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우리 동네 앞길은 가뜩이나 오래된 구불구불 도로인 데다 머리 위로 간선도로까지 지나가는 바람에 초행길인 사람은 교차로에서 진행방향 차로도 헷갈리는 곳이다. 그리고 근처 재래시장 주변의 삼거리는 각도가 워낙 오묘하여 원래 있던 신호등에도 헷갈림 방지를 위해 초록색 화살표 두개가(좌회전과 직진용이라지만 좌회전 표시는 각도가 10시 방향으로, 직진용도 1시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친절한 화살표 신호등 대신에 광화문 일대에서만 시험운행 한다고 들은 그 문제의 삼색등으로 어느 틈에 바뀐 거다.

신호에 걸려 멈춰있다가 내가 직진 신호를 받고 맨앞에서 출발한 순간, 문제의 삼거리에서 저 삼색 화살표 신호등의 빨간 화살표를 본 운전자도 동시에 앞으로 들이닥쳤다. (人자 형태의 삼거리라 반대쪽 신호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상대방 운전자는 좌회전 화살표가 켜지면 그게 무슨 색깔이든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빨간 화살표가 '멈춤'의 뜻이라는 건 교육이나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전제의 오류 아닐까? 물론 모든 신호는 정하기 나름임을 안다. 빨간색은 멈춤이고 초록색은 진행이고 노란색은 경고의 뜻이라는 게 '세계 공통'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화살표는?? 빨간색이든 초록색이든 신호가 켜지는 순간 나도 본능적으로 액셀레이터를 밟을 것 같다.

얼마 전 좌회전 신호와 직진 신호의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한동안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기는 했고, 좌회전 신호 다음에 직진 신호에 익숙해 있던 나 역시 그에 맞춰 습관적으로 엑셀에 발을 올리는 시기가 있었으나 곧 적응했다. 교차로마다 현수막을 내걸어 이제는 직진 후에 좌회전 신호가 들어온다는 것을 꽤 오래 홍보했기 때문이고, 짧게 좌회전 신호를 주다가 이내 직진 신호로 바뀌는 체계보다는 바뀐 현 체계가 차량흐름에도 도움이 된다는 다수의 합의도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신호 순서만 바꿔 입력하면 되는 것이었을 테니,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신호등을 교체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신호등을 세개짜리로 죄다 바꿔다는 건 정말이지 그럴 필요가 있는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정말로 안전한지 심사숙고를 더 해봐야할 일이다. 

듣자하니 미쿡 따라하기 좋아하는 윗대가리들이 세계의 중심 '뉴욕 맨해튼 체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같다. 그럼 그렇지... 10여년 전이었을 거다. 서울에선 거리정비가 한창이었고, 팻말만 멀뚱히 서 있던 버스정류장에도 벤치를 놓고 ㄴ자로 유리 가림막을 세워올리는 '기특한' 공사가 사방에서 진행되었다. 버스정류장의 유리벽엔 상업광고판을 넣어 시의 재정도 올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LA 친구네 놀러갔던 나는 새로 생겨난 서울시내의 버스정류장이 LA 시내의 버스정류장과 모양도 크기도 형태도 똑같다는 걸 발견하고 실소했다. 그 디자인이 좋아보여서 로열티를 주고 사온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식하게 모방한 건지, 이른바 '벤치마킹'을 한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단지 영 매력없는 도시 LA를 무작정 따라하고 있는 서울시의 행정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뉴욕이냐? 미친 것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호등 체계는 이미 국제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직진하는 자동차나 보행자는 없지 않을까? 궁금해서 신호등의 역사를 위키피디아로 뒤지다 웃기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산당 혁명 이후 잠시 중국에서는 '빨간색 신호등'을 직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었단다. 빨간색이 혁명과 진보의 색이라는 취지였을 거다. 중국인들이 워낙 빨간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나 속옷도 양말도 빨간색을 선호하는 중국인들 역시 빨간색은 정지 신호이며 초록색이 진행신호임을 인정하고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신호 색깔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서 그저 색깔 화살표등 하나 더 달자는 것인데 왜 난리냐고 경찰청장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굳이 짜장면 아니면 김치찌개로 통일하라고 부하직원을 닥달하는 못되 처먹은 상사도 아니고, 대체 왜 새삼 신호등을 '선진화'하고 '국제표준'(찾아보니 현재의 네개짜리 신호등이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근거도 없다!)에 맞춰서 '통일'해야 하는지 나는 그걸 도무지 더 모르겠다. 그냥 좀 내버려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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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하나마나 푸념 2011. 4. 14. 16:06

가뜩이나 시끄럽게 온 사회가 떠들어대는 문제에 흥분한 입 하나 더 얹는 거 별로 좋은 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니 몇자 적어두는 것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어 '드레스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폭 넓은 한복이 거추장스러워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란다.(도무지 말이 안된다. 외할머니 산수연을 그 호텔 영빈관에서 했을 때, 당연히 음식은 뷔페식이었고 한복입고 참여한 친지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한복입고 밥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다했어도 사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실화니까 믿어도 좋다). 신라호텔 측은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사장이 직접 그 한복 디자이너를 찾아 사과했지만(이 소식을 나는 어제 밥먹다 뉴스에서 보았다) 논란은 계속되는 모양이다. 한복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까지 나오는 뉴스를 보며 나는 문득 카이스트 논란을 떠올렸다. 이 나라엔 자살공화국의 오명이 붙은지 오래고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와 취업난에 이중으로 시달린 대학생들은 해마다 이미 수백명씩 목숨을 끊어왔음에도 이토록 대학생 자살과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된 건 역시 단기간에 되풀이된 비극적인 자살의 장본인이 카이스트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물론 우수한 과학 인재를 국가적으로 지원 양성하겠다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설립된 카이스트의 징벌적 차별 등록금제는 사라져야 마땅하고, 학계에도 가차없이 적용되는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은 타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명 국립대라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과 비판과 대안을 촉구하는 계기가 된 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신라호텔 뷔페에서 한복 입었다고 쫓겨난 사람이 힘없고 이름없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청담동에 번듯한 한복숍을 소유하고 있는 유명 디자이너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만약에 내가 한복입은 울 엄마를 모시고 그 식당을 찾았다가 쫓겨났더라면 똑같이 트위터와 블로그에 불만을 토로했더라도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가의 3세 사장이 찾아와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테고.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라는 건 온갖 민영 건강보험 광고에서 귀에 못이박히도록 떠들어대지만, 그건 연령대를 통합했을 때의 일이다. 10대와 2, 30대의 경우엔 압도적인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는 통계상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해도, 작년 한해에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우리나라 '대학생'이 3백명에 가깝다는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일년 내내 거의 하루에 한명꼴로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어 생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닌가. 도무지 희망이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건 이 나라 10대도 마찬가지다.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는 중고생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뉴스에서 흘러나와도, 사람들은 다들 치러내는 그깟 부담감과 경쟁을 못 이겨낸 패배자로 치부하고 금세 잊는 분위기다. 기껏해야 만연된 우울증을 잠시 조명하면 다행이고.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데 많은이들이 공감하는데도 해마다 수백명씩 죽어나가는 이들의 자살이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무명의 힘없는 개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제도를 변경하기는 해도 절대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카이스트 총장은 외국 명문대에도 학과 부담을 못 이겨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더 많다고 했던가? 까먹었다) 항변했다. 얼추 맞는 말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 친구 하나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이런저런 추측만 나돌았을 뿐이었다. 찾아보면 대학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한 학생들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그 동기가 '살인적인 등록금', "무한경쟁 스펙 쌓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었다.

신라호텔 한복 사건과 카이스트 논란이 내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언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변화의 움직임을 촉발하려면 다수의 무명인들보다는 소수의 유명인이 앞장서 행동하는 게 빠르다는 너무도 뻔한 진실 때문이다. 특급호텔이 저마다 매출저조를 이유로 한식당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몇년전에도 지적됐던 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수십억의 예산을 영부인한테 쏟아부으며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선답시고 떠들어내는 판국이다. 특급호텔이 한식의 세계화를 외면하는 건 이명박 정부로선 당연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식으로 시장논리에 따라 없애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나. 하지만 이번 한복사건과 더불어 한복에 대한 이 사회의 전반적인 홀대 문제는 특급호텔 업계의 한식 외면 문제에까지 불똥이 튄듯하다.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다. 해마다 등록금 투쟁 때문에 언론 앞에서 삭발하는 총학생회장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최근 학내 집회와 수업거부, 거리 시위에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걸 본 적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신자유주의식 경쟁논리에 물들어 자기 스펙 쌓기에만 바빴던 학생들도 드디어 무명의 힘이 뭉치면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일까. 과연 그들은 정말로 죽음으로 항변할 만큼 힘든 현실을 뒤집어놓을 때까지 뚝심있게 버텨줄까 자못 기대된다.

아무튼 이름 높은 한복연구가 덕분에 앞으로 신라호텔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무명인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학비 부담 없이 마음껏 과학을 연구해볼 욕심에 카이스트 입학을 꿈꿨을 텐데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크나큰 부담을 느꼈을 상당수 학생들이 학점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더불어 말도 안되는 전과목 영어강의 같은 제도도 바뀔 모양이니 정말 다행스럽다. 영문학 박사 따느라 유학생활만 10년 하고 돌아온 교수 친구도 영어강의 전날은 수업준비 때문에 술도 안마신다. 우리말 수업 때는 유머와 농담으로 재미있는 강의를 한다고 점수가 높지만 영어강의 때는 통 재미가 없다고 학생들도 아우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물며 영어전공 강의도 그런데, 어렵기 짝이 없을 심도 깊은 과학논리를 영어로 강의하고 수업듣는 교수와 학생들은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 이참에 모든 대학의 영어강박증도 좀 사라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려면 또 어느 유명인의 놀라운 에피소드가 필요할까? 역시 이름값이 가진 권력 때문에 사람들이 다 성공하고 유명해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번 깨닫기는 했지만, 이젠 좀 무명인들의 힘없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는데 행여나... 그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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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하나마나 푸념 2011. 3. 24. 02:35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단다. '여배우'라는 말과 함께 내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을 두 사람이 바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는데,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리고 깜찍한 모습으로 <녹원의 천사>, <작은 아씨들>에 나온 리즈 테일러를 보면서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사람이 다 있군, 하며 놀라워 했다. 인형처럼 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리즈 테일러가 나온 여러 영화를 봤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함께 나온 <자이언트>에서의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늘 욕 먹고 씹히던 남성편력도 내겐 멋졌다. 남자만 여러 번 결혼하란 법 있나.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고혹적인 입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나라도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던데. 다만 오드리 햅번처럼 외형적으로도 자연스레 아름답게 늙어가지 못한 게 안타깝긴 해도 온갖 지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한 노력은 똑같이 우러러보인다. 대중과 미디어가 아무리 제 멋대로 소모해버리려고 파고들어도 당당히 버텨냈으니 이젠 고이 잠들어 편히 쉰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왠지 기분이 착잡하다. 

리즈 테일러의 부고가 아니어도 온종일 잡념이 많아 별로 일을 하지 못했다. 학력위조 파문과 정치권 특혜 의혹으로 언론을 홀딱 뒤집어놓았던 장본인이 이번에는 또 책으로 세상을 들쑤시고 있다. 당시엔 나도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문제가 이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질겅질겅 씹어대듯 한 여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도무지 실체가 잡히진 않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연예계 성상납 비리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오르내리던 수많은 정치권 인사의 개입은 진실 여부를 떠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상품으로서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그 여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요번에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정적인 회고록을 내놓은 걸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냈을까? 하기야 요즘은 굳이 자비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책 내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 기획을 하든 일말의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나무에게 부끄럽든 말든, 일단 책의 형태로 출간된 책은 세상에 나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출판계의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 없고 힘빠지는 소식은 그런 황당한 자서전이 벌써 나온지 하루만에 2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출간기념회도 그렇고 책 속에 언급되었다는 정치인의 이름도 그렇고, 그 여자가 들고 나왔다는 명품 가방이 더 큰 이슈가 되는 찌라시 언론에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출판시장이 겨우 그 꼴이라니 맥이 탁 빠졌다.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자서전을 낸 그 사람으로서나 출판사 입장에선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불황에 초판을 5만부 씩이나 찍어서 1, 2주 만에 2쇄 인쇄에 돌입하는 책이 어디 흔한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만부 이상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일년에 서너 권씩 냈던 어느 대형 출판사도 작년에는 1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최근 1, 2년 새 초베스트셀러 경향을 보면, 인기 작가 몇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덤에 편승해 낸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예계와 가요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마저도 연예인과 아이돌이 접수하는 거 아니냐고 씁쓸해 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던데, 정말 출판시장에서 이제 팔리는 책은 떠들썩한 유명세를 업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뜻일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번역을 하든 글줄만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판계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남은 한 가지 잡념은 가끔 주제도 모르고 펄럭대는 내 오지랖에 대한 자책이다. 주변에서 간혹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펄펄 뛰며 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련한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혹독한 현실을 일러주고 스스로 가능성을 점쳐보도록 이끄는 것밖엔 해줄 수가 없는 걸 어쩌랴. 그리고 책이란 게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문장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친구의 문장력과 외국어 이해력을 속속들이 알 방법 또한 없다. 그러니 나로선 얇디 얇은 연줄을 대어줄 순 있으되 그 이상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우연한 기회로 몇몇 지인들을 '추천'해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든 초짜 번역가를 선뜻 쓰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책의 검토나 시험번역의 기회를 어렵사리 주선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연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운대가 맞아야지 소심의 극치인 내가 먼저 불쑥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양쪽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시험번역을 통과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한권 내기는 했지만, 자기는 죽어도 번역으로 못 먹고 살겠다며 떨어져나갔다. 현재는 학원 원장님이신데, 나더러도 만날 그 골빠지는 일 때려치우고 고액과외나 하라고 권유한다. 친구 하나는 안타깝게도 시험번역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서로 재고 테스트하고 망설이는 과정을 거쳐 동료 번역가 대열에 접어든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얼마 전 다행히도 검토 일을 하나 연결해줬건만, 작품 분석력이 떨어져 안되겠다는 출판사 지인의 귀띔을 들었다. ㅠ.ㅠ 다른 친구 하나는 세번째 책이 요번에 나올 예정인데,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 책의 외주 편집을 맡았다. 뜻밖에도 문장력도 없고 원고의 첫장부터 오역 투성이라면서 온통 새빨갛게 된 교정지를 후배가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긴 최종 결정은 출판사가 했음에도, 내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친구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 절대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기로 홀로 결심만 세웠다. 그러면서 총체적으로 또 다시 시작된 고민. 과연 나는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잡념인데 잘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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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참 토론을 못한다. 지금은 아예 볼 생각도 안하지만, 손석희 교수가 진행을 하던 시절의 <100분 토론>을 보아도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주장을 바락바락 우겨댈 뿐인 패널들을 보는 게 지치고 짜증스러워 중간에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다. 다른 토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토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국회 청문회는 아예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과거 청문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정치인을 다분히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조목조목 논리로 검증하는 건 못배우고 대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는 것만 따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 온 국민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고 토론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평생 주입식 교육만 받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앞뒤 맥락에 맞는 언어와 주장으로 토론에 끼어든단 말인가. 대학에서도 대부분이 강의식 교육만 받는 실정이니까. 그러다 보니 소수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된다는 대학원 수업도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수업마다 발제자가 있어 발제문을 줄줄 읽고 나면 몇몇 도드라지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상투적인 질문이, 또는 너무 뻔한 질문이 이어지고 그나마 성의 있는 교수의 경우 다양한 논쟁거리를 제시하고 주제를 아우르는 정도다. 페미니즘 분석의 경우 간혹 재미있는 말들이 오가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상대의 논리적 오류를 짚어내는 토론으로 무언가 서로를 설득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보다는 그저 놀라운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많았다. 세미나식 수업의 목표는 발제자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다퉈 입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이 기존 연구자들의 논문과 주장을 이리저리 참고해 이른 대학원생 수준의 결론엔 딱히 이의를 제기할 것도 사실 없다. 괜히 누군가 뭣 하나 물고 늘어져 수업이 길어지면 오히려 눈총만 받을 뿐.

마이클 샌델 본인도 의아해했다는 한국인들의 '정의' 열풍에 힘입은 덕분인지 EBS에서는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라는 <정의란 무엇인가> 수업 동영상을 벌써 몇번째 방영하고 있다. 빠짐없이 전회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연말엔가 처음 채널을 돌리다 프로그램을 알게 된 이후, 부러 시간을 기다려 일부러 찾아본 강의 수업에서 나는 강의 내용은 일단 제쳐두고 교수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학생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에 따라 논리를 펼치고, 각자 생각에 따라 학생들이 편을 나누어 논리를 지원하고 보태다가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와 다양한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토론식 수업법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경이로웠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얼마나 침해되어도 좋은지, 완전한 자유주의가 공동체의 이익과는 어떻게 상충되는지를 주로 살펴보는 강의 내용은 사실 새로울 건 없는 것 같다(라고 주장하며 책은 안읽을 생각이다. 역시 나는 문자 매체보다 영상매체를 선호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 ㅠ.ㅠ). 그런데 다양한 인종적 민족적 배경을 안고 모인 수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입장에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거침없이 일어나 주장하고, 교수는 또 그런 주장에 대한 반박 의견을 이끌어내고 모든 학생들의 주장을 일일이 기억했다가(학생들의 이름까지!) 강의주제와 연결해 결론을 내리거나 철학적인 논리를 설명하는 외적인 강의 모양새가 참 감탄스럽다. 

내게 놀라운 건 자칫하면 바보 되기 십상인 편협한 주장을 펼치는 학생들도 매우 당당하고 나름 논리적 근거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교수가 이끄는 반대토론을 거쳐 학생들 스스로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조단조단 또박또박 설명하는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와 말투는 또 얼마나 정갈한 느낌인지. 하버드대학이나 서울대의 엘리트주의가 나라를 망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강의 동영상을 보며 불쑥 나도 저런 명강의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더불어 손석희 교수의 강의도 문득 궁금하다). 물론 나는 토론되는 사안에 대한 내 주장이 어느 쪽인지 자신이 없어서 (실제로 강의 동영상 보며 어느 쪽이 옳고 정의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 주제들이 꽤 있었다) 절대로 손들고 나서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일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간혹 전해듣는 현실속 학교 현장은 여전히 한심스럽다. 중학생이 된 조카는 요즘 이른바 교사들의 '군기잡기' 분위기에 퍽 괴로운 모양이다. 자유로운 초등학교 분위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뭔가 부당하다고 느껴 이의를 제기하면 선생님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식으로 반응한단다. 나도 겪어본 일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처음이라 주도권 잡으려고 더욱 그럴 거라고.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일방적인 소통은 억울할 수밖에 없고, 부당한 건 부당한 거다. 하물며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이성적인 토론의 자질이 어떻게 싹틀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체육복 문제. 산꼭대기 학교의 특성상 대운동장은 건물 바로 앞이 아니라서 산너머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엔 절대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까지 시간 내에 갈 수 없다. 체육시간 전에 미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어야 한다. 체육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교실로 돌아와 다음 수업 이전에 교복으로 갈아입을 시간 역시 없다. 그런데 체육시간 바로 직전이나 직후에 배정된 일부 과목 교사는 애들이 '모양빠지게' 체육복을 입고 자기 수업을 듣는 걸 못견딘다. 다음 수업이 체육이든 아니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하든 말든, 자기 수업시간엔 모두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으라는 주장이다. 아 왜??? 물론 체육교사는 이전 과목 선생의 취향이 어떠하든 자기 수업시간에 늦는 학생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체육 수업에 많이 늦었다간 벌로 언덕배기 중간에 있는 감나무까지 선착순 뛰기를 몇번이나 해야할지 모른다. 딜레마다.

30여년 전에도 교사간의 알력은 우리를 괴롭게 했다. 설마 중학교 신입생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가 아닌 다음에야, 왜 아직도 그러고들 앉았는지! 물론 체육복을 입고 있어도 이해해주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원칙이 뭔가 더욱 헷갈린 거다. 과거에 우리는 그나마 만만한 체육선생에게 부탁했다. 체육복 미리 입지 말라고 강요하는 선생을 설득해달라고. 결과는? 둘이 교권을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웠을 뿐이다. -_-; 조카에겐 별 수 없이 과거 우리의 비법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체육복 바지만 미리 갈아입고 위엔 교복을 입은 채 다른 수업을 받으라고. (그런데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교복 웃도리에 체육복 바지만 입고 있는 건 정말 더욱 모양빠지는 일이다! 흉측하기 이를데 없는! 게다가 그 꼴로 화장실이라도 갈 때 학생부 교사에게 걸리면 '복장불량'이란 지적을 받는다. 체육복이면 체육복, 교복이면 교복을 입으라고.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러고서 한편으로는 반장을 보내든지 해서 선생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교실에서 단체로 아이들의 왁왁대며 불평을 쏟아내는 건 교권에 대한 발칙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교사들이 좀 많은가. 은밀히 교무실로 찾아가 '간절히' 부탁하면 권위를 세울 수 있으니 혹 들어주려나... 물론 과거처럼 괜히 교사들끼리 싸움만 붙이는 수도 있겠지만. ㅎㅎ

아직도 윽박지르고 일방적인 주장을 강요하면 씨알이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에든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요즘 아이들은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어린 조카들도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는 의견을 관철시키기가 쉽지 않던데 교육학도 배운 사람들이 왜들 그러실까. 답답하다. 하기야 그러니까 너도나도 팍팍한 이 나라 교육현실을 외면하고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이민을 떠나는 것이겠지. 그리고 대대로 토론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주요 협상 테이블에서 늘 불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조카의 고민을 듣고 돌아온 탓인지 리모컨질 하다 걸린 EBS 정의 재방송을 또 한번 구경하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나라 애들도 저렇게 멋지게 토론하는 어른으로 커야 하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텐데 그저 시스템과 어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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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하나마나 푸념 2011. 3. 16. 17:32

내가 책을 잘 못(안?) 읽는 이유는 의지력 박약이 첫째고 둘째는 TV다. 바보상자 TV를 한번 켜면 리모컨을 돌려가며 계속해서 넋놓고 앉아 있다. 여러 방송사 모두 뉴스는 낮에 방영했던 내용이 저녁 뉴스에 또 나오고 토씨하나 안 틀린 기자의 보도 클립이 마감뉴스에도 되풀이된다. 그런데도 난 또 그걸 '뉴스'랍시고 보며 질질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울고 싶어서 빌미를 찾고 있나 싶기도 하다. 실종자 가운데 2천명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지만 대체로 서글픈 지진 뉴스를 보며 문득 나는 다이고를 생각했다. 영화 <굿'바이>에서도 드러났듯 일본의 모든 장례지도사들이 다이고나 그 사장님처럼 경건하게 고인의 시신을 대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수많은 다이고들이 참으로 바쁘고 힘들게 정성껏 일하고 있겠구나 싶다. 내가 입관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지켜본 건 외할머니 때 뿐이다. 친할아버지, 할머니 때는 정신줄을 놓은 엄마를 지키느라 들어가볼 기회를 놓쳤다. 전통적으로 원래 염은 자식들이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입관때 가까운 친지들은 꼭 참관을 하는데, 나는 서른 중반에야 처음 그럴 기회가 있었다. 우느라 대체로 정신이 없었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버지 장례 때는 친척분들의 협의를 거쳐 염하는 과정을 중간부터만 참관하기로 했었는데, 그 '중간'이라는 게 어중간해서 결국 우리는 장례지도사가 수의를 다 입혀놓은 다음에야 아버지를 보러 들어갈 수 있었다. 최대한 천으로 가리고 진행하더라도 고인의 사지와 맨 몸이 드러나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기가 불편하다는 친척 어르신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차디찬 아버지의 이마를 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을 때의 황망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담한 현실과 수많은 죽음 앞에서 더욱 가슴이 아픈 건 내가 겪은 죽음을 자꾸 환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나 이기적인 감상이다.

어젯밤엔 MB의 수족 사장 치하에 들어간 MBC에서 강제 인사이동을 당한 원래의 제작진이 만든 <PD수첩> 마지막 방송분이 방영되었다. 소망교회에서 목사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는 대통령을 다루려 했던 지난주분은 결국 방송이 무산되고 말았지만, 어제 다룬 문제들 역시 PD수첩다웠다. 논문심사비로 교수에게 300만원을 바치고 나서도, 다시 논문 읽는데 걸린 1시간 15분에 대한 비용을 추가로 내라는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는 학생의 증언을 보며 이젠 막 웃음이 나왔다. 어느 미대 교수는 병원에 입원한 동안 조교에게 밤샘 간병을 시켰단다. 레지던트를 발로 차고 밟고 때리는 놀라운 폭행을 일삼은 의대 교수는 행정소송을 거쳐 3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수술실에서 부분 마취한 환자가 그 의대교수의 폭력행위에 공포를 느껴 병실로 돌아온 뒤에도 충격을 가누지 못했다는 증언까지 방송에 나왔지만, 2차 징계위원회에서 그 밥에 그 나물인 교수들은 슬며시 동료를 감싸주었다. 당당히 학교로 복귀한 폭력 교수 본인의 변명으로는 다 제자 잘 되라고 한 행동이란다. 제자들의 청원으로 비리 혐의가 인정돼 1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교수는 뻔뻔하게 여전히 소송중이다. 졸업한 제자들의 개인전에까지 찾아가 협박을 일삼고 자기가 괴롭혔던 제자들을 증인으로 불러대면서. 요번에 국립대학에서 파면된 음대 교수도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할 움직임이던데, 승소하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내부고발자들이 아무리 용기를 내어 비리를 폭로하면 무엇하나. 법과 제도와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걸. 정말 이 나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나라가 한참 멀었다는 걸 간간이 꼬집고 일깨워줄 TV 프로그램도 사라질 형국이다. 다른 공중파방송에도 간간이 볼만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있지만, 워낙 가뭄에 콩나듯 방영하고 있으니 이젠 공중파 3사가 노상 용비어천가만 불러대고 있게 생겼다. 일본 지진 소식이 워낙 강렬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온종일 엄마가 틀어놓는 KBS 뉴스에서 끼니 때마다 MB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이룬 '쾌거' 소식을 들을 뻔했다.

한 사람의 개인이긴 하지만 엄기영을 봐도 MBC의 운명이 실감된다. 설마 MBC가 MB네 회사라는 뜻이었던가? 트렌치코트 깃을 높이 세우고 에펠탑이나 개선문, 상젤리제를 배경으로 "파리에서, 엄기영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멋진 기자 이미지로 내게 각인되었으며 꽤 괜찮은 앵커를 거쳐 MBC 사장까지 했던 사람은 결국 결국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심지어 자기가 몸담고 있던 방송사를 '까대는' 언사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렇게도 정치와 권력이 좋은지 진짜 궁금하다. MBC엔 아직 제작을 거부하며 싸우고 있는 시사교양국 기자와 PD들이 존재하지만, 하나하나 종영되고만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 가운데 이제 <PD수첩>은 프로그램이 사라지지만 않았지 거의 색깔과 생명이 끝장났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점점 볼 거리도 사라져가는데 이제 그만 테순이 노릇은 관두고 독서로 눈을 돌리면 좋으련만, 난 또 공중파를 대신해 케이블 채널을 기웃거린다. 이러니까 권력이 자꾸만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겠지. 더더욱 바보가 되라고. 알면서도 나는 손에 리모컨을 쥔 채 그 장단에 계속 놀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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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이 되는 걸 두려워했던, 아니 두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괴로워했던 이들이 주변에 꽤 된다. 배우는 쪽이든 가르치는 쪽이든 학교와 새학기는 기피의 대상이 아닐까. 봄 방학을 끝으로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 그런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뿌듯한 축배를 들어야할 것 같다.

이른바 보따리 장수를 하고 있는 지인 하나는 지난 방학동안 생병을 앓다가 개강을 앞둔 며칠 전까지 감기몸살이 낫지 않아 큰 걱정이었다. 사단은 새학기 교양영어 강의에서 이유 없이 떨려났던 일이었다. 연말까지만 해도 강의일정 조정안에 대한 연락을 주고받았던 대학에서 1월이 다 지나도록 강의 계획서 내라는 통보가 없더란다. 15년째 그 대학에서 교양영어를 맡아온 지인은 순진하게 학사일정이 늦어지는 줄로만 알았단다. 헌데 그게 아니라,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영어과 교수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사들 여덟 명을 그야말로 단칼에 잘라버렸더란다. 나의 지인은 자기가 나이도 많고 박사학위 미소지자라서 짤렸나보다 했더니, 박사학위도 소지한 젊은 여자 강사도, 박사학위 소지한 적당한 경력의 남자 강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나 원칙도 없는 독단적인 인사행정이었던 셈이다.

일언반구 언질도 없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교수는 그렇게 지시해놓고 방학동안 가족이 있는 호주로 날아가버렸다나. 분노한 나의 지인은 결국 구구절절 설득하는 메일에 이어(읽지도 않더란다) 강경한 메일을 계속해서 그 담당교수에게 보냈고, 메일이 계속 씹히자 담당 조교를 통해 대신 연락을 취해 거의 협박에 가까운--인권위원회와 교과부에 청원함은 물론 학교앞 일인시위도  불사하겠다고--내용을 통보하는 '단독투쟁' 끝에 교무과장의 개입으로 잘렸던 강사들 모두 늦게나마 한 과목씩 강의를 재배당 받을 수 있었단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마무리가 되자 덜컥 병이 났던 것인데, 심성 약하고 소녀같기만 하던 그 지인이 그런 싸움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내가 못믿어하자 재미삼아 보라며 증거 메일까지 보내주었다. 

이번 학기야 그럭저럭 다시 강의를 맡기는 했지만, 담당 교수와 정면대결을 했던 자신은 15년 역사를 뒤로 하고 다음학기엔 그 대학을 떠나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지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대학 강사의 자살소식이 들려오는 이유가 딴 게 아니라고. 그리고 하루이틀 겪은 건 아니지만 잘난 전임교수라는 사람들이 더러 부리는 포악이 상상 이상이라고. 그 인간과 학교에서 마주칠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리다고.

제자를 폭행하고 온갖 권력형 교내 비리를 저지른 유명 국립대 교수가 최근 파면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대단히 존경받는 직업으로 생각되는 교수는 사실 내가 보기에 그리 멋진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내가 좋아해마지않는 선생님이 자조적으로 원래 교수란 '사회성 부족하고 어딘가 좀 이상하고 외골수인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좀 이상한' 성품 부분이 종종 이기심이나 독단으로 발현되는 교수들을 꽤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 유형에서 벗어나는 교수들은 또 지나치게 정치적이라 그 조직내에서도 최고자리로의 승진을 꿈꾸거나 최대한 약자들에게 권력을 휘두르거나, 아예 폴리페서가 되어 정계로 진출하는 식이다.

실제로 겪어본 은사님들 가운데 유능하고 존경스러운 교수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익히 소문으로 듣고 눈으로 보아온 교수들은 절반 이상 부패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군상이었다. 교수 임용때부터 실력보다는 인맥 학맥 동원해 '룸살롱 접대'로 점수를 따는 인간이 없나, 각종 연구비는 그냥 일종의 공짜 보너스로 여기며 논문 한편 가지고 이리저리 제목만 바꿔 돌려 싣기를 하질 않나, 산학협동이라도 해서 대형 프로젝트라도 진행할라치면 제자들 종 부리듯 주무르며 사리사욕을 채우질 않나. 도제식 수업이 이루어지는 예술대학 뿐만 아니라 막대한 연구비가 오가는 공대나 이과대 쪽에서도 교수 비리는 늘 있어왔고, 진로나 눈앞의 이익(매달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연구비나 공연, 수상 기회 따위) 때문에 제자들은 함부로 교수에게 대들 입장이 아니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어느 교수는 자신의 부친상에 대학원생들을 '조'별로 짜서 장례식장 도우미로 보내달라고 당당하게 과사무실에 요구했단다. 지도교수의 부친상에 문상을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자 입장에서 막상 문상을 가고보니 일손이 모자라는 것 같아 자진해서 도울 마음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절대 그런 생각 안하겠지만!) 그러나 노동 분담제도 아니고, 몇시간씩 육개장 쟁반을 나르며 학생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걸 당연시하는 교수의 구태가 놀랍다. 하기야 그러니까 문제의 그 음대교수도 팔순 노모의 산수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제자들을 대거 동원해 합동 공연을 했겠지. 아니, 본인이 굳이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이 먼저 눈치로 알아차리고 축하공연을 하겠다고 자청했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랬다간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니까.

아직도 진심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을 훌륭한 교사/교수가 많다고 믿고 싶지만,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평가해서 분류하는 행정기관으로 점점 자리잡고 있고, 대학마저도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냥 고수익사업이지 '배움의 전당' 느낌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교사도 교수도 '스승'이 아니라 그저 한낱 조직원으로서 학생들에게 또는 상대적 약자인 강사들에게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닐까. 

수년간 보따리 장수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전임자리를 꿰차고 드디어 '교수님' 칭호를 듣게 된 친구 하나는 암암리에 학연지연으로 나뉜 교수패거리들 속에서 현명하게 운신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강의평가제로 학생들 눈치도 봐야하니 교수직이 철밥그릇이라는 얘기는 다 옛말이라고 불평한다. 열심히 수업준비해서 깊이 있는 강의를 이어가면 대번에 어렵다고, 취직해야하는데 학점 짜게 준다고 싫어한다나.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머리 나쁜 나로서는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개선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그런 부패한 조직에 연루되어 개강을 두려워하는 상황이 아니란 것만을 기뻐하기엔 찜찜하다. 그래도 길은 그것밖에 없다며 교수를 꿈꾸는 수많은 친구들,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뭔가 크게 바뀌긴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여튼 날씨도 쌀쌀한데 개학과 개강을 맞은 가엾은 모든 이들 씩씩하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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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맨 밑바닥 광고물 아래 깔려 있어 온 줄도 몰랐던 어느 출판사의 작년 하반기 인세보고서를 이제야 개봉하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출고 44권, 반품 46권.
실판매 -2권 (마이너스 두 권이란 뜻이다)
폐기 103권
증정및 홍보 217권.
총판매누계 3701권. (총 제작부수는 4천권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급할 인세액 란에는 마이너스 천원이 기재되었다. 계산하기 좋게 책의 정가도 딱 만원이었고, 번역인세율은 정직하게 5%(창작인세 10%, 번역인세 5%면 갑과 을이 서로 공평하다 인정하는 적정수준이다)였기 때문이다. 이 금액을 추후 판매분 인세에서 정산하겠다는 요지의 인세보고서다.
참고로 이 책으로 내가 작년 상반기에 지급받은 인세는 268부에 해당하는 13만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만 3년 반 동안 꼬박 이 책으로 발생한 인세의 총액을 계산해봐도 1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1년 평균 60만원이 채 안된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안팔리는 책으로만 인세로 계약해 일년내내 작업했더라면 두달에 한권씩 떡찍어내듯 번역했다고 해도 연봉이 88만원세대의 절반도 안됐을 거라는 얘기다. 켁.

책이 2007년에 나와서 초판 1쇄를 2천부 찍었고, 그나마 2년만에 2쇄, 3쇄를 1000부씩 더 찍었다는 걸 기뻐했던 순간도 있었으나, '좋은' 책을 주로 많이 내면서 모든 번역료를 인세로 정직하게 지급해온 이 출판사에서 책을 좀 팔아 이윤을 내보겠다고 상업적인 실용서를 낸 결과가 이러하니 다른 인문교양서의 실적은 어떠할지 출판계의 상황이 눈에 선하다.

오래된 지인이 편집장으로 있던 이 출판사와 이 책을 계약하며, 최소한 5, 6천부는 팔릴 것을 예상한다며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매절 번역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원고료는 챙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내심 주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인세 계약이 여럿 쌓이면 꽤 짭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2년쯤 욕심을 내며 계속 인세 계약에 응했던 책치고 2쇄 인쇄에 들어간 책은 거의 없다. 죄다 초판도 다 소화를 못했다는 뜻이다. 6만부 팔리면 미니쿠퍼를 살 수 있겠다고 호기롭게 꿈꾸었던 책들은 그 이십분의 일도 팔려나가지 않았다. 큭큭.

물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번역인세 대박'의 꿈과, 초기비용을 줄이려는 출판사의 정책이 맞물려 지금도 번역작업의 둘 중 하나는 인세 계약이고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어차피 지켜보니 출판은 도박이나 로또 맞추기와 별 다를 게 없다. 그런 엄청난 행운이 나한테 떨어질 확률은 번개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정직한 퍼센티지의 인세계약과 인세지급이 장기적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막강한 마케팅 전략으로 많이 팔릴 것을 예상하는 상업적인 책을 대뜸 인세로 계약해주는 출판사는 없지만, 생활을 위해서라도 나 역시 간간이 매절계약을 선호하니 그 또한 불만은 없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오다가 일년치 손익계산서를 손에 들게 되면, 간간이 한숨이 나올 정도의 연봉에 아득해질 뿐이다.

지병과 가난으로 아사한 젊은 시나리오작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오고가는 가운데, 새삼 저런 인세보고서를 열어보니 나 또한 만감이 교차했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으며 폴 오스터도 성공한 작가가 되기까지 글줄로 밥벌이를 하느라 꽤 오래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에 한편으로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 고까운 느낌이 들었었다. 어차피 이제 그는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며칠전 무릅팍 도사에 나온 공지영도 가난한 시절의 에피소드를 뽐내듯 말하던데, 그들이 아무리 과거의 지난함을 토로하더라도 이미 그들은 부와 성공을 거머쥔 기득권자들이다. 물론 이렇게 엄살을 떨고 있는 나 역시 일감이 없어 이런저런 쪽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일부 번역가들에게는 젠체하는 '중견'으로 보일 것임을 잘 안다. 이른바 번역계의 중산층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중산층이 무너져 워킹 푸어가 되어가고 있는 건 번역계도 마찬가지;;)

하지만 최상위 1%의 사람들이 90%이상의 부를 소유하는 현상은 글쟁이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총 판매부수가 900만부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모은 돈이 하나도 없다고 엄살 떠는 판국에(물론 그 사람은 주변인이 다 써버렸다고 변명했다) 밑바닥에서 부정기적인 수입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인세욕심에 눈이 어두워 불을 켰던 3, 4년전의 나도 아마 비빌 언덕 없이 완전 홀로 사는 신세였다면, 오피스텔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난 뒤 며칠에 한번씩 굶어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경우엔 억누를 수 없는 식탐이 자존심과 수치심을 모두 이겨 주변에 손을 벌리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내 편견속의 글쟁이는 언제나 가난했다. 배부른 자의 손과 머리에선 청아한 생각과 문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대체 어디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의 가난과 사회적 홀대와 역경은 감수해야 글줄로 밥벌이를 하겠다고 나설 자격이 된다는 것이 이 사회에 팽배한 의식인 것 같다. 그러다 개천에서 용 나듯, 가뭄에서 콩 나듯, 정말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글쟁이가 탄생하지 않는가. 그러나 현실은 참혹하다.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의 비율은 지극히 적으며, 다들 부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번역만 해서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나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나름 중견이고 중산층인 내가 간간이 굶지 않은 이유의 절반은 캥거루족인 덕분이란 현실은 슬플 수밖에 없다. 만일 내가 부양가족이 있는 홀벌이 '가장' 번역가였다면 부업이 필수였거나, 더욱 코피터지게 일감을 찾아 헤매야했을 것이다. 그간 인세를 100억은 벌었을 작가도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데 나까짓 게으른 인간의 통장 잔고가 비어 있는 건 당연한 일. 최고은 작가와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면서 덩달아 넋두리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전체적으로 열악한 문화산업의 구조와 글쟁이를 홀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서글픈 비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결국 타인의 죽음에 제 밥그릇 타령만 하고 앉아있는 이 모진 현실에서 정년이 없어 선택한 이 길은 과연 언제까지 뚫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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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당선되고 나서도 딴나라당놈들 때문에 발목 잡히는 일이 더러 있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정말 가관이다. 하기야 수억원 들여서 일간지에 그런 되도 않는 광고를 내 자기 '논리'를 펼치는 사람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싶지만, 주민투표 운운에 이어 이젠 서명운동을 한다니 나도 반대 서명운동의 일환으 로 몇자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는 중학교까지도 의무교육이 되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국민학교도 매달 육성회비를 내야했다. 몇달씩 육성회비가 밀려서 교실에 앉은 채로 불명예스러운 호명을 당하거나 방과후 교무실에 불려가는 부류에 속하진 않았지만 나도 가끔은 한두달씩 육성회비를 밀렸다가 내는 축에 속했다. 알림장은 없었어도 선생님이 매일 칠판에 적는 전달사항에 '육성회비' 항목이 빠지질 않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누런 육성회비 봉투에 돈을 넣어주면, 일찌감치 등교해 학교 건물 현관쪽에 작은 창문만 나 있는 서무창구를 두들겨 육성회비를 내고 봉투에 도장을 받았다. 간혹 두달치를 한꺼번에 내 제 달치 육성회비 도장이 찍힌 봉투를 받아들면 얼마나 뿌듯하고 힘이 나던지.

내가 연년생인 남동생을 두었다는 이유로 제나이보다 1년 먼저 국민학교엘 다니게 된 것도 다 나중에 줄줄이 '입학금' 대기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어른들의 염려 때문이었다. 나이는 1살, 3살 터울이어도 삼남매가 2년 간격으로 계속 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국민학교는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경우 입학금을 매년 마련하는 건 빠듯한 살림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벌써부터 짐작했다는 뜻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등록금을 분기별로 내야 했는데 정말로 상당한 금액이었다. 다행히도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는 집안형편이 좀 나아졌던 것 같은데도 분기별로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면 나는 매번 마감기간 끝무렵에나 겨우 턱걸이를 하거나 등록금 납입기간이 지났다는 '전달사항'을 엄마에게 알린 다음에 부랴부랴 낼 수 있었다. 그러다 2학년 때부터인가,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자 아버지가 뭔가 복잡한 서류를 떼어다 주시면서 담임에게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면 등록금 대부분의 금액이 면제되고 몇천원 정도의 '육성회비'만 내면 되는 고지서를 다시 발급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도 그런 제도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립대학의 교직원이셨던 아버지는 사학연금제도의 일환으로 당시 사립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셨던 거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그 서류를 며칠이나 들고다니면서도 차마 담임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담임이 못알아들으면 어쩌나, 우리 학교에는 그런 제도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어린 마음에 혼자 고민을 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담임에게 서류를 내밀었을 때, 역시나 그는 금시초문,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 제도가 막 시행되기 시작한 초창기인지도 모르겠다.) 담임이 서무과에 알아보겠다고는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육성회비'만 내라는 새로운 고지서는 발급되지 않았고 급기야 서무과에서도 통 모르는 이야기더라는 말이 담임을 통해 전달되었다. +_+

나는 무조건 너무도 창피해서 아버지가 뭔가를 잘못 알았을 거라고 짐작했고 그냥 억지 부리지 말고 어서 등록금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우울하게 학교를 다녔다. 물론 그런 사실을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난데없이 교무실에 자꾸 불려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끔찍하기만 했다. 결국 상황이 정리되긴 했다. 아버지가 대학 총무과에 전화를 걸고, 그곳에서 다시 우리 학교 서무과에 연락을 하고, 사학연금 재단에 여러번 문의전화가 오가고 난 뒤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그 학교에서 전례없이 '사립교원 등록금 면제자'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학기초에 똑같이 '금시초문'이라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내미는 서류를 뜨악하게 쳐다보는 담임을 맞닥뜨려야 했으며, 분기마다 똑같이 나눠준 일반 등록금 고지서를 들고 다시 서무과에 찾아가 재발급 받아야 했다.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를 다녔으므로 매번 같은 서무과에서 등록금을 처리했음에도 졸업할 때까지 내내!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엔 그런 선생들의 태도에 의연할 수 있었지만, 청소당번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곤 교무실에 가는 걸 몹시 실어했던 내가 학기초마다 교무실에서 무지한 담임에게 낯선 서류를 들이밀며 장황한 설명을 해야하는 그 현실이 정말이지 괴로웠다. 내심 등록금 밀려서 불려간 아이들과 뭐가 다른가 싶었던 모양이다. 당연히 친구들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등록금 면제의 이유를 발설하지 못했다. 어쩐지 그까짓 등록금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안내려고 발버둥치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날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교복 자율화 때문에 고2때부턴 사복을 입고 다녔는데, 나이키 아니면 프로스펙스 운동화에다, 우산 그림이 선명한 옷과 양말, 조다쉬니 서지오바렌테니 하는 고가의 청바지를 매일 떨쳐입고 다니는 몇몇 부잣집 아이들이 이름없는 시장표 옷을 입고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깔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 또한 기죽지 않으려고 세뱃돈 모아서 유명브랜드 운동화 정도는 신고 다녔고, 고가의 브랜드는 아니어도 백화점 기획상품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집안 형편에 감사했지만 어쨌거나 '등록금 면제자'의 신분은 굳이 드러낼 이유가 없다며 영영 비밀에 부쳤다. 또래 집단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무상급식 문제가 대두되자마자 나는 조카에게 의견을 물었었다. 대체 누구의 의견에 물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열두살짜리 조카는 대번에 자긴 반대라고 했다. 지금도 학교 급식이 가끔 토나올 것처럼 부실한데, 공짜밥이 되면 더 끔찍하게 나올 거라는 게 어린아이들 사이의 여론이라고 했다. 켁. 나는 얼른 설득에 나섰다. 무상급식이 된다고 해서 급식의 질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너희들이 급식비로 내는 돈만큼 똑같이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부 친환경 급식으로 바꿔 먹으면 건강에도 이롭다. 외삼촌 할아버지댁에서 농약 안뿌리고 직접 키운 토마토랑 상추는 맛부터 다르지 않니.... 그랬더니 그럼 상관없다며 조카는 금세 찬성으로 의견을 바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너희 반에서 가정형편 때문에 무상으로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누군지 아느냐고.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당연히 다 알지. 걔네들 왕따야.

초등학생이라 당번을 정해 교실로 식판과 배식통을 가져와 급식을 하는 모양인데 가끔 못된 아이들은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들에게 유독 인기없는 반찬을 잔뜩 올려주며 "너는 남기지 말고 꼭 다 먹어라."라며 은근히 놀린다고도 했다. 아... 어쩌면 어린아이들도 그런 상처 주는 짓을 서슴지 않는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는 '부자'들에게도 공짜밥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현재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의 신분이 절차상 학교에서 노출될 이유가 없으며, 무상급식에 드는 엄청난 비용으로 차라리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는 논리다. 그럼 애당초 초중등학교 의무교육은 왜 실시했는데? 등록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에게까지 뭣하러 무상교육을 실시하기로 했을까? 등록금은 급식비와는 비교되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재원인데? 무상급식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다는 서울시장의 주장에는 물론 코웃음만 나온다. 디자인 서울이니 뭐니 해서 온 시내에 돈지랄을 떨어놓고 재원이 없다니,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건 깡그리 잊어먹고 몇년 지나면 죄다 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보수하고 (청계천을 보라!) 뜯어고쳐야 할 외양으로만 생색내는 건 왜 그리 좋아하느냐고! 

무상급식은 엄연히 평등한 교육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아이들의 기본권이다. 어차피 아이들 사이에도 빈부의 격차로 형성된 계급과 차별이 존재하는 교실에서 (무슨 동네 사니? 아파트 몇평이니? 아빠 차 뭐니? 따위의 질문은 더 이상 속물 어른들 사이에만 오가는 게 아니다) 밥 하나도 눈치보며 먹어야 하는 아이들을 만드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사실 내 경우 등록금을 면제 받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특권의 일종이었음에도,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나는 그 '비밀'이 드러나 반아이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볼까봐 등록금 납입기간마다 조마조마했다. 하물며 급식비 면제 대상자였음을 감추어야 했다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아니, 그 사실을 꼬리표처럼 학창시절 내내 달고 다녀야 한다면.

어차피 파탄난 공교육은 특목고다, 자율형사립고다, 일부 대안학교다 해서 고가의 학비 부담을 전제로 하는 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이미 평등한 교육의 원칙조차 무너져가고 있다. 그나마 아이들이 최대한 동등한 대우를 받는 시기는 초중등학교까지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부모의 경제력도 부족해 조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따라갈 수 있다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은 어차피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특권층으로의 편입이 애당초 불가능하다. 알량하게 입학정원에 저소득층 학생들의 비율을 정해놓았다고는 하나,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의 이 사회에서 그런 제도는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서울시장은 여전히 예산 700억이 없어서 부자급식은 할 수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볼썽사나운 건 수십년에 걸쳐 한강변에 무식하게 네모나게 지어댄 아파트들인데 자꾸 한강둔치에 별 쓸모도 없는 시설만 늘리며 한강 르네상스 타령만 안했어도 서울시 예산은 확보됐을 거라는 거 이젠 모르는 사람 없을 거다. 제발 애들 밥좀 편히 먹이자는데 그렇게 유치하게 버티지 말자. 급식비 면제 대상자로 선정되며 알게 모르게 상처받는 아이들을 더는 만들지 말자. 속물 어른들을 따라서 가난이 죄이고 잘못인 것처럼 여기게 된 대다수의 아이들이 적어도 학교와 학교에서 먹는 밥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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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동사무소가 자리를 옮기더니 그 건물을 한참 뜯어고쳐 노인요양복지센터인가 뭔가 하는 게 생겼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울 왕비마마 같은 분들의 '복지'를 위해 좋은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더니 온 동네 노인들에게 장기요양 등급 신청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홀로 거동을 잘 하지 못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공단에 신청을 해 심신의 상태에 따라 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파견되어 돌봐준다고 한다. 귀가 얇으신 왕비마마는 절에 갔다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동네 아줌마가 함께 노인센터로 요가도 하러 다니고 운동도 같이 다녀주고 하는 제도가 있으니 신청해보자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색을 했단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제도가 다 있느냐면서. 그러고는 집에 와서 자꾸 나에게 3급 타령을 했다. 3급은 받아야 된다는데 당신은 아마 조금만 '신경쓰면' 3급이 나올 거라고 했다나. 처음엔 그저 착한 이웃 아주머니가 순전히 봉사의 의미로 왕비마마를 모시고 함께 운동을 다녀주려나 보다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추우니 봄 되면 슬슬 다녀보시라고 흔쾌히 권했는데, 자꾸만 전화가 걸려오고 어서 만나서 상의하자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야로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조금 전 요양보호사 '장농 면허'를 갖고 있다는 이웃 아주머니와 인근 구에서 노인 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또 한 명의 아주머니가 집으로 찾아왔다. 현관에 마중 나와 서서 계단을 올라오는 두 아주머니를 반기는 왕비마마를 본 그들의 첫마디가 가관이었다. 어머나, 나중에 공단에서 심사 나올 때 이렇게 멀쩡하게 서계시면 안 돼요, 호호호. 

그들의 주장은 그러니까 왕비마마를 노인장기요양 대상으로 신청한 다음 얼렁뚱땅 '거동 잘 못하는 연기'를 과장해서(척추협착증 수술을 받아 걸음이 불편하고 청력도 부실해진 건 '사실'이므로) 공단 심사를 거쳐 '3급' 진단을 받으면, '무료로' 자기네들이 일주일에 두번 4시간씩 찾아와서 운동도 같이 해드리고 목욕도 모시고 가고 집안일까지도 도와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요양센터와 요양보호사에게는 공단에서 일정액의 '돈'이 지급된다고. 물론 공단의 심사가 예전에 비해 까다로워지기도 했고 현재의 왕비마마 상태는 너무나 멀쩡하여 3급 진단도 나올 수 없을 상황이라, 약간의 사기극(물론 그들이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다.)이 필요하겠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나. 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는 거의 멀쩡한 자기 어머니에게 자리 보전하고 누운 치매 노인 연기를 시켜 '1급' 진단을 받아낸 어떤 이의 무용담까지 전했다. +_+

왕비마마를 데리고 뭘 하든 날 따뜻한 봄부터 거동하시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는데도 굳이 며칠째 전화를 걸어 찾아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꿩먹고 알먹고, 짜고치는 고스톱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밝히기로. 왕비마마 역시 그런 편법을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또 이용하는 상황을 흔쾌히 즐길 분이 아니라, 거부 의사를 밝힌 터였다. 내가 특별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순진하고 거짓말 잘 못하는 왕비마마가 그런 사기극에 연루됐다간 시작도 하기 전에 잠 못자고 끙끙 앓다가 우울증이 도질 것임을 보지 않아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라는 것은 알겠으나(좋은 의도는 무슨! 자기네들 돈 벌 욕심에 접근한 거 다안다!) 왕비마마의 성격상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선 곤란하다는 나의 설명에,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더 강요하지 않고 순순히 돌아갔다. 우리 모녀의 '순진함'을 인정해주는 듯한 태도였으나, 아마 현관을 나서며 꽉 막힌 모녀라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르겠다. 노인 모시고 사는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다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약간씩 편법을 쓰는 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설득한 걸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노인복지를 위해 나라에서 잘해보자고 시작한 일들이 또 이렇게 '야로'와 '편법'과 '비리'의 온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한 셈이라 입맛이 쓰다. 과연 이 요양보호사 제도의 혜택은 정말로 꼭 필요한 노인들에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지 의문이다.  이래서야 어디 노인을 위한 나라가 가당키나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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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첫째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주의 부모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노심초사했다. 유치원엔 무려 세살부터 다녔지만 선행학습 따윈 부질없는 짓이라 여겨 한글도 입학 직전에 3개월 속성으로 겨우 깨친 조카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책을 줄줄 읽는 정도를 넘어 독후감까지 거침없이 쓴다는 '소문'에 바짝 얼었던 거다. 염려했던 대로 12월 생이라 또래보다 좀 늦된 조카의 초반부 학교생활은 퍽 힘겨웠고 아이는 가엾게도 무책임한 공교육과 매정한 담임에게 마음의 상처를 꽤 입었다. 별달리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단지 개성이 강하고 고집스러운 아이를 교사들이 무조건 '사회적응 장애'로 몰아세운다는 사실을 우리도 비로소 깨달았다. 몰개성하고 유순한 규격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는 걸 교육자들은 정말로 모르는지 화가 치밀었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들의 경우엔 어느 정도 미리 '준비'를 하는 것으로 교훈을 삼을밖에. 
 
어쨌거나 여전히 개성 넘치는 성격으로 잘 자라준 조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가족들은 또 다시 불안초조하다. 요즘 중학교는 또 어떤 난관으로 아이를 힘들게 할까 싶어서 말이다. 흔히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기를 잘 보내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공부 재능도 운동신경처럼 타고나는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다만 뭐든 '중간쯤' 하는 평범한 아이였으면 좋겠는데, 워낙 '미친 사교육 열풍'에 휩싸인 사회 분위기에선 그 '중간쯤'도 쉽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벌써 웬만한 아이들은 중학교 교과 과정을 미리 공부하느라 종합반엘 다니고 있다나 뭐라나.
 
까마득한 옛날 나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상당히 겁을 냈다. 내가 배정된 중학교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거느리고 있는 '사립학교'였고, 그 사립 국민학교 출신들이 워낙 많아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소문이었다. 아주 뛰어나진 않아도 '나름 우등생'이었던 큰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울 엄마도 주변에 조언을 구했는지 당시 진짜로 종로통에 있었던 '종로학원'에 영어와 수학 과목을 등록해놓았으니 새해부터 열심히 다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과외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내가 '학원'이라니 어린 마음에 바짝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나의 사교육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 딱 새해부터 과외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중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내내 '잉글리시 펜맨쉽'이라고 적힌 공책에다 펜촉에 잉크를 찍어(!) 인쇄체와 필기체 대소문자 알파벳을 그려 연습하고 외웠을 뿐, 연일 동생들 데리고 스케이트나 타러 다니면서 팽팽 놀았다.

예전과 시대가 완전히 달라지긴 했지만 마음 같아선, 특목고다 뭐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입시광풍에 휩쓸리는 친구들을 목도하게 될 것이 분명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조카에게도 '마지막으로' 실컷 놀라고 해주고 싶다. '고모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조카의 영어공부를 봐주던 얼치기 과외선생으로선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영어과목에 대해선 요즘 부모와 애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영어에 목숨건 아이들은 이미 방학을 맞아 캐나다다 호주다 필리핀이다 해서 어학연수를 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도 토익 수준의 단어를 하루에 스무개, 서른개씩 외운다던가. -_-; 그간 조카가 영어단어 외우기를 죽도록 싫어해서 (한글 맞춤법 좀 틀려도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공주의 주장;; 애당초 나도 영어 거부증을 면하게 해주려고 철자 달달 안 외워도 된다고 타일렀다가 그만 발등 찍혔다 ㅠ.ㅠ) 그냥 내버려뒀던 나도 요번엔 고삐를 죄었다. 방학동안 초등학교 기본 영어단어라는 800개는 점검하고 넘어가자고 말이다. 이미 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낱말이니까 잘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고 살살 달래보지만, 실은 나 역시 조카에서 속성 암기 기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다. 영어단어 외우라고 족치는 대신에 좋은 책이나 좀 읽고 곧 헤어질 친구들이랑 실컷 놀러다니라고 조언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왜 다들 공부공부 미친 타령을 해대고 있는지 안타까운 노릇이다. 나부터도 공부라면 학을 떼겠는데! (쌘이와 미아를 비롯해 아직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친구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그 옛날의 나와 똑같이 대체 왜 써먹을 데도 없는 어려운 수학이랑 과학을 공부해야 되느냐고 묻는 조카에게 나 또한 "살아가는데 다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뻔한 대답을 해주며 한숨이 나왔다. 영어권 나라로 여행 가고 싶으면 고모를 데려가거나 영어를 잘하는 친구랑 가면 되고, 어차피 프랑스에선 영어로 해도 안 통한다며? 라고 항변하는 조카에겐 이미 영어공부의 당위성도 없어서 말문이 막힌 내가 "꼴찌는 하면 안 되잖아!"라고 윽박질러놓긴 했으나 과연 조카의 속성 단어암기 프로젝트도 성공리에 마무리될지 모르겠다. 으휴. 꼴찌 좀 하면 또 어떻다고... 그 역시 학창시절의 재미난 추억이 될 거라 여기면 좋을 텐데, 부지불식간에 꼴찌는 곤란하다고 튀어나온 걸 보면 나 역시 학력지상주의에 물든 속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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