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복 예쁜 거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가슴에서 끈으로 꽉 동여매고 펄럭이는 치맛자락 조심히 잡으면서 속치마에 속바지까지 챙겨입으려면 너무도 불편하단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궁궐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철철이 예쁜 전통한복을 바꿔입어가며 아리따운 한복 자태를 뽐내시기 때문에 그간 구경하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다. 나야 뭐 계속 꾀가 나서 안내도 설렁설렁, 복장도 대충 생활한복으로 근근이 버텨오고 있는데, 내가 궁궐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걸 안 이후 주변에서 장롱 안 박스에 잠자고 있던 한복들을 내게 보내왔다. 언니도 제대로 한복 입고 해! 라면서... 체격이 비슷한 큰올케가 제일 먼저, 그러고 나선 후배 둘이나 더... ㅋㅋㅋ
하지만 전통한복을 입더라도 손에 그림 파일 들고 펼쳐 보여가며 설명을 하려면 양손이 자유로워야하기 때문에 치마가 일반 자락치마면 입기가 곤란하다. 통치마로 리폼을 해야하고, 길이도 좀 짧아야 질질 끌리지 않으면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편하고...
그렇다면 한복치마를 수선해야한다는 얘긴데! 머릿속으로는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과, 에구 어딜... 어디 수선집에 맡겨야지..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하면서 1년 넘게 한복 세 벌이 먼지를 뽀얗게 쓰고 옷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큰올케 한복은 무려 19년전! 결혼할 때 울 엄니가 청홍새색시 한복과 더불어 행사용으로 한벌 더 해주신 거라서(큰조카 돌잔치와 이후 집안 어르신들 잔치때 입었음) 연분홍치마는 예쁜데, 남색 저고리는 완전 구닥다리 느낌! 소매 통이 너무 넓고 품도 컸다. 더욱이 본견 깨끼저고리라 나 홀로 수선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반면에 후배Y가 보내준 한복은 꽃분홍 치마에 아이보리색 저고리. 그나마 한 10년 전 동생 결혼색때 입은 거라 스타일은 그럭저럭 요즘것과 거의 비슷하다. 옷고름이 넓고 길지만 소매통이 완전 붕어배래는 아니라는 얘기. 하지만 우어.... 꽃분홍색이 너무 눈부시다... 후배P가 보내준 한복은 그야말로 빨간치마에 초록저고리.. 새색시 폐백용 한복이었다. 흐음... 세 벌이라지만 당장 활용가능한 건 큰올케의 연분홍 치마와 후배Y의 아이보리 저고리 정도.
다른 분들도 더러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 한복을 구입해서 통치마로 수선을 해입을 요량으로 동대문 수선집에 맡겼다기에 결과물을 기다렸다. 어디 한번 보고 나도 맡기든지 말든지... 일단 과연 내가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것인가 그 용기를 낼 수 있을까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암튼... <친구따라 강남가기 권법>을 시도해보려했으나 ㅋㅋㅋ 1년이 넘도록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다.
동대문 수선집에서 새 한복 바느질 하느라 바빠, 도대체 수선은 해줄 생각도 안하고 1년 내내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그냥 주더라나. 그럼 그렇지... 역시 그럼 내가 직접 수선하거나, 아예 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근데 통치마로 리폼을 하려면 지퍼도 달아야 하고, 주름도 요즘 스타일~에 맞게 좀 넓은 주름으로 다시 잡으려면 치마말기를 달아야한다는 '디자인'은 나왔는데 도무지 동대문 원단시장에 갈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 핑계로 또 몇달... 물론 인터넷으로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는 벌써부터 알아봤지만, 어쩐지 개미지옥 같고... 금방이라도 자원봉사를 관둘지 모른다는 예감도 나를 흔들었다. 그런 마당에 니가 지금 한복 꿰매고 앉았을 시간이 어디 있냐!?
하지만.. 한복 조끼 포스팅에도 썼듯이 그놈의 '욕심'은 계속 나를 부추겼고, 요번에 조끼 원단 사면서 얼른 치마말기용 자수원단과 흰천, 지퍼 따위를 후다닥 같이 사들였다. 재료만 있으면야 뭐 언제든...
그러고는 마감과 동시에 당의 조끼 끝내고, 곧이어 생산성 폭발! 또 한 건 잉여짓이 완수되었다. ^^;;
1. 일단은 쪼글쪼글 잔주름이 잡혔던 자락치마의 윗부분을 잘라내고...
2. 치마말기 만들 자수 원단을 내 가슴둘레에 맞게 재단하고..
3. 주름을 넓게 넓게 치마말기 길이에 맞춰서 다시 잡고 (이 과정에서 수없는 삽질 ㅠ.ㅠ 길이 맞추기 어려워!)
4. 심지원단까지 넣어서 치마말기랑 치마 몸통 연결
5. 공그르기로 치맛자락 서로 연결해 통치마 완성
6. 자수 천으로 어깨끝 만들어 달기--> 이것은 삽질로 판명되어 나중에 잘라내게 된다. ㅋㅋ 흰 저고리에 다 비치고 일단 너무 두꺼워! (아래 오른쪽 그림이 망한 어깨끈 기념 샷이다 ^^)
7. 침방나인 저리가라 솜씨로 촘촘하게 박았던 어깨끈을... ㅠ.ㅠ 눈물을 머금고 다시 잘라낸 뒤엔 다시 원래 한복에 달렸던 어깨끈을 활용해서 이어 붙였다.
8. 그리고 대망의 지퍼달기...
왼쪽 사진은 요즘 한복 패션쇼나 외국인들이 한복 활용한 튜브탑 드레스라면서 훌렁 어깨를 드러내고 입는 옷들이랑 '삘'이 비슷하다고 자뻑... ㅋㅋ 오른쪽이 완성본 통치마다.
주름 두께도 들쭉날쭉 난리도 아니지만 치마말기 길이랑 맞췄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저나마도 3센티미터씩 자로 재가며 주름 접어 시침질하고 다림질하고.. 아주 엄청난 공이 들어갔음 ㅠ.ㅠ)
치마 수선하면서 박음질을 했다가 튿었다가 다시 박기를 하도 거듭했더니만...
처음엔 걱정스럽기만 했던 저고리 고름 줄여달기 쯤이야 막 우습게 생각됐다. 깨끼저고리의 특징은 '곱솔'인데.. 재봉틀도 없이 감히 손바느질로 세번 접어박기를 시도해보겠다고 나선것...
물론 결과는 두번 싸박아 그냥 뒤집는 걸로 그쳤지만 그럭저럭 상상으로 정한 고름이 길이와 폭이 요즘 유행 디자인처럼 나온 것 같아서 뿌듯하다. 원래는 진보라색인데 밤중에 형광등 조명 아래 찍었더니 검게 나왔다..
자뻑모드로 자랑하는 김에 덧붙이자면 종이 동정 달려있던 것도 떼어내고 흰색 면원단 접어 박아서 천동정으로 바꿔 달았음. 이제 저고리도 막 빨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저고리는 before 사진이 없다. 고름 폭과 길이가 저 두배 쯤 된다고 생각하면 됨)
완성품 걸어놓고 이쁘다, 훌륭하다 흐뭇해하고는 있는데...
사실 좀 너무 약혼식 한복 같은 느낌이라서 과연 내가 저걸 싸들고 궁궐에 나가 떨쳐입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ㅎㅎㅎ 암튼 한복 리폼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엄청난 의미를 두기로! ^^v
다음주면 궁궐에서 정식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선 정말 회의가 많았고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간 빼앗기고 몸 축내면서 나는 봉사랍시고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 도무지 명쾌한 답이 안나오니 원... (장점과 단점 목록을 만든지 오래 됐다. -_-;)
암튼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왜 '옷 욕심'은 끝이 없는지... ㅋㅋ 화려한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순 없지만 이왕이면 그럴싸한, 나름 예쁜 생할한복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론 버럭~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데 쓸데없는(?) 돈을 써야하지? 한달에 두번 자원봉사 하려고 수십만원 들여서 따로 옷을 사야하다니 이 무슨... +_+
째뜬 그래서 계절별로 돌려막기하듯 번갈아 입었던 생활한복과 내가 고쳐입은 한복으로 버티며,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곧 그만둘지 모르니 한복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 생각했으나 또 인간이 간사해서 금방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추석이랑 설날에 활용해서 입으면 되잖아? ㅎㅎ (잘해봤자 한정식집 사장님 같겠지만 ㅠ.ㅠ) 물론 거기에는 일본처럼 평소에도 종종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괜한 소망도 한 자락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칠순잔치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도나기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입었던 머슴 한복 말고, 좀 예쁘고 화사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세상이 오면 좀 좋은가 말이다.
지난 여름엔 특히 일도 밀려 바쁜 데다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좀 멀리 겉에서 볼 땐 멀쩡해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는 인간들의 단점도 환멸스럽고 나 역시 까칠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설을 퍼붓게 되고... ㅋㅋ
그러다가 또 왜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는데, 암튼 몇몇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아니 왜?)이 들면서, 3년은 버텨보자,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좀 더 견뎌보자 결정하자마자 내가 한 짓이라는 게 덜컥 옷부터 새로 사는 거였다. 관두기 아깝게... ㅋ
이 옷이다...
후기로 일확천금을 노려보겠다고 일부러 찍은 착용샷은.... 슬그머니 지웠다. ㅋㅋㅋ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후기는 채택되지 못했다 ;-p
암튼 궁에서 이 옷을 입으면 유관순 누나, 혹은 채영신 납시었다는 평을 듣는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생활한복--한복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었으면서 옷감이 소박하고 편안한--에 가장 가까운 옷이라 놀리거나 말거나 나 혼자 좋아라한다.
그러나 새로 산 생활한복의 단점은 아무래도 한복스러워서 궁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 ㅠ.ㅠ (난 사람들이 시선 집중이 무섭다. 일종의 무대공포증?) 싸들고 다니면서 갈아입는 한복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입어보겠다고 장만했지만 저러고 집을 나서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ㅎ
째뜬 그래서 그걸 핑계로 난 또 집에 있는 평상복을 활용해 입을 수 있는(이미 랩스커트와 마 블라우스는 활용중이므로)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원피스에다가 한복 조끼를 걸쳐입겠다는 결론에 도달, 미친듯이 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생활한복 파는데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과 색깔은 없어! 내 원피스가 연한 팥죽색이라서 더더욱 색깔 맞추기도 어려웠고, 기성복을 사면 한참 길이를 자르고 품도 많이 줄여야했는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감까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의 결론은? 까짓것 내가만들어 입지 뭐.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덜컥 하게 되었는지 원.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 가사시간에 만들어본 한복의 경험과 마고자를 한복 저고리로 고쳐입었던 경험이 쓸데없이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튜브를 뒤져보면 한복 바느질 영상이 종종 보이기도! (깃 바느질은 정말로 그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분께 감사~)
해서 상상으로 어울릴거라 정한 초콜릿 색으로 옷감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잉여짓은 바쁠 때 해야 제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난감한 상황이라...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시체놀이하듯 잠을 몰아잔 뒤, 몇주 전에 날아온 옷감을 자르고 오리고... 얼추 상상 속의 그 <당의 조끼>가 완성되었다. ^___^v
패턴을 대충 잘못 그려서 여러번 지우고, 소매 안감 패턴은 서너번은 다시 그리는 난항을 겪느라 과정샷도 별로 없다.
상상으론 원피스 품에 대충 맞추면 되겠거니 했으나 조끼를 많이 겹치려면 앞판을 대체 얼마나 품을 둬야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정말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깃도 목선도 다 대충 그리고 잘라서 옷이 완성되어 나온 게 신기할 정도다. 겹조끼가 아니라서 소매 안감 넣고 시접 처리하는 게 젤 어려웠음. ㅠ.ㅠ
하여간에 암튼 이틀만에 거의 완성되어, 아래 왼쪽 사진은 심지 대신 흰천을 넣어 깃 달고 있는 사진이고
아래 오른쪽은 정말로 마지막 단계인 고름 달기 직전 모습.
대망의 완성품은 이런 모습이다.
앞배레보다 뒤는 좀 더 짧게 일직선으로 해서 나의 짜리몽땅함을 뒷모습에선 좀 덜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아쉬운 건 역시나 고수의 재단 솜씨가 필요한 깃부분. 둥글게 패턴을 떠서 재단해야 하는데 그냥 직선으로 재단했더니 당연히 운다. 다음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느질을 마쳤으나.. 다신 안하고 싶은 마음... ㅎㅎㅎ
올이 마구 풀리는데 재봉틀 없이, 바이어스도 없이 모든 시접을 죄다 싸박느라 멀미 났다. 가슴 부분엔 다트도 좀 넣어주었어야 하는데 그럴 재주도 없고, 한복은 역시 평면재단이지, 그러면서 대충 우겨박아서 입은 후에도 여기저기 쭈글거리는 느낌이 좀 있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들었단 자부심으로 그냥 버티고 입을 테닷.
부디.. 이걸로 당분간 한복 욕심은 좀 그만 부리기를. ㅎㅎㅎ (그러나 이 옷감과 함께 올케 한복 치마 수선할 치마말기용 자수 천을 샀다는 사실...은 밝히기도 민망하닷 ㅠ.ㅠ)
지난번에 서랍장을 정리해 옷을 또 한 보따리 내놓으며, 청치마가 눈에 띄였다. 청바지와 달리, 십대소녀가 발랄하게 입는 미니스커트가 아닌 다음에야 도무지 어떻게 입어도 멋내기 어려운 옷이 청치마가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생각. (근데 그땐 왜 샀니;;) +_+ 수지 정도나 된다면 모를까. 암튼 그치만 또 아까워서 도저히 못 버리고(진짜로 몇번 안 입어서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다 ㅋㅋ) 10년도 넘게 서랍장에 모셔뒀던 걸, 재활용함에 내던지지 않기로 새삼 결정한 이유는 에코백으로 리폼해야겠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지난번 청바지로도 한번 만들어봤으니, 치마로는 완전 식은죽 먹기 아닐까나.
하지만 재봉틀 없이 또 손바느질을 해야한다는 난항과 게으름과 건망증이 겹쳐 그간 시도를 안하고 있었는데, 뭐든 잉여짓은 괜히 더 바쁠때 하게 되는 묘한 심리가 또 발동했다. 마침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안감으로 쓸만한 천도 발견했겠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바느질을 시작했다. ^^;
청치마는 밑단을 조금 잘라서 끈으로 쓸 천을 확보하고 그냥 아래를 꿰매면 일단 몸통 완성! 앞뒤로 주머니가 있으니 안감에 굳이 주머니를 달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의외로 가방끈 부분... 데님 천을 접어서 두겹으로 꿰매는 거 힘들고 천도 모자랄 것 같아 덧붙일 용도로 체크무늬 원단을 따로 사왔는데 천조각 아낄 욕심에 재단 방향을 아무케나 했더니 막 늘어나는 게 아닌가... ㅋㅋ 다림질 귀찮아서 손으로 꽉꽉 접어 자국 만든 뒤 꽉 쥐고 하느라 손가락에 쥐날뻔...
ㅋㅋㅋ 끈 달기 전 나름 과정샷이다.
시접이 겹쳐진 데님천에 바늘 꽂느라고 진짜 손이 부들부들... 재봉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웬간한 재봉틀로는 저 두꺼운 가방끈을 박을 수 없을 거라고 자체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론 안감 넣기~
듬성듬성 대충 꿰맨 안감을 뒤집어서 가방 안쪽에 씌워놓은 상태로 아직 겉천과 연결 전..
작년여름 방학때 ㅈㅎ이랑 같이 바느질 놀이 하며(?) 오래 된 수건으로 만든 고래 쿠션이 바늘쌈지 노릇하느라 찬조출연했다. 왼쪽에 시커먼 천이 가방끈 안쪽에 덧댄 원단이다.
커피잔 패턴이 귀여운 안감 위쪽을 안으로 접어넣고 공그르기나 감침질로 마무리하면 끝!
가방의 실제 색감은 오른쪽에 가깝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청원단이어서...
두번째라서 확실히 완성도가 첫번째 만든 것보다 훌륭하다고 자화자찬! 노상 들고다니던 검정색 천가방을 조카에게 빼앗기고나니 만만하게 들고다닐 가방이 없어서 가방을 하나 새로 사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당분간 가방 쇼핑욕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ㅎㅎㅎ 한땀한땀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ㅋㅋㅋ 완전 마음에 든다.
손끝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도 계속 폭발하는 생산성을 주체하지 못해 심지어 머리띠도 만들었다. ^^;
손뜨개로 떠서 안에 솜까지 넣어 여기저기 브로치로 달고 다니던 은색꽃을 그냥 목공풀로 검정머리띠에 붙였다. 요새 머리모양이 맘에 안들고 속알머리가 자꾸 훤히 들여다보여서 머리띠를 애용중이다보니괜스레 머리띠 욕심 만땅.. ㅠ.ㅠ
하지만 머리띠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싶어도, 테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윗머리가 네모난' 내 두상에 잘 맞고 한참 하고 댕겨도 옆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 편한 머리띠를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헐렁하면 또 머리숱도 없어서 막 흘러내리기도...
거기다 안경까지 써야하니 까다롭게 고를 수밖에 없다.
해서 좀 잘 맞는다 싶은 머리띠는 장식이 떨어지거나 망가져도 안버리고 재활용.. ^^; 그런 덕분에 이 또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ㅋㅋㅋ 안쪽 어딘가 '핸드메이드'라고 라벨이라도 붙일까보다.
등산용품 선망에 이어 요번엔 또 생활한복 타령이다. 등산이든 요가든 낚시든, 뭘 하든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전에 그와 관련된 옷과 장비부터 사고보는 사람들.. 나도 이젠 절대로 손가락질 못하겠다. 그 사람들이 옷 욕심이나 허세가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 한달에 한두번도 안되는 기회를 바라며 끊임없이 쓸데없이 계속해서 등산복과 생활한복에 눈독을 들이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있으니 으휴... 그나마 알량한 수입과 지출 규모를 따져서 막 질러대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궁궐 안내 나가는 날 입는 생활한복도 이제 계절이 완전히 한바퀴 돌았으니 분명 새로이 더 옷을 사지 않아도 입을 옷은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너무 머슴스럽지 않으면서 예쁜...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은 한복에 대한 로망은 좀체 꺼지질 않는다. 평소 입는 옷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더 큰 기준인데;; 작년 여름 수습기간 중에 덜컥 싼맛에 장만한 여름 옷은 소재만 마일뿐, 사실 그냥 긴 통치마에 매듭단추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였다. 푹푹 찌는 폭염엔 그 정도로도 나름의 복장규정('지킴이는 활동시'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안내하여한다'는)에 위배되진 않는 모양이지만, 도통 한복스럽지 않다며 나 혼자 마음에 안들어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여름도 다 가는 9월쯤 하얀 적삼 비스무리한 걸 하나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정식 옷고름은 아니지만 고름 비슷하게 변형된 리본도 달려있고 (요즘은 또 일반 한복도 옷고름이 짧고 얄상한 게 유행이다) 한복여밈 같은 깃선이며 홈질로 마무리해놓은 장식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하얀색이 시원해보이지...
생활한복류는 아무래도 젊은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보니 小자가 66 사이즈부터 시작된다. 해서 막상 택배온 옷을 입어보니 꼭 남의 걸 얻어입은 듯 허수아비 같았다.. ㅋㅋ
얼른 품도 줄이고 소매통도 안으로 꿰매 좁히고 뒤쪽으로
허리부분에 대충 다아트를 넣어 어벙벙한 느낌을 줄였다.
그러고 야심차게 궁에 입고 갔더니만....
-_-; 반응이 별로였다. 일단 형광 하얀색이라 푸르딩딩한 기운이 도는 흰옷이랑 나랑 별로 안어울린다는 총평. 게다가 또 내가 뭐 화장을 막 진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립스틱도 바르는 둥 마는둥.. 하다보니 딱 환자복 입은 아픈 사람 같단다. (거울로 내가 봐도 그건 인정 ㅋㅋ 평소 흰색&검정 배색을 자주 입고 다니지만 그냥 티셔츠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역시 궁궐에선 화려한 색깔이 어울린다는 고수들의 조언. 결국 딱 한번 입고 더는 안입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올해 여름... 반드시 다려야 입을 수 있는 마블라우스 대신에 저 적삼(이름이 구김마 꽃적삼이던가;;)을 산 이유도 그냥 빨아서 말렸다가 대충 입으려던 거였는데! 싶어지면서 또 다시 인터넷을 눈빠지게 검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로 또 한번 사 볼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든 생각은, 염색을 해입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천연염색과 관련된 정보를 폭풍검색, 비트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쯤으로 물이 얼마나 예쁘게 들까 마구 기대하면서...
일부러 재래시장에 가서 비트 두 덩이를 사다가 대충 썰어 믹서기로 갈아서 매염제로 필요하다는 백반까지 함께 넣어 천연염료를 만든 뒤 신나게 옷감에 비벼댔다. 그러나 핏빛처럼 진했던 비트의 진분홍색은 백반을 섞으니 약간 갈변하는 듯? 어쨌거나 손목 아프게 주물러대다가 (30분간 담가 주무르라고 어느 블로그에;;) 대강 물이 다 든 것 같아 좀 꾸둑꾸둑 말려 염료를 고착시킨 뒤에(그러는 과정에 여기저기 얼룩덜룩 ㅋㅋㅋ 그러나 그게 천연염색의 묘미지.. 라며 내심 뿌듯;;) 물에 헹궜다.
그런데 으악... 헹구는 과정에서 염료 물이 다 빠지네그려! ㅠ.ㅠ
결국 1차 천연염색은 실패로 판명났다. 비트든 포도든 양파든 천연염색 매염제는 '백반'이라고 하던 모든 블로그들이 다 '뻥'이었던 거냐! 나 원참... 나의 옷은 저 형광 하얀색에서 하도 오래 입어 더럽게 때 탄 흰색으로 돌변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다시 폭풍검색을 했다. 이번엔 실제로 본인이 천연염색을 해본 건지 어디선가 풍월로 들은 걸 옮겨적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팅은 다 무시.. 주로 실패담을 읽었다. 신나게 염료 물 들였다가 들은 풍월대로 매염제로 백반을 사용했더니 색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백반 물의 농도가 중요한가?
그러다 유레카! 천연염료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95도로 30분간 끓여 만든 각종 천연염료의 발색 과정을 옷감의 종류(면, 마, 견)에 따라 매염제(백반, 소금, 식초, 사용 안함) 별로, 고정 상태와 착색 정도를 담은 내용이었다. 결론은 견직물이 효과가 제일 좋고, 염색을 세 차례 실시한 결과, 착색효과는 매염제를 썼을 때나 안썼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나중에 빨아도 물이 안빠진단다. 옳거니.
백반도 남았겠다. 2차 시도에 돌입. 다시 비트를 사왔다. 백반의 농도가 중요할지 모르니깐 뜨거운 물에 10% 용액을 대체로 맞춰 준비해놓고 잘게 자른 비트를 망에 담아 푹푹 끓였다. 아 색깔 좋고... 그러나 모든 흰색 옷감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만 쉽사리 그 선연한 진분홍색깔이 저고리에 침투하진 못했다. 어쨌든 염료 30분, 매염제 30분씩 담그는 절차를 3번 하면 되렸다.... 허걱. 기껏 분홍색으로 물든 저고리를 백반물에 담갔더니 다시 흰색으로 환원! ㅠ.ㅠ 열받아서 백반물은 확 쏟아버렸다. 다시 물에 헹궈낸 뒤엔 그냥 비트물에 소금 좀 넣고(어디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소금이 천연염료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던가) 4, 5시간 푹 담궈놓았다. 논문에서 매염제 안써도 효과는 똑같다고 했으니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옷값에 비트값에 쓸데없이 돈만 엄청 버렸구나 싶은 낭패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염료 산화되서 색깔 완전 이상해진다던데 에라 모르겠다. 쳇. 간간이 들여다보니 분명 염색물은 진자주색인데 옷감 색은 분홍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요상망측. ㅋㅋㅋ
그쯤했으면 최선을 다했다 싶어 그나마 누런 흰색은 모면한 저고리를 꺼내 깨끗한 물에 주물러 헹궜다. 신기하게도 보라자주 기운이 돌던 저고리가 헹구면 헹굴수록 갈색으로... 그나마 얼룩덜룩했던 1차 염색의 후유증은 다 사라졌다. 그럼 됐지 뭐...
옷걸이에 걸려 말렸더니, 그럴싸한 베이지색이 되었고, 원래 옷감에 든 꽃무늬 부분은 은은하게 약간 더 갈변한 느낌. 아싸~
결국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염색 저고리가 완성되었다. ^^; 칙칙하다고 누가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흡족하면 됐지! 볏짚 색이랄지, 베이지색으로 변한 저고리엔 진밤색 치마가 제격(생활한복 치마 아니고 시원해서 여름마다 내가 애용하는, 무인양품에서 산 긴 랩스커트를 활용했다)이라며 희희낙락 지난 활동일에 입고 다녔다. 이번엔 다들 칭찬해주는 분위기... 색깔 은은하고 예쁘네...라면서.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커지는 욕심... 이왕이면 리본 고름을 다른 색으로 달고 시프다... 어흑..
결국 며칠 전엔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대로 오밤중에 고름만 떼어서 패브릭 마커로 칠을 했다. ㅋㅋㅋ
이런 모양새다. 형광등 아래 찍어서 색이 좀 진하게 나왔다. 실물은 아래보다 조금 더 흐림.
쭈글쭈글 입은 흔적이 여실한데 혼자 보며 흐뭇~
처음 사이즈 리폼할 때 옆구리 아래쪽에 수놓은 빨간색 꽃자수는 전혀 염료 물이 들지 않은 게 더 신기. 면사인줄 알았더니 화학사였던 모양.
ㅋㅋㅋ 내친 김에 착용샷~도 서비스. 이날따라 나보다 더 DIY를 좋아하시는 어느 샘이 꽃자수 브로치를 하나씩 만들어 나눠주시는 바람에 깃에 분홍 꽃도 달았겠다... (이 사진엔 또 저고리 색이 좀 더 흐리게 나옴;;)
세월호 사건 이틀 후엔가 곧장 궁궐 자원봉사 활동을 하러 갔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또 다시 2주가 흘러도 여전히 바닷속에 잠겨 있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생활한복이라도 나름 화사하게 보이려고 작년에 장만한 빨강 저고리를 도저히 입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뉴스보며 노상 질질 울면서 상복 입고 조문은 못 갈망정... 어차피 치마는 검정색이니깐, 위에다 임시로 검정 티에 검정 카디건을 입을까 어쩔까 고민했는데 그러고 보니 딱 원불교 정녀 차림이란 생각이... -_-;
그때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동생 마고자를 리폼하자는 것이었다. 궁에서 봉사할 때 입으라고 올케가 10여년전에 입던 깨끼 한복을 상자째로 줬는데(이 또한 통치마로 수선해야 재활용이 가능하다;;) 아 글쎄 그 맨 아래 동생이 결혼 때 입었던 남색 마고자까지 들어있었던 거다. 자수가 하도 예뻐서 그것도 나중에 고쳐입든지 말든지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겨울용이라서;;) 덥거나 말거나 내친 김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남자용 마고자 길이는 대충 여성용 반두루마기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것. 마침 깔맞춤 양단 목도리도 들어 있어서 깃과 고름을 만들 천도 확보되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옆선을 사선으로 확 줄이고 소매도 통을 줄여 붙이면 되겠지 대강 계획이 섰는데, 안감이 있어서 어디까지 안감을 분리해야 하나 고민했더니 웬걸, 양쪽 소매만 튿어내고 나니 오히려 안감이 있어서 바느질이 수월했다. 안감 겉감 같이 대충 꿰매서 뒤집으면 끝! ^^; 물론 소매는 진동 모양을 올케 저고리 선 대로 볼펜으로 그려 꿰맨 뒤 어깨선과 딱 맞춰 붙이는 게 난항이었지만 (그래서 잘 보면 한쪽 어깨는 좀 쭈글쭈글 운다;;) 그래도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손바느질로 완성! 다 만들고 나니, 내가 궁궐 구경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가 전생에 궁궐 살던 공주여서가 아니라 침방 나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웃긴 생각도 들었다. 깃이며 고름이며, 재봉틀도 없이 손바느질로 대충 꿰맨 거 치고는 너무 훌륭하잖아! (완전 자화자찬 모드;;)
해서 빨강색 생활한복 저고리 대신, 자수가 화려하긴 해도 남색이라 전국적인 세월호 애도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덜 튈만한 저고리를 만들어 냈단 이야기다. 하지만 그날 당장 입고 갔을 때, 실크라서 더워서 혼이 났다는;; 혼자 너무 오버했다고 느껴져, 결국 그래서 또 다시 2주 뒤 그 다음 활동일엔 도로 여름용 주홍 저고리를 입었다. ㅎㅎ
사진엔 교묘하게 소매가 접혀서 살짝 우는 소매 진동선이 안보인다. ㅋ
째뜬 예쁘단 칭찬을 많이 듣긴 했으나 남동생 키가 워낙 커서 반두루마기 형태라고 해도 내겐 좀 길단다. 길이도 좀 줄이지 그랬느냐고 누군가 조언했음. 그럼 일이 너무 커지지!
곡선이 많아서 바느질 끝내고 나서 한번 다려줬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입었더니 둥글린 소매선에 좀 각이 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흡족. 사실 요즘 유행하는 한복들은 소매 진동선이 저렇게 둥글지 않고 직선에 가까우며 소매폭도 훨씬 좁다. 최신 유행은 유행이고, 한복의 묘미는 어디까지나 곡선미라규~ ㅋ
어젯밤 유행이 되돌아오더라도 도저히 다시 입을 것 같지않은 통청바지를 잘라 집에서 입을 반바지로 만들고 났더니, 잘라낸 바지통이 하도 풍성하여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다. 순간적으로 에코백을 만들자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재활용품 에코백이 아니고 무엇이리...
딱히 재단할 것도 없이 양쪽 바지통을 터서 맞붙여놓고, 정말로 장인정신(?)을 발휘 한땀한땀 손바느질로 꿰매면서 '무더위에 이 무슨 짓인지...'를 수없이 되뇌었다. 여름 청바지라 그나마 얇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손끝이 너덜너덜...
왼쪽은 어젯밤(실은 오늘 새벽;;)까지 낑낑댄 결과물이고... 오늘 점심먹고나서 드디어 끈을 붙였다. 어젠 거의 안찔렸는데 오늘은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대여섯 군데나 바늘에 찔려 피를봤다. 어제 말복 삼계탕을 먹어줬으니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빈혈 걸렸겠다며 혼자서 킬킬댔을 정도다. 끈부분에 더러 핏자국이 묻기까지 ㅠㅠ
정말로 피와 땀으로 완성된 역작이다.
어쨌거나 완성하고보니 몹시 뿌듯하다. 인류가 예술을 하게 된 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에 대한 소유 선망과 손을 꼼지락거려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기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라는 거창한 명분까지 들이대면서...
이제 보니 가방 색깔이 진짜 왼쪽 사진처럼 생겼다면 얼마나 좋을까싶다만...실제 가방 색깔은 좀더 푸르딩딩하여 완성본 사진에 가깝다. 꽤나 애용하게 될 것 같은데 천이 얇아 금세 닳거나 찢어지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스러워 안감을 대야하나 어쩌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밑바닥만이라도 천을 덧댈까말까... ㅋㅋㅋ
높은 운동화를 신고도 종종 질질 끌고다니던 바짓단이 닳아서 더욱더 빈티지한 느낌이 그대로~! 옷핀모양의 장식단추를 달고보니 심심해서 아래쪽에 또 단추를 달았고, 지하철 추행범 퇴치용 및 호신용으로 좋겠다고 낄낄대며 진짜 옷핀도 두개씩 양쪽 시접에 달았다. (지저분해보이는 거 방지용)
안감을 넣고야 말았다. 스판기까지 있는 얇은 청지가 아무래도 금방 뚫어질 것 같아서 흠흠... (핑계대지 마라. 그냥 일하기가 싫었잖아;;) 얇은 안감은 바늘도 쑥쑥 들어가고 귀찮아지면 박음질 대신 홈질로 마구 속도를 늘였더니 순식간에 뚝딱 모양이 나왔다. 이왕 안감 넣기로 했으니 안주머니도 하나 만들어 달아 완성도를 높였음. ㅎㅎㅎ
귀걸이, 팔찌, 반지. 이 셋은 큰 돈 안 들이고 소소한 소비욕과 흡족함이 필요할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품목인 것 같다. 반면에 목걸이는 잘 안사게 된다. 한번 목에 걸면 몇달씩 안빼고 하는 스타일이라 살갗과 땀에 닿아도 괜찮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야하니 그런듯. 하지만 워낙 '버리지 못하는 지병' 때문에 고가의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옛날 길거리 좌판에서 겨우 몇천원 주고 사들인 것까지도 생김새만 멀쩡하면 죄다 껴안고 사는 탓에 새 액세서리를 사려면 우선은 죄책감부터 든다. 이거랑 비슷한 거 집에 있지 않나? 고만고만한 취향이 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귀걸이는 귓불 구멍이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그나마 묵직한 디자인을 제외하다보니 그나마 좀 덜 사는 편이고, 반지도 막상 사들여봤자 끼고 나가려면 귀찮을 때가 많아서(손 씻을 때는 빼야 하는 요란한 디자인일수록 꼭 그렇다;) 최근 액세서리 구매는 팔찌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구슬팔찌 좀 주렁주렁 해줘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나름의 패션 철학(?).
여름마다 생일선물로는 꼭 한두개씩 팔찌를 골라 주변에 사달라고 종용하는 편인데, 막상 하고 다니는 팔찌는 거의 정해져 있고 최근에 산 것보다는 꼭 옛날 옛적에 선물 받아 오래 추억이 서린 물건을 애용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팔찌의 고무줄이 세월과 함께 녹아버린다는 것. ㅠ.ㅠ 20여년 전에 선물받은 호박 팔찌도 고무줄이 녹았으나 그건 구멍이 워낙 커 집에 있는 마끈으로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 수선을 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만 고무줄이 아니라 빡빡한 마끈을 저 마지막 구슬에 끼우는 걸 한 손으로 하려니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라했던 옥돌 팔찌마저 고무줄이 늘어나자, 몇년째 여름마다 나는 수제 액세서리 파는 곳에 가면 팔찌를 사면서 슬쩍 팔찌용 고무줄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매몰차게도 다들 없다고! ㅠ.ㅠ
진기한 보석도 아니고, 구슬팔찌 정도야 고무줄 늘어지고 망가지면 휙 버리고 새것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죄다 못버리고 고쳐 쓰려고 모아두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가면 액세서리 재료 파는 곳이 있을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또 몇년... 물건 잘 못 버리는 것도 병이지만, 뭐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건 잘해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몹시 떨어지는 건 정말이지 나의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컴퓨터도 바꾼다 바꾼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하다 겨우겨우 샀을라고.
암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고민만 거듭하다 요번에 팔찌재료를 인터넷으로 파는 곳에서 쉽사리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전 실고무줄처럼 잘 늘어나지도 않고 잘 풀리지도 않는 우레탄 고무줄!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는 일, 어느 틈엔가 나는 이런저런 색깔의 구슬들을 마구 카트에 담고 있었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정말로 엄선한 것들만 가뿐하게 결제를 했다. 하루만에 날아온 투명 고무줄과 구슬로 나는 또 구슬꿰기 놀이에 심취;;;
외할머니가 생전에 중국 여행갔다 사다주셨기에 진짜 옥돌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실제로 착용감이 완전 서늘하고 시원하다!), 제일 좋아하는 구슬팔찌도 고쳤고...
요번에 내가 구입한 8~12mm 사이 각종 구슬은 50개 안팎 한 줄에 5천원~만원 정도. 더 비싼 구슬과 천연석도 많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깔 위주로 사느라 애써 자제했다. 팔 굵은 울 엄니를 위해 터키석과 침수정(맨 위 갈색)은 각각 하나씩 특별히 좀 길게 만들어 드렸기에 남은 구슬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남은 것만 엮어도 내 팔찌 만드는 덴 문제가 없었다. ㅎㅎ 재료비 3만원 정도 들여서 팔찌가 8개나 생긴 셈! 하지만 인건비랑 중간에 보석장식 같은 거까지 넣었을 재료비 따져보니 내가 그간 비싼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사곤 했던 몇만원짜리 팔찌값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장사꾼이라도 팔찌 하나에 최소한 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 ㅋ 아무래도 파는 팔찌는 고무줄 묶은 부분 안보이게 교묘하게 장식도 하나 정도 더 넣었던데 말이지...
암튼 망가진 엄니 염주 팔찌까지 죄다 고쳐드려야 해서 한밤중에 투명 고무줄에 일일이 구슬 꿰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_+ 그러고는 엄니랑 세트 팔찌라며 희희낙락 하고 나갔다 들어와, 팔찌통에 다시 넣으며 보니 아.. 진짜 팔찌 많은데 왜 계속 욕심을 내나 싶다. 이런 자랑 겸 반성 포스팅 하고 나면 내년 여름부턴 팔찌 욕심 좀 덜 부리려나?
11월에도 괜히 딴짓하고 싶어서 밤마다 바느질에 힘썼던걸 자랑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올려야지.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사는 인생인가 싶어 민망하지만 이런 거 자백하고 나면 스스로 한심스러워져서 채찍질의 효과가 좀 있다. ㅋㅋ
우선은 왕비마마가 할머니 같아보인다고 질색을 하는 울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살짝 리폼했다. 단추만 바꿔 단 것도 리폼이라 쳐준다면.... 40킬로그램도 안되는 체중의 할머니가 입으시기엔 솔직히 옷도 너무크고 묵직하다. 셋째고모가 핸드메이드에다 순모라고 엄청 생색내며 선물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쩔수없이 몇번 입으시고는 노상 간수하는데 더 신경을 쓰셨고, 그래서 20년쯤 묵었어도 아직 새것 같다. 원래는 털실로 짜서 덧씌운 단추가 달려 있었는데 나무느낌의 단추를 사서 바꿔 달았다. 이렇게만 해도 할머니옷 얻어 입은 느낌은 좀 덜나지 않을까나...
두번째 바느질도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생신에 넷째고모가 이불을 선물했었다. 집집마다 풍습이 달라서 고인의 물건을 다 태우거나 없애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도 있고 특히 이불은 반드시 살라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난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품을 간직하며 추억을 곱씹는게 뭐가 나쁜가? 특히나 올빼미인 내가 잠자러 들어가면 그때 할머니가 곧 일어날거니까 당신자리에서 자라고 덮어주시던 이불인 것을... 해서 봄가을에 10년 넘게 애용했더니 드디어 한쪽 가장자리가 헤졌다. 버려야하나 고민했었는데 막상 버리자니 다른데가 너무 멀쩡하고 대용량 쓰레기봉투값도 아까운 거다. (이럴 땐 또 지지리 궁상 ㅎㅎㅎ) 그래서 천을 끊어다가 덧씌워 꿰매보자고 결심한 게 작년이었다. 사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는데 요가학원 근처에서 발견한 바느질 부자재 가게에 저 스웨터 단추 사러 가보니 아 글쎄 천도 파는게 아닌가! 동대문 가야하는줄 알고 1년도 넘게 미루기만 했었는데... 그래서 그날로 득달같이 천을 잘라 헤진부분을 감쪽같이 덧씌웠다. 완성품을 본 정민공주가 예쁘다고 아래쪽도 마저 하라더라 ㅎㅎ
이렇게 폭풍 바느질에 힘쓰다보니 두려울 것이 없어졌고 동네 구두수선 아저씨가 가죽이너무 부드러워 자긴 못고친다고 하는 바람에 찢어진 채로 그냥 들고다니던 가방을 손수 꿰매겠다는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마침 택에 달렸던 가죽 한조각도 안버리고 두었더라고!! 안쪽 천을 튿어서 바느질을 버텨줄 천도 풀칠해 넣으며 스스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삭바느질로 전생에 먹고 살다가 갖바치 노릇도 했던 것일까 ㅋㅋㅋ 아무래도 가죽이라 바늘땀은 비뚤빼뚤하지만 이로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탄생했으니 더욱 감격스러웠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참 별짓 다하고 앉았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이건 널리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수제코트를 다 리폼하다니! 리폼은 사실 좀 거창하고 그냥 길이를 잘랐다. 하지만 공단 같은 안감이 있어서 대강 잘라 꿰매 붙이면 되는 일반 코트와 달라서 덜컥 잘라놓고는 겁이 좀 났다. 까짓거 안되면 수선집에 가서 해달라고 하지뭐, 라고 호기롭게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더 창피할 것 같아서 죽이되든 밥이 되든 해내고 말리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시작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비바람 뚫고 외출해보니 그냥 껴입어선 안되겠는 날씨인 거다. 분명 다시 겨울옷이 필요한 날씨였다. 헌데 난 지난주에 이미 모든 겨울 외투를 다 빨거나 세탁소에 맡긴 뒤가 아닌가. 세탁소에 옷을 한번 더 맡기면 맡겼지, 세탁기를 돌렸다 멈췄다 해가며 손빨래한 옷 몇개를 중간에 넣었다 뺐다 해가며 힘겹게 빨아둔 겨울 외투들을 다시 다시 꺼내입을 순 절대로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올핸 딱 한번 입은 터라 세탁소에 맡기기도 아까워 그냥 걸어둔 더플코트가 생각났다.
유행이든 아니든 나는 더플 코트도 좋고 하늘색도 좋다면서 6, 7년 전엔가 산 하늘색 더플코트를 꼭 연중행사하듯이 입어준다. 남들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알게 뭐람, 이러면서. 그런데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길이가 좀 길다는 것. 예전에 입을 땐 길어서 더 뜨뜻하다며 위로했는데, 사실 더플코트는 그리 따뜻하지 않다. 따뜻하긴 오리털이 최고지! 해서 갖고 있는 모직 코트는 죄다 나에게 한겨울옷이 아니라 거의 환절기 옷이다. 0도 언저리에서 5도 정도 사이에만 입을 수 있는... 늦가을과 초봄에도 춥다고 오리털 꺼내입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코트가 너무 길면 당연히 거치적거려서 외면하게 되므로, 길이를 좀 잘라 입을까 몇번 생각하긴 했었다.
잡설이 길다. 암튼 안감 체크원단도 모직 겉감도 모직이라 마무리 바느질을 손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그 더플코트를 조금 전에 내가 리폼하는 데 성공했다. ㅠ.ㅠ 바늘에 손가락을 여러번 찔렸고 왼쪽 엄지에는 핏자국까지 남았으며 총 바느질 시간은 무려 2시간... 그래도 장하다!
삐뚤빼뚤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끔하다!
자세히 보면 감침질한 하얀 실밥 보일듯;
ㅋ 끝부분 바느질 땀이 혹시나 보일까봐 얍삽하게 디카로 안찍고 폰카로 찍었다. 하늘색 실이 집에 없어서 흰색 실로 했더니 두툼한 여밈부분엔 아무래도 하얀 실밥이 약간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밑단은 내가 봐도 정말 감쪽같다! 처음에 짝짝이 안되게 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자르긴 했지만 심지어 여밈 부분도 딱 맞아 떨어진다. 안감 모직 천과 겉감 모직 천이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그걸 일일이 다 1.5센티 정도만 잡아뜯어 갈라 놓은뒤 안쪽으로 맞접어 공그르기와 감침질을 번갈아 했다. 공그르기만 하면 혹시나 바늘땀 터질까봐서...
뿌듯해서 입고 혼자 생새벽에 패션쇼 하듯 걸어다니다 생각하니 이런 건 기록해야 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자투리 원단 다시 꺼내서 사진 찍었다. :)
남들이 뭐라든 기념으로 내일 입고 나갈 작정이다! 캬캬캬.
어렸을 땐 조립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간감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입체그림이든 평면그림이든 이리저리 작은 조각의 방향을 바꾸어 조립해 맞추는 과정이 내겐 상당히 골치아팠다. 그러고 보니 끈기도 부족했던가 보다.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내긴 했지만 들이는 수고에 비해 조악한 조립장난감의 완성품은 별로 성취감도 안겨주지 못했다. 같은 재능인지는 몰라도 루빅스 큐브는 한참 낑낑거려도 한 면 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하도 짜증나서 완전 분해했다가 색깔 맞춰 다시 조립한 적은 있었어도...
헌데 언제부턴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생필품의 조립은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다. 널빤지 조각에 간단히 나사 몇개를 조여야 만들어지는 수납함을 시작으로 탁자도 만들었고, 나중엔 책꽂이도 겁없이 사들일 수 있었다. 복잡한 컴퓨터 책상은 도면 놓고 오래 끙끙대는 내 꼬락서니를 안쓰러이 여긴 아버지가 나서주셨지만, 혼자 했어도 결국 제대로 완성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그 컴퓨터 책상을 멀쩡히 내다버려야했을 때 꽤나 고민을 했다. 다시 분해를 해서 중고로 팔순 없을까, 아니 팔지 않더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결국 귀찮아서 그냥 내다버리는 걸로 결론을 내리긴 했다. 지금 그 상황이 온대도 이런 게으름으론 또 그냥 버리는 쪽을 택하기 십상이지만,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이느라 거금까지 들이느니 누구든 쓸 사람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약간 후회스럽다.
어쨌거나 진짜 맥가이버스러우셨던 아버지엔 못미치지만, 이제 집안 여기저기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내가 나서며 맥가이버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슬며시 뿌듯하다. 그래봤자 형광등, 백열등 갈기, 헐렁해진 서랍장 손잡이 나사 조이기, 스테플러로 지저분한 전선 벽에 고정시키기, 옷걸이로 화분 지지대 만들기, 벽에 못박기 정도이고, 그보다 힘든 일은 당연히 막내동생이 다니러 올 때를 기다리는 편이다. 요번에 왕비마마의 실내 운동을 위한 헬스싸이클을 장만하면서도, 기사가 방문하여 조립 및 설치 해주기를 원하면 출장비 2만5천원이 추가된다는 말에 내가 시도해보고 못하겠으면 동생녀석을 부르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문제의 헬스싸이클이 그놈의 눈폭탄 때문에 꼬박 일주일만에 배달되어 왔다. 비전문가의 솜씨로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된다는 자전거조립은 얼핏 보기에 별로 어려워보이지 않았고, 나는 즉각 2만5천원 벌기에 돌입했다. 부품을 확인하고 일일이 비닐과 골판지를 벗겨, 작은 렌치 두 개로 설명서 순서대로 조립을 하고 있으려니, 정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난감 같은 렌치로 나사를 끝까지 조이는 게 만만치 않아 40여분만에 결국 조립을 끝내고 완성품에 앉아 시연까지 보이자, 내내 못미더워 잔소리를 해대던 왕비마마도 그제야 "우리 딸 맥가이버였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게다가 출장비는 흔쾌히 팁까지 3만원 주시겠단다. ㅋㅋ
왕비마마의 수시 운동 독려를 위해 자전거를 TV앞으로 놓느라 다시 소파를 베란다쪽으로 돌려놓고 화분을 죄다 옮기는 힘쓰기 작업까지 홀로 마친 뒤, 관짝만한 빈 자전거 포장박스를 한 구석에 치워놓고 뿌듯해 하려니 문득 며칠 전 차력을 시도하다 이가 빠진 지붕뚫고 하이킥의 오현경이 떠올랐다.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뭐든 잘할 수 있다는 걸 신애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사무실 이사 때 여직원들은 <걸레질이나>하라는 잔소리에 걸레질 싫다면서 굳이 번쩍번쩍 책상을 옮기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못하는 게 너무도 많은 인간이지만, 그걸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견엔 늘 동조할 수 없어 나름 악다구니를 쓰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젠 운전하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나도 당연히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출장서비스를 부르겠지만, 그런 보험 서비스가 없던 10여년 전 나는 강북강변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서 당당히 타이어를 바꿔 끼우고 가던 길을 간 사람이다! ^^v (물론 그 당시엔 몹시 슬펐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전 올림픽대로에서 펑크가 났을 때는 여러 대의 차가 멈춰서서 도움의 손길을 자청했었는데, 2년만에 아무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가 아무래도 심히 쇠퇴한 나의 외모 탓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차 펑크 때는 원피스 차림의 꽃단장 모드였고, 2차 펑크 때는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모자 차림이긴 했다.)
여전히 나는 운동신경이 둔하고 공간감각력과 셈 능력이 떨어지며 몸놀리는 게 귀찮고 무서운 건 죽어도 싫다. 하지만 길눈은 밝고 지도도 볼 줄 알며 완전 기계치는 아니고 못 정도는 거뜬히 박으며 가끔 드라이버와 망치, 렌치 따위를 들고 맥가이버 놀이를 즐긴다. 필요가 만들어낸 적응력일수도 있겠으나, 나도 놀랐던 숨어있는 관심과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언젠가 조립주택 같은 것도 손수 만들어보고 싶다면 너무 원대한 꿈이려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