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폼

놀잇감 2010. 4. 28. 04:18

하라는 일은 안하고 참 별짓 다하고 앉았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이건 널리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수제코트를 다 리폼하다니! 리폼은 사실 좀 거창하고 그냥 길이를 잘랐다. 하지만 공단 같은 안감이 있어서 대강 잘라 꿰매 붙이면 되는 일반 코트와 달라서 덜컥 잘라놓고는 겁이 좀 났다. 까짓거 안되면 수선집에 가서 해달라고 하지뭐, 라고 호기롭게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더 창피할 것 같아서 죽이되든 밥이 되든 해내고 말리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시작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비바람 뚫고 외출해보니 그냥 껴입어선 안되겠는 날씨인 거다. 분명 다시 겨울옷이 필요한 날씨였다. 헌데 난 지난주에 이미 모든 겨울 외투를 다 빨거나 세탁소에 맡긴 뒤가 아닌가. 세탁소에 옷을 한번 더 맡기면 맡겼지, 세탁기를 돌렸다 멈췄다 해가며 손빨래한 옷 몇개를 중간에 넣었다 뺐다 해가며 힘겹게 빨아둔 겨울 외투들을 다시 다시 꺼내입을 순 절대로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올핸 딱 한번 입은 터라 세탁소에 맡기기도 아까워 그냥 걸어둔 더플코트가 생각났다.

유행이든 아니든 나는 더플 코트도 좋고 하늘색도 좋다면서 6, 7년 전엔가 산 하늘색 더플코트를 꼭 연중행사하듯이 입어준다. 남들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알게 뭐람, 이러면서. 그런데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길이가 좀 길다는 것. 예전에 입을 땐 길어서 더 뜨뜻하다며 위로했는데, 사실 더플코트는 그리 따뜻하지 않다. 따뜻하긴 오리털이 최고지! 해서 갖고 있는 모직 코트는 죄다 나에게 한겨울옷이 아니라 거의 환절기 옷이다. 0도 언저리에서 5도 정도 사이에만 입을 수 있는... 늦가을과 초봄에도 춥다고 오리털 꺼내입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코트가 너무 길면 당연히 거치적거려서 외면하게 되므로, 길이를 좀 잘라 입을까 몇번 생각하긴 했었다. 

잡설이 길다. 암튼 안감 체크원단도 모직 겉감도 모직이라 마무리 바느질을 손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그 더플코트를 조금 전에 내가 리폼하는 데 성공했다. ㅠ.ㅠ 바늘에 손가락을 여러번 찔렸고 왼쪽 엄지에는 핏자국까지 남았으며 총 바느질 시간은 무려 2시간... 그래도 장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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