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바느질에 관한 고비의 놀라운 생산성 폭발 포스팅을 보니 나도 생각 난게 있다. (이런 따라쟁이!) 물론 지금도 역시나 초절정마감모드라서 더욱 더 딴짓이 하고 싶은 심리상태란 의미일지도. ㅠ.ㅠ
세월호 사건 이틀 후엔가 곧장 궁궐 자원봉사 활동을 하러 갔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또 다시 2주가 흘러도 여전히 바닷속에 잠겨 있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생활한복이라도 나름 화사하게 보이려고 작년에 장만한 빨강 저고리를 도저히 입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뉴스보며 노상 질질 울면서 상복 입고 조문은 못 갈망정... 어차피 치마는 검정색이니깐, 위에다 임시로 검정 티에 검정 카디건을 입을까 어쩔까 고민했는데 그러고 보니 딱 원불교 정녀 차림이란 생각이... -_-;
그때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동생 마고자를 리폼하자는 것이었다. 궁에서 봉사할 때 입으라고 올케가 10여년전에 입던 깨끼 한복을 상자째로 줬는데(이 또한 통치마로 수선해야 재활용이 가능하다;;) 아 글쎄 그 맨 아래 동생이 결혼 때 입었던 남색 마고자까지 들어있었던 거다. 자수가 하도 예뻐서 그것도 나중에 고쳐입든지 말든지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겨울용이라서;;) 덥거나 말거나 내친 김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남자용 마고자 길이는 대충 여성용 반두루마기와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것. 마침 깔맞춤 양단 목도리도 들어 있어서 깃과 고름을 만들 천도 확보되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옆선을 사선으로 확 줄이고 소매도 통을 줄여 붙이면 되겠지 대강 계획이 섰는데, 안감이 있어서 어디까지 안감을 분리해야 하나 고민했더니 웬걸, 양쪽 소매만 튿어내고 나니 오히려 안감이 있어서 바느질이 수월했다. 안감 겉감 같이 대충 꿰매서 뒤집으면 끝! ^^; 물론 소매는 진동 모양을 올케 저고리 선 대로 볼펜으로 그려 꿰맨 뒤 어깨선과 딱 맞춰 붙이는 게 난항이었지만 (그래서 잘 보면 한쪽 어깨는 좀 쭈글쭈글 운다;;) 그래도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손바느질로 완성! 다 만들고 나니, 내가 궁궐 구경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가 전생에 궁궐 살던 공주여서가 아니라 침방 나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웃긴 생각도 들었다. 깃이며 고름이며, 재봉틀도 없이 손바느질로 대충 꿰맨 거 치고는 너무 훌륭하잖아! (완전 자화자찬 모드;;)
해서 빨강색 생활한복 저고리 대신, 자수가 화려하긴 해도 남색이라 전국적인 세월호 애도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덜 튈만한 저고리를 만들어 냈단 이야기다. 하지만 그날 당장 입고 갔을 때, 실크라서 더워서 혼이 났다는;; 혼자 너무 오버했다고 느껴져, 결국 그래서 또 다시 2주 뒤 그 다음 활동일엔 도로 여름용 주홍 저고리를 입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