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5.31 5월이 간다 3
  2. 2009.05.21 아카시아가 다 졌다 18
  3. 2009.05.08 미술관 옆 동물원 18
  4. 2009.05.04 도서관 18
  5. 2009.04.24 5월 준비 12
  6. 2008.06.01 너 때문에 잠을 못 자 11
  7. 2008.05.28 앵두나무 13
  8. 2008.05.27 책구경 15
  9. 2008.05.23 월말 19
  10. 2008.05.07 5월 6일 14

5월이 간다

투덜일기 2011. 5. 31. 17:26

일년 열두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이 간다. 찌뿌드드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함께. 뭔가 아쉽다. 하기야 내눈에 최고로 예쁜 연초록의 시기는 어느 틈에 지나버렸다. 어제 보니 밤마다 유독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를 뿜던 아카시아꽃이 다 말라 떨어져 부서진 누런 팝콘처럼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마저 이 비에 다 씻겨 사라지겠다. 그러고는 초록이 한층 더 짙어지겠지.

날씨도 초록도 기분도 가장 싱그러워야할 5월은 올해 축 처져 보냈다. 계획은 원래 어기려고 있는 것이라는 쉰소리로 변명을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하려고 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해야할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렇게 마냥 힘빼는 삶도 가끔은 필요하다, 스스로 속닥이며 충전을 바랐으나 눈금은 오르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하며 또 그냥 늘어졌더니 한달이 후딱 가버렸다. 이젠 정리가 필요할 때.

마감이 닥쳐야 손발이 움직이는 버릇은 아무래도 평생 가져가야할 악습인 듯하다. 또 다시 돌아온 세금신고의 계절. 해마다 개악되는 게 틀림없는 오리무중 세무신고 프로그램과 홀로 싸우다 결국 어제 세무서에 찾아가 해결 안되는 문제를 직원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마지막날인 오늘 전자신고를 마쳤다. 그래도 마감 안 어긴게 어디냐고 자평. 늘어져 뒹구는 동안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면 독서. 한달간 7권 읽어, 드디어 올해 월평균 세권을 넘겼다. 영화는 두 편. 전시관람은 전무. 타일깨기 기록은 194점. 일은 당연히 뒷전. 

마감 독촉전화가 무서우면서 왜 그게 채찍질은 안되는지 의아한 나날이다. 작업 계획표는 두달째 어긋나고 있다. ㅎㅎㅎ6월의 화두는 다시 심기일전. 일부러 콘서트를 두 개나 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씩씩하게 잘 놀러다닐 때 일도 잘한다. 방구석에 처박혀 노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나는. 놀 욕심에 힘이 나는지 어디 두고보자. 어쨌든 이렇게 5월이 간다. 그러니까 꿍얼꿀얼 이 변명은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5월을 이렇게 보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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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마지막 봄꽃이라 여겨지는 아카시아 향기 이야기를 매년 빠뜨리지 않고 블로그에 적어 그 시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겠다는 작심을 작년에 했는데, 올해는 아카시아 향기가 한창일 때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그러다 결국엔 누렇게 말라 떨어진 꽃잎이 골목마다 흩어져 있는 지금에야 적어둘 생각을 했다.
서울지역의 공식적인 아카시아 개화 시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올해 아카시아 향기를 처음 느낀 날은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해도 아카시아가 막 피기 시작할 땐 대개 모르다가 동네를 지나며 갑자기 확 끼쳐오는 향긋한 꽃냄새에 아, 아카시아가 피었구나 느꼈으니 올해라고 별다를 건 없다. 다만 안타까운 건 아카시아가 피자마자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낮이든 밤이든 창문을 활짝 열면 언제나 집안으로 가득 스며들던 달큰한 향기를 올해는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올봄 처음 아카시아가 핀 걸 깨달은 건 5월 9일, 자전거 모임 때문에 월드컵공원과 홍제천을 달리던 날이었는데, 갈 때는 마음이 바빠 향기를 느껴볼 겨를도 없이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모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아카시아꽃의 존재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었다. 해마다 5월 십몇일쯤 피었던 것 같은데 5월 초에 미친듯이 여름 같은 날이 계속되면서 올핸 조금 꽃이 빨리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날씨가 변덕을 부려 서늘해졌다가 다시 더워졌다가 간간이 비가 오다가 다시 더워져 이제 아카시아 꽃은 누런 종이꽃처럼 매달렸거나 바닥에서 먼지처럼 풀풀 굴러다니고 있다. 시커멓게 썩어가는 시체처럼 떨어지는 목련만큼 흉측하진 않다고, 지면서도 예쁜 꽃이 어디 흔하냐고 괜히 혼자 아카시아꽃을 두둔하다가도 봄이 벌써 다 가버렸다는 생각에 영 개운치가 않다.
내일은 또 비가 내린다니 이번 아카시아꽃은 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련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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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저 영화 제목은 참 잘도 지었다.
과천 현대미술관과 동물원을 동시에 떠올리면 자연스레 우리도 영화 찍는 기분이 드니까.
가까운 미술관은 더러 기웃거려도 과천까지 가는 건 제법 큰 걸음이라 생각했는지, 영화 찍는 기분으로 미술관과 동물원을 한쾌에 둘러볼 작심을 한 건 돌이켜보니 무려 십수년만이었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린도 보고 미술관 구경도 하자고 조르던 지인과의 약속을 한 달이나 질질 끌다 전격적으로 어제로 날을 잡으며, 더 늦어지면 너무 덥고 냄새나서 동물원 구경하기 어려울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는데, 여름날씨를 방불케 하는 어제 기온은 이미 너무 더웠다. 좀 더 일찍 올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면서도 5월의 신록이 하도 아름다워 그늘로 짚어다니며 기뻐할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그 옛날에도 상설전시 중이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그대로였는데, 그 옆 벽엔 새로이 강익중의 <삼라만상>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다. 25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손바닥 반만한 나무판자 그림과 조형물들은 아이들 장난 같은 모양이 하도 많아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싶었다. 20년 넘게 6만 5천개나 된다는 나무조각을 하나하나 작업했을 화가의 끈기가 놀랍다. 나 같으면 짜증내며 중간에 내팽개쳐버렸을 텐데... ^^

사실 우린 이 중앙 전시실보다는 층층마다 마련된 우리나라 근대미술 작품들을 다시 보려고 했던 것인데, 교체전시를 하는지 기대했던 그림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난번 덕수궁에서 본 근대미술 걸작전 그림들을 몇 점 찾아내곤 뿌듯해 했으나, 나로선 영 이해도 못하겠고 훌륭한 줄도 모르겠는 현대 추상미술품들이 대부분이라 새삼 내가 왜 과천 미술관엘 십수년만에 왔는지 실감되었다. 미학적인 심미안 따위를 갖추지 못한 내 눈엔 추상적인 현대 미술품들이 죄다 젠체하는 화가들의 자기자랑일뿐 당최 '아름다운' 예술품이란 느낌이 안드니 어쩌겠나. 심지어 백남준 선생의 그 유명한 비디오 아트 작품도 난 그리 뛰어난 줄 정말 모르겠다. ㅡ.ㅡ;

이렇게 찍으니 예뻐보이는 것도 같고...

내눈엔 명멸하는 브라운관의 화면이 이루는 아름다움보다 작품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더 눈에 들어오고 브라운관 아래 찍힌 제조업체 로고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걸 어쩌라고!

백남준과 강익중의 두 작품을 같이 전시해놓은 기획을 <멀티플 다이얼로그>라고 이름 붙였던데, 아쉽게도 나는 그 안에서 다양한 언어교류의 느낌을 받는 대신 새로 지은 건물이나 갓 도배한 집에서 나는 매캐한 본드 냄새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ㅎ
기획전시로 인도현대미술전을 하고 있던데, 역시나 현대미술품이라니 굳이 2천원씩이나 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2, 3층 전시실 난간에서 내려다 보이는 코끼리 조각상과 금빛 오토바이 구경만으로도 우린 흡족했다. 

주린 배를 약소한 과일로 달래고 얼른 동물원으로 이동한 뒤에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돌아본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그새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못보던 동물도 많고(특히 아프리카 동물들!) 이름도 외기 어려운 신기한 녀석들을 건성으로 보며 감탄을 했는데 뭐니뭐니해도 나는 동물원에서 기린구경이 제일 신나고 즐겁다. 길쭉길쭉 늘씬하고 우아하게 돌아다니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마스카라를 칠한 듯 짙고 기다란 속눈썹도 그렇고, 아래턱을 좌우로 요란하게 움직이며 풀잎을 씹어대는 모양새도 그렇고... 기린사 앞에 전망대도 높이 올려 바로 코앞에서 먹이를 먹는 녀석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게 해놓아 더더욱 탄성을 내지르며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생김새부터 정말 볼수록 신기하지 않은가! 게다가 안내판에 적힌 글을 보니 우리 앞에서도 끊임없이 풀잎을 씹어대던 기린은 원래 하루 12시간 동안 내리 먹이를 먹는 반면, 잠은 틈틈이 짬짬이 눈을 감으면서 고작 하루 20분밖에 자지 않는단다! 켁...

기린 무늬의 아름다움을 새삼 실감

기린 뿔 두갠줄 알았는데 세개더라

하마의 저 똥똥하고 귀여운 자태!


다리 아프고 덥다는 핑계로 사자랑 하마 코끼리, 바다사자 빼고 다른 동물들은 셔틀버스 타고 차안에서만 대충 훑어본 터라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사자 같은 녀석들은 어차피 가까이 찍을 수도 없어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평일인데도 미술관, 동물원 모두 사람들이 꽤 많아 조금 놀랐다. 주말엔 얼마나 더 바글거릴까. 벌써부터 퀴퀴한 동물냄새가 진동을 하는 동물원은 앞으로 또 십년쯤 있어야 가볼 마음이 생길 듯하지만, 숲과 나무가 싱그러웠던 미술관옆 산책로는 날이 흐린 날, 아니면 비가 오는 날 또 가보고 싶은 욕심을 품고 돌아왔다. 평일 퇴근시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은 죽도록 막히는 괴로운 경험이었지만, 이 하루의 행복한 나들이로 부디 일주일은 나의 심술이 잠잠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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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투덜일기 2009. 5. 4. 16:52

집주변에 장서량이 훌륭하고 시설도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부럽다.
그나마도 근방에 도서관이 아예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원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
원래 빌리고 빌려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빌린 책은 괜스레 남는 게 더 없는 느낌이라 읽기 전부터 허기가 든다. 이미 뇌조직이 느슨해진 것인지 뭐든 읽고 나면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아스라이 잊혀지는 마당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책등에 적힌 제목이라도 가끔 보면 아하 저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지,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만 빌려 읽고 난 책은 흔적도 없으니 도무지 내것이라 챙겨 놓을 방도가 없다. 꼼꼼히 다이어리나 독서노트, 독서후기 따위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예전에 사놓고 안읽은 책들엔 먼지만 쌓이는데 새로운 책을 사고싶은 마음이 들어 또 몇권 사들이고도 얇은 귀를 팔랑이며 누가 인상깊게 읽었다고 하는 책은 또 욕심이 나니 하는 수 없이 이젠 도서관에서 좀 더 많이 책을 빌려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서 읽고 싶은 책 말고 일 때문에 필요한 자료 책들은 예전부터 빌려보았기 때문에 대출카드도 만들어둔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빌려 읽는 책들은 새책이어야 읽을 마음이 생긴다. 대체 어떤 인간들이 만졌을지 모를 흔적들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게 남아 있는 책에 내 손길을 보태기가 영 꺼려지기 때문이다. 공부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엔 짜증스럽게 줄까지 쳐 있어도 그다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강박증이다. 그땐 저작권 문제에 아무 거리낌 없이 복사나 제본을 해서 봤기 때문일까? 그냥 읽어보기만 한 책도 더러 있었는데... 아무튼 헌책방에서 구한 오래된 책은 이제 내것이란 소유의 심리 때문인지 누렇게 변했어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도서관 책은 좀체 적응하기가 어렵다. 뭐든 새것만 추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데, 난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다.
반성은 반성이고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던 차에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아직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것! 그러면 책이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책에 바코드를 붙이고 도장을 찍은 도서관 직원들 말고는 아직 그 책을 주물럭거린 사람들이 드물다는 얘기니까 거의 새책이다. 문자 메시지가 오면 이틀 안에 찾으러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이기는 것이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꽤나 큰 도전(?)인데 그래도 도서관 책이면서 내가 처음 책장들을 펼친다는 착각에 훨씬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빌린 책으로도 구멍 뚫린 두뇌에 좀 더 깊은 인상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오늘은 그렇게 빌렸던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라고 또 문자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도서관엘 갔는데 2주 전 비오는 날엔 초록 잎도 제대로 눈에 안들어 왔던 등나무에 연보랏빛 꽃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등나무꽃 아래엔 흡연자들을 위한 벤치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옛날 학교의 등나무 아래 벤치가 떠오르며 그리움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바야흐로 5월, 축제의 계절이겠구나 싶어서.
시설은 노후했고 책도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네 산기슭에 자리잡은 터라 위치는 좋은 편이니 다음엔 아카시아 꽃 향기 그윽할 무렵 또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아직 도서관에 들여놓지 않은 주옥같은 책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찾아 신청도 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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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준비

삶꾸러미 2009. 4. 24. 17:58
원래부터 준비성이 뛰어난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점점 까다롭고 괴팍한 유형으로 변하면서 뭐든 조바심을 품고 진즉에 준비를 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하긴,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척 마음을 놓고 뿌듯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옛날보다 미리 걱정하는 시기가 빨라진 것뿐이라 괜스레 전전긍긍하는 기간만 길어졌으니 그것도 내심 못마땅하다.
아무려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빼곡히 들어있는 5월이 오려면 아직 꽤 남았는데도 나는 열흘전부터 고민에 돌입했다. 생일 챙기면 됐지,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는 그냥 좀 넘기라고 잔소리하는 올케도 있지만 때맞춰서 조카들 선물 챙기는 것도 고모의 낙인데 어쩌라고! 물론 낙과 더불어 요샌 선택의 고민도 커지긴 했다. 만날 똑같은 걸 사줄 수도 없고...
원래 아이들은 옷선물이랑 책선물을 제일 싫어한단다. 그건 부모가 언제든 사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필수품이지 선물로 기쁘게 받을 품목은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나도 점수를 더 따려면 장난감을 사주어야겠지만 이번엔 녀석들이 못마땅해 하더라도 건설적인 책선물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미 준비를 마쳤다. 슬쩍 어린이날 선물이 뭔지 떠본 공주는 책선물이라고 하자 몹시 실망하여 거세게 항의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선물 주면서 나만 신나면 그만이지 뭐. 요즘 애들 책은 내가 봐도 신기하고 재미나다. *_*
곧이어 어버이날 선물은 또 뭘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왕비마마께서 수월하게 해결해주셨다. 작년에 김영임의 <효> 공연을 보여드렸는데 올해도 또 가고싶으시단다. -_-;; 작년에 공연 볼 때도 마치 중노년계의 이효리라도 되는 듯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김영임 아줌마를 보며 나는 꽤나 의아했는데, 레퍼토리도 비슷할 게 뻔한 그 공연을 울엄마가 또 보고 싶다는 걸 보면, 그리고 벌써 사흘 내내 vip석은 한자리도 남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엄청나게 인기 많은 공연인 모양이다. 아니면 효도는 딱 5월 한달동안에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자식들이 선택하기에 적합한 공연이거나(공연 제목부터 <효>라잖아!). 울 엄만 옛날부터 외할머니가 그리 좋아하셨던 <회심곡> 때문에 가고 싶다고 하셨던 건데 올해는 좀 길게라도 불러주면 좋겠다. 작년엔 화려한 무당차림으로 굿하다 중간에 객석에 내려와 돈 걷어간 것밖에 기억에 안남는다. 내가 보기엔 시큰둥해도 어르신들은 예쁜 그 아줌마가 손한번이라도 잡아주며 잘왔다고 하니 만원짜리는 물론이고 수표까지 막 찔러주더군. 나로선 꽤나 놀라운 문화충격이었다. 나이 들어도 좋아하는 가수나 소리꾼한테 열광하는 건 똑같다는 걸 몰랐다는 게 이상한 건가? 그나마 울 엄만 나훈아, 남진 공연 보고 싶단 소리 안하니 천만다행이다. 그 아저씨들도 중노년계의 <비> 수준이라던데. ㅋㅋ
째뜬 5월 준비는 얼추 끝났다. 언제 어디서 무슨 메뉴로 거국적으로 밥을 먹을까, 를 결정하는 문제는 아직 남았지만 그거야 아랫것들이 정하라고 할 작정이다.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5월을 기다려도 되는데, 왜 아직도 마음이 묵직한지 그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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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잠을 못 자!"
어제 촛불집회에서 정민공주가 가장 재미있다고 손꼽은 구호다.
회를 거듭할수록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도대체가 저들과 말이 안통하는 걸 실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 크고 많은 목소리를 모아 한입으로 질러대서 막힌 귓구멍을 뚫고라도 국민이 바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아니겠나.

정치적으로 변질이 됐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어제 모였다가 밤을 지새우며 청와대로 몰려가려 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이 잘못되었고, 위정자들이 매번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진심을 왜곡, 우롱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제 저녁 8시 반이었을 게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유발언도 몇명 못 했고 준비한 공연도 두어개 밖에 안 끝났을 때, 청와대 코앞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100여명의 대학생들 가운데 80여명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사회자가 전하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남은 행사를 지켜보기보다 그냥 모두 일어나 연행된 그들을 구하러 가자고 외쳤다. 얼떨결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회자는 남은 공연과 발언을 준비한 이들에겐 죄송하지만, 모두의 뜻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늘 하던대로 9시 반쯤 촛불문화제가 끝나면 가두행진이 시작되기 전에 안전하게 공주를 데리고 퇴장하려던 나의 계획은 졸지에 무산되고, 우린 수만명의 대열 속에서 전경차로 막아놓은 세종로 방향의 반대인 서소문로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나란히 걸으며, 정말이지 옛날 생각 난다는 말을 하며 감격스러웠다.
시뻘건 집단주의의 광기가 싫고 겁나서 월드컵 때마다 단체관람은커녕 TV 생중계도 잘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수만명이 시청광장을 메우고 또 서소문로를 완전히 뒤덮은 채 행진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또 참여한 건 그야말로 오래 전 80년대의 경험이 전부였다. 그 옛날의 행진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좀 더 비장하고 두렵고 불안한 느낌이었다면, 여기저기 유모차가 보이고 온 가족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거나 연인인듯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촛불을 들고 가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너 때문에 잠을 못자!>라고 외치는 분위기는 확실히 축제 같았다.

중앙일보 건물 앞에서 길이 막혀 다시 광화문으로 되돌아왔을 때, 몇몇 시민들이 사방을 꽉 막고 선 전경차를 흔들며  <차빼라!>를 외쳤지만, 이내 누군가 비폭력 시위를 하려면 전경차를 흔들면 안된다고 나서서 말렸다. 어디로든 돌아서 골목골목 스며들어 집에 가듯 청와대에 가서 만나자며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10시가 넘도록 집에 가려하지 않는 정민공주를 가까스로 설득해 온통 인도로 변한 종로 1가 중앙선을 따라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계속 남아있고 싶어하던 공주만큼이나 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명바기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사고, 배후엔 누가 있는지 보고하라고 했단다. 귓구멍 콧구멍이 확실히 막힌 놈이다. 미선이 효순이 때도, 노무현 탄핵반대 때도, 촛불을 준비한 자금은 십시일반 모금함을 돌려 걷은 시민들의 돈이었다. 나는 그나마도 주최측의 초와 종이컵을 축내는 게 아까워, 지난번에도 어제도 집에서 제사 지내고 남은 양초를 준비해 갔었다. 물론 집회가 길어져 가져갔던 초가 다 녹아 새 초와 종이컵을 써야 했지만...
모임 장소에 가면 <배후는 너야!> <배후는 이명박 정부>라고 적힌 종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아직도 놈들이 배후, 음모 타령을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광우병 쇠고기, 한반도 대운하, 수돗물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치솟는 물가, 기업중심의 경제정책, 국민을 보호할 생각은 안하고 살인적인 무한자유경쟁에 모든 산업과 시장을 맡기겠다는 미친 정부.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가 쏟아내는 기막힌 정책 때문에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걸 너는 아직도 모르겠냐, 이눔아!

사람들이 왜 청와대로 달려가려 하느냐고?
니 귓구멍에 직접 대고 소리치면 혹시나 알아들을까 해서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는 거다!
명바기는 앞으로 밤잠 좀 설칠게다. 물대포 쏘고 소화기로 뿌려대면 촛불이 꺼질 줄 아나본데, 니들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걸 차츰 알게 되겠지.  

새벽까지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실신하기도 하고 많이 연행되었지만 소수는 여전히 시청에 남아 오늘 집회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폭행시비가 벌어져 법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게 됐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때렸느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질 때 교묘하게 상대를 자극해 먼저 주먹을 휘두르게 한 다음 한대 맞고 나서 같이 주먹질을 하면 정당방위가 되기 때문에, 주먹 세계(?)에선 절대 먼저 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경찰측에선 분명 시위대가 먼저 사다리를 놓고 전경차를 넘어 방어선을 뚫었으니 먼저 주먹을 휘두른 셈이라고 주장할 테지만, 내가 보기엔 물대포를 쏘아 먼저 폭력을 휘두른 쪽은 경찰이다. 하기야 인간이 준 사료 먹고 광우병 걸린 소가 아무 잘못 없듯, 방패 들고 일선에 나선 경찰들도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폭력은 계속해서 감정적인 대응과 폭력을 부르는 법. 성난 사자들과 피로에 지친 경찰들의 격렬한 싸움은 벌어지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어젯밤 촛불을 들고 걸으며 처음엔 경찰한데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벌벌 떨던 정민이가 숫적으로 너무도 우세한 시위대를 보며 안심을 했는지 나중에 한 마디 했다.
"고모, 경찰들도 명바기가 싫을 텐데 불쌍하다. 그냥 우리 청와대 가게 길 비켜주고 같은 편 하면 안 되나?"
"그래도 경찰은 대통령을 보호하는 게 일이라서 길 비켜주면 짤려."
"어차피 명바기가 쫓겨나면 상관없잖아!"
"....."
 
11살짜리 정민이처럼 명쾌한 답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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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

삶꾸러미 2008. 5. 28. 17:05
콘크리트 계단 옆에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크기의 마당에서 자라는 앵두나무엔 올해도 어김없이 하얀 꽃이 피더니 다닥다닥 열매가 달렸다가 어느 틈에 앞다투어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색이 진해지는 앵두를 보며 곧 따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저께 저녁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건너 동네에 집을 새로 짓는 동안 잠시 아래층으로 이사를 와 작년부터 살고 계신  젊고 착한 목사님이었다. 마당에 있는 앵두가 익어서 좀 땄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첫 수확인 듯하여 제일 어르신이신 울 엄마부터 드리려고 가져왔단다. 괜찮다고 아이들이랑 그냥 드시라고, 우리는 나중에 따먹으면 된다고 아무리 마다해도 막무가내라 하는 수 없이 두손을 바가지처럼 오므려 앵두를 받아들고 올라와 제법 맛이 든 앵두를 엄마랑 둘이 맛있게 음미했다.

앵두가 일단 익기 시작하면 한 열흘은 계속해서 심심찮게 따먹을 수가 있는데, 어제 일기예보를 들으니 비가 온다고 하여 괜스레 낭패감이 들었다. 이제 막 익기 시작한 앵두가 비를 맞고 다 떨어지거나 맛이 싱거워지면 어떻게 하나 공연한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밤새 천둥 번개가 치고 굵은 빗줄기가 지붕과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앵두는 과연 무사할까 염려하다 비가 그치자 마자 내다보니 모든 게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듯 다닥다닥 붙은 앵두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다만 초봄에 가지치기를 해주었어야 하는데 그냥 방치했던 터라 정신없이 사방으로 뻗어난 가지들이 비를 맞고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축 바닥으로 늘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앵두나무 뿐만 아니라 잎이 돋기 전에 지저분한 무궁화와 사철나무도 가지치기를 해주었어야 했다. 다급한 마음에 전정가위를 들고 나가 빗방울이 무겁게 맺힌 쳐진 가지들 중에서 앵두가 달리지 않은 것들로만 일단 잘라주니 순전히 내 상상뿐이겠지만 앵두나무가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은 듯 가뿐해 보이는 듯도 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과,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려면 계절마다 부지런히 품을 들여 마당을 가꾸거나 돈을 써서 정원 가꾸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늘 내게 별개로 다가온다. 그래서 겨우 나무 세 그루 있는 한 뼘짜리 마당도 돌보지 않는 주제에 과연 내가 어떻게 넓은 마당 있는 집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 같은 순간에나 내 뒤통수를 친다. 물론 작년까진 화분 물주기와 더불어 귀찮은 가지치기 따위는 당연히 아버지의 임무였고, 앞으로 내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더라도 그 마당에 있는 나무와 식물을 가꾸는 일손 또한 당연히 아버지 몫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 엄마와 나는 아직도 매 순간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 살다가 문득 허망한 상실감에 멍해진다.

어쨌거나 올해도 변함없이 앵두가 익었듯, 올해도 변함없이 조카들이 오면 재잘재잘 떠들며 함께 앵두를 따서 나누어 먹게 될 것이다. 살다보면 변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음을 새삼 실감하며 빗물 젖은 앵두가 예뻐서 전정가위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고 내려갔다. 빨간 앵두들이 이슬을 머금은 빨간 보석처럼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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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구경

책보따리 2008. 5. 27. 16:13
언뜻 떠오른 글의 제목으로 <난산>이라고 적으려다가 말았다. 가끔 자기 책을 자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책 한권 나오는 과정에 어찌 감히 생명의 신비와 어미와 자식 간의 오묘한 공감대까지 끌어다 붙일 수 있겠나 싶어서.
어쨌거나 <난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는 얘기는 요즘 내가 옮긴 책구경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 원래 출판이라는 것이 시의적절한 것 같아 기획했다가도 교묘한 <타이밍>을 놓치면 아예 통째로 엎어지기도 하고, 시리즈로 기획했다가 초반에 생각만큼 판매가 되지 않으면 뒤에 만들려던 책들은 다 준비해 놓고도 마냥 썩히기 일쑤이며, 저자나 번역자가 속을 썩이며 원고를 넘기지 않아 질질 출간이 지연되는 예도 허다하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출간이 미뤄지거나 영업전략상 출판 순서가 뒤바뀌는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자 입장에서 제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꾸준하게 번역을 해도 어떤 해엔 책이 가뭄에 콩나듯 두어 권 나오다 말더니 그 다음해엔 한꺼번에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한달에 한꺼번에 세권이나 신간코너에 내 이름이 박힌 책이 깔릴 때도 있었다.

작년엔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2권 말고 새로 작업한 번역서는 겨우 2권이 출간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 하반기엔 일을 거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이번에 세금정산 때문에 작업 스케줄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2007년 1년 동안 번역을 완성해 넘긴 원고가 5권이나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계유지를 위한 1년 번역 목표량을 6권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5권이면 얼추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다.
작년에 출간된 2권 가운데 하나는 그나마도 재작년에 작업한 책이었으니, 작년에 일해서 제대로 빛을 본 책은 달랑 1권. 4권의 책은 세상구경을 할 날이 2008년으로 넘어갔다는 얘기인데, 연초부터<곧> 출간할 계획이라던 두어 권의 책들은 차일피일 편집이 미뤄져 얼마 전 들으니 6월에나 나온다는 것 같다(그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나와야 나오는 거지 뭐. -_-;;)

결론은 5월이 다 가도록 2008년도엔 버젓이 옮긴이로 내 이름을 달고 출간된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점.

기획이 아예 엎어져 원고가 사장되는 경우(심하면 원고료를 홀라당 떼먹히기도 한다 ㅠ.ㅠ)도 겪어 보았기에, 일단 원고를 넘기고 번역료까지 챙겨받고 나면 책이 나오든 말든 내 소관이 아니라 여기며 모른체 하고 싶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다. 편집자의 교정과 표지 디자이너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쳐 떡하니 책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선을 보여야 그간의 모든 노고와 정성이 제대로 보답을 받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들이는 품과 에너지와 정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 출판계의 번역료 수준은 그리 후한 게 아니므로 나처럼 부끄러운 공명심으로 그 모자란 성취감을 채우려는 인간은 해마다 내 이름을 달고 차곡차곡 늘어나는 번역서의 권수가 꽤나 중요하다. 번역하는 사람들이 더러 모이는 자리가 생기면 우리나라도 얼른 일본처럼 출판계가 발전하여 매절 번역료가 원고지 장당 최소 만원은 돼야 한다고 별 희망도 없는 이야기로 핏대를 세우기도 하는데, 정말로 그런 날이 오지 않는 한 생계를 위해서라도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는 나 같은 치졸한 번역가의 욕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ㅎㅎ

어쨌거나 새해 들어서도 내내 작업은 늘어지기만 하여, 책구경 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원고 넘기기도 죽도록 힘들어 허덕이고만 있었는데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려 4년전에 한두 꼭지 번역에 참여했던 문학선집이 드디어 출간된다는 것. 교수님 소개로 얼떨결에 맡는 바람에 당연히 주최측도 아니었고, 그간 통 소식이 없어서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책이 출간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번역료와 해설료도 지급되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것인데도 어찌나 고마운지 내심 몹시 뿌듯해 하며 이제나 저제나 책구경 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오늘 증정본이 배달되었다. ^^;;

신비주의 블로그를 표방하는 터라 이곳에 본격적으로 책자랑을 할 날은 요원하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은 공역이니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리도 없고 ^^ 문학선집이라 작가들도 십여 명이어서 옮긴이들 이름은 아예 표지에서 구경도 할 수가 없으니 막 자랑하고 싶어졌다.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가 될 책인지 어쩐지도 잘은 모르겠으나 도서관에나 보급될 확률이 높은 듯하고, 엮은이의 이름도 하도 거창하여 공동 번역자 이름으로 검색될 가능성도 별로 없을 듯하니 더더욱 금상첨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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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

투덜일기 2008. 5. 23. 02:31
주말이니 월말이니 연말이니 하는 건 단순히 인간들이 편리하려고 정해놓은 시간의 구획일 뿐이라고 건방지게 무시해보지만 조직에 매인 것도 아닌 자유업자라면서 나란 인간은 그 시간의 담벼락을 좀체 쉽게 넘을 수가 없다. 일부러 요번에 연장받은 마감일은 월말을 피했건만 게으름 부리다보면 어느새 월말이고, 요일 상관없이 날짜로 턱 못박아 놓은 마감 약속일도 금요일 쯤에 걸리면 그냥 확 보내버리고 주말에 시체놀이 하거나 팽팽 놀면 얼마나 좋으련만 주책맞게 미련을 못 버리고 주말에 좀 더 다듬어보면 원고가 더 훌륭해지지 않을까 욕심을 부리게 되니, 나의 데드라인은 대부분 월요일, 월말 아니면 월초에 몰릴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말로는 초절정마감모드라고 되뇌면서 행동과 정신은 마냥 나사가 풀려 헬렐레하는 데다 늘어진 정신에 발맞추어 몸까지 골골대니, 늘어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원성과 양치기소녀의 거짓말 뿐이다.

게다가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렸다. -_-;;
국세청 홈페이지 접속도 어려운 월말 되기 전에 후다닥 작년처럼 해치워야지 작정했었는데, 1차 접속했다가 뭔가 계산이 잘못됐다기에 정신 사나와서 일단 후퇴하고 보니 별것 아닌 세금신고마저 발목을 붙드는 떼쟁이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작년에 나는 하반기 내내 거의 일을 못했기 때문에 벌이도 당연히 시원치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날아온 소득신고서를 보니 금액이 놀랍도록 많다. +_+ 그간 밀렸던 원고료를 작년에 꽤나 많이 받아냈다는 뜻인데 난 왜 줄기차게 계속 가난했던 걸까? 장부나 가계부 따위를 쓸 리도 없고 그저 달력에 원고료 입금된 날짜나 적어놓는 게 전부인데, 작업실 출근을 가뭄에 콩나듯 했던 데다 통장도 없이 인터넷 거래만 하는 계좌로 바꾸고 나선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관리가 형편없다 느끼긴 했지만, 작년엔 원고료 목돈으로 들어왔다고 곗돈 탄 기분으로 턱턱 엄마 용돈 드리고 사방에 밥산다고 껄떡댔던 기억이 거의 없건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ㅜ.ㅜ

다 아메바 뺨치는 기억력 탓일 거라고, 설마 나한테 주지도 않은 돈을 출판사들이 내 앞으로 신고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세금신고 하기 전에 먼저 작년 계약서들이랑 통장 내역도 좀 뒤져봐야겠다고 작심하니 마음이 더 바쁘다. 으휴. 얼마나 내공을 더 쌓아야 꾸물거리다 막판에 몰아쳐서 일하는 버릇, 시간에 쫓겨서 허둥대는 버릇, 마감일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버릇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게으름뱅이의 인생이 참 딱하고 걱정스러운 건 확실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잠 안자고 있으면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자아비판성 블로그질은 또 뭐란 말인가;;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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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투덜일기 2008. 5. 7. 00:27
사흘만에 집밖을 나섰다가, 연휴 마지막에 추워진 날씨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사이 온 동네가 아카시아 꽃향기로 점령당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토요일은 여름 같더니만 다음날부터 내리 추워서 창문도 꼭꼭 걸어닫고 있는 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가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카시아 꽃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향기로운 꽃냄새를 실컷 맡으며 외출하긴 했지만 어쩐지 하루쯤 손해본 것 같아 속상하다.
며칠 지나면 또 말라 떨어진 꽃잎이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텐데...

외출 장소는 간만에 홍대앞.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와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일부러 골목골목 구경을 다녔다. 운이 좋아 일찍 나온 바나나빵 장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날씨가 더워져서 바나나빵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주차장길엔 노점상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다. 다만 새로이 생겨나고 바뀐 가게들이 어찌나 많은지 관광객처럼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실컷 구경하며 실실 웃어댔다.
이젠 너무 방대하고 요란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홍대앞 골목골목엔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아직 살아넘친다. 나중에 가보고 싶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마음껏 찜해두었더니 전혀 돈 될 거리가 아닌 짓임에도 통장에 저축해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ㅋㅋ

이요님과 해리님 블로그에서 알게된 리&키키봉에도 가봤다. 너무 잔뜩 기대를 했던 탓인지 막상 들어가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앉고 싶은 자리를 찾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 내가 선호하는 구석자리는 너무 구석이라 창고 같고, 아늑해 보이는 다락 같은 방석 좌석은 신발벗기 귀찮고...
동행에 따라서 어떤 날은 퍼질러 방바닥에 앉는 자리를 선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신발 벗는 게 귀찮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신발 벗는 게 번거로운 날이었고, 내가 앉은 쪽에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천장 낮은 방석자리에 앉은 남녀가 계속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영화를 찍어대는 바람에 불편하고 민망했다. -_-;;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랑 카모마일 차는 맛있었고, 화장실 벽장식 타일이 예뻐서 그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동행과 입을 모았다. 다른 의자도 다 그런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의자가 푹신하질 않아서 꼬리뼈가 조금 아팠던 것도 마음 쓰였는데,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가지런히 접혀 있던 무지개 담요를 깔고 앉아야지.

외출해서 말을 많이 하고 듣다가 돌아오면 공연히 허허로운 날이 있고 속 시원하고 뿌듯한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쪽이다. 침묵이든 대화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만남은 확실히 영혼의 자양분인 듯.
문화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간만에 머릿속이 채워진 것 같아서 이렇게 일기로 남겨두고 싶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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