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9.30 티백 16
  2. 2010.04.15 벚꽃 5
  3. 2010.03.22 생각대로 되지 않아 12
  4. 2010.03.09 머피의 법칙 3
  5. 2010.02.11 거인의 정원 20
  6. 2010.01.03 눈의 종류 8
  7. 2009.10.17 가을은 춥구나 8

티백

투덜일기 2011. 9. 30. 04:40

커피는 투박하고 큼직한 머그잔에, 그밖의 차는 예쁜 찻잔에 마시는 게 제격이라는 편견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몰라도 나 또한 그 편견에 꽤나 충실한 편이다. 커피는 잔이 투박하고 큼직해야 오래도록 식지 않을 테니 맞는 말 아닐까. 그리고 주워들은 풍월에 따르면 홍차는 약간 되바라진 잔에 마셔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던데.

커피를 제외한 차의 맛을 잘 모르는 무감한 혀를 가졌으되 그냥 홍차는 모르겠고 한동안 '밀크티'에 탐닉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네다섯 번은 홍차를 마셔대는 영국인들과 거래할 일이 있던 직딩 시절 출장 직후였던가, 아니면 번역으로 전업 후 영국에 있는 친구한테 다녀온 직후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여간 겨우 며칠 영국엘 다녀온 주제에 겉멋이 들었던 것인지, 우유를 넣은 그곳의 홍차가 진짜로 기막히게 맛이 있었는지, 영문은 알 수 없어도 평소 같으면 커피 생각이 날 무렵 밀크티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무조건 커피를 시키던 내가 대신 밀크티를 주문하기도 하고...

밖에서 마시는 홍차나 밀크티는 대부분 또 얼마나 예쁜 잔과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지, 차 한잔에 스스로가 괜히 우아해지는 것도 같았다. 원래부터도 예쁜 커피잔만 보면 기어코 뒤집어서 제조사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도자기 주전자와 다양한 모양의 인퓨저(거름망이라고 해야하나? 잔에 걸쳐 놓는 채 같은 형태도 있는데;;), 앙증맞은 티백 접시까지 세트로 구비되어 나오는 집엘 가면 아주 흐뭇했다. 그런 걸 보며 흐뭇하기만 하면 좋겠으나 견물생심이라고... 예쁜 티팟도 갖고 싶고, 독특한 디자인의 인퓨저도 자꾸 눈에 들어오고, 브랜드명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가격의 찻잔도 덜컥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 돼~~! 지름신 노예의 최종 귀결지가 주방기구라지 않던가! +_+

결국 나는 찻잔 욕심과 함께 밀크티를 끊는 쪽으로 마음을 접었고 이후 아무 잔에다 마셔도 적당한 농도에 양만 많으면 그저 기쁜 커피파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과연 내가 티팟과 인퓨저를 하나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부담없는 수준으로 당연히 장만해 놓은지 오래라 가끔은 우아떨며 차마시기 놀이를 한다. 커피 생각 간절한데 한밤중에 커피를 마실 순 없고, 이렇게 갑작스레 서늘해진 날 따끈한 차 한 잔이 마시고 싶으면 만만한 카모마일이나 국화차, 허브차를 준비한다. 문제는 제대로 우아 좀 떨겠다고 간편한 티백 형태가 아닌 꽃이나 잎을 인퓨저에 넣고 우려내고 했다간, 나중에 치우는 일이 대단히 성가시다는 것. -_-; 새삼 방에 매달린 줄을 당겨 하인을 불러 차를 부탁하는 귀족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못할 짓이다. (매번 커피잔 씻는 것도 귀찮아서 갯수대로 있는 컵을 다 꺼내 쓰고 한꺼번에 설거지하는 인간이라고 이미 밝힌 적 있음;;) 

시방도 1인용 티팟에 인퓨저로 카모마일을 우려낼까 하다가 문득 다 귀찮아져 티백을 꺼냈는데, 젠장, 대강 물을 부어 방에 와보니 종이 손잡이까지 찻잔에 몽땅 다 빠져버렸다. -_-; 혹자들은 티백에 든 차는 차로 쳐주지도 않는다던데, 그까짓 간단한 절차도 귀찮아한 사람에 대한 차의 반격일까 싶은 생각에 (쓰면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ㅎㅎ) 웃음을 흘리며 뜨거운 찻잔에 손가락을 담가 티백을 건져냈다. 오 위대할손 나의 게으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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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투덜일기 2010. 4. 15. 16:12
내가 날을 잘못잡은 탓이 가장 크고, 일본엔 어딜 가나 벚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착각도 일조를 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사쿠라 구경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에 든다는 성에도 가봤지만 벚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에 절반은 꽃이 떨어져 있었으니 내심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그에 반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던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집앞 벚나무(엄밀히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옆집 벚나무)는 돌아와 보니 완전 만개해 있었다. 열심히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 헤매 다니다가 돌아오니 파랑새가 집에 있었음을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벚꽃놀이는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얘긴가? ㅎㅎ 꽃샘추위라고는 해도 창밖을 내다보니 벌들이 열심히 꽃가지를 흔들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다. 봄날씨는 원래 변덕스러운 거라지만 4월 중순에 이렇게 반칙 쓰듯 겨울놀이하지 말고, 제대로 봄이 오면 참 좋겠다.

집앞 벚꽃 - 나가기 귀찮아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을 줌으로 당겼더니 이렇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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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한 나의 단점 가운데서 혹자는 나더러 생각이 너무 많다고 지적 한다. 나도 잘 알고 싫어하는 단점이다. 소심함, 우유부단함과 함께 세트 메뉴로 몰려다니며 종종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니까. 심지어는 앞으로 해야할 일,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여러 경우의 수대로 홀로 상상해보고 추측하고 짐작하면서 미리 염려하는 경우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러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저러저러한 말로 대꾸할 테고 또 내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면 저러이러한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다가 버럭, 있지도 않은 사건에 꽁해져 마음에 응어리를 맺거나 홀로 이유없이 화를 내고 앉았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밀린 일이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 건 너무도 뻔한 게으름 때문이라고 쳐도, 하루 일정 계획해 놓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일은 다반사이며, 한 이틀 푹 자고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입천장도 아직 너덜거리고, 요가 넉달만에 열세살 조카는 키가 5센티미터나 크고 체중도 줄어 허리선이 생겨났는데 중년의 고모는 체중감량은커녕 늘어난 유연성 따위도 전혀 모르겠고, 일주일만에 아기발처럼 변한다고 선전하며 각질이 허물 벗는 뱀 껍질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법의 묘약 같은 각질제거제는 나한테만 효과가 나타나질 않으며, 4월이 코앞인데 아직 날씨는 겨울이고, 진심은 언제고 반드시 통할 거라 믿었던 오랜 관계에 금이 가거나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제일 못마땅하고 속상한 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일년에 한번씩은 제법 긴 여행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유와 여건이 허락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중년의 삶이다. 

소소한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는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게 인생인 것도 같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만날 생각만 길게 앞세우지도 말 것이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안타깝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맘 상해 괴로움에 연연하는 대신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인간의 욕심으론 그게 잘 안된다. 성인이나 고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범하게 연연해 하지 않고 매사에 기꺼이 욕심을 놓아가며 사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크게 성공하겠다거나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탐욕 따위를 품지도 않았으니 생각을 조금만 덜하고 탐심도 조금 버리면 되련만...

3월도 끝자락을 향해가는 22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처럼, 앞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보다 황당하고 기막힐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나는 또 그런 예상마저 미리 생각해두겠노라며 미련을 떨 것이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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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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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투덜일기 2010. 2. 11. 23:30

제일 처음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 특히 신빙성에 도전을 받고 있는 나의 부실한 기억으론 <분명>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였던 것 같은데 자신은 없으니 (근데 왜 <분명>이라고 쓰고 싶은지) 찾아볼 마음도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구성해 놓은 내 기억속의 <거인의 정원>은 국어책에 들어 있었고, 학기초에 새책을 받아오면 달력 뒷장으로 책표지를 싸면서 먼저 교과서 들춰보는 걸 좋아했던 어린 나는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조금 흘렸거나 울뻔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내쫓는 바람에 봄이 찾아오지 않아 춥고 모진 겨울만 존재하는 거인의 정원과 나중에 욕심을 버렸는데도 결국 그 정원에서 쓸쓸히 맞이하는 거인의 죽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그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반갑게 다시 읽어보니, 어린 시절에 읽은 내용은 꽤나 각색된 것이었고 원작은 기독교적인 결론이라 솔직히 크게 실망스러웠다. 어린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비극적인 결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주변과 달리 드물게 눈이 쌓여 이상스레 녹지 않는 공간을 볼 때면 지금도 습관적으로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거인의 정원을 뜻밖에도 우리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설 때쯤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쌓였던 눈이 푹한 날씨에 순식간에 녹아 오후에 귀가할 땐 눈이 언제 왔던가 싶게 말갛게 씻긴 모습이라 내심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집앞 계단을 올라와보니 손바닥만한 마당엔 하얗게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더란 얘기다. 오후엔 분명 진눈깨비가 내리다 기온이 영상이라 비로 바뀌었던데 잔디밭도 아니고 콘크리트 시멘트로 뒤덮인 그 공간에 쌓인 눈은 왜 온전한 것인지. 갑자기 높은 담벼락을 둘러싸놓고 홀로 사는 욕심쟁이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등허리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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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종류

놀잇감 2010. 1. 3. 02:33

이번 겨울 전체 예보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던가? 절대 기억할 수 없어 민망하지만 어쨌든 새해들어 또 눈이 내렸다. 이번엔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파르르 부서지는 눈은 아니다. 에스키모들에겐 눈의 이름이 수십 가지라던가 수백 가지(설마 수백 가지는 아니겠지? +_+) 나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말엔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세 종류 뿐인가 싶어 찾아보니 아니란다.
<눈의 종류>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많은 표현이 있었다.

가랑눈 · 가루눈 · 길눈 · 도둑눈 · 마른눈 · 만년눈 · 밤눈 · 복눈 · 봄눈 · 소나기눈 ·
솜눈 · 숫눈 · 싸라기눈 · 자국눈 · 진눈 · 진눈깨비 · 찬눈 · 첫눈 · 함박눈


사실 내가 흔히 썼던 <싸락눈>이 표준말인지도 그간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 얼마 안 쌓인 눈길을 달려 밥먹으러 가면서 마침 다들 출판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라 싸락눈의 맞춤법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다들 갸우뚱했다. 함박눈은 확실히 알겠는데, 알알이 부서지는 그 가느다란 눈에 대한 이름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싸락눈? 싸라기눈?  싸래기눈? 싸리눈?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표준어는 싸라기눈이고, 싸락눈도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니 역시 표준말인 셈이다.
싸라기눈: 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
싸락눈: 싸라기눈의 준말.                                     [출처: 국립국어원]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은 건지 원. 싸락눈. 싸라기눈. 둘 다 사투리같다. 크크.

게다가 내가 싸락눈이라고 우겼던 지난주초 폭설 때 눈은 쌀알처럼 뭉쳐지지도 않고 아예 파르르 부서지는 눈이었으니 <가루눈>이라고 했어야 옳다. 가랑비가 있듯이 가랑눈도 있고, 마른눈이 있으면 진눈도 있다는 게 재밌다. 눈만 오면 눈사람을 만들러 뛰쳐나갔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니 확실히 함박눈이라고 다 진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솜덩이 찢어 던지듯 펑펑 내렸어도 잘 뭉쳐지는 습기 많은 눈이 있었는가 하면, 싸락눈 못지않게 잘 안뭉쳐지던 마른 함박눈도 분명 있었던 게 기억난다.

올 겨울에 얼마나 더 눈이 내릴지는 모르겠는데, 새삼 눈의 종류를 찾아보았으니 이젠 눈 내릴때마다 어떤 눈인지 굳이 밖에 나가 확인하는 거나 아닌지. 마침 조카들이 놀러오는 날 또 함박눈이 온다면 나도 눈사람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이웃들은 매일 동숲에서 눈사람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눈덩이를 굴린다는데, 나는 현실에서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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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춥구나

투덜일기 2009. 10. 17. 17:54

털갈이 모드에 접어든 듯 유달리 빠져대는 머리칼을 보면서 진즉부터 가을이라 생각은 했었고 아침저녁 보일러를 틀고 산지 꽤 됐으면서 정말로 얼마나 날이 서늘해졌는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장보러 잠깐씩 나가거나 왕비마마의 병원 보필 외출은 늘 낮이었기에 티셔츠 한장만 입어도 꽤나 더워 10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다는 건 날짜로만 인식했지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기온이 얼마나 추운 건지 모르고 살았나 보다.
어제 간만에 밤외출을 하며 티셔츠 위에 나름대로 겉옷을 하나 더 입고 스카프까지 둘렀건만, 난데없는 비까지 쏟아진 날씨는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추위>였다. 그렇다고 계속 덜덜 떤 것도 아니었고 간혹 약간씩 한기를 느꼈을 뿐인데, 자고 일어나 보니 목이 부었다.
사실 약간의 콧물을 동반한 감기 기운은 꽤 오래 느끼고 있었는데 목까지 부으니 돌연 서글프다. 이젠 정말 추워지겠구나 싶어서. 생각해보니 가을 초입에 해야하는 옷장 서랍 바꾸기를 아직도 미뤄두고 있었다. 앞으로 입어야 할 계절 옷을 화장대 서랍으로 옮기고 여름옷은 장농 서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해마다 그 행사를 10월쯤 치른 것 같긴 한데, 올해는 게으름 부리다 특히 늦어진 모양이다.
털이 복슬거리는 두툼한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적잖은 거리에서 홀로 여름 장마 패션 같은 얇은 옷만 입고 돌아다니려니 뒷골이 더욱 서늘해지는 느낌. 마음도 스산한데 옷이라도 뜨뜻하게 입고 다녀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환절기엔 정말이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모르겠다. 변온동물화 되어가는지 조금만 더워도 못견디겠고 조금만 추워도 덜덜 떨리니 원..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은 이들도 적지 않던데 벌써부터 그런 옷을 입고 실내에 들어가면 난 아마 땀을 벌벌 흘릴 거다.
칩거생활을 끝내고 슬슬 활동을 개시하려면 제대로 옷부터 꺼내입어야 하는데, 청소가 귀찮아 아직도 마루에 놓여있는 선풍기를 보자니 내 마음은 아직 여름을 보내기 싫어하는 건가 싶다. 어쨌거나 스산한 오늘은 대낮부터 보일러를 팍팍 돌리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쓸쓸한 가을엔 지구와 환경을 염려할 마음의 여유가 안생긴다. 몸이라도 따뜻해 지고 싶단 말이지! 
어쨌거나 새삼 깨달은 결론. 가을은 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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