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을 주제로 삼은 이번 전시엔, 일제강점기에 '창경원'으로 놀이터가 되어버린 창경궁의 비운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부터, 동궐도 창경궁 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 타버린 철종 어진을 모사 복원해 놓은 작품까지 볼거리가 쏠쏠했다.
문화재 복원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고등학생 딸을 둔 지인과 함께 봤는데, 이 학교 들어가기가 엄청 힘들단다. 왜 안 그렇겠나! 미술적 재능에 역사적인 지식과 관심까지 두루두루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 문화재 복원이 아닐까나. 째뜬 작품을 둘러보며 내가 막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문화재 복원사업 한답시고 기성세대들은 종종 목재 팔아먹고 뇌물 받으며 턱턱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면 생색내기용 졸속 복원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지만, 몹시 열악한 지원상황에도 파릇파릇한 젊은 세대가 꿈을 키우며 버텨주고 있구나 싶은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친절하게 작품제목까지 다 찍어왔어야 했는데... ㅠ.ㅠ (사진은 클릭하면 적당히^^ 커짐)
맨 왼쪽 작품은 창경궁 뜰에서 비명을 달리한 사도세자의 뒤주를, 가운데는 박쥐문양을 비롯한 벽사의 상징을 담은 단청을, 맨 오른쪽은 놀이동산으로 변한 창경궁의 모습을 유리정원과 동물 모습까지 겹겹의 동심원 안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아이디어도 좋지...
왼쪽은 내가 아래 어진 전시에서도 언급했던 철종의 군복 어진을 실물크기로 모사해 타버렸던 왼쪽을 완전 복원한 그림이다. 딱 내가 보고싶었던 완성작! 전시장 디지털 화면엔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찍은 사진들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서양화처럼 이젤을 세워두고 그리는 게 아니라 정말 옛날 방식대로 바닥에 큰 화폭을 깔아두고 그 위에서 엎드리다시피 쭈그려 작품활동을 하는 어린 예술가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오른쪽 그림은 창경궁 유리식물원. 곳곳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있는데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한 사람씩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 초록색이 너무 예쁘다!
마지막으로 찍어온 그림은... <동궐도>의 부분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기록화처럼 만든 작품 시리즈. 윗줄 맨 오른쪽 그림을 보면 무슨 잔치 준비중에 궁녀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혼이 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사연인지 정녕 궁금... 아랫줄 맨 오른쪽엔 정조가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화성에서 마치고 돌아와 궁궐 문앞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게 했던 장면을 표현한 거라는 듯. 이런 작품을 그리면서 예술가는 특히나 뿌듯하고 막 행복해했을 것 같다. 부러워라... (물론 섬세한 선그리기 반복작업 때문에 괴롭고 좌절하는 순간들도 많았겠지만!)
앞으로도 이어질 궁 프로젝트도 열렬히 응원하겠고, 이 학생들에게 부디 빛나는 미래가 펼쳐지길 빌겠다. 그림쟁이의 어려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쭉~ 이어질 숙명인듯 해서 특히 짠한 마음.
올해는 전시 후기뿐만 아니라, 영화도, 책도 후기를 착실하게 써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사소하게 스치며 본 거라도 얼른얼른 적어놓으려 한다. 까먹기 전에...
올해의 첫 전시 관람은 거창하게 어디론가 미술관을 찾아간 게 아니라, 2주에 한번 가는 궁궐 옆 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은 왕의 초상을, '진전'은 어진을 봉안해둔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에서 '어진'은 곧 국왕과 동일시되는 그림이라 진전에 봉안될 때는 따로 가마에 싣고 어가 행렬처럼 거창하게 운반했단다. 진전은 각 궁궐에도 있었고, 지방에도 있었으므로 (전주의 <경기전>처럼) 어진이 왕마다 여러 개나 존재했다는 얘긴데...
조선 왕실에선 5백여년간 난리통에도 죄다 어진을 싸짊어지고 다니면서(가마로 옮길 형편이 안되는 응급상황엔 요즘 미대생들처럼 길쭉한 원통에 족자를 말아 넣고 가죽주머니에 넣어 짊어졌단다. 그 운반도구 실물도 전시되어 있음), 대대로 역대 왕들의 초상을 다시 베껴그리고 새로 장만해 왕조의 위엄과 정통성을 지키려했으나... 그 눈물겨운 노력의 소산은 1950년대 부산 피난시절 한국전쟁을 무사히 다 겪고 난 다음에 또 하필 창고에 불이나 죄다 타버리고 몇 점 안남아 있단다. +_+
해서 보물급 어진이 남아있는 왕은 태조, 영조, 철종(그나마 다 불타고 남은 절반만), 고종, 순종 정도다. 나머지 왕들의 초상화는 그러니까 다 현대 들어 화가들이 상상으로 그린 그림들.
조선의 초상화 기법은 사마귀 하나, 검버섯 하나도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었다니, 역대 왕들의 어진이 죄다 남아있다면 부전자전으로 얼마나 닮았는지, 정말 볼만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기골이 장대한 태조 이성계와 왜소한 체격이 느껴지는 영조 어진의 차이는 퍽 재미나다. 경기전에서도 (복제품으로) 봤지만 붉은 용포가 아니라 푸른 용포를 입은 태조의 어진은 참신하기까지. 용포가 아니라 드물게 군복을 입은 철종 어진도 신기한데, 난 철종 어진을 볼 때마다 그가 사시인가 아닌가(실제로 사시였다고 들은 것도 같고...) 궁금해 죽겠다.
어진은 남은 게 없으니 전시엔 주로 어진을 옮긴 기록을 담은 의궤라든지, 진전의 현판, 진전에서 쓰던 제기, 그밖에 문신들의 초상화 등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하여, 엄청나게 볼 거리가 많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은 기획전시.
하지만 절반 가까이 타버린 '철종 어진'을 비롯해 보물급 어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면 쏠쏠하다고도 하겠다. 째뜬 난 보고 싶었음. 연령대별로 어진을 여러번 그렸다는(대체로 10년만에 한번씩 개비한다던가...) 영조의 외모가 어떻게 변해갔을지 상상도 해보고 말이지.. 아주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 물론 로얄패밀리다운 위엄도 느껴지지만...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2015 책 best 3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2>는 읽으면서도 이건 무조건 올해의 베스트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실화를 재구성했다는데 그야말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면서 회고록 같기도 하고, 전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깊은 주제의식과 반전이 있었다. 소설은 통 못 읽고 빌빌대다가 두권짜리 소설을 홀라당 밤새가며 읽게 만든 점 또한 수훈 갑.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사놓고도 차마 용기가 안나서 반년 가까이 못읽고 밀어두고 있다가... 기막힌 청문회 뉴스에 다시 분개하며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들었다. 당연히 많이 울었고, 다시 반성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무심함과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고 관계자들,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라도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투표하고 다녔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말고도 절절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폭삭 속았수다>는 11월에 다녀온 제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선망으로 별점을 좀 과하게 준 면이 없지 않다. ^^; 제주 올레길 소개 이외에도 제주 지역 구석구석에 깃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나도 몇 코스는 꼭 가봐야지 적어두긴 했는데.. 3쇄나 찍은 책치고는 만듦새가 부실한 느낌이 있었다. 오탈자가 꽤 눈에 띄었음. 그래도 제주는 무조건 옳으니까.. ㅠ.ㅠ
2015 영화 best 3
다 개봉작이 아니라 뒷북으로 본 게 많아서 2015년 베스트 영화 셋으로 꼽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고민하다 엄선했다. ^^;
<스파이>는 이토록 유쾌 통쾌한 여성 원탑 스파이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서 미련없이 골랐고
<월플라워>는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며 연달아 두번이나 봤으므로,
<아메리칸 셰프>는 엄청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식탐과 요리 본능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데다가 아들 퍼시 역할로 나온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서!! ㅋㅋ 이 영화 역시 두번 봤다. (마침 케이블에서 또 해주길래...)
p.s. 으악.. 내 정신머리하고는...
본 영화 목록에서부터 <인사이드 아웃>을 홀라당 빠뜨렸다는 걸 좀 전에 컴퓨터 사진 정리하다 깨달았다. ㅠ.ㅠ
나중에 연말에 베스트 뽑을 때 쓰려고 사진도 미리 다운받아놨으면서... ㅠ.ㅠ
아효... 그래서 번외편으로 추가. ^^;
슬퍼할 일이 종종 생겨도 이젠 눈물대신 욕부터 튀어나오는 사나운 아줌마가 되어간다. 그도 아니면 무작정 참거나.. 슬픔과 눈물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한편 보고 다시 깨닫다니 참 나도 단순하지. 째뜬 디즈니와 픽사의 특징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좋았음.
2015 드라마 베스트 3
올 상반기에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의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심히 봤던 드라마다. 유준상 특유의 약간 과장된 연기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유호정, 고아성, 이준 이외에도 봄이 부모님들, 집사 부부, 비서들, 하다못해 백지연, 장호일까지 정말 허투루 연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판타지요, 한계도 느껴졌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허상을 블랙코미디로 비꼰 시도 또한 좋았음.
<오 나의 귀신님>은 노상 똑같은 역할로만 나오는 것 같아 별로라 느껴졌던 조정석이 좀 쳐져서 그렇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랑, 뻔할 것 같은 '빙의' 소재를 미스터리 추리로 풀어나가는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쿡방에 아직 내가 넌덜머리 내기 전이라서 요리하며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점도 싫진 않았던 듯. 맨날 여자 꼬시려고 남자들이 하는 응큼하고 뻔한 대사가 깜찍한 박보영 입에서 주절주절 나올 땐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나머지 한편은 <응답하라 1988>이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은 좋아라 봤고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로 꼽기도 했지만 그 다음<1994> 시리즈는 통 재미가 없었다. 유연석 말고는 배우들도 마음에 안들고... 보다말다 막판엔 최종회를 안보기도 했을 걸. 쓸데없이 호흡이 질질 늘어지고 장면이며 대사며 괜히 길게 멍하니 정지된 듯한 부분이 너무 많고, 뻔한 남편찾기 놀이에 치중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보리라.. 그러고 있었는데 ^^
뜻밖에도 동생네(동생이 88학번이고, 올케가 덕선이 또래니깐)와 조카들이 열혈 시청자가 되더니만. 울집에 와서 하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길래 ㅋㅋ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 보다가 아예 첨부터 정주행에 돌입했다.
덕선이, 정팔이. 택이 같은 애들도 귀엽고 별 대사 없이 그냥 눈을 깜박깜박하는 얼굴이 화면에 비추기만 해도 헤벌쭉 웃음이 나는 진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난 이 아줌마들 3인방이 너무 웃기다! 특히 치타여사 라미란 최고! ㅋㅋㅋ 신파스러운 가족 이야기인데도 또 그 묘미가 넘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런 추억돋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물론 내가 마당에 수돗가 있는 집에서 뜨신 물 데워 머리 감고, 이웃집에 반찬이랑 밥 나르며 지내던 시절은 80년대 초였지만...)
하여간에 그닥 본 드라마도 없거니와 이만큼 열심히 등장인물에 애정하며 보는 드라마도 별로 없겠다 싶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스트 드라마 3에 넣어버렸다. 미친 스케줄로 결방까지 하고, 종영까지 겨우 4회 남았는데... 어차피 덕선이 남편감은 빤한 거고... 라미란 여사의 활약이 계속 기대될 뿐이다. ^^
링크한 대로 전시 구경 다닌 후기는 비교적 매번 소상히 포스팅했지만, 베스트 셋을 뽑는데 한참 걸렸다. 리움미술관의 세밀가귀말고는 다들 조금씩아쉬운 점들이 있어놔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젠 무조건 기대를 버리고 보러가야겠다. ㅎㅎ
2015 등산 best 3
사진 왼쪽부터...
남양주 운길산(3월)
대구 비슬산(5월)
인제 방태산(10월)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단체산행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개근을 하진 못했다. 북한산 2번, 북악산, 청계산,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운길산 같은 근교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인상적인 건 멀리 대절버스 타고 가야하는 높은 산들이었다. 언제고 눈덮인 한라산과, 아무 계절이든 지리산에 갈 날이 있으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5 지름 best 3
아이폰6
숏커트
북해도 여행
3가지 지름이 이 한장의 사진에 다 담겼다. 삿포로 공원의 가을을 배경으로 숏커트 머리 그림자를 아이폰6로 찍다. ^^;
새로나온 아이폰6s의 성능이 몇 가지 탐나긴 하지만 4년만에 고민고민 개비한 새 휴대폰으로 뭐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무케나 찍어도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시리 기능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
지름에 숏커트를 넣은 이유는 아마도 수년간 또 이 머리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주 미용실에 가야하는 건 좀 귀찮지만... 지루하게 단발머리를 왜 그렇게 오래 하고 다녔나 의아할 만큼 짧은 머리가 가뿐하고 아주 좋으다. ㅎㅎ
얼결에 친구따라 떠난 여행이긴 해도, 허리까지 높이로 쌓인다는 삿포로의 눈을 못보긴 했어도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11월은 여행의 달이었다. 어쩐지 만만해서 자주 가게 되는 일본은 이제 오사카랑 오키나와만 가면 저 북쪽부터 남쪽까지 얼추 다 일본을 섭렵하는 듯한 느낌. 2016년에는 또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2015 Worst 3
수락산 낙오. 포스팅도 했다시피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지만 우길 땐 우겨야한다는 것,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때 당황해서 길 같지도 않은 길로 숲을 헤치고 걷다가 나뭇가지에 찔린 팔엔 영구히 흉터가 남았다.... ㅠ.ㅠ
신사동에서 길을 잃다. 11월에 한국 다니러 온 친구와 언니들의 서울 숙소가 강남 신사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주로 국내외 여행을 다니느라 며칠 묵진 않았지만 암튼... 서울 관광이 좀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부른 배도 꺼뜨릴 겸 한강 둔치로 밤산책을 나갔었다. 마음 같아선 한강변 야경을 보며 세빛둥둥섬까지 쭉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너무 멀다 그러면 올 땐 택시타지 뭐.. 그럼서) ㅋㅋ 노상 차만 타고 다니시는 LA 사모님들은 신사동에서 한강 둔치까지 걸어간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갈 땐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요리조리 굴다리를 지나 잘만 찾아갔는데... 돌아올 땐 방향감각 뛰어나다고 믿고 아파트 단지로 질러가려다가... 신사동 잠원동을 뺑뺑 돌며 헤매다... 주민들에게 신사역 방향이 어딘가요.. 몇번이나 물은 끝에 겨우 엉뚱한 반대 길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산속도 아니고 서울 한폭판에서... 개망신. 다시는 어디가서 방향감각 자랑하지 않겠다!
토지 소송. 어찌저찌해서 토지 분할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집에 소송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을 지어 팔면서 땅주인이 나중에 재건축을 예상하고 토지 일부를 분할 소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 불법 알박기 아닌가?) 몇년 전 대규모 재건축 가능성이 완전 사라지자 뜬금없이 그 땅을 우리 더러 구매하라는 내용증명이 왔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개무시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문득 법원 소송장이 날아왔다. 젠장... 그마저도 난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법원에 온라인으로 몇가지 서류제출하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우리가 유리하고 가뿐하게 판사의 조정을 거쳐 승소할 거라 믿었는데... ㅋㅋ 법은 역시 어려운 것. 놀랍게도 무조건 우리가 지는 소송이란다. ㅠ.ㅠ 결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 소개받고 상담받은 결과, 형식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지만 내용상으로 이기는(?) 전술을 펼쳐야한다고...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피같은 쌩돈 입금하고서도 소송끝날 때까지 몇년은(빨라야 1년?) 집 팔기 글렀다. 내 잘못도 아니고 뜻밖의 재앙이긴 하지만, 웃기는 건 변호사가 소송서류 제출한 다음주엔가 몇년 째 아무 소식 없던 부동산에서 돌연 집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오 정말 인생은 아니러니하다!
2015년은...
나의 번역인생 20주년이라는 이유로 뭔가 자꾸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해두어야할 것만 같은 한해였다. 그러나 그건 괜히 조바심만 쳤다는 뜻일뿐 실제로는 그냥 다른 해와 똑같이 방만하게 보냈고, 드디어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첫 번역서가 나온지 만 20년만인 12월 10일 현재, 완전 허당 백수가 아니었을 기뻐해야하겠으나 2016년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에 실제론 이미 벌벌 떨고 있다.
홀로 꿈꾸던 프리랜서 근속파티(?)는 25주년에나 하기로... 5년이란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당장 올 한해도 불투명한 마당에 2020년의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다만 부디 다시 좀 성실해져야겠다!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ㅠ.ㅠ 그러니깐 2016년의 목표는, 한해 정리 포스팅에 반성, 한심해 따위의 태그 없이 약간이나마 희망의 서광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일단 코앞의 일에 집중하면서.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전시 구경이겠거니 하면서 보러갔다. 리움미술관 예정 전시 중에서 연초부터 나름 기다리고 있었던 전시회인데, 지난번 <세밀가귀>가 워낙 뜻밖의 횡재였던 때문인지 오히려 이번엔 좀 실망했다. 한옥 사진들을 원없이 거대한 작품으로 보게 될 것을 기대했건만... 삼성 모니터 자랑인지 내 바람보다는 디지털 플래시를 너무 많이 써먹었더라. 어쩌면 고가의 사진집 책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고... (근데 6시가 다 돼서 거의 쫓기듯 나오는 바람에 책을 벌써 팔고 있는지 어쩐지 알아보지 못했다. 강연회도 좀 탐나던데 한번 더 가야하나... 으음..)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사진작가 6명이 궁궐, 사찰, 민가의 한옥을 멋지게 찍은 사진들과 옛 그림, 유물, 건축모형까지 같이 전시하고 있었다. <장엄한 고요>라는 제목으로 종묘 제례를 담은 3채널 동영상도 인상 깊었고, 뜻밖에도 국보인 동아대 동궐도가 나와 있어서 신이 났다. 고려대 동궐도랑 같이 전시할 때 본 걸로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알현하다니! 동궐도 말고도 섬세하고 신기한 옛지도가 꽤 전시되어 있었음.
백악부터 경복궁, 관청거리까지 아주 정교한 모형
해인사 지형과 경복궁 앞 육조거리까지 정교한 건축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건 으아... 합동작업이겠지만 하나하나 붙이고 오리면서 멀미났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구경하는 나야 물론 고마웠지만... 건축하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고 또 한번 생각. ^^
경복궁의 방향이 계자정향(? 계좌였던가? ㅋㅋ)이니 어쩌구... 만날 공부해도 모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암튼 정남향이 아니고 세종로와도 직선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옛 지도를 기본으로 만든 경복궁 모형도 육조 관청이 있던 거리를 똑같이 살짝 방향을 틀어놓았다. 신기방기...
그밖에도 실제 한옥의 구조를 보여주려는 듯, 한쪽에 한옥집 대청이랑 방을 쬐끄맣게 만들어놨는데 신발 벗고 올라가보니 온돌방 부분은 뜨뜻하게 난방까지 되더라! 귀찮음을 무릅쓰고 신발 벗기를 잘했지.. ㅎㅎ
종묘 정전 회랑을 옆에서 찍은 사진도 좋았는데... 그건 뭐 전시장 밖에 장식해놓은 걸로나 담아오는 수밖에...
왼쪽의 종묘 정전 회랑이랑 오른쪽 리움 미술관 통로랑 뭔가 대조적이면서 보기 좋다고 혼자 흐뭇했던 사진이다.
아참.. 서도호의 <북쪽 벽>도 볼 수 있음. 전통건축에 대해서는 이만한 전시가 없겠구나 싶으면서도 플래시 말고 죄다 정지사진으로 제대로 고느넉하게 감상하고 싶다는 욕심을 잠재우기가 힘들었다. 힝..
서도호, [북쪽 벽] 상대적으로 좀 귀퉁이에 전시되어 있어서 에스컬레이터 앞이라 어디서도 사진을 잘 못찍는 각도 ㅠ.ㅠ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일본 작가의 설치미술이 떡하니 놓여, 좀 생뚱맞다 싶은 느낌도 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사슴 박제 2마리를 구입해서 영롱한 투명입자를 다닥다닥 붙인 작품이라고. 실제와 보이는 것의 괴리를 나타낸다나 어쩧다나...) 어쩐지 크리스마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서 그럭저럭 어울리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멋지게 성장한 외국인들이 건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나 타고 다닐 법한 화려번쩍한 검정색 밴에서 계속 내려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분위기 있는 금발 미녀와 그 파트너들...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질감 좋은 검정색 코트에 클러치백에... 향수냄새 폴폴...
뭔가 특별한 파티가 있나?
평범한 차림의 나와 친구가 졸지에 생뚱맞은 저 사슴 꼴이구나 싶은 느낌을 언뜻 받으며 어슬렁어슬렁 건물을 나섰다. 퍽이나 신기한 경험 했네 그려. ㅎㅎ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이전 10주년 기념으로 고대불교조각대전이라는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전시는 11월 15일까지고 유료전시라서 입장료 6000원. 신한카드로 결제하면 10% 할인해준다.
다른 불상은 잘 모르겠고, 저 유명한 신라시대의 반가사유상으로 국보78호와 83호 2개가 있는데,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만으로도(주로 중박에서 교체상설전시를 하다가, 아주 가끔씩만 나란히 전시를 하기 때문)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로따로 보면 비슷한 크기라는데도 도무지 감이 안 잡혀서 원...
그밖에도 불상 조성이 시작된 초기 인도와 중국, 일본, 삼국시대불상까지 역사적으로, 그리고 나라별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지만 암만 들여다봐도 한눈에 척 보고 분류해내진 못하겠더라 ^^;)
1시간이면 대충 둘러보겠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시품이 많고 꼼꼼이 비교하며 들여다보자니 1시간반이 훌쩍...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마음이 막 급해졌다.
사진촬영은 다 금지됐다가 반가사유상 전시실에서만 가능하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욕심 부리며 열심히 찍어보았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둘을 한꺼번에 담는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그래도 생생한 느낌을 간직하는 의미에서 찍어오긴 했다만 화질이 영...
왼쪽이 78호 반가사유상, 오른쪽이 83호 반가사유상이다.
좀 더 가까이에서 담아온 사진을 나란히 붙여보면... 이렇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6세기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7세기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좀 더 단순미를 보여주는 83호 반가사유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내가 사진을 똑같은 거리에서 못 찍어서 78호가 더 크게 나왔지만 나란히 찍은 맨 위 사진에서 보듯 보관을 쓴 78호는 높이가 83.2cm, 낮은 관을 쓴 83호는 93.5cm로 83호가 10cm나 더 크다.
두 반가사유상을 오래오래 쳐다보고 빙글빙글 뒤로 돌아가서 살펴보고 다시 앞에서 보고... 한참을 봐도, 어느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 (누가 물어나 봤나? ㅋㅋ) 둘 다 다른 묘미와 개성과 섬세함을 지닌 보물이라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까 잠시 망설였다가 귀가 피곤해질 것 같아서 패스, 해설사의 설명 역시 좀 들어볼까 따라다니다가 금방 포기했다. 못 알아먹을 용어들도 너무 많고, 아 그냥 내눈으로 보고 감상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전시실 초반에 인도의 두 지역 불상이 재료부터 붉은 사암, 검은 편암으로 나뉘면서 옷 주름이 어떻고 소라모양의 머리가 어떻고.. 그럴 때부터 머릿속이 마구 꼬였다. ^^; 석가모니 부처니, 미륵불이니, 관음보살이니.. 불상도 종류가 또 좀 많은가. 째뜬 섬세한 부조와 조각장식, 다양한 석불, 청동, 금동 불상을 원없이 구경한 것 같다.
하지만 두 반가사유상과 함께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다리부분만 남아있던 신라시대의 <아주 거대한 반가사유상>?? 안타깝게도 일부만 남아있지만 제대로 된 모양이라면 키가 3미터에 달했을 거라는 거대한 석상이 전시실 후반부에 뙇~ 놓여있는데, 대체 그런 석상을 올려놓으려면 대웅전 전각을 얼마나 크게 지었어야 할지, 아니면 실외에 두었던 것인지, 좌대는 또 어떻게 꾸몄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는 (아마도 지도교수인듯) 어느 대학생 인솔자의 이야기에 나도 귀가 솔깃했다. 석굴암을 봐도 그렇고 불상은 금동이든 청동이든 석상이든 역시나 신라시대가 최고봉?
내 욕심 같아선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대표 불상을 죄다 보여줬으면 싶었으나 뭐 이 정도로도 만족. 하기야 이보다 불상이 더 많았으면 더 헷갈리고 멀미났겠지. ㅋㅋ
이쾌대는 몇년 전 만난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조만간 대규모 회고전이 있을 거란 예고를 듣고 기다렸던 전시다.
근대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분단의 현실까지 근현대사를 개인의 역사로 지닌 인물이란 것도, 조선의 서양화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도 흥미로웠다. 근대화가 전시에서 이쾌대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부인 유갑봉 여사와의 애틋하고 달달한 '연애담'도 그림 못지않게 인상깊었음을 고백한다. 옛날 사람들이 워낙 성숙하기도 했고 시절이 하수상하여 나이가 꽤 들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지만 휘문고보 졸업반때(그래봤자 19, 20살이다!) 주고받은 연애편지들은 으어... 엄청 진지하고 성숙하다. 실제로 두 사람 졸업반때 결혼을 했다는 것 같다. ㅎㅎ
연애담도 워낙 유명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얼마나 금슬이 좋았는지, 웬만한 그림 속 여자들은 죄다 모델이 아내인 유갑봉인데 애정을 듬뿍 담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느낌이 척 보기만 해도 전달된다. 대상을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쁘게 정감 있게 담아낼 수가 있을라고...
여러 편지와 개인소장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글씨는 또 어찌나 정갈한 명필인지! "맺힌 구석이 한 군데도 없이, 평생 평온한 인생을 누린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글씨체" 같다는 것이 같이 전시 관람한 친구의 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핏 도슨트의 설명을 듣자니 그냥 '만석꾼'도 아니고 '삼만석꾼'의 아들이었단다. +_+ (정갈하고 깔끔했던 글씨체는 역시나... 포로수용소 시절엔 좀 흐트러진다. 북한 시절엔 어떠했을지 몹시 궁금..)
일제 강점기에 일본유학을 할 정도면 당시에 잘 먹고 잘 산 부유층이리라 짐작 가능하지만 대충 잘 사는 정도가 아니었던 듯. 유학시절 아내도 줄곧 일본서 함께 지냈단다.
째뜬 이쾌대가 월북화가임에도 그 수많은 작품들이 무사히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이쾌대가 아내 유갑봉에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라고 부탁했으나, 아내가 그림을 한 개도 팔지 않고 대신 시집 올 때 받은(해온?) 패물들을 팔아 먹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쾌대가 생전에 쓰던 고풍스러운 책상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놓여있던 예쁜 지함이 바로 패물함이었대고, '물목'이었던가.. 여러가지 품목이 적혀 있던 화선지가 함에 들었던 패물 목록이었단다. 대단하다 싶기도 하면서, 또 워낙 어려운 시절인데도 나름 풍족하게 살았을 이들에 대한 괜한 반감까지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한국전쟁 이후 부산 피난살이 하면서.... 유갑봉보다는 한 살 많고, 이쾌대와 동갑인 1913년생 우리 할머니는 생선광주리를 이고 다니셨다던데;; 울 할머니도 이북과 만주에선 몸종 거느리고 사신 아씨마님이었다규~ ㅋㅋ )
하여간에 조선사람, 한국사람을 서양 미술기법인 '유화'로 그려낸 그림들은 대부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서양의 명화들을 따라 그리려한 느낌이 드는 대작들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나는 주로 '예쁜 여자들' 감상하는 재미에 푹빠져 다녔지만. ^^
이날 유독 마음에 들어 좋아했던 그림 둘은 바로 이것.
카드놀이하는 부부
이인조상
예쁘고 잘생겼다... ㅋ
저 유명한 푸른 두루마기 자화상 그림은 예전에도 포스팅한 적 있으니깐 석조전 별관 걸개그림 찍어온 걸로 대체.
뒷배경의 산하와 푸른색 두루마기는 한국적이고, 중절모와 유화 팔레트는 이국적인데...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대작 그림 속 군상에 표현된 남자들이 하나같이 '근육질'이라 의아했다. 저 자화상에서 본인의 팔뚝도 원근법을 감안한 거라고는 해도 좀 심하게 굵지 않은가? -_-; 요즘 단백질 음료 먹으며 몸 만드는 남자들 못지 않은 근육남으로 당시 남자들을 표현한 이유가 뭘까... 서양그림 속 인물상을 따라한 건가? 궁금하다.
군상5
시간과 정성이 허락했더라면 덕수궁 석조전 특별관람을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같이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고종이 머물던 때의 모습으로 복원해놓았다던데... 언제고 꼭 들어가보리.. 다짐하며 뉘엿뉘엿 해가 지는 석양 아래 석조전을 찍었다. 그 앞에 핀 들국화인지.. 쑥부쟁이인지... 데이지도 예쁘고..
아 참.. 이쾌대 전시는 광복70주년 기념 기획전시라 무료다. 덕수궁입장료 천원만 내고 들어가면 됨.
11월 1일까지.
내가 뭘 잘못 알았는지...
이쾌대가 월북 이후 남긴 작품들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북한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다고 들었기에 일부러 덕수궁 다 돌고나서 시립미술관까지 올라갔는데.... 이쾌대의 작품은 더 없었다. -_-;; 어디에서 잘못 들은 거지? ㅋ
암튼 그래서 얼결에 본 <북한 프로젝트>는 북한의 모습을 담은 외국 사진작가들의 작품과 북한과 분단을 주제로 한 한국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북한 미술이 망라되어 있었다. 설치미술도 많고 선전미술도 많고... 의외로 재미난 그림들이 많았음. 그러나 하루에 전시를 두개나 보게 되면 후자는 뇌용량의 한계로 설렁설렁 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기억에 남은 건 사진으로 찍어온 작품들.. ㅠ.ㅠ
뚱땅뚱땅 아리랑이 연주되고 있었던가.. 했던 이 피아노는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 철조망으로 피아노줄을 엮어놓았다.
으음.. 그러나 작품 제목도 작가도 까먹음.
그리고 아래는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뙇~ 눈길을 끓었던 강익중의 작품. <금수강산>이 작품명이라는 것 같다. 달항아리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한 가운데는 TV 모니터가 있고 주변엔 나무 담장이...
근데 난 이것보다 전시장 밖 로비 소파베드(?)가 놓여있던 곳에서 올려다보이던 벽에 걸린 강익중의 달항아리 그림이 더 좋았다.
광복 70주년 <북한프로젝트> 전시는 9월 29일까지로 이미 끝났다. 뒷북으로 소개해서 죄송~
볼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보러갔다. 조만간 바르셀로나에 직접 가서 가우디 건축을 봐주겠노라는 것이 망설임의 이유였는데 ㅜㅜ 그저 욕심일뿐 사실은 스페인에 언제 가게될지 모르니깐.
건축관련 전시는 도면 말고 대체 뭐 볼 게 있을까 의심스러우면서도 막상 가면 볼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지을 때도 죄다 모형으로 만들어보고 실험을 거쳐, 사후에도 지금껏 계속 그의 설계에 따라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니깐 더더욱 보여줄 게 남았겠거니 했다. 비록 복제품이더라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저택 같은 건물의 사진과 입면도, 평면도, 모형 구경도 감탄스러웠지만, 건축학도 시절 도면들은 으아... 얼마 전 리움미술관에서 본 <세밀가귀>의 섬세함이 떠올랐을 정도였다. 정밀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가 없더라. 색감도 예쁘고... 건축학위 따고나서 자기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명함도, 작업실 책상도예쁘고...
문짝, 문고리 하나까지 죄다 직접 건물에 어울리게 디자인해 넣은 건 또 어떻고! 나중에 기념품숍에 들어갔을 때 평소처럼 엽서 하나 사고마는 게 아니라 가장 탐나는 건 복제품 나무의자였는데 가격이 450만원이었던가... ㅋㅋ 그래서 엽서는 사지 않았다. 전시는 미리 봤지만.. 엽서는 정말로 바르셀로나에 가서 사주겠어... (괜한 오기를 부린 건가? ㅋ)
깨진 사기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를 <트렌카디스>라고 한다는데 진짜로 주변에서 인부들이 주워온 타일조각을 죄다 색깔별로 구분해놓고 활용했고, 피렌체에서 값비싼 유리공예품을 사다가 죄 깨뜨려서 사용하기도 했단다. 어휴... 전시장 천장에도 더러 둥근 타일 조형물 복제품을 매달아놓았던데 거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으니, 좀 웃겨도 전시장 입구의 구엘공원 도마뱀을 찍어왔다. 저런 걸 트렌카디스라고 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기부금과 입장료만으로 계속 건축이 진행중이고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하고 있다는데, 나도 그 전에 꼭 구경가서 입장료 수입에 보태주고 싶다! ㅠ .ㅠ
가우디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1월 1일까지, 입장료는 15000원인데 GS포인트 카드가 있으면 2천원 할인해줌. ㅎ
한가람미술관에서 동시에 하도 여러 전시를 벌이는 바람에, 보테로 작품들은 좁은 전시실에 마구 구겨넣듯 비좁게 홀대를 해서 맘상했는데(모딜리아니 전시장도 그런 편이라고;), 가우디 전시실은 그나마 공간할애를 많이 해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큰 작품은 별로 없고 사진 아니면 연대기, 도면과 모형 정도라서 그런 기분이 들었나? 암튼...
가우디 전시를 보고 한가로운 마당으로 딱 나왔는데 반대편 미술관 건물에 은은하게 비친 노을빛이 눈에 들어와서 한장 더 찍었다. 이렇게 한가롭고 인적 드문 미술관이 얼마만인고..
추석전까지는 좀 탱자탱자 놀면서 여름 내 소진된 심신을 재충전하겠노라 결심했는데, 아직도 머리는 좀 더 쉬어야하는지 책은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럼 전시나 보러 다니자 싶었으나, 이미 프리다 칼로는 날짜를 놓쳐버렸고(9월 4일까지였더라) 이 전시도 끝나기 이틀 전에 겨우 볼 수 있었다. 천만다행... 기대가 컸는데도 완전 감동했다. ㅠ.ㅠ
'세밀가귀'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나전을 보고 칭송한 말이란다.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라는 뜻이라고.
그런 말이 나올만도 하게 정말 섬세하고 치밀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고... 더 묘사할 말이 생각 안났다. 일부러 그런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인데도 으아.. 감탄스러웠다.
오래 전 대만갔을 때도 박물관 가득 정말 신기하고 정교한 세공 공예품들을 많이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나 재주가 놀랍다고 느낀 건 많았어도 '감탄스럽게 아름답다'는 느낌은 덜했던 것 같은데 내가 팔이 안으로 심히 굽었다고 쳐도 우왕... 구석구석 섬세한 아름다움이 유물마다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참 놀랍게도 잘 골라서 모아놨다고 생각했음. ^^;
게다가 웬일로 전시장에서 사진찍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전문작가가 찍은 더 멋진 유물사진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그 감동을 찍어와 홀로 넘겨보며 새삼 흐뭇해하는 기분은 또 다르다.
해서 남들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도 열심히 찍어왔고, 며칠 핸드폰 앨범 넘겨보며 아웅 예뽀라... 실실 헤벌쭉 행복했다.
저 유명한, 청동기 <다뉴세문경>!!부터 시작해서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시대까지 유물 종류가 다양했는데, 조선시대엔 섬세한 아름다움이 주로 회화쪽이다보니 자주 보던 풍경화, 초상화 전시실에선 감동이 덜했다. 물론 터럭 하나도 사실과 똑같이 묘사한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초상화를 실물알현한 건 기뻤지만, 내가 주로 감탄했던 건 신라와 가야의 금세공품, 전돌, 고려 청자와 나전, 불상 등등이었다.
기껏 휴대폰 사진에 그 감흥을 얼마나 담아왔겠냐마는 그래도 일종의 자랑질. ^^;
이 둘은 사리함이다. 옆에 있는 유리병 크기가 손가락보다 작음.. 신라시대 유물이었던 것로 기억;;하는데 뭐 확실하진 않다. 저 함 외부에도 죄다 세밀한 부처와 구름무늬 등등이 새겨져 있다.
위 사진 셋 중 왼쪽은 고려청자인가보다.. ㅠ.ㅠ 나전인 줄 알고 셋이 붙였는데 아 놔...
맨 오른쪽은 실물이 아니라 디지털 화면으로 찍어온 통일신라시대 나전 거울이다. 가운데 보이는 고려 나전함은 거북이 등딱지에 전복껍질과 기타 재료를 입혔다는 것 같다. 신라시대 나전은 무늬의 세밀함이 좀 떨어지는 것도 같지만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역시나 최고. 아.. 저런 보석함이랑 거울 갖고 시프다..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욕심을 품었다. 죄다 국보 아니면 보물. ㅋㅋ
불경을 보관하던 화려하고 기품 있는 경전함도 여럿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실 양쪽에서 볼 수 있는 유리함에 들어 있어서 사진에 잘 담기질 않았다. 거의 일본과 유럽에서 빌려온 유물이었던 듯. 유출된 보물 환수 문제가 늘 뜨거운 감자인 건 알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물로 잘못 알려지지 않는다면 세계 유수 박물관에서 그 아름다움을 떨치고 있는 것도 나름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 모두가 탐낼만 한 보물인 것을 어쩌겠어!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초라한 한국관 유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흠.. 암튼 좀 민감한 사안이긴 하다.
이 섬세한 유물 세 세트는 죄다 '전돌'(塼돌) 혹은 '전석(塼石)'이라고 부르는 전통 바닥장식이다. 일종의 타일!
신라나 고려시대에 지은 오래된 사찰 대웅전 가운데는 종종 바닥에 아직도 저런 국보급 전돌이 깔려있는 곳이 있다. 칠갑산 장곡사 갔을 때도 연꽃무늬 전돌을 본 적 있다. 도자기 빚듯이 기와와 전돌에도 저렇게 다 무늬를 새겨서 가마에 구워 사용했다는 얘기다. 옛날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인테리어' 욕심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손잡에에 앉은 작은 개구리, 몸통에 새겨진 소년무늬가 정교했던 고려청자 주전자 사진은 아무리 찍어도 잘 안나와서 실패하고.. 그 대신 투각으로 만든 두침(?) 찍어왔음. 목침은 나무로 만든 베개라는 걸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ㅋㅋ 고려시대 귀족들은 낮잠자는 베개도 저런 화려한 청자로 구워서 사용했다뉘.... 어휴...
그 옛날 교과서에서 주로 봤던 것 같은 고려청자도 새삼 감탄하며 구경했다. 어떻게 도자기로 저런 그물 같은 걸 표현해내는지 원... 왼쪽 술병(?) 무늬 아오... 저런걸 '당초'(唐草)무늬라고 하는데, 옛날엔 당나라에서 유입된 무늬라고들 했지만, 그게 아니고 '덩굴풀'을 이두로 음차하면서 그렇게 표기한 것뿐이라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주로 인동덩굴 무늬를 저렇게 표현했대고, 왕조나 나라의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무늬라고 함. ^^v
아 근데 저 오른쪽 도자기의 용도가 뭐였더라? 감탄하며 보다가 그걸 놓친 듯.. 연적이었던가... -_-a
불교신자인 울 오마니는 암만 다녀봐도 신라와 고려 불상이 전 세계적으로 제일 '잘생겼다'고 주장하신다. 근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비례미도 그렇고 섬세한 표현도 그렇고....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인도 불상도 어쩐지 '쨉'이 안되는 느낌이다. 이 사진들은 둘 다 부처가 아니고 무슨 '보살'인데 오른쪽 사진은 귀여운 동자처럼 나왔지만 실물로 봤을 땐 잘생긴 느낌이었다. 흔히 절에 다니는 아줌마 할머니들을 '보살'이라고 부르지만 보살은 여성이 아니고 그냥 성을 초월한 무성일 걸 아마... 왼쪽 사진 유물은 브로셔에도 들어 있는 <금동보살좌상>. 14세기 고려 보물이고, 일본에서 빌려온 거란다. 아까비...
그밖에 작고 앙증맞은 금동불상도 하나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웠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맨 오른쪽 불상의 유연한 자세! 잘생기기도 했지만 저렇게 우아하고 편안하게 약간 비스듬히 나른하게 앉은 모습을 금속으로 표현해내다니 으으.. 기막힌 솜씨로다.
관람료가 8천원이었는데, 전시장 나오기가 아쉬워서 반바퀴쯤 더 돌아본 뒤 미적미적 걸어나오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품격'이라는 말은 역시 아무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난주말로 전시가 끝나버려서, 일찌감치 구경하고 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러가라고 포스팅으로 권하지 못한 게 안타깝네그려.
그래도 몇몇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언제고 발품을 팔면 또 볼 수 있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