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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1 이상한 일 2 14
  2. 2009.07.30 점입가경 6
  3. 2009.07.17 그냥 두기 12
  4. 2008.02.27 이상한 일 10

이상한 일 2

투덜일기 2009. 10. 11. 16:05

오래된 주택가의 오래된 집에 살다보면 난데없이 날아든 벌레와 조우하는 경우가 많다.
벌레 쪽에서 생각하면 참 재수없게 걸려든 셈인데, 분명 밖이 빤히 보여 탈출을 시도하려고 달려들면 보이지 않는 벽이 막아서니, 유리에 온몸을 던지듯 비행하다 내는 그들의 소리는 아무리 미약해도 처참하다.

며칠 전 저녁에 들려온 소리도 딱 그런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집안에 침입해 나갈 곳을 찾아 이리저리 벽과 문에 몸을 부딪쳐대는 노린재나 벌, 파리가 내는 소리...
뒷베란다로 통하는 쪽문 근처에서 나는 소리의 방향은 알겠는데 아무리 천장과 문 주변을 살펴도 문제의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날벌레가 유리창에 몸을 던지는 소리는 붕~ 하는 비행음과 함께 톡 소리가 나는데, 이번엔 좀 다른 소리였다. 톡..톡.. 마치 누군가 일부러 문을 살며시 두들기는 것처럼 연달아 나는 소리는 흠칫 놀란 내가 다가가면 사라졌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면 다시 들려왔다. 톡톡..

돌연 좀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자꾸만 뒷베란다로 이어지는 쪽문을 쳐다보다 드디어 내가 발견한 것은 유리문 아래쪽으로 어른어른 비치는 작은 연두색 형체. 연두색 생명체는 정말로 내게 문을 열어달라는 듯 팔을 들어 문을 두들겼다. 톡톡. 그러고는 숨바꼭질을 하듯 몸을 숨기더니 한참 뒤에 다시 유리문에 매달려 팔을 들었다. 톡톡.

1초쯤 되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가능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SF 영화에서 본 연두색 소형 우주인? 설마... 그럼 개구리? 집근처엔 개울도 없는데? 아직 동면 들어갈 때 안 됐나? 쥐가 연두색일 리는 없고? 혹시 돌연변이?
자꾸 톡톡 유리문을 두들겨 대는 건 신경에 거슬렸지만, 두려운 마음과 호기심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가장 두려운 가능성, <돌연변이 생쥐>는 아닐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결국 문을 열어보았다. 문 열어달라고 청하듯 톡톡 문을 두들겨대던 괴생물은 내가 문을 확 열자 후다닥 문설주 쪽으로 달아났는데...
격자무늬가 들어간 반투명 유리문 때문에 확대효과가 생겼던지(아니면 놀란 내 머리가 순간적으로 시각영상을 왜곡시켰거나)  실물은 유리문 안쪽에서 보던 것보다 작았고, 기다란 팔을 들어 유리문을 두들겼던 녀석의 정체는 바로 <사마귀>였다. 연두색으로 보였던 건 녀석의 배부분이 방안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사람처럼 곧추 서서 팔을 들고 문을 두들겼다고 생각했던 사마귀의 앞다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굵지도 않았다. 물론 일반 사마귀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녀석이긴 했다. 길이가 10센티미터도 넘고 몸통도 굵어 도대체 어떻게 뒷베란다로 들어왔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보일러 배기통 주변에 유리가 벌어져 있긴 하지만 그 사이로 기어들어오긴 힘들었을 것도 같은데...

사마귀가 익충인지 해충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나는 가지치기 때 사두었던 손바닥에 빨간 고무를 입힌 목장갑을 얼른 꺼내왔다. 맨손으론 못잡을 테니 두툼한 장갑을 끼고서라도 얼른 붙잡아 밖으로 내보낼 계획이었다. 메뚜기처럼 펄쩍 튀어 달아나면 어쩌나 염려했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어딘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인지 원래 사마귀의 동작이 그렇게 굼뜬 것인지 녀석은 별 요동없이 얌전하게 내 손에 잡혀들었고, 나는 얼른 방충문을 열고 들꽃이 잔뜩 피어 있는 집 뒤쪽으로 녀석을 던져버렸다. 

이상한 일이라고 포스팅한 기억도 있는 지렁이가 며칠 전에도 또 다시 목욕탕 바닥에 출현하더니만 이번엔 사마귀가 유리문을 다 두들기고 나 원 참... 별일이 다 있다. 가을에 접어들어 먹을 게 부족했거나 혹시 죽을 자리를 찾으려던 사마귀였던 건 아닌가 검색을 해보니, 크기로 보아 그냥 사마귀가 아니라 왕사마귀란다. 보통 사마귀는 싸움꾼 같은 생김새 답게 11월까지도 생존한다는데, 덩치 큰 왕사마귀는 10월까지만 산다고.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그 녀석은 대체 어쩌다가 남의 집에 들어와 감히 인간에게 문을 열라고 두들겨댔는지. 
문득 어린 시절 메뚜기를 잡아다가 애완용으로 길러보겠다며 네모난 각휴지 통이나 박카스 상자에 풀과 함께 넣어 두었던 기억이 났다.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 메뚜기가 죽어버리는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풀을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주고 숨구멍도 더 많이 뚫어주고 먹을 물까지 넣어주어도 메뚜기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늘 죽어버렸고, 그 뒤로는 메뚜기를 잡았다가도 조금 데리고 놀다 그냥 놓아주었던 것 같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손을 타 어딘가 부상을 입었을 메뚜기가 무사히 한철을 살아냈을지는 알 수 없다. 장갑 낀 손으로 한껏 힘을 빼고 잡긴 했지만, 며칠 전 내가 잡았던 사마귀도 어딘가 속으로 병이 들어 자유를 찾자마자 비실비실 죽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디 그러진 않았기를... 
어디나 걸핏하면 무너뜨리고 새로 짓고 파헤치는 세상이다 보니 나에겐 사마귀 한마리, 지렁이 한마리도 귀하게 느껴진다. 메뚜기와 사마귀, 호랑나비는 그 옛날 우리집 마당에서 수시로 보던 곤충인데 요즘 아이들은 과학 체험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으니 원... 세상 자체가 이상해진 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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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투덜일기 2009. 7. 30. 23:37

왕비마마의 저녁운동을 채근하다 지쳐서 홀로 느루를 끌고 홍제천변엘 나갔다가 이를 갈았다. 하필 홍제천변 산책로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문제의 분수와 폭포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대형 광고판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는 어느 주민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버스정류장 유리에 붙어있던 홍보물을 본것도 같았다. 시낭송의 밤이라나 뭐라나 하는... 게스트 목록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유현상>이기에 속으로 큭큭 웃으며 과연 누가 가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무대 위쪽으론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쪽 산책로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걸로 봐서 의외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낭송의 밤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올까봐, 주민 노래자랑으로 프로그램이라도 바꾼 모양이었다.
일요일 낮마다 울 엄마도 송해 할아버지가 사회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반드시 시청하는 분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 나오는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이 수십년째 장수하는 이유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TV에 얼굴 내보이는 게 신나고 좋을까. 내눈엔 망신살로밖에 안보이는 출연자들의 온갖 <쇼>와 <땡 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한민족이 원래 가무를 즐기기는 했다지만 혼자 끼리끼리 즐기는 거랑, 전국적으로 보여주며 즐기는 거랑은 다르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겐 괴로운 소음이어서 더운 여름밤에 불쾌지수와 짜증을 배가하는 장면에 불과했던 주민 노래자랑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걸 보면, 내 정서가 확실히 소수에 속하긴 하는 모양이다.
가끔 눈쌀 찌푸리면서도 일요일 낮엔 절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왕비마마에게, 그게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달리 볼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한민족이 예로부터 가무를 즐겨왔다고 세뇌된 학습효과이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못된 쾌감 또는 음치, 박치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노래자랑 프로그램 싫어하는 나는 뭐지? 노래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얼마든지 감사히 들어줄 수 있지만,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음치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귀따갑게 참아야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꼽아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분명히 가무를 즐기긴 하는데... 참..

어쨌거나 오늘 내가 점입가경이라고 느낀 건, 동산에 억지로 파이프를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폭포에다 이젠 알록달록 조명시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자라는 나무와 풀에게도, 오래도록 그 동산을 지키고 있던 바위에게도 나는 막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일단 훼손했다가 복원하고 인공적으로 마구 꾸며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웃기는 취향의 행정가들과 주민들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하고. 그나마도 밤엔 폭포 물줄기가 안보여 꺼져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밤에도 그 동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쉴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난 폭우때 떠내려가 박살났다는 황포돛배도 어느틈엔가 새로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세워놓았더라. 박살 난 걸 교훈삼아 다시는 안 가져다 놓기를 바랐던 내가 순진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제천의 모습이 꼴사나워 구시렁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야 뒷전에서만 혀를 찰 뿐,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분수에 폭포에 황포돛배에 볼거리 많아졌다고 좋아라하며 박수치는 사람들일 테니 아마도 얼마 지나면 또 이상한 인공 건조물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는 법이라 했으니, 꼴보기 싫으면 내가 이사를 가야겠지. 그래도 자전거 도로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점 하나는 좋은 동네인데... ㅠ.ㅠ
할 수 없다. 그전까지는 볼썽사나운 것들 앞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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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기

하나마나 푸념 2009. 7. 17. 01:38

일하기가 싫어서 조금 전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을 다룬 100분토론을 보다 짜증이 밀려와 TV를 껐다.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문가라는 양반들의 의견은 노상 상반되는지 원!
어쨌거나 나는 대운하 사업과 더불어 죽어가지도 않는 4대강을 굳이 살리겠다는 쓸데없는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특히 2, 3년 안에 그 엄청난 규모의 토목사업을 한꺼번에 벌여 끝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너무도 무섭다.

청계고가를 없애고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할 때 나는 크게 기뻐하며 결과물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한 여름 도심의 온도를 몇도나 낯출 수 있고 주변 부동산 값도 올라가며 시민들에겐 도심속 쉼터를 제공할 것이라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처음엔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보니, 말이 <복원>이지 청계천은 그냥 이름뿐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멘트로 물길을 싸바르고 한강물을 억지로 끌어다 놓은 뒤 그럴듯하게 물풀을 좀 심어놓고는 화려하게 조명시설만 갖춰놓은 <죽은> 공간이었다.
대통령 될 욕심에 당시 서울 시장 명바기가 임기내에 공사를 서둘러부친 결과 시멘트로 마구 싸바른 물길 곳곳은 이내 시퍼런 이끼로 뒤덮였고 역한 물비린내가 나서 나는 두번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시위 때문에 청계광장에 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하긴 청계광장도 내가 싫어하는 장소다. 순전히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돈만 처들여서 세워놓은 (어느 대기업에서 자금을 기부해 외국 조각가에게 사온 거라더라) 플라스틱 소라탑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한 구석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형물을 선택해서 세워놓았는지, 관련자들의 저질스러운 안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처음 청계천이 생겼을 때야 사람들이 죄다 구경 삼아 몰려들었고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섣불리 뛰어들어 놀기도 하더라마는, 장담컨대 그렇게 조악하게 급조해 놓은 청계천은 앞으로 끊임없는 청소비용과 복구비를 잡아먹는 예산 물귀신이 될 테고, 사람들한테도 점점 외면당할 게 뻔하다. 정말로 북한산 어느 물줄기부터 착실히 살려내려와 올챙이며 가재가 되돌아오도록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지 않는한 말이다.

청계천의 전례를 익히 보았던 터라 우리 동네 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약간의 설렘보다는 더럭 불길한 예감이 크게 들었다. 청계천처럼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대강 시멘트로 처발라놓고 예산만 낭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몇번이나 연임하고 있는 구청장은 한나라당 패거리가 아니던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날이 달라지는 홍제천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하수관을 따로 묻어도 이미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연결되기엔 유량이 턱없이 적어진 홍제천에 가압장을 설치해 한강물을 끌어오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자연미와 풍광이 아름답던 안산 주변엔 느닷없이 조악해 빠진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촌스러운 형광조명의 음악분수를 만들더니 급기야 그 예쁜 동산 꼭대기까지 파이프를 끌어올려 폭포를 설치한 것이다. 얼마 전엔 도저히 봐주기에 민망한 황포 돛배까지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띄워 놓았던데, 내눈엔 혐오스럽기만 한 그 시설들이 <무한도전>에까지 소개됐다는 걸 보면 참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산업 육성책에 발맞추어 홍제천의 자연하천 복원사업은 자전거도로 확충 사업과 연계된 듯했고, 역시나 <자연>하천 <복원>은 순전히 말 뿐 서대문구청에선 하는족족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행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화학성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샛노란 포장재가 깔린 개천 옆 자전거 도로 옆엔 대체 어디에서 파왔을지 궁금한 큼지막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벽처럼 쌓여갔고, 하천 양 옆으론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다는 이상한 자재를 쌓고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수생식물을 심었으며, 야심차게 조명과 무대처럼 화려한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안산 폭포와 분수 바로 옆엔 큼지막한 디지털 광고판까지 설치되었다. 연일 구내 소식과 정부시책을 광고하는 화면이 나오는.

물론 새로이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분수와 폭포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으니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패거리인 구청장 일당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내가 홍제천변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며 사진까지 올렸던 바로 그 안산 계곡을 지날 때마다 유달리 서늘하게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던 냉기와 바람은 요상한 복원사업 이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철철이 바꿔 피는 꽃과 나무들이 바위와 어우러졌던 동산을 흉측한 파이프가 휘감고 있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그 앞 음악분수는 또 어떻고! 나 역시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좋아하며, 하다못해 예술의 전당 앞 음악분수만 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음악분수라도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지 않은가! 번쩍이는 광고판 같은 대형 디지털 화면을 배경으로 한물 간 가요에 맞춰 개천 한가운데서 물을 뿜는 음악분수는 홍제천에서 황포돛배 다음 가는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홍제천에 산책을 나가 보면 터무니없이 바뀐 모습과 공원화 사업 때문에 집값 오르겠다며, 또는 그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올 곳이 생겨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예산을(사업비가 무려 200억이란다!) 처들여 <자연하천 복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과도하게 겉치장에만 힘쓰는 꼬락서니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여름 장마때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몇년 전엔 사람도 떠내려갔던 판국에 하천 양옆에 왜 굳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꽃은 심어놓았는지, 군데군데 왜 쓸데없이 나무나 벽돌로 바닥에 멋을 부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염려는 언제나 들어맞는 법. 요번 집중호우때 홍제천 산책로는 그간 엄청나게 쏟아부은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하천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거 뽑혀나가, 개천 중간 음악분수 시설에 죄다 걸려 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분수 주변엔 엄청난 토사가 밀려내려와 높은 언덕을 이루어놓았으며, 서대문의 새로운 명물이라던 황토돛배는 떠내려가다가 하천 기둥에 부딛혀 산산조각이 났단다. 한 마디로 쓸데없이 <돈지랄>을 해놓은 새로운 바닥들도 패이고 주저앉고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 놓은 다리 난간마저 중간이 뚝 잘려 나갔을 정도니 오죽하랴.
비가 많이 오면 한강 둔치도 물에 잠겨 한참을 청소하고 복구해야하는 형편이니 집중호우때나 장마때 홍제천 산책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정도를 설마 전문 사업자들이 예상 못했을 리는 없지 않나? +_+ 나처럼 비전문가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설마!
어쨌거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홍제천 산책로엔 오늘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난간이 떨어져 나간 다리 아래에선 동네 주민들이 노심초사 안부를 빌었던 오리 가족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자연 하천 복원은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서 가재를 잡고 놀았던 부암동 백사실처럼 작고 자연스럽고 고요한 하천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청와대 주변이어서 오래도록 통행을 금지했던 터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 계곡의 모습, 내가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백사실> 계곡이 화면에 비추던데, 한 십년쯤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정말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망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하천을 복원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닿으면 자연은 분명 망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겪고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까.
설령 정말로 온 나라의 강에 문제가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번에 한군데씩 여러모로 살피고 조사하고 재보면서 혹시라도 망쳐버렸을 때의 엄청난 결과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지 않고, 왜 한꺼번에 백여군데의 강줄기에 수십조나 되는 <빌린> 예산을 투자해 실제로 치수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를 걱정스러운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납득이 안된다.

청계천 정도의 무모한 삽질이라면 수십년 후에 누군가 환경지향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행정가가 나타나 되돌릴 수나 있겠지만,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놓고 물길을 망가뜨리면 백년이 지나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 자연에 필요한 건 억지로 갖다 붙인 <살리기>가 아니라 분명 <그냥 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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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

삶꾸러미 2008. 2. 27. 17:35
아주 가끔 신경줄이 너무 팽팽해지면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연일 불면에 시달린다.
머릿속이 멍해져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진전이 되질 않는 아침이면
그냥 스르르 누워 5분만에 잠들어야 정상인데
그렇게 누워 몇시간씩 끙끙대다 보면 그냥 오후가 되어 버리는 거다.
36시간도 내쳐 잘 수 있다고 장담하는 자타공인 잠순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원고 마감일도 연장 받았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잠과 식탐은 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불면 때문에 편두통이 생긴것도 모자라 식욕이 없다.
끼니 때를 지나 배가 고프면 화가 나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손이 벌벌 떨리는 증상을 갖고 있는 내가
식욕이 없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오늘 아직 한끼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안 고프다. 이건 더 이상하다. -_-;;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일은 우리집 목욕탕에서 '지렁이'가 발견된 것.
루인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어젯밤 기겁한 일이 떠올랐다. ^^
오래된 옛날 집에 살면 여름 한철 온갖 벌레들과 만나게 되긴 하지만
난데없이 겨울 목욕탕 바닥에 지렁이 출현이라니 어찌나 놀랐던지.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던데 느릿느릿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서 방황하는 지렁이를 보고는
처음엔 내 눈과 시력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기겁하며 비명을 지를 뻔했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다 열심히 물을 부어 다시 온 길로 돌려보냈다. -_-''

오래된 집이라도 다행히 바퀴벌레와 개미는 출몰하지 않는 반면
여름이면 노린재, 매미, 벌, 이름모를 풀벌레 따위가 날아드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을 종이 양탄자에 태워 다시 밖으로 살려보내곤 한다.
그런 기억 때문에 어젯밤엔 지렁이도 어떻게든 집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퍼뜩
들었는데 그랬다간 얼어죽고 말 것 같았다.

오래된 하수구엔 분명 깨진 틈이 있었을 것이고 그 틈으로 기어오른 것이 하필 우리집 목욕탕이란
얘긴데... 온갖 더러운 물과 비눗물이 내려가는 우리 집 하수구 밑에서 지렁이가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최근에 지렁이를 본 건 작년 여름 하남시에 있는 외삼촌 댁 텃밭에서 감자를 캘 때였는데!

그러고 보니 십수년 전엔 비가 온 뒤 집앞 언덕을 내려가는 일이 참 고역이었다.
여기저기 지렁이들이 길고 뻘건 몸을 뒤틀며 느릿느릿 지나가거나
자동차에 치여 처참한 시체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비가 온 뒤에도 지렁이를 본 적이 거의 없어 공해 때문에 우리 동네 지렁이들도 죄다
어디로 이사를 갔거나 몰살당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근처 땅속에 살아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상하기 보다는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목욕탕에 출현한 지렁이. 암튼 별 일 다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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