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 2

투덜일기 2009. 10. 11. 16:05

오래된 주택가의 오래된 집에 살다보면 난데없이 날아든 벌레와 조우하는 경우가 많다.
벌레 쪽에서 생각하면 참 재수없게 걸려든 셈인데, 분명 밖이 빤히 보여 탈출을 시도하려고 달려들면 보이지 않는 벽이 막아서니, 유리에 온몸을 던지듯 비행하다 내는 그들의 소리는 아무리 미약해도 처참하다.

며칠 전 저녁에 들려온 소리도 딱 그런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집안에 침입해 나갈 곳을 찾아 이리저리 벽과 문에 몸을 부딪쳐대는 노린재나 벌, 파리가 내는 소리...
뒷베란다로 통하는 쪽문 근처에서 나는 소리의 방향은 알겠는데 아무리 천장과 문 주변을 살펴도 문제의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날벌레가 유리창에 몸을 던지는 소리는 붕~ 하는 비행음과 함께 톡 소리가 나는데, 이번엔 좀 다른 소리였다. 톡..톡.. 마치 누군가 일부러 문을 살며시 두들기는 것처럼 연달아 나는 소리는 흠칫 놀란 내가 다가가면 사라졌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면 다시 들려왔다. 톡톡..

돌연 좀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자꾸만 뒷베란다로 이어지는 쪽문을 쳐다보다 드디어 내가 발견한 것은 유리문 아래쪽으로 어른어른 비치는 작은 연두색 형체. 연두색 생명체는 정말로 내게 문을 열어달라는 듯 팔을 들어 문을 두들겼다. 톡톡. 그러고는 숨바꼭질을 하듯 몸을 숨기더니 한참 뒤에 다시 유리문에 매달려 팔을 들었다. 톡톡.

1초쯤 되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가능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SF 영화에서 본 연두색 소형 우주인? 설마... 그럼 개구리? 집근처엔 개울도 없는데? 아직 동면 들어갈 때 안 됐나? 쥐가 연두색일 리는 없고? 혹시 돌연변이?
자꾸 톡톡 유리문을 두들겨 대는 건 신경에 거슬렸지만, 두려운 마음과 호기심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가장 두려운 가능성, <돌연변이 생쥐>는 아닐 것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결국 문을 열어보았다. 문 열어달라고 청하듯 톡톡 문을 두들겨대던 괴생물은 내가 문을 확 열자 후다닥 문설주 쪽으로 달아났는데...
격자무늬가 들어간 반투명 유리문 때문에 확대효과가 생겼던지(아니면 놀란 내 머리가 순간적으로 시각영상을 왜곡시켰거나)  실물은 유리문 안쪽에서 보던 것보다 작았고, 기다란 팔을 들어 유리문을 두들겼던 녀석의 정체는 바로 <사마귀>였다. 연두색으로 보였던 건 녀석의 배부분이 방안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사람처럼 곧추 서서 팔을 들고 문을 두들겼다고 생각했던 사마귀의 앞다리는 생각보다 그렇게 굵지도 않았다. 물론 일반 사마귀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녀석이긴 했다. 길이가 10센티미터도 넘고 몸통도 굵어 도대체 어떻게 뒷베란다로 들어왔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보일러 배기통 주변에 유리가 벌어져 있긴 하지만 그 사이로 기어들어오긴 힘들었을 것도 같은데...

사마귀가 익충인지 해충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나는 가지치기 때 사두었던 손바닥에 빨간 고무를 입힌 목장갑을 얼른 꺼내왔다. 맨손으론 못잡을 테니 두툼한 장갑을 끼고서라도 얼른 붙잡아 밖으로 내보낼 계획이었다. 메뚜기처럼 펄쩍 튀어 달아나면 어쩌나 염려했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어딘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인지 원래 사마귀의 동작이 그렇게 굼뜬 것인지 녀석은 별 요동없이 얌전하게 내 손에 잡혀들었고, 나는 얼른 방충문을 열고 들꽃이 잔뜩 피어 있는 집 뒤쪽으로 녀석을 던져버렸다. 

이상한 일이라고 포스팅한 기억도 있는 지렁이가 며칠 전에도 또 다시 목욕탕 바닥에 출현하더니만 이번엔 사마귀가 유리문을 다 두들기고 나 원 참... 별일이 다 있다. 가을에 접어들어 먹을 게 부족했거나 혹시 죽을 자리를 찾으려던 사마귀였던 건 아닌가 검색을 해보니, 크기로 보아 그냥 사마귀가 아니라 왕사마귀란다. 보통 사마귀는 싸움꾼 같은 생김새 답게 11월까지도 생존한다는데, 덩치 큰 왕사마귀는 10월까지만 산다고.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그 녀석은 대체 어쩌다가 남의 집에 들어와 감히 인간에게 문을 열라고 두들겨댔는지. 
문득 어린 시절 메뚜기를 잡아다가 애완용으로 길러보겠다며 네모난 각휴지 통이나 박카스 상자에 풀과 함께 넣어 두었던 기억이 났다.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 메뚜기가 죽어버리는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풀을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주고 숨구멍도 더 많이 뚫어주고 먹을 물까지 넣어주어도 메뚜기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늘 죽어버렸고, 그 뒤로는 메뚜기를 잡았다가도 조금 데리고 놀다 그냥 놓아주었던 것 같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손을 타 어딘가 부상을 입었을 메뚜기가 무사히 한철을 살아냈을지는 알 수 없다. 장갑 낀 손으로 한껏 힘을 빼고 잡긴 했지만, 며칠 전 내가 잡았던 사마귀도 어딘가 속으로 병이 들어 자유를 찾자마자 비실비실 죽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부디 그러진 않았기를... 
어디나 걸핏하면 무너뜨리고 새로 짓고 파헤치는 세상이다 보니 나에겐 사마귀 한마리, 지렁이 한마리도 귀하게 느껴진다. 메뚜기와 사마귀, 호랑나비는 그 옛날 우리집 마당에서 수시로 보던 곤충인데 요즘 아이들은 과학 체험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으니 원... 세상 자체가 이상해진 건 틀림 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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