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에 해당되는 글 233건

  1. 2018.07.24 잉여력 폭발 시기의 흔적 5
  2. 2018.07.19 근황 3
  3. 2018.05.29 기억력 4
  4. 2018.04.24 손목 부실 8
  5. 2018.02.21 꽃 아니고 나무 2
  6. 2018.01.30 취미 자수 시작 5
  7. 2018.01.23 새해에는... 4
  8. 2018.01.14 건초염 4
  9. 2017.10.26 미필적 고의 10
  10. 2017.10.24 등갈비 김치찜 4

거의 성사될 것 같았던, 오래된 동네 낡은 집들의 공동 재건축이 완전히 무산되고.... 게다가 토지 구획 문제로 소송을 한차례 겪으며 앞마당 일부를 요상한 모양으로 떼어주고 그쪽에 토지 단독 소유권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은 터라 집을 매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사하며 짐도 확 줄이고, 새집에서도 좀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은 좀처럼 실현되지 못할.. 그저 꿈이 되고 마는 것인지. 어휴. 한숨. 암튼... 그래도 뭔가 일을 겪을 때마다 (지인들의 부모님 말고 후배나 친구 본인의 뜬금없는 부음을 들을 때라든지) 단촐하게 살아야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지 충동이 일면서 가끔 짐을 정리한다. 물론 그래도 수십년 넘게 눌러앉아 사는 집의 살림살이란 손도 대지 못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인으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오래된 물건을 끔찍이 여기는 게 당연한 심리라는 왕비마마 덕분에, 뭘 버리기도 쉽지가 않은데 그래도 요번엔 꽤 많은 물건을 처분했다. (되다말다 했던 고물 진공청소기, 빨래걸이로 전락한 헬스 바이크,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 오래된 나무 밥상, 빈 도기 화분들... 그리고 수많은 가방과 옷가지들! - 옷과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고 나머지는 대형폐기물 신고했다.)

그러고도 좁은 집이 답답하게 여겨져 책장 배치를 좀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여지껏 끼고 있던 원서 전공책들을 죄다 노끈으로 묶어 내다놓았고, 중고책으로 팔만한 책들을 수십여권 골라내 몇 차례에 걸쳐 알라딘에 들고가 예치금을 두둑히 마련했다. ㅎㅎㅎ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또 충동적으로 작업실 방에서 뒷베란다로 통하는 철문과 창틀에 페인트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좀 하다가 배송되는 시간도 기다리기가 싫어져서 후다닥 동네 페인트 가게로 달려나갔더니 하필 일요일. 두군데 다 문을 닫았더라. 그렇다면 방법은 다이소뿐. +_+

다이소에서 파는 한통에 2천원짜리 초소형(혹시 착각했나 찾아보니100ml짜리도 아니고 60ml였다 ㅠ.ㅠ) 젯소와 페인트를 두개씩 집어왔었는데, 이것은 곧 미친짓으로 판명된다. 생각보다 얼마나 페인트가 많이 필요하던지! 똑같은 걸 몇번이나 더 사다 날랐는지 원... 페인트가 살짝 연두빛이 도는 반광 '미색'이었는데 창틀과 나무색깔 창문 4개에 모두 2번씩 칠하려니 ㅠ.ㅠ 어휴... 사실 그렇게 두번씩 열심히 두껍게 칠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그 앞에 책장을 옮겨다 놓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싸구려 책장 2개와 오래된 장식장을 싹 다 버리고 5단 책장 넓은 걸 2-3개 사들여 작업실을 다시 꾸미리라 마음 먹었으나... 나 혼자선 큼지막한 장식장을 내다버릴 방법이 없었다. +_+ 나사를 죄다 풀고 문짝을 다 떼어 부셔버릴까, 동생들 찬스를 써볼까 여러가지 고민을 했으나... 결정적으로 비전문가 동생 둘이 무거운 장식장을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누굴 잡을라고...

누렇게 변색된 벽지 어쩔;;

해서 책장 사는 것도 일단 임시 보류. 책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일단 버릴 책과 팔 책을 솎아낸 뒤, 마루와 방에 따로 놓았던 '체리목' 3단 책꽂이를 세로로 나란히 붙여놓았다. 겨울에 찬바람도 막아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옛날 집이라 케이블 TV나 인터넷 전용선 따위가 모두 베란다문과 창문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어마어마하다. 문풍지로 최대한 막아도 한계가 있음. 

하여간... 마스킹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종이 벽지에 붙인 부분은 나중에 뗐더니 죄다 들고 일어나 허옇게 됨 ㅠ.ㅠ )이틀에 걸쳐 낑낑대고 칠한 창문과 문쪽 증거샷이다. ㅎㅎ 책장 놓기 전에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방금 찍음 ^^; 여긴 주로 내가 번역한 책 증정본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클릭해도 사진 안 커집니당~)

하여간... 셀프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알량하게 창문 4개 페인트 칠하면서 흘린 땀이 얼마며, 버린 옷이 몇벌인지! ㅋ

그런데 페인트칠을 하면 할수록 단순한 작업에 재미가 붙어, 이젠 방문짝과 벽도 페인트를 칠하면 어떨까 마음이 자꾸만 들먹들먹했다. 거의 20년쯤 전에 '연분홍색'으로 칠해놓은 방문과 욕실문이 너무도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욕실 문엔 이미 아이보리색 무늬목 시트지를 사다 붙여놓은지 몇달 되었었다. 

그렇다면 이젠 방문 차례! ㅎㅎㅎ그런데 도배한 지도 워낙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벽지가 너무 도드라져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험적으로 한쪽 벽면에만이라도 페인트를 칠해보리라는 밑그림이 나왔다. 

해서 완성된 것이 아래 사진 모습이다. ^^; 최대한 누런 벽지를 안보이게 사진에 담으려니 참으로 알량하군..​

양쪽 문 사이의 좁은 벽엔 원래 키재기용 스티커가 붙어있고 조카들 넷이 폭풍성장하며 달라진 키높이와 날짜가 온갖 색깔의 필기도구로 촘촘히, 매우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나름 소중한 그 역사를 지우는 게 찜찜했지만 ㅠㅠ 고모도 이제 헌집일망정 깨끗이 좀 살고 싶단다. 대신 녀석들의 사포 모빌 작품을 옮겨 달았으니 용서해주길...

문짝에 칠한 페인트 역시 너무 얕잡아보고선 다이소 무광 페인트 500ml짜리를 선택했다가 몇번이나 더 사러 나가야했다. ㅠ.ㅠ 2-3리터짜리 친환경페인트 한방에 주문했으면 되었을 것을... 으휴.. 암튼 이쪽 벽면을 다 하얗게 칠해 나머지 벽들이 더욱 누렇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 거울까지 온통 아이보리색으로 칠한 한쪽 벽면의 변신을 보며 다음번엔 방에 셀프 도배를 해볼까, 또 페인트칠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다행히 7월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바쁜 일(진짜 일 말고 그냥 잡다한 신경쓸 일)이 생겨 더는 셀프인테리어에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슬며시 기쁘기도 하다. 머리 쓰는 일 말고 이제 남은 평생은 단순하고 몸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선망을 잠시 품었지만, 나처럼 부실한 몸으론 그것도 불가능할 거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만큼 단순 페인트칠마저도 어찌나 고된지 폭풍 붓질을 하고나선 삭신이 다 쑤셔서 팔목과 어깨에 며칠 파스를 붙여야했다. 

혼자선 꽤나 뿌듯했는데, 집에 다니러 온 올케들에게 문칠을 자랑했더니만 손잡이 안 빼고 그냥 칠했다고 핀잔을 들었다. 아 그건 옛날에도 원래 그냥 안빼고 칠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욕실 문은 손잡이도 새로 사다 교체했는데 방문도 사실 손목 아파서 못 돌리는 경우도 있는 둥근 손잡이 말고 일자형 손잡이로 바꿀까 하는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멀고 먼 셀프 인테리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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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투덜일기 2018. 7. 19. 18:33

최근 3-4개월간 정말로 일이 '하나도' 없어 팽팽 놀았다. 이른바 '입질'이라고 하는 번역 스케줄 문의조차 없는 걸 보며 번역가로서의 내 경력은 이제 휴지 조각이 되려나보다 비감에 젖었다. 그뿐인가. 최근 출간된 책엔 이런저런 사연으로 '옮긴이의 말'을 빼고 책이 나왔다. 표지 디자인과 제목 가지고 해외 저작권사에서 트집을 잡다가 결국엔 뭐라도 꼬투리를 빌미로 '양보와 협상'을 하는 의미에서 내 역자후기가 희생을 당한 거다. 와... 진짜... ㅠ.ㅠ

출간일정 빠듯하고 바쁘대서 날개에 인용된 일부 역자후기 영역도 내가 해줬었는데, 그걸 문제 삼아 책 내용과 분위기가 맞는지 봐야겠으니 역자후기 전체 원고를 번역해보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들었을 때 느낀 '빡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갑질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건가 싶고... 번역가 나부랭이는 갑도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 그 이하의 존재였던 거지. 속상한 건 결국 '옮긴이의 말에서 인용'이라는 글귀만 뺐을 뿐, 어차피 날개에도 언론 홍보자료에도 역자후기 내용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역시나 빠듯한 인쇄 일정을 감안하여 내가 '허락'한 결과다. 표지 디자인 다시 잡을 시간 없다는데 그럼 안된다고 하나!? 젠장..

일감이 끊긴 건 어차피 결국 다 자업자득일 거다. 내가 신용을 잃었든, 내게 주는 번역료가 부담이 되었든, 원고가 마음에 안들었든...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도 20년 넘게 불안감 속에서도 막연한 희망으로 어찌어찌 나름 '잘' 꾸려온 인생에 비해 최근 3년은 정말 참담했다고밖엔 할 말이 없다. 개인적인(가족의 무게 탓이다) 삶의 스트레스에 더하여 그 일 때문에도 며칠 내리 극한 짜증 상황에 몰리고 보니 혈압이 널을 뛰었는지 이명과 함께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에 이르렀다. 

진화를 거듭해온 인류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DNA에 새겨진 인체와 모든 장기의 수명은 50살이 한계점이라는 내용을 어느 과학 책에서 보았다. 그 이후로도 무려 50년을 더 산다고 하는 '100세시대'는 그러니까, 타고난 인체의 수명 때문이 아니고 원시시대 인류보다 너무도 월등해진 영양과 의술의 발달 덕분이란다. 작년 올해 들어 나도 여기저기 아프고 병원 찾을 일도 많아진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뜬금없이 젊은 후배나 친구들의 중병 소식이나 부음을 들으며 이젠 정말 자다가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돌입했구나 싶다.

째뜬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해두고... 여차저차해서 영화 자막 번역 일이 하나 들어왔다. 그간 계속 열받게 재방송만 내보내더니만! 올들어 통 일도 안하는데 자막에서 이름 발견했다고 종종 인사 받는거 그간 진짜 민망했다. ㅠ.ㅠ 단기간 백수 모면했구나 기뻐하며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ㅎㅎㅎ 컴퓨터 켜지도 않고 지낸 몇달간은 핸드폰으로 sns만 들여다본 듯. 막상 컴퓨터를 켜니 일은 뒷전이고 블로그 구경다니고 있네그려. 

그 또한 민망하지만 '주옥같은' 자막을 만들기 위해서 뭔가 좀 더 긴 호흡의 글은 끼적이는 연습이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핑계를 대야겠다. 8월부턴 또 백수신세지만 일이 있는 짧은 기간 행복하게 신나게 일해야지... 라고 결심하면 뭘하나. 시험공부 앞두고 책상 정리하던 버릇 못 버리고 포스팅감이나 또 없나 찾고 있다. ㅎㅎ그러니 어쩌면 7월 내내 포스팅이 잦아질 확률이 높다는 근황 보고가 오늘의 포스팅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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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아픈 손가락 2018. 5. 29. 16:44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이젠 그런 말을 하기 민망하다. 책이나 영화 제목, 배우 이름, 여행갔던 장소... 머리속에 이미지로는 맴도는데 콕 찝어서 원하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놓기 힘든 순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걸핏하면 그거 뭐지...라며 말 꺼내는 친구들 놀리던 게 불과 1, 2년 전이었건만... 그 영화 뭐지? 로드무비, 여자 친구 둘이 마지막에 벼랑으로 차 몰고 떨어지는 거... 아, 그거.. 그게 뭐더라. 키 큰 여자 둘이... <델마와 루이스>? 맞다! 근데 그 배우 이름이 뭐였지? 수잔 서랜든이랑.... ㅠ.ㅠ... 

결국 이날 친구들과 나는 포털사이트 검색 찬스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 데이비스가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 거라! 에효...  

오십대 초반인 내가 이럴진대 칠십대 후반인 왕비마마의 기억력이야 점점 나빠지는 게 당연하다. 뭐든 깜빡깜빡 하는 건 중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려니 해야할 것 같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엄마도 나도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와 하루 일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암튼... 기억력이 부쩍 떨어진 건 그러려니 하겠으나, 원래도 조울증 환자라 늘 조마조마한 울 엄마의 경우 지난 봄 환절기를 지나며 퍽 염려스러운 상황이 많았다. LA 친구가 우리집에서 한달 기거하며 무수리 딸이 노상 밖으로 놀러다니느라 약간의 방치를 했던 상황이 노친네에게 녹록치 않아 스트레스가 많겠거니, 나름 감안하더라도 일단 화가 너무 많아지셨다. 

친구와 나는 그래도 나름 하루 건너 한번씩은 종일 집에서 뒹굴며 보필한다고 했는데, 딸 친구가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순간이 많았다. 워낙 남의 시선과 이목을 신경쓰는 타인지향적 태도를 일관해오신 분으로선 의아할 정도였다. 모녀간에 서로 혹독한 언사를 던지는 건 일상 다반사지만 ㅠ.ㅠ 아무리 한달째 기거하는 동거인이라고 해도 딸 친구에게 막 대하실 분은 아닌데... 

본인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다는데 동의했고, 결국 인지능력검사를 의뢰했다. 울 엄마를 포함한 모든 노인들의 제1공포가 치매에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나도 모르게 잃어가다 결국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질병이 다 있다니, 어휴 참 끔찍한 일이다. 원래도 엄마는 6개월에 한번씩 보건소 부설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검사를 스스로 해보시는 분이다. 그래서 100에서 7을 연속으로 빼는 연산이라든지, 오각형 두개를 겹쳐놓은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테스트 같은 건 아예 암기할 정도다. 아마 나 보다 더 빨리 대답하고 그릴 걸!

친구의 말로는 정밀 인지능력검사는 본인과 보호자 둘 다 문진을 한다고 해서 (그날 먹은 아침 메뉴라던지, 인척들 가족관계, 인생의 큰 사건 같은 게 정말로 맞는지 따로 물어 서로 대조해본다고 한다) 나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뭔가 단계가 다른 테스트였던 듯 세브란스 병원에선 환자만 1대1로 상담을 했다. 울 엄마의 말로는 보건소에서 하는 무료 인지능력검사와 크게 차이도 없었다는 것 같다. 괜히 비싼 검사비만 버렸다고 하심. 진짜 그런지는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설문이 설마... +_+ 솔직히 나는 뇌사진도 찍어보자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문진으로 끝나는 게 좀 의아했다. 물론 울 엄마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으시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암튼 일주일간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치의 상담을 기다렸다. 검사 당일 불안초조해서 그런지 워낙 잠을 설치고 가셨기 때문에, 결과가 좀 나쁘더라도 그러려니 하시라고 컨디션에 따라서 기억력은 크게 좌우된다고 엄마에게 미리 당부한건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드디어 정기검진 날, 검사 결과가 어떻느냐는 우리 질문에 의사는 '좀 애매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보통 동년배 평균 기억력보다 30% 이상 떨어지면 초기 치매 판정을 하는데, 울 엄만 15% 쯤 떨어지셨단다. 100명 중에 50등 하면 되는 건데;; 끝에서 20등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는 설명. ^^; 그래도 기억력이 떨어진 건 맞으니 너무 충격은 받지 말고 '뇌 영양제'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어보라고 했다. 치료도 가능하고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니 염려 마시라고. 학창시절에도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던 덕분인지, 엄마도 쿨하게 꼴지 아니면 됐지 뭐, 그나마 다행이네, 하는 반응이었다. 

처방 받은 '뇌 영양제'를 일주일간 먹어본 엄마는 확실히 기억력이 나아진 것 같다고 평했다. 흐린 날이면 아침인지 오후인지 분간도 잘 못하고, 너 어디 나간다고 했지? 똑같은 질문을 5분 안에 3번씩 하던 증세도 없어진 것 같았다. 환절기를 벗어나면서 전반적인 심신의 컨디션도 좋아졌으니 약의 도움만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불면에 시달리고 나면 시력이 떨어져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가 멍해져 귀도 잘 안들린다. 평소에도 안경을 빼고 있을 땐 전화 통화할 때 상대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 걸 뭐. ㅠ.ㅠ 

문제는 그 '뇌영양제'만 먹으면 엄마가 악몽을 꾼다는 것이었다. 아침 식후와 자기전에 한 알씩 드시는데; 그 약을 먹고 나선 눈만 감으면 무서운 것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심지어 하루는 꿈속에서 괴물(=이불)과 싸우다 침대에서 떨어지셨다. 젠장!

그간 엄마도 나도 바닥애호가라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침대에 누우면 허공에 붕 뜬 느낌? 호텔처럼 집보다 천장이 높은 곳이라면 몰라도.. 특히 한여름엔 서늘한 바닥에 보송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데! 암튼 그러나 엄마는 팔다리 근력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자다말고 선잠이 깬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젊은 사람들도 휘청거리기 일쑤인데;; 노년의 엄마야 오죽하랴. 컨디션 안 좋을 때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다 몇번 바닥에 나동그라져 멀리서 내 이름을 외쳐 불렀다는데, 밤샘 작업 중이라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가겠지만 나도 쿨쿨 자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해서 결국 엄마 방에 침대를 놓아드리고는 혹시나 떨어질까, 평소 쓰시던 라텍스 매트리스를 옆에 깔아놓았었다. 노인일수록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리만 내려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쉬운 침대 생활이 필수라지만... 노인의 낙상 문제는 어휴.. 정말 흔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1달간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지켜본 결과... 엄마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워낙에도 잠버릇이 험하고 몸부림을 치며 돌아다니고 주무시는 편인데 침대에서 자면 구석본능이 생겨나 벽에 기대 잔다던데 정말인가? 신기해하며 드디어 두툼한 매트리스를 내방으로 치웠다. 

그러나... ㅠ.ㅠ 매트리스를 치운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엄마는 아침 나절에 침대에서 TV를 보며 노닥거리다 깜박 잠이 들어 결국 낙상을 하셨고 (내가 그렇게 누워서 TV보지 말라고 일렀거늘!!! 으으으) 2번 갈비뼈가 골절됐다. 갈비뼈는 부러져도 깁스를 하지 않는다. 그냥 생활을 조심하며 뼈가 붙기를 2달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침대 낙상사고가 4월 말의 일이었는데... 가뜩이나 충격을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그놈의 '뇌 영양제' 후유증(아마도)으로 꿈결에 괴물과 싸우느라 엄마가 보름 만에 침대에서 또 떨어진 거다! 어휴....

당연히 내 임의로 뇌 영양제는 그만 드시라고 했다. 대신에 온종일 누워 있지 마시고 제발 운동 좀 하시라고! 노인들은 근육에 힘이 워낙 금방 빠져서, 며칠만 누워 있어도 다리가 홀쭉해진다. 그러니 걷는 게 더 힘들어질밖에... 그래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하는 집에서 밖으로 나서는 걸 엄마가 더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서 재건축을 하든 이사를 가든 엄마가 더 연로해지기 전에 환경을 바꾸고 싶은 마음인데, 현실이 안 따라주니 괴로울 따름이다. 

우습게도 (웃픈건가?)... 동전의 양면처럼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매일매일 보는 일일 드라마를 비롯해 몇몇 예능 프로그램도 처음 보듯 새로워 재미가 있으시단다. 분명 어제, 혹은 며칠 전에 본 드라마/예능프로그램인데 오늘 또 재방송을 보고 계신 게 답답해서 (물론 나도 단지 재미가 있단 이유로, 놓친 장면 보려고 재시청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물어보면, 아냐, 이건 안 본 거야, 그러신다. 하긴 드라마를 보면서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나한테 이것저것 참견도 하고 딴 생각도 하노라면 당연히 놓친 장면이 많겠지. ㅠ.ㅠ

해서 벌써 한달이 지나 드디어 내일 다시 정신의학과 정기검진일이다. 뇌 영양제를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하면 되려나? 그건 또 다시 후유증이 없을까, 아무래도 뇌 호르몬에 관여하는 약물일테니 조심스럽고 걱정이 많다. 평소 드시던 약끼리도 돌연 충돌을 일으켜 이상 증세를 경험한 적도 있는 분이라 더더욱.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그냥 서서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노화는 질병이고 장애 같다. 나부터도 기억력이 무너진 건 물론이고 아침마다 일어나면 손마디가 뻣뻣한 걸 어쩌라고. ㅠ.ㅠ 벌써 이런데 무려 100세시대라고? 그건 너무도 무시무시한 저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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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부실

투덜일기 2018. 4. 24. 00:00

어렸을 때부터 평생 한번도 키큰 축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땐 아마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것도 같다. 암튼 체구는 늘 작아도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고 체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겠지만, 덩치 큰 남자애들이 괜히 힘으로 괴롭히려 들면 울먹거리면서도 입싸움으로 맞서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남동생들만 둘 있어도 꽤 오래도록 내가 녀석들을 보호(?)하거나 챙겨주는 입장이었지, 내가 보살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집에 바퀴벌레나 돈벌레가 나타나도 두놈은 서로 니가 잡으라고 떠밀기만 할 뿐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꽥~ 비명을 지르며 내가 살생에 나서는 식이었다. 또 벌레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고는 마음을 놓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니 어쩌겠나. 

힘이 없어 보여서, 혹은 내가 여자라서 '열외'되는 특권도 때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려해주는 척 하고는 뭔가 다른 걸 요구하기 십상이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 커피 심부름을 하느니 나는 차라리 생수통을 낑낑대며 들어 꽂는다든지, 복사용지 박스 옮기는 쪽을 택했다. 힘 쓰는 일은 우리가 하잖아, 그러니깐 커피 정도는 타줄 수 있지 않겠냐, 책상에 걸레질 좀 죄다 해줘라는 놈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사전에 '연약한 척'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음료수병이나 캔을 못 따서 남자들에게 내밀며 "오빠, 이것 좀 따주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여자들까지 은근히 째려보며 싫어했다. 우웩, 웬 내숭이냐! 쌀자루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생겨가지고...


그런데 이제야 드디어 편협했던 나의 태도와 편견을 반성하고 있다. 음료수 병, 커피캔, 맥주캔을 힘 없어서 못 따겠다며 남자들 힘을 빌리던 여자들 중엔 정말로 손가락이나 손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그 비율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자긴 손톱이 잘 부러진다면서 커피 캔 따는 걸 꼭 날 시키던 친구도 사실 있었다. 하기야 약한 척 내숭이 아니라, 힘자랑을 칭찬 받고 싶어 안달하는 단순한 남자들에게 옛다 일감을 안겨주는 현명한 처사였을 수도 있겠다. 힘에 부쳐도 난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끙끙 얼굴 시뻘게져가며 병뚜껑 돌려따는 내가 어쩌면 더 편협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에 요즘 나는 병뚜껑 열기 분야에서 자신감과 독립심이 아주 바닥이다. 의사의 권고대로 요샌 한달 넘게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이런저런 호르몬과 염증수치가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영 효과가 더딘 모양이다. 걸핏하면 손목과 팔이 아파서 ㅠ.ㅠ 무거운 걸 들기도, 양념병을 열기도 힘에 부친다. 바삐 끼니 준비할 때, 무겁고 뜨거운 큰 냄비도 막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던 순간의 괴력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에효.

가장 난적은 쨈병과 각종 소스 병이다. 진공상태가 되었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다가 나온 놈들은 특히 더! 다리 사이에 병을 끼우고 온 힘을 다해 낑낑대다가 결국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야 병이 열린다. 후다닥후다닥 바쁘게 요리하다 말고 양손에 고무장갑 끼려면... 아오 짜증나.

나름 꽃무늬;;라고 오려보았다 ㅋ


마침 고무장갑 한쪽이 구멍났길래 묘안이다 싶어 손목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두었다. 작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였나, 기념품숍에서 병뚜껑 열기 전용 실리콘 덮개를 본 적이 있었다. 꽃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녀석이었는데 가격보다는 너무 두꺼워서 사오지 않았다. 쨈병, 소스병 여는데는 쓸모가 있지만 작은 주스병, 소주병 뚜껑을 덮어 열기엔 너무 두툼했기 때문이다. 근데 주방용 고무장갑 두께면 완전 딱이지 않겠나. 요리하다 말고 귀찮게 손 닦고 말려 고무장갑 낄 필요도 없고. ㅎㅎ

이렇게 손바닥만하게 나름 꽃모양으로 오린 고무장갑 조각을 싱크대 걸이 한 구석에 걸쳐놓고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 우리집에서 한달 지내다 간 (주로 설거지를 담당한) 친구에게 자랑도 했다. "내 아이디어 죽이지 않냐? 미국이랑 캐나다에선 얼핏 여러 가게에서 본 거 같은데, 한국에선 이런 거 안파나봐. 본 적 없어.." 라고.  

재수없게도 엄청 알뜰하고 지혜로운 주부인 척 했던 거다. 헌데 출국 전 다이소에서 온갖 편리한 살림도구를 장만해가겠다고 나선 친구가 주방도구 코너에서 예리한 눈썰미로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병뚜껑 따개 도우미였던가... ㅋㅋㅋ 당연히 마데인차이나인 이 물건은 단돈 1000원에 이런 게 3장이나 들어있었다.

친구가 고무장갑 오린 거 얼른 버리고 이거 사쓰라며 쇼핑 카트에 넣어주었는데;;; 물론 나는 저 고무장갑 오린 것도 못 버리고 병뚜껑 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개를 비교해가며 사용한다. ^___^

하긴 뭐 구멍뚤린 고무장갑 손목부분 얅게 잘라서 고무밴드 대신 사용하라는 살림 꿀팁도 본 적 있다. 노란 고무줄보다 튼튼해서 훨씬 요긴하다면서. 

다이소표 병뚜껑 도우미 3장과 저 분홍 고무장갑 조각을 함께 쓰면 앞으로 10년은 쓰지 않을까 싶은데;; 웬 궁색을 떠나 싶어 확 버릴까 하다가도 왠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두고 있다. 뭐든 잘 못 버리는 나의 지병 탓도 있겠고.

아무려나 병뚜껑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아메바스럽게 부실한 손목 상태를 까먹고 일단 무심히 힘을 써보고는 아야! 윽! 통증에 놀란 다음에야 비로소 이 고마운 고무재질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떻게 손이 아프단 걸 매번 까먹을 수가 있는지 원. ㅠ.ㅠ 아마도 나 말고 집안에 힘쓸 사람이 더 있다면 나도 당연히 얼른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예전에 냉장고에 넣어둔 장아찌나 피클 병을 열 때..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온힘을 다 주어도 잘 안 열려 끙끙대고 있거나, 도움을 청하면 아버지가 다가와 이그... 진작에 아빠를 시키지 그랬니. 하셨더랬다. 당신도 손이 작은 편이라 단숨에는 해결 못하고 힘깨나 쓰신 후에 병이 열리면, 별 것 아닌 일에도 퍽 으쓱으쓱 아버지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게 웃겨서 나도 일부러 거들었었다. 어이구, 울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몰라... 

집안에 큰 힘 써줄 남자가 없어도, 손목이 부질해져서 소주병 돌려따는 것도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지경이 되었어도 물론 모녀는 잘 살고 있다. 어떻게든 상황이 닥치면 다 살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에는 팔꿈치까지 저릿저릿해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마우스를 클릭해대는 것도 아예 힘겨운 날이 있다. 으음 그럼 손목받침대랑... 뭔가 또 다른 해결 방법이 있겠지? ㅠ.ㅠ

몸도 총체적으로 부실한데;; 밥벌이를 하지 않고도 남은 일생을 편히 사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벼락을 맞는 것 = 복권 당첨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얼마 전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본 복권 5장은 천원짜리 1장 빼고 모두 꽝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또 사볼까 하는 마음이 팔랑팔랑 자꾸 드는 건 변덕스런 봄날씨 탓일까. 에잇, 이래저래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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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니고 나무

투덜일기 2018. 2. 21. 22:11


"저는 꽃 아니고 나무거든요!" 그 옛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쌈닭모드로 돌변해 내가 종종 외쳐대던 말이다.

첫 직장이었던 미국 회사에서 인종차별에 열받아 이직한 한국 회사는 당시 중소기업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이었는지 여직원들에게만 임직원 취향에 맞는 투피스 유니폼을 입혀놓고서(여직원회에서 고른 서너벌의 후보작을 실제로 여직원들이 입고 패션쇼 하듯이 임원실을 돌며 최종 낙점을 받았다. 와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라는 전제 아래 온갖 허드렛일과 잡무를 시키며 꽃처럼, 아니 하녀처럼 묵묵히 지들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92년 즈음의 일이다. 

난감했다. 미국회사에선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고, 지점장도 커피는 제손으로 타 먹었는데 맙소사. 똥밟았나.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뿐인가, 부서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기생집에 가서 애첩 끼고 앉듯이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주로 부서장들 옆에 사이사이 끼워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했다. 술 약한 여직원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놓고선 다음 날 킬킬대며 그들의 실수를 농담 삼아 씹어댔다. 

그 옛날엔 회식 때도 2차로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 가는 걸 당연시했고, 여직원들은 부르스를 추자는 놈팽이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으면 억지로 끌려나가 '안겨야'했다. 참 폭력적인 조직 문화와 성희롱, 성추행이 '친선도모'라는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회사일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회식 자리 불편함까지... 총체적인 불만에 휩싸인 나는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가끔 막 들이받았다. 술 핑계로 니들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디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그러면서 야, 김대리! 이부장! 너 진짜 재수없거든! 여직원들 술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여! 나도 욕할 줄 알아, 씨*! 뭐 이런 식이었다. 쌈닭 레벨 최고치에 달했던 당시 '왕언니'로서, 손버릇 나쁘기로 유명한 놈에게는 한두번 경고하다가 얼굴에 술을 뿌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몇번 그렇게 의도적인 진상을 부리자, 일단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나름 꽤 중요한 해외 업무를 홀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회사 25년 역사상 '유일한 경력직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을 먹으며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라, 부당한 처사라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종종 대들면서 두렵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짤라보시지. 누가 손해인가. 어린 여직원들을 당연히 수족처럼 부리던 놈들에게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칫덩어리였고, 눈엣가시였으나 막상 내가 세게 나가면 비겁한 놈들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여직원은 사무실을 장식하는 꽃도 아니고, 당신들의 하녀는 더더욱 아니라고! 니들 여동생이나 와이프나 애인이 회사 출근해서 이런 대접 받으면 좋겠냐! 

각종 기계 매뉴얼과 계약서, 합작투자계획서 따위를 번역하는 것이 토나오게 싫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관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건 결국 보수적인 조직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속 왕언니로 여직원 대표로 목청 높여 싸워대는 것도 너무나 피곤했다. 내가 꽃 아니고 나무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사이, 그래도 자기는 '꽃'이 좋다며 바쁜 업무보다 화장에 더 공을 들이는 어린 여직원들도 있었다. 자긴 사내 연애 성공해서 결혼하는 게 목표라면서. 7년만에 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표를 냈고, 진짜로 재미난 번역을 해보겠다고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만심은 그러나 금방 꺾였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몇몇 출판사에선 내게 습작이 더 필요하다고 권했다. ㅎㅎ 암튼 6개월쯤 뒤 드디어 첫 책의 번역을 맡았고,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단 번역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게 95년 12월이었다. 

초창기 몇년간 드문드문 일이 들어왔지만, 작업 속도도 느렸고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해 과외로 용돈벌이를 해야했다. 번역가로 자리를 잡으려면 출판계에서도 인맥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겠구나. 1년에 한두 권 나왔다 사라지는 번역서로 나를 알아봐주긴 역부족이겠구나. '호의적인' 의도로 출판인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이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당시엔 주요 일간지에 '북리뷰'가 실리면 단박에 만부는 휙~ 팔려나가 매출이 오르던 시기였기에, 출판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종종 일간지 도서담당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출판사 사장님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준비해 온 돈봉투를 슬며시 쥐여주었다. 신간 나오면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미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었다. 뇌물 공여자리에 불려나온 나는 뭔가. 혹시 기쁨조? 

나처럼 '인맥을 넓히고자' 불려나온 신참 번역가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난 왜 여기 나와 앉아 있는가 의아했다. 글도 얼굴이 예뻐야 잘쓰는 거라면서, 책 날개에 실리는 여성작가 프로필 사진에 신경을 쓰라는 둥, 번역가도 약력 뿐만 아니라 사진도 같이 넣으라는 둥, 내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사진 기자를 소개해줄 터이니 언제 한번 신문사로 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왁짜지껄 웃으며 옆에 있던 누군가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도 둘렀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였다면 난 또 상을 들러 엎으며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마지막 회식 자리. 2차로 노래를 부르러 함께 가자던 그들의 손아귀를 세차게 뿌리치며, 그 자리에 나를 부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저 다시는 부르지 마세요. 어지간히 취한 그 사장님은 저 사람들 알아두면 다 좋은데, 앞으로 도움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난 인상을 팍 쓰며 돌아섰다. 차라리 내가 과외를 한 탕 더 하고 말지. 더러운 놈들. 96-7년 즈음에 겪은 일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시작되어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학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며, 과연 이 사회의 썪은 부분들 이번엔 뿌리까지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슬그머니 잊혀 괴로운 핍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염려스럽고 궁금하다.  

아직도
기막히게도... 감히 겁도 없이...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거나
음양의 조화를 위해 우리더러 지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라든지
당연히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려든다거나 (그래서 음주 후엔 아예 노래방에 안 간지 오래)
유머랍시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이른바 ’어르신들’ ‘선배님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있다. 
직장 상사들이라면야 사표와 술을 얼굴에 뿌리며 대들고 따지겠지만 (다신 안볼 거니까) 공론화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관계가 애매한 친목성 조직의 구성원이라 아직은 정색하고 따지며 반발하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체 앞으로 어디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지켜 보는 중이다.  

사회생활 회식 자리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성희롱 한번 안 당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성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데 내 아픈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체화된 더러운 습관이 죄악인 줄도 모르는 괴물들과,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동조하고 그저 쉬쉬해서 덮으려고만 한다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 땅의 시스템은 뿌리가 너무도 깊고 튼튼해서 여간해선 뒤엎기 어려울 것을 안다. 조직의 위상과 명예에 흠이 간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했던가. 

작년이었나...
어느 선배님의 습관적인 성희롱 유머 발언에 발끈해 뛰쳐나가 씩씩대는 나에게 또 다른 선배님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에이 소녀도 아니고.. 새삼 뭘 그런 거 같고 그렇게 반응하냐고.

소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땐 불편해도 대응법을 몰라 그저 얼굴 붉히며 참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무서울 게 없는 쌈닭 아줌마거든요!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학계, 예술계... 연이어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아도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 조용한 건 결국 조직을 떠나겠다는 극한 결정을 해야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폐쇄된 분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속속들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의미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땐 워낙 거대한 이슈였던 촛불에 묻혔던 것 같은데, 이번 움직임이 부디 세계적인 행사인 올림픽 때문에 묻혀버리진 않기를 빈다. 

연극계 괴물이 버젓이 뻔뻔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미 법적으로는 단죄의 방법이 없다는 교활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175년이던가, 죽어서도 다 못 치를 징역형이 내려진 미 체조계 성범죄자 의사의 경우와 어쩌면 이토록 법이 다른가. 시위할 때마다 맨날 성조기까지 펄럭이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법규 제정은 미국 따라가자는 말을 안하는 건지 원. 이참에 성폭력 관련 법규들이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도록 국회차원에서 현실적인 법안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수사방법과 제도에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와 사회적 고립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더러운 욕망과 손길을 휘두르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리우드 미투운동 때처럼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턱턱 거액을 기부해 피해자와 실천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가난한 프리랜서인 게 웬수다. 젠장. 일단 국내 최대최강 로펌 중에서 보란듯이 이번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변호하며 성범죄 괴물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빼앗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중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인터넷에 만연한 여혐 분위기와 비뚤어진 성의식에 물든 아이들을 구제하려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장애, 인종, 성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날, 대뜸 누가 물었다. 선생님도 메갈이에요? +_+ 메갈이 뭔지 나도 모르겠고, 그런 사이트는 사라진지 오래건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차별에 대한 사고부터 바뀌는 게 시급하다. 아직도 성별 자체가 힘인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 실제로 권력을 쥔 괴물들의 성범죄 수준이 더욱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작년에 실제로 후배들 채용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에서 마지막 면접에 오른 10명 중 여:남 비율이 8:2였을 때, 남자애들 둘이 면접도 보기 전에 서로 얼굴 보며 씩 웃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은 둘 다 뽑혔다 싶었다나. (실제로 최종 합격한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후배였으니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역차별이니 뭐니 하고들 앉아 있으니 원. 어느 조직이든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들은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며 성폭력도 그 권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당당하게 믿는다. 드물게 여성들 중에도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박씨와 최씨가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하긴 그들이 꼭두각시였으니 정치인들이 다 알고도 마음대로 하려고 대통령에 앉혀놨을 거다. 이용해먹기 얼마나 좋았을까. 

무서운 말이기는 하지만 '강간'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모호하고 순화된 성폭력이라는 말이 공적으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적이 많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의 구분도 가만 보면 가해자들이 빠져나가기 더 쉬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강간문화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성폭력 범죄자 주제에 사회적인 비난 앞에서 사과하는 척 하다가 뒤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겁박하는 뻔뻔한 유형도 기막힐 노릇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게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세상.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에 관한한 좀 더 급격한 변혁이 필요하다. 파렴치한 괴물들은 다 처단하고, 예비 괴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성문화 밑바탕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우선 남녀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은 인간이고 나무라고 가르치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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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자수 시작

놀잇감 2018. 1. 30. 01:00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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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놀잇감 2018. 1. 23. 21:12

해마다 거의 그렇지만 2018년이라는 말이 제대로 입에 붙으려면 설날은 지나야하는 것 같다. 기분상으로도 아직은 새해가 아니고 '헌 해'인 것 같달까. 1월 1일에 떡국은 끓여먹었지만 어거지로 더 먹은 나이도 아직은 인정 못하겠고... 

암튼 그래서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내야 행복할까 고민하며, 부질없든 말든 이런저런 소망들을 적어본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기록해두어서 그 '말의 힘'으로라도 많이 이루어지면 좋지 아니할까. 자꾸만 맥떨어져선 쓸데없는 회상에 젖어 미련이나 떨고 그러지 말고 이제 좀 앞으로 전진...하고 싶다.  

1. 베트남에 나가 있는 친구네 놀러가기 (마음 같아선 한 2, 3주 가서 얹혀 지내며 놀고 싶지만 에효.. 불가능하겠지. 북쪽 지방 트레킹도 가려면 현재로선 너무 더워지기 전인 4월을 노리고 있으나 과연;; )

2. 무릎 잘 고쳐서 등산 열심히 다니기 (그러려면 남들 잘 때 자는 생활습관부터 길들여야할 듯;; ㅠ.ㅠ) & 서울 둘레길 남은 스탬프 다 찍고 완주 배지 받기 

3. 공포감을 극복하고 치과 & 피부과 가기 (그러나 무시무시한 비용 어쩔!)

4. 작년에 시들해진 취미생활 5분 스케치 & 색연필 스케치 (일단 프리즈마컬러 색연필 150색부터 지르자! ㅋㅋ)

5. 새 취미생활 시작 - 프랑스 자수 (자수책과 자수틀과 천 구입 완료. 실과 바늘, 브로치 재료만 사면 됨 ^^;)

6. 전시회 많이 다니기 (작년엔 기대 전시 적어놓고도 거의 다 놓쳤음)

7. 휴대폰 개비? (액정이 깨지고 배터리게이트 탓에 느무느무 속터지게 느려진 아이폰6를 바꾸긴 바꿔야할텐데 애플은 밉상이고 삼성은 더 밉상이고 LG는 안예쁜데다 요번에 엄마 핸드폰 보니 기본앱들이 너무 흉하다. 아이튠즈에 들어 있는 음악 때문에라도 또 아이폰을 사게 되려나... 아 몰랑)


하여 일단 2018 기대 전시목록부터 적어놓으련다. 12월부터 적어놓은 목록 중엔 벌써 끝난 것들도 있다.ㅜ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아라아트센터 ~2/4까지

소화:짤막한 이야기 - 서울미술관 ~2/7까지

님을 위한 바다: K현대미술관 ~2/11까지

퀸틴 블레이크 일러스트 원화전: 상상마당 ~2/20까지

지브리 대박람회: 세종문화회관 ~3/2까지

플라스틱 판타스틱: D뮤지엄 ~3/4까지

자코메티 특별전: 한가람미술관 ~3/11까지

마리로랑생 전: 한가람 ~3/11까지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4/1까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대림미술관 ~5/27까지

강요배: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덕수궁 현대미술관 5-10월 예정

조선지도 500년 공간, 시간, 인간의 위대한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6/19~9/2

니키 드 생팔: 한가람 6/30~9/25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5~8/26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궁중회화 - 덕수궁미술관 11/7~2019 2월

마르셀 뒤샹: 국밉현대미술관 서울관 12월~2019 4월

전시목록을 열심히 적다보니 책도 좀 읽으시지.. 하는 마음이 드네그려. 책은 결심 같은 거 안하고도 좀 많이 읽으면 안되겠니.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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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염

투덜일기 2018. 1. 14. 14:11

처음 아팠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날이었던가 어느해 명절에 힘든 노동을 다 견디고 난 다음날, 스트레스 풀러 약속을 잡았는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갑자기 고통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 아픈 게 아니고, 다리를 접을 때 무릎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거다. 그날 하루 종일 절뚝이며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명절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랬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푹 자면 낫겠지.

당시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통증이 반복되기를 여러 달. 문득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겁을 내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관절도 연골도 이상은 없다면서, 의사는 다리 근육강화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한 이틀 받아왔던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무릎은 곧 멀쩡해졌다. 스트레스성 상상통이었나 싶을 정도로. ㅎㅎ

그러고는 또 몇년. 그 사이 나는 놀랍게도 '등산인'이 되었다. ^^; 2016, 17년엔 하루 20km가까이 걷는 것도 예사인 서울 둘레길도 걸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만 했을 때는 무릎 통증이 재발되지 않았었는데, 아스팔트 걷는 길도 많은 둘레길이 문제였던가? ㅠ.ㅠ 암튼 작년부턴 등산을 3시간 이상 하면 꼭 내려올 때 무릎이 아팠다. 왼쪽 다리가 아플 때도 있고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도 있어 통증이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12월부턴 계속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랐다가 간식 먹으며 좀 쉬다보면 일어날 때부터 다리가 뻣뻣하고 무릎을 접을 때마다 아팠다. 젠장..

1월 첫 등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갔던 날도 내려오면서 퍽 고생을 했다. 많이 아파서 오른쪽 무릎을 세게 짚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결국 다음날엔 양쪽 다리가 모두 아팠다. 왼쪽은 근육통, 오른쪽은 원인 모를 통증. 하루 푹 자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젠 며칠 지나야 멀쩡해졌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등산을 다시 열심히 다니는 거여서, 엊그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은 오른쪽 손목도 아픈지 꽤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 장면 시간 맞춰 일일이 자막을 넣어 자막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우스를 엄청 많이 써야 하고 그런 날은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었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든지, 손목을 아래로 꺾으면 아픈 정도. 직업병이려니 하면서도 째뜬 이참에 다 물어보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관절과 연골엔 여전히 이상이 없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 거란다.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보다도 먼저 평소 몇시에 자느냐고 물었다. ㅠ.ㅠ 어... 좀 늦게 자는데요.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해서...  불면증도 좀 있고... 대번에 그게 원인이란다. ㅎㅎㅎ 잠을 제때 안 자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염증이 쉬 발생한다고. 에고.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지 말것, 관절을 심하게 꺽는 자세는 피할 것, 가능하면 일찍 잘 것, 내리막길은 피할 것.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며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자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실은 내일 등산을 가거든요. 가면 안되나요. ㅠ.ㅠ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산은 관절을 희생해서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느 기관을 튼튼하게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겠죠. 건초염에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셨네요. 잠도 제때 안자고, 등산 다니고... 헐. 

나는 숲에 가야 불면증이 낫는다고 변명했고, 의사는 정 좋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등산을 가야겠거든 스틱을 꼭 쓰라고 조언했다. 고주파 치료, 자기장 치료, 찜질 등등의 물리치료를 받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말짱해졌다. 아싸... 좀 불안했지만 소염진통제도 먹었겠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압박밴드로 오른 무릎을 단단히 감싼 채 괜찮겠거니 싶어 꾸역꾸역 등산을 따라갔다.

올라갈 때는 정말로 아픈 줄도 모르겠고 멀쩡했는데 2시간이 넘어가고 하산길이 이어지자 점점 무릎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우 씨 짜증나고 창피해서 원. 신년산행이고 이후 행사가 있어서 7km정도로 산행이 짧아 다행이지 더 높고 긴 산행이었으면 큰고생했을 것 같다. 통증은 내 문제이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행동이 느려지는 건 남들에게도 민폐가 되는 짓이라 앞으로도 걱정이다. 과연 완전히 다 나아서 산에 계속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어제 송송송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좋았는데 ㅠ.ㅠ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 마음이 무식한 고집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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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투덜일기 2017. 10. 26. 04:02

엄마네 집 아래층 101호 아저씨가 우리한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뒷마당에 시커먼 래브라도리트리버를 기른지 1년이 넘었다. 이사 오던날 '맹인 안내견'이라고 울 엄마한테 이야기했다는데, 알고보니 그건 진짜로 그 개가 맹인안내견 역할을 한다는 게 아니고, '맹인 안내견으로 쓰이는 품종'이라는 말이었던 듯, 그 개는 늘 뒷마당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처음 적응기에 동네 길냥이들과 밥그릇 다툼을 하면서 밤중에 컹컹 울어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녀석은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시끄러운 소음을 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느냐! 그건 물론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넓지도 않은 마당 한 귀퉁이에 묶여 노상 오줌을 갈겨대니 그 악취가 ㅠ.ㅠ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바로 옆102호 세입자와 싸움이 나기도 했다. 101호 세입자가 자기네 집 앞쪽도 아니고 왜 남의 집 안방 창문 딱 열면 보이는 뒷마당에 그 큰 개를 묶어놓았느냐고, 악취 때문에 여름에 문도 못 열어놓는다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구청에 민원도 넣어 공무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 딱히 무슨 제제 방법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암튼 102호 살던 세입자는 얼마 전 이사를 나갔고, 그집엔 다시 갓난아기와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는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주로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아주 가끔 새벽에 응애응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릴 뿐, 온 동네 개판 느낌의 소음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월요일 저녁, 왕비마마와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늘 뒷마당에서 고개만 삐죽 내밀고 오가는 우리를 쳐다보던 녀석이(이번 개는 이름도 모른다. 아래층 아저씨가 안 가르쳐줬다;;) 앞마당 계단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주차를 하는 사이 먼저 내려 계단을 오르시며, 개를 무서워하는 왕비마마는 저리가라고... 할머니는 개 싫어해! 그런 얘기를 녀석에게 중얼거렸다.

그간 우리 모녀는 아래층 101호 아저씨를 꽤나 욕했다. 아니 개를 키우려거든 맨날 운동도 시키고, 목욕도 자주 시키고 냄새나는 오줌도 잘 처리해야지 맨날 묶어만 놓고 뭐하는 짓이냐고, 개 키울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주인이 혹 사료 주는 걸 잊은 날인지, 한밤중에 스텐 밥그릇을 발로 차 소리를 내며 배고픔의 시위를 벌이는 적도 간혹 있었기 때문에(조카네 개 파랑이가 밥그릇과 물그릇이 비면, 발로 땅~ 차서 소리를 내는 걸 봐서 같은 행동으로 짐작했음;;), 게으른 아저씨가 밥도 잘 안챙겨준다고 우린 굳게 믿고 있었다.  

앞마당에 나와 있는 녀석을 본 순간, 어라 우리가 오해했나? 저녁마다 운동 시키는 시간인가? 아니면 대변을 보게 풀어주는 시간인가? 데리고 나가려고 일부러 풀어준 건가? 주인은 잠깐 집에 들어갔고? 뭐 이런 생각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실제로 맨날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던 아래층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불안했다. 주인이 개를 풀어준 게 아니고, 그냥 끈이 풀려서 녀석이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면 어쩌지? 개끈 풀렸다고 아래층 사람한테 이야기를 해줘야하나? 아니지, 괜한 오지랖이면 민망하잖아! 

시커먼 그림자 같은 녀석은 계속해서 앞마당과 화단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귀찮아. 나는 아래층 현관을 두들겨 말을 해줄까 말까 약 15초쯤 망설이다, 대인기피증이 도져 그냥 2층으로 올라와버렸다. 

맹인 안내견을 할 만큼 똘똘한 녀석이면 끈이 풀렸더라도 뭐 어딜 가진 않겠지. 가면 또 어때! 맨날 묶여서 제 자리에 똥오줌만 싸고 있느니 자유롭게 떠나서 새 주인 만나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 그럼 드디어 우리도 지독한 개오줌 냄새에서 해방될 거야... 금세 내 머릿속에선 이런 고약한 상상까지 펼쳐졌다.

그러고는 오늘 수요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검정 개가 정말로 안보인다고 개 끈 풀렸던 그날 도망간건가? 아니면 주인이 그날 어디 딴 데로 데려다준 건가... 개 끈 풀렸다고 101호에 얘기해줄 걸 그랬나... 중얼중얼했다.

으음. 아마도 이런 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 뭐라고 불러야하지? 내가 주인도 아닌데 유기는 아닌 것 같고? 방치? 아래층 아저씨는 개가 없어진 걸 알고나 있을까, '개를 찾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도 붙이지 않았다는데,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 건가, 진짜로 없어진 게 아니고 딴 데다 데려다준 걸지도 모르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이 든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간 강아지는 며칠 안에 주인 못 만나면... 으으. 찜찜하다. 가뜩이나 이웃집 개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숨진 사건으로 모든 반려견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요즘, 진짜로 끈이 풀려 도망 나간 거라면 덩치도 큰 놈이 홀로 돌아니며 위협적으로 보일텐데 싶기도 하고. 아무튼 진실을 모르니 결론은 나지 않는 혼자만의 고민이다.  

그나저나 글도 잘 안올리는 블로근데 여기 조회수 왜 이러지? 티스토리에서 뭔가 야로를 부리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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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갈비 김치찜

투덜일기 2017. 10. 24. 23:05

10월도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4월 여행기를 마무리 못했다니. ㅠ.ㅠ 이러다 쌘이처럼 그냥 방치하다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들어 짬내서 비공개로 이어쓰기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니 그 또한 끝내기가 쉽지 않다.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여행기 마무리 전엔 또 다른 포스팅을 줄줄이 이어쓰기도 기분이 찜찜했다. 예전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생각해서 끼적이는 게 왜 이리 어렵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부담감과 거리감을 없애보겠다고 여행기를 열심히 쓰자 결심했었구나. 암튼... 여기저기 sns에 찔끔찔끔 뭐하는 짓인가 싶다. 암튼 원래는 아까 저녁 준비하며 인스타 용으로 희희낙락 사진을 찍었으나 결론적으로는 '분노의' 험담을 길고 길게 달것 같아 결국 블로그로 옮겨왔다.

여행기는 뭐 생각나면 다시 쓰든지... 말든지... ㅋㅋ


아래는 오늘 내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저녁 메뉴로 요리한 '등갈비 김치찜'의 자태다. 그럭저럭 먹어줄만 하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ㅠ.ㅠ 

그 어디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내 머릿속으로 상상 혹은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으므로 누구에게도 맛을 장담할 순 없으나 내 입맛엔 흡족했던..<간단 레시피>를 적어보면 이러하다.

1. 큰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돼지 등갈비(씻으면서 잠시 핏물 빼놨음)를 덩어리째 넣어 살짝 데친다. (돼지 갈비의 누린내와 핏물을 더 빼내는 거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2. 절반쯤 익은 등갈비의 뼈 사이사이를 가위로 쓱쓱 잘라준다.

3. 자른 등갈비를 찬물에 후딱 헹군다.

4. 등갈비를 포기 김치 윗동을 잘라낸 배춧잎으로 하나하나 돌돌 말아 새 찜냄비에 앉힌다.

5. 다시마, 표고버섯, (냉동실에 들어 있던) 저민 생강 몇 조각, 국물용 멸치 3-4마리 투척 후 김치에 만 등갈비가 확실히 잠길 정도로 찬물을 붓고 40분간 끓인다. 처음엔 센불로.. 나중엔 약불로. 

6. 중간쯤에 생강과 멸치를 건져버린 뒤, 설탕 1티스푼 추가 (대충 요리의 달인? 답게 어느 시점이었는지 까먹음).

7. 개인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나 소금을 더 넣어도 좋겠으나 매운 거 싫어하는 고혈압환자 고객님 입맛에 맛추어 아무것도 더 넣지 않았음.​


물론 그릇에 담으면서 아 먹기 불편하겠다 싶긴 했다. 이거 원 사진촬영용이지 막상 먹으려면 김치에 가위질을 해야하지 않겠나 말이다. 처음부터 잘라서 할 걸 에라이...

그치만 또 등갈비 한대랑 김치 한줄기랑 비율 맞춰 먹으라는 깊은 뜻이 있겠거니... 개인접시를 식탁에 놓았다. 요리 중 국물맛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요리 완성도에 자신도 있고 흡족했다. 오.. 깊은 맛이 나! 오.. 돼지 냄새도 거의 안나! 간도 슴슴하니 딱 맞아! 이런 자뻑모드에 돌입했던 것.

그러나 왕비마마가 또 누구신가. 입에 발린 말이라곤 절대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진실과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걸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

그걸 잘 알기에 맛있다고 칭찬해줄 것을 기대하진 않았으나.... 요번에도 왕비마마의 첫 마디는 "왜 이렇게 매워!"였다. 어윽... 그러더니 내가 일회용 장갑 양손에 끼고 일일이 돌돌 말았던(대체 나 왜 그랬던거니!!) 김치를 단숨에 풀어버리고 알맹이 등갈비만 쏙쏙 뽑아 냠냠 '맛있게'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갈비라도 맛있다고 여겨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어야 하는 건데 왜 난 분노했을까... 에효. 


그간 나의 요리에 대한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순위 1, 2, 3위를 이참에 공개한다. ㅋㅋ

1. 요리하는 냄새는 맛있는 것 같던데 막상 먹어보니 별 맛 없구나

2. 생김새만 그럴듯하지(내가 비주얼에 치중한다는 뜻) 먹을 건 별로 없네

3. 엄마 입엔 짜다(혹은 맵다)! 

그러니깐 요번엔 3번 당첨이다... 


거짓을 꾸며낸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청구가 가능한 것처럼... 정말로 맵거나, 별맛 없거나, 맵고 짠 게 '사실'이더라도 낑낑대며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봐서라도 그런 생각은 좀 속으로 하시거나 나중에 시간 좀 흐른 다음에 넌지시 얘기해달라고, 까칠한 딸에겐 그런 촌철살인 코멘트가 다 괜한 상처로 남는다고(밥순이 노릇 하기 싫어진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만족시키긴 또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 고객님이신지 원. 그러면서 밖에 나가서 사먹자고 그러면 니가 만든 게 더 낫다는 말이나 하시질 말든지! ㅠ.ㅠ

암튼 오늘도 까칠한 딸년은 밥상머리에서 첫술부터 푸르르푸르르 분노에 떨며 저녁을 먹고는 속병이 나 위가 아프다. 이건 아마도 마감 스트레스겠거니, 아니 한달 넘게 이어진 간병 스트레스겠거니.. 그러면서 부디 대나무숲 같은 이곳에 떠벌인 것으로 좀 나아지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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