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7.06.15 불편한 미용실 언어? 6
  2. 2014.01.13 연필 깎기 10
  3. 2012.05.22 친구의 밥상 15
  4. 2012.04.25 10
  5. 2012.03.29 관계 2
  6. 2011.05.17 아는 게 병 11
  7. 2010.12.22 해먹고 산 것 & 해먹을 것 7
  8. 2010.09.26 헌 휴대폰 3
  9. 2010.09.18 악 귀찮아 12
  10. 2010.09.08 컴퓨터 20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석달만에 미용실엘 다녀왔다. 3월중순인가 말에 갔었으니 꼬박 석달만이다. 머리가 단발을 훌쩍 넘어, 요즘 같은 더운 날엔 질끈 묶지 않고는 목덜미에 치렁치렁 간질간질 아주 괴로웠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못 견디고 달려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그런 순간을 조금만 견디면, 아니 그럴 때 앞머리만 내손으로 살짝 잘라주기만 해도 또 한두달은 너끈히 참고 버틴다. 미용실에서 멍하니 몇시간씩 기다려야하는 게 너무도 힘겹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인데... 그런 힘겨운 시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친하지도 않은데 어색하게 이어가야 하는 대화와 더불어 요즘 미용실에서만 쓰이는 듯한 특별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다.

맨날 뭘 그렇게 도와드리겠다는 거냐!

주로 보조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쓰는 말인데... 자기가 행동 주체인데도 계속 도와주겠다고 말을 한다. ㅠ.ㅠ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운 착용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실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대 (착용이라고 그랬던가? 샴푸하는 동안 눈에 작은 수건 같은 걸 얹어주겠단 얘기다) 어쩌구...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사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 마무리 도와드리겠습니다. 

타월 드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시)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20분 뒤에 컬러 체크 도와드리겠습니다.... 으악! 그만 좀 하라고! 도와주긴 뭘 도와줘!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되잖아!...라며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 담당인 원장님은 카리스마 덕분인지 저런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엔 머리에 시술하는 모든 내용과 절차를 소비자에게 통보하는 게 상도의인지 그냥 처음에 설명했으면 그대로 묵묵히 순서대로 하면 좋겠구만, 두피 상태를 확인하겠다(소형 특수 카메라로 찍어서 막 보여준다. ㅠ.ㅠ) 스켈링을 하겠다, 세럼을 바르겠다....계속 과정을 설명한다. 때때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네. 네 그럴 때가 많다. 대답 안하면 또 한번 더 말해주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고.. ㅠ.ㅠ  

언젠가 포스팅에도 커트 잘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괜한 말 안 시키는 미용실이 내겐 꿈의 미용실이라고 했었는데... 그런 곳을 찾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런데 찾아다니겠다고 마루타 실험하듯 싸지도 않은 커트 비용 들여가며 메뚜기처럼 미용실 순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 째뜬 이 미용실 다니고부터 머리숱 많아졌다, 머리결 좋아졌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보니 딴데로 바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갈수록 가늘어져 히마리가 하나도 없는데 숱 많아보이면 장땡이지.

암튼 너무 오래간만에 간 탓에 그간 엉망이 되어버린 머릿결 복구와 멋내기 염색(꿈의 카키색으로! ㅋㅋ)을 한꺼번에 하느라 장시간 주리를 틀듯 괴로웠는데, 거기다 직업병 있는 사람 고문하듯 자꾸만 말도 안되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거의 5분, 10분 간격으로 들으려니 미치는 줄. 

미용실에서 2시간 넘게 버티는 거 진짜로 싫어하는데... 다음엔 지레 저놈의 이상한 도와드림 화법 스트레스로 더 미용실 가기가 꺼려질 것 같다. 그나마 5만원이십니다.. 따위의 이상한 말투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던데 제발, 도와드림 화법도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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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

투덜일기 2014. 1. 13. 21:33

새해들어 사흘에 한번은 연필을 깎아대야 했다. 연필 다섯자루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아홉자루로 늘어났는데, 그나마도 중간에 몽당연필 두 개는 버렸다. 새해들어 1월 1일부터 금강경 한문 필사를 시작한 대비마마 덕분이다. 처음엔 소형 연필깎이로 돌려댔으나, 몇년째 멀쩡히 잘 깎이던 칼날이 잦은 혹사에 문제가 생겼는지 자꾸 심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연필깎다가 심이 부러지면 왜 그리도 짜증이 나는지...  암튼 자주 깎아드리기 귀찮아서 연필 갯수를 늘려 바쳤는데도 사흘쯤 지나면 컴퓨터 책상에 뭉툭해진 연필이 놓여있다. 처음엔 '좀 깎아줘'라고 적힌 엄마의 쪽지도 연필과 함께 놓여 있었다. 나 잠든 새 외출하시면서 놓고 간 거라나. ^^;

 

대비마마는 아주 오래전에도  금강경 한문 필사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땐 서예를 배우러 다닐 때라 무려 한지에 붓글씨로 필사를 했었다. 그나마 요번엔 필사용 책을 사서 흐리게 적혀있는 글씨를 선따라 베껴적기만 하는 거라 엄청 수월하다지만, 오늘 드디어 한번 필사가 끝났다는 걸 보면 3번 꼬박 베껴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연필로 꾹꾹 눌러 작게 한자를 쓰려면 손가락은 또 얼마나 아플까나. 암튼 매일아침 기상과 동시에 1시간씩 금강경 필사에 여념이 없는 대비마마를 보면 존경심이 일 정도다. 우리 가족 중에서 아마도 요새 제일 성실하고 건강하게 살고 계신듯!

 

새해들어 운동을 좀 해보겠다던 나의 다짐은 작심삼일도 못되고 딱 두번 나가고 끝이었건만... 하루도 안빠뜨리고 새벽마다 상을 펼쳐놓고 필사를 하다니, 그 저력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력일까 강인한 모성일까 종교의 힘일까?  필사용 책인지 공책인지 앞에 적어놓은 기도 발원문을 슬쩍 들춰보아도 노친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다. 까마득한 옛날 동생들의 입시를 앞두고도 대비마마는 새벽마다 집에서 108배를 했었다. 남들은 100일 내내 절간으로 교회로 새벽기도도 다닌다는데! 그러시면서. 물론 재수, 삼수를 거친 동생녀석들의 입시 결과로 볼 땐 하나도 효험이 없는 생고생이었지만, ^^ 새벽마다 쿵 쿵 무릎을 찧으며 절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동생들이 설마 모르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은 없다고 느끼지만, 그래서 대비마마의 금강경 필사와 정성스런 기도 발원이 초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온 가족의 건강과 사랑과 손주들의 행복을 조목조목 적어 비는 노친네의 소원이 이왕이면 이뤄지길 바라고 그렇다면 난 열심히 연필이나 깎아드려야 도리일듯. 그러나 난 벌써 연필깎는 게 귀찮아서 몇번이나 짜증을 부렸고(볼펜으로 쓰시지, 아 왜 연필로!?) 대비마마의 자립을 위해 튼실한 자동 연필깎이를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까칠한 딸이다. ㅋㅋ 헌데 나는 워낙 잘 하고 있어서(?!) 발원문을 따로 안 썼다고 하시더니만 오늘 보니 나를 위한 기도도 맨 아랫줄에 연필로 덧 적어넣은 걸 발견했고, 좀 찔려하는 중이다. 자동 연필깎이를 사? 말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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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밥상

투덜일기 2012. 5. 22. 17:26

입던 옷차림에 슬리퍼를 대충 끌고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집으로 놀러가도 좋을 동네 친구는 이제 없다. 여전히 '우리집으로 놀러와'라고 말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선뜻 나서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진 아주 가끔 친구가 집으로 놀러오는 일이 있었으나, 조카들 놀러오는 것도 귀찮은 마당에(!) 친구가 집으로 오는 건 이제 손사래를 치며 말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청소하기 싫엇!

 

내 입장에선 차라리 그냥 밖에서 만나서 수다떨고 밥먹고 차마시는 게 훨씬 편하고, 전업주부든 아니든 친구들도 대개 내 의견에 동감한다. 혹시 아이가 어리다든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모이게 되더라도 밥은 반드시 나가서 먹거나 시켜먹는 것이 대세. 그렇더라도 나로선 한끼니 내 손으로 안챙겨도 해결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누군가에게 집밥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황공무지한 일이 된지 오래. 사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생네 집에 가서 큰올케가 해주는 집밥을 얻어먹으며 황송해한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더러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시누이 노릇이고 아니고를 떠나 똑같이 지겨운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양심이 저릿저릿 하는 것 같다.

 

암튼 집밥의 귀중함을 알기에 누구에게든 함부로 청할 수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으며 누가 해준다고 하면 일견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최근 그런 귀한 집밥상을 친구에게 연달아 받는 일이 생겼다. "요리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밥값으로 니가 해!"라고 하는 친구들도 아니어서 나는 그야말로 황송하고 감격했다. 귀찮게 나가서 먹지 뭘 밥을 했느냐고, 괜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하던 나에게 그들은 좋은 사람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전혀 피곤하지도 귀찮지도 않다는 대답으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했다. 나는 매끼니 밥상 차리면서 노상 인상 구기고 툴툴대는 인간인데...

 

확실히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 틀림없다고 여기며, 괜한 죄책감까지 품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사진을 담아둔 김에 고마움과 자랑을 겸한 포스팅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내가 이런데다 자기네가 차려준 밥상 사진을 올리고 주절대는 짓거리를 하고 산다는 건 모르고 있으니 금상첨화. 친구가 해준 요리 중엔 참고 삼아 나중에 해먹어도 좋을 것들도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기록이 될 거라 믿는다.

 

밥상1.

이중에 나도 시도해본 건 냉이무침과 새싹채소 샐러드. 뒷줄 왼쪽, 삼치를 밀가루 입혀 굽고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은 건 한번 해먹어보고 싶은데 귀찮아서 잘 안된다. 소금구이로도 맛있는걸 뭐! 그날 친구의 냉장고엔 이 요리를 위한 레시피 적힌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친정엄마가 해주셨다는 김치 두 종류 말고는 따끈한 잡곡밥까지 죄다 신선한 반찬. 과연 몇시간을 공들여 차려낸 밥상일지 감개무량.

 

밥상2 

당연히 밖에서 사먹을 거라 생각했다가 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놀랐던 두번째 친구의 밥상은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씻어놓았던 쌀로 돌솥에 밥을 앉히고 중탕으로 계란찜까지... 죄다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이라 손 가는 거 하나 없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중탕 계란찜도 누룽밥도, 부추전도 저절로 되는 요리는 아님을 내가 왜 모르나. 우리집 계란찜은 늘 전자렌지에 뚝딱 해먹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퍽퍽하고 딱딱해져서 계란찜 메뉴로 눌러놓고도 틈틈이 휘저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밥 한공기 다 먹고 누룽밥까지 과식한 바람에 위가 아파서 저녁은 굶어야 했다. ㅎㅎㅎ

 

밥상3

 

이날도 저 수북한 밥그릇 좀 봐라. 원래 집에서 먹는 양은 저 절반쯤 되는데... 밖에만 나가면 꾸역꾸역 참 잘도 먹는다. 따끈따끈한 새밥은 정말 그냥 밥만 씹어도 맛있다는 걸 이제 나도 아는 나이랄까... ㅠ.ㅠ 이 친구네 냉장고 안엔 밑반찬이 단 한 개도 없고, 매끼니 새로운 반찬을 즉석에서 해먹는 걸로 유명하다. 가운데 있는 건 맵지 않게 끓인 닭볶음탕이고, 부추 샐러드와 부추전도 내가 보는 앞에서 금세 뚝딱 만들어냈다. 여덟살 짜리 아들놈이 초록색 부침개를 좋아해서 부추를 갈아 체에 걸러 놓았다가 저렇게 앙증맞은 부추전을 부쳐먹는단다. 켁... 가서 울 엄마 부쳐드리라고 초록색 반죽을 준다고 해서 급사양했다. 울 엄마가 애기도 아니고! 이 다음날 부추 사다가 부추가 잔뜩 씹히는 두번째 밥상 속 부추전을 만들어 먹고, 남은 생부추는 비빔국수에 넣었더니 엄만 안 씹혀 못먹겠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들기름과 간장 들깨로 버무린 향긋한 부추샐러드는 우리집에선 못해먹을 음식이란 의미. 대신에 닭볶음탕을 그렇게 간장에 청양고추만 조금 넣고 안동찜닭처럼 해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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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4. 25. 16:24

아파트도 말로는 공동주택이지만 말본연의 의미대로 '주택'인 집에 살려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따르고 각별한 관리도 필요하다.  일년에 한번 구청에서 정화조 청소하라고 엽서 날아오면 업체 불러다가 청소해야지, 몇년에 한번은 외벽도 다시 칠하고 옥상방수도 해야지, 망가진 방충망도 갈아야지...

용인 어느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자기네 단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1년에 한번 주방 팬 청소도 해주고 전화만 걸면 관리실에서 나와 형광등도 갈아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집에선 물론 그런 일들이 이제 다 내 차지다. 아버지가 집에 사다 쟁여놓으셨던 장수램프 형광등이 다 떨어져 얼마전 마트엘 갔더니 이제 장수램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죄다 중국산 GE 제품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왜 국산은 없으냐고 괜히 신경질 부리다 어쩔 수 없이 또 길이별, 종류별로 GE 형광등을 사다 쟁여놓았다.  중국산 형광등은 얼마나 오래 가나 두고봐야지.

암튼 올 봄엔 외벽 칠과 방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6년 만에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람을 불러 견적을 받고 어쩌고 공동부담액을 나누고 내가 주동이 아니었는데도 약간 골치가 아팠다. 아침 8시부터 업자들이 와서 외벽을 긁어대고 칠 작업을 사흘이나 하는 통에, 나는 첫날 커피 타서 내간 것 말고는 한 일도 없이 신경이 곤두섰다. 어휴.

3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 겉만 새로 칠해놓으니 언뜻 꼴사납게 화장발 잔뜩 세워 오히려 주름살이 더 드러난 늙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째뜬 깨끗해져 개운한 건 사실이다. 집안 역시 제대로 가꾸자면 도배할 때도 됐고 주방 싱크대도 확 갈아치우고 싶다는 욕심을 품다가 또 결론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재건축은 아예 물건너갔으니 금세 팔릴 지 모르겠으나, 다시 부동산에 알아봐야겠구나 싶었던 거다. 부동산에 매물 내놓을 때 사진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어본 바 있어서 충동적으로 사진도 찍었는데, 페인트발이 화장발처럼 화사하기를 바랐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조명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일수도;;). 벌써 무성해진 나무 때문인지 무슨 귀곡산장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진 올리면 오히려 보러 올 사람도 안 올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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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은 이사에 미쳤으되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순간, 언제 낯선 사람이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고 있다. 과연 나는 이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여간 사소한 노력의 일환으로 쓰지 않는 오래 된 그릇을 한 보따리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렸고, 앞뒤 베란다 여기저기 뒹굴던 빈 화분들도 큰 자루에 넣어 처분했다. 어찌나 쓰레기 자루가 무거운지 비틀비틀 낑낑대며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골목 어귀까지 내다놓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팔과 어깨가 쑤셨을 정도였다. 쓸데없는 오래된 세간살이는 엄마 안 계실 때 몰래몰래 자꾸 처분하라는데, 버리지 못하는 병은 모녀가 똑같으니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옥상 방수작업은 계속 오는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어떤 집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 골치아프다. 지금껏 30년 가까이 붙박이로 살 수 있었음이 그저 감사할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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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투덜일기 2012. 3. 29. 16:05

스마트폰을 별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는 웬만한 푸시알림 기능을 다 꺼놓고 내킬 때만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주로 구경하는 쪽이라 SNS의 과잉현상에선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의 카카오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문자와 달리 카톡은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무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시답잖은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4040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순식간에 2만5천원이 결제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메시지는 아마 그날 대여섯번 쯤 받은 것 같다. 유행하는 유머 동영상 링크를 수시로 보내는 사람들도 꼭 있다. 참 정성도 뻗쳤다고 하겠다. 하지만 안부인사를 겸한 것이든 아니든 대뜸 띵동 띵동 일방적으로 복사해 전송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유유상종인지, 보내오는 메시지 내용이 똑같을 때도 많다. 알고 보면 퍽 비좁은 카톡 세상에서 돌고 도는 유행인지 몰라도, 그들이 원한 반응은 '지루한 오후 너 때문에 한참 웃었다. 고마워!' 따위의 것인지 몰라도, 그냥 내겐 귀찮은 스팸일뿐이라고!!

얼마전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받는 이가 정식으로 읽지를 않으면 전송시간 앞에 적힌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단다. 초기화면에 알림기능으로 내용이 뜨기 때문에 완전히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간 귀찮은 메시지가 오면 읽지 않는 것으로 나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하고 씹으면 싫어하려니 싶어서 관두겠지 여기기도 했고. 헌데 나처럼 메시지 읽음 표시 기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아직도 끈질기게 재미난 유머 링크나 꼭 알아야 할(?) 뉴스 따위를 친절하게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카톡스토리라나 뭐라나 새로운 앱이 나왔는지 새로이 친구신청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쯤 되니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는 듯,  카톡 계정을 확 삭제해버릴까 충동이 인다. 내게 연락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문자 메시지 비용쯤은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안 그래도 수익구조에 야로가 많은 통신회사에 굳이 유료 문자전송으로 돈 벌어줄 이유가 없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어쨌든 충동 대로 곧장 카톡탈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전화기피 증상이 심하고, 차츰 사교성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닌 삶이 이어지다보니 밖에서 친구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친구라고 해도 다들 거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어울리다 보니, 누군가 성격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곁에 남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싶고 만나서 수다떨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게 되지 않는 이 망설임을 과거엔 그래도 '갑갑함' 때문에라도 떨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말이지 집구석이 제일 좋고 일주일, 열흘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별로 갑갑하지 않다.

나의 전화 기피증과 게으름을 알기에 먼저 연락해주는 이가 아직 더러 있는 건 고맙고, 막상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나가지만 내쪽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만남을 청하는 건 또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연락은 못해 아쉬운 이들도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서서히 관계가 정리된 것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정리되어 차라리 반가운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무려나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탓에 소통의 도구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몇몇 과도한 친철형 인물들 때문에 카톡마저 관두는 건... 소외를 자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방적이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짜증스러운 것일뿐 또 관계 자체를 아예 끊고 안 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전, 오늘의 유머 동영상 링크를 보내온 이에게 까칠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거 안 좋아해서 별로 안 고맙다고. 그래도 계속 보내면 카톡차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쪽도 앞으로 내게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지 않을까. 일단은 좀 만만한 상대라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했지만, 문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내게 그런 정성을 들일까, 혹시 보험 같은 걸 팔려는 것일까, 의아스러운 몇몇 인물은 눈 딱감고 차단해두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게 아니라 퍽이나 찜찜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저쪽에선 그냥 내가 읽지 않은 걸로만 나온다지... 스마트 한 세상에서 스마트하게 관계를 맺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다. 이러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또 별개의 것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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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병

투덜일기 2011. 5. 17. 17:41

이 세상에 감기를 치료하는 약은 없으며, 모든 감기약은 증상완화제일 뿐이다.
어차피 감기는 약 먹으면 2주, 안 먹으면 보름만에 낫는다.
물 많이 마시고 밥이랑 과일 잘 챙겨먹고 잠 잘자서 몸의 면역력을 높이면 감기는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
감기약 먹으면 졸리고 멍해서 정신집중이 안된다.
감기약 먹고 운전하면 사고날 확률이 늘어난다. (무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본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지어주는 감기약의 알약 갯수를 보면 딴나라 의사들은 기함을 한다. 약 흡수 잘 되라고 소화제까지 처방하는 의사들 여기밖에 없다더라.

이상은 감기에 대한 평소 나의 지식이랄까 믿음이다. 그래서 이 믿음을 근거로 거의 3주간 계속 버텼다. 이번 감기는 다른 증상 없이 그냥 기침만 나왔던 터라 더욱 소신껏 밀고 나갔던 것 같다. 사실 무작정 버틴 건 아니고 지난번 먹고난 테라플루도 몇번 먹어주었다. 크게 효험은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기침도 낮엔 얼추 괜찮다가 밤에만 좀 많이 나왔다. 원래 기압이 낮아져 기침은 밤에 더 심하진다니까 그러려니 했다.

지난주초엔 기침을 하느라 뱃가죽이 당기는 수준까지 이르긴 했으나 나로선 별로 불편할 게 없었다. 나을듯 나을듯, 떨어질 듯 떨어질듯 하다가 밤만 되면 다시 도지는 기침이 그저 얄미울 정도였다. 그런데 왕비마마는 나의 기침을 못견뎌했다. 기침 소리 들을 때마다 병원으로 끌고 가지 못해 안달이었다. 기침보다도 그놈의 잔소리가 지겨워 결국 어제 동네 내과를 찾았다. 목안을 들여다본 의사는 내 짐작과 별 다를 것 없는 말을 했다. 염증이 좀 있기는 하지만 심하지 않다. 낮에 물 많이 마시고 체온관리 잘 하고 푹 쉬는 정도로 나을 수 있겠지만 약을 먹으면 좀 더 빨리 나을 테니 이틀치 처방을 내려주겠다. +_+

주사는 맞고 싶으면 맞으라고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당연히 안 맞기로 했다. 약만 타가지고 돌아와 어제오후부터 시간 맞춰 열심히 먹고 있는데.... 

젠장,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밭은 기침은 콜록콜록 똑같고 괜히 정신만 멍하다. 알러지 약까지 들어 종류도 6가지나 되는데 왜 효과가 없는 거냐!(콧물에다 몸살까지 겹쳤으면 약을 열개는 처방했으려나? -_-;) 엄마는 주사를 안 맞아서 그런다며 약 다먹고 내일은 주사까지 맞으라고 또 성화다. 나는 애당초 병원에 갔던 걸 후회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플라시보 효과 때문인 것 같다. 의사와 약의 권위를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가짜 약을 먹고도 30%쯤의 환자들은 증상이 완화된단다. 그래서 그런 착한(?) 환자들과 의심 많고 부정적인 태도의 환자들은 치료효과가 두배나 차이를 보인다. 플라시보 효과 대신 역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걸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딱 그짝이다. 이 세상 감기약을 죄다 불신하는 나에게 감기약이 효력을 제대로 나타낼 리 없잖은가. ㅋㅋㅋ 병도 병이지만  나는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인 셈. 어쩌면 아는 게 병이 아니라, 불신과 회의가 병일지도...  역시나 믿을 건 내 몸과 오기밖에 없다 싶다.

이놈의 기침 감기 바이러스, 내 오늘부터 너를 물에 빠뜨려 죽여주마!
기를 쓰고 물을 마시고는 있는데...
계속 화장실 다니느라 귀찮아 죽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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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인의 입장에선 하루에 맛있는 걸 가능한 한 여러번 먹으며 사는 게 행복할 것도 같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선 다 귀찮으니 하루에 한끼만, 아니 사흘에 한끼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콩닥거리는 하루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몸을 위한 섭생의 의미보다 짜증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걸 어쩌랴. 요샌 머리를 심히 한쪽으로 집중해야 하는 기간인 고로 딱히 해먹을 거리들의 메뉴도 떠오르지 않아서, 장보러 갈 때 적은 목록도 노상 똑같아 매주 새로 적을 필요조차 없었다. 영양 면에서 균형잡힌 식단 따위 잊은지 오래라서 그런지 식탐모녀의 겨울 체중은 빠직빠직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 푸성귀 채소의 섭취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여기다 그간 대강 해먹은 것들 중 대강 요리로 소개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두고, 생각난 김에 예전에 기록하던 신데렐라 키친 요리법 가운데 채소류를 퍼다 놓아 끼니 메뉴의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걸핏하면 굶고 사시는 이웃들의 요리 욕구를 충동질해 보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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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휴대폰

투덜일기 2010. 9. 26. 17:12

왜 요새는 휴대폰을 새로 장만할 때 헌 휴대폰과 충전기를 반납하는 의무규정이 없을까? 몇년씩 쓰던 휴대폰을 막상 내놓으라고 하면 뭔가 소중한 걸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헌 휴대폰을 반납하지 않으니 중고이긴 하지만 멀쩡히 잘만 쓰던 물건이 무용지물이 된 마당에 새삼 어째야 하나 처치곤란이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헌 휴대폰을 반납했던 건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한두 번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대리점에서 매번 선심쓰듯 '기기 반납 안하셔도 됩니다'고 얘기했다. 뭐든 물건을 잘 내다버리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는 나는 또 그 안에 든 전화번호와 사진들이 찜찜해서 휙 내다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고 최근 쓰던 휴대폰 두 개는 혹시나 조카들이 휴대폰 잃어버리면 개통해서 쓸지 모른다며 충전기는 물론이고 박스와 설명서까지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헌 휴대폰이 대체 몇개인지 모르겠다! 엄마 것까지 치면 대여섯 개는 될 듯.. -_-; 공통이 된 충전기는 아예 뜯지도 않은 박스째로 여러개다.

헌 휴대폰도 중고로 수출하거나 부품을 추출해 재이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대체 어떤 경로로 그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 건지?? 조카네 학교에서 언젠가 집에 굴러다니는 헌 휴대폰을 모아 내 자원활용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당장 학교 다니는 아이도 없는 우리집의 경우는 어쩌란 말인지.

아이폰으로 바꾸기 직전에 쓰던 휴대폰에는 유심칩도 들어 있었고 워낙 메모해둔 것들도 많아 당분간은 계속 충전해두고 전화번호부와 메모장 용으로 써야할 것도 같다. 사진들도 죄다 컴퓨터에 옮겨두긴 했지만 전화번호부에 입력해둔 사진들은 또 그럴 수도 없으니 정보를 죄다 지워버리기도 찜찜하고. 그러고서 생각해보니, 중국 등지에 완전히 노출되어버렸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락처와 신상정보 일부는 함부로 내다버리거나 반납했다가 수출한 중고 휴대폰에 남았던 정보일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가끔 "고장난 가전제품, 컴퓨터 삽니다"라고 방송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트럭이 있던데, 휴대폰은 안 가져가나?? +_+ 하기야 몇년전에 필요 없어진 감열지 팩스랑 잉크젯 프린터 가져가시라고 했더니만, 돈을 주고 사가기는커녕 나더러 처리비용을 내라는 식이어서 좀 기막혀 하다가, 복합기까지 얹어서 그냥 다 '거저' 가져가는 쪽으로 흥정을 마친 적이 있었다(쓸모 없어진 물건 치워버려서 속은 시원했지만 어쩐지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이야 무게로 따지는 고물값으로 치면 몇푼 되지도 않을 터이니 아예 취급하려들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건전지도 따로 버릴 데가 없어서 동사무소 갖다 준다고 모아둔 게 한 보따리라 이젠 들지도 못할 정도인데, 휴대폰도 동사무소나 구청에 갖다 주면 재활용을 하려나?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어느 천년에 그런 착한 짓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우리집 말고도 집집마다 지천으로 깔려 있을 헌 휴대폰 처리법이나 좀 알려주면 좋겠다. 이제는 쓸모 없을지 몰라도 살 때는 분명 기십만원씩 했던 고가품이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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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귀찮아

투덜일기 2010. 9. 18. 00:06
과연 나한테 필요가 있는가 반문했을 때 별로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결국 아이폰4G를 신청했었고 드디어 오늘 전화기를 받았다. 근데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미리 시간약속까지 하고 찾아간 대리점에선 하필 컴퓨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다시 밀고 설치중이라면서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지 않겠나. -_-; 팩스로 서류를 보내 본사 같은 데서 대신 개통 노력을 하는 듯하더니 암튼 40분 넘게 기다려 결국 개통에 성공을 하긴 했다.

근데 헐... 역시나 컴맹에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낯선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을 때처럼 매뉴얼 읽고 공부 좀 하면 되겠거니 여겼더만 앙증맞은 핸드폰박스 안엔 아예 매뉴얼이 없더라. *_* 간단한 팁 설명만 들어 있고, 나머지는 죄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라네... 게다가 계속 컴퓨터 문제로 전에 쓰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옮겨주지 못해 내일 다시 오면 해주겠다니, 완전 황당했다. 왜 하필 내가 개통하기 직전에 그 대리점 컴퓨터가 다운되고 지랄?? 기계도사들이야 택배로 받아서 스스로 유심칩도 끼고 개통에 응한뒤 척척 어플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는 내 수준을 잘 알고 있기에 최소한 전화번호부라도 옮겨받으려고 대리점 수령을 택한 거였는데, 맥이 탁 빠졌다.
 
게다가 전화 거는 거야 번호만 누르면 된다지만, 메시지 보내려니 그놈의 터치에 서툴러서 어찌나 글자가 잘못찍히던지! ㅠ.ㅠ 나름 문자는 꽤 빨리 보내는 중년 엄지족이라 여겼건만 이젠 완전히 더듬더듬 세번에 한번은 화살표를 눌러 글자를 지워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조카에게 보낸 첫 문자는 '핸드폰ㅐ'라고만 써서 그냥 날아가버렸다. -_-; 핸드폰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하려던 거였는데 그 짧은 문장도 완성 못하고 전송 버튼이 눌리다니...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고 싶더라.

어플이고 자시고 일단 아이튠즈 깔아서 음악이나 담아놓으려는 것이 오늘의 목표량이었으나, 꼬진 컴퓨터로 최대한 추출해서 한시간 가까이 수백곡도 넘게 열심히 전화기에 담았건만 헐...(그나마도 열심히 초보자 가이드 찾아보며 실행한 거다) 음악감상은커녕 휴대폰에 음악파일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도 확인이 안된다. ㅠ.ㅠ 악~~ 귀찮아!! 비서 같은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기능만 쏙쏙 다 다운받아 내가 쓰기만 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우리집에선 당연히 와이파인지 뭔지 안뜨니 이것저것 막 눌러서 접속하기도 겁나고 (그래봤자 요금 이내수준일텐데도!) 일단 용어가 낯설어서 뭘 좀 해보려다가도 진행이 안된다. 우웩~~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시작했나 후회부터 앞섰다. 으휴... 일단 내일 전화번호부라도 좀 옮기고 나면 내 물건 같은 느낌이 들려나. 아직은 순전히 애물단지 같아서 정이 안간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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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투덜일기 2010. 9. 8. 02:11

5년을 넘긴 컴퓨터가 얼마 전부터 슬슬 걱정스러운 양상을 보이더니 오늘은 급기야 그 무서운 '시퍼런' 화면을 수없이 띄웠다. 완전 컴맹이라 안절부절 못하며 몇번이나 전원을 껐다 켰지만 부팅이 되다말고 무시무시한 경고(이런 화면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쩌구 저쩌구.. 그게 아니라면 시스템 인스트럭터에게 연락하라던가 뭐라던가... )가 뜨더니, 안전모드도 실행이 안되는 상황. 더럭 겁이 났다. 지난주부터는 원고 백업도 안해놨는데!!!

컴퓨터가 슬슬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꽤 됐다. 되다말다 했던 CD롬이 완전히 고장나 읽히지 않는 건 1년이 다 돼가고(그렇기 때문에 확 밀어버리고 윈도를 새로 깔 수도 없다. 혼자선 할 자신도 없지만 -_-;; CD롬이라도 괜찮으면 동생이든 누구든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나..), 본체에서 갑자기 윙윙 바람부는 소리가 나면서 느려지질 않나, 화면 보호기 작동되다 말고 프로그램 오류 메시지가 뜨질 않나, 과거 경험상으로도 컴퓨터는 수명 5년이 지나면 시한폭탄처럼 저절로 망가지도록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는지 꼭 말썽을 부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성 코드랑 바이러스 무서워서 유료 V3도 꼬박꼬박 자동실행하고 있거늘 나 원 참! 하지만 버벅거리긴 해도 또 완전히 고장난 것은 아닌 컴퓨터를 확 바꾸긴 좀 뭣하고,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버티는 것도 괴로운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에 드디어 오늘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퍼런 화면'이 등장한 것.
 
컴맹답게 이럴 땐 컴퓨터가 열을 받아서 그럴 지 모른다며 모든 전원을 끄고 플러그 까지 빼서 몇시간 식히는 것이 나의 유일한 처방이다. 근데 이번에도 그게 먹히더라. ㅋ 드디어 안전모드가 실행됐으므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시스템 복원' 설정으로 컴퓨터를 다시 부팅하는 데 성공했고, 무서워서 얼른 작업해 놓은 원고들을 이메일로 보내놓았다. 외장하드에 백업하다가도 혹시 오류날까 싶어서 ㅠ.ㅠ

늘 마감인생의 덧없음을 하소연하는 나에겐 꿈에도 등장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다.
하나는 거의 완성된 번역원고가 컴퓨터 고장으로 홀라당 날아가는 것이다. 마감일은 이미 어겨놓은 상황인데 백업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매 원고가 그야말로 홀라당 날아가는 바람에 펄펄 뛰다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거다. 요샌 정전으로 컴퓨터가 꺼져도 워드 프로그램에서 자동저장을 해주지만, 십수년 전엔 새벽녘에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밤새 작업한 원고를 홀라당 날린 적이 있었다. 하기야 지금도 재수가 없으면 컴퓨터가 미쳤는지 덜컥 오류가 났다가 수십매쯤 날아간 문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낭패감과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다. 두번째로 번역을 하면 속도야 훨씬 붙지만, 어쩐지 전에 번역한 문장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기분도 영 찜찜하다. 허니 내가 이런 꿈을 꾸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또 하나는 (재수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잔뜩 맡아놓은 작업을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 사람이 죽었으니 출판사에서도 더는 독촉할 형편이 못되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그간 작업한 원고라도 넘겨달라고 하면 어쩌나, 다듬지 않은 초고가 세상에 선보이는 건 정말 싫은데, 계약금만 받아놓고 아직 시작도 못한 추후 작업들은 어찌되는 걸까, 앞으로 받기로 한 원고료는 또 어떻고!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며 괜스레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물론 참 한심하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작스레 이윤기 선생이 심장마비로 운명하신 소식을 듣고 보니, 내 상상이 완전히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단 말썽 부리는 컴퓨터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면 그만인데, 컴맹주제에 워드며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하고 다운받는 과정을 생각하면 또 끔찍하다. 2005년도에 이 컴퓨터 샀을 때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말이 정말로 나 같은 인간에겐 딱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보다는 그 이후의 소소한 귀찮음이 더 두렵게 느껴지니 말이다. AS를 부르는 방법도 있다는 건 알지만, 그간의 경험상, 그리고 시청자 불만 프로그램의 고발 내용을 보아도 컴퓨터 AS기사는 십중팔구 사기꾼이던데 어찌 믿는단 말인가. 당장 CD롬부터 새것으로 갈으라고 할 텐데 몇만원 들이느니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니 또 어떤 컴퓨터를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고민부터 다시 꼬리를 문다. 우웩~~~ 책상을 넓고 한가롭게 쓰기 위해선 노트북 컴퓨터를 새로 사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있으니(근데 여름엔 노트북 자판 뜨거워져서 싫단 말이닷) 이런 고민은 최소한 몇달간 지속될 것 같다. 시퍼런 화면이 연일 나를 괴롭히지 않는 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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