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삶꾸러미 2006. 10. 19. 21:10
물리적으로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사는 요즘 아이들이
나는 좀 가엾다.
교육전문가들이 제 아무리 지나친 조기교육의 폐해를 강조해대도
요즘 엄마들은 '대부분' 백일 갓 지난 아이에게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고
백만원쯤 한다는 학비를 들여 영어유치원엘 보내질 않나
초등학생쯤 되면 온갖 학원으로 실어나른다.

어린아이들을 무조건 공부의 홍수 속에 떠밀어 놓고야 마음을 놓는 이상한 분위기가
몹시 못마땅해서, 나는 내 딸도 아닌 조카의 교육에 자꾸만 밤 놔라 대추 놔라 참견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 일주일 전부터 매일 시험준비를 하고 문제집을 풀고 그러는 건 말도 안되는 거 아닌가!? ㅡ.ㅡ;;
물론 세월이 엄청 흘렀으니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와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저학년땐 그래도 마냥 노는 게 삶의 중심이어야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올케 말로는 우리 조카가 다른 집 애들처럼 선행학습을 시켜주는 보습학원에도 전혀 안 다니고 수학 학습지 하나만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단다. 헐...
(게다가 우리 정민공주는 ^^;;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다. ㅋㅋㅋ)

그래도 정민공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깐
태평하게 그냥 지켜보기나 하자는 내 말에 일견 수긍하면서도
(엇.. 이렇게 또 쓰고 보내 이런 내 참견도 올케한테는 시누이 시집살이가 되겠구나.. ㅜ.ㅡ;;)
주변 엄마들의 악착같은 자식농사에 자꾸만 자극받은 우리 올케는 남들 하는 만큼은 아니라도
완전히 방치하여 조카가 자기네 반에서 밑바닥을 맴도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며
틈틈이 조카 군기를 잡는다.
하긴 그 말도 맞다.
대부분 공부는 뒷전이고 놀러 다니던 그 옛날에도
시험 전날 공부 하나 안하고 시험봐서 거의 상위권에 속하는 아이들이 있고
늘 꼴지 언저리를 맴도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요즘처럼 '다들' 공부에 미친듯이 매진한다면, 특별히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냥 즐겁게 놀기만 하는 아이들은 벌써부터 제도권 교육에서 열등한 학생으로 치부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 시험을 앞두고 주말에도 공부를 해야했고
어제는 수학 문제집을 두 개째나 푸느라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 정민공주가
오늘 오후에는 하늘 꼭대기를 찌를 듯 신이 오른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는 시험 끝났으니 엄마랑 영화보러 간다고 자랑을 했다.
영화 끝나고 고모랑 만나 저녁을 먹자나?

어엇.. 이거 몹시 익숙한 시추에이션이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따위가 끝나고 나면
룰루랄라 단체로 영화보러 갔다가 떡볶이랑 튀김 사먹고 집에 왔었는데...
그걸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정민이는 벌써 한다는 뜻이다.
어휴...
하긴 요즘 초등학생 수학문제는 내가 중학교때나 풀었던 것보다 더 어렵고 요리조리 비틀려 있더라. 그러니 그 시절보다 5, 6년쯤 정민이가 앞서가는 게 당연하겠지.

어리숙했던 나의 어린시절보다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더 똘똘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리분별도 뛰어난 것 같아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하기는 참 싫을 게 틀림없다.
얼마전 만난 후배 딸에게 추석날 보름달 보며 무슨 소원 빌었느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공부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대답해서 몹시 안쓰러웠다.
겨우 7살짜리가 공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니;; ㅠ.ㅠ
정민이와 달리 그앤 5살에 이미 한글을 떼고, 심지어 한자 초급 자격증까지 있으며, 초등학교 입학에 대비해 국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탄탄하게 해낸 우수한 학생으로 주변에서 마구 칭찬을 받는 아이인데도 말이다.

나로선 정말 어떤 게 아이들을 잘 교육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은 철없다고 나를 나무라며 본인이 엄마가 아니니 남의 말 한다고 타박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공부에서 뒤떨어진 아이는 절대로 앞으로도 상위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나 뭐라나;;;
그렇게 다들 공부를 잘해서 과연 뭐가 될 건데??

물론 공부를 잘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이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고 '잘' 살 확률이 높은 것은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 어른이 되었을 때나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지만,
단지 학벌과 교육수준으로 삶의 질이 평가되는 절대적인 잣대는 분명 예전보다 훨씬 힘을 잃었다고 생각된다.
좀 황당한 예를 들자면,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바로 '연예인'이라는 것부터 확실히 뭔가 다르지 않은가?? ^^*
그러니까 우리 정민공주를 비롯해 사랑스러운 조카들이 어른이 될 무렵엔
지금과는 많이 다른 가치에 따라 삶의 질과 행복이 좌우되는, 좀 더 괜찮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거다.

여전히 교육정책은 휘청거리고, 정치판엔 무지한 정치꾼들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당장이라도 한반도에 핵폭탄이 터져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온 세계가 떠들어대지만...
부디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여러가지로 나아진 세상이길 바란다.
워낙 근시안이라 이대로 흥청거리며 살다간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마실 물마저 없어진다는 아주 먼 미래는 나도 잘 모르겠고 ㅡ.ㅡ;;;
적어도 우리 조카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는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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