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문답: 스팅

놀잇감 2006. 10. 17. 01:26
벨로한테서 바톤을 이어받아
난생처음 해보는 문답.. *.*
게다가 스팅이라니! 두근두근....

1.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스팅'을 발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내 눈을 의심한다.
'스팅이 설마... 서울에서 전철을 탈 일이 있겠어.. 아마 닮은 사람일 거야..' 따위로 일단 실망할 것에 대비하여 마음을 달래다가, 정말로 스팅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더욱 심장이 쿵쾅쿵광 거려 차마 그쪽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흘끔흘끔 쳐다본다.
'말을 걸어볼까 말까, 사인을 받을까 말까..' 소심하게 고민하며 가방에 들어있는 소지품 가운데 과연 어디에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살피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낼 때까지 과연 얼마나 걸릴지 나도 알 수 없다. ㅠ.ㅠ (그래! 원래 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말도 잘 못 거는 인간이다. 어흑~)  

2. '스팅'이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꺅~~ 속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역시나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제발이지 건너편 좌석 유리창을 가리는 사람들이 없어 내 옆에 앉은 스팅의 모습이 건너편 유리창에 비치는 걸 고스란히 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만일 조금 전 전철역에서 처음 봤을 때 사인을 받는 데 성공을 거뒀다면.. 더듬더듬 말을 붙여볼지도 모르겠다. 나 스팅 광팬이고, 2005년 서울 콘서트때도 갔었고, CD는 몇장 있고, 하물며 블로그와 미니홈피 제목도 shape of my heart라고.. 뭐 이딴 판에 박힌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ㅠ.ㅠ
나한테만 이야기하는 약간 비음 섞인 스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상상 하는 것조차 설렌다!

3. '스팅'이 잠들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흐뭇한 심정으로 그제야 제대로 잠든 스팅을 '우러러' 본다. 마음으론 살짝 폰카로 사진도 남기고 싶지만 '찰칵' 소리 때문에 스팅이 깰까봐 절대로 시도하진 못할 테고, 지인들에게 스팅 옆에 앉았다고 문자로 자랑하진 않을까??

4. 너무 깊이 잠들어 버린 '스팅'. 갑자기 당신의 어깨에 기대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완전 얼어붙어서 최대한 어깨를 내준다. 다만 영광스러울 뿐이다. ㅠ.ㅠ
잠시나마 스팅의 베개가 될 수 있다니!

5. 곧 있으면 당신이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합니다. 아직 '스팅'은 잠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대 못 내린다. 약속은 벌써 취소했다. 온종일 스팅의 베개가 되어도 좋으리!!

6. 종점에 도착했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스팅'.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익스큐즈 미....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살살 그를 깨운다.
곧장 안 일어나면 아마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나타나거나 차량 보관소로 갈 때까지도 꼼짝 못하고 얼어붙어 있을지 모르겠다. ㅡ.ㅡ;;

7. 겨우 일어난 '스팅'. 그러나 아직도 잠에 취해있는 듯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좀 스팅과 함께 있다는 것이 익숙해졌을 터이므로, 잠깨기 용으로 전철 역에 있는 자판기 커피라도 빼주랴? 하고 물어본다. 늘 들고 다니는 자이리톨 껌도 권한다.
이미 스팅의 목적지는 지났을 터이므로, 거기가 어딘지 데려다주겠다고 친절히 자청한다.
비로소 광팬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감에 마구 불탄다.

8. 진심으로 사과하는 '스팅'. 사과의 뜻으로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고민에 빠진다. ㅠ.ㅠ
평생 스팅 콘서트를 '공짜로' 볼 수 있는  vip pass를 부탁해볼까, 아니면 한국에 있는 동안 나랑 '단둘이' 근사하게 밥 한 번 먹자고 할까(헉.. 영어 딸리고 떨려서 밥도 못 먹고 바보 되면 어쩌지..), 미국에 있는 스팅네 집에 한 번 초청해달라고 할까, 한국 콘서트 끝나고 무대 뒤에서 밴드와 코러스 포함 모든 식구들한테 소개시켜 달라고 할까(분명 콘서트 때문에 투어로 오지 않았을까?)...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이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저 이야기를 주섬주섬 다 한 다음에 스팅한테 고르게 한다! ㅎㅎㅎ

9. 곧 있으면 '스팅'과 헤어질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스팅, 사랑해요! ㅠ.ㅠ
그리고 앞으로도 앨범 투어때 한국에 꼭 와서 공연해주세요~

10. 마지막으로 바톤을 받을 5명.
허거걱... 바톤 넘길 사람이 없다! .ㅠ.ㅠ
벨로가 파피루스는 지명 안했던데 이미 했나??
안했으면 파피루스한테 이병우님을 시켜볼까? 박해일을 해보라고 할까? 아님 이나영?
파피가 골라라 ^^;; (22일까지 얼마 안남았으니 기다려줄게~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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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루시드 폴의 '오 사랑' 앨범을 사서 들은지 좀 됐는데
두번째 수록곡인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를 들을 때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곤 한다.
정말로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쩜 그리도 넓으신지...

영화 <집으로...>를 보면서 허리가 반으로 접힌 깡마른 그 할머니의 체구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통곡하듯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신파스러운 영화에 대한 절절한 감동보다는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이야기 속에 이리저리 겹쳐졌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루시드 폴이 그리워하는 할머니한테서도 나는 우리 할머니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초겨울 추위도 무시 못할 만큼 매섭던
나의 어린 바닷가.
여름엔 바지락 겨울엔 굴을 따다 채운
가난한 호주머니,

시골의 장터,
오늘은 일요일,
해뜨기 한참도 전 대야를 이고 향하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한 꿈,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채 익지도 않은 삼백원짜리 수박에도
우린 기뻐했었지.
몹시 아프던 날, 나를 들쳐 업고 달리던
땀에 젖은 등자락.

이제 난 알지. 돌아가셨어도
나에게, 누나에게 살아 있음을.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숨쉬는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파피루스 덕분에 익히 루시드 폴이 부른 노랫말의 아름다움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도 간결하고 절절하게 느낌을 담아냈는지!)

이 노래를 들으면 또 조건반사처럼 덩달아 떠오르는 기형도의 시가 있다.
바로 '엄마 걱정'


시에선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지만,
열무 삼십단 대신 생선 광주리를 이고 행상을 나간 우리 할머니가 해저물고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열두어 살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어두운 골목을 지나 장터로 이어지는 길로 마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듣고 마음에 새겨둔 때문인지
기형도의 시를 처음 읽은 순간에도 나는 작은 체구에 커다란 생선 광주리를 이고 다니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었다.

몸종을 데리고 시집올 만큼 한동안은 어려움 모르고 사셨다는 우리 할머니.
평안북도 정주에서 남편따라 만주로 피난 올라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한 몫 단단히 챙겨 온 재산은 대가족이 1년 가까이 여관에서 생활하느라 다 날리고
평생 시나 읊고 기생놀음만 하는 한량이셨던 할아버지 대신 생계를  할머니가 책임지셔야 했던 이야기를 두고두고 손녀딸에게 가만가만 들려주시며,
'내 허리가 이렇게 형편없이 반으로 굽은 건 전부 다 니 할아버지가 고생시킨 탓'이라고...
돌아앉아 담배 피우시던 할아버지를 곱게 흘겨보셨더랬다.

생일이 늦어 취학통지서도 나오지 않은 첫손녀를 굳이 동네 통장에게 막걸리 한 되 뇌물까지 써가며 한 해 일찍 국민학교에 들여보내 놓고선 못내 마음이 안 놓여 한 학기 내내 등하교 때마다 나를 업어 나른 우리 할머니의 정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나는
겉으론 흥흥흥 같이 웃어드리면서도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 나도 한 몫 단단히 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짠 했다.

우리 할머니도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부산 피난 시절 할머니의 꿈과 한과 희망이 담겼을 생선 광주리의 추억도 나는 알 것 같고
우리 아버지를 거쳐 나와 내 동생들에게까지 이어진
드넓은 할머니의 마음을 지금도 분명 느낄 수가 있다.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래서 참 고맙고 또 슬프다.
우리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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