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루시드 폴의 '오 사랑' 앨범을 사서 들은지 좀 됐는데
두번째 수록곡인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를 들을 때마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곤 한다.
정말로 할머니들의 마음은 어쩜 그리도 넓으신지...

영화 <집으로...>를 보면서 허리가 반으로 접힌 깡마른 그 할머니의 체구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통곡하듯 눈물을 흘렸던 이유도 신파스러운 영화에 대한 절절한 감동보다는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이야기 속에 이리저리 겹쳐졌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루시드 폴이 그리워하는 할머니한테서도 나는 우리 할머니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초겨울 추위도 무시 못할 만큼 매섭던
나의 어린 바닷가.
여름엔 바지락 겨울엔 굴을 따다 채운
가난한 호주머니,

시골의 장터,
오늘은 일요일,
해뜨기 한참도 전 대야를 이고 향하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한 꿈,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채 익지도 않은 삼백원짜리 수박에도
우린 기뻐했었지.
몹시 아프던 날, 나를 들쳐 업고 달리던
땀에 젖은 등자락.

이제 난 알지. 돌아가셨어도
나에게, 누나에게 살아 있음을.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숨쉬는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파피루스 덕분에 익히 루시드 폴이 부른 노랫말의 아름다움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도 간결하고 절절하게 느낌을 담아냈는지!)

이 노래를 들으면 또 조건반사처럼 덩달아 떠오르는 기형도의 시가 있다.
바로 '엄마 걱정'


시에선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지만,
열무 삼십단 대신 생선 광주리를 이고 행상을 나간 우리 할머니가 해저물고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열두어 살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어두운 골목을 지나 장터로 이어지는 길로 마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듣고 마음에 새겨둔 때문인지
기형도의 시를 처음 읽은 순간에도 나는 작은 체구에 커다란 생선 광주리를 이고 다니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었다.

몸종을 데리고 시집올 만큼 한동안은 어려움 모르고 사셨다는 우리 할머니.
평안북도 정주에서 남편따라 만주로 피난 올라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한 몫 단단히 챙겨 온 재산은 대가족이 1년 가까이 여관에서 생활하느라 다 날리고
평생 시나 읊고 기생놀음만 하는 한량이셨던 할아버지 대신 생계를  할머니가 책임지셔야 했던 이야기를 두고두고 손녀딸에게 가만가만 들려주시며,
'내 허리가 이렇게 형편없이 반으로 굽은 건 전부 다 니 할아버지가 고생시킨 탓'이라고...
돌아앉아 담배 피우시던 할아버지를 곱게 흘겨보셨더랬다.

생일이 늦어 취학통지서도 나오지 않은 첫손녀를 굳이 동네 통장에게 막걸리 한 되 뇌물까지 써가며 한 해 일찍 국민학교에 들여보내 놓고선 못내 마음이 안 놓여 한 학기 내내 등하교 때마다 나를 업어 나른 우리 할머니의 정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나는
겉으론 흥흥흥 같이 웃어드리면서도
할머니의 굽은 허리에 나도 한 몫 단단히 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짠 했다.

우리 할머니도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부산 피난 시절 할머니의 꿈과 한과 희망이 담겼을 생선 광주리의 추억도 나는 알 것 같고
우리 아버지를 거쳐 나와 내 동생들에게까지 이어진
드넓은 할머니의 마음을 지금도 분명 느낄 수가 있다.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래서 참 고맙고 또 슬프다.
우리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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