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습관

삶꾸러미 2006. 10. 15. 02:23

드물게도 이번 주엔 두 번이나 고속도로를 탈 일이 있었다.
그리 먼 데는 아니고, 오산과 수원.
서울 시내에선 요즘 그리 멀리까지 다니는 일 없이 기껏해야 엄마 모시고 신촌에 있는
병원에 가거나 그 근처 백화점, 아니면 집에서 10분 이내 거리인 작업실 왕복이 다라
내 운전습관에 대해서 새삼스레 생각해보고자시고 할 일이 없었는데
지난 수요일에 오산엘 다녀오며 죽도록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온몸을 비꼰 이후
며칠 뒤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보니
그동안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아직 변하지 않은 나쁜 버릇까지 내 운전습관에 대한
분석이 되더라.

나아진 점.

1. 욕설이 줄었고, 양보가 늘었다.
원래 나의 언어생활이 좀 과격한 편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악다구니를 치며 싸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운전을 할 때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욕설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건 비교적 초창기였던 시절 서울에서 안산까지 왕복 100km를 수인산업도로로 출퇴근하면서 작은 차(프라이드였다)와 여성 운전자를 업수이 여기던  수많은 대형 트럭 운전수들과 쌈박질에 가까운 들이밀기를 하면서 배우게 된 생존전략에서 비롯됐다. 14년 전엔 정말로 여성 운전자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특히 수인산업도로 같은 길을 달려 출퇴근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고속도로와 달리 군데군데 신호등이 수시로 있는 그 길에서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대부분은 지들이 잘못해놓고-- 대뜸 무시무시한 경적을 울려대며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부었는데, 처음엔 눈물을 쭉 뽑던 나도 나중엔 같이 거나한 욕으로 대작하며 바짝 따라가거나 앞질러서 확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싸움에 응수했더랬다. ㅡ.ㅡ;;
그런데 이젠... 그래.... 너 바쁜 놈이로구나, 먼저 가라.. 그러고 만다. ㅎㅎ
조금 열받을 때는, 그래, 너 평생 길바닥에서 그 짓 해먹고 살아라.. 그런다 ㅡ.ㅜ
물론 아직도 내 입에서 '어라 내가 이런 욕도 알고 있었나?' 싶게  놀라운 욕설이 새나오기도 한다. 끙..

2. 하이빔을 번쩍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예의 없게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하거나, 간선도로 진출입로에서 미리부터 빠져 길게 줄지어 따라오지 않고 중간에 끼며 얄밉게 운전하는 인간들 아직도 참 많지만
예전에 혈기방장할 때는 헤드라이트 상향등으로 번쩍이고 경적 울려대며 신경질 부렸는데
요샌 최대한 차간격을 줄여 안 끼어줄듯 약간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엔 그냥 끼워주고 만다. 그래.. 넌 그렇게 살아라, 얌통머리 없는 인간아.. 그러면서.

3. 과속을 "잘" 안한다.
순전히 과속 범칙금 때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밟을 수 있을 땐 밟아줘야한다며 미친듯이 가속페달을 밟아대는 짓은 잘 안한다. 속도감을 즐길 때쯤 되면 어김없이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건 또 내가 싫다.
그치만...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잘 없고 길이 좋으면 살짝 속도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ㅎㅎ

4. 차로를 잘 안 바꾼다.
운동신경 무딘 인간이 허술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내 몸과 달리 제법 날렵하고 속도감 있게 움직여주는 자동차라는 수단의 묘미를 알게 된 뒤로, 그리고 몇번의 접촉사고로 도로와 운전의 철칙을 어느 정도 깨달은 후로는 그저 빨리 가는 게 능사인줄 알고, 성질 급하게 요리조리 차로 바꿔가며 달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공연히 조급증을 내며 서두르는 짓은 안하게 된다. 아무리 재주를 부리고 차로를 변경해봐야, 서울 시내에선 정말 5분이나 빨리 가려나.. 고속도로에선 먼길 운전에 어차피 피곤하니, 졸음 쫓으려고 일부러 왔다갔다 할 때 빼곤 신경질적으로 차로 변경하는 버릇, 정말 완전히 없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다. ^^;;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

1. 1차로를 선호한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큰 동생 녀석은 웬만해선 1차로로 다니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다른 차로에선 사고가 나도 추돌사고지만, 1차로는 정면충돌 사고라 피해가 크다는 게 이유인데... 나는 다른 차로에서 수시로 드나들고 멈춰대는 버스와 택시를 감당하기가 싫고, 초보 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하위 차로가 별로 내키질 않는다.
물론 나도 초보 시절이 있었으므로, 초보 운전자를 우습게 알거나 위협하진 절대로 않지만 워낙 브레이크 밟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라 물 흐르듯 유연하게 운전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한 1차로가 좋다. 사고가 나는 경우 정면충돌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라도 말이다. ㅡ.ㅡ;;
다행히 이제껏 경미한 접촉사고라면 몰라도, 충돌사고를 내거나 당한 적은 15년 경력에 단 한 번 도 없었다! ㅎㅎ

2. 규정속도보다 심하게 느리게 달리는 차는 절대 참지 못한다.
이건 뭐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규정속도가 시속 100km인데 하필 1차로에서 느리게 빌빌빌빌 앞차와의 간격을 몹시 넓게 두고 달리는 차들이 꼭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심하게 다정한 대화를 나누거나 ㅡ.ㅡ;; 아주 드물게 초보운전자인 때도 있는데, 초보들은 고속도로에서 1차로엔 잘 들어가지 않으므로 정말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딴짓 중인 것 같다.
이럴 때 난 절대로 못참고 앞지르기를 해줘야 한다. 착한 어떤 이는 그 앞차가 볼일 다 볼 때까지 그냥 졸졸졸 따라도 가던데 말이다. 흠...

3. 차간거리가 좁다.
양보운전을 안하는 편은 분명 아닌데 ㅡ.ㅡ;; 예의바르게 깜박이를 켜고 의사표시를 한 뒤에 끼어드는 차의 경우 대부분 양보하는 데 반해,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족을 곱게 보진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나 역시 차간거리를 좁게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 습관 때문인지 대부분 운전자들은 고속도로에서도 차간거리를 규정만큼 길게 유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전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30대가 넘는 차들이 추돌사고를 일으켜 자동차가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그 버릇은 여전한듯. 나 또한 오래 전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멈추는 차들을 따라 가까스로 멈추는 데 성공은 했으나, 내 뒤의 뒤차가 제동을 못하고 내 앞차까지 모두 한꺼번에 들이받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도... 여전히 앞차와의 간격은 좀 좁은 편.
고속도로에서 달리다 병목현상 따위가 나타나 갑자기 속도를 줄이게 되면 비상등을 켜서 뒤차에게 알리는 제법 쓸만한 신호가 정착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은 방법은 차간 거리를 제대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안지키는 이 심보는 뭔지...
이리저리 차로를 안바꾸기로 한 대신에 남들이 내 앞으로 끼어드는 꼴도 못보게 된 걸까?

아무튼...
새삼스럽게 내 운전습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니
내일부터는 예전에 매일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처럼
아침마다 착하게 운전하고 욕 안하고 양보 많이 하고 교통법규 잘 지키기로
다짐을 한번 해봐야겠다. 그런 다짐을 몇년 되풀이하면서 그간 내 못된 운전습관을 개선하는데 절반이나마 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사고 나면 내가 더 손해고, 운전은 오래 할수록 대범해지기보다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요새 계속 착하게 살기 운동원처럼 반성모드가 지속된다. 나답지 않게 왜 이러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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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가지치기

삶꾸러미 2006. 10. 15. 01:27
師라는 말도 있으니
(벨로를 위해 읽어주면 '삼인행 필유아사', 셋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 될만한 이가 있다'는 뜻^^;)
언제 어디를 가나 따라 배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진리인데
(심지어 몹시 싫은 사람에게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걸 배우게 되니까!)
오늘은 이십여년 전부터 늘 참 배울 게 많던 친구한테서 아주 중요한 걸 배웠다.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의 뇌는 몇년에 한 번씩 지식의 가지치기를 한단다.
미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경로로 주워듣고 눈으로 스쳐
엄청나게 두뇌에 입력된 정보들 가운데서, 뇌의 주인이 최근 몇 년간 그닥 관심을 갖지 않고 기억의 저 너머로 밀어두었거나 관심 밖으로 외면한 정보와 지식들은
쓸데없는 가지 쳐내듯 몇년 동안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스르륵 기억에서 잘려져 나간다는 거다.

오늘도 늘 달변이고 박학다식하던 친구의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난 요즘 자꾸 바보가 되어가는지, 아니면 홀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 대화술이 퇴보하는 건지
사람들과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말문이 막히거나 정확하게 콕 찝어 표현할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게 되는 바람에, 예전처럼 수다스럽지 않아졌다고 고백한 나에게 친구가 현자처럼 빙그레 웃으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자기도 얼마 전 뇌의 가지치기를 당했는지, 예전엔 몹시 관심 많던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연 해당 낱말들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고 당황하는 바람에,
워낙 같잖아 읽기를 관뒀던 신문도 다시 구독하고, 이런저런 책도 골라 읽는다는 것이었다.

자꾸 뇌에서 꺼내 쓰고 다시 저장해둔 정보들이야 그럴 염려가 없지만
가물가물 기억이 날까말까 하던 얼마 안 되는 지식들은 계속 꺼내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분야째로 뭉텅뭉텅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니!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식충이처럼 살다간 정말 빈 깡통처럼 뇌에서 텅텅 빈 소리만 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아닌가!
그러잖아 요새 머리에 들여보내는 것 없이 계속 뽑아쓰는 소모적인 짓만 하고 있어
불안하던 차에 '뇌의 가지치기' 이야기까지 듣고 보니 더욱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과 말로 먹고 산다는 인간이
제대로 아는 게 하도 없고 무지한 것 같아 뒤늦게 다시 공부랍시고 시작했던 2002년부터 휴학포함 3년 동안엔 그럭저럭 머리에 뭔가를 채워넣는 것 같기도 하고
비록 뜬구름 잡는 기분이긴 했어도 이런저런 지식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구경이나마 한 것 같았는데, 그 뒤로는 확실히 퇴보하고 있었던 거다.

욕심인지 허영인지 이런저런 책들을 사들여 쌓아놓기는 했으되
제대로 읽고 생각도 해보면서 뇌와 마음의 자양분으로 삼아본지가 과연 언제던가.
하물며 매일 집에서 뒹구는 신문조차도 책 서평이 실리는 토요일자만 찾아보는 게 전부일 뿐 인터넷 접속할 때 잠깐씩 보이는 기사 제목도 휘휘 훑어보는 게 고작이니
온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쓸만한" 정보와 지식에 신경을 쏟아본 기억이 참 아득하다.

조금 비약하자면
이러다 몇년에 한 번씩 대거 가지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50줄에 접어들 무렵
내 두뇌엔 기계적으로 눈과 손가락을 연결해주는 번역 시스템만 남는 건 아닌지
겁이 다 덜컥 난다. 

시방 옮기고 있는 풋풋한 십대의 사랑 이야기의 작업 진도가 지지부진한 것은
결국 내 사랑의 경험이 워낙 오래된 탓에 더하여 ㅠ.ㅠ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를 감미롭게 전할 풍성한 어휘력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었던 거다.

다음번 내 두뇌의 가지치기 시기가 오기 전에
바쁘게 이것저것 많이 보아두고 공부하고 느껴 두어야 할 터인데
상당부분 이미 아메바스러워진 나의 기억력은 이 결심만이라도 잘 간직해줄 것인지.
과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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