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연진 가족이 나를 찾아왔던 작년 6월부터, 양양이가 사라지고 10월쯤엔 진이도 안보이게 된 뒤 홀로 남은 연이한테 점점 더 아늑한 집과 밥자리를 마련해주고서 생긴 가장 큰 걱정은 내가 곁에 없을 때 고약한 침입자냥이 해꼬지를 하면 어떡하나, 하는 점이었다. 그간은 다행히 내가 1박2일간 집을 비워도 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었는데... 지난 토요일 진안 마이산엘 다녀오느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집을 비운 사이... 새끼냥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흑...

22년 5월 12일. 밖에 나와 쉬고 있던 연이 모습. (새끼냥들은 집안에)

며칠 전인 금요일 13일까지도 연이와 새끼냥들은 집안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매일같이 집 바로 앞에 물과 사료 그릇을 놓아주면 연이는 머리만 구멍으로 내밀고 하악하악... 나를 위협했다. 제아무리 호르몬과 본능의 힘이라지만, 1년간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건 연이의 출산 이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야생성을 유지하고 인간에게 거리감을 두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기면서도 내심 섭섭했다. 언제는 막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서 집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굴더니! 쳇... 암튼 사료 접시 집으려 손만 내밀어도 냥냥펀치 당할 것 같은 느낌에 조심조심하긴 했어도, 새끼 한마리를 얼핏 보기는 했었다. 연이처럼 새하얀 새끼가 아니라 하늘이처럼 검은무늬가 더 많아 고등어 느낌의 보송보송한 새끼냥은 아직 눈도 채 못뜬 듯 취침중이었고 연이가 하도 위협적이라 곧바로 후퇴했는데, 나의 그 행동이 연이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걸까? 물론 이제와선 후회해도 쓸데없다. ㅠ.ㅠ

토요일 새벽에 내다보았을 때 사료는 넉넉히 남아 있길래 물만 보충해주고 떠났고, 긴 등산에 지친 몸으로 늦은 밤중에 귀가해서는 당연히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등산 뒤풀이에서는 하필 돼지 등갈비 구이를 먹었는데 다들 배가 부른 상태라 엄청 많이 남았고, 양념도 전혀 안된 고기니 다들 반려견과 반려묘 가져다주겠다며 비밀봉지에 주섬주섬 남은 갈비를 챙겼다. 당연히 나도 연이 몫을 챙겨왔길래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일찍 근육통 작렬하는 다리를 억지로 들어올려 베란다를 넘어갔는데....    

사료 주기 전에 놀랄까봐 늘 연이야, 연이야 부르면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악하악~ 소리를 내던 연이가 안보였다.  어쩐지 느낌이 쌔~~... 집안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왜!!! 고양이 모성애가 출산후 2주차까지 극단적으로 높다는 ㅁㅈ의 말을 들었기에 그간은 그려려니 했었다. 그래도 이제 3주차에 접어들었으니 꼬물꼬물 새끼냥들이 기어나와 바람을 쏘이지는 않을까, 연이도 서서히 나에게도 곁을 내줄지도 몰라 상상하며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았던 것이 연이에겐 위협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흑흑흑.. 사진 찍는 소리가 거슬렸나? ㅠ.ㅠ

암튼 허망한 마음에 사료그릇과 물그릇 놓아두는 자리를 원래 베란다 창문 밑으로 옮겨놓고선 연이야 연이야 불러대니 어디선가 에옹~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담벼락 쪽에서 나타난 연이가 익숙한 츄르 냄새 때문인지 다가오긴 하는데 전처럼 내가 보는 앞에서 덥석 먹기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를 경계중인 게 느껴져서, 오냐, 무사하니 되었다, 싶어서 물러났다가 슬며시 다시 다가가 보니 허겁지겁 식사중.

22년 5월 15일. 새끼냥들 사라진 뒤 홀로 와서 갈비 뜯는 연이

아무래도 왼쪽 방향 어디엔가 새끼를 숨겨둔 듯 먹다말고 그쪽을 자꾸만 바라봄. 살코기와 갈비 두 대를 함께 놓아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갈비 두 대가 모두 사라졌다. 양치질을 시켜줄 수 없으니 치아관리를 위해서 뭔가 딱딱한 것도 좀 줄 필요가 있다고 고양이 전문가께서 조언해주심.

품종묘 협회 회원이라는 지인에게 연이 사진을 보내주고 새끼냥들이 사라졌다고 징징댔더니만, 나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 새끼들을 숨긴 게 아니라, 내가 없던 하루 사이 침입자냥이 위협을 해 현재 집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거나 혹은 이제 3주차에 접어들어 밖에 나와 꼬물꼬물 놀기 훈련을 해야하는 아가들에게 위해한 환경이라 (지붕 아래로나 축대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 옮겼을 수도 있으니 너무 염려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연이 입장에서 집을 옮긴 이유를 상상해보면...

1) 집사가 자꾸 기웃대며 새끼냥을 노린다. 도망치자

2) SOS 울음으로 알리면 늘 잠자리채로 침입자를 쫓아주던 집사가 종일 안보이는데 깡패냥 출현. 이 집 안 되겠네, 이사가자

3) 이제 새끼냥들 걷고 노는 훈련 시켜야하는데 환경이 너무 개방되어 있고 바닥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네, 이사가자. 

그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암튼 새끼냥들을 숨긴 새로운 보금자리가 어디일지, 한 마리 한 마리 입에 물고 위험한 담장과 축대를 오르내리며 이사를 했을텐데, 연이도 작년 요맘때 천방지축 갓난 아기였단 걸 생각하면 너무 놀랍다. 

새끼냥들이 사라진지 오늘로 벌써 3일째. 다시 연이와 신뢰를 쌓고, 집사가 요주의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다시 심어주려고 매일 같은 시간에 다양한 간식과 특식으로 연이를 유혹하고 있다. 근데 출산 전에는 꽤나 잘 먹던 삶은 멸치는 외면하심. 입맛이 바뀌었나... 

일단 베란다 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면 멀리서도 에옹~ 대답을 하고 좀 있으면 슬그머니 나타난다. 오늘은 그래도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내가 문 닫고 사라지기 전에 와서 츄르부터 할짝할짝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고온 새끼들이 걱정되는지 잠깐 먹고는 금세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원래도 한번에 폭식 안하고 수시로 먹는 스타일이니, 잠깐 요기하고 다시 새끼보러 갔다가 틈 나면 와서 먹는 건가?

고양이가 인간의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고 하니, 좀 전에 창문 밑에서 쉬고 있던 연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새끼들 어디에 숨겼니? 걱정하지 말고 새끼들 다시 데리고 와라. 여기가 제일 안전해.... 안 그러니? 연이는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계속 대꾸를 하듯 울다가 잠시 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번 더 에옹에옹 울더니 가버렸다. 

이제 바람이라면 작년에 양양이가 연이랑 진이를 데리고 나타나 함께 사료와 츄르를 먹고 지냈듯이, 걸음마를 다 익힌 새끼냥들을 거느리고 연이가 다시 옛집에 보금자리를 트는 것이다. 근데 한번 버리고 떠난 집에 길냥이가 다시 오는 경우가 있나?? ㅠ.ㅠ 뭔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연이 출산 직전에 방향을 바꿔놓았던 집과 박스를 완전히 연이 어린 시절 살던 때 예전 그대로, 입구가 안쪽 벽을 바라보도록 돌려놓았다. 연이 없는 새 혹시 다른 녀석이 집을 차지할까봐 그것도 걱정이다. 해서 부시럭 소리 날 때마다 내다보고는 있는데 아직은 계속 연이만 오가는 듯 했음. 

대체 연이는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는지,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하다. 제발 새끼들 좀 보여주라, 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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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엄마 되다

양양연진 2022. 4. 25. 16:25

22년 4월 24일. 연이가 출산을 했다. 지난번 발정기 때 기묘하게 울었고 하늘이와 묘하게 꼬리잡기를 하듯 놀았으니 그냥 지나갈리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배가 부른 건지 어쩐지 통 모르겠더니만 ㅠㅠ 오늘 심상치 않게 조용하고 사료 먹으러도 안나타나서 집 방향 돌려주려 다가갔다가 집안에 웅크려 하악질하는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겁쟁이 연이는 내가 다가가면 후다닥 집에서 튕겨나와 달아났을텐데!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면서 하악질만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조용히 물러나 아무래도 이상해서 황태포를 입구에 던져주니 슬그머니 나와서 먹는데…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피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출산한지 얼마 안된 게 틀림없었다. 에고에고 갑자기 멘붕이 왔다. 출산박스 여럿 만들고 담요 갈아줘야한댔는데… 어쩌나. 하지만 그건 집고양이 얘기고 지금은 내가 접근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잔뜩 예민해져 있을 테고 내가 접근하면 새끼냥 훔쳐가려는 시도로 여길 수도 있을 거다. 

매일 내가 사료와 물을 놓아주는 위치는 연이 집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베란다 창턱 너머로 내가 집게를 이용해 놓아주기 편한 장소다. 연이는 새끼냥들 때문에 집주변에서 꼼짝도 안하는 것 같으니 얼른 츄르를 얹은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연이네집 바로 앞에 놓아주고 물러났다. 역시나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하악질을 했다. 걱정마, 너 먹을 거 챙겨주는 거야.. 조심조심 물러났다.

불과 3일전 4/21에 찍은 사진이다. 날씬해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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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출산 만 하루가 지난 오늘. 어젯밤에 미리 불고기감과 황태를 푹푹 끌이고 잘게 잘라 미리 산후 특식을 만들어 놓았다. 뜨거울 때 주면 안되지 않겠나. 점심 무렵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니 연이가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평소처럼 야옹야옹 울었다. 오야... 맛있는 특식을 주마. 그러나 내가 또 베란다 턱을 넘어 집으로 다가가자 집안으로 숨어들어 하악하악~~. 집 앞에 특식과 평소 먹던 사료와 츄르를 나란히 놓아두고 물러났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내다보니,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특식도 먹다가 츄르도 먹다가 왔다갔다 신나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피로 물들었던 꼬리와 엉덩이 부분은 이제 거의 다 깨끗하게 마른 상태. 약간 누리끼리한 자국만 남았다. 목욕도 안하고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지는지 신기하다. 암튼 연이가 밥먹는 동안 꼬물꼬물 새끼냥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의젓한 엄마냥이 된 연이가 얼른 집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이 선견지명이란 게 있는걸까? 그간 연이 겨울집에는 입구에 두툼한 비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연이가 집안에 안 들어가고 집밖 바닥이나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 통풍이 안되나보다 싶어 출산 바로 전날 그 비닐커튼을 뜯어버렸었다. 그리고 안에 넣어주었던 겨울용 발방석도 꺼내버렸다. 연분홍과 노랑색이었던 방석이 회색이 된데다 고양이털이 북실북실 묻어 있어서 혹시라도 연이가 임신한 게 맞다면 위생상 깨끗한 담요만 있는 게 낫다고 여긴 거였는데, 바로 다음날 출산을 하다니! 공교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보온용 방석이 있는 게 더 나았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대체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을지 궁금해 죽겠지만, 연이 엄마였던 양양이도 처음에 딱 두 마리만 데리고 나를 찾아왔었고, 연이 배를 보아도 임신한 티가 별로 나질 않았으니 되게 여러마리일 것 같지는 않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꼬물꼬물 우는 소리로는 두세 마리 같기도 하고... ㅠ.ㅠ 작년 6월초에 양양연진 식구를 처음 만났고 크기로 보아 한달쯤 된 것 같다고 짐작했으니 연이는 아직 만1살도 안된 아이다. 근데 엄마냥이 되었다니! 본능적으로 새끼를 잘 보살피고 있을까...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는 걸로 봐선 그러는 것 같다.

어제 오후 침입자냥1(검냥이)이 슬며시 다가와 연이네집 입구를 노려보는 걸 발견하고 쫓아주었다. 그 뒤로 하늘이도 잠시 다녀갔는데, 하늘이가 왔을 땐 연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집밖으로 나와 들이받는 것 같길래, 이놈시키! 소리쳐 역시나 위협해 쫓아버렸다. 하늘이는 내가 끝까지 쫓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는 녀석이라 좀 멀리 떨어져서 한참 지켜보던데;;; 아빠 노릇하러 온 거였으면 어쩌나 좀 걱정됐다. 하늘이는 한쪽 눈 아래쪽에 약간 누리끼리한 상처가 남아서 얼굴 구분이 가는데 그 외 검냥이들은 통 구분을 못하겠다.

밤새 혹시나 또 침입자냥들이 연이네 식구를 위협할까봐 걱정이 된 건지 새벽4시까지 잠도 오질 않았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라 그런지 그간 추이를 보면 새벽 4-6시 사이에 연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SOS를 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암튼 오전 시간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특식 배달한 뒤 한시간쯤 지났을까 오후에 다시 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먹을 것을 노리고 접근한 침입자냥인듯. 녀석은 내가 창문을 열자마자 철창 너머로 도망치고, 연이는 허겁지겁 남은 특식을 먹어치웠다. 새끼냥 젖을 먹이려면 물도 많이 먹어야한다는데 물은 별로 안줄어든 듯... 신경이 자꾸만 연이네한테 쓰여서 한쪽 귀는 아예 바깥으로 향한 것 같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자꾸만 안방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새끼냥들 무사히 쑥쑥 커서 어서 귀여운 모습 알현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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