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연이의 아깽이들 네 마리중 줄무늬 아깽이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220424-220608. 6월5일이 탄생 6주차였으니 46일의 짦은 생이었다. 초반부엔 수유싸움에서도 우세하고 놀이도 활발했는데 어느 틈에 서열에서 밀려난 걸까. 최근들어 체구가 가장 작아져 안쓰러웠고, 외톨이로 혼자 구석에서 졸고 있거나 형제들 다 젖 먹고 난 뒤 혼자 연이 품에 안겨 남은 젖을 빠는 모습이라 원래 얘가 막내였나 궁금해 했는데, 오후에 내다보니 두번째 집 바로 앞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자듯 누워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평소엔 식빵굽는 자세로 늘 웅크리고 잤던 것 같은데, 옆으로 쓰러져 다리를 뻗고 잠든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연이는 상황을 모르는 듯 지붕 위에서 잠을 자며 세 아깽이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넷이 뭉쳐 잠에 빠져들었다. 줄무늬 아깽이 한마리만 바닥에...

믿고 싶지 않아서 에이 설마, 하며 낮잠 자고 나면 다 같이 일어나 뛰놀기를 바랐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때까지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연이는 창문으로 내다보는 나를 올려다보며 에옹 한번 울더니 다른 아깽이들을 물어서 사료 그릇 앞쪽으로 멀리 데려갔다. 나에게 도움을 청한 걸까. 초보 준집사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여기저기 검색을 해본 뒤에 수건과 상자를 마련해들고 베란다 섀시 문을 넘어갔다. 연이는 이리저리 불안하게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하악질을 몇번 하고는 저만치 멀어져 이내 포기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줄무늬 아깽이 사체는 너무 가볍고 연약해서 조심조심 수건으로 감싸 올리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대체 왜...?

조금 전 뒷마당 아까시 나무 아래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손바닥 만한 흙마당이라도 집뒤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길냥이 가족을 돌보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건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간 너무 설레발을 치고 자랑삼아서 뭔가 벌을 받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안좋다.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해야지 싶다가도 연이를 중성화수술 시키지 않은 게 후회되면서 또 자책하게 된다. 남은 아깽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고양이 감기라든지 뭔가 병에 걸려서 다른 아이들도 같이 앓으면 어떡하지?

나만 보면 숨어버리는 아깽이들은 무늬와 체구로 구분할 뿐 아직 얼굴도 똑똑하게 보지 못했다. 처음 한달째와 달리 요즘들어 눈꼽이 좀 끼어 있는 것도 같고... 그야말로 멘붕이다. 연이에겐 남은 세 아깽이들 잘 지키고 키우라고 괜한 잔소리를 하며 안쓰러워서 간식을 더 부어주었다.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졌다. 

가장 최근 사진이 다 줄무늬 아깽이 사진이다. 슬픈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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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가 기존 사료를 잘 안먹고 외면하는 통에 새로운 사료를 주문하고, 또 작년에 마련해준 집이 5식구 살기엔 비좁은 듯하여 새집과 스크래처를 사나르는 걸 보시더니 엄마가 나더러 “아주 상전을 모시는구나!”라고 했다. 음.. 그건 아닌데요… ㅎㅎ 저의 최고 상전님은 뭐니뭐니해도 왕비마마시지요. 설마 울 엄니 고양이까지 질투하시는 건 아닐테고.. ㅋ
고양이 보호협회에서 파는 사료 공구로 이번에 사들인 사료는 캐츠맘이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사료통에 담아줘봤는데 잘 먹는다! 전연령 사료라서 아깽이들도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설명문을 꼼꼼히 읽어봐도 그건 또 아닌 모양이어서.. 로얄캐닌 수유모냥+아깽이용 사료도 추가로 구입했다.

두가지 사료를 한 접시에 같이 놓아줘 봤더니, ㅎㅎㅎ 연이는 역시 입맛이 고급인듯 입자가 더 곱고 비싼 로얄캐닌을 먼저 싹 다 먹고 그 담에 캐츠맘을 먹더라. 아깽이들을 위해서 더 작은 그릇에 담아 따로 놓아주어봤는데;; 누가 먹은 건지 사료가 줄어드는 게 보이다가 다음날 보니 가벼운 플라스틱 통을 엎어놓음. 예전에 내가 늦잠자면 연이랑 진이가 야옹야옹 울어대며 빨랑 밥달라고 밥그릇으로 쓰던 본죽 플라스틱통 뒤집어 탕탕 소리내던 거 생각나서 좀 웃었다. 아무래도 넘 얇고 가벼운 플라스틱 그릇은 냥이들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
아깽이들도 당연히 물을 먹는데, 물의 양이 얼마 남지 않아 가벼워지면 앞발로 짚었다가 홀딱 엎기도 한다. 사료와 물을 담아주는 곳이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져서 집게를 써야하거나 내가 의자 놓고 높은 창문틀을 넘어가야하는 관계로 좀 더 그럴듯한 밥상을 마련하는 건 아직 좀 미적거리고 있다. 집게로 집어올리기 어려운 그릇은 나도 쓰기 힘듬!
아무튼 두 종류 사료를 함께 쏟아준 뒤 수시로 엿보니 아깽이들 중에서도 이미 두어 녀석은 건사료를 아그작아그작 깨물어먹는 모습을 포착했다. 확실히 젖과 사료를 둘 다 먹는 느낌;; 명실공히 이유기에 접어든 모양이다.


연이네 집은 다이소에서 사온 이사용 박스+고보협 겨울집 이중구조인데 처마밑 모퉁이에 잘 놓아두었어도 우다다다 간간이 연이가 하늘이와 몸싸움을 벌이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불안하게 자꾸만 위치가 변하길래, 예전 김장김치 누를 때 쓰던 넓적한 돌멩이 2개를 오른쪽 안 구석에 넣어주었다. 그랬더니 날씨 더워지면서 냥이들이 검은색 겨울집과 외부 박스 사이저 비좁은 틈새에 다 모여 자는 모습 발견! 시원한 돌멩이가 좋았던 걸까?

집이 2채다. 22년 6월 1일 투표 후 오른쪽 새집 장만해옴 ^^

아깽이들이 건물과 축대 틈새로 들어가서 자거나 쉬는 것도 알지만 비오는 날엔 아무래도 보송보송한 집안에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고, 다섯 마리가 지내기엔 비좁아보여 지방선거 투표날 다이소에 가서 이사용 박스를 하나 더 사왔다. 연이뿐만 아니라 아깽이들도 저 지붕위에 올라가 노는 걸 좋아하고 그 위에서 잠도 자기 때문에 받쳐줄 스트로폼 집이 없는 새 박스는 3면의 접는 부분을 다 잘라냈다. 그래야 애들이 올라가도 쳐지지 않을 듯? 역시나 안쪽엔 위치를 잡아줄 벽돌 1장 넣어놨고 원형 스크래처도 구비했다. 연이도 아깽이들도 물결무늬 스크래처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저게 벌써 2개째임. 사진 위에 잘 보면 은박지 뭉친 것도 있는데 처음엔 호기심 생기는 듯 좀 갖고 놀더니 외면중.

아깽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노는 시간은 오전 8시 전후... 그리고 저녁 어스름이다. 싸구려 플라스틱 지붕을 뛰노는 우다다다 소리가 들려 내다보면 아깽이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놀이를 하거나 연이가 탁탁 쳐주는 꼬리를 잡고 놀거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휘어잡거나 개미 구경을 하기도 한다. 아래는 벨로가 물려받았다며 보내준 냥이들 장난감. 공을 굴리며 노는 식인데 무얼 가장 좋아할지 몰라서 우선 제일 만만한 걸 들이밀어 보았다.

호기심이 제일 많은 줄무늬 아깽이

다른 애들은 무서운지 죄다 틈새로 도망치고, 연이마저 슬그머니 비켜 달아난 가운데 요녀석만 슬금슬금 다가와 주시하더니 만지지도 못하고 엄마냥 눈치만 보다가 후퇴. 에효... 이틀인가... 며칠 동안 놓아둔 그 자리에 있더니 문득 오늘 내다봤는데 장난감이 사라지고 없는 게 아닌가! 엥? 사진에 보이는 바닥이 아래층 베란다 지붕이고, 여기가 내가 밥과 물을 놓아주는 위치. 이곳에서 2미터쯤 벗어나야 내 방 창문 바로 아래 놓인 연이네 집인데;;; 연이가 장난감을 이 먼거리로 옮겨 내동댕이 쳤다고?!

마당에 내려가보니 뒷마당 한 구석에 장난감이 떨어져 있었다. ㅎㅎㅎ 아깽이들 뛰노는 마당을 가로막은 장애물이라 여긴 걸까? 암튼 뭉쳐준 은박지 3개 중에 2개도 함께 뒷마당 풀숲에 떨어져 있었다. 다른 장난감은 좋아할지? 며칠 뒤에 다시 슬그머니 다른 종류로 놓아주고 지켜봐야겠다. 어떻게 노는 건지 내가 시범을 보여줘야 애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을까도 싶은데 워낙 나를 무서워하니 원... (고양이 전문가 지인의 말로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호기심 있는 고양이들은 이리저리 만져보고 스스로 터득한다고 함. 근데 그건 사회성 뛰어난 반려묘 얘기 아닐까? 연이와 아깽이들은 1년이나 밥준 나도 뜨악하게 보는 애들인데;; ㅠ.ㅠ)

하여간 아래는 오늘 찍은 귀한 사진이다. 연이랑 아깽이 지붕에서 잠자는 거 한번 찍어보겠다고 숨죽여서 소리 안나게 창문 열고 찍어봤는데 사진 열어보니 이미 눈치챈 연이가 눈을 살짝 뜬 게 보임. 예민한 녀석. 그러나 내가 얼른 물러나주었더니 그대로 눈감고 계속 오수를 즐겼다. 아깽이가 젖을 먹는데도 낮잠 자는 여유. 내가 다 뿌듯하다. 

22년 6월 6일.

집 2채를 연이와 아깽이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해서 수시로 내다보았는데, 연이가 집밖에 홀로 앉아 양쪽 집에서 나누어 잠을 자는 아깽이들을 의젓하게 지키는 모습도 보이고, 연이가 원형 스크래처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이고, 사진처럼 지붕에서 자기도 한다. 새집은 아무래도 지붕 면적이 너무 좁은 듯? 날개를 괜히 잘랐나 싶기도 한데, 관찰용 시야 확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 ㅋㅋ

암튼 어제로 연이의 아깽이들이 태어난지 만 6주가 지났다. 아깽이들도 사료를 먹으면서 변화가 온 것인지 막내로 추정했던 하양이는 체구가 쑥 자라면서 움직임도 활발해진 반면, 맨 마지막 사진에서 젖을 먹고 있기도 하고 장난감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줄무늬 아깽이(과거 젖먹을 때 욕심쟁이였는데)는 엄마 젖만 고수하는 건지 현재 체구가 가장 작아졌다. 눈빛도 가장 흐린 것 같아 걱정이다.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했고 1, 2, 3, 4호 구분도 모호해져서 하양이, 점박이, 줄무늬, 까망이.. 이렇게 구분하는 중. 아 빨리 이름을 정해야하는데;; 이제껏 나온 후보작이 다 좋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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