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연이의 자취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이번주 초까지만 해도 젖을 물리는 모습을 더러 봤는데 장마비가 쏟아지던 7월 13일 아침에 마주친 걸 마지막으로 계속 연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작년에 양양이가 두달만에 연이와 진이만 두고 사라졌던 경험이 있는지라 덜컥 겁이 난다.
설점줄묵이가 태어난 것이 4월 24일. 이제 아깽이들이 80일정도 되었는데 벌써 젖을 떼어도 되는 걸까? 암튼 좀 쎄한 느낌을 받은 건 지난 월요일부터였다. 그간 평소 연이가 쉬거나 낮잠을 잘 때는 아깽이들과 함께 뒷베란다로 내다보이는 아래층 지붕 그늘에서 함께 모여 있었다. 꾸벅꾸벅 졸거나 자면서도 아깽이들이 연이의 젖을 물고 있는 것 같아서, 연이 진짜 덥고 답답하겠다며 안쓰러워 할 정도였다. 헌데 그날 낮엔 연이와 아깽이들이 다 따로 따로 낮잠을 자고 있었고, 연이는 아예 축대 철망 너머에서 홀로 낮잠을 자다가, 무슨 소리가 들리면 아깽이들 있는 쪽을 내려다보았다. 아깽이들이 더 어릴 땐 밤에도 낑낑거리고 울면 득달같이 연이가 다가가 보살펴주곤 했는데, 이젠 아무리 울어도 (젖달라고 우는 소리 같았음) 멀찍이서 지켜보며 밤중엔 어리광 떨지 말라고 나무라는 것 같기도 했다. 밤에 자다가 아깽이들이 울어대서 랜턴 켜고 비춰보면, 연이가 오히려 나를 보며 애처롭게 에옹 에옹 울었다.

솔직히 오랜 시간 돌봐온 연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아깽이들보다 크기 때문에 그간 나는 연이가 좀 안타까웠다. 엄청난 모성애로 새끼들을 키우고는 있지만, 자꾸만 얼마나 귀찮고 고단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천방지축 아깽이들은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는 통에 악취가 심해졌고, 연이 혼자 깨끗하고 고고하게 지낼 때와는 창밖 연이네 집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연이진이는 양양이한테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인지 화장실을 축대 철망 너머에 두고 있었던 듯, 한번도 대변 덩어리 때문에 파리가 꼬이고 악취가 풍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연이네 아깽이들은 내방 창문 바로 바깥에 있는 자기네 집들 뒤쪽에 조금 쌓인 흙더미 구역을 화장실로 사용했다. 보다 못한 내가 모래를 퍼다가 흙더미를 더 높여주었으나, 딱 한번 모래를 파고 대변을 본 뒤 흙을 덮었을 뿐, 그 다음날부터는 그냥 또 아무데나 똥을 싸놓았다. 심지어는 연이가 작년부터 애용하는 받침대인 스티로폼 상자 위에도!
집냥이든 길냥이든 집과 화장실을 가능하면 멀리 떨어뜨려 두라던데, 이젠 집 두채 바로 뒤가 화장실인 셈이다. 지들도 악취가 싫은 건지 겨울집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던 모습은 차츰 사라지고, 연이네 가족은 울 엄마네 집쪽 반대편 지붕으로 낮잠터를 옮겼었다. 대변을 싹 다 치우고 다시 모래를 덮은 뒤 고양이 탈취제를 사다가 뿌려주고 해보아도, 아깽이들의 무차별 대변투척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암튼 그래도 연이는 아깽이들을 핥아주고 젖을 물리며 함께 놀아주곤 했는데, 7월 11일과 12일은 같이 사료와 츄르만 먹은 뒤 홀로 축대 너머에서 편하게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인 거다. 저녁 준비하려고 음식물 쓰레기를 베란다에 내놓다가 연이와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들어주고는, 그래 너도 새끼들 지키느라 그간 힘들었겠지, 낮잠이라도 편히 자라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7월 13일. 그날은 장마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연이와 아깽이들이 걱정돼 내다보니 연이 홀로 흠뻑 젖어서 돌아다니다가 창밖 박스 집앞에 다가와 앉았다. 연이야, 너 왜 비 맞고 돌아다녀? 물으니 쓱 올려다볼 뿐 묵묵부답. 비오는 날 늘 그러듯 츄르를 얹은 사료를 처마 안쪽 집안에 놓아주고는 외출했다가 밤 늦게 돌아왔다. 아그작아그작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묵이와 점이가 사료를 먹고 있는데, 어라 사료 양이 아침에 준 거의 그대로였다. 연이야,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밤에 창문만 열어도 에옹, 혹시라도 내가 아깽이들 해꼬지할까 걱정되는 건지 특식을 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울음을 울었더랬는데.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7월 14일. 비가 그쳐 사료와 츄르를 원래 자리에 놓아주며 연이를 아무리 불러보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엔 부시럭부시럭 사료 준비하는 소리만 들려도 베란다 창문 밖 적당한 거리에서 울며 대기하는데 왜? 아깽이들 세 마리만 후다닥 놀라 저 만치 숨었다가 츄르를 핥아먹었다.
7월 15일. 외출 전 아침 일찍 아깽이들을 살피고 사료 줄어든 양을 확인했다. 건사료를 빻아서 아깽이들용으로 놓아주었는데, 절반 이상 남은 걸 보니 밤새 연이가 와서 먹은 흔적도 없었다. 여전히 연이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가 이틀은 굶을 수 있다고 하니, 어디 탐험을 갔더라도 배가 고파서라도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연이야, 어딜 간 거니?
7월 16일. 연이는 오늘도 실종상태다. 아깽이들은 어미가 없으니 더욱 의기소침 날 보면 겁에 질려 구석에 숨고, 사료와 츄르를 놓아주어도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 마음 놓고 먹어라, 창문을 닫고 기다리다 한참만에 열어보니 위에 얹어준 츄르만 사라졌다. 연이 젖 대신 물이라도 많이 마셔야할텐데, 물 좀 마셔, 니네 엄마 어디 갔니, 물어보아도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불안해죽겠다. 오늘로 사흘째인데 대체 연이는 어디에 있을까? 폭우 속에 돌아다니다 혹시 아파서 어디 쓰러져 있으면 어쩌나 불안하다. 설상가상 좀 전엔 고양이 발정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연이가 벌써?! 후다닥 내다보니 낯선 누렁검정 고양이 한 마리가 철망 너머에서 울어대고 있었다. 아깽이들은 벽틈으로 다 숨어버리고... 눈싸움만으로는 물러나지 않아서 결국 집게를 휘둘러 쫓아보냈다.
연이의 출산과 육아가 너무 괴로워보여서, 찬 바람이 불면 꼭 중성화수술을 받게 해주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혹서기엔 중성화수술 신청을 받지도 않고, 원래도 수유기간에는 수술을 해주면 안되므로 더위가 한풀 꺾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중성화수술을 받게 해야지 작정한 거다. 친구네 고양이와 비교하니 지난 1년간 사료를 잘 챙겨 먹였다고 해도 새삼 연이가 성묘 치고도 얼마나 작고 연약한 고양이인지 알 수 있었다. 작년 어미 양양이와 비교해도 연이가 좀 더 작은 것 같다. 그 몸으로 네 마리나 낳아서 돌보려니 힘에 부칠만도 했을 듯.
작년에 새끼를 두고 양양이가 사라졌을 때 내가 섭섭하고 괴씸해하자,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므로 함부로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되며 호르몬이 유발한 모성 본능이 사라져 제 갈 길 갔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초보 엄마냥인 연이 편이어서 천방지축 말도 안 듣고 지저분한 새끼들을 돌보다 지친 연이가 에라 모르겠다 가출을 감행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엄마냥 연이를 힘들게 만든 아깽이들도 얄밉고 아빠로 추정되는 하늘이도 밉고...
아무튼 연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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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네 아깽이들 이름을 드디어 정했다. 실은 봄여름가을겨울도 가장 마지막까지 물망에 올랐다. 봄과 함께 떠나버린 줄무늬 아깽이를 봄이라고 하고, 남은 세 아이들을 여름, 가을, 겨울로 부를까 싶었던 것. 그러나 그렇게 애들 이름을 정하면 부를 때마다 언제나 봄이와 함께 연상될테고, 계절 지날 때마다 어쩐지 불안할 것 같았다. 또한 연이, 진이가 외자 이름이어서 두자 이름 부르는 거 은근 귀찮게 느껴졌다. 외자 이름 단촐하고 경제적(?)이고 부르기 편하고 좋다! 게다가 임시로 불렀던 하양이=설(雪), 점박이=점(點), 까망이=묵(墨). 이렇게 부르면 직관적으로 딱딱 연결되고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다.  

왼쪽부터 묵이, 점이, 설이

고양이는 숫자를 세지 못하기 때문에 연이가 아깽이 한 마리 없어진 거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친구 말을 들으니 뭔가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연이도 아직 두살 애기인데 아깽이 세마리 돌보기도 너무 고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깽이들이 점점 자라고 몸도 커져서 연이한테 매달려 다퉈가며 젖먹는 걸 보면 좀 안쓰럽다. 30도 넘는 날씨에 젖먹이들 엉겨붙어 있으면 얼마나 더 더울까.

좌: 6월9일 연이와 묵이, 우: 6월22일 위부터 설이, 묵이, 점이 

아깽이 네 마리중 가장 막내라고 여겼던 설이는 어느덧 가장 움직임이 활발하고 덩치도 우람해져, 형제들에게 장난을 제일 먼저 거는 편이다. 묵이도 설이 못지 않게 장난꾸러기라서 걸핏하면 겨울집과 바깥 박스 사이 틈새로 들어갔다가 못나오고 울어 연이가 구출해내야 한다. 현재 체구도 가장 작고 얌전한 녀석은 점이다. 눈꼽도 제일 많이 낀 모습이라 걱정했는데 셋이 우당탕탕 뛰놀거나 레슬링을 하는 모습을 보면 또 안심이 된다.  

위 오른쪽 사진에 놓인 동그란 스크래처는 비 맞지 말라고 처마 안쪽으로 놓아두면 녀석들이 계속 밀어내서 늘 지붕 끄트머리에 가 있기 일쑤였다. 떨어질까 조마조마해서 잠자리채로 안으로 당겨놓으면 언제나 또 그 자리... 알루미늄 호일 뭉치는 그냥 작은 것 하나만 스크래처 안에 담아 두번째 집안에 넣어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 제일 큰 뭉치가 스크래처 안에 들어 있었다. 공굴리기 하듯 갖고 놀다가 영차 안에 던져 넣은 걸까? 귀여워라. 가끔은 드르륵드르륵 요란한 소리가 들려 내다보면 돌멩이를 굴리며 놀고 있다! ㅋㅋ 놀이동산 꾸미듯이 친구가 보내준 장난감들을 놓아주었으나 거의 외면하고 구경만 하는 것 같다. 길냥이들은 자연과 노는 걸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지붕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멈춰 있던 스크래처는 결국 어젠 마당으로 떨어뜨렸더라. 얼른 주워다가 다시 집앞에 놓아주었다. 위 사진은 6월 19일에 찍은 점이와 묵이. 묵이 눈과 표정이 가장 초롱초롱 건강해보이고, 점이가 가장 비실비실 아파보였다. 연이한테 내가 혀를 날름날름 시범을 보이며 아깽이들 그루밍 좀 더 해주라고 잔소리를 꽤나 했는데 그게 먹힌 걸까.. 그래도 눈상태가 차츰 나아가는 모습이다. ㅠ.ㅠ 

고양이 애호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어떻게든 아깽이들을 잡아 병원에 데려갈 것인가 고민도 오래 했었는데, 일단 접근도 쉽질 않고 벽틈으로 숨어버리는 아이들을 잡을 방법도 막막한 가운데 연이가 그래도 엄마 노릇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겁쟁이 준집사는 그냥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병원에 데려가거나 사진으로 눈약을 처방받더라도 약을 자주 넣어줘야한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ㅠ.ㅠ 그렇다고 외면할 수만도 없어서 아깽이들 눈에 좋다는 영양제와 유산균 영양제를 구매했다. 유산균은 나도 아직 안 먹어봤는데 ㅋㅋ 암튼 면역력이 높아지면 연이도 아깽이들도 더 건강해지겠지 싶어서 처음엔 물에 타서 줘보다가, 무색무취라더니 물 색깔이 약간 변해서 애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 그 뒤론 그냥 사료와 츄르에 섞어준다. 아깽이들의 섭취량까지 미세하게 적용할 순 없지만 그래도 연이 젖을 통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

 

좌: 6월 16일 낮잠 가족 줌으로 도촬. 우: 어제 마당에서 주워온 스크래처에 들어가 노는 설이.

어제만 해도 날이 더워서 그간 한낮엔 주로 늘어져서 낮잠을 자다가 아침 일찍과 저녁무렵에 시끄럽게 뛰놀곤 했는데,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이니 또 걱정이다. 억수로 쏟아질 땐 처마 밑 상자 안이라도 빗물이 좀 튀길 것 같아 좀 아까 골프 우산을 살짝 씌워놓았다. 연이와 세 아깽이 모두 축축하고 눅눅한 장마철을 건강하게 무사히 잘 넘기길 빌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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