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8.01.31 눈이 왔는데;; 4
  2. 2016.02.29 어제 눈 풍경 6
  3. 2015.12.03 눈길 4
  4. 2015.11.23 북해도(11/9일-12일) 7
  5. 2015.02.24 눈길 등산 4
  6. 2015.01.06 지는 해
  7. 2013.03.21 종묘 8
  8. 2013.01.02 눈이 와도 너~무 온다 7
  9. 2012.12.06 스팅: Back to Bass Tour in Seoul 10
  10. 2012.02.03 영하 17.1도 6

눈이 왔는데;;

투덜일기 2018. 1. 31. 22:26


어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처음엔 정말로 재가 날리나 싶었던 가는 눈발은 어느틈에 함박눈으로 변했고 두어시간 사이 수북하게 싸였다. 해저문 저녁 왕비마마 등쌀에 또 내려가 아픈 손목으로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이젠 정말 이 건물에 눈 쓰는 사람이 나 아니면 울엄마뿐이다. 아래층 101호 아저씨는 늘 한밤중에 귀가해 오전내내 자는 것 같고 (그래서 종종 밥때를 놓쳐 마당에 묶인 개가 한밤중에 쇠사슬을 쩔그럭거리며 빈 밥그릇을 발로 차는 게 아닐까) 새로 102호 이사온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고 가끔 밤에 불이 켜진 것만 보았는데... 어제 보니 마당 눈을 밟고 망설임없이 집으로 들어갔더라. 하긴 나라도 이런 집에 세들어 살면서 마당 쓸기 의무를 느꼈을 거 같진 않다. ㅋㅋ 그러나 또 착한 나와 엄마는 맨날 아래 두 집 현관 앞과 계단까지 눈을 쓸어준다. 야박하게 계단에서 우리집 현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만 내는 건 또 좀 아니다 싶어서... 다행히 어제 눈은 별로 수분이 없어 무겁지 않았고 금방 쓸렸다. 다행히도.

째뜬 아마 무릎이 아프지 않았으면 오늘 신이 나서 눈 밟으러 동네 앞산에 올라갔을 텐데 ㅠ.ㅠ 나중을 기약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미끄러운 눈길에 발목과 무릎에 힘주어 걷다보면 멀쩡한 다리도 퍽퍽한데, 괜히 넘어지기나 하면 큰 낭패.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바닥 울퉁불퉁 안 미끄러운 패딩 부츠 신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투덜투덜 커피나 마시자 생각하며 휴대폰에 든 설경 사진을 되돌아보는데, 어랏 맞다, 적년 겨울엔 앞산에 눈 구경 가서 동영상도 찍었었지! 하는 깨달음. 그리고 마침 어제 여기 동영상을 직접 올리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다, 곧바로 활용해야지.

휴대폰 스피커로 듣는 바람 소리랑 컴퓨터 스피커 바람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그간 계속 욕만 했는데 ㅋㅋ 새삼 쓸만한 티스토리.

그치만 동영상 초보라 가만히 못 들고 있고 이리저리 휘둘러대서 좀 어지럽다고 미리 고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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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눈 풍경

투덜일기 2016. 2. 29. 13:22

3월이 코앞인데 어젠 어쩜 그리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지. 창밖을 내다보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실컷 보는 눈일 거란 생각에 충동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다 저녁때 집을 나섰다.
눈덮인 숲길을 자박자박 걷고 싶어!

산길은 생각보다 미끄러워서 한시간 남짓 걷다가 돌아서야했지만 뿌듯한 산책이었다. 오늘도 듬성듬성 눈발이 날리고는 있지만 맑고 쨍한 추위에, 어제 눈속을 헤집고 돌아다닌 기억이 거의 꿈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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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5. 12. 3. 22:06

오늘은 이상하게 눈길을 걷고 싶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나게 눈을 밟으면서.

그러나 느즈막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푹한 날씨에 벌써 눈은 거의 다 녹아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뭇가지에나 조금 매달려있을뿐.. 

그렇다면 방법은? 동네 산에라도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마침 도서관에 책 갖다줄 것도 있겠다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이라지만, 산속은 그래도 추울지 모르니깐 따뜻한 물도 좀 챙기고 귤도 하나 주머니에 넣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꽤나 싸늘. 후드티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눈내린 날의 늦은 오후. 늘 사람들로 버글거리던 개천변 산책길에도 인적이 드물더니만 산길을 오르는 오솔길엔 사람구경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아이 좋아라. 온 산이 다 내것이여~

공포영화나 롤러코스터는 무서워하지만, 혼자 집에 있는다든지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것,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는 따위는 무섭지 않다.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야 괜히 무섭지... 산속에서 저 멀리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불현듯나타나는 할매, 할배들이 아예 없어서 더 좋았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분위기.

하지만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길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죄다 질퍽질퍽 녹아버렸;;; 그래도 실망은 일렀다. 정상 봉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자 그때부턴 정말로 눈길 시작. 사람들이 죄다 밟고 다니긴 했어도 뽀드득뽀드득 제대로 소리도 나주시고, 오가는 바람에 눈보라가 가끔씩 마구 휘날려주시고,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정상 봉수대에서 한바퀴 서울시내를 내려다본 뒤 미지근하게 식은 물 원샷하고는 서둘러 내려오는 길.... 아 쒸.. 길을 잘못들었다. 새하얗게 눈이 덮인,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싶다는 이상한 로망이 있지만, 게으름 때문에 도무지 실천을 못하는 것말고도 혹시 산속에서 괜히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동네 산이기는 해도, 아니 동네 산이기 때문에 길이 하도 여러갈래라서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다른 동네로 내려가기십상인 게 이 동네 @산이다. 

거기다 자락길까지 만들어놔서 사방팔방으로 다 통하게 해놨으니... 곳곳에서 만나지는 정자도 비슷비슷, 운동기구도 비슷비슷, 약수터도 비슷비슷... 오늘은 그냥 눈 녹은 길만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어디선가 방향을 잘못 들었나보았다. 

올라갈 때 본 정자가 틀림없는 줄 알고 내려가보니 완전히 낯선 길 옆이었다. 젠장. 머릿속으로 방향을 더듬어 내려간 곳은 당연히 연희동 쪽인 줄 알고 방향을 틀어 걸어갔는데.. 아 놔... 또 멘붕. 내가 내려간 곳은 연희동쪽이 아니고 정 반대인 무악재쪽이었다. ㅋㅋ 완전히 산을 넘어가버렸네그려. 그나마 중턱에 뚫린 자락길을 다시 돌아서 무사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왔지만, 길 잃은 줄도 모르고 산속에서 좋아라 사진 찍고 흥얼대다가 맑아졌던 파란 하늘이 다시 구름으로 덮이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순간 살짝 겁이 났다.

여기서 괜히 빙판길에(점점 기온이 떨어졌는지 중턱 아래쪽도 눈길이 얼어붙기 시작) 넘어져 팔이라도 부러지면 혼자서 낑낑대며 병원까지 가야하는 건가 어쩐가...  ㅋ 왜 괜히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자책하며 킥킥거렸다. 당연히 조심조심 걸어 한번도 안넘어졌음.   

올초부터 눈길에 꼭대기까지 안가본 것도 아니고... 늘 다니던 산길에서 길을 잃다니 (역시 눈이 덮이면 다 낯설어보인다) 좀 바보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하고 보람찼던 눈길 탐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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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11/9일-12일)

여행담 2015. 11. 23. 15:55

북해도에 여행을 간다면 당연히 눈 엄청 쌓인 겨울에 가게 되리라, 눈밭에서 킬킬대며 오겡끼데스까.. 한판 외쳐주리라 상상했지만.. 인생은 역시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11월로 친구의 휴가가 잡히고선 제일 먼저 제주 여행을 계획했고, 그 다음은 북해도 3박4일 패키지를 눈빠지게 뒤졌다. 친구 일행의 국내일주 패키지 여행이 월요일에 부산에서 끝나는 일정이라 무조건 부산 출발 상품을 찾아야했는데... 당연히 인천이나 김포 출발 상품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째뜬 모객 안돼서 취소될까봐 조마조마 애태우다 결국 부산에서 삿포로로 출발! 


2시간쯤 날아가 내린 삿포로 공항에서 처음 마주한 유리창 밖 북해도 풍경

​2시 비행기로 부산을 떠났는데 2시간 만에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보니 벌써 어둑어둑... 아 놔;; 11월의 북해도는 5시면 해가 진단다. 게다가 날씨도 꾸물꾸물...​ 

몇미터나 쌓인 눈구경은커녕, 처음 이틀은 우산 펼쳐들고 차가운 빗속을 쏘다녀야했다. 뿌연 구름과 빗속에 내려다본 삿포로시내 전경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고, 곧장 오타루로 이동.

놀이공원처럼 꾸며놓은 무슨 과자공장이다. 우린 대체로 시큰둥 본체만체했으나.. 중국관광객들은 열광하며 쇼핑열을 올렸다


오타루 운하 주변에 시멘트벽돌로 지은 이런 건물들이 다 공방이고 기념품 가게다. 100년 넘은 건물이라 나름 문화​재라는듯.. 유리공예가 유명하다는데 수제품이다보니 가격이 당연히 사악하고 ^^; 내눈엔 별로 이쁜 줄도 모르겠더라.차라리 건물 뒤쪽의 좁은 골목이 더 흥미로웠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문연데가 별로 없었다. 오전이라 이제 겨우 점심장사 준비중... 운하를 따라서 바다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후쿠오카 갔을 때도 그랬지만 '운하'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옛날 배가 워낙 작았으려니... ㅋㅋ 

그러고는 오타루 오르골 박물관 차례. 

오른쪽 사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드넓은 실내가 나온다. 건물 앞에 있는 시계는 매시간마다(매 30분마다던가) 뿌뿌 수증기를 뿜으며 울어댄다. 이 주변 골목이 죄다 기념품가게 거리. 쇼핑하라고 자유시간을 꽤 많이 줬는데(1시간     반이었던가), 우린 얼른 오르골 한개씩 고르고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죽때리다 ^^; 시간 맞춰 나왔다. 

비가 와서 더더욱 해가 일찍 지기도 했지만, 가이드는 지가 빨랑 쉬고 싶은 건지 빡시게 일정을 소화하곤 매일같이 4시쯤이면 얼른얼른 온천호텔에 들여보냈다. 식사하기 전에 온천 한판 하라나... 어딜 가나 설명은 제대로 안하고 (차라리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계시든지!) 계속 본인 개인사만 주절저줄 풀어놓는 가이드가 엄청 미워서, 돌아오면 여행사 홈페이지에 바가지로 욕을 써주마 하며 휴대폰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어왔었는데... 다 부질없다 싶어서 관뒀다. ^^; 


밤새 내린 비는 다행히 사흘째아침부터 쨍하니 갰고, 도야호수를 보러 산을 넘어가다 드디어 설경을 만났다.​ 멀리 만년설 쌓인 산구경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가 눈구경을 하다니, 그나마 운이 좋았다.  


도야호수에서 탄 '성 모양'의 유람선은.. 으음.. 안습이라고할 밖에... 

다만 풍경사진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와 찍힌 갈매기 모습이 좀 신기했다. ​물론.. 언니들이 일본 새우깡으로 한참 배를 불린 다음이긴 하지만..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시라오이에 있는 아이누족 민속촌과 유황냄새 풀풀나는 화산 아래 조잔케이 지옥(?)계곡. 후대에 만들어놓은 민속촌은 세계 어딜 가나 그 박제된 느낌이 좀 유치하고 서글프고 짠한 구석이 있다. 그나마 요즘 용인 민속촌은 기발한 알바생 연기자들 때문에 인기가 높아졌다는데... 전통복장으로 옛모습 재현하며 돈벌이를 한다는 건 유의미한 일이라도 좀 처연하다(고 나는 생각). 

곰을 신으로 숭상한다는데 마을 입구에 곰을 가둬놓은 우리가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든 걸지도...

마지막날 다시 삿포로 시내구경. 

옛날 도청건물이라나 뭐라나... 빨간 벽돌건물 주변 공원에서 다시 가을을 만끽했다.

마침.. 무슨 일인지 기모노 입고 단체로 촬영나오신 아주머니(?)들을 몰래몰래 구경하다 도촬에 성공.. (죄송합니다;;)  여기가 일본이구나 하는 걸 가장 실감했던 순간이랄까.. ㅋㅋ

아마도 오오도리 공원이라고 했던가.. 은행나무가 참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북해도엘 간건지.. 그냥 일본의 어느 온천 유람을 다닌건지 별로 다른 느낌이 없었다. ㅠ.ㅠ 그나마 눈구경을 한 걸로 위안을 삼으려해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 째뜬 원래 LA에서도 사우나와 찜질방을 즐긴다는 친구는 지난번에 이어 요번 일본여행에서 날마다 즐긴 온천이 제일 좋았다는 것 같고... 사우나도 싫고 온천은 난생처음 경험한다는 세 언니들도 온천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첫날 빼고 두밤은 계속 호텔도 다다미방으로 배정받아서 저녁먹으러 다녀온 사이 이불 깔아주는 우렁각시 서비스도 좋아들 했다.  

 

마지막으로 재미난 이야기 하나. ^^; 북해도 여행일행은 6명이었는데, 친구네 세자매와 나, 그리고 큰언니의 친구가 딸을 동반했다(올케가 빠진 대신에;;). 부산 출발이다보니 대부분 그 지역주민일 수밖에 없고 다들 구수한 사투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인원수로 보나 구성원으로 보나 우리만 좀 튀는 듯했다. 버스 1대 일행이 모두 25명이었는데 (혼자 온 젊은 청년도 있었음), 다들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엄청 궁금해하셨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몇몇분이 슬쩍 물어서 대충 이야기를 했다는데... (3자매는 미국 LA에서 왔구요, 첫째랑 셋째가 친구들 한명씩 데려온 거예요. 어린 아가씨는 친구 딸이구요...)

문제는 과잉친절인지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가이드가 매일밤마다 호텔 방배정표를 복사해서 열쇠와 함께 나눠줬다는 것! 거기엔 여행자들의 이름이 죄다 적혀 있었다!(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가이드의 그 행위도 진짜 마음에 안들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건 도대체 누구누구가 자매인가 하는 것 때문이이었다. 나의 친구와 둘째언니는 종종 쌍둥이로 오인될 정도로 닮았으니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문제는 '성' 때문이었다.

6명 여자들이 성이 다 다른 것! ^^ 아니 자매라면서 왜?? 이OO, 권OO, 정OO, 박OOO, 조OO, ㅂOO. 성이 같은 여자들이 아무도 없어! 아니 그렇다면 죄다 아버지가 다른 동복자매??? ㅋㅋㅋ 다들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드디어 마지막날 비행기를 타기 직전 들른 면세점 쇼핑 때, 살 것 없어 빈둥거리는 나의 친구에게 일행중 가장 연장자이신 70대 할아버지가 물어봤단다. 자매라면서... 대체 누가 언니동생인가? 노상 혼자 다니는 사람(모험심파 작은 언니!)은 왜?  친구는 열심히 설명을 했드렸다는데, 그래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듣던 할아버지가 한 마디... 아 근데 왜 성이 다 다른가...

크하하하...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세자매가 누군지 나름 설명을 했다는데 (아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어디서든 신상 파악하는 병좀 고쳤으면..)  도무지 입력이 안됐던 이유가 각기 다른 '성' 때문이었다. 미국 아줌마들은 결혼하면 다 남편 성으로 바꾼다고..  결혼하기 전 성은 '조'씨라고 (큰언니만 유지하고 있음 ㅋㅋ) 설명함으로써 미스터리를 풀어드렸으나, 할아버지는 딱히 납득한 표정이 아니더란다. 

아마 다른 일행들은 끝까지 어머니가 3혼을 해서 각기 성 다른 딸을 셋 낳아 기른 집에서 친구들 데리고 여행온 줄 알았을 듯.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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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등산

놀잇감 2015. 2. 24. 20:19

설날 이전 주말에 정선 함백산으로 눈길 등산을 갔었다. 아이젠과 스패츠까지 구비해야하는 본격 눈길 산행은 하도 간만인데다가, 남한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해서 겁을 집어먹었는데 다행히 새벽에 출발해 당일로 다녀오려니 꽤나 높은 지점(해발 800미터쯤인 만항재??라던가;;)에서 산행을 시작해 그리 오래 걸리는 코스는 아니었다. 서울 기온은 영상이어도, 함백산은 쾌적한 날씨에 영하3,4도 정도 될거라는 예상. 헌데 하루종일 어찌나 날씨가 변화무쌍한지... 눈보라가 휘날리다가 쨍쨍 햇빛이 비치다가 다시 컴컴하게 흐렸다가...  워낙 가물어 눈이 별로 없는 거라는데도 중간중간 엄청난 눈길이 나왔다가 질질 누런 물이 흐르는 진창길이 이어지다가... 귀시렵고 코시려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다가... 아주 정신이 쏙 빠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2월에 눈길 산행할 수 있는 곳이 몇 안되다 보니 등산객들이 워낙 많아서 곳곳에 병목 정체현상(!)이 벌어져 빨랑 올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구간이 많았다는 점. ㅎㅎ 원래는 3,40분씩 내달리듯 강행군 하다가 모여서 단체로 간식 먹으며 잠시 쉬곤 하는데 하도 중간중간 막히다보니 산 정상을 넘어서기까지 제대로 간식 먹을 시간도 없었다. 점심시간에야 비로소 죄다 모여 눈밭에 옹기종기 앉아 보온도시락을 까먹었다.  

 

왼쪽이 내 스틱과 장갑. 저 장갑은 아빠가 쓰시던 거다. 유품정리하면서 차마 아까워서 남겨두긴 했지만... 저 등산 장갑을 내가 끼고 겨울산행을 하게될 줄은 아빠도 몰랐겠고 나도 몰랐다.

​위의 사진 두 장은 그나마 바람 덜한 비탈사면 옆에서 점심 먹느라 멈췄을 때 찍은 것. 하도 가물어서 산불을 염려해 폐쇄된 등산로도 많다는데 초보자인 내 눈엔 저만큼 쌓인 눈도 신기할 따름이고...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겹겹이 얼어붙어 바람결따라 희한한 눈꽃을 피운 걸 '상고대'라고 한다는데, 강원도도 계속 워낙 기온이 높아 눈꽃을 볼 순 없어 다들 아쉬워했지만, 난 원없이 눈을 밟은 것 같아 그저 좋았다. 이번 겨울에 가장 장대한 눈구경은 의외로 터키 갔을 때였으니 뭐;;; 

​하산 길엔 스틱을 매만진다거나 모자를 고쳐쓴다거나 해서 조금만 머뭇거리다간 종종 저런 인적 드문 눈길에 홀로 남게 됐다. 서둘러 따라갈 걱정 속에서도 기뻐하며 얼른 휴대폰을 꺼내들고 후딱 눌렀더니 흔들렸다. ㅋㅋ 잘 따라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진 찍는다고 더 꾸물거리면 혼날까봐(?) 감히 등산 중엔 폰카질을 할 엄두도 못내겠고, 사실 헥헥거릴 때는 힘들어서 사진찍을 생각도 잘 나질 않는다. ㅎㅎ

등산가서 꼭 정상 표지석 옆에서 독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은 '늙은이'라는 증거란다. 이 집단도 반드시 정상 표지석 옆에 사람들 죄다 모아놓고 단체사진을 찍는데, 웃기고 어색하지만 이젠 나도 그러려니 하며 한쪽 귀퉁이에서 얼굴이 특히 넙대대하게 나오든 말든 참아낸다. 궁궐에서 어쩔 수 없이 찍히는 사진에 무감각해졌듯이 어떻게 나오든 말든 내가 열심히 들여다볼 게 아니니 상관없다는 생각. ㅋㅋ 점점 대인배가 되어가고 있는 건가? 

암튼 아이젠을 등산화에 끼고 걸으면 체력소모가 더하다는데, 딱히 더 힘든 느낌이 없었던 건 오르막길마다 거의 계속 막혀서 크게 힘들일 일이 없었기때문일까, 아니면 연초부터 휴대폰에 앱까지 깔아놓고 근력+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일까 통 알수가 없다. 등산 고수들은 눈도 많지 않고 정체 현상 때문에 제대로 등산다운 등산을 못했다고 투덜댔으니 아무래도 전자가 원인인 것 같지만... 2월 들어선 통 앞산에도 한번 안 올라간 터라 근력이 과연 늘었는지 모르겠다. 점점 늘어나는 몸무게의 대부분은 과연 지방일까 근육일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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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

투덜일기 2015. 1. 6. 16:24

올해는 내 몸을 각별히 아껴주겠노라, 작심했던 대로 점심 먹고 느즈막히 올라간 앞산은 얕봤던 나를 조롱하듯 영상 날씨에도 곳곳에 빙판길, 눈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노상 다니던 길이라 여겼건만 심지어 눈이 덮여 있으니, 어느 결에 길을 잘못들어 한참이나 눈길을 버둥버둥 뒤뚱거리며 되돌아 나와야 했고 그럼에도 오기가 발동해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휘청휘청 미끄덩, 콰당 넘어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눈길로 내려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내려올 땐 멀리 덜 얼어붙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조심조심 한발짝씩 옮기다보니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그러고 보니 새해들어 처음으로 유심히 바라보는 해렸다. 게으른 올빼미는 당연히 뜨는 해를 본 기억보다 지는 해를 바라본 기억이 수백배는 많을 듯 싶은데, 그나마도 볼 때마다 낯설고 신기하다. 뜨는 해 지는 해는 눈이 덜 부셔서 그건가, 중천에서 빛날 때보다 왜 훨씬 더 커보이는지. 

암튼 새해들어 나흘만에 겨우 올려다본 하늘과 태양이니 기념으로 담아두기로. 짬 날 때마다 하늘과 바람을 올려다보며 한숨 돌리는 것도 올해의 작심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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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놀잇감 2013. 3. 21. 00:33

탑골 공원의 노인들이 대거 종묘 앞 공원으로 몰려들면서 종묘는 내게 더더욱 매력없는 곳으로 자리잡았던 것 같다. 파르테논 신전 기둥들만 위대하다 구경다닐 게 아니라고, 조선 왕들의 사당인 종묘 역시 신전으로서의 위엄과 품격을 갖춘 곳이라고 책에서 읽긴 했어도 내심으론 좀 미심쩍었다. 지나치게 길쭉하기만 한 종묘 건물들 역시 아름다운 한옥에 속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궁궐들과 달리 종묘에 대해선 그렇게 좀 삐딱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론수업에 이어 답사를 가보고는 의외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 설명에 쏙 빠져들었다. 종묘제례 순서와 음악과 제관들의 역할과 동선, 각종 제물과 제기 놓는 위치까지 죄다 기록으로 남겨놓아,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실연할 수 있게 해놓다니, 비록 망하긴 했어도 조선의 문화수준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종묘 정전의 모습. 신실의 수는 모두 19칸이란다. 좌우행각을 잘라도 워낙 길어 한 화면에 잡을 수가 없다.

종묘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답사를 다녀온 이후에도 잘 모르겠다만 ^^; 왜 그렇게 건물이 마냥 옆으로만 길어졌는지 사연을 들여다보면 결국 저 아랫동네 종가집 제사 문화와도 관련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종묘는 궁궐보다도 먼저 지어졌다.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 그리고 곡식과 땅의 신을 모시는 사직이 국가의 근간으로 궁궐보다도 더 중요했단 얘기다. 사극에서 만날 '종묘사직' 운운하는 이야기가 그 때문이란다.

 

암튼 천자국은 7묘, 제후국은 5묘가 당시 예법이고 왕실제사도 4대조만 봉사하면 되므로 신실 5칸만 만들어놓으면 되는데 왜 저렇게 자꾸만 길이가 늘어났느냐. 그건 결국 '효'를 확장하면 '충'이 되는 유교원리를 널리 지배이데올로기로 고착시키기 위한 일환인 것 같다. 그리고 그놈의 '정'과 '정통성에 대한 집착'? ^^; 세월이 흘러흘러 4대조 봉사에서 벗어나는 까마득한 조상 신주는 옆에 따로 마련한 영녕전으로 옮기면 그뿐인데,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니 옮길 수가 없어 그냥 놔두었고, 태종도 공이 많으니 그냥 놔두었고, 세종대왕은 당연히 위대한 왕이므로 옮길 수가 없었고... '불천지주'라고 해서 옮기지 않는 신주가 늘어나면서, 신실을 늘려짓게 된 거다. 종묘에선 서쪽이 높은 자리라서 왼쪽 신실은 그대로 두고 계속해서 오른쪽으로만...  

이성계가 추존한 4대조와 정전에서 밀려난 나머지 왕들의 신주가 있는 영녕전. 여긴 지붕높이로도 가운데 4칸이 가장 선대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공덕이 높은 선대 왕만 정전에 계속 두기로 원칙을 세웠지만, 왕이 되고 보니 자기 아버지가 '불천지주'가 되야 그야말로 '끝발'이 서는 셈이니 숙종 같은 임금은 아직 신주 옮길 순서도 되지 않은(원래 4대째 후손 왕이 신하들과 논의하여 정해야 하는데!) 아버지 신주를 후다닥 불천지주로 정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암튼 그래서 몇칸씩 자꾸만 미리 늘려지어놓은 정전 신실이 무려 19칸에 이르게 됐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걸 다시 지은 원래 건물 부분의 기둥은 배흘림 기둥이고 후대에 증축한 부분의 기둥은 민흘림 기둥이라나 뭐라나... 예리한 눈으로는 기둥 다른 것도 구분할 수 있다는데 난 설명듣기에 바빠 그것까지 확인하진 못했다. ^^

 

하여간에 종묘를 직접 가보고서 처음 알게된 것 하나는 내가 그간 왕릉 구경다니면서도 궁궐과 똑같이 가운데가 어도이고 좌우가 문무 신하들이 다니는 길이라 착각했던, 박석 깔린 길의 용도였다! 아 글쎄, 가운데는 신주와 주요 제례용품(을 옮기는 제관)만 다닐 수 있는 신도이고 오른쪽이 왕이 다니는 길, 왼쪽이 세자가 다니는 길이었단다. 대동한 신하들은 박석에도 못 올라갔단 얘기. 심지어 종묘 정전과 영녕전 앞의 대문도 신주와 주요 제례용품만 드나들 수 있다. 왕릉 홍살문이 신성한 공간임을 가리키는 곳이란 건 전에도 알고 있었는데, 양쪽 대문도 궁궐문처럼 다 막힌 판문이 아니라 홍살문처럼 위쪽이 뚫려있었다. 왕과 제관들은 종묘 입구부터 아예 동선이 달라져서 옷 갈아입고 목욕제례 준비하는 별도의 건물로 들어갔다가 동문으로 입장한단다. 악공 같은 하급 관리들은 동문 출입도 안되고 반대편 서문으로 드나든다고.

 

그래서 답사 설명 내내 교육생과 관람객들에게 함부로 한 가운데 신도를 밟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졌고, 종묘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내용이 적힌 팻말도 서 있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런데 계속 신경을 쓰는가 말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인 것을. ㅋㅋ 하여간 종묘와 왕릉의 가운데 길은 인간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 새롭고 놀라운 발견이었다.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던 제례절차와 제물의 종류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제사 지낼 때 향과 술을 왜 같이 올리는지는 확실히 알았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믿는단다. '혼비백산'이 거기에서 나온 말이라고.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스며드는데, 그래서 혼은 사당에 모시고 묘를 만들어 백과 시신을 함께 모시는 거란다. 제사를 지내려면 혼백을 다시 모셔와야 하니, 향을 피워 혼을 부르고 술을 부어 백을 불러올린다네! 종묘 신실 앞에는 그래서 바닥에 술을 붓는 구멍도 있다고! ^^; 일부 집안에서 제사때 '모사기'라고 하여 모래를 담은 그릇에 술을 붓는 순서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란다. 나로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

 

어쨌거나 재미났던 건 이 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듯, 역대 조선의 왕들도 직접 제사를 올려야하는 날짜가 잡히면 얼마나 부담스러웠던지 종종 병을 앓았단다(가령, 재임기간이 특히나 길었던 영조가 와병으로 제사를 친히 지내지 못해 개탄하는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나온다고;;). <국조오례의> 율법에 따라 왕이 직접 가는 제사(친행)와 신하를 대신 제관으로 보내는 제사(섭행)가 구분되어 있었는데, 왕이 제사증후군 때문에 지엄한 국법을 더러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ㅋㅋㅋㅋ 그 옛날 왕실 제사도 그럴진대 요즘 우리들 제사야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그런데도 요즘 일부 종가집에서는 까마득한 몇대 조 할아버지 제사며 시제까지 꼬박꼬박 지내고 있으니... 전통을 따진다면 수천년전 전통이 더 역사 깊고 오래 된 것이고 조선의 역사는 불과 6백년인데 뭘 그리 예법 따지고 전통 따지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왕실사당에서 유교 예법에 맞춰 4대조 봉사를 하고, 심지어 불천지주를 정하여 수많은 선대왕에게 1년에도 몇번씩 제사를 지내긴 했지만 영녕전으로 옮긴 왕들에 대해서는 1년에 딱 한번 한식에만 제사를 지냈다. 오 나름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놀랍게도 양반가에서도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대부분 4대조 봉사를 하지 않았단다. 간편하게 부모님 제사만 올리는 것이 대세! 하기야 부모 돌아가시면 3년상씩이나 해야하는데, 어떻게 고조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챙기겠나! 

 

신분 가리지 않고 고조부까지 4대 봉사를 한 건 순전히 조선후기 들어 성리학에 지나치게 얽매인 지배층의 의식변화 때문이었다. 심지어 조선중기까지는 딸, 아들 구분없이 제사와 차례를 나누어 모시거나 번갈아 모셨으며 재산분배도 동등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전체적인 나라 살림살이가 거덜난 가운데 빈부상하 할 것 없이 4대 봉사의 전통이 서서히 자리잡으면서 유산과 제사 모두 장자에게 편중되는(한 놈이라도 먹고 살게 밀어주자;; 뭐 이런 심리) 악습이 시작되고 만 거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민가의 제례가 신분의 격차에 따라 아예 정해져 있었다. 벼슬이 대부 이상은 증조까지 3대, 6품 이상의 벼슬아치는 할아버지까지 2대, 7품 이하의 벼슬아치와 평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면 됐던 거다. 그나마도 불교식이라 매장이나 화장 후 신주는 절에 모셨으므로 실제 제례는 절에 가서 제를 올렸단다. 그러니까 고려시대만 해도 집안에서 복작복작 여자들이 제사음식 장만할 이유가 없었던 거지!

 

설날을 기점으로 차례와 제사가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오면서 당연히 울 엄마를 비롯해 일부 집안 어르신들이 큰 걱정을 했다. 한 번 나간 제사가 다시 돌아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내가 이번 궁궐 수업을 들으러 다닌 건 어쩌면 우리집에 그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안 미지의 힘이 나를 조종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수업때 듣고 책에서 읽은 '옛날 법도'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어르신들의 우려를 쉽사리 잠재울 수 있었다. 성리학의 대표적 인물인 이황, 이이 때만 해도 딸이랑 아들이랑 번갈아가며 부모 제사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데 뭘요! 딸과 사위가 혼례 후 계속 친정에 눌러 살면서 친정집안 제사를 도맡는 경우도 많았단다. 당시 논의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건 현모양처의 화신 신사임당 드립! 오죽헌은 다들 알다시피 신사임당의 친정집, 율곡 이이의 외가다. 그리고 신사임당은 출가 후에도 오죽헌에서 무려 18년을 살았단다. +_+ 친정 집안에 아들이 없기는 했지만, 남편과의 사이가 별로 안좋았다지만 정말 '현모양처' 치고는 대단한 뚝심 아닌가? ㅋㅋㅋ (그 옛날에 신사임당이 18년간 강릉 친정 살면서 시댁 올라가서 제사 지냈겠느냐는 나의 질문에 팔순 큰고모는 대답을 못하셨다 ^^v)

 

현재까지 남아있는 한옥 고택의 사연을 읽다보면 놀랄 때가 많다. 주로 양반 아무개가 장가를 들어 처가집 근처에 새로 지은 집인 경우가 왜 그리 잦은지! 그 옛날엔 영아사망률이 워낙 높다보니 남자가 여자네 집으로 장가를 들러가면 집을 새로 짓든 말든 암튼 친정에서 최소한 3년쯤 첫 아이를 낳아서 무사히 돌잔치를 할 때까지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친정엄마한테 육아 맡기느라고 친정 근처에 집 얻는 요즘 세태와 다른 게 무언가!

 

종묘 이야기하다가 흥분해서 딴소리로 끝나고야 말았지만 하여간에 왕이든 평민이든 제사는 참 부담스러운 행사였다는

점이 이날의 교훈이었다. 그래서 진창에 발이 푹푹 빠지고 돌아다면서도 경쾌하고 기분좋게 답사를 마치고 돌아설 수 있었던 듯. 그날은 겨울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예뻤다. 

 

그러고 보니 밀린 답사후기도 이걸로 끝이다. 이때만해도 사방에 쌓인 눈이 수북했는데, 꽃샘추위라 내일은 날씨가 다시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지만 햇살과 꽃눈을 보면 확실히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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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그믐날 써놓은 일기대로 새해 첫날엔 그간 계속 내린 눈을 고스란히 쓰고 있는 차에 눈도 치우고 집앞 계단에 얼어붙은 얼음도 삽으로 팍팍 찍어 깨뜨렸다. 뭔가 세상에(최소한 아래층 포함 이 집에 사는 몇 안되는 식구들에겐;;) 도움이 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 속에 들어와 특별히 맛있게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얼마 간의 비질, 삽질, 판때기질(?)로 오늘치 운동량을 채울 수 있을까말까 알량하게 계산도 하고... 물론 그림일기 용 사진도 찍었다. ^^v

 

 

 

겨울마다 차에 쌓인 눈을 치울 때 쓰는 물건은 흔히들 책상에 올려놓고 쓰는 초록색 고무판때기다. '판때기질'이라 함은 그러니까 그 초록색 고무판으로 까치발을 들어가며 차 지붕에 있는 눈까지 밀어내고 퍼버리는 노동이다. 그러나 주말엔 날씨가 풀리면서 진눈깨비가 내려서 유리창엔 온통 얼음이 들러붙어있어 말끔하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문도 얼어붙어 열려면 잡아 뜯어야하게 생겼으나, 어차피 토요일까진 탈 일 없으니 패스~

 

후련한 마음으로 들어와 있는데, 저녁먹고 나니 또 다시 온 동네 비질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눈이 또 내렸다. ㅠ.ㅜ 서울 적설량은 3.1cm. 한숨 쉬며 다시 내려가 마당과 계단에 쌓인 눈은 다시 처치했으되, 차를 덮은 눈은 그냥 냅두고 들어왔다. 밤새 또 내릴 지 몰라.

 

올 겨울 들어선 거의 사흘꼴로 눈이 내리는 느낌이다.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지만 작작 좀 내리시지...

 

말하자면 이건 그러니깐  밀렸다 쓰는 '어제 일기'다. 핑계라면 어젯밤에 다시 내린 눈 때문에 김이 샜다는 사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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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1월에 스팅의 심포니시티 투어 공연이 끝나고 나서, 후유증 비슷한 걸 앓으며 스팅 공연을 또 보려면 5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쉬운 마음에 한참이나 공연후기 올린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근데 누군가 자신있게 단언한 사람이 있었다. 스팅, 1년 안에 또 투어 다닐 거니까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라고. 뭔가 좀 아는 관계자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인 것 같아서, 한국엔 언제오나 스팅 공식 사이트를 종종 확인했다. 그러더니 진짜로 전세계 투어 스케줄이 차츰 잡혔고, 유럽과 미주를 죄다 돌고돌고 돌아 이스탄불, 베이루트 등지에 이어 아시아 도시 차례가 도래했다. 또 다시 한겨울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냐!

드디어 서울 공연 날짜가 잡히고 티켓오픈일이 공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온갖 준비를 마쳤으나 ㅠ.ㅠ 막상

티켓오픈 정시에 아무리 재빨리 손을 놀려도 자꾸 순서를 놓친 뒤  성공한 자리는 무려 19번째줄. 컴퓨터도 새걸로 바꿨는데 우쒸! 갈까말까 망설이다 플로어석 거의 제일 뒷줄에서 봤던 작년에 비하면야 엄청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암튼 속상했다. 공식 스팅 팬클럽 유료 멤버십 회원은 더 일찍 예매가능하다고 해서 무려 20달러나 내고 가입했는데, 다른 나라 예매링크는 죄다 들어가지는데 우리나라 예매링크만 먹통인 건 또 뭐냐! 공연 주최측이 어디였는지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각성하라 각성하라! 티켓값은 무려 198,000원이나 받아처먹고도, 멋진 포스터 한장 안 만들어붙였으며 제대로 된 플래카드 한 장 없다니! 공연장 입구를 알리는 싸구려 플래카드도 공연 끝나고 나와보니 이미 치우고 없었다. 현대카드가 슈퍼콘서트 빌미로 티켓값 엄청 올려놨다고 불평했는데, 그래도 걔네들은 시스템이라도 빵빵했구나 싶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판 25주년 기념 앨범 역시 아무래도 짝퉁이 의심된다! +_+

게다가 이번에도 공연날 웬 폭설?! 그나마 작년 공연땐 차타고 가는 중에 폭설에 길이 막혀 지각사태를 빚었던 반면, 눈이 미리 내려 처음부터 차를 버려두고 간 덕분에 일찌감치 올림픽공원에 당도해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19째줄이라고는 해도 정가운데라 스팅의 표정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감지덕지. 폭설 때문에 30분 늦게 시작된 공연은 정말이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2012년 12월 5일 올림픽 체조경기장

우왓... 허스키하면도 동시에 낭낭한 목소리 그대로인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으나 스팅의 외모가 더 젊어진 느낌! 스리살짝 비치면서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로 강조된 저 근육질의 몸매를 보라. ;-p

심포니시티 투어 때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게 아닌데도 5인조 밴드의 완벽하게 꽉찬 연주와 편곡은 음향시설 열악한 체조경기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게다가 예전엔 짧은 인삿말도 고집스레 영어만 고집하더니, 요번엔 우리말로 '안녕 서울!' '고마워'를 외쳐준 스팅. 귀엽다잉...  ㅋ

중간중간 대놓고 관객의 호응과 떼창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행 하나는 요번엔 왜 이렇게 관객한테 요구사항이 많으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으나, 나로선 관객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스팅의 노력에 사람들이 잘 안따라주어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우리 앞줄에 어린 딸 데리고 와 앉았있던 남자들 어쩜.. 박수도 안치고 계속 팔짱관람을 할 수가 있는지! 열살쯤 되보이는 딸아이는 심심해서 계속 핸드폰 게임만 열중하고;;; ㅠ.ㅠ)

예상 세트리스트를 찾아 미리 예습을 하긴 했으나 유럽쪽과 아시아 투어는 역시나 노래들이 좀 달라서 3분의 2만 적중했던 것 같다.  물론 예상했든 안했든 죄다 주옥같은 노래들이었지만서도... 어느덧 2시간 가까운 공연이 막바지로 치달아 앙코르로 Every Breath You Take을 죄다 일어나 떼창으로 부르다, 또 한번의 앙코르 땐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스팅이 직접 도미닉 밀러 대신 기타를 연주하며 Fragile을 불러줄 땐 아쉬움과 동으로 눈물이 다 핑 돌 것 같았다.

한국공연 공식사이트도 없어서 사진 퍼오기 힘들었다..

한국 관객이 워낙 열광적이라 특별히 앙코르 곡을 하나 더 해줬을지도 모른다는 흐뭇한 생각에 공연장을 빠져나왔는데, 중간에 만난 공연 스탭이 절대 양도할 수 없다는 세트리스트를 사진으로나마 찍어오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밀고 보니 ㅋㅋㅋ 다섯 곡의 앙코르 곡까지 죄다 짜여진 각본이었다. 결국 조삼모사였는데도 뿌듯한 걸 어쩌란 말이냐.

어째 후기를 투덜투덜 불평으로 시작한 탓에 그날의 감동이 반감된 듯하지만, 각본이었든 아니든 22곡의 노래와 연주는 모두 훌륭했고 아름다웠다. 두말할 것 없이 올 최고의 공연! d^^b

체조경기장을 2층까지 거의 꽉 채운 관객의 면면을 돌아보니 뜻밖에도 젊고 어린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공연때는 역시나 중장년 관객들의 비중이 엄청났던 것 같은데, 스팅의 매력을 이젠 젊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을까? 나이대가 좀 더 젊어진 듯한 관객층덕분에라도 머지않아 스팅의 내한공연이 또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었다.

아참.. 그나저나 스팅 팬클럽 공식 티셔츠는 신청한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 왜 안오는걸까나... 한국에선 공연 사전 예매도 안됐으니 20달러 내고 그저 그저 반팔 티셔츠 한벌 받는 게 혜택의 전부라는 얘긴데... 끙. 다음 공연땐 입고갈 수 있기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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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7.1도

투덜일기 2012. 2. 3. 03:59

어제 서울 기온이 무려 영하 17.1도였다. 체감온도는 당연히 영하 20도가 넘는다고 했다. 2월 한파로는 55년만이라나 뭐라나. 내 기억으론 평생 겨울 날씨를 다 합쳐도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이런 날은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어야 좋을 텐데 하필 엄니 병원 예약일이었다. 시내 곳곳에 시동 안 걸리거나 시동 꺼져버린 차들이 널려 있다는 뉴스도 들었겠다, 이틀 전 쌓인 눈도 먼저 치워야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미리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6-7센티미터쯤 쌓인 눈을 걷어내는데 어휴... 털장갑 낀 손이 금세 시렵고 뻣뻣해졌다. 어이춰!! 그나마 단번에 시동이 걸려주어 어찌나 기쁜지 원.
 
낮이라 기온이 꽤 올랐는데도 온도 확인을 해보니 영하 10도. 거리엔 다니는 차도 드물어 원래 집에서 10-15분쯤 걸리는 병원까지 딱 6분 걸렸다. 히터에서도 간신히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문제는 주차권 뽑는 기계 앞에서 창문이 열리다 말고 잘 안내려가더라는 것. 눈맞고 나서 녹았던 물이 얼어붙어 아예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는 전에도 겪어봤으나, 이번엔 반뼘쯤 내려가다 말고 윙윙거리기만 했다. 켁. 강추위에 옥외역에서 지하철 문이 안닫혀 난리가 났다더니만 그 비슷한 현상인가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차문을 열고 주차권을 받았다. 그 추위에 한데 서서 주차권 뽑아주는 사람들 불쌍도 하여라...

오늘도 서울은 영하14도까지 내려간단다. 그렇게 춥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추위 속으로 나설 것이다. 문득 남극의 혹한을 묵묵히 견디느라 서로 어깨를 맞대고 모여 번갈아가며 온기를 나누는 펭귄들 생각이 났다. 따뜻한 방안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그래도 동면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나는 비유하자면 부모의 발등을 딛고 따뜻한 뱃속(영하 40도를 넘는 남극의 추위 속에서도 펭귄의 뱃속은 35도를 유지한단다;;)에 들어있는 철부지 새끼펭귄 쯤 되려나. 한겨울의 쨍한 추위가 한여름 더위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기록적인 한파 때문인지 나도 쨍하고 얼얼한 추위에 한 자락 제정신이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몇달치 먹이를 한꺼번에 먹어 몸을 불린 채 겨울잠을 자도, 봄에 깨어나면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 굶어죽기 직전이라는 곰탱이보다야 그래도 매일매일 타고난 식탐을 만족시키며 노동하는 쪽이 낫겠다. 아무렴. 그렇긴 해도 영하 17도는 좀 심했다. 주말부턴 풀린다고 했으니 부디 더는 무시무시한 추위야 오지 마라. 입춘이 바로 내일인데 말이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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