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네 아깽이들 이름을 드디어 정했다. 실은 봄여름가을겨울도 가장 마지막까지 물망에 올랐다. 봄과 함께 떠나버린 줄무늬 아깽이를 봄이라고 하고, 남은 세 아이들을 여름, 가을, 겨울로 부를까 싶었던 것. 그러나 그렇게 애들 이름을 정하면 부를 때마다 언제나 봄이와 함께 연상될테고, 계절 지날 때마다 어쩐지 불안할 것 같았다. 또한 연이, 진이가 외자 이름이어서 두자 이름 부르는 거 은근 귀찮게 느껴졌다. 외자 이름 단촐하고 경제적(?)이고 부르기 편하고 좋다! 게다가 임시로 불렀던 하양이=설(雪), 점박이=점(點), 까망이=묵(墨). 이렇게 부르면 직관적으로 딱딱 연결되고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다.  

왼쪽부터 묵이, 점이, 설이

고양이는 숫자를 세지 못하기 때문에 연이가 아깽이 한 마리 없어진 거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친구 말을 들으니 뭔가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연이도 아직 두살 애기인데 아깽이 세마리 돌보기도 너무 고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깽이들이 점점 자라고 몸도 커져서 연이한테 매달려 다퉈가며 젖먹는 걸 보면 좀 안쓰럽다. 30도 넘는 날씨에 젖먹이들 엉겨붙어 있으면 얼마나 더 더울까.

좌: 6월9일 연이와 묵이, 우: 6월22일 위부터 설이, 묵이, 점이 

아깽이 네 마리중 가장 막내라고 여겼던 설이는 어느덧 가장 움직임이 활발하고 덩치도 우람해져, 형제들에게 장난을 제일 먼저 거는 편이다. 묵이도 설이 못지 않게 장난꾸러기라서 걸핏하면 겨울집과 바깥 박스 사이 틈새로 들어갔다가 못나오고 울어 연이가 구출해내야 한다. 현재 체구도 가장 작고 얌전한 녀석은 점이다. 눈꼽도 제일 많이 낀 모습이라 걱정했는데 셋이 우당탕탕 뛰놀거나 레슬링을 하는 모습을 보면 또 안심이 된다.  

위 오른쪽 사진에 놓인 동그란 스크래처는 비 맞지 말라고 처마 안쪽으로 놓아두면 녀석들이 계속 밀어내서 늘 지붕 끄트머리에 가 있기 일쑤였다. 떨어질까 조마조마해서 잠자리채로 안으로 당겨놓으면 언제나 또 그 자리... 알루미늄 호일 뭉치는 그냥 작은 것 하나만 스크래처 안에 담아 두번째 집안에 넣어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 제일 큰 뭉치가 스크래처 안에 들어 있었다. 공굴리기 하듯 갖고 놀다가 영차 안에 던져 넣은 걸까? 귀여워라. 가끔은 드르륵드르륵 요란한 소리가 들려 내다보면 돌멩이를 굴리며 놀고 있다! ㅋㅋ 놀이동산 꾸미듯이 친구가 보내준 장난감들을 놓아주었으나 거의 외면하고 구경만 하는 것 같다. 길냥이들은 자연과 노는 걸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지붕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멈춰 있던 스크래처는 결국 어젠 마당으로 떨어뜨렸더라. 얼른 주워다가 다시 집앞에 놓아주었다. 위 사진은 6월 19일에 찍은 점이와 묵이. 묵이 눈과 표정이 가장 초롱초롱 건강해보이고, 점이가 가장 비실비실 아파보였다. 연이한테 내가 혀를 날름날름 시범을 보이며 아깽이들 그루밍 좀 더 해주라고 잔소리를 꽤나 했는데 그게 먹힌 걸까.. 그래도 눈상태가 차츰 나아가는 모습이다. ㅠ.ㅠ 

고양이 애호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어떻게든 아깽이들을 잡아 병원에 데려갈 것인가 고민도 오래 했었는데, 일단 접근도 쉽질 않고 벽틈으로 숨어버리는 아이들을 잡을 방법도 막막한 가운데 연이가 그래도 엄마 노릇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겁쟁이 준집사는 그냥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병원에 데려가거나 사진으로 눈약을 처방받더라도 약을 자주 넣어줘야한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ㅠ.ㅠ 그렇다고 외면할 수만도 없어서 아깽이들 눈에 좋다는 영양제와 유산균 영양제를 구매했다. 유산균은 나도 아직 안 먹어봤는데 ㅋㅋ 암튼 면역력이 높아지면 연이도 아깽이들도 더 건강해지겠지 싶어서 처음엔 물에 타서 줘보다가, 무색무취라더니 물 색깔이 약간 변해서 애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 그 뒤론 그냥 사료와 츄르에 섞어준다. 아깽이들의 섭취량까지 미세하게 적용할 순 없지만 그래도 연이 젖을 통해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

 

좌: 6월 16일 낮잠 가족 줌으로 도촬. 우: 어제 마당에서 주워온 스크래처에 들어가 노는 설이.

어제만 해도 날이 더워서 그간 한낮엔 주로 늘어져서 낮잠을 자다가 아침 일찍과 저녁무렵에 시끄럽게 뛰놀곤 했는데,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이니 또 걱정이다. 억수로 쏟아질 땐 처마 밑 상자 안이라도 빗물이 좀 튀길 것 같아 좀 아까 골프 우산을 살짝 씌워놓았다. 연이와 세 아깽이 모두 축축하고 눅눅한 장마철을 건강하게 무사히 잘 넘기길 빌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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