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죽이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5.28 세상이 쌈닭을 기른다 8
  2. 2011.05.16 해봐야 아나 1
  3. 2009.11.11 누더기 서울 7
  4. 2009.07.17 그냥 두기 12

날도 더운데 으으으 열 뻗칠 일을 방금 또 겪었다.
조금 전 서너집 건너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하얀 봉투를 하나 들고서. 엄마에게 서명을 받으러 왔단다. 아까운 세금으로 왜 쓸데없이 돈 있는 집 애들까지 무상급식을 줘야하느냐며, 그걸 반대하는 서명이란다. 헛...

모른 척 내방으로 건너와 그냥 앉아있으려니 속이 시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 엄마에게 무상급식 반대하는 오세훈 일당과 강남 부자들에 대한 욕을 실컷 해대며 왜 무상급식이 평등교육권인지 설명해드리긴 했지만, 엄마는 옆집 아줌마가 10분 이상 떠들어대면 그냥 쫓아버릴 욕심에 내용파악도 없이 그냥 서명을 해줄 사람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서야 했다.

일단 우리 모녀는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사람이고 오세훈, 이명박 일당의 이상한 돈지랄이 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포문을 열고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해 언성이 높아졌다.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고 적혀 있는 하얀 서류 봉투의 정체도 의심스러웠다. 대체 무슨 관계로 오세훈 일당 꼬봉 노릇을 하시는 거냐고 아주머니에게 따져묻기도 했다. 쌈닭기질이 제대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 왈, 남편이 한국전쟁참전 유공자라 무슨 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신단다. 영문도 없이 거기서 그 봉투가 날아와 서명을 받으라는 지령이 떨어져 그 임무를 하는 수 없이 아주머니가 떠맡았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하도 서슬이 퍼렇게 언성을 높이며 이명박 오세훈 욕을 해대니까 말문이 막혔을 뿐이지, 처음 오자마자 살금살금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들어 울 엄마를 설득한 논조를 보면 무비판적인 딴나라당 지지자임이 틀림없었다.

어휴...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한나라당의 주민투표 청원 서명운동이 강남서초구 주민들과 보수 노인층을 중심으로 조직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손길이 우리집까지 뻗치고 보니 화가 치민다. 하기야 보수 우익단체들은 늘 한나라당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렇게 그 조직을 이용해 민심인 척 억지로 세를 모으고 있다니. 복지 포퓰리즘 추방이라고? 참 이름 하나는 잘도 갖다 붙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카드로 뽑았던데, 재원마련에 대한 계획도 없이 일단 지지율 떨어지는 거 막으려고 시작한 일이니 그것도 엄연히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면 어쩔 셈인가?
 
정신나간 놈들.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90퍼센트를 넘겼으니 일부 부유계층 이외엔 어느집이나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이 큰 부담이므로  반값 등록금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일이다. 대학등록금 문제가 복지 포퓰리즘이니 뭐니 해서 당략으로 싸울 일이 아니듯이 전면무상급식 문제도 아까운 국민의 세금 운운하며 눈가리고 아웅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국민 세금이 아까우면 쓸데없는 삽질이나 저지르지 말란 말이다!

오세훈파 아주머니가 아직도 가지 않았다. -_-; 오래 눌러앉아 지치게 만들어 서명을 받으려는 전략인가? 한판 붙고 후퇴했으니 다시 가서 서명 파일 열어보자고 할 수도 없고 으으으... 얼음물이나 벌컥벌컥 마시며 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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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야 안다", "시도해보지 않는 한은 알지 못한다"며 고집을 부리는 경우 나는 종종 어떤 건 안 해봐도 안다, 고 코웃음쳤다. 예를 들면, 4대강 파헤치기 같은 현 정부의 수많은 정책들. 그놈의 4대강 정비사업 때문에 구미엔 며칠간 수돗물이 끊기고, 생각없이 물길을 바꾸는 바람에 파헤쳐도 파헤쳐도 소용없이 토사가 쌓이거나 반대로 무섭게 흙이 깎여 나가는 강둑의 사진을 보며, 그것봐라 했다.

꽤 오래 전 일몰이 아름답다는 서산 꽃지 해수욕장에 갔을 때 경악했다. 거긴 해수욕장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모래사장이 하나도 없이 흉하게 자갈과 돌멩이가 바닥에 깔려 있고 해안에 둘러쳐진 시멘트 방둑까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어딘가 방파제인지 방조제를 쌓는 바람에 조류가 바뀌어 아무리 여름마다 모래를 가져다 쌓아도 죄다 쓸려나간다고 했다. 아무리 꽃지해수욕장 일몰이 아름답고 할미, 할아비 바위가 멋져도 해수욕장이 원래 해수욕장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나.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실망스러움 때문에 다시는 가보고 싶지도 않다. 어린 시절 바다로서 처음 만난 서해안의 결 고운 모래사장이 발에 닿는 감촉이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웠는데, 인간의 탐욕과 오류로 그걸 다 잃고 말다니. 

물론 실제로 시도해보았대도 모를 수 있다.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시도했던 방법이 실패를 거두었다면 또 맹목적으로 다른 오류를 범하기 전에 제대로 된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아예 그냥 내버려두면 좋을텐데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이놈의 삽질 공화국의 무작정 저지르기는 도대체 끝도 없다. 어지럽고 짜증난다. 그나마 삼색 화살표 신호등은 철회한다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안해봐도 아는 게 있고, 해봐도 모르는 게 있으니 함부로 크게 저지르면 안된다는 교훈 저들도 좀 깨달았으면.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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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였나, 전시회 보려고 인사동에 갔을 때 놀라운 인파도 인파려니와 또 다시 죄다 뜯어내고 <또> 공사중인 인사동길에 식겁해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인사동은 몇년째 공사중이 아닌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아스팔트 뜯어내고 하이힐 뒷굽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울퉁불퉁 돌을 깔아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복판을 네모나게 파놓았었다. 이번엔 또 무슨 돈지랄을 하려나 싶어 짜증이 더욱 치밀었는데, 지난주에 나가보니 유럽 구시가의 뒷골목 자갈포장을 흉내낸 짝퉁 같았던 작은 돌포장 대신 널찍한 박석을 네모지게 깔아놓았다. 왜 당국자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튼튼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길바닥을 깔 생각을 하지 못할까. 서울시가 하는 짓을 보면 뭐든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설마 이번 포장도 1년만에 뜯어내고 또 딴 걸로 바꾸는 거 아닌지 염려스럽다. 혹시라도 몇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렀다가 인사동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갈 때마다 공사중인 인사동에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의아할 것 같다. 100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10년, 20년쯤 뒤를 내다보는 행정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놈들이 권력을 잡고 하는 일이야 늘 뻔하지 싶어 별 기대도 안했지만 일년 넘게 생돈 처들여 만들어 놓은 광화문 꼬라지는 또 어떤가. 시청앞도 그렇지만 사방에서 차들이 빼곡히 돌아다니는 길 한복판에 광장이랍시고 만들어놓은 그곳이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심 휴식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거길 만들어놓은 장본인들한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 같으면 그 정신 사납고 조잡한 곳에 들어가 진짜로 쉴 수 있겠느냐고. 많이 양보해서 쉬는 공간이 아니라 구경하는 공간이라고 치자. 이순신 동상이 거기 서 있는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차도 때문에 그거 구경하기 어려워 불만 품은 사람이 있었던가? 세종로라 이름에 걸맞게 원래 자리 꿰차고 앉게 된 세종대왕님도 불쌍하다. 그 혼잡한 매연 속에 얼마나 정신 사나울까 싶어서.

가끔 새로 닦은 광화문을 차로 지나거나 그 앞 버스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어보면, 아스팔트 대신 깔아놓은 조그만 타일 같은 포장재 때문에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다다다다.... 목욕탕 타일 붙이듯 일일이 그 포장재를 붙였을 건설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겨울 지경이지만, 그런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장담할 수 있다. 아스팔트도 눈비맞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을 지나면 몇년안에 다시 깔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얄팍하고 조잡해 보이는 포장재는 그보다 먼저 떨어져나가 이빠진 것처럼 흉물로 변하고 말 거라고. 아주 가까운 인사동에 그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설마 남은 예산 모두 써버리느라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을 교체해대는 서울시와 지자체들의 <불가피한> 예산확보의 방편으로 광화문에도 <일부러> 내구력 짧은 포장재를 선정한 것은 아니겠....지?

지자체에서 저마다 생색용 돈지랄에 재미를 붙인 이후 동네마다 이런저런 공원이 많이 생겨났고, 요샌 대학로에도 중학천 복원공사인지 뭔지해서 청계천 짝퉁 같은 실개천을 다시 만든다고 난리라는데,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한숨만 나온다. 어쩜 그렇게 공원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게 똑같은지. 보나마나 중학천도 청계천과 똑같이 시멘트로 온통 싸바른 뒤 물풀 몇개 심어놓고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원>했다고 자랑할 게 틀림없다. 공원조경 업체에서 서울시나 구청 쪽에 대거 뇌물을 쓰거나 담합 독점이라도 한 것일까?
특히 공원마다 내가 제일 꼴보기 싫어하는 것은 땅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분수. 시청앞에도 있더니 광화문에도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땅바닥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철딱서니 없이 놀던데, 어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분수의 수질이 얼마나 엉망인지 굳이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더라도 나 같으면 그런 분수 근처에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도 못들어가게 할 텐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기야 새로 세운 세종대왕상 보겠다고 주말이면 우글우글 몰려드는 사람들이 내 눈엔 이상해만 보이니 내가 비정상인가?
나 역시 분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높은 분수대는 나에게 아련한 꿈과 행복의 상징이었고, 덕수궁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분수의 모습도 가슴 찡하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온동네 공원마다 죄다 땅에 수도관을 묻고 시멘트나 돌을 덮어 바둑판처럼 똑같이 만들어놓은 바닥 분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르네상스 서울이니, 디자인 서울이니 해서 특히 요즘 서울은 온통 누더기다. 아니지, 막가파식으로 삽을 떠버린 4대강 죽이기 사업에다 툭하면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어리석은 우두머리 때문에 온 나라가 누더기다. 그런 인간들이 또 세종시 건설 원안을 반대하는 걸 보면, 자기네가 확보한 땅값 떨어질 토목공사는 절대로 용납 안한다는 뜻이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오래된 집에 비가 새지 않게 하려면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공사는 깨진 기와를 바꾸고 금간 벽을 채워넣고 노후한 수도관을 갈거나 구둘장을 다시 까는 것일 뿐, 건넌방 전체를 확 깨부수고 거기만 <르네상스 양식> 따위로 다시 짓는 건 미친 짓이다.

서울서 나고 자랐어도 고향이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고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다. 제주도라면 가서 평생 살 수 있을지 몰라, 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거기 혼자 뚝 떨어져 살라고 하면 1년 내내 행복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도 더러 행복한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만큼 개인적인 역사와 추억이 깊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서울을 나날이 망가뜨리는 저들의 행태가 원망스럽고 숨막힌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든 이들이 집을 갖고 살려면 위로 높이 올려짓는 아파트 밖엔 방법이 없다지만 이미 양적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 필요한 가구수는 넘은지 오래다. 집마저도 수백채씩 많이 가진 놈들이 나눠주면 더 짓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여기저기 죄다 동네 째로 허물고 다시 아파트를 올리는 거다. 그렇게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동네마다 죄다 세워올려도, 부동산으로 돈벌려는 인간들만 좋아라할 뿐 정말로 집이 생기는 서민의 비율은 턱없이 낮다는 걸 놈들은 왜 모르는지...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닥치는대로 누덕누덕 기워놓은 서울이 조각보 이불처럼 예쁘게 마무리될 리는 만무하다. 어쨌거나 내가 덮을 이불인데 싫어서 치를 떨면서도 당분간은 덮고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참아내려면 한 가지 희망밖에 없다. 몇년 지나면 다시 뜯어내고 제대로 만들거야. 암.. 그래야지. 그럴 거야... 다음 세대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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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기

하나마나 푸념 2009. 7. 17. 01:38

일하기가 싫어서 조금 전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을 다룬 100분토론을 보다 짜증이 밀려와 TV를 껐다.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문가라는 양반들의 의견은 노상 상반되는지 원!
어쨌거나 나는 대운하 사업과 더불어 죽어가지도 않는 4대강을 굳이 살리겠다는 쓸데없는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특히 2, 3년 안에 그 엄청난 규모의 토목사업을 한꺼번에 벌여 끝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너무도 무섭다.

청계고가를 없애고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할 때 나는 크게 기뻐하며 결과물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한 여름 도심의 온도를 몇도나 낯출 수 있고 주변 부동산 값도 올라가며 시민들에겐 도심속 쉼터를 제공할 것이라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처음엔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보니, 말이 <복원>이지 청계천은 그냥 이름뿐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멘트로 물길을 싸바르고 한강물을 억지로 끌어다 놓은 뒤 그럴듯하게 물풀을 좀 심어놓고는 화려하게 조명시설만 갖춰놓은 <죽은> 공간이었다.
대통령 될 욕심에 당시 서울 시장 명바기가 임기내에 공사를 서둘러부친 결과 시멘트로 마구 싸바른 물길 곳곳은 이내 시퍼런 이끼로 뒤덮였고 역한 물비린내가 나서 나는 두번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시위 때문에 청계광장에 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하긴 청계광장도 내가 싫어하는 장소다. 순전히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돈만 처들여서 세워놓은 (어느 대기업에서 자금을 기부해 외국 조각가에게 사온 거라더라) 플라스틱 소라탑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한 구석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형물을 선택해서 세워놓았는지, 관련자들의 저질스러운 안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처음 청계천이 생겼을 때야 사람들이 죄다 구경 삼아 몰려들었고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섣불리 뛰어들어 놀기도 하더라마는, 장담컨대 그렇게 조악하게 급조해 놓은 청계천은 앞으로 끊임없는 청소비용과 복구비를 잡아먹는 예산 물귀신이 될 테고, 사람들한테도 점점 외면당할 게 뻔하다. 정말로 북한산 어느 물줄기부터 착실히 살려내려와 올챙이며 가재가 되돌아오도록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지 않는한 말이다.

청계천의 전례를 익히 보았던 터라 우리 동네 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약간의 설렘보다는 더럭 불길한 예감이 크게 들었다. 청계천처럼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대강 시멘트로 처발라놓고 예산만 낭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몇번이나 연임하고 있는 구청장은 한나라당 패거리가 아니던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날이 달라지는 홍제천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하수관을 따로 묻어도 이미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연결되기엔 유량이 턱없이 적어진 홍제천에 가압장을 설치해 한강물을 끌어오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자연미와 풍광이 아름답던 안산 주변엔 느닷없이 조악해 빠진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촌스러운 형광조명의 음악분수를 만들더니 급기야 그 예쁜 동산 꼭대기까지 파이프를 끌어올려 폭포를 설치한 것이다. 얼마 전엔 도저히 봐주기에 민망한 황포 돛배까지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띄워 놓았던데, 내눈엔 혐오스럽기만 한 그 시설들이 <무한도전>에까지 소개됐다는 걸 보면 참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산업 육성책에 발맞추어 홍제천의 자연하천 복원사업은 자전거도로 확충 사업과 연계된 듯했고, 역시나 <자연>하천 <복원>은 순전히 말 뿐 서대문구청에선 하는족족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행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화학성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샛노란 포장재가 깔린 개천 옆 자전거 도로 옆엔 대체 어디에서 파왔을지 궁금한 큼지막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벽처럼 쌓여갔고, 하천 양 옆으론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다는 이상한 자재를 쌓고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수생식물을 심었으며, 야심차게 조명과 무대처럼 화려한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안산 폭포와 분수 바로 옆엔 큼지막한 디지털 광고판까지 설치되었다. 연일 구내 소식과 정부시책을 광고하는 화면이 나오는.

물론 새로이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분수와 폭포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으니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패거리인 구청장 일당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내가 홍제천변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며 사진까지 올렸던 바로 그 안산 계곡을 지날 때마다 유달리 서늘하게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던 냉기와 바람은 요상한 복원사업 이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철철이 바꿔 피는 꽃과 나무들이 바위와 어우러졌던 동산을 흉측한 파이프가 휘감고 있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그 앞 음악분수는 또 어떻고! 나 역시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좋아하며, 하다못해 예술의 전당 앞 음악분수만 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음악분수라도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지 않은가! 번쩍이는 광고판 같은 대형 디지털 화면을 배경으로 한물 간 가요에 맞춰 개천 한가운데서 물을 뿜는 음악분수는 홍제천에서 황포돛배 다음 가는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홍제천에 산책을 나가 보면 터무니없이 바뀐 모습과 공원화 사업 때문에 집값 오르겠다며, 또는 그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올 곳이 생겨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예산을(사업비가 무려 200억이란다!) 처들여 <자연하천 복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과도하게 겉치장에만 힘쓰는 꼬락서니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여름 장마때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몇년 전엔 사람도 떠내려갔던 판국에 하천 양옆에 왜 굳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꽃은 심어놓았는지, 군데군데 왜 쓸데없이 나무나 벽돌로 바닥에 멋을 부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염려는 언제나 들어맞는 법. 요번 집중호우때 홍제천 산책로는 그간 엄청나게 쏟아부은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하천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거 뽑혀나가, 개천 중간 음악분수 시설에 죄다 걸려 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분수 주변엔 엄청난 토사가 밀려내려와 높은 언덕을 이루어놓았으며, 서대문의 새로운 명물이라던 황토돛배는 떠내려가다가 하천 기둥에 부딛혀 산산조각이 났단다. 한 마디로 쓸데없이 <돈지랄>을 해놓은 새로운 바닥들도 패이고 주저앉고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 놓은 다리 난간마저 중간이 뚝 잘려 나갔을 정도니 오죽하랴.
비가 많이 오면 한강 둔치도 물에 잠겨 한참을 청소하고 복구해야하는 형편이니 집중호우때나 장마때 홍제천 산책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정도를 설마 전문 사업자들이 예상 못했을 리는 없지 않나? +_+ 나처럼 비전문가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설마!
어쨌거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홍제천 산책로엔 오늘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난간이 떨어져 나간 다리 아래에선 동네 주민들이 노심초사 안부를 빌었던 오리 가족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자연 하천 복원은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서 가재를 잡고 놀았던 부암동 백사실처럼 작고 자연스럽고 고요한 하천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청와대 주변이어서 오래도록 통행을 금지했던 터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 계곡의 모습, 내가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백사실> 계곡이 화면에 비추던데, 한 십년쯤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정말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망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하천을 복원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닿으면 자연은 분명 망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겪고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까.
설령 정말로 온 나라의 강에 문제가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번에 한군데씩 여러모로 살피고 조사하고 재보면서 혹시라도 망쳐버렸을 때의 엄청난 결과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지 않고, 왜 한꺼번에 백여군데의 강줄기에 수십조나 되는 <빌린> 예산을 투자해 실제로 치수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를 걱정스러운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납득이 안된다.

청계천 정도의 무모한 삽질이라면 수십년 후에 누군가 환경지향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행정가가 나타나 되돌릴 수나 있겠지만,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놓고 물길을 망가뜨리면 백년이 지나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 자연에 필요한 건 억지로 갖다 붙인 <살리기>가 아니라 분명 <그냥 두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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