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20.02.06 아는 병 3
  2. 2020.02.03 2020 1월 영화 & 책 1
  3. 2020.01.03 2019 늦은 정리
  4. 2018.01.30 취미 자수 시작 5
  5. 2018.01.02 2017년 Best - 한해 마무리 4
  6. 2017.01.02 2016 Best 9
  7. 2016.12.30 5분 스케치 - Basic 6
  8. 2016.12.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5
  9. 2016.10.21 일단 탈출 7
  10. 2016.10.16 편견 3

아는 병

아픈 손가락 2020. 2. 6. 16:31

 

다행히 설날을 기점으로 엄마의 병세는 고비를 넘긴 듯하다. 불안증과 의심증도 차츰 줄어들더니 드디어 오늘은 내가 언제 그랬냐 싶게 간간이 기분이 좋으시다. 1년 전에도 12월에 심하게 발병했다가 설날 지나고 2월 들어 진정세에 접어들었었다. 그래도 작년엔 2월 말이었던 79세 생일 모임을 건너뛰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당시 핑계는 내년이 팔순이니 2020년에 거하게 밥을 먹자고, 그리고 곧이어 잡혀 있던 고손녀의 돌잔치 때 얼굴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동생들을 설득했다. 

 

2019년 3월9일이었던 돌잔치날 엄마는 도무지 환자로 보이지 않는 건강한 모습으로 파티에 참석하셨다. 심지어 미용실에 가서 머리 드라이도 하고 오셨던 터라 기쁨에 겨워 기념 사진도 남겼었다. 미소가 온화하고 우아하기 이를데가 없다. 평소 내가 왕비마마라고 떠받들어드리는 울 엄마의 모습이다. 남들도 다들 인상 좋으시다고, 엄청 고우시다고 (경복궁 선생님들의 칭찬이다 ㅋ) 하는 얼굴.  

오랜 세월 함께 엄마의 병증을 겪어온 가족들은 엄마 표정만 보아도 안다. 증세가 나쁠 때는 얼굴의 일부 근육과 신경도 이상해지기 때문에 사나운 표정과 눈빛으로 돌변한다. '호랑이 눈썹'이 되었다고 내가 표현하기도 하는데 눈 주변의 주름이 바깥쪽을 대각선으로 경직되면서 무서운 느낌으로 바뀌는 거다.  뇌의 일부 전달물질이 불균형을 이르면서 신경이 곤두서면 근육도 그에 따라 지배되는 것 같다. 암튼 오늘 엄마의 표정은 완전히 이 모습까지 이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표독스러워져서 무서울 정도의 느낌에선 확실히 벗어나셨다. 이제 나도 겨우 숨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엊그제 2주만에 다시 진료를 받으면서, 잠자는 게 여전히 불편하다는 엄마의 말에 의사는 세로켈 용량을 200mg으로 더 늘렸다. 연세가 많으셔서 복용량 변화를 심하게 할 수가 없다보니 늘 이런식이다. 입원을 시켜 곁에서 면밀히 지켜보지 않는 한 1, 2주 만에 한번씩 상담후 조금씩 약을 바꾸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간다. 요번엔 엄마가 비협조적이어서 중간에 더 먼저 찾아가 약을 바꿀 기회를 놓쳐서 더 기간이 오래 걸렸다. 젠장.

하여간 그래도 역시나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건 '아는 병'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면서 참으면 결국 좋아지는 때가 온다. 다시 병세가 나빠지는 주기가 너무 빨라져 그것이 절망스럽긴 하지만, 악화일로에 놓이는 알츠하이머와는 또 다르니까.

연세 때문인지 점점 더 증세가 심해지고 기간도 길어지면서 요번에 특히 역대로 힘들고 괴롭던 차에 신기하게도 인간의 심리 원리를 다룬 책 증정본을 하나 받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어쨌든 겪어 나가는 당사자로서 삶은 참 공교로울 때가 있다. 엄마한테 난데없는 의심과 비난을 받으며 내가 징징 울며 괴로워할 때 도착한 이 책을 받자마자 양극성 장애 부분을 펼쳐보았다. 그림과 도표로 간단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임에도, 그 간단한 정보가 엄청 위로를 주었다. 어차피 치료약이 있으니 전문가들은 다 아는 병이겠지만, 계속 재발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엄마가 보이는 성격 변화와 온갖 증상들도 결국엔 다 예측범위 안에 들어 있었다.

"기분이 급변할 때는 극단적인 성격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사회적, 개인적 인간 관계에 심한 긴장을 유발한다" (<심리 원리> p40)

"일반적으로 양극성 장애의 주요 원인은 뇌 기능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의 불균형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 전달 물질이라고 불리는 이 화학 물질에는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도파민이 포함되며 신경 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도 원인의 하나로, 양극성 장애는 가족 내에서 유전되고 어느 나이에서나 발병할 수 있다. 100명 중 2명은 살면서 한번 이상의 양극성 장애의 삽화(episode, 우울증이나 조증 같은 특정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옮긴이)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 중 일부는 평생 두어번의 삽화만 겪지만 어떤 이들은 여러 번 겪는다. 삽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는 스트레스, 질병,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돈 또는 직장과 관련된 문제 같은 일상 생활 속의 괴로움 등이 있다." (p40-41)

우울증과 조증의 패턴을 나타내는 그림을 보아도, 아 그렇구나 싶다.   

안정기 → 경조증 →우울증(이 시기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수면장애와 식욕저하를 겪고 망상 환각 불안정한 사고를 경험)  → 약한 우울증 → 조증 → 혼재성 상태  ㅠ.ㅠ

영원한 레아 공주, 캐리 피셔가 남겼다는 말도 위로가 됨. "양극성 장애는 도전이지만,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다." 

석달째 엄마를 돌보면서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이 꽤 많았다. 뭔가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느낌? 아는 게 병이기도 하지만 또 아는 게 힘이기도 해서,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위험신호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홀로 뛰쳐나가거나 약속을 만들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위기를 나름 잘 극복한 것 같다. 스스로 장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땐 엄마의 '삽화'가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또 지나갈 것으로 믿어야지 별 수 있겠나.

엄마의 성격변화와 몇몇 이상 증세가 유독 심해서 혹시 조울증 때문이 아니라 알츠하이머의 전조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 치매 환자를 겪어본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알츠하이머의 가능성에 손을 들었다 - 주치의에게 두뇌 정밀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증세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도 그러는지 두고 보자고. 엄마도 나도 가장 두려워하는 그 병만은 진짜로 아니면 좋겠다. 째뜬 보름 뒤로 다가온 조촐한 팔순 가족모임은 별 문제 없이 강행해도 좋을 듯하니 다행이다. 다들 웃는 얼굴로 맛있는 밥 먹고 힘낼 수 있기를. 

Posted by 입때
,

2020 1월 영화 & 책

놀잇감 2020. 2. 3. 01:35

2019년 각종 문화생활 베스트 포스팅은 적다 말고 그냥 비공개로 두었는데;; 과연 2020년은 제대로 기록을 남기게 될까. 암튼 일단 시작은 해보는 걸로.

= 영화 =

총5편을 보았다. 

* 스타워즈: 라스트제다이 - 시리즈 마지막을 보려고 하니 전편 내용이 기억나질 않아서 한번 더 챙겨보았으나 아직 마지막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보지 못했다. 내리기 전에 빨랑 봐야되는데;; 
* 가장 보통의 연애 - 설날연휴에 무료로 풀렸길래 봤음. 
* 유열의 음악앨범 - 역시나 연휴 동안 무료길래 봤다. 두 로맨스 영화 중에선 차라리 가장 보통의 연애가 좀 더 나았던 듯. 주인공들의 나이대와 관련이 있었을까? ㅎㅎ 벌써 잘 기억도 안난다. 
* 파바로티 -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다. 지인께서 음향특화된 영화관에서 보고싶다 하시었으나 이미 그런 곳은 없어졌고 시네큐브에서 하루 한번 정도 상영하고 있어서 다행. 오페라는 모르지만 파바로티의 노래 몇곡은 되게 좋아하는데 개인사는 모르는 게 나을뻔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인류애를 펼쳤으나 주변 여자들에겐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를 준 뻔뻔한 불륜남. 기대보다 음악도 많이 나오질 않고 초기 영상들은 당연히 화질도 음원도 구리다. 정작 꼭 보고싶다고 했던 일행은 옆에서 코를 골며 절반 이상 잠들었다. +_+

* 우리집 - 윤가은 감독,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주연. 1월에 본 5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최고작이다. 아이들의 연기가 어쩜 그리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지. 어른인게 부끄럽더라.  배우들과 장면이 좋아서 화면 캡쳐도 했음.


= 책 = 

달랑 2권을 보았다.

* 백의 그림자 - 황정은 장편소설, 민음사

작년에 동네 서점에서 블라인드 선물(내용물이 뭔지 모르게 포장해 놓고 작품에 대한 힌트만 메모해놓는다)로 구매해놓고선 좀 읽다가 머리 맑을 때 읽고 싶어 좀 아껴두었다가 드디어 마무리. 생각해보니 요즘 한국 소설을 별로 안읽고 살았던 듯 신선하고 깔끔하니 좋았다.

*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 이다혜 지음, 현암사

재작년부터 페미니즘 관련 책들 몇 권 사두고 다 건드리다 말다가 완독한 게 드물다. 작년 연말에 <밀크맨> 북토크 행사때 진행자로 나온 저자를 보고서야 아 맞다, 그 책 마저 읽어야지 했다. 최근에 나온 책보다 역시 난 이 책이 더 좋았다. ^^; 

2월엔 좀 더 많은 문화적 소양(?)을 쌓게 되길 빈다. 전시도 책도 좀 다 보고, 보고프다고 생각한 영화도 좀 놓치지 말고 찾아보길.

Posted by 입때
,

2019 늦은 정리

놀잇감 2020. 1. 3. 01:05

작년엔 블로그도 멀리했지만 대체로 뭔가를 정리하는 것 자체를 게을리했다. 삶이 엉망진창 뒤죽박죽 제멋대로 흘러간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탁상달력과 메모를 토대로 대충이나마 한해 기록을 남긴다.

 

= 등산 (그나마 열심히 했으니 1번으로 기록)

3월 도봉산

4월 섬진강트레킹, 강화도 답사

5월 청계산, 가평 호명산

6월 삼척 쉰움산

7월 문경 대야산

9월 북한산 14성문 종주 중 7개 

10월 홍천 금학산,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11월 순천 조계산

12월 아차산&용마산 

그밖에 두어개 이빠진듯 남겨두었던 서울둘레길 스탬프를 모두 찍어 완주했고 (아직 완주증은 못 받으러감 ㅎㅎ)

한양도성 한바퀴 순성도 2번이나 완료.

걸핏하면 도지는 무릎건초염(근막염)과 사라져버린 알량한 근력과 폐활량을 되찾아 다시 산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새해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1월 1일에도 동네 산에 산책 다녀옴. 

 

= 전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강산을 그리다: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

성북동 가구박물관 

세브란스 이승오 작가 종이공예화 

코엑스 서울 도서전

서울역 전기우주

2019년도 예정 전시를 20개쯤 적어두고 기대했는데 거의 못다녔다. ㅠ.ㅠ 호크니 전시를 결국 놓친 것이 가장 뼈아프다. 

 

= 공연

Slow Life Slow Live 첫날 스팅, 루카스그레이엄, 코다라인

이윤애 제자 음악회(벨로)

연극: 대학살의 신, 안나마수나마라, 그남자 그여자, 2019톡톡

뮤지컬: 팬텀

 

= 영화

나랏말싸미

토이스토리4

겨울왕국2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

눈이 부시게 

나의 아저씨 (뒷북으로 몰아서 봄) 

 

= 독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지음

패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할로우 시티/영혼의 도서관 - 랜섬 릭스 지음/이진 옮김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노지양 지음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이현정 옮김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고정아 옮김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지음

 

Posted by 입때
,

취미 자수 시작

놀잇감 2018. 1. 30. 01:00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Posted by 입때
,


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 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2017년 등산

도봉산, 소백산, 예봉산, 수락산, 관악산, 용마산, 괴산 갈모봉, 내변산 관음봉, 안산 자락길, 북한산 향로봉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

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_M#]


Posted by 입때
,

2016 Best

놀잇감 2017. 1. 2. 17:59

1. 2016년에 읽은 책

아 부끄럽게도 달랑 10권이다. 그것도 그림책 포함해서... 나부터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출판업계가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매년 점점 더 책을 안 읽지? 올해는 사들인 책의 수도 예년에 비해 적었다. 여혐 범죄사건들을 접하면서 뭔가 나도 세상과 계속 싸우려면(?) 이론적인 재무장이 필요한 것 같아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정희진 책까지 세 권을 엮어 감상문을 쓰려고 했었는데 ㅠ.ㅠ 결국 안했다. 수다 떨 때도 종종 말문이 막히듯이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도 버벅버벅 버퍼링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며 좌절했다. 그래서 또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유명인의 촌철살인 조언과 함께 이런저런 글쓰기 에피소드를 담은  <쓰기의 말들>은 막상 읽을 땐 뭐 이런 걸 책으로 다 만들었나 싶었으나, 다 읽고나선 포스트잇 붙여둔 글귀를 다시 들춰보며 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유려한 번역으로 이름 높은 고 장영희 선생의 <슬픈 카페의 노래>도 말맛, 글맛을 따져보느라 원문을 상상하며 다시 읽은 책이다.   

옛그림을 보는 법 - 허균 지음/돌베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지음/노지양 옮김/사이행성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지음/교양인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고빛샘 옮김/민음사

쓰기의 말들 - 은유 지음/유유출판사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지음/장영희 옮김/열림원

앵무새죽이기 - 하퍼 리 지음/김욱동 옮김/열린책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5분 스케치 - 김충원 지음/진선아트북


​베스트 3권 뽑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1권만 뽑는다면 단연 리뷰도 올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 2016년에 본 영화

셜록: 유령신부

캐롤

바닷마을 다이어리

굿바이 싱글

제이슨 본

국가대표 2

거울나라의 앨리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잭 리처: 네버 고 백

내부자들

귀향

나의 소녀시대

계춘할망

족구왕

의궤, 8일간의 축제

뷰티 인사이드

베테랑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위쪽 9편. 혼자 보러간 건 내 취향대로 골랐으나, 이제보니 누가 보러 가자고 그래서 얼결에 본 영화도 많다. 암튼 2016년 최고의 영화를 뽑는다면 역시나 영화관에서 2번이나 본 <캐롤> ^^; 근데 베스트 세 편도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겠다. 귀여운 자매들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흐뭇하게 봤다. '걸크러시'라는 말이 유행하듯 나 역시 '언니들'이 활약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연한가? ㅎㅎ




3. 전시/공연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 국립고궁박물관

창경궁을 보듬다 - 국립고궁박물관

윤동주문학관

Color Your Life - 대림미술관

변월룡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호안 미로 특별전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로이터 사진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가나아트센터

임태경: 그대의 계절

One Love Concert: 임태경 외 ㅋㅋ


위 두 전시는 포스팅을 했으니, 세번째 베스트로 뽑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전시도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사진도 엄청 찍어왔으니 자랑 삼아서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입장료 3천원에 완전 눈호강한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공예품인데 구석구석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공연은 임태경 광팬인 미쿡 친구의 소망 대리충족용으로 다닌 것. 체력 딸려서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 공연장의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으로 거의 기절할 뻔 ㅠ.ㅠ 


4. 등산/여행

사패산, 계방산, 오대산, 운길산, 삼성산, 청계산, 아차산, 축령산, 광교산, 막장봉, 소리산, 선운산, 도봉산, 검단산, 천마산, 금강산(외설악), 북한산, 남산 둘레길, 전주 한옥마을, 담양 소쇄원, 공주, 아산, 여수 금오도, 대부도, 화담숲

 

계방산의 눈꽃여수 금오도의 초록 바다

한달에 2번씩 한번도 안빠지고 개근을 했으니 그만큼 많은 산을 다녔고, 스스로 뿌듯하다. 친구들과는 2월부터 주로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서울 근교산을 돌아다녔는데 주변에 갈데가 그토록 많다는 것에 감사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 남산 둘레길도 고즈넉하고 예뻤다. 조금 멀리 가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산이 도처에... +_+ 내가 이렇게 열심히 등산 다닐 줄 진정 몰랐는데 ㅋㅋ 이 열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모녀 가을 여행에서 작년과 확 다르게 좀처럼 운신을 못하시던 왕비마마 왈, 너라도 다리 성하고 건강할 때 많이 다니라고.. ㅠ.ㅠ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베스트 산 셋을 꼽는다면

원없이 상고대와 설경을 본 계방산, 홀릴 듯 철쭉이 아름다웠던 축령산, 울산바위를 뒤쪽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금강산. 

 

5. 기타

그밖에 올해 사들인 음반은 노장 투혼으로 새 앨범을 낸 스팅의 <57th & 9th>와 미리 김칫국 마시며 떼창 연습하겠다고 산 콜드플레이의 <A Head Full of Dreams> 딱 2장이다. 콜드플레이는 음원으로 몇곡만 사서 듣다가 내한 소식에 팬심 발휘해 CD도 샀는데 첫 공연에 예매 실패하고 완전 광분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추가공연 가게 되서 다시 애정하며 듣는 중. 스팅은 지난 앨범이 완전 뮤지컬 ost 여서 실망하고 옛날 노래만 듣다가 2016년에 그나마 신뢰와 애정을 회복했다. ㅎㅎ

드라마는 방에 있던 배불뚝이 TV가 완전 사망하는 바람에 잘 챙겨보지 못하고 있어서 기억나는 게 치즈인더트랩, 굿 와이프, 또 오해영, 닥터스, W, 역도요정 김복주, 도깨비 정도다. 주로 배우 선호도로 찾아보는 고로 공중파 드라마도 더러 보긴 하지만 손발 오글오글거리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간에 끊었다 다시 보고 그랬었다. 단막극 <페이지 터너>가 의외로 좋아서 탁상달력에 메모해둔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대체로 열광하며 신나게 즐겼던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면 <또 오해영>!(<굿 와이프>로 했다가 방금 마음 바꿈 ㅋㅋ) <굿 와이프>는  전도연의 약간 비뚤어진 입매와 자연스러운 주름 덕분에 연기가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고, 나나의 연기도 유지태도 다 괜찮았다. 제발 중년 배우들 얼굴에 티나게 이상한 짓좀 하지 말면 좋겠다. 서현진 연기 좋고 사랑스러운 건 알지만 에릭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또 오해영>은 재방송까지 막 다시 찾아보며 헤벌쭉 했던 기억이 이제야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릭이 음향 엔지니어로 나오는데 그 직업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제대로 보여주었던 점도 신선했고, 조연으로 나왔던 해영의 부모님이나, 예지원, 김지석 커플의 이야기도, 에릭의 이복동생 커플 이야기도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아 좋았다!  

그밖에 tv 프로그램에 상을 준다면 단연코 JTBC 손석희의 <뉴스룸>(뉴스룸 맨 마지막 노래 선곡까지 손석희가 직접 한다는 것 같다. 아아 이분은 정말... +_+ 기막힌 뉴스에 광분하고 허탈해 하다 마지막 흘러나오는 노래에 위로받고 그런 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에셰프의 활약이 놀라웠던 <삼시세끼 어촌편3>(에릭이 느릿느릿 신중하게 요리 할 거 다하면서 말도 별로 없는 거 진짜 마음에 들었다. 겸손하기까지 한 듯!), 일요일 밤에 생각나면 찾아봤던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에 TV 없어서 잘 안 봤다더니 테순이같다. ㅠ.ㅠ)

2016년을 되게 빌빌거리며 암울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반백수치고는 잘 먹고 잘 놀러다니며 꽤 잘 살았던 것도 같다. 2017년에도 야금야금 재미난 일 찾아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봐야지!  

Posted by 입때
,

5분 스케치 - Basic

책보따리 2016. 12. 30. 01:05

독서라고 하기 뭣하지만 그래도 책의 형태이니 꼭 연말집계에 넣고 말테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셜록 책베개였나 책쿠션이었나 사은품에 눈이 어두워 이 책 저 책 주워담다 눈에 띄어 충동구매한 책이다. 베이직과 카페 스케치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암튼 10월 초부터 시작해 이 한권을 끝냈다. ㅎㅎㅎㅎ

언제고 시간이 되면 취미 삼아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년 반복하면서도 ㅠ.ㅠ 입때(!) 실천을 못하고 있던 차, 일종의 독학용 그림 연습서를 발견한 것. 0.7mm 파버카스텔 펜도 하나 들어 있어서 줄곧 그걸로만  스케치에 힘썼다. 얇은 펜도 하나 사야 한다고 여기저기 찾아보며 생각만 하다가 결국 못샀네그려. 펜이 굵다보니 촘촘하게 선을 긋거나 색칠을 해야할 때면 꼭 덜 마른 데를 손바닥으로 짚어서 짜증나게 이리저리 번지게 한 뒤 으악 비명을 질렀다. 

처음부터 이만하면 정말 잘 따라그린 게 아닌가 자아도취에 빠져 한동안 흐뭇해했으나, 새삼 해시태그 5분스케치로 찾아본 결과 이 책을 사 연습할 정도면 그림 실력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ㅠ.ㅠ 내가 찍은 사진인 줄 착각할 만큼 똑같은 그림 너무 많더라. 

원본과 달라지더라도 틀린 게 아니라 개성으로 받아들이라고, 연필 밑그림 그리지 말고 직접 펜으로 확~ 5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그리라는 건 마음에 든다.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간절함'과 '용기'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똑같이 그리면 카피가 되고 다르게 그리면 작품이 됩니다."

"얼굴 스케치는 눈의 위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얼굴의 중간에 위치하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의 윗부분을 부풀렸을 경우에는 중간보다 낮아집니다. 얼굴의 윤곽선을 그릴 때 항상 눈의 위치를 고려하여 스트로크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혼자 노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스케치가 좋아보여 시작했다면 진짜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좋아지기 시작했다면 지금부터 집중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을 싹 걷어내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 손은 마치 프린터처럼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런 것이 바로 창작의 희열임을 느끼게 됩니다...." 





Posted by 입때
,

세상엔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요즘 이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괴물들의 행동도 그러했고 바다 건너 들려오는 테러나 총격 사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닭그네 순siri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대체 그들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분노 못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에게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 진단하는 의뢰도 많았던 모양인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문가의 글귀가 기억난다. 일단 그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알아보려는 게 불필요한 호기심이라고 말이다. 법률을 위반했으니 법대로 심판하여 탄핵하고 끌어내리면 된다는 논지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구든 연구자나 언론인이 꼭 나타나서--책 팔아먹을 욕심에 헛소리 지껄이는 이들 말고--그들을 제대로 연구해주거나, 최측근의 양심선언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파헤쳐, 다시는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들을 '미친'X이라고 욕하는 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조울증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렇게 느끼니깐 정말이지 동급으로 취급 안하면 좋겠다. 모든 병증엔 급이 있겠으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우울증 환자와 동등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2016)

아이고 책 후기 하나 쓰려고 시작했는데 웬 잡설이 이리도 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건 직후 아마도 '괴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의 사진 속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느껴지듯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곁에서 아이를 평생 지켜본 부모로서도 이젠 도저히 알수 없는 부분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픈 아이였던 거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그 학교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두 아이가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바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아들인 딜런을 용서하길 바란다거나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당부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고 이후 16년 세월 도저히 대답할 길 없는 의문과 고통, 눈물 속에 살았을 이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주변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빚을 갚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사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딜런이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끊임없이 꿈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지만 결국 콜럼바인 사고는 지은이에게 아들이 가장 불행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자살 기도였던 거다.

사건 직후 사람들은 당연히 딜런의 부모를 온갖 방법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총기를 구입했고 집안에 폭탄을 숨겼었고, 지하실에서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낸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길고 긴 재판으로도 판명났지만 부모들은 정말로 '몰랐다'. 문제아의 부모 뒤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흔한 사회적 통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애가 괜히 비뚤어질 리가 있겠냐고. 뉴스에 간혹 나오듯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문제 부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란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p8-9)

위에 인용한 문장은 책 맨앞에 실린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해설 부분이다. 대다수의 짐작과 달리 딜런의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기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딜런은 십대치고(17살이었다) 부모와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형과도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발견된 딜런의 일기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 미안함이 증언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무리 주의 깊게 지켜보며 사랑을 쏟았어도 딜런에겐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로 억울하게 다 큰 자식들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엄마가 책을 쓴다고 하면 대체 뭘 잘했다고 책을 쓰냐고 비난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짐작했기 때문인지 지은이의 태도는 시종일관 대단히 조심스럽다. 자식을 가능한 한 옹호하려는 태도보다는 부모로서 자기가 뭘 놓쳤는지, 사건의 전후 사정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들의 행동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자기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들려주어서, 다른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물론 사건 기록의 재구성과 딜런이 남겨둔 흔적들 말고는 가해자 아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절렀는지 말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더욱 고통스러울 테고. 어쨌든 지은이는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흔히들 자살이 가장 비겁한 선택이라는 말도 하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비정상일 때 내린 선택을 본인의 굳은 의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심리학자와 지은이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보라고? 자살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용기 여부와는 상관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량한 후기를 쓰는 것도 몇날 며칠 적었다 말았다 한 단락씩 참 쓰기가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무서운 진실 앞에, 꼭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추천사도 들어있지만... 나로선 엄청 아픈 손가락인 큰조카 J의 생각도 많이 나면서 위안도 받고 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테두리를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며 자꾸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커다란 의문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탓을 한 적도 있고, 종종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애 버릇을 망친 할아버지와 고모 탓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원칙이 무너져 훈육에 실패한 케이스라나. (심지어 이 말은 위탁학교 관계자에게 직접 내가 들은 말이다.)

이기적인 위안은 아이의 문제가 죄다 문제 부모 탓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견해다. 어쩌면 내가 J를 망쳐놓았다는 비난과 자책에서 살짝 놓여날 수 있는 빌미가 생긴 거다. 봐라, 딜런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환경에서도 타고난 기질 탓에 우울증과 폭력 성향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딜런에 비하면 J가 저지른 갖가지 일탈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은 또 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면밀히 지켜보아도 놓치는 것이 있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맙소사. 아이가 숨기려고만 들면 아무리 대화 많은 부모라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 경우엔 오죽할까. 

마침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이 책에 대한 정희진씨의 칼럼이 실렸다. ^^; 옴메 기죽어 그러면서 움츠러들어 더 마무리가 괴로웠던 것 같다. 감히 쨉도 안되는 주제에 무슨.. ㅋㅋ 

"이 책은 해설(앤드루 솔로몬!), 추천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명문이다."라는 단락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이다. 당연히 글을 링크해야겠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947.html#csidx455111f6840324297cd3be3adda51b6 


최소한 모든 교육자들과 부모들이 다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 육아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 아이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추천사(조한혜정)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8-9)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p257)



Posted by 입때
,

일단 탈출

투덜일기 2016. 10. 21. 16:47

출판쪽 일 끊겨서 백수 됐다고 징징거리는 포스팅으로 여러 이웃의 위로를 받았으니 좋은 소식도 제일 먼저 여기에다 알려야 예의일 것 같다. ^^; 넉달 반만에 드디어 (책 번역 의뢰로 치면 거의 1년만의 희소식인듯) 책을 번역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휴우. 일단 안도의 한숨.

업계 지인들이 그간 내게 많은 조언을 했었다. 일단 몸값을 낮춰! 거래하던 출판사 담당자들이나 아는 출판사 사장님들한테 일 달라고 전화를 돌려! 아마존을 뒤져서 쓸만한 책 찾아 기획번역을 해! 등등... 하지만 겁쟁이인 나는 마냥 자괴감에 빠져 적극적인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그나마 옛날 영화 번역이라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감사한 일이다, 겸허하게 마음 먹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길로 망하면 과연 다른 직업으론 뭐가 좋을까 막연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편이었다. 주변에 1년씩 멍하니 기다려봐도 일감이 없어 부업하는 번역자들이 좀 많아야지. ㅠ.ㅠ 

이 업계도 빈익빈부익부여서, 출판사 편집자들도 번역가들의 최신 프로필을 온라인으로 살펴서 어떤 책을 작업했었나 최근엔 무슨 책이 나오나 근황을 확인하고 일감을 의뢰하기 때문에 만약 몇년 일 없이 논 사람으로 찍히면, 실력이 없든 성실함이 떨어지든 개인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일을 못하든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쉽다. 그럼 완전히 도태되는 수밖에. 나 역시 그럴까봐 겁이 났던 거다. 그나마 올 상반기에 번역해서 넘긴 책은 뿌리 깊은 불황으로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니... 결과론적으로 난 올해 지금까지 딱 두 권의 책 밖에 못 낸 사람이다. 뭔가 퇴물 일보 직전의 느낌이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불황도 불황이려니와 최근 몇년간 마감일을 엄청 넘기며 불성실하게 굴었던 나의 게으름 탓이 다분할 것이다. 뭐든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문제가 발생하진 않으니까. +_+ 그러나 글줄로 밥먹는 사람들, 아니 인문학 관련 종사자 전체를 통틀어 마감 잘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나? 라는 핑계를 대며 단기 작업을 해야하는 요새도 며칠씩 마감을 어기고 담당자에게 늘 죄송하고 민망해한다. 아주 고질병이다. 다들 그런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절대 아닌데... 매번 애 먹이는 번역자에게 또 일을 맡겨준 분들에게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료는 고집 안부렸음. ㅎㅎ

재미 있는 건 이번에 맡은 소설도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외국이든 한국이든 요즘 웬만한 재미있는 책들은 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추세이니, 소설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원작을 번역해본 경험이 대부분 있지 않을까나. 사실 나는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영화로 만들어진 번역서가 엄청 많은 게 아닌데도 은근히 영화 원작 소설 번역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같다. 워낙 영화와 책으로 둘 다 대박 난 경우가 딱 하나 있어서 그럴지도... 암튼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더 유명한 작품을 번역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여겨주면 나로선 그저 감지덕지 영광이다. 이번엔 제발 담당자 속썩이지 말고 잘해봐야지 ㅠ.ㅠ 마침 마감을 절대 어기면 안될 중대 이유도 생겼으니 굳게 마음을 다잡고 있다. 석달치 스케줄표를 아주 면밀하게 작성해 일일분량 달성기록을 적기라도 해야하려나... 아무튼... 아자아자 화이팅이다. 흥해라, 출판계! ㅋㅋ 


Posted by 입때
,

편견

투덜일기 2016. 10. 16. 14:33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헐겁기는 해도 나름 '조직'이라는 곳에 새삼 여럿 소속되어 있다보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자꾸 부대낀다. 내가 선택하라고 하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둥글둥글 지내야한다는 얘기다. 조직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관두고 홀로 일한지가 20년도 넘었는데, 괜히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인간관계로 인해 종종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일단 좀 두고보자 참고 있다.

하려던 이야기는 그런 푸념이 아니고... 

하여간에 내가 일부러 좀 거리를 두려고 애쓰던, 나와는 정말 코드가 안맞는구나 싶었던 어느분에게 엊그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약간 생각이 깊어졌다. 결론적으로 내가 너무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나쁜 인간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분이 나를 붙잡고 뭔가 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눈치인 걸 감 잡았으면서도 처음엔 굳이 알고 싶지가 않아서 아예 좀 슬슬 피해다녔다. ㅋ 물론 결국엔 붙들려서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만... (여기서 의문 잠깐, 내가 그렇게 맘 편하게 속을 막 털어놓고 싶게 생겼나? 아 진짜 반평생 '들어주는 사람' 역할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이젠 졸업하고 싶은데;;)

사연은 이렇다. 그분이 '살짝 나에게만' 들려주고 싶다던 이야기는, 얼마 전 제대한 24살된 아들을 결혼시키게 됐다는 거였다. 그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는 분이라 속으로 좀 놀라면서도 대번에 짐작했다. 오호라, 속도위반인가? 일단 기계적인 축하인사를 건네며 또 속으로 딴 생각이 들었다. 아오, 몰랐으면 모를까 결혼식 얘기를 들었는데(바로 다음날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축의금을 챙겨드려야 하나? +_+

쌀쌀맞고 계산적인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분은 구구절절 그간 마음 아팠던 사연을 털어놓으며 간간이 눈물까지 비쳤다. 철원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그분의 아들은 상급자들의 폭언과 괴롭힘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했고, 의식불명으로 응급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오는 사태가 벌어졌었단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매일같이 면회다니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도해도 일주일째 차도가 없었는데, 지방에 있는 여자친구가 면회를 다녀간 날 기막히게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더란다. 엄마의 통곡은 안들려도, 여자친구의 통곡은 아들의 영혼에 가 닿았던가 보더라나. 

암튼 엄마가 잠시 배신감에 사로잡히든 말든, 아들은 눈을 뜨자마자 첫 마디가 "OO이는?"이라며 여자친구를 찾았고, 면회를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이던 여자친구는 기차에서 그 소식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왔고... 아들의 부모는 둘이 그렇게 사랑하면 같이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방에서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사정해 자기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년이 종종 실어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곁에 있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참 그 여자친구도 착하지, 부탁 대로 직장 관두고 서울에 올라와 남자친구가 회복될 때까지 돌봤다는 것 같다.

서로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두 연인을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결혼을 시키기로 했는데, 신부감 집안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일을 해서 친정 생계를 얼마간 도와야하는 입장이라 신혼집도 지방에 친정 근처에 잡아주었고, 집장만이며 세간살이, 결혼비용까지 전부 다 대출받아서 자기네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빚지고 아들 장가보내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 며느리 행복한 게 제일이라면서, 그분은 예쁘게 웃고 있는 둘의 사진을 여러장 내게 보여주었다. 미리 유럽으로 신혼여행 겸 셀프 웨딩촬영도 다녀왔다나. 

그러면서 속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씩 던지는 게 상처가 된다고도 털어놓았다. 늦둥이 중학생 아들도 있는 오십대 초반 엄마가 큰아들 장가보낸다고 하면 다들 첫 마디가, 속도위반이구나! 한다는 것. 속으로 나 역시 뜨끔했다. ㅠ.ㅠ 사고친 게 아니고서야 요새 누가 24살에 아들 결혼을 시키냐는 둥, 왜 좀 더 두고보며 좋은 사람 골라보지 그러냐는 둥, 쓸데없는 간섭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놓고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인생마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말고 그 속엔 얼마나 더 깊은 사연과 아픔이 있는지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데 왜 다들 섣불리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나를 포함해 인간들 참 못됐다.

민망함과 미안함 때문에 더 호들갑스럽게 축하인사와 위로를 전하고 돌아와 씁쓸한 반성 시간을 가지고도 뭔가 심히 빚진 기분이다. 요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다. 미국 학교내 총기사고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참회록이랄 수 있는 이 책은 나중에 따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암튼 부모나 절친조차.. '아무도 몰랐던' 아이의 고통과 분노가 만들어냈을 엄청난 사건을 복기하며 함부로 타인을, 자식을, 현실을 속단하지 말라고 당부한다(책을 절반쯤 읽은 바로는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편협하고 속좁게 살아갈 나는 문제의 그분과 더욱 친해진다거나 코드를 맞추려는 노력 따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젠 그분이 어떤 돌출 행동이나 좀 과한 발언을 하더라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뭔가 다른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지레 눈쌀 찌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아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은 생겨나지 않을까.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