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직업을 지닌 동생은 얼마 전부터 전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 분야에선 감 떨어지면 생명 끝이야, 라는 그의 비장한 말을 들은 건 꽤 됐다. 20년 가까이 머리를 쥐어짜가며 버티고는 있지만 자꾸만 그 '감'이라는 게 떨어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화수분 같아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감 떨어질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확실히 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노래방엘 가서도 꼭 김동률, 넥스트 같은 노래를 선곡하며 젊은 감각을 유독 자랑하던 부장이 있었다. 다방면의 음악을 들었고 와인을 음미했고 연극을 보러 다녔고 정장에 메신저백을 매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십대였던 우리는 그 사람을 질색했다. 그가 어디선가 물어오는 썰렁한 유머라는 것도 하나같이 고리타분 전혀 웃기지 않았고, 우리들의 유머는 잘 못알아듣고 초를 쳤다. 그럼에도 부하직원들의 사적인 대화에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하는 행동이 밉상이었다. 우리는 애써 젊은 척하려는 그에게 '나잇값' 못한다고 흉을 봤다. 이제는 '나잇값'이라는 말을 치떨리게 싫어하건만, 그 땐 툭하면 쯧쯧 혀를 차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걸 보면 한심하게도 나는 조직내 왕언니라는 호칭 때문에 조로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나잇값을 못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나름의 취향을 고수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감이 떨어진 것 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감이 떨어진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 지난 과거를 포장해 자꾸만 추억하는 사람을 보는 때만큼이나 서글펐다. 꼴같잖은 상사나 중노년의 어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오래 전 일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렇게 감 떨어진다고 비웃던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중년이 되었다고 해서 철이 더 들었다거나 현명해졌다거나 지식이 많아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순간순간 스스로 감떨어지는 중늙은이가 됐다는 깨달음이 들어 허걱 하고 놀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늙는 건 마음먹기 달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의 나는 간혹 저도모르게 꼰대같은 소리나 툭툭 내뱉고 앉았고 빠릿빠릿한 센스도 한참 뒤떨어졌다. '아'하고 이야기했는데 '어'하고 알아듣는 사람만큼 답답한 게 없다고 노상 떠들어댔으면서 문득 내가 그러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도 원래 자의식에 빠져 움츠러들면 아무것도 아닌 말조차 오해하고 오독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내가 시방 그러는 것 같은 기미가 느껴진다. 서글프다. 가장 슬픈 건 슬쩍 나이탓을 하며 모자란 행동에 면죄부를 씌우려는 무의식적인 나의 태도다. 아니, 감이 떨어졌는지 아닌지 모를만큼 거침없고 무감하게 살 수 없게 된 작금의 상황이 참 슬프다.
떨어지는 감을 세워올리려면 최첨단 안테나라도 구비해야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그 옛날 내가 손가락질하며 외면하던 중년의 부장처럼 못나게 몸부림치다 사그라져야 하는 걸까. 비어버린 머리는 어떻게든 두들겨서 뭔가를 집어넣어본다지만, 고성능 최첨단 안테나는 구할 수나 있는 것인지 그걸 몰라 더욱 어깨가 처진다. 감 좀 떨어지면 어때, 하면서 뻔뻔하고 자연스레 수긍하며 살아갈 용기를 찾는 게 더 빠르고 옳은 길일 수도 있겠다.
나이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늘어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확실히 나이와 함께 자신감이 줄어듬을 느낀다. 어쩔 수가 없다.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마흔을 넘기고 난 뒤의 나이듦은 성숙을 지나 노화를 향할 수밖에 없나보다.
지난 몇년 새 내 자신감을 특히 좀먹기 시작한 신체적 노화 증상은 바로 노안, 코골이, 흰머리다.
사람에 따라 30대 중반부터 시작되기도 한다는 노안은 <중년안>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게 그거다. 노안 대신 <중년안>이라고 박박 우기는 게 더 서글픈 느낌이다. 몇년 전부터 친구들이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최대한 액정 큰 기종으로 바꾸면서, 작은 액정에 뜨는 글씨는 당최 보이질 않는다고 할 때는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답 문자 보내는 게 골치아파 대신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들을 늙은이라고 놀리며 그들보다 한두 해 젊은 걸 기뻐했던 것 같다. 그때 친구들이 장담했었다. "너도 금방이다! 두고봐라."
아직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나도 명함에 박힌 제일 작은 글씨라든가 화장품 상자 구석에 적힌 작은 글씨들을 읽으려면 안경을 벗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안>이란 안구와 수정체, 각막 따위의 탄력이 떨어져 순식간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현상을 말할 거다. 처음엔 안경을 벗거나 눈을 찌푸려 애써 초점을 맞춰야 하고, 좀 더 지나면 돋보기의 힘을 빌어야 하는...
벌써부터 휴대폰 문자를 보낼 때 휴대폰을 코앞에 두는 게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느릿느릿 문자판을 찍는 친구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거라 생각하면 그야말로 서글프고 괜히 억울하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빠 고생했으면 노안이라도 건너뛰어야 공평한 거 아닌가!
노안 만큼이나 보편적인 노화현상인 코골이도 나에겐 제법 충격적이었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누가 옆에 있기만 해도 잠을 못잔다고 타박하던 인간이 코를 골다니. 평소에 코를 골지 않던 사람들도 심히 피곤하면 코를 고는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어려서부터 얌전한 잠버릇으로 유명했다던 내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놀라움과 슬픔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코골이는 목젖이 늘어지거나 비강이 좁아져 생기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마흔 넘어 뺨이 쳐지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보이지 않는 목구멍 살까지 쳐지고 말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옆에서 확인해줄 사람이 없으니 나의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 또한 코고는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지 궁금해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자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걸 확인하는 마음은 더 무거울 것 같아 관두고 말았다.)
요가 강습은 매번 맨 마지막에 팔다리를 약간씩 벌린 채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 자세로 끝이 난다. 어둑한 조명과 따뜻한 열기 속에 낑낑대며 몸을 쓰다 드러누워 있노라면 그 3분에서 5분 사이가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지긴 한데,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이 (가끔 잠드는 어린 정민공주 말고도!) 있다. 의식적인 호흡에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누군가 까무룩 선잠이라도 들라치면 쌕쌕 숨소리가 달라지고, 간혹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5분 뒤 요가 강사가 손가락발가락을 살살 움직이라고 하면서 휴식에서 일깨워주어도 모른 채 잠들었다가 다들 일어나 앉는 소리에 퍼뜩 깨어나는 이를 보노라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쓰럽기 보다는 거기서 코까지 골며 잠들 수 있는 무던함이 부러울 정도다. 그러면서 코골다 깨어난 강습생의 나이를 유심히 가늠하며 나를 위로한다. '그래... 쟤는 20대 후반밖에 안됐는데 벌써 코를 골잖아. 넌 40대에 접어든 중년이야. 코 고는 게 큰 흉은 아닐 나이잖니...' 하지만 아무리 자위해 보아도 슬픔은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ㅌㄹ 마을 엠티도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조심스러워서 어디 잠이라도 잘 수 있겠나. 생각 같아선 이번 기회에 나의 코골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오랜만의 떼 취침에 내가 먼저 잠들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엔 흰머리를 한꺼번에 일곱개나 뽑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보다 네 살 어린 막내동생은 20대 중반에 이미 염색이 필요할 만큼 흰머리가 많았고, 큰동생 역시 이젠 머리숱이 적어져 흰머리를 뽑는 게 아까운 지경이 되었으니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났을 동생들에 비해선 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새치를 한둘씩 보이는 아이들과 달리 얼마 전까지는 새치 하나 없던 사람에게 생겨나는 중년의 흰머리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몇년 전부터 여기저기 가끔씩 보이는 흰머리를 하나 둘 뽑을 때는, 흰머리가 아니라 <새치>라고 극구 우겨보았지만 요번에 양쪽 귀언저리에서 집중적으로 서너개씩 흰머리를 뽑고 나니 귀밑머리부터 센다는 전형적인 노화현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친구들 가운데는 스스로 스컹크가 되었다며 염색을 하지 않고는 절대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백발이 성성해졌음을 토로하는 이도 있으며, 흰머리를 뽑기는커녕 한 오라기라도 소중히 보호해야한다면서 두드러진 흰머리를 중후함의 상징이라 자랑하기 시작한 친구도 있다. 하지만 흰머리에 대처하는 방식이 누구나 다르듯, 몇가닥이든 수십가닥이든 수백가닥이든 본인이 느끼는 충격의 정도는 다를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나이가 어떠하든 누구나 동안을 추구하고 젊고 튼튼한 육체가 아니면 손가락질 받는 연령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 분위기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나의 이성은 부르짖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노화의 증거 앞에 이토록 맥이 빠지는 걸 보면 속으론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는 <나이값>이라는 말이 싫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나답게> 사는 걸 무모한 철없음과 동격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여겼는데, 이런 두려움은 결국 사십대의 나이값인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더욱이 내 정신은 아직 중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내 육신은 이미 앞서 노년을 준비하고 있으니 원.
벨로를 시초로 블로그 이웃분들의 연이은 <자신감> 포스팅을 보면서
약간은 자아비판 비슷한 고백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겠지만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간 바쁘기도 했지만 자꾸 뜸을 들이게 됐던건
과연 내 인생에서 자신감 100개인 시절이 있었던가, 아닌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아
그냥 내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시기를 정점이자 100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우유부단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즈키님이나 키드님처럼 살아오는 동안 자신감이 100개로 온전히 채워진 적은 없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장 자신만만하고 심지어 오만불손하기까지 했던 시기를 억지로라도
100개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나를 믿는 마음>인 자신감이 앞으로 더더욱 고개를 숙이거나 고작해야 수평선을 유지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게다.
그러므로 <자신감 백개>라는 말을 처음 뱉은 11살 이쟁그만 양이나 벨로의 <자신감 백개>와 비교한다면 나의 자신감 백개의 수준은 최소한 다섯개쯤 부족한 기준의 정점임을 미리 털어놓고 시작해야겠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초기엔 비교적 기복이 별로 없는 자신감 곡선을 그리다 비스듬히 상승해 정점을 찍은 다음 비교적 짧은 시기에 쌍봉낙타 혹 같은 굴곡을 겪은 후 계속해서 완만한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떻게든 재미있어 보이려고 나 또한 자신감 그래프를 덩달아 그려보았다.
컴맹답게 이면지에 색연필로.. -_-;;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 출신의 부모 슬하에서 자란 8남매 가운데서도 장남이신 우리 아버지의
첫딸로 태어난 나는 온 가족의 사랑은 물론 동네 사람들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며 자랐다고 했다.
동네에 워낙 아기들이 없었기도 했고, 말이 빠르고 노래도 곧잘해서 재롱을 꽤나 많이 부렸다나 뭐라나..
외가에선 울보인 나를 <난이>(못난이의 준말인데, 외삼촌들은 내가 20대가 된 후에도 그렇게 불렀다 ㅎㅎ)라고 불렀지만 내심 나는 못난이 3형제 인형처럼 못생긴 건 <절대> 아니라고 자신했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를 억지로 7살에 입학시키고 할머니가 업어서 등하교를 시킬 때도
한글을 몰라 칠판에 적힌 숙제를 베끼느라 초반엔 늘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원피스와 블라우스를 입고 다니던 <귀여운> 꼬마를 선생들도 다들 예뻐해서
나는 그들에게 항상 볼타구니를 꼬집히는 것만이 불만이었다.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은 전혀 없고, 그저 선생님 말씀을 중히 여겨 숙제만은 빠뜨리지 않았던
나는 어느새 우등생 범주에 속했고, 유별나게 뛰어나진 않으면서 그림도, 글짓기도, 노래도 이것저것 두루두루 잘 하는 편이라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의젓한 누나였다.
그럼에도 자신감이 백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부족한 숫기와 형편없는 운동신경 때문이었다.
반장 부반장 따위를 하는 건 죽어도 싫었고, 어려운 선생님들이 득실거리는 교무실에 들락거리는 것도 싫었으며, 몸을 써야하는 체육 시간엔 한숨만 나왔다. 심지어는 국민학교 5학년때 기계체조 특성교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체육 성적 '양'을 받은 적도 있다. ㅋㅋ (방학날 충격을 받은 엄마는 당장 성적표를 들고 학교로 뛰어가, 우등상을 주지를 말든지, 체육 양을 주지 말든지 그런 게 어딨냐며 따지기도 했다)
그래도 내 유년시절의 자신감을 갯수로 따져보면 70개에서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도 양상은 비슷했다. 특별히 열심히 공부를 하는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으면서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는 편이랄까.
리더십도 숫기도 없으니 반장 재목은 결코 안되고(뽑아준대도 싫었다), 미화부장이나 독서부장 정도나 하면서 뒤에서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집에서도 공부하라는 말 들어본 적 거의 없었고, 오히려 시험 때 반짝 낮엔 괜히 책상정리만 하다가 밤늦게 공부를 하려고 들면 부모님은 무리하지 말고 일찍 자라고 하셨더랬다. -_-;;
수업시간에 안 졸고 필기를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그 외엔 정말로 별로 공부는 안했는데도 막연하게 우등생이라고 하니, 내심 진짜 열심히 공부하면 1등도 문제는 없겠군...이라고 건방지게 생각하면서 막상 실천은 하지 않는(아마도 겁이 났겠지) 비뚤어진 오만함도 있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미대진학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뒤늦게 화실을 다니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 부류로 취급받기도 싫고(아 재수 없다) 비싼 학원비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도 않아서 그림은 취미로 삼아야지 마음 먹기도 했다. (자신감 갯수 80)
심지어 고3때도 열심히 공부를 한 기억보다는 야자 시간에 몰래 떡볶이 사먹으러 다니던 기억이 더 많고
연애하느라 고민에 빠진 친구 얘기 들어주느라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수다를 더 오래 떨었다.
결국 혐오스러운 수학에 발목을 잡혀, 기대보다 낮은 학력고사 점수에 재수하겠다고 단식투쟁을 잠시
벌이긴 했지만, 대학엘 다니고 보니 학교 이름값도 전공도 내겐 그리 중요하지 않을 만큼 대학생 생활이 즐거웠다. ^^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점수 몇점 때문에 이른바 일류대학이라는 곳에 못 간 걸 후회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내 주변엔 훌륭한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에서도 여전히 나는 친구들에게 노트필기를 빌려주는 우등생이었고, 문어발식 연애가 가능할 정도로 이상스레 인기도 높았다. ㅋㅋ (자신감 갯수 90)
졸업을 앞두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역시 공부는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셔대던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시험삼아 넣어 봤던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에선 당연히 떨어졌지만(토익 점수표도 없이 서류를 접수시킨 내가 미친*이라고 했다^^) 곧이어 동기들 가운데 거의 두세 번째 취업자가 되었으므로 자신감이 꺾일 필요는 없었다.
미국 의류수입업체의 서울 지사였던 나의 첫직장은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해준 곳이었다.
영문과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실용영어는 달달 외운 자기소개 내용밖에 없었던 내가 서바이벌 잉글리시를
익힌 곳도 그곳이었고, 가끔 야근과 철야를 불사하더라도 코피 터지도록 열심히 일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말겠다는 꿈을 키운 곳도 거기였다. 패션과 무역에 대해서도 수박 겉핥기 식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본사로 출장을 다녀오고, 직접 개발했던 샘플 옷이 본생산을 거쳐 메이시즈, 시어스 같은 쇼핑몰에 걸려있는 걸 보게 될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내 본명 대신 영어 닉네임이 영어로 찍힌 명함을 들고 다녔던 그 시절엔 정말로 내가 실력 대단한 MD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여, 언젠가는 그 업계에서 지사장이나 지점장 자리 하나 꿰차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너무도 바빴고 하루가 멀다하고 술 마실 일도 있었는데, 다음날엔 술냄새를 풍기면서라도 거뜬히 출근했다. 누구와 약속이라도 잡으려면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일주일 뒤쯤을 기약해야 할 정도로 쓸데없이 분주했다. 그 때가 바로 내 자신감이 정점이라 느껴지는, 그래프 상의 A 지점이다(드디어 자신감 100개!). ^^*
하지만 첫 직장에서 만 3 년을 지내고 보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불합리한 인종차별과 가혹한 인사관리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더 견딜 수가 없었고, 한국 노동위원회에 제소까지 하는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엔 내가 떠났는데, 이후에 별 깊은 고민 없이 선택한 회사들은 더욱 가관이었다.
인종차별은 있었어도 성차별은 없었던 미국 회사와 달리, 한국 회사들은 뿌리 깊은 성차별로 나를 좌절시켰고 늘 커피 타는 문제, 복사하는 문제, 승진문제로 턱턱 내 숨통을 막았다. *_*
내가 아이템을 잘못 선정하여 입사한 잘못도 있지만, 야심만만했던 내 의욕만큼 회사에서 나를 키워줄 수 없는 분야임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감이 극적으로 꺾이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나는 다시 미래를 염려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직업을 살폈고, 지겹도록 되풀이했던 매뉴얼과 계약서 번역이 아닌 진짜 번역을 평생 하고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무렵 우연히 지인의 번역원고를 몇 꼭지 도와주고 나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데서 대책없이 용기를 낸 것이었는데, 내가 손만 뻗으면 당장이라도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번역을 맡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던 번역가로서의 첫발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을 앞두고 번역가를 지망하는 막연한 백수로 지냈던 6개월 정도의 시절이 바로 자신감이 60개 정도로 떨어진 그래프의 B 지점이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시험번역을 의뢰했던 출판사에서 "좀더 습작이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좌절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나는 머지 않아 또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기에 자신감은 바닥을 향해 치닫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내게 습작이 필요하겠다던 출판사는 내가 낑낑대며 6개월쯤 습작을 하고 있을 무렵 다시 연락을 해왔고 1995년을 시작으로 내 이름을 달고 출간된 번역서들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으며
나를 찾는 출판사도 차츰 늘어났다. ^^
비상근으로 외서기획을 맡아달라는 출판사도 있었고, 해외 도서전에 대신 다녀오기도 했다. 부족한 공부도 할 겸 가방끈도 늘릴 겸 대학원에 다닐 때는 평생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등록금 아깝지 않게 공부만 했다. 방학동안엔 다시 번역에 매달려 편집자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원고독촉을 받았지만, 띠동갑에 가까운 아이들과 어울려 학교를 다니며 적게는 5살쯤, 가끔은 무려 열살이나 어리게 취급받으며 "학생!"이라고 불리는 묘미도 짜릿했다. 이제 더는 진솔한 인간관계를 새로이 맺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딜 가더라도 마음이 통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는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자신감은 정점까지 다시 오르지 못했다.
서른 살 이후로는 연애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아니, 아예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귀찮고 두려웠다. 말로는 "연애 빼고 내가 못하는 게 어딨어!"라고 하지만 그 목소리는 예전보다 확실히 덜 활기찬 게 느껴졌고, 사진 속에 변해가는 내 모습도 흠칫흠칫 놀라웠다.
물론 여전히 나는 자유로움과 소박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내 일이 좋고, 남들의 잣대로 보아 크게 성공하겠다는 돈욕심도 없으며 더 큰 이름을 떨치겠다는 야망도 없다.
원숭이 줄타기 법칙 운운하며 엄살을 떨기는 하지만 지금보다 더 게으름만 부리지 않는다면 꾸준히 일감을 물어다줄 고마운 지인들도 충분하므로, 자신감이 아닌 행복의 지수로 따진다면 분명 80이상일 게다.
그럼에도
이제 더는 사람들이 나를 5살씩이나 어리게 보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속이 상하다. -_-;;
"과학과 의술의 힘을 빌지 않고 이 정도면 내가 제일 예쁜 거야!"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던 내가
요샌 고모들의 성화대로 얼굴에 대거 포진한 점이랑 기미는 레이저로 제거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는 놀라운 생각도 하게 되었다. ㅠ.ㅠ (물론 귀찮음과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나중 문제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우선 흠칫 놀란다. 나도 내 나이가 놀랍지만, 과거의 내가 참 많은 것을 이루어놓았을 것이라고 꿈꾸었던 미래의 그 나이에, 그리 성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음이 어쩐지 부끄러워해야할 노릇은 아닌지 반성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 인간으로서 현재 내 자신감은 계속해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나마 그래프를 그리다 보니 지금의 내 위치 C지점은 아직 10여년전의 나락보다 높으며,
엄청나고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보내느라 심신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재미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믿을 수 있었던 힘을 심어준 주변과 가족의 애정에 감사해야 될 것 같다.
내가 뭘하든 결국 내 가족과 지인들은 나와 내 선택을 믿어주었다.
펄펄 뛰는 자신감은 조금씩 잃어도 괜찮으며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자존감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내 자신감의 바탕이었던 주변의 힘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자신감이 역사상 최저치를 지나 더욱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닿는 일도 생겨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등두들겨 줄 작은 용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커다란 재산이자 든든한 빽인 <인복> 때문에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스무살 시절엔 도저히 알 수 없던, 사람들의 변함없음을 서른살이 되고 마흔살을 넘어서면서
새삼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아득하기도 하고 눈깜짝할 새에 지난 세월 같기도 한 시절에 처음 만나
10년, 20년을 함께, 또는 따로 보낸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이면 친근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느낀다.
어깨를 휘젓는 걸음걸이,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 까르르 귀를 찌르는 독특한 웃음소리, 언제나 썰렁하기만 한 유머, 수줍은 듯 빙그레 웃기만 하며 술잔을 드는 손길, 시비를 거는 것 같은 거침없는 말투, 못마땅한 사회에 대한 투덜거림과 불평,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건 절대 용서 안되는 고집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운동화 대신 정장과 구두가 더 어울리는 외모의 까닭모를 반듯함, 그들이 내미는 명함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직함, 눈가에 살짝 내려앉은 주름살, 솟아오른 배나 숱이 엷어진 정수리와 넓어진 이마, 서로 다투듯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내미는 법인카드,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보여주는 아이들 사진, 가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오는 재테크와 골프 이야기 등이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정말로 20년전으로 돌아가 탁자를 두들기며 웃다가도
금세 또 유체이탈을 해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혼령처럼 전혀 낯선 이들의 대화를 천장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을 수시로 오간다.
어딜 가나 제일 변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이젠 뒤떨어졌다는 소리로 들리니
내게도 확실히 변한 건 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떵떵거리던 자신감과 낙천적인 사고는 이제 씁쓸한 자괴감에 쉽사리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약간 허황된 꿈과 로맨스를 기다리고
휘황찬란하고 복잡한 무대 한 가운데서 조명을 받는 것보다 어둑한 구석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게 더 좋고
재테크로 골치아프게 벌어들인 재산보다 인복 많은 게 더 기쁘고
편한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기대되고 지금껏 맺어온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들여다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월과 함께 확실히 성숙한 사람들 틈에서
본래의 미숙함과 치기를 마냥 갖고 살면서, 나 하나쯤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 하고 위로하는
내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일까.
변함없고 한결같다는 게 자랑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미련스런 집착처럼 느껴지는 날, 그게 바로 오늘이다.
그러고 보니 날씨따라 펄럭거리는 감상주의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이러니 내일은 또 펄럭펄럭 행복할 수도 있겠다. ㅎㅎ
별로 한가할 때도 아니고, 심심할 새도 없으며 블로그질에 매진할 때가 절대로 아님에도
시험공부 할라치면 먼저 책상정리가 하고 싶어 3시간씩 책상서랍과 씨름을 벌이거나
소설책이 죽도록 더 보고싶어지는 심리의 일환인지...
키드님이 퍼다놓으신 문답을 또 냉큼 시행해 볼 참이다. ㅋㅋㅋ ^^;;
스스로도 컴플렉스 덩어리라고 느끼고는 있었는데... 새삼 알지 못했던 것들까지 따져보니
컴플렉스의 총아였음이 밝혀지는 듯...
피터팬 컴플렉스 (O)
:어른이 되는것이 싫고 영원히 아이로 남고싶은 욕심이 있었다.
-> 6학년때부터 난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던 조숙한 아이였기 때문에, 과연 저런 상태로도 피터팬 컴플렉스에 해당되는 걸까 약간 의문이 없진 않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는 게 정말로 미치도록 싫었고, 계속 '국민학생'으로 남고 싶었던 건 확실하다.
어른이 되어 이른바 '나이값'이라는 걸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회적/보편적 나이 관념도 몹시 싫기 때문에, 주변에서 '철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심혈을 기울여 사들인 스티커나 스탬프, 예쁜 수첩 따위를 조카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 나에게 이 컴플렉스는 '...욕심이 있었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같다. ㅎㅎ
카인 컴플렉스(X)
:나의 형제 또는 자매끼리 서로 시기한 적이 있었다.
->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우리 삼남매는 참 사이가 좋았고(어린 시절 내 독사진은 아주 드물다. 늘 두 남동생 손을 꼭 잡고 찍힌 사진이 대부분 *_*), 나이차도 얼마 안나는 동생들이 누나 말을 대단히 잘 들었다. 동생들이 다 커서도 여자친구 생기면 제일 먼저 나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이젠 장가 가서 각자 가정을 꾸린 그들의 마눌까지도 다 착하다!
신데렐라 컴플렉스 (X)
:동화속의 신데렐라처럼 자신이 박해 받는다고 생각한다.
->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난 늘 인정받고 의견도 존중받는 맏딸이었기 때문에 일부 자신감이 지나칠 정도였다.
나르시스 컴플렉스 (O)
:자신을 과대평가한 적이 있다. 혹은 하고 있다.
-> 지금은 자신감의 날개가 많이 꺾였지만 ^^;;
자뻑증상이 대단히 심할 때가 있었다.
운동과 "연애" 말고 대체 내가 못하는 게 뭐가 있나!
인간성 좋아, 의리 있어, 성격 화끈해, 요리 잘해, 뜨게질 따위도 잘해...
거기다 과학과 의술의 힘 전혀 안 빌리고 이 정도면 정말 예쁜 거지!..라는 망언도 가끔은 서슴지 않는다. ㅋㅋㅋ
나폴레옹 컴플렉스 (O)
:자신의 키가 작다고 생각해 그 보상심리로 공격적이거나 과도한 행동을 한다.
-> 바로 윗 항목처럼 마구 잘난 척을 하다가 키 얘기가 나오면 기가 죽는다. ㅠ.ㅠ
국민학교 1학년 입학하곤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지만... 중학교땐 당당히 10번대였고, 고등학교때 교실에서 맨 앞자리로 밀려나긴 했지만, 평생 1번은 해본 적도 없는데, 요샌 어딜 가나 내가 제일 작다. 흑...
보상심리로 그러는 건지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원래 가끔씩 과격한 행동을 많이 하며 '여자라서' 또는 '덩치가 작아서' 선심 쓰듯 주는 특권이자 차별(때론 무시이기도..)을 싫어해서, 회사 사무실 이사 같은 거 할 때 걸레질 마다하고 책상이나 파일장 옮기느라 골병들곤 했다. -_-;;
낙랑공주 컴플렉스 (△)
:사랑을 위해서는 가족이나 국가를 배신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애국자는 아니기 때문에 국가는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가족을 배신하진 못할 것 같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가족은 나에게 굴레이자 내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가족 사이에 고민할 일이 생긴다면 충분히 고민한 후 가족을 설득하거나, 가족의 이유가 타당하다면 사랑을 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듯.
(헉.. 내가 이래서 연애를 못하는 건가?)
요나 컴플렉스 (O)
:지금 살고있는 현재의 삶보다 어머니의 뱃속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 별로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당연히 그럴 것 같다.
모든 것이 해결되는 안온한 환경에서 책임과 의무는 전혀 없는 원초적인 삶을 누리며
가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탯줄을 슬쩍 잡아당겨 엄마의 입덧을 부추기면 되는 게 아닐까?
ㅋㅋㅋ (갑자기 영화 <마이키 이야기>가 떠올랐다)
파에톤 컴플렉스 (X)
:어린 시절 겪은 애정 결핍에 의해 지나치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 내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애정과 사랑이 넘치는 시기였다. 8남매 장남이신 울 아부지와 6남매 장녀이신 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첫딸이니 오죽했으랴.
고모들의 증언에 의하면, 거의 방바닥에 내려놓는 일이 없이 늘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컸다고 했다. ^^V
프로메테우스 컴플렉스 (X)
:자신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 절대 아니다! 뭘 배워도 밑빠진 독처럼 남는 게 없는 느낌이라 어디서든 내 무지함이 만천하에 드러날까봐 벌벌 떠는 쪽이다.
이카로스 컴플렉스 (△)
:무능력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아닌 초인적인 어느 완벽한 존재가 되고싶다.
-> 순전히 '가지않은 길'에 대한 동경 비슷하게, 초인적으로 완벽한 존재로 살아가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가끔 인간적인 무력함 앞에서 절망을 느낄 땐 너무 슬프다.
폴리야나 컴플렉스 (X)
:보다 더 나아질 수는 없을 정도로 현재가 최고이며 모든 일을 다 좋게 생각한다.
-> 나 역시 키드님처럼 낙천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지만, 욕심도 많아서 현재가 최고는 절대로 아니며, 모든 일을 다 좋게 생각하기엔 불평 불만이 몹시 많은 투덜분자다. ^^
보헤미안 컴플렉스 (O)
:다재다능하고 자유로우며 변덕적이며 상황에 따라 최대의 이익을 받도록 행동한다.
-> 나르시스 컴플렉스 환자답게 다재다능하다고 느낄 때도 많으며,
자유로운 걸 추구하고(내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현재만큼의 자유로움마저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결혼 후 더 큰 자유의 날개를 단 사람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더라!) 참으로 변덕스럽다. 싫증도 잘 내는 편이므로...
상황에 따라 최대의 이익을 받도록 행동한다는 건, 아무래도 '잔머리 굴리기의 대가'이냐는 질문 같은데 ^^;; 조직생활(?)하던 시절, 잔머리를 굴린 건 아니지만 몸바쳐 충성하는 방식으로 회사에서 늘 인정을 받는 편이긴 했다. 게다가 사회는 '착하면 곧 바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라 착하게 굴지 않으려고, 최소한 내 밥그릇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중이다.
프로그루스테스 컴플렉스 (O)
:현재의 사회에 널리 퍼진 견해나 태도, 집단주의 등을 무시하고 개성있고 싶어한다.
->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온 나라가 시뻘건 물결로 뒤덮였던 2002년 월드컵의 광란에 가까운 집단주의가 무서워 난 거의 TV도 보지 않았다. 유행하는 옷 스타일 따라가는 것도 싫다. 내 옷장에 10년도 더 된 옷들이 버젓이 걸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완전히 튀어 시선을 끄는 것도 싫어한다. 게다가 수백년째 계속해서 유행하고 있는 듯한 여자들의 "청초한 긴 생머리" 물결은 정말 싫다!
파랑새 컴플렉스 (X)
:어느 것이 예전과 바뀌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적이 있다. 한결 같은 것을 좋아한다.
-> 고인 물처럼 변화가 오래 사라지면 오히려 견디질 못하는 것 같다. 변화가 주는 약간의 스트레스와 모험 같은 거 은근히 즐긴다. 요즘 일하기 싫어 죽을 병에 걸린 것처럼 헤매는 이유도 너무 똑같은 일상이 지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프리랜서 주제에 하라는 일을 마다할 수도 없고.. 미치겠다 +_+)
피그말리온 컴플렉스 (O)
:누군가 자신에게 기대를 가지고 관심을 가져주어 그 덕에 자신이 변한적이 있다.
-> 동기부여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늘 온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존재여서(니가 잘해야 동생들은 물론이고 사촌동생들까지 본받는다...는 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ㅋㅋ),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 같다.
첫 회사에서도 "기대가 크다"는 보스 말에 넘어가 정말 미련할 정도로 코피 터지게 일했더랬다.
스톡홀룸 컴플렉스 (O)
:사회나 정의가 아닌 범죄나 범죄자에게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 작년엔가 번역한 책에 좌익과격단체에 납치됐다가 오히려 그 일원이 되어 은행강도에 동참했던 미국 언론갑부의 딸 패트리샤 허스트의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는 바람에 스톡홀름 컴플렉스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공포 때문에 범죄자들에게 동화되는 인간 심리를 뜻하는 거라 저 위 설명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사회가 더 이상 개개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이른바 정의라는 것이 가진자들만을 위한 정의라면 나는 당연히 범죄나 범죄자에게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지난 80년대 사회가 훌륭한 실례가 아닐까.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영화 주인공까지 된 지강헌의 경우, 그가 극악무도한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며 옹호할 맘도 없지만, 그런 범죄와 범죄자를 생산하는 건 바로 부패한 이 사회라고 생각하기에, 당시 그 사건을 보며 안타까웠다.
지강헌의 경우가 너무 심하다면,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어떨까?
제노비스 컴플렉스 (O)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러명이 있을 때 더욱 더 책임감이 희박해진 적이 있다.
-> 당연하지! 난 원래 리더보다는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투덜분자라니깐!
샹그릴라 컴플렉스 (O)
:노화는 숙명이 아닌 자기관리에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젊게 늙고 싶다고 생각한다.
-> 옛날부터 동안이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 어쩌면 강박관념 같은 게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톡스 주사로 터질듯 주름을 감추거나 웃음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쳐진 살을 당기는 노력과 발악은 혐오하는 편이지만, 심신을 가꾸는 자기관리를 통한 젊음 지속하기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예 먹는 나이를 거꾸로 되돌릴 순 없을 테고, 겉은 쪼글쪼글 주름져도 속이 탱글탱글 마음을 젊게 가지면 되지 않을까?
난 아마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이 지금처럼 칠렐레팔렐레 살아갈 테고, 운동화마저도 굽이 높은 걸 신고 다닐 게 분명하며, 누가 나이를 물으면 한참 계산해야 할 것 같다.
번아웃 컴플렉스 (O)
:어떤 한 일에만 집중하다가 갑자기 무기력함을 느낀 적이 있다.
->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인듯...
거의 3년간 쉴새 없이 마감일에 쫓겨가며 번역과 가족일에만 몰두해 살아왔고, 많이 무기력함을 느낀다. 뭔가 활력소를 찾아야 할 터인데.. ㅠ.ㅠ
무드셀라 컴플렉스 (O)
:나쁜 기억은 일부러 지우고 좋은 기억만 가지려고 한적이 있다.
-> 좋은 기억만 뇌리에 남겨두려고 하는 건 인간의 본능 아닐까?
안 그러면 미쳐버린다던데... 특히 난 나쁜 일을 겪으면 당시에 많이 괴로워하는 편이라 얼른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
스탕달 컴플렉스 (X)
:어떤 멋진 예술품이나 무언가를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생기는 정신적 이상현상이 있다.
-> 그저 넋놓고 감탄할 뿐, 특별히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것 같진 않다.
오지상 컴플렉스 (O)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층의 멋진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적이 있다.
-> 20살 전후로는 또래나 두어살 많은 남자들이 죄다 애 같아 보였고
최소한 7살 이상은 차이가 나야 비로소 남자로 보였는데, 20대 후반쯤인가 마지막 회사 다닐 때는 나를 몹시도 밀어주시던 회장님이 정말 샤프하고 멋지셨다 *.*
영화는 완전히 꽝이었지만, <뉴욕의 가을>에 위노나 라이더랑 나온 리처드 기어!
위노나가 했던 새카만 커트머리를 하고 멋진 중년 아저씨랑 사랑에 빠지고 싶었더랬다. ㅋㅋㅋ
근데 지금은... 내가 중년이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