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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3 4
  2. 2009.12.08 서글픈 고백 21
  3. 2008.04.05 자신감 13
  4. 2008.02.29 변함없음 10
  5. 2007.02.02 컴플렉스 문답 6

투덜일기 2011. 5. 13. 21:28

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직업을 지닌 동생은 얼마 전부터 전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 분야에선 감 떨어지면 생명 끝이야, 라는 그의 비장한 말을 들은 건 꽤 됐다. 20년 가까이 머리를 쥐어짜가며 버티고는 있지만 자꾸만 그 '감'이라는 게 떨어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화수분 같아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감 떨어질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확실히 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노래방엘 가서도 꼭 김동률, 넥스트 같은 노래를 선곡하며 젊은 감각을 유독 자랑하던 부장이 있었다. 다방면의 음악을 들었고 와인을 음미했고 연극을 보러 다녔고 정장에 메신저백을 매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십대였던 우리는 그 사람을 질색했다. 그가 어디선가 물어오는 썰렁한 유머라는 것도 하나같이 고리타분 전혀 웃기지 않았고, 우리들의 유머는 잘 못알아듣고 초를 쳤다. 그럼에도 부하직원들의 사적인 대화에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하는 행동이 밉상이었다. 우리는 애써 젊은 척하려는 그에게 '나잇값' 못한다고 흉을 봤다. 이제는 '나잇값'이라는 말을 치떨리게 싫어하건만, 그 땐 툭하면 쯧쯧 혀를 차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걸 보면 한심하게도 나는 조직내 왕언니라는 호칭 때문에 조로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나잇값을 못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나름의 취향을 고수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감이 떨어진 것 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감이 떨어진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 지난 과거를 포장해 자꾸만 추억하는 사람을 보는 때만큼이나 서글펐다. 꼴같잖은 상사나 중노년의 어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오래 전 일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렇게 감 떨어진다고 비웃던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중년이 되었다고 해서 철이 더 들었다거나 현명해졌다거나 지식이 많아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순간순간 스스로 감떨어지는 중늙은이가 됐다는 깨달음이 들어 허걱 하고 놀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늙는 건 마음먹기 달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의 나는 간혹 저도모르게 꼰대같은 소리나 툭툭 내뱉고 앉았고 빠릿빠릿한 센스도 한참 뒤떨어졌다. '아'하고 이야기했는데 '어'하고 알아듣는 사람만큼 답답한 게 없다고 노상 떠들어댔으면서 문득 내가 그러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도 원래 자의식에 빠져 움츠러들면 아무것도 아닌 말조차 오해하고 오독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내가 시방 그러는 것 같은 기미가 느껴진다. 서글프다. 가장 슬픈 건 슬쩍 나이탓을 하며 모자란 행동에 면죄부를 씌우려는 무의식적인 나의 태도다. 아니, 감이 떨어졌는지 아닌지 모를만큼 거침없고 무감하게 살 수 없게 된 작금의 상황이 참 슬프다. 

떨어지는 감을 세워올리려면 최첨단 안테나라도 구비해야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그 옛날 내가 손가락질하며 외면하던 중년의 부장처럼 못나게 몸부림치다 사그라져야 하는 걸까. 비어버린 머리는 어떻게든 두들겨서 뭔가를 집어넣어본다지만, 고성능 최첨단 안테나는 구할 수나 있는 것인지 그걸 몰라 더욱 어깨가 처진다. 감 좀 떨어지면 어때, 하면서 뻔뻔하고 자연스레 수긍하며 살아갈 용기를 찾는 게 더 빠르고 옳은 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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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고백

투덜일기 2009. 12. 8. 16:19

나이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늘어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확실히 나이와 함께 자신감이 줄어듬을 느낀다. 어쩔 수가 없다.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마흔을 넘기고 난 뒤의 나이듦은 성숙을 지나 노화를 향할 수밖에 없나보다.
지난 몇년 새 내 자신감을 특히 좀먹기 시작한 신체적 노화 증상은 바로 노안, 코골이, 흰머리다.

사람에 따라 30대 중반부터 시작되기도 한다는 노안은 <중년안>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게 그거다. 노안 대신 <중년안>이라고 박박 우기는 게 더 서글픈 느낌이다. 몇년 전부터 친구들이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최대한 액정 큰 기종으로 바꾸면서, 작은 액정에 뜨는 글씨는 당최 보이질 않는다고 할 때는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면 답 문자 보내는 게 골치아파 대신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들을 늙은이라고 놀리며 그들보다 한두 해 젊은 걸 기뻐했던 것 같다. 그때 친구들이 장담했었다. "너도 금방이다! 두고봐라."
아직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나도 명함에 박힌 제일 작은 글씨라든가 화장품 상자 구석에 적힌 작은 글씨들을 읽으려면 안경을 벗고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안>이란 안구와 수정체, 각막 따위의 탄력이 떨어져 순식간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현상을 말할 거다. 처음엔 안경을 벗거나 눈을 찌푸려 애써 초점을 맞춰야 하고, 좀 더 지나면 돋보기의 힘을 빌어야 하는... 
벌써부터 휴대폰 문자를 보낼 때 휴대폰을 코앞에 두는 게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느릿느릿 문자판을 찍는 친구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거라 생각하면 그야말로 서글프고 괜히 억울하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빠 고생했으면 노안이라도 건너뛰어야 공평한 거 아닌가!

노안 만큼이나 보편적인 노화현상인 코골이도 나에겐 제법 충격적이었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누가 옆에 있기만 해도 잠을 못잔다고 타박하던 인간이 코를 골다니. 평소에 코를 골지 않던 사람들도 심히 피곤하면 코를 고는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어려서부터 얌전한 잠버릇으로 유명했다던 내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놀라움과 슬픔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코골이는 목젖이 늘어지거나 비강이 좁아져 생기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마흔 넘어 뺨이 쳐지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보이지 않는 목구멍 살까지 쳐지고 말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옆에서 확인해줄 사람이 없으니 나의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 또한 코고는 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코골이가 얼마나 심한지 궁금해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자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걸 확인하는 마음은 더 무거울 것 같아 관두고 말았다.)
요가 강습은 매번 맨 마지막에 팔다리를 약간씩 벌린 채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 자세로 끝이 난다. 어둑한 조명과 따뜻한 열기 속에 낑낑대며 몸을 쓰다 드러누워 있노라면 그 3분에서 5분 사이가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지긴 한데, 놀랍게도 그 짧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이 (가끔 잠드는 어린 정민공주 말고도!) 있다. 의식적인 호흡에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누군가 까무룩 선잠이라도 들라치면 쌕쌕 숨소리가 달라지고, 간혹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5분 뒤 요가 강사가 손가락발가락을 살살 움직이라고 하면서 휴식에서 일깨워주어도 모른 채 잠들었다가 다들 일어나 앉는 소리에 퍼뜩 깨어나는 이를 보노라면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쓰럽기 보다는 거기서 코까지 골며 잠들 수 있는 무던함이 부러울 정도다. 그러면서 코골다 깨어난 강습생의 나이를 유심히 가늠하며 나를 위로한다. '그래... 쟤는 20대 후반밖에 안됐는데 벌써 코를 골잖아. 넌 40대에 접어든 중년이야. 코 고는 게 큰 흉은 아닐 나이잖니...' 하지만 아무리 자위해 보아도 슬픔은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ㅌㄹ 마을 엠티도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조심스러워서 어디 잠이라도 잘 수 있겠나. 생각 같아선 이번 기회에 나의 코골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오랜만의 떼 취침에 내가 먼저 잠들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엔 흰머리를 한꺼번에 일곱개나 뽑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보다 네 살 어린 막내동생은 20대 중반에 이미 염색이 필요할 만큼 흰머리가 많았고, 큰동생 역시 이젠 머리숱이 적어져 흰머리를 뽑는 게 아까운 지경이 되었으니 같은 유전인자를 타고났을 동생들에 비해선 내 상태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새치를 한둘씩 보이는 아이들과 달리 얼마 전까지는 새치 하나 없던 사람에게 생겨나는 중년의 흰머리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몇년 전부터 여기저기 가끔씩 보이는 흰머리를 하나 둘 뽑을 때는, 흰머리가 아니라 <새치>라고 극구 우겨보았지만 요번에 양쪽 귀언저리에서 집중적으로 서너개씩 흰머리를 뽑고 나니 귀밑머리부터 센다는 전형적인 노화현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친구들 가운데는 스스로 스컹크가 되었다며 염색을 하지 않고는 절대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백발이 성성해졌음을 토로하는 이도 있으며, 흰머리를 뽑기는커녕 한 오라기라도 소중히 보호해야한다면서 두드러진 흰머리를 중후함의 상징이라 자랑하기 시작한 친구도 있다. 하지만 흰머리에 대처하는 방식이 누구나 다르듯, 몇가닥이든 수십가닥이든 수백가닥이든 본인이 느끼는 충격의 정도는 다를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나이가 어떠하든 누구나 동안을 추구하고 젊고 튼튼한 육체가 아니면 손가락질 받는 연령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 분위기에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나의 이성은 부르짖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노화의 증거 앞에 이토록 맥이 빠지는 걸 보면 속으론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는 <나이값>이라는 말이 싫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나답게> 사는 걸 무모한 철없음과 동격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여겼는데, 이런 두려움은 결국 사십대의 나이값인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더욱이  내 정신은 아직 중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내 육신은 이미 앞서 노년을 준비하고 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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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삶꾸러미 2008. 4. 5. 22:51

벨로를 시초로 블로그 이웃분들의 연이은 <자신감> 포스팅을 보면서
약간은 자아비판 비슷한 고백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겠지만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간 바쁘기도 했지만 자꾸 뜸을 들이게 됐던건
과연 내 인생에서 자신감 100개인 시절이 있었던가, 아닌가 판단이 잘 서지 않아
그냥 내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시기를 정점이자 100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우유부단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즈키님이나 키드님처럼 살아오는 동안 자신감이 100개로 온전히 채워진 적은 없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장 자신만만하고 심지어 오만불손하기까지 했던 시기를 억지로라도
100개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나를 믿는 마음>인 자신감이 앞으로 더더욱 고개를 숙이거나 고작해야 수평선을 유지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게다.
그러므로 <자신감 백개>라는 말을 처음 뱉은 11살 이쟁그만 양이나 벨로의 <자신감 백개>와 비교한다면 나의 자신감 백개의 수준은 최소한 다섯개쯤 부족한 기준의 정점임을 미리 털어놓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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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음

삶꾸러미 2008. 2. 29. 22:03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스무살 시절엔 도저히 알 수 없던, 사람들의 변함없음을 서른살이 되고 마흔살을 넘어서면서
새삼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아득하기도 하고 눈깜짝할 새에 지난 세월 같기도 한 시절에 처음 만나
10년, 20년을 함께, 또는 따로 보낸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이면 친근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느낀다.
어깨를 휘젓는 걸음걸이,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 까르르 귀를 찌르는 독특한 웃음소리, 언제나 썰렁하기만 한 유머, 수줍은 듯 빙그레 웃기만 하며 술잔을 드는 손길, 시비를 거는 것 같은 거침없는 말투, 못마땅한 사회에 대한 투덜거림과 불평,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건 절대 용서 안되는 고집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운동화 대신 정장과 구두가 더 어울리는 외모의 까닭모를 반듯함, 그들이 내미는 명함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직함, 눈가에 살짝 내려앉은 주름살, 솟아오른 배나 숱이 엷어진 정수리와 넓어진 이마, 서로 다투듯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내미는 법인카드,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보여주는 아이들 사진, 가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오는 재테크와 골프 이야기 등이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정말로 20년전으로 돌아가 탁자를 두들기며 웃다가도
금세 또 유체이탈을 해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혼령처럼 전혀 낯선 이들의 대화를 천장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을 수시로 오간다.

어딜 가나 제일 변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이젠 뒤떨어졌다는 소리로 들리니
내게도 확실히 변한 건 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떵떵거리던 자신감과 낙천적인 사고는 이제 씁쓸한 자괴감에 쉽사리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약간 허황된 꿈과 로맨스를 기다리고
휘황찬란하고 복잡한 무대 한 가운데서 조명을 받는 것보다 어둑한 구석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게 더 좋고
재테크로 골치아프게 벌어들인 재산보다 인복 많은 게 더 기쁘고
편한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기대되고 지금껏 맺어온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들여다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월과 함께 확실히 성숙한 사람들 틈에서
본래의 미숙함과 치기를 마냥 갖고 살면서, 나 하나쯤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 하고 위로하는
내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일까.

변함없고 한결같다는 게 자랑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미련스런 집착처럼 느껴지는 날, 그게 바로 오늘이다.
그러고 보니 날씨따라 펄럭거리는 감상주의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이러니 내일은 또 펄럭펄럭 행복할 수도 있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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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렉스 문답

놀잇감 2007. 2. 2. 02:59
별로 한가할 때도 아니고, 심심할 새도 없으며 블로그질에 매진할 때가 절대로 아님에도
시험공부 할라치면 먼저 책상정리가 하고 싶어 3시간씩 책상서랍과 씨름을 벌이거나
소설책이 죽도록 더 보고싶어지는 심리의 일환인지...
키드님이 퍼다놓으신 문답을 또 냉큼 시행해 볼 참이다. ㅋㅋㅋ ^^;;

스스로도 컴플렉스 덩어리라고 느끼고는 있었는데... 새삼 알지 못했던 것들까지 따져보니
컴플렉스의 총아였음이 밝혀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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